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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윙스 (Swings)

Melo2016.08.23 11:00추천수 43댓글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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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윙스 (Swings)


이 래퍼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아마 지난 10년간 한국힙합 씬이 어떻게 굴러 왔는지를 개략적으로는 알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수없이 많은 크루, 레이블, 팀에 소속되어 활동한 끝에 결국에는 자신이 직접 세운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기까지 했으며, 그 사이에 디스전을 비롯한 여러 해프닝에 얼기설기 엉켜왔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을 논한다며 언급을 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무언가 큰 뭉텅이 하나가 빠진 게 아닌가 하고 느껴질 정도의 <쇼미더머니>와 연관이 깊기도 하다. 바로 스윙스(Swings)다. 힙합엘이(HiphopLE)는 지난 2011년 4월 당시 그와 인터뷰를 가지며 이런저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약 5년 사이에 한국힙합 씬은 수많은 변화를 겪었고, 스윙스는 그 기간 거의 내내 화제의 인물 중 하나였다. 그만큼 함께 나눌 이야기가 더 많이 쌓였다 생각이 들었고, 군대에서 나와 휴식 기간을 갖는 도중에 <HIPHOPLE INTERVIEW REPAIR PROJECT>의 일환으로 그를 만났다. 그리고 복귀 전날인 오늘, 컴백을 기념해 이 인터뷰를 드디어 공개하게 되었다. 스윙스로는 약 10년간, 문지훈으로는 31년간 축적된 음악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모두 듣고 왔다.



*본 지면 인터뷰는 영상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지난 2015년 11월 27일 진행한 내용으로, 스윙스의 복귀에 맞추어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올해' '작년' 등의 워딩으로 표현되는 시점에 있어 현재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점 유념해주시길 바랍니다.


*본 인터뷰는 전체 약 8시간 분량의 인터뷰로, 일반 인터뷰보다 내용이 많은 관계로 최대한 시간순대로 챕터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점 참고하셔서 여러 날에 걸쳐 읽으시길 권장합니다. 또한, 아래 목차 역시 참고하여 '찾기' 기능을 통해 원하는 부분을 먼저 읽으실 수도 있습니다. (검색 키워드 예시: 13. Mr. 쇼미더머니)


01. Intro

02. 은평구 '짱', 성균관대 땡그리 문지훈

03. 펀치라인 킹의 등장

04. 오버클래스의 돌격 대장이 되다

05. 빅딜과의 격돌

06. 말장난으로 업그레이드를 부르짖다

07. 혼란 속의 스윙스

08. It Just, Just

09. 성장통, 그리고 감정기복

10. 두 번째 업그레이드를 꾀하다

11. 영혼이 담긴 [Punchline King Ⅲ]

12. 브랜뉴뮤직의 중심축이 되다

13. Mr. 쇼미더머니

14. 한국힙합 씬의 황정민

15. 저스트 뮤직의 본격적인 붐업

16. 끝나지 않은 감정기복

17. 입대를 앞두고

18. 군악병 문지훈

19. 못다 한 이야기

20. Outro

Bonus Track: 복귀를 앞두고




- 01. Intro -


LE: 힙합엘이 회원분들께 인사 부탁 드립니다.


S: 힙합엘이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힙합엘이) 잘 보고 있고요. 재밌게 음악 들으세요. 이거 말고는 별로 할 말이 없네요. (웃음)






LE: 인터뷰 자체도 오랜만이시죠. 전역 이후로 SNS에 간간이 사진이나 본인의 생각을 담은 글 같은 건 가끔 올라왔던 것 같아요. 저스트 뮤직(Just Music) 소속 뮤지션 분들 홍보도 가끔 올라왔던 것 같아요.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요.


인터뷰는 거의 1년 만이죠. 요즘 그냥 어떻게든 뭘 좀 해보려고 하고 있고요. 저에 대해서 많이 정리하고 있었어요.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그다음에 제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엄청 생각하고 그랬는데, 전체적으로 요즘 제 인생을 돌아보면 조금 답답해요. 솔직히 말해서 답답하고, 뭔가 헬륨 찬 풍선인데 돌에 묶여 있는 기분이에요. 딱 그건 거 같아요. 되게 혼란스러워요. 그런 기분들이 요즘 많이 들어요. 왔다 갔다 해요. 어떨 때는 기분이 엄청 좋은데, 전체적으로는 약간 묶여 있는 기분이 들어요.






LE: 사실 힙합엘이와는 예전에 인터뷰하셨었잖아요. 되게 오래전에 말이죠. 저희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너무 잘 기억나요.






LE: 운영자 히맨(Heman) 씨랑 하셨었죠?


맞아요.






LE: 벌써 4년도 더 전인데, 힙합엘이 인터뷰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지 간단하게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혹은 인터뷰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 변화에 대해서 얘기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변화라… 그때는 진짜 지금도 그렇지만, 인터뷰하는 게 되게 설레었어요. 힙합엘이가 엄청 클 거라고 예상했었어요. 엄청. '여기는 진짜 대박나겠다.', '꼭 필요하다.'라고 생각했었죠. 제가 린치핀(Linchpin)이라는 말을 되게 좋아하는데, 딱 한국힙합의 린치핀이라고 느꼈어요. 미디어적인 측면에서요. 아니나 다를까, 힙합 좋아하는 사람치고 여기 모르는 사람 없잖아요. 안 들어가는 사람 없잖아요. 그사이에 저나, 힙합엘이나 엄청 많이 컸는데요. 사실 아까도 히맨 씨랑 얘기를 간단히 나눴는데, 너무 많이 커서 기쁘면서도 다들 허슬러고 하니까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갈 길이 너무 멀다는 거. 근데 그거 자체가 즐겁다는 걸 아는 것 같아요.






LE: 최근에는 휴식을 취하면서 답답한 상태로 지내셨다고 얘기해주셨는데, 저스트 뮤직 외의 뮤지션 분들과는 별로 왕래가 없는 편인가요? 주로 레이블 식구들이나 가족분들과만 보고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저는 일단 혼자 살고요. 혼자 있는 걸 되게 좋아해요. 일단 저스트 뮤직 사람들 말고는 특별히 만난 분들이 거의 없어요. 거의 없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군대에서는 별로 안 그랬는데, 사람 만나는 게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냥 놀기 위해서조차도요. 특히 지금, (군대에서) 나오고 나서부터는 영화를 한 편 편하게 못 보고, 작업한 곡을 끝까지 마치는 게 힘들고, 책도 읽다 말고 그냥 다음 책으로 넘기고 그래요. 하루에 책을 한 네 번은 바꾸려고 시도해요. 영화도 보려고 5, 6편 바꾸고. 약간 질문과 상관없는 얘기를 했는데, 아무튼 사람 만나는 게 어느 순간부터 불편해졌어요. 옛날 같지가 않아요. 그런 게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이미지와 다르게 되게 헛똑똑이거든요. (웃음) 그래서 살면서 뒤통수 졸라 많이 맞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새 친구 사귀는 걸 되게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누굴 만나도 그 사람을 분석하고 앉아 있고 그래요. 상대방이 잘 모르게요. 그런 사람이에요.






LE: 그래도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 분들이나 회사 식구분들과는 괜찮으신 것 같네요.


네. 진짜 오로지 여기 있는 사람들만 만나고 있어요. 그렇게 되고 있네요.






- 02. 은평구 '짱', 성균관대 땡그리 문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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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근황을 간단하게 여쭤봤고요. 이제부터 정말 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면, 어렸을 때 얘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요. 소문이 되게 무성하잖아요. 이런저런 얘기가 많은데,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미국에서 사셨다고 알고 있어요. 은평구 주먹이라든가, 그런 얘기가 있기 전에 미국에서의 유년 생활이 어땠는지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일단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태어났고요. 태어나자마자 6개월 만에 미국으로 갔어요.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미국에 가서 유학 중이었고요. 거기서 신학, 철학을 공부하고 계셨어요. 어머니, 저, 형 이렇게 세 명이 나중에 따라간 거예요. 가서 9년 동안 살았는데, 미국에서 되게 남부 쪽에 살았었어요. 조지아(Georgia), 테네시(Tennessy), 앨라배마(Alabama). 거기 특색이 뭐냐면,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고도 불리는데요. 그러니까 보수주의적 기독교 사상이 되게 깊고, 엄청 보수적이에요. 많은 사람이 미국 사람들은 무조건 개방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지역이었어요. 제가 살던 지역은 오히려 반대였죠. 엄청 극단적인 나라에요. 사람이 많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거기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 생각하면 행복하기도 하고, 좀 괴롭기도 한데요. (거기서 저는) 그냥 에너지 넘치고, 학교에서 맨날 떠드는 (그런 애였어요). 그때는 진짜 무한 까부는 애였어요. 책 읽는 것도 엄청 좋아했고요. 무엇보다 나가서 애들이랑 풋볼하고 이런 걸 되게 좋아했었어요. 이미 제가 미디어를 통해서 많이 얘기하긴 했지만, 반면에 제 아버지는 되게 빡센 사람이었어요. 너무 빡센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하지… 전체적으로는 좋았어요. 어쨌든 애기 때잖아요. 좋았던 기억만 기억하려고요. 이렇게 정리할게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LE: 보수주의적 기독교 사상이 깊은 지역에 사셨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런 동네에서 살았으니 인종차별 같은 것도 겪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해요.


미국은 어릴 때부터 인종차별에 대한 의식을 많이 심어요. 애들한테도요. 근데 남들이 저한테 한 건 의외로 되게 적었어요. 진짜 손에 꼽히는 거 몇 번? 그런 건 큰 상처가 안 되었어요.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어요.






LE: 신기하게도 위키피디아에는 스윙스 씨가 알래스카에 산 적이 있다고 나오더라고요.


전혀요. 알래스카는 가본 적도 없어요. (웃음)






LE: 미국에 가 있는 동안 힙합을 처음 접했던 건가요? 그때도 인터넷 같은 게 있긴 했겠지만, 지역이 지역이니만큼 힙합을 피부로 접할 기회는 많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어요. 근데 그냥 어릴 때부터 너무 당연하게 들려왔었어요. 아주 당연하게요. 제가 1987년에 가서 1996년에 돌아왔는데, 그때 이미 스눕 독(Snoop Dogg), 닥터 드레(Dr. Dre)가 (나왔었어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보여준 앨범 자켓이 아직도 기억나요. 닥터 드레의 [Chronic] 커버를 봤는데, 흰색 바탕에 닥터 드레 얼굴이 액자 같은 것에 있는데, ‘입술이 참 보라색이네.’라는 생각을 엄청 많이 했었어요. 스눕 독 것도 되게 충격이었어요. 스눕 독의 [Doggystyle] 앨범 자켓을 봤을 때, 초등학교 때였는 데도 그게 되게 섹시하고 야해 보였어요. 그래서 뭔가 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저희 아버지가 목사기도 하니까요. 제가 맨날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거기 있던 흑인 친구들, 또 백인 친구들도 있었는데, 일단 제가 사는 동네는 흑인 위주였던 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친구 집을) 들어가면 부모님들이 맨날 불 끄고 알앤비 엄청 많이 틀고 그랬었어요. 베리 화이트(Barry White)라고 아세요? 그 사람 음악 졸라 많이 틀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걸 너무 자연스럽게 접했었어요. ‘이게 힙합이야.’, ‘이런 거 들어야 해.’ 그런 거 없이 그냥 사람들이 틀어놓곤 했었어요. 자연스럽게 부르면서. ‘얘네는 음악 하는 게 왜 이렇게 멋있지?’ 싶었죠. 되게 멋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LE: 랩도 그때부터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은 게 처음 발표하셨던 믹스테입 인트로에서 존 레전드(John Legend)의 “Ordinary People”을 부르시잖아요. 처음에는 노래를 부르는 것부터 시작했다는 얘기도 많이 알려져 있고요. 랩은 언제부터 하셨는지 궁금해요.


그때는 전혀 아니었고요. 그때는 듣는 걸 재밌어했었어요. 힙합만 듣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벼운 대중이었던 것 같아요. 힙합이 존나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투팍(2Pac) 맨날 듣고 그랬지만, 동시에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보이즈 투 맨(Boyz II Men) 등 그 당시 짱이었던 사람들 다 들었었어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엘튼 존(Elton John) 듣고 그랬어요. 장르에 대한 구분 없이.






LE: 미국에서 거주하셨던 시기에 관해 간단하게 얘기를 해봤고요. 이제는 중, 고등학교 시기를 이야기해볼까 해요. 앞서 얘기했던 대로 소문이 무성하잖아요. 불광동에서 주먹 좀 쓰는 애로 유명했던 게 그 시절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몇 가지 사건을 거쳐 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한국에 오자마자 어떤 형에게 폭행을 당해서…


맞아요. 까먹을 뻔했는데 덕분에 생각났네요.






LE: 그때 일단 주먹을 쓰는 계열(?)로 빠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 같은 게 있었는지 궁금하거든요.


졸라 웃겨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있었는데요. 애들은 맨날 그러잖아요. 누가 더 힘센 지 레슬링하고 그러잖아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9반이었는데, 그때 (반에서) 레슬링을 해서 다 이겼었어요. '우리 반 짱은 문지훈이다.' 이랬어요. 2짱은 누구, 3짱은 누구 이렇게 유치하게… 그런 개념을 그때 태어나서 처음 알았어요. (교육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 문화에서 등수 매기는 걸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고, 그런 게 반영됐던 것 같아요. 서열 그런 거죠. 미국은 그런 게 전혀 없었거든요. 그냥 ‘아, 그런가 보다.’ 했죠. 축구도 엄청 좋아했고, 비보잉도 미친 듯이 좋아했었어요. 그런 걸 맨날 하다 보니까 중학교 올라가기 전에 형들이 맨날 와서 경고를 했어요. 초등학생인 저한테 와서 ‘너 이제 중학교 오면 형들이 벼르고 있다.’라는 식으로요. 그냥 뭐, 지네보다 춤 잘 춘다 그거였어요. 지네보다 소문이 무성하단 이유로. 그때 되게 무서웠어요. 중학교 올라갈 때 긴장 되게 하고 올라갔는데, 그때 정말로 괴롭히더라고요. 아이러니한 건 그런 게 매력이 있었어요. 유치하다 보니까… 어딘가에, 어떤 집단에 내가 선택될 수 있는 그런 거요. 저희도 노는 애들끼리 어울려 다니고 그랬는데, 제가 맨날 돌아다니면서 다른 애들한테 결투를 신청했었어요. 나름 신사답게. 인터넷에 글 올려서요. ‘너네 중에 제일 싸움 잘하는 사람 토요일에 어디서 만나자.’ 이렇게 써서 올리고 은평구 쪽에 있는 학교들 위주로 갔었어요. 학교 이름도 다 기억나요.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까지 서른두 번 정도 싸웠었어요. 진짜 실제로. 근데 그렇게 한 이유가 뭐였느냐면, 그냥 인정받고 싶었어요. 저한테는 그게 되게 컸나 봐요. 남자답다고 생각했었고요. 그런 것만큼은 가장 일관성 있었던 때였던 것 같아요. 나쁜 짓도 많이 했지만, 그냥 순수하게 싸움만 보면 저는 넘어진 사람은 안 때렸거든요. 이기면 그냥 그걸로 끝이었어요. ‘넌 나한테 졌으니까 맞아야 해.’ 그런 거 없이 그냥 끝. 심지어 혼자 갈 때도 엄청 많았어요. 반대쪽 애들은 진짜 2, 30명을 불렀는데 저는 혼자 갔어요. 한 명씩 싸웠던 게 아니고 저 혼자 가서 ‘너네 그냥 다 와.’ 이런 식으로 (싸우기도 했었어요). 스윙스스러운 건방짐이 그때부터 자라나기 시작했는데… 그때 생각하면 진짜 배짱이 좋았어요. 지금이야 사람들이 저보고 배짱 좋다고 하는 사람 많은데, 그때에 비하면… 그때는 눈에 뵈는 게 없었어요. 웃긴 것 같아요. 재미있었어요. 그때만큼 일관적이었던 적이 없었어요. 되게 단순했던 것 같아요.






LE: 진짜 조폭처럼 돈을 걷는 시스템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갈취하고 그런 상황도 겪었었다는 이야기도 웹상에 돌더라고요.


맞아요. 그때는 맨날 형들이 돈 모으라고 시켰고, 저희는 간단하게 경찰한테 신고하면 되는 건데 어리니까 그 개념을 몰랐었어요. 근데 웃긴 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니까 애들이 신고를 하기 시작하고, 그러니까 그게 한 번에 해결되더라고요. 옛날에는 진짜 어설펐던 게 형들이 언제까지 얼마를 모아야 한다고 하잖아요. 근데 삥을 뜯는다든가 그런 쪽으로 못 되게 해본 경험이 없으니까 어설프게 굴고 그랬었어요. 처음 (그런 못된) 경험을 했던 게 기억나는데요. 지나가는 애가 있어서 한 다섯 명이 골목길로 끌고 가서 "너 돈 얼마 있어?"라고 하니까 "어, 얼마 없어요."라고 하더라고요. 보통 뒤져서 나오면 알아서 하라고 말하잖아요. 근데 (뒤져서) 한 오천 원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뭐야 이건?"이라고 하니까 세탁비래요. 엄마 옷 세탁비. "아, 그래?"한 다음에 "알았어. 세탁비니까 봐줄게."라고 하고 그냥 보내고. (웃음) 그때 생각하면 사실 돈 가져오라는 그 형들을 탓할 수도 있잖아요. 또, 제 환경을요. 근데 별로 그 사람들 탓하고 싶지 않았었어요. 어떻게 보면 자연인 것 같아요. 저는 더 센 사람한테 먹혔던 거죠. 그런 이상한 경험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난 애를 낳으면 저렇게는 안 되게 해야지.'라는 생각이 커요.






LE: 그럼 문지훈이라는 사람의 성격이 한국에 오기 전인 어릴 때는 소위 말하는 순둥이였다가 한국 사회에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변한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 사회라고 하면 너무 편협하고요. 그때 그 동네, 그 시기가 되게 그랬어요. 제가 살던 불광동이라는 동네가 이상하게 유난히 못된 사건이 많았고, 못된 형들이 많았어요. 가끔 가거든요. 명절 같은 때요. 저도 놀랄 때가 있어요. 사람들 술 먹고 싸우는 거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고… 아무튼, 누굴 탓하고 싶진 않아요. 저의 선택이 존재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의 제가 되는 데 필요했던 시기라고 생각해요.






LE: 은평구가 사실 '불광동 맨홀 뚜껑' 이런 식으로 되게 유치한 별명이 지어지면서 거친 동네라고 얘기가 되게 많긴 했었어요.


네. (웃음) 많은 일이 있었어요. 거기 15년 정도 살면서. (웃음)






LE: 지금은 아예 이사를 오신 건가요?


한 4년 되었어요. 용산구 어디 살다가 지금은 딴 데 살고 있어요.






LE: 조금 다른 얘기로 넘어와 보면요.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얘기를 되게 많이 하셨던 부분이긴 한데요. 스윙스 씨가 어릴 적부터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알려져 있잖아요. 근데 그런 것들도 한국에 들어오면서 겪은 사건으로 인해 생긴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첫 기억이 뭐냐면, 제가 네, 다섯 살쯤이었는 데요. 미국에 있었을 때죠. 제가 귀를 자주 막아야 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뭐가 들렸느냐면, 그 당시에는 아빠가 화내는 게 엄청 많이 들렸어요. 이러니까 아빠 욕하는 것 같아서 제가 자꾸 망설이는데, 뭐 이미 많이 얘기했던 거라… 그래서 귀를 많이 막아야 했어요. 머리 안에서 탁구공 같은 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질문의 본질은 제 정신 질환에 관한 설명이죠? 뭐랄까, 전 그런 게 있어요. 예를 들어, 보통 사람들은 성경의 어떤 구절을 읽었는데, 심각한 얘기면 넘어가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런 거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거든요. 버릇인지 타고난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가 제 인생 가장 큰 전환기 중 하나였어요. 그때 제가 예언에 관한 만화책을 읽었는데, 거기서 어떤 여자가 지구 멸망의 날짜를 봤다는 거예요. 1999년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만화 속 여자가 주장하는데, 그 만화를 읽어보면 기자가 그 여자한테 물어봐요. "정말로 그때 멸망해요?"라고. 그러니까 그 여자 위에 떠 있는 말풍선에 ‘그건 신만이 아는 사실이다!’라고 쓰여있었어요. 저는 그때 한국말을 엄청 못했으니까 '신만이'라는 말에 ‘이게 무슨 단어지?’라는 궁금증이 생겨서 어머니한테 돌아와서 물어봤었어요. ‘신만이’가 무슨 뜻이냐고. 엄마가 '신만이'라는 말이 대체 어딨느냐고 하는 거예요. "‘신만이' 내가 확실히 읽었다고."라고 했더니 엄마가 그 책을 가져와 보라는 거예요. 제가 그때 그 책을 못 보여 드렸었어요. 왜냐하면, 엄마도 이 예언에 대한 걸 알면 저처럼 될까 봐. 저는 그때 극도로 불안했거든요. 그 책에 의하면 지구가 멸망하려면 1년밖에 안 남은 거였어요. 1998년이었으니까요. 근데 그걸 모르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엄마가 계속 책을 보여달라고 하고, 너는 왜 자꾸 물어보면서도 그 책은 안 보여주냐고 해도 아니라고 하고 그랬죠. 초등학교 때 살이 쫙 빠졌던 기억이 있거든요. 쫙 빠졌었어요. 엄청 말랐었어요. 비다 로카(Vida Loca)만큼 말랐었어요. 근데 또 밥은 남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왜냐하면,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불평하면 안 된다는 마인드가 생기고 그랬는데, 결론은 저만 엄청 괴로웠거든요. 제가 똑같은 걸 매일 생각했었는데, 그게 나중에 병원에 가니까 강박증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생각 때문에 너무 괴로웠어요. 1999년에 막상 멸망 안 하니까 너무 괴로웠어요. 또, 2000년에 Y2K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고도 했었잖아요. 그때도 또 새로 불안해하고, 그런 게 TV에서 나오거나 하면 급하게 채널 돌렸던 기억이 나요. 엄마, 아빠 혹시 볼까 봐. 제가 목사의 아들이니까 성경에 대한 지식이 보통 사람보다는 많을 거 아니에요. 매주 교회를 갔으니까요. 오전, 오후 예배에 다 참석했으니까. 요한계시록 보면 지구 멸망에 대해 너무 명확하게 쓰인 구절들이 있거든요. 스토리도 있고요. 그런 게 저한테 스트레스를 엄청 주기도 했었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진짜 큰 사건이 하나 터졌는데, 그때 또 한 번 멘붕이 존나 왔었어요. 강박증이요. 제가 형이 있는데 연년생이에요. 한 살 차이인데 우리 형이 친했던 형이 있었어요. 재경이 형이었는데,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형이 재경이 형 집에 가서 잔대요. "아, 나도 따라갈래." 했는데, 엄마는 안 된다 그러고 형도 안 된다 그랬었어요. 약간의 다툼이 있었어요. 흔한 형제와 엄마의 싸움. 근데 거절당하는 기분 때문에 제가 너무 빡친 거예요. 그 날이 금요일인가, 토요일인가 그랬는데, 저도 주말 밤에 남의 집에서 자면서 형들이랑 놀고 싶다고 생각했죠. 어린 마음에 너무 화가 나서 방에 들어와서 혼자 욕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는 영어로요. 외국에서 살았다 보니 생각도 영어로 할 때가 많거든요. 그때 "fuck!"하고 "god!"을 하려다 말았었어요. 마태복음인가 어딘가에 이런 구절이 있거든요. 성령을 욕하면 넌 용서 못 받는다고. 그때 눈이 엄청 동그래지면서 진짜 싸늘해졌었어요. 제 온몸이 다 차가워지는 느낌. 제 입을 손으로 막고. 내가 방금 이 말을 한 건가, 안 한 건가 혼자 고민하고… 보통 사람이면 그냥 넘어갈 텐데, 혼자 계속 생각하면서 엄청 불안해하고, 식은땀 엄청 흘렸었어요. 혼자 지옥에 대해 엄청 생각하고. 그게 또 저를 존나 괴롭혔어요. 잠도 잘 못 자고, 중학생인데 학교 가서 맨날 멍 때리고 있고… 제가 나쁜 길로 빠진 때가 딱 그 중학교 때였거든요. 그런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였던 게 정말 컸던 것 같아요. 항상 불안해했는데 그 불안을 처리하는 방식을 모르니까요. 엄마나 아빠한테는 당연히 얘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고요. 왜냐하면, 제가 이걸 말하면 엄마, 아빠가 저를 저주받은 사람으로 볼 것 같았어요. '얘는 더이상 내 자식이 아니다.' 이런 느낌 있잖아요. 중동에서는 이슬람교를 거역하고 다른 종교로 개종하면 형제나 부모가 그 개종한 사람을 사형시켜도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부족에서 쫓겨나는 사람이 될까 봐, 혹은 부모님이 저를 불쌍히 여길까 봐서 존나 혼자 가지고만 있고 아무한테도 얘기를 못 했었어요. 학교 선생님한테도 안 되고, 친구도 안 되고… 누군가한테 불안을 주기가 너무 미안해서 혼자 존나 안고 살았었어요. 그때 또 그 나잇대의 제 기분을 너무 잘 대변해주는 영화가 있었는데, <가을의 전설>이었어요. 브래드 피트(Brad Pitt) 나오고, 안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 나오는 영화인데, 거기서 브래드 피트가 젊은 남자인데 자기 형제들이랑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돼요. 막냇동생도 같이 갔는데, 막냇동생이 자기 눈앞에서 죽어요. 자기는 살려보려고 했는데 이미 총알을 몇십 발 맞아서 죽어요. 거기서 신을 욕해요. 그때부터 걔 인생이 엄청 망가져요. 먼 훗날이 되어서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한테 자기가 신을 욕했다고 그랬더니 안소니 홉킨스가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괜찮아, 괜찮아.’ 그러는데, 그걸 보면서 ‘으, 얘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생각했었어요. 브래드 피트는 그 영화 대사를 어떻게 뱉었을까, 불안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그게 사람을 괴롭히더라고요.


