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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망디의 ‘패션 부적응자’ - ②잊을 수 없는 패션 모멘트

MANGDI2016.10.01 17:18추천수 3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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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망디의 ‘패션 부적응자’ - ②잊을 수 없는 패션 모멘트


망디의 ‘패션 부적응자’

‘정석’이라는 말은 나에게 항상 불편한 존재였다. 학교에 다닐 때나 사회에 나온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공부, 대학에서 시작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패션에 관해서도 그렇다. 천편일률적인 것이 싫었다. 재미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 글은 ‘패션’에 대해 삐딱하게 보는 내 시선이 담겨있다. 결코 부정적인 면이 화두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틀에 박힌 패션관을 조금은 '틀어서' 보자는 취지이다. 그게 또 재밌기도 하고. 우리는 어쩌면 비정상 안에서 정상인으로 잘 버텨내며, 오히려 부적응자라는 낙인을 얻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이런 부적응자들의 지옥에서 작은 공감을 갈구하는 소심한 끄적임이다.


*한 달에 한 번 연재될 연재물임을 알려드립니다.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원제: High Fidelity, 2000)>에서 롭 고든역의 존 쿠삭과 베리역의 잭 블랙, 딕역의 토드 루이소는 어떤 한 주제를 가지고 톱5 순위를 매기는 것이 취미이다. 예를 들어, 헤어진 여자친구들의 순위를 톱5로 평가한다는지 80-90년대의 최악의 노래 톱5를 선정한다는지, 오늘의 노래를 톱5로 고른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 주제들은 ‘다섯 가지’라는 명확한 액자에 들어감으로써 강력한 힘을 가진다. 리스트를 작성하기 위해 떠올리는 수많은 기억은 잠시 망각했던 나란 존재에 뚜렷한 자아를 부여한다.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는 것은 꽤 재미있다. 패션에 관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어떻게 이곳까지 왔냐 묻는다면 그 해답을 위한 의식의 추적이 있어야겠다. 나에게 (넓은 의미로의) 영감을 준 순간들은 언제일까? 지금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의식의 흐름이자 패션에 관한 나의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순서는 시기와 무관하며 순위가 아닌 나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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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이셉 라키의 등장


사실 나의 ‘잊을 수 없는 패션 모멘트’를 시작하며 가장 고민이 된 부분이 있었다. ‘에이셉 라키(A$AP Rocky)와 칸예 웨스트(Kanye West)를 넣어야 할까?’라는 명제가 고민의 이유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넣어야 한다’였다. 우려의 내용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진부하다’였고 또한 ‘지겹다’였다. 이미 그들이 양산한 패션은 양적으로 방대했다. 조금은 과장해서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는 동네 친구가 보아도 그들의 이름 한번은 들어 봤다며 스웩 넘치는 표정을 하며 깃을 세우니 말이다. (그 친구는 등산복을 즐겨 입으며, 나름의 드레스-업을 할 때면 소위 자신이 ‘마이’라고 칭하는 정장 재킷을 입고 나온다) 어떻게 보면 ‘피로감’에 패션 스타인 둘을 멀리하려고 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계속된 자극과 영감을 주는 인물임에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어려운 디자이너 얘기를 할까? 아니면 덜 알려진 스타일 아이콘을 추천할까? 전설로 불리는 데이빗 보위, 프린스 얘기를 박식하게 풀어내 볼까?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가장 나에게 피부로 와 닿았던, 직접 결부 되어있던 인물을 얘기하는 것이 바르다고 봤고 그것이 솔직하다 느꼈다.



때는 네 해전 겨울이었나, 아마 그즈음으로 기억한다. 그릴즈(Grillz)를 착용하고 꼼 데 퍽다운(COMME des FUCKDOWN)의 비니를 눌러 쓴 패셔너블한 래퍼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된다. “Goldie”라는 제목의 노래였고 강렬했다. “Purple Swag”을 외치던 그는 아니나다를까 누구보다 빠르게 상승기류에 안착했고, 패션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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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계의 얼마나 많은 패션 스타들이 있겠냐만은, 나에게 칸예 웨스트는 이질적이었고 키드 커디(Kid Cudi)는 재미가 없었으며, 퍼렐과 지디는 화려했다. (퍼렐의 비비안 웨스트우드 마운틴 햇과 샤넬의 트위드 재킷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지디는 물론 놀랍다) 나의 패션 취향을 정확히 저격한 인물은 라키였고, 다분한 스트릿 기질에 하이앤드를 적절히 섞는 모습은 감탄을 금치 못 하게 했다. “F**kin` Problems” 뮤직비디오 속의 미니멀리스트적인 모습과 “Fashion Killa”의 도나 카란(Donna Karan)은 누구보다 트렌디했다. (각 시기에 비교적 피로감이 적은 브랜드들을 찾아다니는 그의 태도도 인상 깊다) 그가 등장한 그 시기는 나의 패션관에 큰 방점을 찍는 시기임이 틀림없다. 다시 한 번 “Goldie”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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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칸예 웨스트와 마르지엘라의 이저스 투어


