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날 때마다 믹스테잎 게시판을 들러서 뮤지션들의 음악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워크룸도 있긴 한데 개별 곡을 듣고 뮤지션의 총체적인 역량을 판단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앨범 한 개를 최소한의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피드백을 요구하는 창작자가 보일 수 있는 채소한의 예의도 앨범 단위라고 생각하고요. 생각보다 업로드되는 음악들이 많아서 감상만 하기에도 벅차네요.
혼자 듣기에는 너무 괜찮다 싶었던 뮤지션들에 대한 간략한 언급과 곡 하나씩을 링크하는 식으로 소개해보겠습니다. 각 믹스테잎에 달린 제 평을 그대로 복붙해서 가져온 것도 있습니다.
1. Waflip
일단은 두 개의 믹스테잎을 발표했습니다. 링크한 곡이 있는 믹스테잎은 마지막 믹스테잎이라고 발표했는데 음악을 접는건지 데뷔하는건진 모르겠지만 들어보니 후자 쪽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많이 들었습니다. 곡 부분적으로 말하자면, [Already]의 훅은 너무 매력적입니다. 라임도 좋고 'lil baby steal lady, 이게 내 스킬에 kill 됨 쉿해, 이게 feel이 된다면' 부분은 몇 번이나 돌려 들을 정도로 감탄한 부분이었구요. 랩 스킬은 이미 완성형인데 가사 작법까지 독보적입니다. 굉장히 비유적이고 시적인 가사가 눈에 띄는데 그래서 흔한 주제를 다룬 곡조차도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남녀관계에 대해 다룬 곡인 [Blame On Me], 그리움에 관한 [Fingerprint]. 전체적인 부분에서 가장 좋았던 건 [Decalcomany]였는데 멬럽이라는 상황, 혈연이라는 관계를 데칼코마니에 비유한 것도 너무너무너무 좋았고 훅은 진짜 OG구요 지리구요 아이폰은 시리구요 하여튼 진짜 좋습니다.
2. 양우석
이 뮤지션은 가사가 너무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제대로 된 리뷰를 쓸 생각까지도 있습니다. 가사 얘기를 단도직입적으로 꺼내는 것은 양우석이란 뮤지션의 랩 실력이 너무나 완성형이기 때문입니다. '젊음은 비어, 성공은 기억하기 나름이라며 말하던 애는 코가 매우 빨갰지'처럼 암시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이 앨범 전체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가사가 곰곰히 생각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런 작법이 음악을 여러 번 듣게 하는 좋은 방식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낭만을 외치되라던 예술가는 히피가 되었고 난 그냥 앉아있네 집에' '이 새끼는 기집애 같다는 말, 그 세글자를 죽였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날 알까' '살아있는 이의 특권이 된 죽음'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 그것은 찢어진 가난과 같이 있는 법' 등 너무나 깨알같은 표현이 많습니다.
게다가 양우석이라는 뮤지션은 한국말 랩 라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단순한 모음 맞추기가 아닌 비슷한 발음 맞추기'를 의미합니다. '젊음은 저무는 저능들', '벌이가 벌이가 되려면 버릴 것 버리고' 같은 라인이 그 일례가 될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톤과 작법, 철학적 가사를 보면 일통(개)과 YDG가 많이 떠오릅니다. 실제로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느낌을 참 좋아합니다. 한편, 정신적 고통과 약에 의지하는 이미지 때문에 우원재를 연상하는 청자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철학적 깊이와 궤 자체에서 우원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양우석이라는 래퍼에 대한 모욕이라고 보여집니다. 곡 자체의 구성, 곡과 곡간의 연결도 굉장히 짜임새 있으며 다 듣고 나서야 앨범 커버의 의미가 온전히 이해되었습니다.
링크한 곡은 랩 스킬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지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안대]라는 곡을 가장 좋아합니다.
3. Sosa
멜로디메이킹과 라이밍 능력은 프로급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멜로디와 라임, 강세를 통해 리듬감을 주는 방식이 뛰어납니다. 랩 말고 노래만 해도 정말 기대될 것 같습니다. 이센스와 특히 넉살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이대로 유명해진다면 반드시 이 두 래퍼와 비교가 될 것 같고 그래서 조금 더 독보적인 톤을 만드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느릿하고 재지하고 음울한 무드가 유지되는데 쉽게 지루해지지 않도록 트랙간의 완급 조절을 굉장히 잘 한 앨범이빈다.
4. 도마
믹스테잎들을 감상하다보면 (어쩔 수 ㅇ벗는) 음질의 한계 때문에 아쉬울 때가 많은데 이 뮤지션의 경우 실력은 물론 믹싱도 몹시 신경 썼는지 듣기가 훨씬 편해서 좋았습니다. 전곡의 인스트루멘탈이 모두 클램스 카지노의 것으로 통일되어 있는데 뮤지션이나 앨범의 컨셉 형성과 유지에 꽤 편리하고 영리한 선택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톤에 특색이 있거나 매력적이진 않은데 비트에 맞게 리버브드를 주거나 냉소적이려고 노력하는 톤의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6번 트랙 [Blue Faces interlude] 2절의 백마스킹이라든지 오토튠이라든지 들어보면 랩을 기술적으로 가공하는 데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이 뮤지션 역시 가사를 보면서 들어보는 것을 추천하는데 아티스트 네임도 그렇고 곡 제목도 그렇고 가사들에 공통적으로 종교적 기호가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앨범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앨범 안에서 모두 끝낸다'라는, 아주 바람직한 애티튜드를 가진 뮤지션입니다.
5. 1ROCK2
멜로디 위주의 훅이 너무 좋았습니다. 다 들어보진 않더라도 매 곡의 훅만큼은 꼭 들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냥 웬만하면 다 들어보세요…. 이 앨범은 듣기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라는 존재가 갖는 위상과 행동, 그것을 바라보는 자식이라는 위치의 감정, 젊음과 수반되는 고민, 패배주의적인 연애 태도 등 보편적인 감성을 부드러운 무드로 연주하고 있읍니다. 특출난 게 없을지는 몰라도, 보편적으로 좋은 음악이 보편적으로 만들기 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인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톤과 랩 스타일에서는 빈지노를 쉽게 연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앙다운 발음과 변칙적인 라임의 활용에서 연상이 더 쉬워집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와 비교되는 게 있는데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 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더 많이 듣고 쓸 수 있으면 다음 글도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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