근데 제가 그러다가도 되게 (상태가) 왔다 갔다 했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잠이 너무 많아진 거예요. 악몽을 매일 꾸고… 그래서 새벽에 부모님 몰래 농구하러 다닌 적도 있었어요. 농구를, 새벽에, 완전 무서운 데서. 어떻게든 에너지를 소진하려고요. 그 지랄을 했는데, 이건 병원 가서 얘기하니까 설명을 잘못해주기는 했는데, 그냥 옆 방에 부모님이 있는데도 혼자 마루에서 벌벌 떨었었어요. 근데 그 무서운 게 뭔지 본질을 정확하게 못 찾았었어요. 그래서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나 되게 무섭다. 지금 뭐하냐. 나랑 얘기 좀 하자."라고 하고… 그 지랄을 엄청 떨다가 스무 살, 스물한 살, 딱 랩을 시작했을 때 있었던 되게 웃긴 얘긴데, 간단하게 얘기할게요. 어떤 알바를 했는데 거기서 설거지를 담당했었어요. 유리컵을 닦다가 유리컵이 깨진 거예요. 깨지면서 제 손이 베였어요. 피가 엄청 났는데, 그래서 그때 밴드를 하고 다녔는데요. 예를 하나 들게요. 제가 누구랑 악수를 했어요. 악수를 했는데 그 사람과 제 피가 섞였다고 생각했나 봐요. 저는 그때 제가 혹시 에이즈에 걸렸나 생각했었어요. 그때부터 알바할 때마다 혼자 좀비같이 계속 일하고 나서 바로 보건소 가서 저 혹시 에이즈 걸렸느냐고 물어보고… 피검사하고요. 피검사를 하면 2주 동안 기다려야 한대요. 1주일인가 2주인가. 그 결과 기다리는 동안 제가 맨날 난리가 났었어요. 내가 혹시 에이즈에 걸리면 어떡하나 싶어서 계속 찾아봤었어요. 근데 제가 너무 무지했던 거예요. 에이즈는 걸린 사람한테서만 받을 수 있잖아요. 에이즈 안 걸린 사람 100명이서 지네끼리 피를 섞든, 싸우든, 지랄을 하든 간에 에이즈에 걸릴 수가 없잖아요. 에이즈 걸린 사람이랑만 피가 섞이고 이래야 걸릴 수 있는 확률이 생기는 건데… (그런데도) 의사한테 가서 나 존나 무섭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절 봐온 의사가 있었거든요. 정신과 의사 말고 그냥 의사요. 무서워 죽겠다고 하니까 너 왜 그러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나중에 다행히 결과가 음성 반응으로 나오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야 하잖아요. 아니에요. 그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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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엄청 괴로웠겠네요.


그때부터 매일 술 먹었었어요. 왜냐하면, 그때부터 제 인생에서 진짜 강박증이 시작됐었거든요. 그때 다시 제대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거예요. 네, 다섯 살 때 그랬던 거 말고요. 강박증 환자들의 특징이 뭐냐면, 금기, 금지된 생각, 'Forbidden Thoughts'라고 해요. 그걸 반복해요. 하기 싫은 걸 오히려 제일 많이 해요. 제가 만난 의사가 지금까지 여섯 명은 되는데, 다 절대로 힘주지 말고 놓으라고 했었어요. 그 생각이 들면 '아,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라고. 전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 다시 병원에 가기 전까지는 막 혼자서 귀 막고 소리 지르고 그랬었어요. 왜냐하면, 그 소리가 머리에 있는 소리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거 있잖아요. 애기들이 부모님이 부부싸움 하는 거 들으면 문 잠그고 음악 크게 듣잖아요. 딱 그거였어요. 근데 (그 소리가) 더 난리를 치더라고요. 더 난리 나고, 친구들이랑 술 먹다가도 집에 혼자 가야 할 때도 많았고, 데이트를 할 때도 혼자 가야 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때는 너무 힘들었었어요.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어서 그때부터 술에 엄청 빠졌는데, 딱 술 취할 때만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그때는 아무것도 안 들리고 정말 개행복. 그래서 맨날 친구들한테 그랬어요. 나 아무것도 안 들린다고. 근데 더 무서웠던 게 뭐냐면, 이 존나 X신 같은 게, 신용카드 결제 같은 거예요. 행복을 신용카드 결제하는 격이었어요. 행복을 빌리는 거예요. 그때는 행복한데, 무서운 건 자다가도 세, 네 시간 있다가 꼭 깨요. ‘헉’하는 순간 그 전날, 혹은 맨정신일 때보다 5, 6배는 더 무서운 거예요. 의사를 존나 찾아가서 살려달라고 그랬어요. 진짜 살려달라고. 의사가 침착하라면서 술 먹으면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증상을) 더 심하게 하는 거라고. 그래서 금주령도 내렸어요. 그때 진짜 힘들었어요. 그때 되게 고마웠던 게 제 연신내 친구 몇 명은 제가 잠을 못 자는 걸 아니까 그냥 놀러 온 척하고 와서 음악 듣다가 제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고 그랬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되게 고맙네요.


근데 또 약을 존나 먹으면요. 좀비가 돼요. 제가 나아졌던 계기는 대학교였어요. 성균관대학교라는 대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재즈 동아리가 있었어요. 저는 지금 재즈에 관심 없고, 관심 있고 싶지도 않거든요. 근데 거기 있던 사람들이 다 저에게 너무 착했어요. 그때 저는 너무 개념 없던 애였는데… 2007년이었죠. 저는 뭔가를 배우고 싶었어요. 2007년 이전, 2000년부터 2007년까지의 그 기간을 제가 항상 스스로 인생의 암흑기라고 비유해요. 그때 저는 책 한 장 안 읽었고, 제 인생의 발전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어요. 그냥 개꼴통 새끼였어요.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하고, 이 모든 스트레스를 멀리하고 싶어 했고 그랬어요. 그때가 제일 멍청했는데, 중2병이란 말 있잖아요. 진짜 저는 중2병이었어요. 성장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요. 그래서 학교 가서 맨날 술 먹으면서 힘든 건 최대한 티 안 내고 형들, 선배들한테 가고 그랬어요. 거기 사람들이 되게 개방적이었어요.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데, 맨날 물어봤어요. 절대 선이 뭐냐, 절대 악이 뭐냐, 상대성이 뭐냐, 이건 어떤 거냐, 저건 어떤 거냐고. 스승이 한 20명 있었어요. 동갑내기 친구들도 절 좋아했고요. 사람이 그렇잖아요. 자기를 자꾸 찾으면서 뭘 물어보고 하면 기분이 좋잖아요. ‘아, 얘가 나를 인정 해주는구나.’ 싶잖아요. 그걸 다들 느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맨날 형들이 저 술 사주고 자기 집에서 재웠어요. 조그만 대학생 자취방에서 맨날 저 재우고, 저는 맨날 술 취해서 수업도 안 올라가고, 수업 가서 맨날 자고… 아니면 동아리 방에서 자고. 그냥 동아리 방에서 사람들이랑 놀고 시험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형, 친구, 누나들 다 같이 술 먹게 하려는 게 제 목적이었어요. 학교에 다니는 목적 말이에요. 근데 저한테는 진짜 르네상스였어요. 다 배웠어요. 제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도 그 사람들이 알려준 거예요. 제 친구 중에 성균관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하고, 거의 최연소로 로스쿨 나온 친구가 있거든요. 저랑 동갑인데, 지금은 변호사예요. 그 친구가 되게 신랄했어요. 변호사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어릴 때부터 그런 (끼가) 나오더라고요. "니 말에는 허점이 존나 많아." 맨날 저한테 그랬어요. "이건 이래서 넌 틀린 거야."라고 했었어요. 자존심 존나 상했는데 저 혼자 꼬여 있던 생각들을 얘가 다 스스로 풀게끔 도와줬어요. 저는 센 말을 들어야 사람이 변하거든요. 좋게 얘기하면 눈치가 없어서 잘 못 알아들어요. '너 이거 별로야, 아냐.’ 이런 식으로 말해주면 그제야 ‘헐’하고 집에 가서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 그 친구 덕분에 좋은 일 되게 많았어요. 변화하는 데에 너무 좋았던 2년이었던 것 같아요. 학교 딱 2년 다녔거든요. 2007년부터 2008년까지요.


그 와중에 힙합 씬에 들어왔던 거죠. [Punch Line King]을 내고 나서부터는 버벌진트(Verbal Jint) 형이 저한테 연락했던 선배들 중 거의 가장 큰 손인 형이나 성균관대학교 사람들이 저한테 해줬던 걸 해줬던 것 같아요. 버벌진트 형한테 그게 넘어갔었어요. 그 형이 학교 애들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았어요. 그 선배들은 83, 84, 85년생 혹은 동갑 이 정도인데, 그 형이 80년생이니까 나이 차이가 무려 6살 차이가 났었거든요. (버벌진트 형이) 랩 게임에 대해서도 존나 알려주고, [Punch Line King] 낼 때도 유통하는 방법이나 이런 거 다 알려줬었어요. 제가 술 사드릴 테니까 한 번만 도와달라고, 한 번만 만나주면 안 되느냐고 그랬었어요. 그랬더니 되게 차분하게 저한테 이것저것 다 알려줬었죠. 이건 이런 거고, 저건 저런 거라고 하면서요. 어떤 세상을 이해하는 전체적인 방식이나 가사를 쓰는 방식이나 헤이터들을 대하는 태도 같은 부분에서 아마 저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한 명일 거예요. 이 바닥 다 통틀어서요. 저는 진짜 무서울 정도로 그 형을 흡수했거든요. 저도 모르게. 그 형이 가장 좋다고 느꼈던 게 뭐였느냐면, 다른 힙합 빅 샷들은 제가 크는 걸 되게 싫어했었어요. 티가 팍팍 났어요. 그래서 저를 만나면 뭔가 (경계하고)…






LE: 경쟁 상대로 봤던 거군요.


엄청요. 근데 그 형은 저를 조금도 견제하는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어요. 항상 ‘스윙스 이거 할래? 스윙스 저거 할래?’ 이랬어요. 제가 옛날에 [Punch Line King] 내고, [Upgrade] 내고, 그다음에 [#1]이라는 믹스테입을 낼까 말까 할 때였는데요. 제가 그 믹스테입을 [Upgrade]가 나온 다음에 한 3개월 뒤에 냈거든요. 근데 제가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이걸 바로 내는 게 똑똑한 짓인가 싶어서요. 근데 진태 형이 “니가 그렇게 에너지가 남으면 해. 일단 해봐.”라고 해서 냈는데, 묻혔었어요. 근데 아이러니한 건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사람들이 그 믹스테입을 되게 많이 알아주더라고요. 근데 어쨌든 그런 결정을 하는 데에서도 (진태 형이) 영향을 너무 줬죠. 그다음에 오버클래스(Overclass) 형들. 다 저한테 영향을 존나 많이 끼쳤었어요. 영쿡(Youngcook), 비솝(B-Soap), 웜맨(Warmman) 특히 이 셋이 많이 그랬는데, 진태 형까지 포함해서 그 네 명 특징이 뭐였냐면요. 그냥 개오타쿠였어요. 진짜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같았어요. 제가 물어보는 건 이미 그냥 다 알았어요. 모든 거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아는 사람들인 거예요. 저도 꽤나 오타쿠 과인데, 이 사람들이랑만 있으면 제가 되게 작아지는 기분이었어요. 좋은 의미에서요.






LE: 힙합이라는 분야뿐만 아니라 통틀어서인 거죠?


다. 예를 들면, 학교 애들이 반 고흐(van Gogh) 전시회를 가자고 했던 적이 있어요. 근데 전 진짜 모르겠는 거예요. 전 미술, 패션 X도 모르거든요. 근데 반 고흐 전을 막 가자 그러니까 제가 진지하게 물어봤어요. 진짜 이 예술 체계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몰라서 묻는 건데, 도대체 반 고흐랑 홍대 다니는 미대생이랑 누가 더 잘 그리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설명해달라고. 그랬더니 애들이 다 설명을 못 하는 거예요. 제가 그 질문을 했을 때 약간 흥분하는 분위기였어요. 어떤 종교에 대한 모순을 찾아서 그걸 얌전하게 물어봤는데도 그 질문을 받은 사람이 공격적으로 변하는 성향을 보는 그 기분 있잖아요. “야, 니가 거기 직접 가지? 그럼 붓이 이렇게 지나가는 게 보여.” 막 이러는데, 당연히 보이지 않느냐고 했죠. (웃음)






LE: 소위 말하는 ‘부들부들’인 거네요.


네. 부들부들했던 거죠. 힙합엘이든, 어느 사이트든 간에 악플 쓰는 애들처럼요. 모순을 들켰을 때의 그 느낌. 그래서 저는 되게 답답했었어요. 나는 랩을 들으면 제이지(JAY Z)가 왜 잘하는지 알겠는데… 너무 명확하게 들어오잖아요. 나스(Nas)가 왜 잘하는지 알겠고. 이런 가사가 왜 구리고, 저런 가사가 왜 좋은지 알겠는데, 왜 미술에서는 이걸 설명해줄 사람이 없나 싶었던 거죠. 상대성이라는 말로 계속 설명을 얼버무릴 거냐고. 근데 (그 지점에서) 비솝 형이 했던 말이 기억나는데, 이랬었어요. 반 고흐보다 그냥 기술적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어쩌면 수많은 대학에서 그림을 배우는 중인 대학생들일 수도 있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사람이 그런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서 시대를 바꿨다는 거에 대해서 아마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었어요. 그때 전 약간 충격받았었어요. ‘Shit. 맞아. 그런 거지. 그런 사람들이 항상 역사에서 기억되는 거지.’라고 생각했죠. 그 이후로는 미술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생겨서 이제 반 고흐 보면 존나 멋있는 거 같아요. 물론, 비솝 형의 그 말로 제게 편견이 생긴 걸 수도 있어요.


그냥 미술이나 패션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하자면, 저한테는 그거랑 되게 비슷한 거 같아요. 전혀 나쁜 게 아니고 계속 아름답게 발전시켜야 되는 건데, 나비가 있잖아요. 나비 날개를 바늘 갖다 톡 찌르면 그냥 찢기잖아요. 근데 새들을 그 날개를 보고 도망가잖아요. 눈깔 같이 그려진 무늬를 보고요. 예술이 그건 거 같아요. 하나의 환영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실제로 존재하는 것보다 더 큰 걸 보여주는 느낌? 그래서 요즘은 가끔 전시회도 가고, 사람들이 “이게 멋있는 그림이야.”, “이게 멋있는 뮤직비디오야.”, 혹은 “이게 멋있는 옷이야.”라고 하면 조금 더 유심히 보는 버릇이 예전보다 생겼어요. 근데 여전히 좀 약해요. 전 이런 쪽으로는 느려요. 질문 하나에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게 됐는데… (웃음)






LE: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계속 말씀해주세요.


OK. 그러다가 저도 조금씩 크고, 아까 얘기했던 빅딜 레코드(Big Deal Records, 이하 빅딜)와의 마찰도 여러 번 있었고… 그리고 좋아했던 힙합 형들 중에 저 디스해놓고 아닌 척했던 형들 엄청 많았거든요. 지금 친하니까 할 수 있는 얘기도 있는데, 제이켠(J’Kyun) 형도 그런 경우였죠. 스윙스처럼 유치하게 사과하고 뭐 어쩌구 하는 게 가사였던 거 같은데, 제가 (그때 제이켠 형이랑) 네이트온(NateOn) 친구니까 “형, 뭐에요? 왜 나를 공격해요?”라고 했죠. 그러니까 그 형이 약간 둘러댔어요. “미안하다. 그런 기분이 들 줄은 몰랐다.” 이러는데, 그런 게 되게 많았어요. 제이켠 형은 이제 친하고 하니까 괜찮아요. 그 형도 제가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 나와서 말해도 별로 기분 안 나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얘기한 건데, 그 외에 이런 거 얘기했다가 제가 너무 그 사람을 개쪽 주는 느낌이 들어서 이름을 공개 안 하는 사람도 많아요. 걔네들도 다 그런 반응이었어요. ‘미안하다. 난 그 뜻이 아니었다.’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그때 씨잼(C Jamm) 마인드가 생긴 거죠. ‘아, 존나 별로다.’ 이렇게… 근데 지금 와서 나이 먹고 생각해보면, 뭐랄까 일단 좁아터졌다는 말이 진짜 맞는 거 같아요. 좁아터졌고… 그리고 저를 포함한 수많은 래퍼가 너무 미성숙했던 거 같아요. 저까지 포함해서 하는 얘긴데, 어떤 얘기냐면 뭔가 힙합은 솔직해야 하고, 자기 머릿속에 있는 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사실 많은 사람이 빼놓은 게 있어요. 저도 너무나 많이 그랬고요. 좋아. 어떤 말이든 할 권리는 있는데, 그거에 대해서 돌아오는 것 역시 책임져야 한다고. 근데 그 책임 부분은 많은 사람이 안 지려고 하는 거 같아요. 저도 너무너무 많이 그랬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로 성숙해질 필요가 있어요. 남들 얘기 안 할게요. 그냥 제가 성숙해질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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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그런 기간에 정신병은 좀 덜했었어요. 근데 중간중간에 좀 크게 크게 왔었는데… 아, 그 얘기를 빼먹었네요. 제가 아까 목소리가 들리는 거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그때 금기된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었잖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가 많이 들렸냐면요. 신 욕하는 거였어요. 지금도 이거에 대해서 불편하니까 제 입으로 얘기를 잘 못 해요. 그런 얘기가 계속 들렸어요. 그러니까 전 더 괴로운 거예요. 이런 거랑 비슷한 거예요.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니다. 차라리 더 아프게 애인이라고 하자. 애인이 개한테 물려서 죽었다고 치면, 누군가가 귀 옆에 대고 “니 애인은 개한테 물려 죽었어.”라고 하면서 놀리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진짜 새디스틱한 느낌이었는데, 그때 진짜 와… 그러다 약 먹고 학교 다니면서 존나 나아졌는데, (지금도) 가끔 들려요. 근데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거에 관해 의사들이 진짜 잘 얘기해준 게 그런 생각이 들 때 막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들어오게 놔두라고. 들어오게 놔둬야지 그게 없어진다고. 근데 그게 저한테 되게 큰 철학적 개념이 됐었어요. 뭐든지 놔두면 가더라고요. 예를 들면, 항상 래퍼들이 막 존나 까이잖아요. 대중들에게, 팬들에게 까이잖아요. 근데 그때 뭔가를 변명하려고 하면 더 까여요. 그냥 놔둬야 해요. 놔두고, 쌩까고, (다음에) 자기 곡 멋있게 내면 사람들이 그새 또 빨아줘요. 그거랑 똑같아요. 그 부분을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적용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영화를 봐도 항상 10대10으로 남자들끼리 싸움판을 벌인다면 거기서 가장 겁쟁이는 엎드려서 기어 다니고 그러잖아요. 걔는 죽어도 안 맞잖아요. 근데 제일 세고, 제일 열심히 싸운 애는 엄청 털려요. 제가 볼 때는 그게 항상 진리인 것 같아요. 제가 요즘 읽는 책이 있는데, <Reality Transurfing>이라고, 그 책에서 그거에 관해서 되게 많이 얘기해요. 모든 우주는 밸런스를 원한다고. 근데 균형을 깨뜨리는 건 밸런스의 힘에 의해서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고. 이거 관련해서 좀 구체적인 비유를 하자면, 일본 속담 중에 ‘튀어나온 못은 반드시 박히게 되어 있다.’라는 속담이 있어요. 딱 그걸 얘기하는 거 같아요. 아…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네. 






LE: 조금 전에 뭔가 센 자극을 받아야 멘탈이 잡힌다고 얘기해주셨던 거 같은데요. 자기 자신을 붙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한 건가요?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줘야 하는 건지… 한 가지 더 덧붙이면, 비유를 하자면 사람들이 싸이코패스가 있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감정이 없고 목적이 어떤 거든 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근데 그 싸이코패스들이 왜 그런지는 어떻게 보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잖아요. 사람들이 그 ‘왜?’에 의문을 많이 갖잖아요. 과연 사람의 본성에 선하고 악하고가 있을까? 그런 것 하나 없이 사회적으로만 형성되는 것일까? 다시 말하면, 후천적으로 바뀌지 않는 선천적인 무언가가 있나 하잖아요. 하여튼, 본인의 성격이나 앓고 있던 질환과 그 이야기를 연결해서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 이거 때문에 진짜 고민 많아요. 환경 VS 타고남, 유전. 일단 질환에 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저희 할아버지의 친동생분이 자살을 하셨었어요. 근데 되게 수재였다고 들었었어요. 이유는 잘 모르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근데 저희 아버지를 보면요. (웃음) 진짜 강박증 환자예요. 근데 본인은 몰라요. 청소하는 거에 미쳤고, 온종일 청소해요.






LE: 결벽증도 있으신 거군요.


네. 결벽도 있고, 맨날 탁자가 선반 같은 데에 먼지 있으면 모아서 “야, 먹어.” 이랬었어요. 존나 짜증났어요. 아, 이건 웃자고 하는 얘기에요. 실제로 그랬지만, 밉진 않았었어요. 약간 ‘으, 아빠 왜 그러지?’ 싶었는데… 또, 냉장고에 음식이 쌓이잖아요. 어떻게 하신 줄 아세요? 반찬 한 8개에 썩기 전 상태인 식빵이나 빵, 그리고 먹다 만 후렌치 후라이 같은 걸 다 모아서 끓여서 절 먹였었어요. 음식 낭비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아빠는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되게 스트레스를 받았었어요. 차가운 물로 막 샤워하기도 했고, 기분에 따라 사람이 너무 많이 변하기도 했고… 그냥 걸어 다니는데 갑자기 바지가 너무 길다면서 자르고 그랬던 사람이었어요. 강박이에요. 그래서 의사한테 물어봤었어요. 우리 아버지는 왜 그러는 거냐고. 저도 그런 게 있으니까 아버지가 점점 더 이해되긴 하는데, 약간 다른 느낌의 강박이에요. 근데 어떤 의사가 너무 잘 설명해준 게 강박 환자들은 일단 빡쳐 있는 게 기본이래요. 왜냐하면, 모든 거에 대해서 예민하고, 세상이 자기가 생각하는 데로 안 돌아갈 때 제일 화가 난다고 해요. 근데 제가 진짜 엄청 신경질적인 사람이거든요. 알 거예요. 음악에서도 그렇고… 기분 좋을 때는 너무 좋고, 너무 쿨한데, 너무 예민해요. 그래서 저는 혼자 있어야 할 때도 너무 많고, 술 먹다가 도망가는 경우도 존나 많아요. 인사도 안 하고요.






LE: 요즘도 그러시는 건가요?


요즘에는… 네. 최근에도 한 번 그랬어요. 술 먹다가 계산하고 도망가고. (그러고 나서 같이 마신 사람들한테) 다음날 전화 오면 미안하다고, 나 취했었다고 이렇게 뻥치고. 이제 이거 이렇게 말했으니까 들켰네요. 일부러 도망간 거였어요. (웃음) 근데 저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예민해지면 재미없어지거나 뭔가 생각이 많아지면 뚝. 이런 게 타고난 거에 관한 이야기인 거고, 환경적인 걸 이야기하면요. 제가 겪었던 걸 다 이야기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LE: 뭔가 운명론적인 생각인 거네요.


네. 근데 반대로 강박이 좋기도 해요. 왜냐하면, 그래서 제가 펀치라인 이런 걸 막 계속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LE: 작업도 엄청 많이 하고요.


네. 작업도 겁나 하고요. 어쨌든 뭔가에 계속 집중하게 해주니까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제 현실이 너무 싫으니까, 그쪽으로 가기 싫었던 거 같아요. 계속 이상한 생각 들고, X같이 우울해지고… 제가 우울한 것도 엄청 심한데, 오늘도 존나 우울한 채로 여기 온 거예요. 안 그러고 싶은데, 그냥 그렇게 돼요. 하여튼, 음악을 하면 그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음악이) 도움이 되긴 됐어요. 그냥 좋게 생각하려고 되게 노력하는데… 환경에 의해 변한다는 거에 관해서 그렇게 시원하게 답했는지 모르겠네요.






LE: 좀 더 깊게 얘기를 계속해보면요. 사람들이 ‘그렇게 질환이 있는데 군대는 어떻게 갔냐?’라는 식으로도 얘기하잖아요. 그에 반문해서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이니까 다시 도진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고요. 평소에 무대에서 공연하고, 사람 만나고 하다가 군대에 들어갔으니까 다들 괜찮은 줄 아는데, 본인은 아닌 데에서 오는 괴리감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은 되게 상태가 심각한데, 사람들은 몰라주고, 미디어도 그렇게 얘기를 많이 하고 그러니까요.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에 관해서만 얘기할 수 있잖아요. 사람들이 4차원을 설명하려고 하잖아요. 과학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요. 근데 사람이 사람한테 그걸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게 (어렵죠.) 지금도 저는 그게 이해가 잘 안 가거든요. 4차원이 뭔지 잘 모르겠거든요. 근데 어쩔 수 없는 게 직접 겪어 보지 않았으니까요. 사람들이 제 정신 질환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존나 빡칠 때도 많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저 사람들은 겪어 보지 않았고 저는 그걸 이미 아는 상태인 거잖아요. 되게 고마운 건 뭐냐면, 진짜 이걸 겪은 사람들이 가끔 저한테 SNS를 통해서 얘기를 해요. 나도 이거 있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욕해도 난 너를 완전히 이해하고, 신경 쓰지 말고 살라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거 같아요. 군대에서도 몇몇 사람은 저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군대라는 곳에 있다 보니까 많은 사람이 저를 의심했죠. ‘이 새끼 뺑끼 쓰는구나.’ 싶은 거죠. 근데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그럴 때 다행히 별로 빡치지 않았네요. 왜냐하면, 이런 거에 대한 오해를 너무 어릴 때부터 받았으니까요. 너무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어쩌겠어요. 자기들이 안 겪은 건데요. 아무튼 간에 저를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탓하면 저만 힘든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안 바뀔 거예요. 영원히.






LE: 본인이 앓는 질환에 의사들이 도움을 많이 줬는지 궁금해요. 약을 먹는 게 도움이 되긴 하지만, 굉장히 임시적인 방편이라고 듣기도 해서요. 그래서 약보다는 사람에 의한 효과가 더 커서 좋은 사람을 만났더니 호전되고, 나쁜 사람을 만났더니 악화되는 그런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정신병, 질환 같은 것들이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데, 뭔가 어떤 특별한 상황, 절체절명의 순간에 갑자기 처한다든가 하면 약이나 사람으로 많이 호전되었다고 해도 다시 도지는 그런 게 있다고도 하더라고요.


약 존나 도움 돼요. 개 도움 돼요. 약은 이런 느낌인 거예요. 강박이란 건 뇌가 존나 빨리 돌아가는 거예요. 개X 빨리 돌아가서 (강박에 대한) 약은 결국 뇌를 냉각시켜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어느 정도는 멈춰져요. 문제는 뭐냐면,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많아질수록 다시 속도가 올라가요. 생각하는 속도가요. CD가 타는 것처럼요. 무슨 말인지 알죠? 그렇게 되는데, 약을 먹으면 어쨌든 냉각이 돼요. 그래서 또 심해지면 다시 약을 먹어야 해요. 늘 그 패턴의 반복이었어요.