위에서 언급한 이질적인 칸예다. 사실 마땅히 대체할 표현이 없어 이질적이라고 표현했을 뿐이지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그의 스타일이 ‘멋’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현재 미니멀을 추구하는 칸예 또한 미니멀을 역시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뭔가 빗겨나간다. 그 정확한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단어와 문장으로 정확히 풀어낼 길이 없다. 그러나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서로 다른 논리와 모든 경우, 취향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하나의 시기가 있었다. 뭔가를 찍어누르는 ‘압살’이라는 표현이 가장 가깝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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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체적인 디스코그래피를 훑으며 패션에 관해 언급한 나의 글에서 ‘모든 것을 해탈한 "GOD"으로의 경지’라는 낯간지러운 찬사를 남긴 적이 있다. 누군가 칸예의 1집에서 6집까지의 가장 큰 패션 임팩트를 고르라고 한다면 5집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와 6집 [Yeezus]에서 고민을 하겠지만, 간발의 차로 6집을 꼽으며 같은 시기인 2013년 마르지엘라(Margiela)와 함께한 이저스 투어(Yeezus Tour)에 대해 말할 것이다. 사실 그 전까지도 다양한 활동과 스타일을 보여준 칸예 웨스트였기에, 더 보여줄 것이 있냐는 생각이 가장 컸다. 그러나 그는 해체주의의 끝판왕 마르지엘라와 함께하며 하이패션, 쿠튀르의 결정체를 보여준다. 2012년 파리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에서 보여준 스와로브스키(Swarovski)와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Masion Martin Margiela-현재는 Maison Margiela)의 복면과 마르지엘라의 의류들을 착용하며 "I Am A God"을 외치는 그의 모습은 마지막 한계를 뛰어넘은 듯 보였고 마치 패션계의 예수와도 같았다. 나는 그에게 철저히 ‘압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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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


2012년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런던 올림픽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패션계가 눈여겨본 때이기도 하다. 미다스의 손길(Midas Touch)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패션쇼의 피날레에선 케이트 모스, 나오미 캠벨, 스텔라 테넌트, 릴리 콜 등 영국 출신 톱 모델들이 영국 출신 디자이너들의 금빛 드레스를 입고 나란히 워킹을 하며, 압도적인 장관을 만들어낸다. 폐막식의 패션쇼 무대를 수놓은 금빛 드레스들은 2010년 타계한 알렉산더 맥퀸의 후계자 사라 버튼과 크리스토퍼 케인, 비비안 웨스트우드, 버버리, 빅토리아 베컴, 조나단 샌더스, 어덤, 폴 스미스가 디자인했다.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패션’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너무나 영광스럽고 아름다움이 틀림없으며, 이 폐막식은 런던 패션문화의 위상을 드높임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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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리미엄 진? 아베 좀비?


3~4년 전 거리는 온통 ‘청바지’ 열풍이었다. 빼놓을 수 없는 패션 요소인 ‘청바지’라서가 아니다. 특유의 스티치와 문양이 디자인된 소위 말하는 ‘프리미엄 진’의 열풍이었다. 패션에 관해 회의감이 들었던 시기가 있다면 바로 이 시기인데, 지금 되돌아보며 ‘객관적 시각’에서 보려 노력해도 국내 패션의 역사 중 ‘별로’인 시기는 맞는 것 같다. 전형적인 미국 패션의 마케팅을 얹은 프리미엄 진의 최대 시장은 ‘한국’이었고,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며 거리를 장악했다. (너나 나나 할 거 없이 프리미엄 진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무수히 많은 브랜드를 양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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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가격이 옷을 입은 이들의 등급을 나누는 도장이 되었다. 반드시 옷에 아이덴티티와 신념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 영혼이 없었고 또한 낭만이 없었다. ‘아베 좀비’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던 시기도 대강 일치한다. 그 실상도 비슷했으며 TV 프로그램에서 ‘아베 좀비’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그들을 비판한 배우 유아인의 모습이 인상 깊다.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그들의(앞서 말한 브랜드들) 흥행과 몰락의 두 시기가 기억에 남는다. 어찌 보면 그 시기들이 매번 말하는 부적응자들의 지옥이었는지도 모른다.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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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라프 시몬스의 디올 쿠튀르