LE: 말씀하신 것처럼 약은 뇌를 냉각시켜준다면 사람에 의한 변화는 되게 장기적일 거 같은데, 어떤가요?


몇몇 의사는 약만 처방해주고 집에 가라고 해요. 각자 전문 분야가 따로 있어요. 어떤 의사는 상담만 해요. 약은 아예 처방 안 하고요. 누군 (약 처방과 상담) 두 개 다 하고요. 되게 많은 선생님을 만났는데, 도움 존나 많이 됐어요. 되게 고마웠던 여자 의사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되게 독특해요. 저기 신촌 쪽에 계시거든요. 근데 그분이 뭐라고 하셨냐면요. 되게 이모 같이 저를 잘 대해주셨는데, “너는 음악하길 잘했다.” 이러는 거예요. “왜요?”하고 물어보니까 너는 음악 안 했으면 범죄자 아니면 조현병 환자가 됐을 거라고. 조현병이 정신분열이에요. 너의 에너지가 전혀 가다듬어지지 않았는데, 하여튼 (음악이) 널 그 길과는 아예 멀게 해줬다고. 그분이 그 얘기를 했을 때, 생각을 가만히 해봤는데 진짜 맞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전 어릴 때 개꼴통에 그게 또 더 심해지고 있었거든요. 길거리에서 막 술 먹고 자고. 그냥 X신. 아, X신이 아니라 진짜 불쌍했어요. 스무 살 초반에 대학교 들어가기 직전에요. 완전 불쌍했고, 랩을 하면서도 불쌍하게 행동한 적 존나 많았고요. 근데 (음악에) 제가 집중을 할 수 있어서 되게 다행이에요. 예를 들자면, 제가 무대에 서야 하거나 행사를 해야 하거나 방송을 해야 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제가 저를 절제시켜야 하는 순간이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아까 질문에 있었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넘어갔는데, 저는 저를 강제로 컨트롤해야지만 살 수 있는 사람이에요. 안 그러면 망가져요. 원칙이 바로 서야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근데 문제는 제가 원칙 없이 사는 거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까 항상 왔다 갔다 해요. 전 저를 아는데, 전 원칙을 세워야 해요. 그래야만 성장할 수 있어요. 근데 (제가 만난) 의사들이나 친구들은 진짜 다 지혜롭고, 뭔가 인간을 좀 더 이해하는 사람들? 사람이라는 존재를 좀 더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 덕분에 저는 엄청나게 성숙했어요. 예전보다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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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되게 길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봤는데요. 다시 순서를 돌아와서 성균관대에 다니던 시절 얘기를 조금만 더 해볼게요. 얘기하시면서 성균관대에 다니면서 재즈 동아리를 했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런 얘기도 있더라고요. 성균관대에 다닐 시절에 스윙스 씨가 엄청 아웃사이더였고, 소위 ‘찐따’였다고. 당시 대학 생활이 전반적으로 어땠는지 궁금해요. 올해 공개한 영상에서도 잠깐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은데요. 한국의 대학 문화가 되게 가두는 거 같고, 한쪽만 보도록 하는 게 있는 것 같다는 뉘앙스의 말씀이었던 거 같아요. 사실 막상 대학에 들어와서 보면, 그 대학이란 시스템이란 게 갇혀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고 그러잖아요. 동기나 선, 후배 관계라든가 이런 게 뭔가 다른 환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 대학만의 분위기. 해서 그런 얘기에 관해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웃사이더 맞았어요. 일반 동아리 그런 데 안 들어갔었어요. 막 무슨 영문학과 모임 그런 거. 왜냐하면, 안 맞았어요. 사람들이 너무 뭐랄까, 너무 건강했어요. 제가 보기에는요. 근데 저는 확실히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좀 심했어요. 그래서 맨날 재즈 동아리 갔고… 누군가가 저를 찐따로 봤다면, (웃음) 맞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다시 말하지만, 대학교 가기 전까지는 성숙이란 걸 못했었어요. 굉장히 급속도로 변했었어요. 대학교에 가면서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게 맞는 거 같아요. 전체적으로 학교에서는 어떤 애였냐면, 저희 동아리에서는 별명이 ‘땡그리’였는데요. 되게 귀여움을 많이 받는 애였어요. ‘쟤 참 순수하다.’ 이런 느낌 있잖아요. 그런 취급을 많이 받았었던 거 같아요. 뭔가 길 잃은 느낌. 근데 항상 나아지려고 하는 느낌이었어요.






LE: 영문학과에 다니면서는 별로 배우는 게 없었을 것 같기도 해요. 알기에는 영어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하신 거로 알고 있어서요.


네. 영어 특기생으로 갔는데, 아니에요. 좋은 수업은 재미있었어요.






LE: 아, 정말요? 어떤 영문학적인 부분에서 그랬던 건가요?


네. 예를 들면,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첫 번째 이름이 사이몬이었어요. 성은 뭔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교수님이 캐나다 사람이었는데, 셰익스피어(Shakespeare) PHD였어요. 박사. 그것만 존나 공부했다는 얘긴데, 그분 수업을 들으면서 제가 처음으로 셰익스피어에 관해서 관심을 가졌었어요. ‘이 사람이 왜 천재야? 맨날 타이즈 입고 시 쓰고 그랬는데 뭐 어쩌라고?’ 막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그 분의 수업을 들으면서 셰익스피어가 개쩐다는 걸 그때 배웠었어요. 그런 수업들은 개좋아했어요. 또 하나의 수업은 어떤 할아버지분의 수업이었는데요. 약간 꼰대 스타일? 근데 그분이 비즈니스 영어에 관한 수업을 했었어요. 이런 거 있잖아요. 6시에 만나고 싶으니까 “6시에 만나자.”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비즈니스적으로 “아, 물론 그쪽 시간도 좋은데 제가 7시에 약속이 있어서요.”라고 접근하면서 6시 30분에 약속을 맞추는 거. 협상하는 방법 뭐 이런 거? 그런 건 보통 애기 때부터 그냥 자연스럽게 배우는 거잖아요. 근데 그 수업이 그걸 뭔가 정형화시켜줬어요. 그런 게 저한테 되게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아무튼, 셰익스피어 쩔어요.






LE: 대학에 입학하시는 게 2006년인가요? 2007년?


2007년이요. 07학번이에요.





LE: 2006년, 고등학교 시절에 크라이베이비(Crybaby) 씨랑 임슬옹 씨를 만난 게 맞죠?


네, 맞아요. 슬옹이랑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했고요.






LE: 스윙스 씨랑 그 두 분이랑 힘을 합쳐서 크라이베이비스(Crybabies)라는 밴드를 결성했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결성했고, 활동했는데, 음반 만들고 이런 건 전혀 안 했고요. 작곡도요. 그냥 커버곡들만. 뭔지 알죠? 아마추어들이 하는 거.






LE: 그럼 그게 대학교 때까지 이어져 왔나요?


네. 대학교 때 한 번하고 그렇게 끝났었어요. 아, 안 했나? 대학교 때 안 했을 수도 있어요. 맨날 합주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긴 해요. 아, 했다. 대학교 때 했어요. 예전에 홍대 옆에 사운드 홀릭(Sound Holic)에서.






LE: 지금 그 두 분을 보면, 그중 임슬옹 씨는 2AM의 멤버가 되고 나서는 뭔가 지금의 스윙스 씨가 가지고 계신 이미지와 꽤 크게 괴리감이 있잖아요. 그 점에서 뭔가 음악적인 교류보다는 인간적인 교류가 더 있었을 것 같아요. 일단 그냥 친구잖아요. 그래서 그런 게 궁금해요. 서로 되게 달랐을 것 같기도 한데, 만나서 대화를 하고 그럴 때 장벽이 느껴진다든가 이런 건 없었는지요. 그리고 본인에게 그 두 분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도 궁금하고요.


제가 저랑 사귀는 친구들이랑 괴리가 많아요. 인간적으로도요. 예를 들어, 저랑 제일 친한 친구들 중에 그냥 카이스트(KAIST)에서 연구하는 친구도 있고, 그냥 금융권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고요. 제일 가까운 애들. 연신내 친구들은 그냥 연신내 친구들이고요. 아, 그리고 저는 스물 두세 살 동생들 엄청 많이 데리고 다녀요. 제 레슨생들. 그렇게 만나는 부류들을 보면 힙합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별로 없어요. 그래서 다 괴리가 있는데, 슬옹이가 그중 하나에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건 뭐냐면, 저는 그냥 아무나 되게 좋아하는 거 같아요. 착하고 순수한 사람한테는 늘 끌리는 게 있어요. 마음이 열리고… 무슨 직업을 가졌든, 어떤 사상을 가졌든 간에요. 그건 저한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슬옹이도 저랑 전혀 안 맞아요. 음악적으로나 여러 가지. 근데 친구로서는 그냥 좋아요. 같이 있는 게 재미있어요. 그게 다예요.






LE: 중, 고등학교 시절에 스윙스 씨가 어떤 비행(?)을 하는 와중에도 (임슬옹 씨와) 같이 지내기에는 괜찮았나요?


걔는 그런 걸 안 했었어요. 문제 전혀 없었어요. 걔는 되게 착했어요.






- 03. 펀치라인 킹의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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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시기를 넘어와서 [Punch Line King] 얘기를 해볼게요. 그때가 아마 2007년인 걸로 기억하는데요. 아까 버벌진트 씨가 프레싱이라든가 그런 행정적인 걸 도와줬다고 얘기하시면서 [Punch Line King]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그 전 시점을 살펴보면요. 디씨 트라이브(DC Tribe)에 곡을 올리고, 그쪽 유저들이랑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그 믹스테입을 낸 게 뭔가 내가 잘한다는 걸 입증하고 싶었던 건가요?

 

그냥 제가 음악하게 된 계기 자체가 절 증명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즐긴 것도 있었는데, 인간은 다 누구나 자기 가치를 확인받고 싶어하잖아요. 그 믹스테입이 디씨 트라이브를 크게 의식하면서 만든 건 아닌데요. 나중에는 의식했었어요. [#1] 때는 존나 씨X 절 욕하는 사람들의 코를 한 대 세게 치고 싶었어요. 그 당시에는 유난히 그 커뮤니티에 (욕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았었는데근데 [Punch Line King]은 진짜 그냥 내 거 하고 싶다.’라는 생각뿐이었어요. 사실 그때 주위 사람들이 제가 한국말 랩을 못한다고 존나 지랄했거든요. 존나 어색하다고. 심지어는 랩이나 힙합이랑 전혀 상관없는 친구들도요. 아마추어도 아니고, 리스너도 아니고 그냥 보통 인간이 들었을 때도 어색해 죽겠다고 했었어요. 저는 그때 내면서 X X.’라는 마음이 컸었어요. 절 증명하기 위해서.

 





LE: 말씀하셨다시피 디씨 트라이브와 논쟁이 오가고 이럴 때쯤에 스윙스라는 사람을 인정을 안 해주는 부류들이 되게 많았던 거 같은데요. 듣기에는 딥플로우(Deepflow) 씨만이 처음부터 얘 잘한다.’, ‘인정한다.’, ‘되게 커질 거 같다.’라는 식으로 계속 일관되게 얘기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맞나요?

 

맞아요. 상구 형 얘기를 또 빼먹을 수가 없죠. 상구 형은 제가 랩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던 거 같아요. 물론, 제 스타일 좋아했다고 맨날 저한테 직접 얘기해준 건 고마운데, 그 형은 그냥 저를 좋아했던 거 같아요.

 





LE: 사람 자체를 말이죠?

 

. 사람 자체를. 제가 그 형을 또 엄청 좋아했고요. 되게 친했어요. 그 형은 아무나 다 받아주는 되게 착한 사람이에요. 절대 랩 못한다고 사람 무시하거나 밀어내고 이런 거 없어요. 열려 있는 문이에요. 상구 형이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지지했어요.

 





LE: 그래도 그때는 딥플로우 씨도 한국말 랩은 좀 별로라고 얘기하셨었나요?

 

아니요. 별로 안 했어요. 그냥 사람한테 기분 나쁜 말을 잘 안 해요.

 





LE: 그렇군요. 그 당시 믹스테입을 내기 전후로 베지터블 허슬러스(Vegetable Hustlers)라는 크루에 계셨던 거로 기억해요. 그리고 ‘86ers’라는 크루도 그쯤이었나요?

 

, 맞아요. 비슷한 시기에요.

 





LE: 아무래도 그 당시 힙합 씬 지형을 생각하면 전혀 이름을 들어보기 어려웠던 집단들이었는데요. 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어떤 곳들이었는지 궁금해요. 그 크루로만 따지고 보면 사실 스윙스 씨가 첫 주자였었잖아요.

 

베지터블 허슬러스는 제가 디씨 트라이브에서 한창 까일 때, 그냥 저의 장점을 봤나 봐요. 다른 사람이 같은 면을 봤을 때, 그 사람들은 (저의) 이면을 봤어요. ‘, 그래도 얘 영어 랩도 잘하고 재미있네.’라는 식이었겠죠? 그때 라마(Rama) 형하고 옵티컬 아이즈 엑셀(Optical Eyez XL) , 그 두 형이 앨범을 만든다고 했었어요. <7인의 사무라이> 뭐 그런 영화가 있대요. 그런 컨셉을 바탕으로 허클베리피(Huckleberry P) 형은 프리스타일 제일 잘하는, 또 다른 사람은 이걸 잘하고

 





LE: 뭔가 <어벤저스>스러운 그런 거였군요.

 

. 그런 컨셉의 앨범을 하나 만들자고 저한테 제안했었어요. 그래서 그때 신촌에 있던 술집에서 만나서 이야기했었는데, ‘나야 뭐 좋지.’하고 했었죠. 그때 냈던 그 앨범은

 





LE: 그게 칠린 스테고(7 ST-Ego)였군요.

 

. 칠린 스테고라는 게 그냥 저한테는 되게 의미 있었어요. 두 곡인가 세 곡 참여했는데, 두 곡은 솔로 곡인데 영어로 했고요. , 단체곡도 아마 두 곡 참여했던 거 같아요. 그때 되게 즐겁긴 했었는데, 진짜 프로젝트 같은 느낌이었어요. , 좋은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LE: 그럼 그 칠린 스테고가 베지터블 허슬러즈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였네요.

 

. 베지터블 허슬러즈 안에 회사를 만들고, 대부분 사람이 그 안에 있었어요. 그리고 칠린 스테고라는 집단을 만들어서 컨셉을 잡고 앨범을 만든 거죠. 그 와중에 저랑 동갑 래퍼들, 베이식(Basick)이 한창 활동하고 있었고

 





LE: 로우 디가(Row Digga) 씨도 그때는 랩을 하셨었죠.

 

맞아요. “, 우리 동갑인데 뭐 하나 해보자.”라고 해가지고그게 86ers였어요. 되게 순수하게 목적도 없이.

 





LE: 그때는 ‘Luk2’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셨던 VMC의 브라스코(Brasco) 씨도 있었죠.

 

맞아요. 그때 Luk2였죠. 존나 귀엽네 진짜. 그때는 진짜 순수했었어요. 목적이 없었어요. ‘우리가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보자.’ 이런 것도 별로 없었고요.

 





LE: 사실 한국힙합 씬이 얘기를 듣고 보면 웹상으로 접촉이 많이 생기는 경우가 많잖아요. 우리가 무슨 블록 파티를 하고 이런 게 아니니까요. (웃음) 그렇게 만날 수가 있는 게 아닌데, 본인도 그런 웹상으로 접촉이 생기는 흐름에 함께 하고 있었다고 봐야겠죠. 온라인으로 연락하고 만나게 되어서 오프라인으로 일을 계획하고 성사시키고.

 

맞아요. 인터넷 얼마나 좋아요. 인터넷을 잘 사용했죠.

 





LE:  [Punch Line King] 얘기를 더 해보면, 말 그대로 펀치라인을 거의 모든 트랙에서 다 보여주셨던 거 같아요. 근데 사실 그전까지 펀치라인이라는 개념이 한국에서 그렇게 유용한 개념이 아니었잖아요. 타블로(Tablo) 씨 정도만 하고 있었는데요. 자신이 잘 쓸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아무도 안 쓰니까 내가 보여주겠다.’ 이런 게 있었나요? 답답함이라든가

 

맞아요. 제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좋아했던 래퍼가 캐시디(Cassidy)였어요. 거의 제일 좋아했거든요. 그 사람이 너무 가사를 잘 쓰는 거예요. 너무 웃기게. 그리고 그때는 펀치라인 잘 때리는 게 되게 중요했었어요. 그 시기에 유난히요. 그래서 아 씨X, 내가 해볼래.’하고 했던 게 컸어요. 한국말 랩은 (기존 랩에) 추가되면 되게 멋있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진짜 그냥 소년 같이 꿈꿨었어요. ‘사람들 가사 쓰는 스타일이 나로 인해 바뀔 거야.’ 이런 마음이 되게 컸었어요. 그래서 2008년에 [Upgrade] 낼 때도 존나 건방진 새끼,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제가 그 당시 인터뷰나 앨범 소개 글에서 뭐라 했냐면요. ‘이건 한국힙합 랩의 패러다임을 바꿀 거다.’ 같은 뉘앙스였어요. 23살 때 그런 소리를 했었죠. 참 지금 보면 패기가 존나 쩔었던 거 같아요. 대견스러운 거 같아요. 한 대 때리고 싶으면서도 되게 멋있다고 생각되는 동생 정도로 봤을 거 같아요. 하여튼, 그 마음이 컸었어요. ‘바꿔 보자.’, ‘업그레이드해보자.’ 이렇게그런 마음이었어요.

 





LE: 근데 노래를 하시다가 랩으로 넘어왔음에도 그전에도 펀치라인이라는 개념은 잘 알고 계셨던 건가요? , 랩 가사를 쓴 지 얼마 안 됐을 때도 펀치라인을 곧잘 썼었나요? 좀 더 얘기를 해보면, 사실 펀치라인에는 종류가 많잖아요. 한국에서는 그 종류들을 묶어서 펀치라인이라고 하는데, 중의적 표현을 활용한 펀(Pun)이라는 게 따로 분류되기도 하고 그러는데요.

 

처음 랩 시작했을 때는 영어로는 쓸 자신이 있었는데, 한국말로는 그게 잘 안됐었어요. 너무 어색하게 나오는 거예요. 근데 몇 번 연습하니까 되더라고요. 그게 다예요. 그 개념에 대해서는 언제나 알고 있었고요. 펀치라인은 우리나라에서 의미가 변하고, 여러 가지 의미가 더 생겼는데요. 그냥 웃긴 구절이거든요. 펀은 그냥 펀이에요. 중의적 표현이고, 펀치라인은 그냥 랩 말고 아무 때나 사용하는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죠? 그냥 친구들끼리

 





LE: 단순히 말로 한 방 먹이는 거잖아요.

 

그냥 웃긴. 반드시 웃겨야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깊은 가사가…’ 이런 얘기 하니까 되게 답답하더라고요. 저는 8년째 이 얘기하고 있거든요. 근데 제 말 다 무시하더라고요. 그런 의미 아니에요. 웃긴 라인. 그냥 웃긴 라인이에요.

 





LE: 실제로 한국힙합을 역사적으로 보면, 그런 식으로 펀치라인을 잘 쓰셨던 게 하나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게 맞는 것 같은데요. 근데 스윙스 씨 이후에 데뷔한 래퍼 중에 몇몇이 본인이 스윙스 씨와 기량이 같은 줄 알고 의미 없는 펀치라인들을 16마디 내내 남발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이후의 흐름을 보면요. 펀치라인이라는 지점에서 자신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고 생각하시나요?

 

.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지금은 아니고요. 제가 무슨 펀치라인의 주인도 아니고요. 제가 한 건 오로지 그냥 이미 존재했던 걸 해석해서 가져온 것뿐이에요. 전 제가 펀치라인 킹이라는 말을 안 쓸 뿐이지, 여전히 펀치라인 킹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짱이에요. 저만큼 창의적인 가사를 쓸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걸 사람들이 쓰는 걸 가지고 뭐라 하면 안 되죠. 그냥 당연히 썼으면 좋겠고, 멋있게 썼으면 좋겠는데, 단지 제가 불만 있는 건 래퍼들이 저를 역사 속에서 지우려고 하는 게 보여요. 한국 최고의 래퍼나 이런 걸 인터뷰 같은 데서 논할 때, 혹은 한국힙합 최고의 명반을 논할 때 [Upgrade]를 얘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Upgrade]는 한국힙합 바꿨어요. 통째로 바꿨고, [#1]도 그렇고, [감정기복]도 그렇고솔직한 가사를 쓰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어요. 그 당시에 진태 형 정도? 제가 진태 형한테 영향을 되게 많이 받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저에 대한 크레딧은 없고, 요즘 어린 친구들 혹은 현역 래퍼들 랩을 들어보면 저를 까고 있는 게 느껴지거든요. 딱 보면 , 이거 내 얘긴데?’ 바로 느껴지는 거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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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플로이드 메이웨더(Floyd Mayweather, 이하 메이웨더)를 존나 존경하거든요. 이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뭐냐면, 그 형님은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요. 참고로 저는 (메이웨더 경기 영상을) 다 봤어요. 그냥 메이웨더를 공부해보자고 생각해서 그 사람이 싸운 걸 다 봤어요. 49 49. 제가 볼 때 한 번은 진 거 같아요. 근데 판정으로 이겼는데, 그 형이 자기가 최고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질투하는 것 같은데요. 인터뷰할 때, 인터뷰어들이 존나 까요. 메이웨더한테 시비를 존나 걸어요. 메이웨더가 파이터 스타일이라 그런지 닥쳐.’ 이런 게 아니고 진짜 파이터처럼 모든 질문에 일일이 다 대답해요. ‘너 이래서 틀렸잖아, X신아.’ 이런 식으로 까면 (메이웨더는) “너가 나한테 보여줄 건 리스펙밖에 없어. 리스펙말고는 보여줄 게 아예 없다고. X놈아.”라고 해요. 근데 저도 똑같이 얘기하고 싶어요. 내 영향 안 받은 척하지 말라고. 안 받은 척은 해도 되는데, X 나 욕하지는 말라고. 그냥 혹시라도 제가 오해하는 거면 그런 건데, 그렇게 생각하는 애들은 진짜 만약에 제 이름을 거론하면서 시비 걸면 제가 무대로 불러서 배틀을 뜰 거예요. 3라운드. 미국 스타일로. 그다음에 전 그 사람의 인생을 아작낼 거예요. 전 저처럼 사람 모욕을 잘하는 사람 태어나서 한 명도 못 봤거든요. 단 한 명도. 저처럼 모욕하는 걸 잘하는 사람 아예 없으니까 진짜 인생 평생 우울하고 싶으면 덤비라고요. 저한테 랩해서 자기 멘탈 돌아온 사람 한 명도 없는 거 알죠? 제가 요즘 진짜 좀 빡이 쳐있거든요. 에너지가 느껴져요. 가끔 길가다가 현역 래퍼들 보면, 그 에너지가 느껴져요. ‘나는 너를 무너뜨릴 거야.’, ‘난 너 인정 안해.’ 이게 느껴져요. 그냥 딱 그렇게 한 번 해보자고.

 





LE: 현역 래퍼들에게서 난 너 인정 안 해.’ 그런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하셨는데, 흐름이랑 좀 다르지만 한 번 얘기해볼게요. 블랙넛(Black Nut) 씨가 슈퍼비(Superbee) 씨의 냉탕에 상어에서 뱉은 가사도 그렇고, 스윙스 씨 본인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하시잖아요. ‘한국 래퍼들은 정치질을 한다.’, ‘지들끼리 노는 그런 게 있다.’. 뭔가 리얼하지 못한 게 있고, 본인은 그런 것과 타협하지 않거나 타협했어도 그래도 그걸 본인 기준에서는 거부할 건 거부하고 이겨냈다는 식의 가사를 많이 쓰셨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본인이 힙합 씬에서 활동하면서 정말 그런 것들을 많이 경험했던 건가요? 정치판이라고 할까요.

 

. 너무 경험했죠. (웃음) 제가 알고 있는 비밀들 다 이야기하면 팬 다 떠나요. 얘기 안 하는 건 이 바닥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환상은 있어야 해서제가 그 동안 당했던 일들 다 얘기하면 진짜 웃길 거예요. 근데 됐어요. 그런 것까지는 얘기하기 싫고그냥 있었다고만 얘기할게요. 너무 심하게. 특히 저를 향해서요. 근데 저랑 저스트 뮤직이 컸잖아요. 되려 저한테 존나 잘해요. 옛날에 어떤 아줌마가 저한테 해준 말이 있는데요. 친구 쫓지 말라고. 인맥 만들지 말라고. 네가 잘나가면 알아서 니 똥꼬 빨게 되어 있다고. 그 말보다 진리는 없어요. 근데 사람들이 정치라는 거에 대해서 되게 질려 하는 게 있는데, 제가 가사에서 그런 내용을 뱉을 때보다 더 열 받아 하면서 그 단어를 생각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되게 민감한 것 같은데, 정치란 건 인생 살면서 모두가 해야 하는 거예요. 엄마한테 용돈 타는 것도, 설득하는 것도 정치예요. 무슨 말인지 알죠? 나와 엄마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건데, 사람들이 너무 그거에 대해서 예민해지다 보니까 정치의 정 자만 나와도 경악하는 거 같아요. (정치)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뭐냐면 진짜로 대놓고 그냥 저를 묻으려는 움직임들이 많았어요. 사람들은 그게 빅딜이라 하는데, 빅딜 말고도 엄청 엄청 엄청 엄청 많았어요. 존나 피곤했는데, 그래서 제가 더 센 척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 음악이 더 거친 거 같고요. [Punch Line King] 들어보면요. 저 별로 안 거칠어요. 음악이 되게 순수하고, 착해요. 저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 행복하다.’ 이 지랄하는 게 많았는데, 좀 겪으니까 [Upgrade]가 조금 거칠게 나오고, 더 겪으니까 [#1]이 나오고, 더 겪으니까 또 점점 세진 거 같아요. 하여튼, 치사한 짓거리 존나 많아요.

 





LE: 그러니까 그 정치 중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정치가 있는데, 씬에서 벌어졌던 정치는 올바른, 혹은 원칙이 있는 제대로 된 정치가 아니고 부정적인 측면이 많았던 정치였던 거죠?

 

맞아요. 그 정도가 심하다 싶은 거 있잖아요. 존나 치사하고, 근데 이 얘기는 별로 (깊게) 하고 싶지 않은 게 그렇게 해서 자기가 생존할 수 있으면 그냥 그렇게 하게 놔두는 게 제일 좋은 거 같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들도 있고요. 근데 전 그냥 이거에요. 우리나라 래퍼들은 되게 살기 편한 거 같아요. 활동하기가 되게 편한 게 앨범 한 장 안 내고도 행사 존나 많이 돌잖아요. 사람이 어떻게 자기 밥그릇을 챙기느냐를 제가 간섭할 바는 아닌데, 그래도 힙합을 좋아해서 래퍼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다들 날로 먹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허슬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어야지 힙합을 하는 건데, 그게 없는 걸 전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그냥 ‘WTF’이에요. 왜 이렇게 얍삽하게 해 먹는지… ‘그 사람들을 일일이 다 지목해가면서 비난할 거야.’라는 식은 아닌데, (그 사람들에 대한) 제 리스펙은 그 사람들이 원하지도 않겠지만 안 주고 싶어요. 좀 더 허슬했으면 좋겠어요.

 





LE: 조금 얘기가 벗어났는데, 다시 [Punch Line King] 얘기를 다시 하면요. 수록된 트랙 중에 모델 임다혜 씨에 관한 노래가 되게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뭔가 그분과의 에피소드가 있나요? 아니면 그냥 그 당시에 되게 엄청 좋아했었던 건가요?

 

. 그냥 어린 나이에 , 이 누나 되게 멋있다.’라고 생각이 들었었는데, 나중에는 인간 대 인간으로 친해졌어요. 지금은 연락 안 한 지 되게 오래됐네요.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LE: 그리고 이게 시기가 이때쯤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예전에 본인의 미니홈피를 통해서 Favorite MC 5명을 국내, 국외로 꼽으셨었잖아요. 그중에 제이다키스(Jadakiss)가 있었고, 커리어 초기에 꾸준히 제이다키스 특유의 웃음소리를 본인만의 스타일로 소화를 많이 했었잖아요. 어떤 점에서 제이다키스가 본인에게 영향을 많이 미쳤는지가 궁금해요.

 

. 저는 제이다키스의 그 뭐랄까, 존나 천천히 말하면서 리리시즘 개 강하고, 펀치라인 존나 많고옛날에는 진짜 비트 패는 느낌이 들었었어요. 진짜 옛날 초기. , 초기는 아니지 당연히. 초기는 완전 90년대고, 2000년 초반?

 





LE: [Kiss Of Death] 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때하고 완전 초기 사이에 믹스테입이 좀 있었는데요. 패볼러스(Fabolous) (제이다키스의) 영향을 존나 많이 받은 거 같더라고요. 옛날 거 들어보면 , X.’이러는데, 저는 지금은 제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옛날에 화려하게 할 필요 없는듯한 래퍼들을 되게 좋아했었어요. ‘I’m Just Gonna Do It Slow’. 존나 자기 편한 대로 하는 느낌? ‘따다다다 다다다이런 느낌을 안 좋아했었어요. 그 영향을 되게 받았던 거 같은데, 웃음 소리는 진짜 의식하고 그랬던 건 아닌데 사람들이 하도 제이다키스 같다고 그러니까 저도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따라 하는 기분 들고요. 근데 또 가끔씩 나와요. 제가 괜히 제이다키스 좋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따라 한다고 얘기를 하는 건지. (하여튼,) 그 당시에 저한테 그 사람처럼 가사 재미있게 쓰는 사람도 없었고요. 플로우도 존나 멋있고요.

 





LE: 되게 꾹꾹 눌러 담는 느낌이 나잖아요.

 

. 맞아요. 블록 쌓는 느낌이 있죠. 멋있어요. 존나 멋있어.

 





LE: 근데 또 그런 얘기도 있더라고요. 제이다키스의 랩을 들으면, 어디다가 뱉어도 형태가 똑같은 복붙 랩같다고 하더라고요. 꾹꾹 눌러 담는 강세, 플로우도 비트에 따라 바뀔 수도 있을 텐데, 언제나 같은 느낌으로 꾹꾹 눌러 담는 게 지겹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그 사람은 제 커리어를 만들어준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 건 별로. 한마디로 고마움 뿐이에요.






- 04. 오버클래스의 돌격 대장이 되다 -


오버클래스 로고.png

LE: 이제는 오버클래스 관련된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해요. 아마 2007년에 [Punch Line King]이 나오고 버벌진트 씨의 [무명]이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맞아요. 연말에.






LE: 스윙스 씨 같은 경우에는 그 [무명]의 “Cold As Ice”에 참여하시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름이 더 알려졌던 걸로 기억해요. “우리나라에 핵이 왜 필요해? 내가 있는데.”라는 구절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것 같고요. 아까도 버벌진트 씨가 믹스테입 프레싱 같은 걸 도와주셨다고 얘기해주셨지만, 버벌진트 혹은 오버클래스라는 집단과 연결되는 전체적인 과정이 궁금하거든요.


진태 형 어떻게 알게 됐더라… 알게 됐던 건 기억이 잘 안 나서요. 제 기억이 맞다면 그 형이 제 CD를 들고 무대에 올라갔었어요. 이게 [Punch Line King]이라는 믹스테입인데, 얘 참 워드 플레이, 그 형이 워드 플레이라는 표현을 썼었어요. 워드 플레이 잘한다고 했었어요.






LE: 그때는 아예 서로 몰랐던 사이였던 건가요?


네. 아마도요. 그 전에는 인사를 안 했었을 거예요.






LE: 되게 특이한 케이스네요.


네. 제가 팬으로서 한 번 다가간 적은 있었는데, (그때 그랬다는 걸) 그 형은 기억 못 하더라고요. 아무튼, ‘난 얘 되게 잘 듣고 있는데, 워드 플레이 재미있게 하고 잘됐으면 좋겠다.’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자기 무대하고 내려갔었어요. 그래 가지고 제가 좀 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연락이 왔었어요. 이태원에 마초 스튜디오(Macho Studio)라는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거기서 녹음을 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Cold As Ice”라는 노래에 피처링을 해달라고 이메일로 그 내용을 보내왔었는데, 존나 멋있는 거예요. “진짜를 찾는다면 U Can Come To Me Casa”. 저 사실 오늘 그 가사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이 얘기가 갑자기 나오니까 좀 신기하네요. 오늘 진짜 오랜만에 그 가사 혼자 불렀는데… “Diablo Flow Ain’t Nobody Hotter” 막 이러면서. 그 당시에 그런 플로우가 없었는데… 제가 그걸 집에서 듣고 바로 갔었어요. (가사) 다 썼다고. (형이) 알겠다고 하면서 이때 이때 오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때 학교 다녔을 때인데, 학교 끝나고 녹음을 하러 갔었어요. 스튜디오 가니까 웜맨 형하고 영쿡 형이 있고, 엔지니어분도 있었는데, “Rhyme이 뭔지 모르는 너에게 할 말이 없지 / 넌 북한 경제처럼 발전이 없지.”라고 뱉으니까 영쿡, 웜맨, 버벌진트 다 애새끼들처럼 웃었어요. 진짜 유리창 밖으로 헤드폰 끼고 마이크 앞에 서있는 채로 보이는데, 존나 막 괴로워할 정도로 웃더라고요. 배 아픈 수준으로. 그때 최고의 영광이었어요. ‘아, Shit. 이해하는구나. 내가 하려고 하는걸’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 유승준도 한국 국적을 다시 따겠다” 막 이런 웃긴 소리 많이 했는데, 되게 좋아했었던 기억이 나요. 녹음 몇 번하고, 끝내고, 피자 왔다고 피자 먹여주고, (진태 형이) 저작권에 대한 얘기도 해줬었어요. 이거 꼭 등록하라고. 이거 해야지 돈이 들어온다고. 지금은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나중에 이게 다 쌓이는 거라고. 그거 듣고 ‘아~…’하면서 귀찮아서 안 했어요. 저작권 등록 음악하고 한 3년 뒤에 했어요. 대부분 음악하는 사람은 바보인 거 같아요. 거의 다 비즈니스적인 거 되게 못하고… 아무튼, 그렇게 첫 작업을 하게 됐고요. 그때 이후로 제가 (진태 형한테) 존나 찾아갔어요.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요. 맨날 연락하고. ‘형, 뭐 하세요? 만나실래요?’ 이런 식으로 어쩌고저쩌고… 그 형이 막 (다 얘기해주는데,) 그때 제 인생 선배였어요. 음악뿐만 아니라.






LE: 그럼 오버클래스가 결성되고 나서 스윙스 씨가 나중에 영입된 게 아니고 같이 만들게 된 건가요?


아니요. 원래 있었는데 제가 나중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2007년에 아마 더콰이엇(The Quiett), 버벌진트 콘서트가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있었어요. 그 공연 뒤풀이 때, 제가 술 먹고 막 나 믿으라고, 나 한국힙합 씬 바꿀 거니까 (웃음) 오버클래스 들여보내달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진태 형이 듣다가 “흠…” 하더니 피곤하다고 먼저 가고… (전원 웃음) 다른 오버클래스 멤버들이랑 얘기하다가 결국은 받아주더라고요. 제가 저를 제안한 거였어요. 저를 팔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진짜 웃기네요. 어린 애가. 22살짜리 애가.






LE: 당시에 오버클래스의 멤버 중에는 살롱(Salon)이 멤버들도 되게 많았었잖아요. 그 외에도 스테디 비(Steady B), 비솝, 웜맨, 로보토미(Lobotomy)까지, 많은 사람이 모여있음과 동시에 되게 성향도 각양각색이었어요. 어떤 하나의 음악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모였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었는데요. 그 모든 사람을 끌어모으는 오버클래스만의 원동력이랄게 있었던 건가요? 사실 오버클래스가 당시 씬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도 있었거든요. 색깔이 뚜렷하다고 하기에는 애매했지만요.


맞아요. 전혀 없었어요.






LE: 근데 그 색깔 대신에 한 단계 높은 수준을 보여주겠다는 모토 그 자체가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그냥 모두가 열심히 움직이던 때였어요. 진태 형도 그렇고, 웜맨 형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영쿡 형도 그렇고, 산이(San E) 형도 그렇고, 조현아도 그렇고… 다들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였었어요. 근데 저는 한 가지 오버클래스에 아쉬운 점은 있어요. 맨날 형들한테 얘기했는데, 우리 랩은 더 잘해야 한다고 그랬었어요. 영쿡 형이 너무 장난식으로 랩을 많이 했잖아요. 고추 얘기 맨날 하고. 그냥 항상 얘기했었어요. 형이 플로우나 발성을 더 좋게 하고, 랩을 조금만 더 진지하게 하면 지금보다 더 설득력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되게 많이 했었는데, 수렴해줘서 고마웠던 기억이 있어요. 오버클래스가 그런 걸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있어요. 근데 또 다른 면에서는 너무나 씬을 이끌어가는 게 있었기 때문에 존나 좋은 추억이고 좋았어요.






LE: 랩을 좀 더 잘했으면 좋았겠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이건 사실 멤버 개개인에 따라 다르긴 한데요. 사실 스테디 비 같은 분을 비롯해서 몇몇 분은 그 당시 기준으로 따져도 랩이 그렇게 익지 않은 듯하기도 했었는데요. 실제로 커뮤니티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조금 있었고요. 혹시 본인도 랩적인 수준이 좀 아쉬워서 함께 하기가 어려웠다든가 이런 건 없었나요?


그건 뭐, 어느 집단에 있든, 누구랑 있든 똑같이 드는 생각인데요. 그냥 뭐랄까, 제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막 뭐라고 뭐라고 지랄할 수는 없잖아요. 그저 설득을 하는 거죠. 더 열심히 하자고 설득하면서 가는 건데, 약간 저랑 함께했던 사람들을 욕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그런 건 얘기하기가 좀 불편한 것 같아요. 그 누나 그냥 열심히 했어요. 열심히 했고, 좋은 추억을 나눴어요. 이렇게 끝낼게요 그 얘기.



오버클래스 단체 사진.JPG


LE: 정확하게 대입이 되진 않는데, 오드 퓨처(Odd Future) 보면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도 있고, 도모 제네시스(Domo Genesis)도 있고, 케이시 베지스(Casey Veggies), 디 인터넷(The Internet) 등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모여있잖아요. 그리고 오드 퓨처 역시 어떤 음악적 정체성이 구심점으로 명확하게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오버클래스와 닮은 점이 있지 않나 생각도 들고, 사실 저스트 뮤직도 그런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렇다고 오드 퓨처를 따라 한다는 게 아니고 되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아요.


아마 제 성향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오버클래스 들어갔을 때는 일관성을 바라고 간 게 아니었거든요. 그냥 다 각자 존나 멋있으니까… 저스트 뮤직 만들 때도 ‘얘는 여기에 안 어울리고…’ 이러면서 제가 원하는 그림에 (사람들을) 맞추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옆방에 기리보이(Giriboy)가 있는데, 기리보이랑 노창이 어디가 비슷해요. 씨잼하고 기리보이가 어디가 비슷하고, 씨잼이랑 저랑 어디가 비슷해요. 아, 씨잼이랑 저는 좀 비슷하네요. 근데 그냥 저는 그런 걸 되게 좋아해요.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이 마인드를 되게 좋아해요. 얘가 이게 좋은 거면 그냥 얘의 최고치를 보고 싶은 것뿐이에요. 저 닮아갔으면 좋겠다는 느낌보다는 얘의 최고치. 근데 제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고, 저 역시도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이 단일화된 걸 더 좋아한다면 그것도 멋있고요. <파워 레인저>보다는 <어벤저스>나 <원피스>를 좋아하는 느낌? 그냥 그거에요.






LE: 그럼 딱히 지정된 건 아니지만, 오버클래스 안에서 본인의 캐릭터나 역할 같은 게 어떤 거였다고 생각하세요? 음악적으로 강단 있게 나가려고 하는 느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나머지 행정적인 부분은 다른 분이 처리해주셨을 것 같기도 한데, 하여튼 음악적인 측면에서든 음악적이지 않은 측면에서든 오버클래스 내에서의 역할과 캐릭터가 궁금해요.


전 거기서 으쌰으쌰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냥 으쌰으쌰하는 동생이었고, 제가 (멤버들을) 다 좋아했었어요. 노도(Nodo) 형도 존나 맨날 만나고, 술 먹고… 리미(Rimi). 아, 리미도 있었네. 전 으쌰으쌰맨이었어요 그냥. ‘아, 씨X 이거 존나 멋있다.’하고… 지금이랑 성격이 되게 다르다고 생각되고, 돌아보면 그때 참 건강했던 게 어떤 사람의 장점이 있으면 그것밖에 안 보였었어요. 그 사람의 단점은 안 보였었어요. 맨날 형들 칭찬했었어요. ‘형은 이런 게 존나 멋있어.’, ‘영쿡 형 같이 비트 찍는 사람이 어디 있어. 씨X 존나 멋있어.’, ‘비솝 형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야.’ 이런 식으로 맨날 그랬어요. 형들 존나 짱이라고. 그러면 (비솝 형은) 되게 창피해했었어요. 엄청 소극남이어서… 그런 역할이었어요. 근데 행정적인 건 웜맨 형이 다 했었어요. 그 형은 진짜 존나 추진력 개쩌는 사람이에요. 그 형이 오버클래스를 혼자 이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되게 스트레스받아 했었어요. (웃음)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그 형 통해서 진짜 많이 느꼈어요. 미안한 마음도 있고…






LE: 막 중구난방으로 퍼져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서 일을 해야 하니까 그런 거겠죠.


네. 진짜 그랬어요. (일이 잘) 안될 때는 얼굴에 스트레스가 쌓인 게 보였었어요. “내 말 좀 들어줘.” 막 이러기도 하고… 근데 리더십이 있었으니까 우리가 잘 따라갔던 것 같아요. 그 형이 (오버클래스) 하다가 그 형이 나중에 그랜드라인엔터테인먼트(Grandline Entertainment)를 차린 거죠. ‘아, 씨X 이 에너지를 이렇게 쓸 바에는 내가 내 회사를 만들겠어.’라는 생각으로 만든 것 같아요.






LE: 당시에 오버클래스가 공연도 좀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잘 됐었나요?


초반 한두 번은 매진됐는데, 그다음부터는 사람들이 뚝뚝 떨어져 나갔었어요.






LE: 어떤 이유에서 그랬나요?


이유는 분명한데, 멤버들이 공연을 잘 못 해요. 너무 소극쟁이들이라… 진짜 그게 항상 아쉬웠었어요. ‘아, 이게 너무 아쉽다.’ 생각했었고… 공연, 쇼를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어요. 대부분이.






LE: 오버클래스 안에서 지금까지 스윙스 씨와 연이 이어져 온 사람은 브랜뉴뮤직(Brand New Music)에 같이 소속되어 있었던 버벌진트, 산이 씨가 제일 대표적이잖아요. 그만큼 그 둘에 대한 감정도 깊을 것 같거든요. 버벌진트 씨에 관해서는 아까도 얘기해주셨지만요. 버벌진트, 산이 씨에 관한 본인의 생각이나 감정이 궁금한데요.


진태 형. 진태 형은 뭐… 그 형이 TV 나와서 막 울고 그랬잖아요. 블랙넛 떨어뜨리고. (웃음) 안 미웠어요. 이 형 성격을 제가 아니까요. 존나 최대한 정직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가사에서 제일 리얼해요. 제가 본 힙합하는 사람 중에 거의 제일 리얼해요. 대부분은 과장한단 말이에요. 혹은 아예 구라를 치든지. 저도 분명히 과장할 때가 있고요. 아, 많아요. 얼마든지 과장을 하고… 근데 그 형은 자기한테 최대한 솔직하려고 해요.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는데…






LE: 얼마 전에 나온 버벌진트 씨가 참여한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의 “타이틀곡” 들어보셨나요?


네. 들었어요.






LE; 거기서 되게 솔직하잖아요.


네, 맞아요. 좀 바보 같아요. 이건 진태 형한테 직접 말했었어요. 형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약간 자꾸 자기를 설명하려는 느낌이 있는데, 형은 짱이라고. 랩도 우리나라에서 거의 제일 잘하는 사람 중에 하나지만, 가요도 씨X 가요계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히트곡에 히트곡에 히트곡. 왜 두 개 다 잘한다고 얘기를 안 하느냐고. 사람들한테 굳이 내 음악이 변했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얘기하지 말고 ‘난 두 개 다 잘해, 이 XX놈들아.’라고 해야지 멋있는 거라고. ‘야, 너 존나 랩 잘해? 근데 너 나보다 랩 못해. 그리고 넌 가요도 못해.’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의외로 형이 그런 면에서 자기의 일관성을 의심하는 걸 전 봤거든요. 제가 느끼기에는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는 건) 존나 개짱인 거예요. 제가 갑자기 클래식 음악하는 거랑 비슷한 거잖아요. 블루스하거나 록하거나 이런 거랑 비슷한 건데, 그 형은 음악 스펙트럼도 최고고, 지식에 대한 스펙트럼도 최고인데… 그래서 전 [Go Hard Part.1 : 양가치] 들으면서 느낀 게 씨X 더 하드하게 갔었어야 했어요. 모르겠다. 이건 그냥 팬으로서 하는 얘기에요. 진태 형은 어쨌든 저한테는 존나 개짱인 형이에요. 이 앨범 이후에 ‘Super Hard’라든지 이런 앨범을 했으면 좋겠어요. (웃음) 그냥 씨X 독설 퍼부었으면 좋겠어요. [누명] 때처럼요. 무슨 말이지 알죠? 팬들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는… 그런 게 다시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 형은 사람을 아프게 하는 방법을 잘 알아요. 제가 가사에서 존나 패는 스타일이면 진태 형은 심장, 명치 조용히 찌른 다음에 걸어가는 스타일이에요. 재수 없는 강남 남자 느낌 있잖아요. 재수 없는 서울대 졸업한 강남 남자 느낌. (전원 웃음) 에픽하이(Epic High)의 “Born Hater”에서도 그러잖아요. 거기서 그런 식으로 까잖아요. ‘미안하지만 넌 타고 났어, 임마.’ 이런 식으로. ‘너는 그냥 태생부터 X신이야.’ 막 이렇게. 배운 사람 같이 얘기하는데, 기분은 제일 나쁘게 하는 거. 전 그냥 ‘이 XX놈아.’ 하는 스타일이면 진태 형은 ‘Type 1, Type 2’ 이러면서. (전원 웃음) 그 형 특유의 띠꺼움이 존나 좋아요. 제가 할 수 없는 거거든요. 전 쓰다가 열 받을 거 같아요. ‘으아!’할 거 같은데, 끝까지 쿨을 안 잃고 ‘흠…’하면서. 머리 길러 가지고… 존나 귀여운 거 같아요 그 형.






LE: 사실 [Go Hard Part.1 : 양가치]가 나오고 나서 커뮤니티에 생각보다 하드하지 않다는 글이 꽤 올라오더라고요. 그런 얘기도 어느 정도 동의하시는 건가요? 힙합 팬들은 말 그대로 힙합에서의 하드코어를 바란 것 같기도 하던데…


저는 그 팬들과 입장이 비슷해요. 진태 형 훨씬 하드하게 할 수 있어요. 씨X 하드하게 했으면 좋겠고, 만약에 다음에 가요 앨범 내면 ‘이건 가요다.’ 이런 식으로 제목을 지었으면 좋겠어요. ‘이게 가요다.’, ‘이게 발라드야, XX놈들아.’ 이런 느낌? 딱 그러고 열 트랙 나오면 멜론 1위부터 10위까지 딱 찍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랩할 때는 그냥 ‘Fuck You.’하고… 모든 곡이 시작할 때, Fuck으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LE: 조금 연결해서 이야기해보면, 산이 씨랑 매드 클라운(Mad Clown) 씨가 함께한 싱글에 “못 먹는 감”이란 노래가 있잖아요. 근데 그 곡에서 매드 클라운 씨가 “이건 발라드랩 정신이야.”라고 하잖아요. 진짜 대놓고 그 둘의 스타일을 드러냈던 곡이었던 거 같은데요. 매드 클라운 씨도 그렇지만, 산이 씨도 음악적 방향성 때문에 되게 말이 많잖아요. 그 부분에 관해 해주실 얘기도 있을까요?


전에도 얘기했지만, 산이 형이 지금 하는 음악이 힙합이라고 생각 안 해요. 들어보면 장르가 힙합이 아니잖아요. 근데 그 형이 그걸 잘한다면 뻔뻔하게 하는 게 맞는 거고, 그리고 잘해서 멜론 1위하고 돈 많이 벌면 좋은 거고요. 전 단지 그냥 이거에요. 힙합할 때는 힙합이라고 얘기하고, 록하면 록이라고 얘기하면서 편하게. 모두가 헷갈려 하는 것 같아요. 특히, 힙합 음악을 많이 안 들은 팬들 입장에서는요. ‘이게 힙합인가?’라고 다들 생각하는 것 같고… 근데 산이 형에 대해서는 제가 확실히 느낀 건데, 이거 하나는 개존경스러워요. (그 모든 걸) 이겨냈어요. (웃음) 약간 드레이크(Drake) 보는 기분이에요. (전원 웃음) 초반에 드레이크 욕 씨X 존나 먹었잖아요. 전 존나 좋아했거든요. 저 “Best I Ever Had” 듣고 세계관이 변했어요. ‘아, 힙합이 여자한테 이렇게 가사를 쓸 수도 있구나.’ 싶었거든요. 다른 건 다 ‘Bitch, Suck My Dick!’ 막 이런 건데, (드레이크는) ‘네가 최고야.’ 이러잖아요. 그때 기성 래퍼든, 신인 래퍼든 다 얘를 깠잖아요. 지금 봐요. 다 똥꼬 빨잖아요. 다 같이하려 그러고, 어떻게든 도움받아보려 그러고… 드레이크랑 산이를 비교하자는 건 아닌데, 커리어의 흐름을 보면…






LE: 어떻게 보면 비슷한데요?


네. 산이 형이 승자에요. (전원 웃음) 승리했어.






LE: 멘탈이 좋으신 거 같아요.


네. 그리고 매드 클라운 형이 제가 본 사람 중에 멘탈이 제일 센 사람 중 하나였거든요. 근데 최근에는 자신감을 잃은 거 같아서 제가 문자를 했었어요. 형이 짱이라고. 저랑 같이 한 “Gravity” 같은 곡만 봐도 형이 완전 저를 발라서 제가 다시 녹음했다고. 이런 수준으로 형은 존나 잘하는 사람이고, 옛날부터 그랬는데 뭔가 형이 자신감을 잃은 거 같다고. 다시 찾으라고 했어요. 근데 산이 형은 자신감을 안 잃잖아요. 사실 (산이 형이) 뮤직비디오에서 하는 거 전 싫어해요. (전원 웃음) 근데 본인은 자기가 멋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스타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자기가 선택하는 거예요. 스타 맞아요. 산이 형은 스타예요. (웃음)





LE: 그럼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시각도 있을 것도 같은데, 산이 씨가 음악은 그런 류도 하는데, <쇼미더머니>나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오면서 표방하는 이미지는 힙합이잖아요. 거기서 뭔가 괴리를 느낄 수도 있잖아요. 하는 음악과 표방하는 이미지가 서로 다르니까요. 힙합을 이미지로 안 끌어다 쓰면서 자기 음악을 하면 상관이 없는데,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그러니까요. 그 점에서 어떻게 보면 (힙합을)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고, 대중들이 산이라는 아티스트를 어떻게 봐야 할지 혼동할 수도 있잖아요.


맞네. 그래서 그냥 제가 아까 처음에 얘기했던 거 그대론데, ‘야, 이건 내가 분명히 얘기하는데, 내가 좋아서 하는 음악이야. 물론, 힙합은 아니야.’라는 식으로 그냥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마음이에요. 다들 그래서 좀 욕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어쨌든 이건 제 의견인데, 제가 어떻게 (누구한테) ‘야, 씨X 너 이렇게 살아.’라고 대놓고 얘기할 수 있겠어요. 그냥 그 형이 그게 좋으면 그거에 대해서 뻔뻔하면 멋있는 거예요. 절대 자기를 의심 안 했으면 좋겠어요. 기왕 그렇게 가는 거.






LE: 지금은 오버클래스가 다 뿔뿔이 흩어졌어요. 오버클래스가 재결합을 한다면서 촬영한 영상이 나오기도 했었는데, 사실은 막 딱히 뭐가 있진 않았잖아요.


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요. 웜맨 형이 힘 빠졌어요.






LE: 뭔가를 진행해보려고 하다가 도중에 그랬던 거군요.