가장 좋아하는 축구팀을 꼽는데도 나흘이 걸리며, 메뉴 선택에 허덕이는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를 꼽으라고 한다면 고민 없이 한 사람을 말할 수 있다. 바로 라프 시몬스(Raf Simons)인데, 여담이지만 나는 패션 바이오그래피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패션에 눈을 뜨며 여러 가지 스타일 요소들을 잘라 내 것으로 흡수하며 그래프 상 상승곡선을 이루게 된다. 그 시기는 다소 과한 패션으로 치장하기에 이른다. (흔히 말하는 투-머치) 그리고 다시 하향곡선을 이루거나 일정한 평행선을 유지하며 미니멀을 추구하거나 조화를 추구하는 시기에 이른다고 본다. ‘미니멀’과 ‘조화’라는 측면을 극대화하는 디자이너가 라프 시몬스이며 그의 옷은 너무나 매력적(세련된 컷팅과 다양한 색감 그리고 체형을 보완해주는 실루엣이 일품)이다. 애정에 대한 갈구와 찬양은 각설하고 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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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의 시골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Raf Simons)가 질 샌더(Jil Sander)에서 활약하였고 미니멀리스트로 승승장구하며 주가를 높이고 있을 때, 그는 존 갈리아노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디올(Dior) 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된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놀랍게도 오트 쿠튀르였고 남은 시간은 8주였다. 미니멀리스트인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따가우리만큼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8주라는 짧은 시간 안에 디올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며 창조적인 감각을 얹어 희대의 컬렉션을 만들어낸다. 40년대 디올을 가장 잘(새롭게) 표현했다고 평가받으며 라프시몬스의 디올 쿠튀르는 컬렉션 역사상 TOP 10안에 드는 역작으로 남았다.



디올 앤 아이(Dior and I, 2014)라는 영화는 쿠튀르를 준비하는 라프 시몬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여기서 라프 시몬스 그는 디올의 드레스를 미니로 싹둑 잘라내었으며, 하얀색 재킷에 거침없이 스프레이를 난사한다. 주체할 수 없는 반항의 기운, 저항의 패션 삶을 살아가는 그럼으로써 변혁을 꾀하는 그의 모습이 가장 잘 반영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의 기복은 나에게 더는 중요하지 않다. 삐뚤게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 리스트의 마지막은 꼭 라프 시몬스로 끝내고 싶었다.






글을 마치며


누군가에게는 ‘패션’이라는 존재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조나단 앤더슨(J.W Anderson)의 이름을 평생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대부분일 테다. 또한 어찌 보면 사는 데 없어도 지장이 없는 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 한 번씩 주변이 다 그렇고 그게 세상이라며 너털웃음 지으며 넘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며 점차 초심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은 그 초심을 그리고 나에게 뚜렷한 자아를 마지막으로 망각했던 신념들을 일깨우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바짝 정신을 차려야겠다.



글 l MANG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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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10.1 21:18
    와... 에디 입생로랑 가던 시절? 쯤에 패션 관심 끊었는데... 모르는 이슈가 없어. 어뜪게 이런 일이... 갈리아노 인종차별 이슈 이후로 패션이란 것은 불가능해진건가? 구찌 뱀자수진 =디퀘 자수진(들)= 갈리아노 권총진... 갓리아노 차냥해.
  • 10.1 23:25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음달도 재밌는 글 써주세요
  • 10.2 00:34
    져는패쎤울모흠미다..
  • 10.2 00:36
    칸예는 이져스투어보다 와치더 뜨론때 지방시로 조지던때가 진짜 레알 간지였음..
  • 10.2 04:06
    이저스 투어 개간지였죠 디올 컬렉션도 대박이었고.. 추천드립니다
  • 10.2 20:47
    왜 패션 관련 글들은 죄다 이렇게 GQ나 보그 같은 문체로만 쓰는 건가요
  • 10.4 08:48
    글을 너무 어렵게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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