네. ‘얘넨 안 되겠다.’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릴 버렸어요. (웃음)






- 05. 빅딜과의 격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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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는 어드스피치(Addsp2ch) 씨와의 디스전과 관련된 내용을 좀 이야기해볼 건데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버클래스가 당시 씬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런 만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을 보여주겠다는 마인드도 좀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 당시 힙합씬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여러 해프닝을 겪기도 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어드스피치 씨와 스윙스 씨의 디스전이라고 생각이 돼요. 너무 오래 전 얘기고, 또 지겨운 얘기겠지만, 디스전 벌일 때의 상황을 묘사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미니홈피로 주고받고 하다가 커졌잖아요.


네. 어드스피치 씨가 진태 형을 욕하는 글을 썼죠. 그래서 ‘아, 난 이 사람 랩 잘하는 거 전혀 모르겠는데? 씨X 발라버려야지.’ 생각하고 그렇게 한 거예요. 그리고 발랐죠. 첫판부터 개발랐는데, (반격곡이) 돌아왔잖아요. ‘으어어어~’하면서. 마초 씻으로. 그렇게 하는데, 들으면서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씨X, 더 약 올려줘야겠다.’ 생각하고 바로 다음 걸 냈는데, 그게 제목이 뭐였더라. 존나 멋있었는데.






LE: 중간에 영어 교실 스킷이 있는 “X밥”이었죠.


맞아요. 맞아요. (얇은 목소리로) “어드스피치~”라고 하는… 존나 재미있었는데 그거. 그걸로 이기고 뭐… 전 근데 (그 디스전을) 랩게임으로 생각했어요. 협박 전화 같은 게 올 줄은 전혀 몰랐죠. 오히려 저 자신한테 실망한 게 있다면 (협박했을 때) 저도 똑같이 가서 존나 팼어야 했어요. 근데 그냥 약간 쫄았죠. 어린 나이에 되게 쫄아서… 그런 식으로 흘러갔었는데, 어쨌든 이긴 건 저니까요. 전 솔직했어요. 그런 X신 같은 짓 안 했어요.






LE: 그 당시에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 커뮤니티가 굉장히 활발했어서 기억하기에는 그 사건 근처 시기를 통틀어서 가장 게시물이 많이 올라왔던 것 같아요. 막 하루에 게시물이 200개씩 올라오고 그랬던 것 같아요.


맞아요. 그때 힙합플레이야 (커뮤니티) 존나 컸었죠.






LE: 그때 진짜 힙합플레이야가 터지는 줄 알았는데, 그 당시 커뮤니티 여론 같은 것도 생각나시나요? 누가 이겼네 졌네라든가, 누가 잘못했네 아니네까지…


대강 기억나요. 근데 그보다는 래퍼들이 의견이 존나 있었잖아요. X신 새끼들. 근데 다 제가 잘되고 나서 저한테 와서 존나 똥꼬 빨았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이게 정치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다 저를 존나 깠고, 저를 매장시키려고 그랬는데, 제가 음악으로 증명해서 돌아왔잖아요. 그러니까 다 똥꼬 빨았었어요. 그런 거예요. 진짜 존나 X신 같은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 번 느꼈었고… 제 음악에 독이 많은 이유기도 해요. 그때 한 8명이 글을 썼었어요. 일일이 이름을 언급할 필요도 없어요. 걔네들은 이미 그 부끄러움을 계속 갖고 갈 거니까. 만약에 (그 사람들이) 이 인터뷰를 읽게 된다면 걔네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스스로 용서했으면 좋겠어요. 그 일에 관해서요. 저도 찌질한 짓 한 적 있으면 마찬가지고요. 본인이 본인 용서해야지. 전 어쨌든 (그 사건을 통해서) 얻을 거 다 얻었어요. 이제 와서 제 특유의 찌질함 나왔어요. 약간 이겨놓고 지랄하는 거. 이기고 집에 가면 되는데, 이겨놓고 밟는. 이건 안 해야 해요. 습관이에요. 그냥 본인들이 부끄럽다면 스스로 용서했으면 좋겠어요. 그때 저한테 뭐라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커리어를 정작 못 챙기고 있는데… 스스로 용서하길 바랄게요. 잊고.





LE: 기억하기에는 그 당시에 스윙스 씨가 빅딜를 가장 크게 지적했던 지점이 ‘갱스터가 아닌데 갱스터인 척하는 게 너무 꼴불견 같다.’ 이런 거였던 것 같아요. 리얼하지 못하다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빅딜 레코즈 이후 빅딜 스쿼즈(Big Deal Squads)로 넘어가서도 그랬다고 생각하시나요? “Class Is Over” 라든가…


아, 걔넨 뭐, 그런 뮤직비디오도 그렇고… 뭐랄까, 힙합이 그런 면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까 (인터뷰 전에) 엘엘 쿨 제이(LL Cool J) 보고 있었는데, 그 사람 옛날 거 보면 사랑 노래 존나 많아요. ‘나 너한테 잘해줄게.’ 막 이러면서 (웃음) 달콤하게 말하는데… (그들이 하는 음악이 힙합의) 다라고 생각하는 게 좀 아쉬웠어요. 근데 또 요즘 보면 트랩 Shit이랑 약간 막 ‘으렐렐렐렐’ 이렇게 못 알아 듣는 랩을 하는 것만이 진짜 힙합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보이고… 어릴 때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진짜 싫었어요. 진짜 죽이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왔다 갔다 해요. ‘내가 상관할 바야? 니네가 그렇게 하는 게 나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라고도 생각하고, ‘아, 여전히 싫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는데… 그냥 저는 안 그러려고요. 저는 최대한, 너무 ‘Band Wagon Shit’ 안 하려고요. 물타기 비슷하게. 이게 유행이면 이거 좇고, 저게 유행이면 저거 좇고… 음악 안에서 저를 더 찾으려고 노력해볼게요. 그런 태도를 가지는 게 가장 나은 거 같아요.






LE: 근데 요즘은 또 단적인 예로, 릭 로스(Rick Ross) 같은 경우에는 과거에 교도관을 한 적이 있었는데, 본인이 먼저 마피아 두목이라는 컨셉을 던져 놓고 마피오쏘 랩을 했잖아요. 그러고 나서 거기에 맞춰서 본인의 커리어를 키워나갔잖아요. 어떻게 보면 되게 리얼하지 못한 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그런 식으로 기믹을 먼저 만들어놓고 거기에 본인의 상태를 맞춰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많은 래퍼를 쭉 봐왔잖아요. 그 왜 바비 슈멀다(Bobby Shmurda) 있잖아요. 바비 슈멀다는 진짜 사람 죽여서 감방 갔잖아요. 음악은 음악의 영역대로 행동하는 게 또 좋은 거 같아요. 되도록 자기 실제 삶을 이야기하면서 리얼한 게 좋은데… 릭 로스 저 개팬이거든요. 근데 그 사건은 너무 옛날 일이잖아요. 근데 거기에도 안 무너지고 뻔뻔하게 가는 거 보고 전 존나 개박수쳤어요. 저는 나중에 미국 가는 게 꿈인데, 저는 그 분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어요. 메이바흐 뮤직 그룹(Maybach Music Group)에. 존나 멋있겠다 (싶었죠.) 릭 로스 형, 존나 멋있어요 전. 그래요. (과거 사실이) 걸렸어요. 그럴 때 보통사람이면 기어들어가는 게 정상인데, 이겨내잖아요. 저는 그런 승리하는 사람 보면 존나 멋있어요. 50 센트(50 Cent)와의 마찰이 계속 있었잖아요. 근데 릭 로스는 안 무너지고 계속 하잖아요 자기 거. 그것도 존나 멋있고요. 다시 말하지만, 부처 모드로 얘기해서 남들이 그러든 말든. 이걸 계속 제 뇌에 심고 있어요. 아까도 막 감정적으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했었잖아요. 그럼 전 또 바로 후회해요. ‘왜 자꾸 내가 내 수준을 낮추는 거지?’ 싶어서… 근데 그게 저니까. 전 그냥 제 갈 길 갈래요.






- 06. 말장난으로 업그레이드를 부르짖다 -


업그레이드 자켓.jpg

LE: 디스전 얘기는 너무 많이 했고, 웹상에 자료가 많으니까 이렇게 간단히만 얘기하도록 할게요. 계속해서 2008년 얘긴데요. [Upgrade]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해요. [Upgrade] 안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곡으로는 “Upgrade”가나다순 두음법이라든가, “Punch Line 놀이정도가 손에 꼽히는 편인데요. 근데 그 트랙들 말고도 다른 수록곡들도 있고, 또 그 트랙들이 다양한 무드를 담고 있잖아요. 일단은 [Upgrade]를 만들 당시에 마인드셋이 어땠는지가 궁금해요. [Upgrade]로 랩적인 측면에서 씬의 수준을 높여주겠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자신이 구현해낼 수 있는 다양한 무드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단순했어요. 진짜 그냥 내가 짱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씬을 바꾸고 싶었고, 그 두 가지 마음이 제일 컸어요. 별거 없었어요 진짜로. 그때는 단순하고, 어리고, 순수했어요.

 





LE: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Upgrade]에 뭔가 능글맞거나 부드러운 노래가 좀 있는데요. “I Wanna”라든가, “I’ll Be There”도 그렇고요. 감성적이고 따뜻한 그런 게 있잖아요. 근데 그런 부드러운 무드의 트랙을 그때만 하셨던 게 아니고 지금도 앨범을 만들 때마다 수록하시잖아요. 그런 걸 스윙스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음악적 DNA 중 하나라고 보면 되겠죠? 본인은 그런 부분이 자신의 음악 안에서 비중이 크다고 생각하시나요?

 

. 전 누구랑 헤어질 때 노래가 되게 잘 나와요. 존나 외로워지면서여려가지고. 아까 제가 인터뷰 초반 때 얘기를 많이 해서 얼추 느끼시겠지만, 전 누구랑 헤어지면 감성이 존나 예민해져요. 그래서 “I’’ll Be There”도 실제 이야기고, “듣고 있어?”도 실제 이야기에요. 그런 감성 좋아요. 그냥 좋아요. 사람이 다 그렇잖아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음악을 들어보면, 발라드 감성이 없는 문화권이 없잖아요. 그게 인간인 거 같아요. 자신의 쪽팔리거나 슬프거나 우울한 그런 걸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 거 같아요. 그건 진짜 저에요. 너무 좋아요. 그런 거 쓰는 거.

 





LE: “I’ll Be There” 같은 경우에는 기타로만 편곡해서 박재범(Jay Park) 씨와 함께하시기도 하잖아요. 일단 그 당시에 스윙스 씨가 박재범 씨와 연이 있다고 하기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게 없었는데요. 2011년이 박재범 씨가 한창 솔로 활동을 시작했던 시기긴 했지만요. 올해 나온 [WORLDWIDE] SNS로 샤라웃해준 걸 보니까 연이 나름 깊은 것 같기도 하고, 박재범이란 아티스트, 사람 자체도 리스펙하는 마음이 있으신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제가 안 그래도 이 인터뷰에 박재범 씨 얘기가 절대 안 나올 거로 생각했는데, 나오니까 신기하네요. 전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제가 본 대표 중에 제일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저 다음으로. 자기 가족을 위해 희생해요. 존나 희생해요. 저 진짜 편하게 까발리는데, 우리나라 대표 중에 진짜 한 90%는 그냥 쓰레기예요. 저도 많이 겪었는데, 어떻게든 얘를 빨아먹을 생각을 하지, 얘를 발전시켜주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없어요.

 





LE: 엔터테인먼트 계 안에서 말씀하시는 거죠?

 

. 근데 박재범 씨는 안 그래요. 박재범 씨는 진짜 자기 사람들을 챙겨주는 게 너무 보여요. 사람들 목걸이도 맞춰주고, 자기 앨범에 피처링 존나 많이 시키고허슬하고요. 가사에 쓰잖아요. 나 좀만 고생하면 된다고. 이번 앨범에 그런 가사가 있는 걸 보고 어떤 마음인지 딱 보이더라고요. 항상 그게 보였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정치를 안 해요. 우리가 아까 말했던 치사한 정치 안 해요. 가요계에서든, 힙합 씬에서든 파워가 있잖아요. 그럼 얼마든지 자기가 가진 힘을 악용할 수 있었는데, 오로지 정공법인 게 느껴져요. 이번 앨범도 그랬고요. 치사한 얘기 안 쓰고, ‘그냥 너네 다 좋고, 다 리스펙해. 나랑 같이 하자.’난 내가 내 랩 발전시킬 거야.’ 이게 딱 보여요. 그래서 제가 본 우리나라 대표 중에 제일 멋있는 거 같아요. 랩 는 거 봐요. 이제는 완전 탑 급으로 올라왔잖아요. 저는 그래서 샤라웃한 거예요. 너 같은 사람은 유명해져야 해. 너 같은 사람은 돈 벌어야 하고. 이상한 건 아직도 서로 존댓말 해요. 아직도 존댓말하고, 서로 안 만나려고 해요. 존나 웃겨요. 파티에 놀러 오라고 하면 ! 갈게!”라고 하고 안 가고. 서로 그런 관계. 근데 그냥 멀리서 리스펙하는 그런 느낌인 거 같아요. 재범 씨는 사람 자체가 괜찮아요.

 





LE: 다시 [Upgrade] 얘기로 돌아오면요. 수록곡 중에 “Punch Line 놀이에서 피처링 래퍼 중에 실제로 펀치라인을 제대로 쓴 사람은 없잖아요. 스윙스 씨 한 분만이 그렇게 했고요.

 

맞아요. 근데 참여진을 선정할 때, 마음먹으면 쓰겠다 싶은 사람만 골랐었어요. 그 비트 웜맨 형이 줬었는데, 그 형은 저랑 딜 쳤었어요. 비즈니스 잘한다니까요. “Punch Line 놀이라는 노래 만들려고 쓰고 싶은데 달라고 했는데, 돈이 없으니까 싸게 해달라고 했었어요. 그러니까 웜맨 형이 스윙스야, 돈 주지 말고 대신 나 피처링시켜 줘.”라고 해서 계약이 성사됐었어요.

 





LE: 사실 거기서 웜맨 씨 랩이 아직도 역대급 이상한 랩이라고 힙합 팬들이 많이 얘기하는데요. 처음 들었을 때는 어땠나요?

 

아니에요. 웜맨 형 멋있어요.

 





LE: 계속해서 2008년 얘기를 이어가면, [#1]이라는 믹스테입이 나오잖아요. 이때가 사실 한국힙합 씬이 믹스테입 형태로 결과물을 발표하는 게 트렌드가 될 정도였던 시기였었어요. 그래서 믹스테입 발표한 4명의 래퍼가 함께해서 공연도 하고 그랬던 걸로 기억해요.

 

맞아요. 그 날도 기억해요.

 





LE: 사이먼 도미닉(Simon Dominic) 씨가 일주일 만에 3천 장 팔아치우고 그러셨었는데, 본인도 당시에 그렇게 믹스테입 열풍이 부는 흐름을 같이 타면서 새 믹스테입을 냈던 건지 궁금해요. 근데 사실 믹스테입이란 건 어떻게 보면 래퍼들이 되게 습관처럼 내는 거잖아요. 습작, 연습작이란 개념도 있는데, 그냥 그런 흐름과는 상관없이 또 하나 내보는 식이었나요?

 

일단 제가 시작한 사람 중에 하나에요. 믹스테입 내는 걸요. 그렇기 때문에 (흐름에 따라 낸 건) 아니고 일단 믹스테입을 내면 뭐가 좋았냐면요. 외국 비트를 가져다가 만들어서 팔 수 있었어요. 그걸 CD로 팔았고. 그 당시에는 법에 저촉되지 않았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변했었죠. 힙합플레이야 쪽에서 더 이상 유통을 못 해주겠다고. 그래서 그때부터 대거 안 하게 됐죠. 사실 믹스테입은 남의 비트 위에 하는 게 묘미인데그렇게 해서 그 시장은 죽었어요.

 





LE: 근데 기억하기에는 한국힙합 씬에서 믹스테입을 제일 먼저 발표한 사람은 라마 씨 아닌가요?

 

라마 형이 저한테 믹스테입 내라고 했었어요.

 





LE: 근데 본인도 그전까지도 믹스테입이라는 개념은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요?

 

. 알고 있었는데, (랩을) 시작한 지 너무 조금 되어서 그거 하나 내는 게 저한테는 컸었어요. ‘, X 낼까? 내도 되나?’ 이런 느낌이 컸어요. 지금은 그냥 우습죠. ‘, 맞아. 존나 재미있는 거지.’ 싶은데, 그때는 두려움이 컸었어요. 아마 라마 형이 처음이었죠. 믹스테입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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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말씀하신 대로 당시 믹스테입 판매가 해외 음원 유통사, 배급사 쪽에서 요청이 들어오면서 중단이 됐었는데요. 외국 비트를 활용해서 만든 믹스테입에 한해서요. 사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가져다 쓰는 게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되게 많았었는데요. 인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런 것들이 잘못되었던 거라고 생각을 고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믹스테입 배포에 관해서는 외국의 선례도 많고 한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예전에도 얘기했었는데, 제 비트 다 갖다 써서 믹스테입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상관 안 해요. 음원으로만 안 팔면. CD로 내는 건 난 좋아요. 저도 그랬기 때문에. 애들이 만약 제 비트를 좋다고 느꼈을 때를 전제로 깔고 이야기하는 건데, 좋으면 그냥 썼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도 제가 존경하는 래퍼들 거에 했는데, 그 사람들이 설마 저를 고소하겠냐는 생각이 있어요. 뒤늦게 알게 된다면. 그 힙합 초반의 약간의 불법적인 허슬 있잖아요. 전 그거 존나 멋있다고 생각해요. 트렁크 뒤에서 믹스테입 팔고, 경찰 뜨면 문 닫고 바로 가는 거. 그거 은근히 동경해요. 은근히가 아니라 엄청. 지금 세대의 팬들이나 래퍼들이 그 당시의 저나 사이먼 도미닉이나 베이식, 이센스(E-Sens) 이런 사람들을 이해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한테 그것만이 답이었었어요.

 





LE: 경제적인 측면에서 말씀하시는 거죠?

 

. X 공연 한 번 하면 10만 원 받으면 존나 고마웠다니까요. 2007, 2008년에 제가 공연이 한 달에 4, 5개씩 있었는데, 그때 페이 없었어요. 페이 없는 게 당연했었어요.

 





LE: 뒤풀이하면 다행인 그 정도였다고 알고 있어요.

 

. 뒤풀이에서 소주 한잔 하는 거. 그냥 그게 다였어요. 저희 때는 그랬으니까. 기억나는 게요. 저희가 만 원짜리를 100만 원어치를 고무줄로 동그랗게 묶어서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그랬어요. (뭉치가) 그거 하나뿐인데. “Money.” 막 이러면서. 지금 생각하면 귀엽네요.

 





LE: 근데 요즘은 풍토가 좀 바뀌었잖아요. 신인들이 믹스테입 낼 때, 무료 공개해서 홍보하고 그러는데,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그런 흐름이랑 상관없이 본인이 아까 말씀하셨던 내용 중에 불법적인 게 약간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게릴라 CD 판매 정도는 허용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되게 예민한 문제인 거 같아요. 노창 같은 경우에는 자기 비트 죽어도 인스로 안 내줘요. 저는 처음에 그걸 전혀 이해 못 했어요. “, ? 니가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지.”라고 하면서. 무슨 말인지 알죠? 어린 애들이 니 비트에 얼마나 랩하고 싶겠냐고. 근데 (노창은) 랩을 못하는 사람이 자기 비트에 랩을 하는 건 못 듣겠다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제가 감히 어떻게 그걸 강요해요. 걔 아니더라도 남한테. 제 생각은 뭐냐면, 웬만하면 하게 냅두자는 주의에요. 아니, 냅두자는 정도가 아니고 하라는 정도에요. 다른 사람이 다르게 생각하는 것 역시 존중은 해요. 누구는 자기 것이 너무 소중할 수도 있으니까요. 관련된 얘기인데, 제가 신형원 선생님의 개똥벌레라는 명곡을 샘플링하고 싶었었어요. 그래서 그 곡의 작곡, 작사를 하신 한돌 선생님한테 전화를 했었어요. 절 소개하고,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이렇게 잘라서 샘플링하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엄청 당황하시면서 곡이 다칠 우려가 있으니까곡이 다친다는 표현을 썼어요. ‘생각 좀만 해볼게, 젊은이야.’ 이런 식으로 얘기했었어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전화가 왔었어요. 미안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곡이 다칠 것 같다면서 거절하셨는데, 그때도 진짜 많은 걸 느꼈었어요. 진짜 이분에게는 (그 곡이) 존나 소중한 거구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당연히 당연히 물러나는 거긴 하지만, 엄청 존중하는 마음이 오히려 생기더라고요. ‘이렇게까지 자기 음악을 좋아할 수 있구나.’ 하면서요. 멋있었어요. 그렇게 다들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해심이 생기네요.

 





LE: 사실 한국 뮤지션에게 샘플 클리어를 받는 게 어쨌든 가까운 데에 있으니까 그래도 직접 허락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쉽잖아요. 근데 피타입(P-Type) 씨 같은 경우에도 올해 나온 앨범 [Street Poetry]반환점이라는 노래의 비트가 산울림 밴드의 곡을 샘플링한 거여서 김창완 씨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산울림 밴드의 드러머인 아버지를 통해서요. 근데 그런 원로에 가까운,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샘플링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시는 와중에 허락을 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하여튼, 샘플 클리어 자체는 되게 민감하실 거 같아요. 한국이든, 외국이든 말이죠. 지금도 샘플링한 비트를 쓰시지 않나요? 샘플 클리어 같은 게 저스트 뮤직 차원에서는 어떻게 해결되는지 좀 궁금해요.

 

. 다 일일이 이메일 보내고 전화하죠. 그렇게 하는 게 일반적인 거죠. 근데 노창 같은 경우에는 샘플을 아예 안 하려고 해요. 저도 그냥 그렇게 얘기했어요. ‘’, 이거 존나 복잡하고 피곤한데 하지 말자.’라는 식으로요. 가끔 아예 연락을 씹기도 해요. 3주째 전화를 안 받을 때도 있고요. 이메일을 보내면 그쪽 회사에서 이메일을 하나 보내는데, 그럼 언제 전화를 해달라고 해요. 근데 그때 전화를 계속 안 받는 경우도 있어요. 근데 뭐, 그런 건 확실히 해야 하니까저는 개인적으로 곡을 받을 때, 샘플 없었으면 좋겠어요. 물어봐요. “혹시 이거 누구 거 샘플링했어?”라고. 맞다고 하면 그냥 뺸찌. 이제는 싫어. 생각해보세요. 비트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쓰려고 했는데, 원작자한테 전화해야 하는 과정에서 이 사람이 존나 시간 끌다가 결국에는 싫다고 하면 이 곡이 얼마나 아까워요. 그 에너지까지 생각하니까 그냥 안 받고 말아요. 저는 그게 마음 편해요. 제일 싫어하는 게 그런 복잡한 일. 사무적인 일.

 





LE: 근데 노창 씨는 비트 스타일을 보면, 샘플을 되게 잘게 쪼개서 쓰시는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그럴 때는 불법이 아닌 경우가 많죠. 걔는 뭐, 별 걸 다 써요. 누가 그냥 유투브에서 쌍욕하는 걸 “Fuck”도 아니고 “Fu” 그런 소리를 샘플링하기도 해요. 별 의미가 없는 거.

 





LE: 알아듣기도 힘들 정도의 그런 거군요.

 

.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 (그럴 때는) ‘얜 왜 이렇게 힘들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게 본인 스타일인가 봐요.






- 07. 혼란 속의 스윙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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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또 시간을 건너뛰어볼게요. 2008년에서 2009년으로 넘어갈 건데요. 기억하기에는 2009년 즘에 일리스트 컨퓨전(Illist Confuson, 이하 I.K.)에 영입되셨던 거로 기억해요. 그리고 업타운(Uptown)의 새 멤버로도 활동을 시작하시죠. 일단은 그 두 집단에 몸 담게 된 계기를 하나씩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I.K.는 센스랑 되게 친하게 지내고, 락키엘(Rocky L) 형도 친하고 하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술자리 나가고 하다가 제가 또 제안했어요. “형들, 나 I.K. 들어가고 싶어요.”라고. 그러니까 “오~”하면서 신났던 분위기가 기억나요. ‘아싸, 이제 스윙스 왔다.’ 이런 분위기 있잖아요. 되게 행복했었어요. 맨날 같이 뭐 먹으러 다니고, I.K. 잠바 맞춰 입고, 귀엽게 <파워 레인저>처럼 홍대 걸어 다니고… 즐거웠었어요. 좋은 추억이었어요.






LE: 업타운에서 활동을 마치고 나서는 단독으로 ‘Freedom’ 콘서트를 여셨잖아요. 그때 [Punch Line King Ⅱ]가 당시 공연장에서 무료로 배포한 믹스테입 이었잖아요.


맞아요. 웜맨 형 아이디어였었어요. “지훈아, 이렇게 해보는 거 어때?”라고 해서 “우와, 괜찮다.”라고 하고 했었어요.






LE: 그때 그 공연을 갔었는데, 그때 공연 셋리스트가 좀 말이 안 됐었어요. ‘Lyrical Monster’ 시리즈였는지, 당시에 공개하셨던 300 마디 랩이었는지 기억은 정확하게 안 나는데, 아무튼 중간중간 쉬는 타임 대신 그 랩들을 몇십 마디씩 끊어서 소화하셨던 거로 기억해요. 그것도 한 토시도 틀리지 않고요. 근데 그게 뭔가 본인이 가지고 있었지만, 막혀 있어서 뿜어내지 못했던 에너지를 터뜨린다는 느낌이었던 거 같아요.


맞아요. 느꼈구나. 저 그때 존나 행복했었어요. 그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존나 너무너무너무너무 행복했어요. (공연을 하면) 표 팔리는 현황을 볼 수 있잖아요. 처음부터 막 300장 팔리니까 이걸 돈으로 계산할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나 그럼 2000만 원 중에 얼마 갚는 거지?’ 생각하면서 막 개감사했어요. 그렇게 태어나서… 그때 진짜 너무 힘들었었는데… 그날 소울 컴퍼니(Soul Company)가 레이블 공연을 열었었거든요. 근데 그쪽도 매진되고, 저도 매진되고 그랬었어요. 제가 키비(Kebee) 형한테 그랬었어요. “형, 나 소울 컴퍼니랑 경쟁하기 싫은데, 내가 아직 밀리는 것 같은데…”라고. 근데 매진되고. 아무튼, 존나 행복했어요. 이제 살 수 있겠다 싶었고, 제가 음악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고, 이게 생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때 제대로 느꼈어요. 그때 존나 좋은 날이었어요. 진짜로.






LE: 그때쯤이 더 게임(The Game)이 300 마디 랩을 하고, 릴 웨인(Lil Wayne)도 몇백 마디를 한꺼번에 하면서 그런 게 트렌드가 되는 시점이었잖아요. 스윙스 씨도 그쯤에 300마디짜리 랩을 한 번에 소화한 곡을 공개하고, “500 Bombs”도 발표하셨던 거로 기억해요. 그냥 단순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나요?


그냥 그런 강박이 있었어요. 좋은 강박인 것 같은데, ‘얘가 이런 거 낼 때 난 뭐 하고 있지?’ 이런 거 있잖아요.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존나 컸던 거 같아요. 그게 제일 컸었고… “500 Bombs”를 내고 나서 이걸로는 뭔가 좀 부족해서 1000 마디를 하려 그랬는데, 다 써놓고 녹음 다 해놓고 존나 구리게 나와서 그냥 안 냈어요. 저 웬만하면 구려도 내거든요. 심지어 저는 (사람들 반응이) 보여요. 사람들 반응이 보이는데도 제가 너무 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웬만하면 내는데, 1000마디짜리는 그냥 안 냈어요. 그만큼 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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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근데 또 “500 Bombs”도 사실 얘기가 많았었어요. 퀄리티 자체가 뒤로 가면 갈수록 지겨운 감도 있고, 가사적인 측면에서도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요? 이런 얘기도 있었는데, 그런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전혀. 그냥 최고였고, 개쩌는 거였다고 생각해요. 그때 래퍼들의 반응이 기억나는데, 다 트위터에서 존나 샤라웃했었어요. 사이먼 도미닉, 도끼가 자기 한 번도 안 끊고 들었다고. 모르겠어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라고 하겠는데, 전 존나 좋았어요.






LE: 딥플로우 씨는 인터뷰하면서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외국의 경우에는 예를 들어 릴 웨인이 한 마디를 뱉으면 그 한 마디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될 정도로 딱딱 대입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해도 돈이 쉽게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다들 그 정도로 결과물을 많이 내지 않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런 경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맞아요. 보상이 없으니까요. 그게… 근데 그렇게만 생각하면 너무 처절해지지 않을까요. 너무 힘 빠지고. 그냥 해야죠. 자기가 즐거웠던 마음을 잊으면 안 되는 거 같아요. 저도 가끔 어느 순간에는 돈만 생각하고 곡을 냈었는데, 그런 곡들은 결국 오래 못 듣더라고요. 반대로 돈을 많이 못 벌 거로 생각하고, 곡을 힘 빠진 채로 내면 그것 역시도 본인도, 팬들도 안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근데 항상 영혼을 담아 했던 노래들은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더라고요. 그것 중 하나가 “Punch Line 놀이”, “듣고 있어?”. “500 Bombs”는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까 됐고… 또 하나 있는 게 “황정민”. 전 그때 진짜 개빡쳐서 낸 거였거든요. 사람들이 난리 났었잖아요. 영혼으로 해야 해요. 최대한.





LE: 이제는 아까 잠깐 얘기가 나왔던 I.K. 얘기를 다시 해볼게요. 지금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 있던 크루 같기도 해요. 당시에 KMTV인가, 방송을 통해서 나갔던 프리스타일 랩을 주고받는 영상도 되게 유명하잖아요. 그때 이센스 씨가 같이 영입이 되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센스가 저보다 먼저였을 거예요. 그 다음에 저였어요.






LE: 근데 찾아보니까 그때 기사에는 같이 영입되었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하여튼, I.K. 같은 경우에는 사실 어떤 다른 조직적인 활동이 있진 않았잖아요. 힙합 팬들에게는 그냥 단순한 친목 위주에다가 중간에 급작스럽게 와해된 이미지가 큰데요. 근데 실제로는 어땠는지가 궁금해요. 2011년에 해체하기까지의 과정.


가장 큰 이유는… 이유가 뭐였더라. 일단은 다 각자 바쁜 사람들이고, 특히 슈프림팀(Supreme Team)이 그때 한창 바빴어요. 그래서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LE: 별다른 이유가 딱히 없을 정도였군요.


네. 그냥 딱히 없었어요.






LE: 그럼 그때 I.K.를 하면서 빈지노(Beenzino) 씨를 처음 본 건가요?


맞아요. 그때 처음 봤고, 지금이랑은 너무 다른 사람이었죠. 그때는 되게 귀여웠거든요. 술 절대 안 먹으려 그러고, 술자리에 자꾸 부른다고 짜증 내는 그런 귀여운 친구였는데… 그때는 (지노가 크루 안에서) 저랑 유일한 서울 사람이었어요. 나머지는 다 경상도 사람들이었죠. 장난도 많이 치고 그랬는데, 추억이 많네요. 아쉬운 건 지노가 많이 바빠졌잖아요. 저도 그렇고. 음악적 방향도 많이 바뀌고. 옛날에는 걔랑도 진짜 추억이 많았어요.






LE: 지금처럼 클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셨나요?


네. 다 예상했죠. 빈지노는 그렇게 될 거라고 다 예상했었어요. I.K.에 있던 사람 중에 안 클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던 거 같아요. 다들 폭발력 있고, 자기 소울이 강한 사람들이었어요.






LE: 그때부터 또 제이통(J-Tong) 씨와의 인연이 시작되는데요. “황정민”에서도 완전 애증이라고 이야기하시잖아요. 애증의 관계라고 가사에 나오는데, 지금은 어떠신지 궁금해요. 제이통 씨가 최근에 아예 독립 형태로 본인의 작품을 발표하셨잖아요. 그런 최근의 활동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제이통. 그냥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하는 음악 해서 돈 많이 벌고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그게 다에요.






- 08. It Just, Just -


저스트 뮤직 구 로고.png

LE: 이제 저스트 뮤직 초기 얘기로 넘어갈 건데요. 일단 저스트 뮤직이 공식적으로 생긴 게 어느 시점인지 궁금해요. 2009년이라고 알고 있긴 한데요.


제가 뭐, 노래에서 ‘Just Music’이라고 막 외치고 다녔었는데요. 사실은 누구 들어와 있지도 않으면서요. 근데 조금 지나서 처음에는 제이통도 있고, 영쿡 형, 싸이코반(Psycoban).






LE: 단아 씨, 타이라(Tyra) 씨…


맞다. 단아랑 타이라 씨도 있었죠. 아, 델리 보이(Delly Boi)도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한 명도 없네요. (웃음) 그만큼 제가 못했던 거예요. 저는 인간적인 리더십은 꽤 좋은 편이에요. 근데 비즈니스적인 리더십은 그 당시에는 그냥 빵점.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 그렇게 됐고, 기리보이만 남았었어요. 그래서 제가 기리보이 잡고 씨X 우리 일어서자고. 형이 최선을 다할 테니까. 너무 고마웠던 게 기리보이가 그냥 버릴 수도 있었는데, 걔는 티는 안 내지만 제가 본 사람 중에 의리 탑 급이에요. 걔는 진짜로 중요할 때만 나타나요. 군대에서 제가 너무 힘들 때, 맨날 면회 와주고. 저스트 뮤직 사람들 다 와주긴 했었는데… 걔는 맨날 안 그런 척을 해요. “아, 스윙스 형. 답답해. 이상해요.” 이 지랄해도  맨날 찾아와요. 그렇게 기리보이가 있는 상태에서 기리보이가 노창을 추천했었어요. 자기 초등학교 동창이라면서 한 번 들어보려냐고 하더라고요. 전 듣고 깜짝 놀라서 그냥 듣자마자 전화해서 “나 스윙스인데, 우리 회사 들어올래?”라고 했는데, (바로) “그래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났죠. 얼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몰랐어요. 사진도 없었고. 만나는데, 걔는 또 술을 안 먹고 검은색 큰 백팩에 물통 이만한 걸 들고 다니더라고요. 술집에서 그거 막 꺼내고. 이상했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러다가 친해져서 같이 하게 됐어요. 그러고 나중에 누가 들어왔더라. 






LE: 블랙넛 씨인가요?


블랙넛은 제가 또 전화해서 “야, 나 스윙스인데…”라고 하니까 “누구?” 이러더라고요. 스윙스라고 하니까 안 믿는다고, X까지 말라고. 막 이러는 거예요. ‘너 재현이지?’ 이런 식으로 얘기했었어요.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아무튼 그래서 제가 “나 재현이 아니고 스윙스야, 이 새끼야.”라고 하니까 “형, 랩 한 번 해보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전원 웃음) 그 새끼도 성격 존나 골 때린다니까요. 근데 그냥 했어요. 존나 진지하게 했어요. 그러니까 “맞네요.”라고 하는 거예요. 너 우리 회사 오라고 하니까 좀만 생각한다고 했었나 그랬을 거예요. 결국에는 걔도 들어왔는데, 그 당시 블랙넛이랑 지금의 블랙넛이랑 비교하면 안 돼요. 그때는 진짜 기죽어있었어요. 제가 전주까지 내려가서 술 먹이면서… 저기 전주 시골에 있는 정자 아래에서, 한옥 마을 옆에. 거기서 진짜 밤새 설득한 적도 있었어요. 넌 할 수 있다고. 그냥 개쩌는 사람이라고. 넌 예술가라고. 그리고 공연할 때마다 매번 전화해서 서울 올라오라고 하고. 맨날 거짓말하고, 핑계 대고 그랬었어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그 와중에도 걔는 저를 저 못 믿은 거예요. 결국에는 제가 목덜미 붙잡고 끌고 가는 느낌으로 했더니 지금 봐요.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인정 안 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노창도 처음에는 엄청 기죽어있었어요. 기죽어 있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제일 컸던 건 약간 혼란스러워 보였었어요. 지금 개쩔잖아요. 박재범 앨범에서 제일 쩔어줬던 거 같은데… 존나 멋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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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러다가 러비(Lovey)라는 여자 싱어, 너무 좋아하는 동생인데요. 걔 오빠인 브라더수(BrotherSu)랑 같이 술을 마신 적이 있어요. 같은 동네 은평구 살았었거든요. 그러다가 “요즘 랩 누가 잘해?”라고 물어보니까 “씨잼이요!”라고 바로 그러더라고요. 영상 바로 보여달라고 해서 보니까 조그만 애가 윗통 벗고 패기가 쩌는 거예요. ‘이 새끼 뭐지? 랩 존나 잘한다.’ 싶어서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니까 알았다고 하고 만났더니 절 엄청 견제하더라고요. 어떤 견제냐면, 이 사람에 대한 팬심은 있지만, 인간 문지훈은 약간 무서운 사람. 정치가. 제가 평판이 그런 게 좀 있어요. 키보(Keebo)라는 친구랑 같이 나와서 절 엄청 조심스럽게 대하더라고요. 편하게 얘기했어요. 저 우회해서 말하는 거 안 좋아하니까요. “야, 우리 회사 들어와.”라고 하니까 생각해본다고 하고 나중에 거절했었어요. 다시 만나자고 해서 우리 회사 존나 좋다고, 너 씨X 나랑 함께하면 우리 존나 세상 잡아먹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근데 또 뺸찌 먹고. 세 번째 만날 때였나, 결국 그때 같이 하게 되더라고요.






LE: 그 유명한 삼고초려 일화군요. (웃음)


씨잼 지금 봐봐요. 꽃 피웠잖아요. 한때 되게 걱정 많이 했었는데… 아, 저스트 뮤직 멤버 중에서 <쇼미더머니> 나와서 그게 오히려 독이 됐던 사람인 거 같아요. 저는 <쇼미더머니> 나오고 나서 다시 행복을 찾았거든요. 바스코(Vasco) 형도 마찬가지인 거 같고, 기리보이도 마찬가지고요. 근데 씨잼은 기가 많이 죽어 있다가 최근에 터진 것 같아요. 너무 좋아. 그렇게 씨잼을 영입하고 나서 마지막에 바스코. “바스코 형, 만납시다.” 했더니 “그래.”하고 강남 갔더니 “왜, 무슨 일이야? 밥 먹자.”해서 밥 먹고 “형, 우리 회사 들어올래요?”했더니 바로 그러자고. 그러고 들어왔어요. 이제 새 멤버 있거든요. 곧 밝힐 건데, 아주 깜짝 놀랄 거예요. X되는, 진짜 개 멋있는 사람이에요.






LE: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람인 건가요?


이미 꽤 유명해요. 근데 랩만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와, 씨X 개쩐다.’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LE: 발표는 언제쯤 나는 건가요?


모르겠어요. 지금 아직 (날짜를) 못 잡았어요.






LE: 일각에서는 슈퍼비 씨가 될 거라고 예상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냥 미리 얘기하자면, 슈퍼비는 우리 회사 아니고요. 이미 다른 회사랑 계약했어요. 슈퍼비는 제가 지금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아니에요. 걔는 너무 어리고요. 제가 기리보이, 노창, 씨잼, 블랙넛까지, 지금은 조금 나이 먹었지만, 그때는 어렸던 애들이랑 함께 했었는데, 지금 제 상황에서 또 어린 친구를 받아서 곧게 자라게 할 자신이 없어요. 지금은 제 그릇이 안 돼요.






LE: 길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이어 해주셨는데, 다시 돌아오면 저스트 뮤직이라는 레이블 이름은 그냥 심플하게 지은 건가요?


네. 그냥 음악. 그냥 음악이고, 제 영어 이름이 또 조나단 문(jonathan Moon)이거든요. 그래서 JM도 있고.






LE: 그렇게 ‘Just’를 붙여서 만든 게 사실 저스트 뮤직 말고도 저스트 잼(Just Jam)도 있고, 저스트 피자(Just Pizza)도 있잖아요. 


맞아요. 저스트 잼은 안 한 지 오래되었네요.






LE: 그 두 개가 시작되었던 시기가 저스트 뮤직이 시작됐던 시기와 거의 비슷한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 ‘Just’라는 키워드를 단순히 런칭한 레이블 하나에만 쓰려고 했던 게 아니고 뭔가 독자적인 브랜드를 구축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보이기도 했어요. 베이스는 음악인데, 라이프스타일로까지 영역을 확장해서 ‘내 라이프스타일은 이런 거야.’라고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라이프스타일?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다 하고 싶었어요. 다 하고 싶었는데, 비즈니스적 머리는 아예 없으니까 그냥 다 말아먹었죠. 지금은 또 새롭게 뭘 시작하고 있어요. 곧 볼 수 있을 거예요.






LE: 그것도 ‘Just’로 시작하는 건가요?


네. 두 개.






LE: 아, 두 개나 되는군요. 음악하고 상관없는 것들인가요?


잠깐만요. 하나는 상관있고, 하나는 상관없어요.






LE: 그것도 비공개인가요?


네. 비공개에요. 제가 예전에 입이 너무 싸가지고…






LE: 그래도 하나 궁금한 게 음식 쪽 분야에 하나 있나요?


그것까진 얘기해드릴게요. 아니에요. 근데 나중에 저 존나 크게 저스트 피자 할 거예요. 자존심을 허락을 안 해요.





LE: 저스트 피자 관련해서는 그런 루머가 웹에 있더라고요. 배달이 너무 느려서 망했다고… (전원 웃음) 그 당시에 경쟁 업체가 셌다든가, 기타 등등의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네. 이유가 많았는데, 일단 첫 번째로는 그 당시에 제가 그런 걸 할 그릇이 아니었고요. 맛은 좋았어요. 맛은 좋았는데, 자리가 최악이었어요. 그거에 대해서 확실히 느꼈어요. 그 어떤 지하철역도 안 가까웠고, 동네도 완전 외곽 쪽이었고요. 여러 가지 이유가 더 있는데, 결국에는 제가 잘못했기 때문에 안된 거였죠.






LE: 개점하셨을 때는 당연히 업타운 이후였겠네요.


네, 맞아요. 업타운 이후에 열심히 돈 모아서…






LE: 혹시 저스트 피자 때문에 날린 게 많았나요?


아니에요. 얼마 안 돼요. 얼마 안 되는데, 멘탈적으로 망했었어요. 왜냐하면, 저랑 제 친구가 같이하던 거였어요. 제일 친한 친구였는데, 진짜 안 좋게 끝났거든요. 너무 안 좋게 끝나서 제가 멘붕이 되게 심했었어요. 돈은 그닥이었고요. 그리고 그 외의 여러 가지 일들이 그 시기에 있었는데… 아무튼, 제가 (그런 걸 할) 그릇이 아니었었어요.





LE: 저스트 잼 같은 경우에는 밴드 형식으로 공연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원래부터 좀 있었나요?


네. 제가 어릴 때 또 밴드를 했잖아요. 밴드 사운드가 존나 멋있어요. 혹시 저스트 잼 오신 적 있으세요?






LE: 네. 간 적 있죠.


달라요. 존나 재미있어요. 문제는 뭐냐면, 투자되는 돈에 비해 남는 게 없어요. 그것도 그렇고, 래퍼들도 (밴드랑) 같이 합주를 해야 해요. 합주하는 입장에서 공연하는 데에 받는 돈이 있는데,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합주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게 불만이 있죠. 돈은 평소랑 똑같이 받으니까요. 그런 것도 불편했을 거고, 세 번째는 제가 <쇼미더머니> 끝나고 나서 너무 바빠지니까 이걸 할 마음이 안 생기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 같아요. 섭외하는 것도 존나 자존심 상해요. 회사들한테 전화해야 하잖아요. 엄청 텃세 부리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 누구는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야 하고, 이거 맞춰주고, 저거 맞춰주고 어쩌고 하니까 진짜 공연 기획이라는 게 역시 또 하나의 직업이라는 걸 느꼈었어요. 제가 랩하면서 이것까지 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느꼈었죠. 그래서 안 해. 안 해. 이렇게 된 거죠. 제가 좀 더 크면 나중에 누군가를 고용해서 “니가 다해. 개새끼야. 넌 내 이름만 빌려.”라고 하면서 월급 많이 주고 시킬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별로…






LE: 저스트 잼 같은 경우에는 호불호가 굉장히 많이 갈리는 걸로 알고 있어요. MR이 주는 타격감이랑 밴드로 했을 때의 타격감이 다른데, 밴드 연주 시에 생기는 타격감이 좀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하긴.






LE: 근데 또 그 나름의 멋이 있잖아요. 아무튼, 엄청 취향 따라 평가가 갈리는 것 같더라고요.


맞아. 맞아. MR에 비해 라이브 드럼의 타격감이 너무 다르니까. 하긴. 그렇게 생각을 안 해봤네. 근데 뭐, 취향이 갈릴 수도 있죠.






LE: 이제 다시 아까 얘기가 나왔던 저스트 뮤직의 초기 멤버 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요. 조금 중구난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해서 그때는 어떤 기준에서 멤버들을 영업했었는지 궁금해요. 지금은 아무도 안 계신데…


그때는 그냥 제가 봤을 때 멋있는 사람으로 했는데, 역시 멤버를 뽑을 때 그런 것만 보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멘탈도 봐야 하고요. 막 조금만 삐치면 안 나오고 그러는 경우도 있고요. 누구는 그냥 전화 쌩까고. 누구는 게으르고. 누구는 악플 보고 도망가고. 멤버를 뽑을 때, 그런 것까지 다 봐야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되게 지혜롭게 잘 뽑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때는 그냥 단순히 원초적인 실력만 보고 뽑았었어요. 예를 하나 들자면, 단아의 경우에는 멜로디 같은 걸 너무 잘 만들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유 하나 때문에 뽑았는데… 다시 말하지만 제가 관리를 잘 못 했었어요. 관리를 못 해주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 거죠.






LE: 기리보이, 노창, 블랙넛 씨 얘기를 아까 쭉 해주셨는데요. 이전 멤버 분들 계셨던 시기랑 그 세 분이 계셨던 시기는 전혀 겹치지가 않나요?


기리보이만 잠깐. 한 달 정도? 제가 그냥 한 번에 정리하자고 했었어요.






LE: 그 당시 저스트 뮤직은 사업자 등록이 되어있다든가, 기타 등등의 레이블적인 운영이 제대로 안 되고 있었던 건가요? 지금이랑은 좀 다르게요.


완전 안 되고 있었죠. 그리고 심지어는 멤버들이 국세청 레이더 같은 데에 안 떴었어요. 왜냐하면, 수익이 없었으니까. 너무 약했으니까. 그런 거 있잖아요. 무슨 영수증이라고 하지. 아, 세금계산서. 그거 뽑는 방법도 몰라서 막 난리 났었어요. 힙합플레이야에 있는 형들이 알려줬었어요. “스윙스 씨, 이건 이렇게 하고, 이건 이렇게 하는 거예요.”라고 하는데, 자기들이 받으려고 저한테 가르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개한심한 거죠. 그만큼 제가 준비가 안 됐었어요.






LE: [파급효과 (Ripple Effect)] 들어보면 그 나레이션이 되게 유명하잖아요. “나래야, 오빠 돈 벌게 해준다고 했지.”. 신나래 팀장님은 그때도 계셨던 건가요?


맞아요. 첫날부터 있었어요. 신나래 팀장이, 우리 나래가 내 팬이었어요. ‘Freedom’ 콘서트 때, 있었을지도 몰라요. 걔는 Day 1부터 내 옆에 있었어요. 월급 30만원 받을 때부터. 지금은 훨씬 훨씬 버는데… 아 뭐, 존나 생색낼 건 아니고. 더 훨씬 벌게 해줄 건데, 나래는 처음부터 나랑 있어 줬어요.






LE: 모든 직원이 고맙겠지만, 더욱 고마울 거 같아요.


네. 되게 뜻깊어요. 근데 아쉬운 건 더 이상 제 팬이 아니더라고요. 갈아타서 시아준수 팬 되고… 시아준수 콘서트 갔다 오더니 맨날 시아준수 음악 들어요. 기리보이 때문에… 저에 대한 게 이제 아예 없어요. 제 음악 듣는지도 모르겠어요.






LE: 그때도 스윙스가 그리던 저스트 뮤직이라는 레이블이 갖췄으면 하는 어떤 그림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리고 또 지금의 그림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 차이가 크게 나나요?


네. 예전에는 그림이 없었어요. 매우 추상적이었고, 지금은 그냥 이거에요. 너무나 다른 사람이 자기를 찾고, 자기라는 사람을 발전시켜서 더 자기로 돌아가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거. 그냥 이 정도. 딱 그거예요. 그래서 기리보이는 더 기리보이답게 가고, 블랙넛은 더 블랙넛답게 가고, 저는 더 저답게 가고. 근데 우린 그냥 같은 곳을 보는 거예요. 지구정복.






LE: 혹시 외국 진출 쪽으로도 관심이 있으신 건가요?


네. 진지하게 관심 있어요. 미국, 중국 다요. 그래서 영어 자막 작업하시는 분도 구했어요. 사람들이 스윙스가 누군지, 저스트 뮤직이 누군지 모르니까 존나 아쉽잖아요. 한국말을 쓰는 사람은 전 세계에 5천만 명밖에 안 되는데, 영어는 몇 십 억이잖아요. 중국어도 마찬가지고요. 






LE: 예전에 인터뷰하셨을 때도 영어 앨범 준비한다고 하셨던 거로 기억해요.


맞아요. 그러다가 엎어졌어요.






- 09. 성장통, 그리고 감정기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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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Growing Pains (성장통)](이하 [성장통])와 [감정기복]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게요. 저스트 뮤직 초기에 첫 정규 앨범으로 [성장통]가 나옵니다. 아티스트가 앨범의 제목을 따라간다고 하죠. 퀄리티라든지 반응 같은 게 성장통 같다고 해야 할까요.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여기서 성장통이 본인의 성장통을 의미하는 건가요, 아니면 의미를 확장해서 씬이 커가면서 느끼는 성장통을 의미하는 건가요?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않았고요. 제가 말장난을 많이 했잖아요. 그거 이상을 하고 싶었는데, 이 앨범은 실패작이에요.






LE: 자켓도 디테일하게 한 것 같은데요.


좋은 추억이었어요.






LE: 말씀하신 게 언어유희, 펀치라인 외에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말씀하시고 싶은 게 있다고요.


속에 있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LE: 지금도 언어 유희적인 것을 하시지만, 커리어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내면의 솔직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변화하는 게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그런 게 더 솔직하기 때문인 건가요?


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했죠. 제가 좋아하는 작가 세스 고딘(Seth Godin)이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음악은 개인적이어야 한다고. 개인적이지 않으면 멋있는 게 아니다. 여기에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전 저 자신을 가지고 리스크를 거는 게 재미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스케이트보드 타는 사람이나, 스키 타는 사람이나, 작두 타는 사람이나, 장비 없이 산악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만약 엘리베이터를 타고 산을 오르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자신의 계속 시험하고, Status Quo(자신의 현재 상태, 상황)에 대한 도전, 전 이걸 굉장히 좋아해서 제 얘기를 계속하는데, 조금 더 크게 봤을 때는 우리나라만큼 솔직하면 안 되는 문화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해요. 퍼렐(Pharrell)의 "Happy" 뮤직비디오 있잖아요. 그걸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찍어서 올린 거 아시죠? 각 나라 걸 다 봤어요. 20개 정도를 봤는데, 다 존나 자연스러웠어요. 일본 거 보기 전에 '얘네는 진짜 딱딱하게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보니까)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리고 우리나라 거를 봤어요. 경직이 많이 되어 있더라고요. 저는 멀리 보고 이걸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저 보고 뭐라고 많이 하잖아요. ‘저 새끼 왜 이렇게 나대냐?’하는 분위기도 있고 한데, 그런 와중에 솔직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한테 제가 사이다가 되어줄 수도 있잖아요. 먼 훗날 봤을 때, 저는 신해철 씨가 한 것 그 이상을 대중적으로 하고 싶어요.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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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얼마 전에 호주를 다녀왔는데요. 미국에 있을 때랑 비슷한 기분을 느꼈어요. 근데 성인이 되어서 가니까 또 다르더라고요. 거긴 정말 어이가 없는 게, 일단 어떤 여자가 자동차 트렁크를 열고 있었는데, 바지가 다 내려가서 엉덩이골이 다 보이는 거예요. 그러더니 저를 의식하고 뒤를 보더니 '흥'하더니 다시 트렁크를 손보는 거예요. 저는 문화 충격을 받았거든요. 자신의 엉덩이가 보이는 것에 대해서 안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고요. 그러다가 같은 날에 전철을 탔어요. 기다리고 있는데, 제 동갑 정도 되는 좀 뚱뚱한 백인 여자가 브라가 간지러웠는지 자기 가슴을 만지는 거예요. 제가 너무 놀라서 쳐다보니까 '흥'하고는 (그 행동을) 그냥 계속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쩌라고.' 이건 거예요. ‘I Don't Give a Fuck’ 마인드가 있는 거예요. 누구는 그걸 보고 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거고, 또 그만큼 성차별주의도 없다는 게 보이는 부분인 거 같아요. 사람들이 조금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거든요. 저도 굉장히 눌려왔었고, 어린 나이에 이 문화에 대한 불만도 굉장히 많았어요. (제 태도는) 제가 싫어하는 것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고, 제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사회를 위한 것이기도 해요. 만약 모두가 그랬다면 스윙스는 (지금까지 해왔던) 그런 음악을 안 만들었을지도 몰라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다른 걸 했을지도 몰라요. 누가 알아요? 누드 같은 걸 찍었을지도. 토 나온다… (웃음) 그런 마음이 커요.






LE: 스윙스라는 아티스트는 그 솔직함이라는 게 강점인 거 같아요. 불완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매력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자신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스윙스 씨는 음악에서 자기 안에 있는 나쁜 것이든, 이상한 것이든, X신 같은 것이든, 폐부를 다 들어낸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당연히 그런 거에 거리낌이 없으신 건가요? 사실 과거 인터뷰를 보면, '나는 솔직해 보이지만 솔직하지 않은 부분도 많다.'라는 식으로 얘기하신 적도 있었는데요.


맞아요. 아직 말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고요. 다시 말하지만, 제가 음악을 안 했다면 어느 정도의 솔직함만 가지고 살면 되는데, 본보기가 되고자 하는 마음에 조금 더 보여주는 것도 분명 있어요. 






LE: 그게 [성장통] 때부터 시작됐다는 느낌이 있어요.


네. 그때부터 시작됐어요.






LE: 그래도 그 앨범이 별로였다고 생각하는 건 앞서 말한 것처럼 단순한 이유에서인가요? 작품으로서의 전체적인 퀄리티나 랩이나 이런 걸로만 대략 따져보아도 부족한 점이 많았던 앨범이다?


아쉬움이 많은 앨범이에요. 지금 생각하니까, 그 당시에 저는 정규 앨범을 만들 그릇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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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성장통]이 나오기 전에 나온 EP 앨범 [감정기복]은 스윙스가 가지고 있는 면모 중에 또 다른 어떤 것을 극대화시킨 느낌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맞아요. [감정기복]은 존나 쩌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열 트랙밖에 없는데 다 멋있어요.






LE: 당시 무료 공개는 즉흥적인 선택이었나요?


네. 그냥 귀찮아서. 프레싱하는 거 등등.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그런 귀찮은 걸 진짜 개싫어하거든요. 너무 귀찮아요.






LE: [감정기복]에서는 "My Ballad"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그 축축한 분위기 있잖아요.


저도 존나 좋아하는 곡이에요.






LE: 그때 뉴올(Nuol) 씨와 작업을 하셨는데, 그 당시에 "내 뒤에 서줘"라는 곡이 나왔었잖아요. 뉴올 씨가 그런 방식으로 MC와의 콜라보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뒤로도 결과물 쭉 나올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 곡이 끝이었어요.


맞아요. 하다가… 각자 생각하는 음악이 너무 달랐던 거예요. 그 형이 원했던 방향이 있었고, 제가 원했던 방향이 있었는데, 그게 달랐어요. 아쉬웠죠.






LE: 또, 그 당시 브랜뉴뮤직에 들어가기 전에 윤종신 씨와 작업했던 것이 커리어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대중적으로 보았을 때요. 당시에 윤종신 씨와 같은 은평구에 사셨고, 윤종신 씨가 음악적으로 인정을 많이 해주었다고 들었어요.


진짜 감사했어요. 가사 쓰는 스타일과 톤을 굉장히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본능적으로" 작업을 끝내고 (자기) 회사와 계약하자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안 하게 됐네요. 그런데 정말 고마운 형이에요. 뭐랄까, 제가 본 나잇대의 형님들 중에서 가장 열려있는 사람 같아요. 퍼렐도 존나 좋아하고… 그냥 다 듣고, 다 보고, 다 멋있다고 하고. 멋을 알아요. 멋을 아는 형이에요.






LE: 요즘 미스틱89(Mystic89)의 행보도 살펴보시나요?


연기자 회사도 사고, 많은 움직임이 있잖아요. 크게는 못 봤어요. 군대에 있었어서요. 간간이 봤죠. 블랙넛에게도 피처링을 부탁했었어요.






LE: 사실 윤종신 씨와의 작업이 그전까지는 힙합 쪽에서만 인정을 받다가, 힙합 외부 영역에서 인정을 받게 된 사실상 첫 케이스였잖아요. 그 이후로도 "Love Scanner"라는 곡에도 참여하셨고, 반대로 윤종신 씨가 피처링한 "Lonely"라는 곡도 나왔고요. 아무래도 처음 윤종신 씨에게 연락을 받고, 인정받았을 때 기분이 좋았을 것 같아요.


너무 좋았어요. 저는 항상 '언더에서 끝나지 않을 거다. 더 크게 갈 거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저를 인정해줄 때, 그것보다 좋은 건 없는 것 같아요. (특히,) 타 장르 사람이 인정해줬을 때 가장 행복해요.






LE: 타 장르라고 말하기에는 모호하지만, 태양 씨와 “니가 잠든 후에”로 함께 했을 때도 기분이 좋았을 것 같아요. 그게 또 "본능적으로 (Remix)"로 연결되기도 했고요.


맞아요. 






LE: 태양 씨와 작업하게 된 것은 어떻게 된 건가요?


마스타 우(Masta Wu) 형이 연결해줬어요. "태양이 같이 하고 싶다는데 혹시 생각 있어?"라고 물어보길래 "OK! 나는 좋아요."라고 했었죠.






- 10. 두 번째 업그레이드를 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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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Upgrade Ⅱ]에 관한 얘기를 해볼게요. 이 앨범이 2011년에 발매됐는데, 기억하기에는 "Swings Rising"이 그보다 먼저 공개되었던 것 같아요.

 

, 맞아요.

 





LE: 그 곡이 앨범의 전체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좀 로우했던 느낌이 있는데요. 그래서 먼저 공개를 했던 건가요?

 

아니요. 그냥 (앨범에) 들어갈 용량이 없어서… CD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용량이 한계가 있다 보니까 [Upgrade Ⅱ]는 두세 곡인가를 싱글로 내야만 했어요.

 





LE: 그 이후에 나온 곡 중에 "나는 강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 그것 역시도 CD에 안 들어가져서

 





LE: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져서 못 들어간 거군요.

 

. 그게 CD 안에 다 안 들어가 지더라고요. (용량이) 70분인가? 그것밖에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뭐, 따로 공개했죠.

 





LE: [Upgrade]가 말씀하신 대로 '내가 이 씬을 업그레이드해주겠다.' 이런 의미가 있었고, [Upgrade Ⅱ] 역시도 시리즈로서 연장 선상이었던 거 같아요. 근데 그전보다는 뭔가 음악적인 스타일 전체로 의미를 확장하면서 '업그레이드된 걸 들려주겠다.' 이런 식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맞나요?

 

그러니까 그전에는 말장난이나 이런 거로 한국힙합 씬에 대한 업그레이드를 바랐다면, [Upgrade Ⅱ]는 좀 더 저 자신과 제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런 거를 업그레이드 시키겠단 마음이 있었어요. 그 차이가 큰 것 같아요. 랩보다는, 랩도 당연한 거지만 집중했던 부분은 인간 문지훈?

 





LE: 앨범 안에는 완전 부수는 트랙 ", 이제 니가 해봐"도 있었고, 비프리(B-Free) 씨가 참여했던 렉스 루거(Lex Luger) 스타일의 "Welcome To The Jungle” 같은 경우에는 어떤 시도가 담겨 있었던 것 같아요.

 

, 맞아요.

 





LE: "It's Just Music"도 그 당시에는 없었던 스타일이었던 거 같고요.

 

맞아요. 싸이코반이 잘 만들었죠.

 





LE: 하여튼 그랬었는데, "Touch You"는 스윙스라는 아티스트의 색깔을 지키면서 한국에서 최대로 할 수 있는 부드러운 곡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노래 안에 삽입된 스킷도 야하면서도 재밌는 구석이 있었고요. 해서 스윙스 씨가 상업적인 곡을 만들어 보려고 하면서도, 어떤 보이지 않는 선 같은 걸 넘어서지 않은 채로 최대치를 끌어낸 곡이 "Touch You"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류로 "Touch You" 뿐만 아니라 "듣고 있어?"도 있고, "줄래"도 있고, "전화번호"도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그러면 개인적으로는 "Touch You"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LE: 열거한 대로 여러 개가 있었는데, [Upgrade Ⅱ] 안에서는 가장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맞아요. 그 곡이 딱 커머셜하게 가고 싶었던 노래였고, 저로서는 최선이었던 것 같아요.

 





LE: 부드러운 트랙을 만들 때, 자신만의 기준이 있나요?

 

그런 곡을 만들 땐 일단 기본적으로 실제 제 삶과 많은 연관이 있어야 해요. 저는 어떤 장르든 간에 노래가 너무 비현실적일 때 좀 오그라드는 게 있어요. 딱 들었을 때 현실성이 있어야 해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되게 팝적이면서 밸런스를 잘 잡아내는 사람이 브루노 마스(Bruno Mars)라고 생각하거든요. 에미넴(Eminem)은 굉장히 극단적인 백인, ‘White Trash’ 느낌으로 잘 쓰고요. 제이지는 되게 웃긴, 약간 우월한 남자, 흑인 남자 그런 느낌이 들고요. 저 역시도 아까 제가 왜 이렇게 솔직하냐고 여쭤보셨을 때,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게 있다고 답했었는데, 원래 솔직한 것도 있어요. 기준은 솔직해야 돼요. 솔직하고, 현실성 있고, 오그라들지 않는 쪽으로 최대한 가는 거. 그런 거예요. 그리고 평소에 제가 들을만한 노래. 그냥 돈 벌려고 자기가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는 노래를 하는 건 싫어요. 웬만하면요. 그냥 들었을 때 제가 구리다고 생각 안 하면 돼요. 그런 느낌?

 





LE: 그런 스타일의 노래를 만드실 때 보면 노래도 하시잖아요. , 그런 쪽이 아닐 때도 노래를 가끔 하시는데, 본인 노래 실력이 그래도 곡에 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 , 그래도. 딱히 (게스트가) 별 필요가 없는 노래는 '내가 해결하고 말지.' 이런 게 있어요.

 





LE: 오히려 그럴 때 느낌이 더 산다고 생각도 드시나요?

 

어울리는 노래도 있는데, 가끔은 미스였다 싶을 때도 있어요. 근데 제가 진짜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뭐냐면, 피처링 기다리는 거예요. 진짜 존나 짜증 나요. 그래서 제 앨범들 보시면 피처링이 많은 노래가 몇 개 없어요. 초창기에 좀 있었는데, 커리어를 거듭할수록 별로. 제가 성격이 존나 급해요. 제가 준비되면 모든 게 준비되어 있기를 바라요. 그런데 대다수 사람은 뭘 창조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그래서 웬만하면 제가 다 해요.

 





LE: 그런 성격 때문에 레이블 안의 다른 멤버들이 오래 걸린다 싶을 때 답답하거나 그런 건 없나요?

 

(웃음) 저는 그럴 때 엄청 뭐라 해요. "지금보다 음악 하기 좋을 때가 어딨어. 지금보다 힙합 하기 좋은 시대가 어딨어. X. 니네가 나처럼 한 번 망해봐야 정신 차리지." 이런 말 한 적도 있어요. 그냥 노래를 내서 반응이 안 좋아도 저는 괜찮은 편이에요. 망해도 괜찮아요. 물론, 스스로는 만족을 해야 하는데요. 보통 사람들이 걱정하는 게 뭐냐면,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거로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냈다가 반응이 없을 것 같다는 건 데요. 그 걱정 때문에 (음악을) 못 내는 사람도 있고, 자기 실력이 들킬까 봐 못 내는 사람도 있죠. 근데 저는 이거에요. 구려. [성장통]처럼 평이 안 좋아. 그럼 저는 또 내면 돼. X 그냥 하자고.’ 이런 주의거든요. 근데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게 되게 어렵더라고요. 대부분 사람은 항상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좋은 거예요. 그 사람들에겐 그게 좋은 건데, 저는 약간 말 더듬어도 그게 자연스러우면 내보내거든요. 그냥 제가 들었을 때, ‘Shit, 이거 존나 괜찮다.’하면 끝이에요 저 되게 많이 푸쉬하는 스타일이에요. 저희 레이블 내에서 그게 부담스럽다고 뭐라 하는 애들도 있어요. 그렇다고 하는 사람들은 제가 안 건드려요. OK. 알겠다고.

 





LE: 그 나름대로 존중해주는 거네요.

 

. 그래도 일단 두려워할 게 없다고 하는 게 제 주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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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결과물이 구리든, 안 구리든, 반응이 좋든 나쁘든 간에 일단 얘기를 듣고 나서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지, 아무것도 안 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네요.

 

, 진짜 그거에요. 맞아요. 사람들이 지랄하는 거? 지랄 듣는 게 싫으면 지랄하는 거 자세히 보라고요. 공통된 이야기가 꼭 나온다고요. 톤이 너무 얇다, 라임이 너무 구리다, 가사가 별로다, 너무 자의식 과잉이다 등등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럼 전 반드시 돌아보거든요. 'X, 이게 맞는 소린가?' 생각해보고 맞다 싶으면 그때 바꿔요. ‘내가 못 보는 부분이 있구나.’ 하는 거죠. 랩이란 게 그런 의미에서 개좋은 것 같아요. 자주 내면 사람이 발전할 수밖에 없어요. 자꾸 욕 처먹으면서 자꾸 같이 평가하게 되거든요. 내가 진짜 괜찮은 새끼인지를요. 반면에 사람들이 욕을 하는데, '아니, 내가 맞는데?' 싶으면 안 고치면 되는 거고요. 그래서 저는 그 말 맨날 해요. 어떤 비판을 받고, 그걸 보면 사람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비판 한 번 받아보라고. 이런 주의에요. 나가서 누구 패란 얘기가 아니잖아요? 의외로 별로 안 어려울 수 있는데모르겠다. 사람마다 너무 다르니까.

 





LE: 얘기하시는 와중에 여러 반응으로 '자의식 과잉을 예로 드셨잖아요. 사실, 그런 얘기도 많이 들으실 것 같아요. 자기 얘기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자의식 과잉이라는 얘기 말이죠. 그런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맞아요. 너무 저만 생각하고 살다 보니까… 2년 전에 되게 가까운 사람이 말해줬어요. 니 마음 속에는 니밖에 없다고. 저 그때부터 되게 많이 변했어요. 저를 사랑하는 건 되게 좋은 건데, 상대방, ,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좀 더 챙겨주고, 그 사람들의 기분을 좀 더 생각해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2년 전부터 생겨가지고 되게 많이 변했어요 요즘. 그런 면에서 가운데를 못 찾고도 있는데, 가끔 저를 너무 희생하는 X신같은 버릇도 있거든요. 가운데를 찾는 일을 연습하고 있어요. 배우는 중입니다.

 





LE: 근데 남의 의견을 듣는 데에서도 자기 기준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상한 소리면 버리고, 도움이 되는 거면 반영해야 하는 건데, 중간을 찾는 게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맞아요. 계속 찾고 있어요. 이 나이 되도록 완벽하게 안 되는 게 되게 신기하더라고요.

 





LE: 본인은 다른 사람들, 예를 들면 일반 팬들이나 주변 사람들 의견 들을 때 어떠세요? 통상적으로는 그냥 'X.' 하는 편이신가요?

 

No. 특히, 주변 사람들 얘기는 존나 진지하게 들어요. 저는 옛날에는 저에 대한 확신이 너무 컸었거든요. 너무 컸었기 때문에 무너지는 저를 보면서 마냥 나만 믿어서는 안 되겠구나 싶어서 요즘 저는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다 모아요. 어린 애든, 친구든, 회사원이든. 그런 의미에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저에게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에요. 저 너무 잘 수렴해요. 겉보기와는 완전 다르게 이제는 주위 사람들 말 되게 잘 들어요.

 





LE: 예전에는 안 그런 경향이 있었나요?

 

안 그랬죠. 예전엔 진짜 안 그랬어요. 그것도 살면서 장점이 있었는데요. 일단 전 순진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순진한 면도 있고, 귀 얇은 면도 있어요. 그래서 옛날에는실수해도 괜찮아.’ 이런 식이었다면 요즘은 조금 더 가운데. 실수는 괜찮아요.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진정한 실수는 그 실수를 통해서 배운 게 없을 때 진정한 실수에요. 근데 배우면 되는 거니까. 이런 입장인데, 맨날 실수해서 좋을 건 없어요. 하여튼 그러니까 적당히. 뭐든지 중간을 찾으려고요.

 





LE: 그걸 레이블 멤버들에게도 얘기하나요?

 

. 근데 다들 저보다 실수 안 하는 편이니까. 다들 저보다 훨씬 그런 면에서 지혜로우니까.

 




LE: 2011년에는 기리보이 씨의 "You Look So Good To Me"가 나왔는데, 그것도 '일단 하나 빨리 내보고 봐라.' 이런 거였나요?

 

아니요. 그때는 기리보이가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어요. 그때는 오히려 제가 천천히 하자는 입장이었어요. 저는 걔의 로우한 재능을 보고 같이하자고 했거든요. 노래도 존나 못했고, 랩도 약간 설익었고, 비트도 약간 설익었는데, ‘얘는 나중에 X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데리고 간 게 커요. 근데 "You Look So Good To Me"는 지가 준비되어서 하자고 그랬어요. 그래서 "당연하지. 하자."고 했던 거죠.

 





LE: 원래는 기리보이 씨가 데뷔 전에 되게 정석적인 랩만을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느 순간 확 바뀐 채로 나타나서 신기했었어요. 스타일이 바뀌고 나서 기리보이 씨를 알게 되신 건가요?

 

. 저는 걔 랩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냥 랩 위주로 하는 애가 아니구나.' 싶었는데, 자기가 나중에 얘기하더라고요. ", 제가 예전에 정글 왕이었어요."하고. 존나 웃기더라고요. 가소롭더라고.

 





LE: 그런 얘기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스윙스는 사람 보는 눈이 되게 좋다.'. 터지기 전에 터질 거라는 걸 알고 터지기까지의 과정을 계속 옆에서 봐주면서 같이 해나가고. 결국엔 그 사람의 잠재력을 끌어낸다는 얘기가 있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적인 거 말고도 사람 관찰하는 걸 존나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대충 좀 보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다.' 생각하고 있으면 진짜 그런 사람이 맞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예전엔 그걸 존나 못했어요. 존나 못해서 맨날 뒤통수 맞고 그랬는데, 지금은 웬만하면 잘 봐요. 이 사람이 대충 어떤 사람인지요. 너무 뒤통수를 많이 맞아서 얘기하면 재미있어 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거에 대한 책도 존나 많이 읽었어요. 신체 언어. 사람을 읽는 방법이죠.

 





LE: 심리학적인 건가요?

 

그런 거 개많이 읽었어요. 그래서 음악 말고 사람 자체를 보고, 이 사람이 어떤지 맞추는 걸 약간 게임처럼 생각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또 뒤통수 맞기 싫어서 방어하기 위해서 하기도 하고요. 그런 이유로 연습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처음에 저스트 뮤직 다 말아먹었을 때, 뭐가 문제였을까 되짚어 보니까, (그런 걸 알고 나서) 깨닫게 된 거죠. 진짜 많이 깨달았어요. 인생은 그냥 그 재미에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냥 저를 어떤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레벨 올리는 간지. 아이템 줍고. 전 그런 재미에 사는 것 같아요. 그런 걸 굉장히 궁금해할 사람도 있을 거예요. 어떻게 이런 걸 알게 됐는지를요. 간단한 팁 몇 개 드리자면, 사람이 입을 가릴 때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안 하는 거고요. 다리까지 꼬면 좀 방어적이란 걸 알 수 있고, 사람이 다리를 뒤로 빼면 부끄럽다는 거예요. 사람 발이 향한 곳이 마음이 가있는 곳이에요. 이해 가시죠.

 





LE: 그런 디테일한 모션들이 책에 다 쓰여 있는 건가요?

 

. 존나 많아요. 그런 책에. 그리고 시저 밀란(Cesar Millan)이라고 <Dog Whisperer>라는 프로그램을 하는 멕시칸 사람인데요. 전 세계에서 개를 다루는 사람 중 제일 유명하고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이거든요. 문제 있는 개를 찾아가서 고쳐줘요. 개한테 귓속말을 한다 해서 도그 위스퍼러(Dog Whisperer)인데, 그 사람 개천재거든요? 개쩔어요. 무는 개를 5초 만에 고치는 경우도 있고요. 그게 다 바디랭귀지라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어떤 개는 아줌마랑 산책할 때마다 자기도 물고, 사람도 물고, 자전거 보면 뛰어갈라 하고 난리를 쳐요. 그래서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하는데, 개는 모든 걸 에너지로 본대요. 그래서 시저 밀란이 알려줘요. (그 개를) 딱 잡은 다음에 옆에 보지 말고 앞만 보고 쭉 걸어가라고 해요. 그러면 개가 벌써 얌전해져요. 왜냐하면, 개는 불안정한 에너지를 보고 거울 현상이 일어나서 똑같이 행동하거든요. 아줌마가 끌고 나갈 때 불안해하는 거죠. 근데 시저 밀란이 이런 걸 알기 위해 뭐가 필요했겠어요. 관찰. 그런 것도 보면서 ', 이런 거구나.' 하는 거죠. 또 예를 들어, 개새끼가 말을 안 들으면 자꾸 뒤집어요. 개를 하늘을 보게 하고 눕히잖아요. 그러면 개가 복종적인 상태가 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바디랭귀지가 사람의 무의식을 건들거든요. 그리고 무의식이 사람의 바디랭귀지를 건들어요. 하나만 더 예를 들면, 제가 어깨를 펴고 자세를 곧게 하면 슬픈 생각을 못 하거든요. 하기가 힘들어요. 근데 제가 어깨가 처진 채로 웅크리고 있으면 슬픈 생각을 하기가 쉬워요. 무슨 말인지 아세요? 근데 고러고 있으면 또 웃기가 힘들어요. 이해 가세요? 바디랭귀지는 우리의 기분에 영향을 주고, 우리의 기분도 바디랭귀지에 영향을 줘요. 기분이 좋아지면 어쩔 수 없이 다리가 벌어져요. 근데 기분이 움츠러들면 몸도 움츠러드는 거예요. 너무 간단한 과학이에요. 이거에 대해 맨날 책 읽었어요. 8년 전부터요. 진심 존나 많이 읽고 맨날 사람들한테 알려줘요. 존나 알려줘요. 근데 '개소리야.'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있는데, 좀만 설명해주면 거의 다 설득 당하더라고요. 그래서 무대 설 때도 어떻게 서는지, 무대에 선 사람이 얼마나 쫄았는지 분석하는 재미로 살아요. ‘저거 가짜 자신감이네. 저거 가짜네. 쟤 지금 존나 쫄았다.’ 이렇게.

 





LE: 이건 되게 사적인 얘기일 수도 있는데요. 그런 바디랭귀지를 제대로 알기 전과 후에 여자를 만났을 때의 차이가 있나요?

 

. 누구는 그런 게 타고나기도 하고, 누구는 연구를 해서 알기도 하는데요. 어쨌든 바디랭귀지가 여자 만나는 데에 영향을 존나 많이 끼쳐요. 움츠리고 있으면 어떤 여자가 이런 남자를 좋아해요. 물론 귀여워서 좋아할 수도 있고, 사람마다 취향이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하죠. 절대적으로 완전한 남자, 완전한 여자는 존재하지 않긴 한데, 기본적으로 자기를 내보내는 사람에게 누구나 매력을 느끼잖아요. 아시잖아요. 영향 엄청 많이 끼쳐요.

 





LE: 스윙스 씨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션 같은 게 되게 크잖아요. 엄청 내지르고, 뛰어다니고. 그런 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건가요, 아니면 그런 걸 의식하면서 나오는 건가요?

 

자연스럽게 나오는 편인데, 연구하니깐 오히려 저를 더 잘 알게 되어서 더 키울 부분은 키우려고 노력해요. 근데 원래 그랬어요. 옛날 공연 많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Freedom’ 콘서트 때라든가 그럴 때까지만 해도 그런 책을 막 읽기 시작했었는데, 그땐 적용하는 법을 몰랐어요. 이젠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요. 예를 들어, 카리스마를 키우기 위해서는,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멈춰서 관중 한 사람당 3초씩 보는 거예요. 하나, , . 넘어가고, 하나, , . 넘어가고. 이런 거에서 존재감이 키워지는 거예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의 특징은 "Yo, Put Your Hands Up!" 해도 본인이 거기 있는 게 안 느껴져요. 기본적으로 다리를 어깨만큼 넓히고, 손 붙이지 말고 자연스럽게 두고, 가슴을 펴고, 턱만 올려도 존재감이 생겨요. 쉽게 얘기해서 학교 다닐 때 재미 삼아 얘기하잖아요. 찐따 같은 애들은 쭈그리고 있잖아요. 안 보이잖아요. 제가 책에도 썼는데, <슬램덩크> 보면 만화 작가가 존재감이 없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다 얼굴 존나 간단하게 그려놓고 강백호는 뚜렷하게 그려놨거든요. 뚜렷해지는 게 카리스마를 높이는 거겠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뚜렷해지려면 어정쩡한 자세가 아니라 팔 펴고, 어깨 펴고, 가슴 좀 펴고. , 그리고 눈빛. 눈에 적당히 힘주고. 편안하게. 그러면 존재감이 늘어나는 거예요. 이런 게 책에 나와요. 뭐든지 배울 수 없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유튜브(Youtube) 보면서도 존나 배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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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지금은 그런 말들이 많이 나오진 않지만, <쇼미더머니> 초창기 때는 할 때마다 그런 의견들이 꽤 있었잖아요. 일렬로 줄 세워놓고 랩 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근데 그 잠깐 랩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보이는 편인가요? 자신감이라든가, '잘할 것 같다.', '어디까지 올라갈 것 같다.' 같은 거요.

 

. 제가 읽은 책 중에 <Blink>라는 책이 있거든요.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라고 제가 존나 좋아하는 아저씨인데, 그 사람이야말로 관찰력이 뛰어나고, 모든 사회적 현상을 우리가 알고 있는 거로 해석하는 방법 말고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걸 굉장히 잘하는 사람인데, 'Blink'가 뭐냐면 눈 한 번 깜빡하는 거잖아요. Blink의 법칙이 있어요. 어떤 걸 보면 5초면 대충 각이 나오는 거. 그래서 예를 하나 들자면, 제가 A라는 사람에게 어떤 모르는 사람이 있는 방에 들어가라고 해요. 그 방에 5분 동안 있어요. 5분 동안 있다가 나와서 설문조사를 해요. 이 사람이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를요. 세밀하다, 여성스럽다, 화가 많다, 어떤 사람이다 기타 등등 질문이 열다섯 개 정도 있다고 쳐요. 대충 그 정도거든요. 그리고 저는 그 사람을 10년 정도 알았어요. A가 들어간 방의 주인을 난 10년 알았는데, 저에게 설문조사를 하면 5분 본 A 10년 안 저보다 정확하게 봐요. 결과가 더 정확하게 나와요. 그만큼 Blink의 효과가 무서운 거예요. 그 느낌 있잖아요. 누구 처음 봤는데 첫인상이 존나 무서운 거. 그 사람이 말하는 건 우리 무의식에 컴퓨터가 존나 거대한 게 있다는 거예요. 한 번에 따라락 계산하는 거. 이게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면, 저기 멀리서 황소가 존나 달려오고 있는 거예요. 이 새끼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나를 죽이려고 하는지 그걸 종이에다 적을 시간이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머리 안에 그런 (Blink) 기능이 있는 거예요. 1, 2, 3. X됐다. 튀자. 근데 마찬가지로 랩을 들을 때도금방 알지 않아요? 딱 랩 들으면요. 보는 거 말고, 듣는 거만으로도 두세 마디 들으면.

 





LE: 어떤 때는 사실 한마디만 들어도 알 때가 있죠.

 

솔직히 알죠~ 근데 그거 가지고 까는 사람들은까는 사람들은 끝까지 까는 거예요. 뭐든지 불만 있는 사람들은 그래요. 저는 줄 세워놓고 랩 시키는 게 전혀 문제라고 생각 안 해요. 근데 이건 있죠. 거기 서서 긴장해서 평소 자기 실력 못 보여주는 사람들. 존나 많을 거예요. 70~80%? 왜냐하면, 저도 해봤으니까요. 전 할 말이 있어요. 이 씨X, <쇼미더머니> 안 나와놓고 욕하는 사람들은 아저씨 모드로 존나 꼰대인 척하면서 편하게 욕하는데, 전 나갔으니까 욕할 자격이 있다고도 볼 수 있잖아요. 근데 전 욕 안 하기를 선택했거든요. X, 그걸 MC가 어떻게 증명할 건데. 그걸 한 명씩 존나 멋있는 방 안에서 멋있는 마이크 잡고 다 찍어줘? X 그러면 몇만 시간 걸리는데? 그냥 자신 있으면 참가하는 거예요. 어차피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 설 스타가, 랩스타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께서 무슨 씨X 심사위원 둘 앞에서 랩하는 게 그렇게 무섭다고? 그렇게 그게 X 같은 거라고? 그런 정신이 있으니까 성공 못 하는 거예요. 그런 정신으로 살면. "그래. 그렇게 살아보세요."라고 전 얘기하고 싶어요. 전 이 말 하고 싶어요. <쇼미더머니> 싫어하는 건 저도 이해할 수 있다고. 무슨 말인지 아는데, 전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그러면 욕하는 당신은 얼마나 랩을 잘하길래, 얼마나 리얼하길래 카메라가 두려우냐고. 내가 진짜 리얼하면 프로그램이 X같아도 내 리얼함이 나와요. 오히려 Fake들 사이에 있으면 더 튀는 거라고. 군계일학이라는 말 안 들어봤느냐고. Fake 방송, Fake 사람들 사이에서 니가 그렇게 리얼하면 오히려 스타가 된다고. 아니나 다를까, <쇼미더머니 2>에서 저는 제 성격 그대로 했고, 그랬더니 어쨌든 더 튀었어요. 약간 좀 화나 있는 버전이긴 했어요. 물론, 악마의 편집 좀 당했는데그래서 그런 걸 까는 건 전 이해할 수 없어요. 대부분은 그냥 질투 난 걸로 보여요.

 




LE: 사실 지금 한국힙합 씬에서 <쇼미더머니>와 연관되지 않은 쪽을 찾는 게 더 쉬운데, 제리케이(Jerry.K) 씨의 레이블 데이즈 얼라이브 뮤직(Daze Alive Music) 정도가 <쇼미더머니>와 전혀 접촉이 없잖아요. 이렇게 접촉이 없거나, 보이콧하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느낀 거 하나 얘기할게요. 보이콧은 오히려 홍보에요. 예를 들어 누가 결혼하는데 제가 그 사람의 친형이에요. 제가 "이 결혼 반대야. 안 가."하면, '동생의 결혼식에 친형이 참가하지 않았다.'라는 소식 때문에 오히려 저는 그 결혼을 홍보한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죠. 누구를 디스하는 건 결국 누구를 홍보하는 거예요. 맞잖아요? 항상 그렇죠. 그러니까 첫 번째로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제리케이 형은 제가 알던 형이니까 편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형이 읽을 걸 알고 얘기하는데, 형이 지금 하고 있는 건 홍보를 하는 거라고. 그리고 두 번째는 형이 진짜 그렇게 잘한다고 생각하시면 나와보는 건 어떠냐고. 오히려 나와서 비판해보라고. 그러면 형이 오히려 더 주인공이 되는 거라고. 남들은 존나 성공에 목말라 있어서 거기 나왔다고 생각할 때, 난 그런 게 아니고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가짠지 내가 보여주겠다고. 그러면 <쇼미더머니> PD, 작가든 더 형한테 갈 거라고. 어떻게든 뽑아내기 위해서. 근데 솔직히 형이 제일 잘하면 아무도 형을 안 떨어뜨릴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저는 진짜 형을 까는 게 아니라 존중하는 마음으로서 얘기하는데, 형도 행복해서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이 말이에요.

 





LE: 그러니까 보이콧을 선언하는 거 말고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진짜 보이콧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그게 진짜 홍보 안 하고 안 도와주는 거죠. 근데 매번 나올 때마다 트위터에 이번 화는 누가 X신이었네.’ 이러면 홍보해주는 거예요. ? 그거 보고 ', 누가 X신이었지. 한 번 봐야지.' 그런 현상이 일어나니까. ", 그냥 재밌었어." 이 말 한마디 하는 게 차라리 망하게 하는데 도와주는 거예요. 만약에 내가 어떤 게 망하길 원하면요. "그 사람 어때요?라고 물어봤을 때, "잘해요." 이러면 끝나는 거예요. 굳이 진짜 그걸 원한다면.

 





LE: <쇼미더머니> 얘기는 뒤에도 있으니까 이따 해볼게요. [Upgrade Ⅱ] 얘기하면서 2011년 얘기를 좀 하고 있었는데요. 힙합플레이야 기사를 찾아보니 이때부터 이미 인디펜던트 레코즈(Independent Records)와 합동 콘서트를 하시고, 바스코 씨와 친분이 있잖아요? 그래서 바스코 씨에 대한 생각이 되게 많을 것 같아요. 바스코 씨도 여러 서사가 있고,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사람 중 한 명인 것 같고, 그럼에도 열심히 하고, 잘하시잖아요. 동생으로서, 같은 뮤지션으로서 바스코 씨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바스코 형은 일단 계속 힘들게 힘들게 발전하는 스타일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제가 본 바스코 형은 원래는 변화를 싫어해요. 자기대로 더 하고 싶고, 약간 올드한 힙합을 하고 싶어 하는데, 자기를 엄청 끊임없이 채찍질하면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게 보여요. 그게 되게 존경스러워요. 왠지 알아요? 알다시피 수많은 그 세대 래퍼들 보면, TV에 나온 모습으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안 변해요.

 





LE: 마스터 플랜(Master Plan) 시절쯤의 래퍼 분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 옛날 사람들. 어디 회사든 마찬가지인데, 바스코 형과는 다르게 태도가 '내가 잘하고 있는데 내가 왜?' 이런 느낌이에요. '내가 난데, 니네가 뭔데?' 이런 거죠. <쇼미더머니> 프로그램만 봐도 그런 사람들 엄청 많았잖아요. 막 그냥 '내가 난데.’ 하는 거요. 그것도 일종의 망상이거든요? 과거의 현실을 지금에 적용하고 지금이랑 똑같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솔직히 마음 아파요. 근데 바스코 형은 거부하잖아요. 그래서 전 그 형이 한창 힘들어했던 시절, 우리랑 안 했을 때, 진짜 끝날 줄 알았어요.

 





LE: 커리어가요?

 

. 근데 [Code Name : 187] 내고 오히려 프레쉬하게 돌아왔죠. 그 힘든 상황에서요. 그때 딱 마음먹었죠. '나 이 형이랑 하고 싶다.'라고요. 그래서 같이 하게 됐어요.

 





LE: 시기가 정확하게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2011년은 물론이고 [성장통] 때부터 [#1 Mixtape Vol.]를 낼 때까지, 굉장히 슬럼프였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아요.

 

, X슬럼프. 그때는 제가 옛날에 젖어 살았었어요. 제가 그때 얼마나 자만을 했냐면, 세상이 제 눈앞에서 변하는 걸 보면서도 안보기를 선택했었어요. 망상 환자들을 보면서 선택해서 그렇게 된다고도 생각을 엄청 했어요. 왜냐하면, 툭 건들어서 "야 이거 아니잖아. 아니, 아니, 아니. 나 보라고. 너 이거 아닌 거 니가 알잖아." 이런 식으로 끝까지 캐물으면 우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다가 무릎 꿇고 패배 인정. 그제서야 제대로 인정. 망상이 어떻게 보면 존나 힘들게 들고 다니는 하나의 아령 같은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근데 저 혼자 아령 존나 무섭게 들고 다녔어요. 놓기만 하면 되는데놓고 나서 원래 가던 길 가면 되는데, 발전을 위해 가면 되는데 두려워서 안 놓은 것 같아요. 개똥고집이죠. 그때 왜 슬럼프였느냐면, 다른 래퍼가 엄청 크게 되고 있을 때, 저도 그냥 똑같이 하던 거 하면 되는 거였거든요. 근데 부러움도 있었고, 질투도 있었고, 제가 옛날만큼 인정을 못 받는 거에 대한 꼰대 마인드가 생겨가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저 혼자 넘어졌죠. 엄청 크게 넘어졌는데, <쇼미더머니 2> 한다 했을 때, 그때 제가 씨X 개같이 달려들었거든요. 다시 일어서겠다고. 그때 진짜 너무 X신같이 살았었어요.






- 11. 영혼이 담긴 [Punchline King 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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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 이야기를 한 이유가 2012년 초에 [Punchline King ]가 나왔었는데요. 당시에 악평이 되게 많았었어요. 그 믹스테입 자체가 천재노창 씨랑 기리보이 씨의 음악적 색채가 많이 묻어났던 것 같거든요.

 

맞아요.

 





LE: 그 당시에 슬럼프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뭔가 만들어나가고, 변화하려다가 힘들어진 채로 그 믹스테입 내셨던 건가요?

 

아니요. 그게 아니고 제가 너무 맛탱이가 가 있었어요. 교만하기도 하고, 망상적이어서세세하게 못 했어요. 아무것도. 이해 가세요? 그냥 너무 망가져 있는 상태였어서

 





LE: 디테일을 찾지 못하는 그런 상태였던 거군요.

 

. 디테일을 보지도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고. 근데 그 앨범 저 존나 좋아하거든요. 감성적으로 X 진해요. 가사 하나하나가 너무 진한데, 디테일은 제가 신경을 안 썼어요. 너무 심하게요. 욕먹은 이유도 알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도 알아요. 저한테는 추억이에요. 이런 무식함은 전 세계 어디 가도 없을 거예요. 존나 무식했어요. ‘몰라, X 새끼들아.’ 이러는. 약간 술에 절어있는 알콜 중독자들이 만든 음악 같은 느낌이었어요. 좋아요. 저는 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앨범이에요. 무엇보다도 제 영혼이 묻었다는 점에서.

 





LE: 사실 그게 개인적인 측면이 굉장히 많이 반영되어서 그런 거잖아요. 대신에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측면이 떨어졌던 거고요.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번에 논란이 됐던 아이유(IU) "제제"같은 경우에도 다른 걸 떠나서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표가 기의를 잘 못 품고 있는 느낌이었던 거 같아요. "제제"라는 노래만 놓고 보면 되게 설득력이 떨어진다 싶었거든요. 만약 설득력을 제대로 갖췄다면 사태가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았겠다 싶기도 한데요. 결론적으로 음악, 예술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설득해야 반향을 불러오고, 좋은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거잖아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저는 그 노래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저 아이유 씨 팬이거든요? 근데 비슷한 생각인데, 일단 그분이 예술가로 도전한 건 이번 앨범이 처음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건 되게 음악에 재능 있는 사람이 만든 듣기 좋은 'Easy Listening’ 음악이었다면, 이번 건 자기를 까발리려고 리스크를 걸었어요. 리스크를 걸었는데 그 여자는 매력도 너무 많고, 뭐랄까 카리스마도 개쩔잖아요. 그 두 개가 너무 세기 때문에 일단 질투를 어쩔 수 없이 많이 사요. 근데 거기까지 생각하기가 되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내가 이 정도의 주목을 받고 있겠구나.'까지요. 질문 속 말을 빌려 얘기하자면 전 '난 정말 더 설득해야겠구나.'라는 점을 차마 생각 못 했을 것 같아요. 근데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얜 스물세 살이에요. 제가 그 나이에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건 진짜 상상도 안 되는데그런 것 같아요. 설득을 잘해야 하는 것 같아요.

 





LE: 그것도 역시 중간을 잘 찾아야 하는 거잖아요. 설득하려고 음악을 변화시키는 건 정말 의미가 없고, 설득을 안 하자니 타자에게 들려줘야만 대중음악이라는 개념이 성립하는 거니까요.

 

, 동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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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아이유 씨의 "제제" 얘기가 나와서 좀 더 얘기를 해보면, 그 곡에 대해 사람들이 '소아성애다.’라는 식의 얘기도 많이 했잖아요. 표현의 자유와 윤리가 부딪히니, 이걸 어떻게 봐야 하는 거니 등등 많은 논쟁거리를 불러일으켰었는데, 여기에 대해서 힙합 팬들은 꼭 스윙스 씨 가사를 얘기하더라고요. "불도저 (Bulldozer)" 가사 중 예술에 윤리라는 잣대 들이댈 거면 넌 진보하지 말고 / 내 음악도 듣지 말고 닥치고 가서 집 정리나 해.”라는 구절인데요. 그 구절을 거론하면서 '스윙스가 이렇게 얘기했는데, 음악 안에서 다 허용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고, 표현의 자유에 관한 본인의 가치관이나 철학도 궁금해요.

 

제가 자유 발언에 관한 책을 하나 읽었었어요. 저도 궁금한 거예요. '과연 사람이 어디까지 얘기할 수 있지?', '윤리는 예술에 얼마나 영향을 끼쳐도 되는 거지?', ‘법이 과연 예술에 영향을 끼쳐도 될까?’ 그런 거요. 근데 저는 원칙을 정했는데, 가끔은 "불도저 (Bulldozer)"에서 가사를 그렇게 쓸 걸 그랬다 싶어요. 저는 약한 사람, 그러니까 자기를 보호할 수 없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 빼고는 다 괜찮아요. 무슨 말이냐면 저도 옛날에 실수 한 번 했었잖아요 크게? (그 사건에 있어서는) 진짜 저 자신을 용서하는 게 제일 중요한데, 어쨌든 간에 그런 실수를 했어요. 물론, 나쁜 마음에 쓴 건 아니었지만, 제가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사를 썼잖아요. 전 그게 허용이 안 돼요. 그러니까 "불도저" 가사를 괄호 열고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사람은 빼고' 괄호 닫고 이렇게 썼어야 했어요. (웃음) 근데 블랙넛 같은 경우도 한국에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게 블랙넛이 만약 성적으로 좀 더 쿨한 동네에서 살았다면요. 약간 미국 같은 곳에서요. 남녀평등이 50:50인 곳에서 태어나서 그런 가사들을 썼다면 여자들이 웃고 말았을 수도 있어요. 대부분 여자들이요.

 





LE: 예전 공개곡 가사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통틀어서 다. 에미넴이 미국에서 허용되는 이유는 미국 사회의 여성들이 미국 남성에 비해서 특별히 불공평한 게 없거든요. 전체적으로 공평해요. 근데 한국은 너무 심하게 평등하지가 않아요. 불공평한 상태에서 여자들이 자기의 발언권도 없고, 월급도 훨씬 적게 받고,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남자가 용서받는 걸 여자는 용서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너무 많잖아요. 예를 들어, 남자가 술 취해서 벤치에 누워 자면 "에이, X." 이러고 말잖아요. 여자가 술 취해서 자면 미친년이에요. "저 여자는 미친년이다." 이렇게 돼요. 그리고 '남자는 바람피워도 된다.' 이런 주의고. 그렇게 이미 한국 여자들이 사회적으로 너무 많이 눌려있는데근데 블랙넛이 그런 가사를 웃자고 쓰는 게 보이거든요? 저는 알아요 블랙넛을. 걔가 여자에 대한 매너가 우리 중에서 제일 좋아요. 1위에요. 걔는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어서 아직도 여자랑 안 잔 그런 케이스에요. 여자가 안 꼬이는 게 아니라. 걔 여자한테 인기 엄청 많거든요. 근데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뭐냐면 블랙넛 같은 가사가 한국에서 더 문제가 되고,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여자들이 이미 발언권도 없고, 이미 눌려있으니까요. ", X 그만하라고!"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 여자 입장에서는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미국 여자들은 에미넴 음악 듣고, 에미넴이 그런 소리를 할 땐, 그냥 웃고 "X 이 새끼 존나 골깐다."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거예요. 블랙넛이 마음대로 가사를 쓰는 건 저 역시도 막을 수 없어요. 제가 그걸 막기 시작하면 위선자가 되는 거기 때문에. 근데 또 한국에 있는 여자들을 생각하면 저도 존나 헷갈리는 거예요. 근데 본인이 그렇게 하는 건 어쨌든 걔는 나쁜 의도가 아니기 때문에 저도 특별히 막고 그런 건 없는…. 이 문제가 어려운 것 같아요. 근데 어쨌든 저는 최대한 약자는 좀 보호하는 쪽으로 가사를 쓰기로 택했어요. 웬만하면 성소수자, 그리고 여자, 이런 분들 관련해서는 그냥 조크, 장난으로라도 웬만하면 안 하려고요. 가끔은 뭐 할 수도 있는데한국은 그게 어려운 점인 것 같아요.

 





LE: 씨잼 씨는 "신기루"에서 '게이 래퍼'라는 표현을 썼었는데요. 여기에 제리케이 씨도 태클을 걸고, 저희도 주간 콘텐츠 윅엘이(WeekLE)에서 살짝 언급했었는데요. 그런 가사를 써도 일단은 스윙스 씨가 딱히 뜯어말리거나 하시지는 않는 거죠?

 

. 웬만하면. 이거를 한 번 옛날에 얘기해봤었거든요? 블랙넛한테도, 바스코 형한테도, 씨잼한테도 많이 얘기했었어요. 전체적으로다가요. 가사를 이런 쪽으로는 쓰지 말자고요. 근데 씨X 어느 날 제가 독재자가 되어있는 거예요. 어느새 사람들이 자신을 검열하고 있는 거예요. 어느새 사람들이 제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근데 그건 진짜 아니더라고요. 아니어도 너무 아니더라고요. 어쨌든 저는 마지막까지 그냥 이 얘기를 했어요. 니네 말에 니네가 책임지라고. 그냥 그거라고. 만약에 누가 너한테 지랄해서 너가 돌을 맞어. 그건 니 책임이라고.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했어요.

 





LE: 바뀌려면 본인이 바뀌어야지, 나서서 바뀌라고 하는 건 안 된다는 거죠?

 

. 어차피 그러면 겉만 변하지, 속은 안 변하니까요. 강요보다는 설득인데, 설득당하기 싫은 사람이 만약 있다면 그것도 강요고 폭력이에요. 예를 들어, 억지로 전도하는 기독교인처럼, 교회 끌고 가는 사람처럼, 그것도 폭력이에요. 힙합이라는 문화가 한국에서 자리를 못 잡는 이유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놀라울 것도 아니에요. 아직은 이렇게 서로 융화되기 힘든 점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들은 왜 싫어하는지 이젠 너무 잘 알겠고요. 예전엔 그저 이기적으로, 이게 존나 얼마나 멋있는 건데." 라고 하면서 먹기 싫어하는 거 억지로 떠먹이는 오빠나 형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막 술 억지로 먹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싫다는데 어떡해. 놔둬야지. 그런 느낌으로 가고 있어요.

 





LE: 그런데 힙합도 요즘은 많이 변하고 있잖아요. 좀 더 성찰을 하고 그러잖아요. 알기에는 에미넴도 'Faggot'이란 단어를 쓴 걸 사과한 적도 있고, 스눕 독도 자신이 썼던 옛날 가사를 사과하기도 했고요. 힙합 씬도 풍토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그러게요. 사회가 많이 변하고 있네요. 스눕 독이 그걸 사과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LE: 그런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힙합은 원래 그런 거니깐 니가 이해해라.’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요.

 

자기가 원래 그런 사람이고, 그걸 표출하는 순간 남도 그걸 비판할 자격이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걸 잊은 적이 너무 많이 있고요. 근데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저한테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가 존나 쉬운 것 같아요. 솔직해야 하는 거랑 상처 주지 않으면서 솔직해야 하는 거랑 차이가 엄청 크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최소한의 의리가 있는 사람이면 누가 어떤 떡밥을 던지더라도 ", 맞아요. 그 사람 그래요."라고 하는 건 좀 아니잖아요. 특히 제가 상대를 소중히 생각하고, 상처받을 거 뻔히 안다면요. 그래서 그런 것도 적당히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마냥의 솔직함은 멋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무조건의 솔직함은. 그건 자기도 욕 존나 먹을 수 있어요. "너 솔직히 존나 X신이야."라고 누군가가 와서 할 수도 있는 건데, 그게 상처면 존나 찌질한 거지. 그런 거 듣고도 상처 안 받을 자신 있다면 할 말은 없겠다만.






- 12. 브랜뉴뮤직의 중심축이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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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Punchline King Ⅲ] 얘기하다가 멀리까지 왔네요. 대중들과 친숙한 얘기를 하자면 브랜뉴뮤직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최근 얘기로 넘어오면, 브랜뉴뮤직과는 정확히 언제부터 함께 하신 건가요? 대충 2012년쯤으로 보이긴 하는데요.


네. 2012년부터 함께 했죠.






LE: 그럼 3년을 전속 계약하신 건가요?


네. 맞아요. 3년.






LE: 아무래도 먼저 들어가 계셨던 버벌진트 씨의 영향이 많이 컸나요?


제일 컸어요. 그때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운 때였는데, 돈을 빨리 어디에다 안 갚으면 X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계약금이 필요했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그것밖에 중요하지 않았어요. 근데 두 번째로 중요했던 건 제가 음악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였고, 버벌진트 형한테 마지막으로 물어봤거든요. "형, 지금 만족하세요?"라고요. 그랬더니 "어, 만족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제가 들어가는 걸 추천해요?"라고 물어봤더니 "어, 해."라고 대답해서 들어갔어요. 그렇게 들어간 거예요.






LE: 고민 같은 건 없었나요? 급박했다고는 해도 브랜뉴뮤직이 가진 비전이나 색깔, 정체성에 맞춰가다가 본인의 음악적 오리지널리티가 훼손되거나 손해 볼 것 같다든가…


처음엔 전혀 없었거든요. 라이머(Rhymer) 형이 약속을 여러 가지 했으니까. 그래서 OK하고 들어가게 됐는데, 그걸 이해하게 됐어요. 경영인의 입장과 아티스트의 입장. 제가 저스트 뮤직을 하면서 그런 걸 되게 많이 고민했는데, 라이머 형이랑 일을 하면서 곡 가지고 엄청 많이 싸웠었어요. 근데 일단 그 형이 말 그대로 돈을 투자하는 사람이니깐 (그 형의) 의견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전 너무 자유로운 영혼이고. 자켓과 뮤직비디오 편집 갖고도 엄청 싸웠어요. 나중에는 제가 손들었어요. "불도저 (Bulldozer)" 자켓 나중에 시간 되시면 보세요. 저 그거 절대 싫다 했거든요. 너무 센 척하는 것처럼 보여서. 전 좀 너무 유치하다 이런 입장이었고, 라이머 형은 이게 멋있다고 그랬었고요. 자켓까지 그렇게 신경 쓰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그리고 저는 실제 "불도저" 뮤직비디오가 나가는 방향이랑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었는데, 그것도 편집을 한 여덟 번 하다가 제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었고요. "Fallin'" 같은 경우는 (뮤직비디오를) 보지도 않았어요.





LE: 뮤직비디오를요?


네. 그냥 나올 때까지 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마음대로 하라고. 그만큼 라이머 형은 자기의 곤조, 고집, 확신이 있는 스타일이고, 저는 이렇게 싸워서 피곤할 바에는 어차피 뮤직비디오가 구려서 X같이 나와도, 그러니까 제 맘에 안 들게 나와도 '내가 짱이면 돼.'라는 주의였어요. 누구는 그런 협동하는 간지를 좋아할 수도 있는데, 저는 절대. 저는 의견을 누구한테 받아도 제가 허락해야지만 받는 스타일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죠? 근데 누구나 다 그렇겠지.






LE: 사실 미국에는 어떤 레이블에 소속된 아티스트가 자기 레이블을 가진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브랜뉴뮤직에 계실 때도 저스트 뮤직의 그림은 대충 그리고 계셨나요?


네, 그렇죠. 근데 뭐, 기본적으로 웬만하면 '터치 No'. 그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안 그러면 안 돼요.






LE: 그러면 "Lonely"나 "줄래" 같은 경우는 회사의 생각이 많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던 건가요?


네. 특히, 그 두 개는 유난히 그랬어요. 첫 싱글이었거든요. "Lonely"가요. 뮤직비디오도 처음 찍은 거고요. 종신이 형을 섭외하는 건 제 아이디어였고, 비트는 제가 골랐는데, 가사는 다 제가 쓴 거였지만, 후렴은 라이머 형이 썼어요. 그래서 물론 제가 쓴 모든 가사와 제 모든 랩과 노래엔 다 제 영혼을 담아서 했지만, 저와 라이머 형이 섞인 작품이죠. 그다음에 "줄래"는 후렴은 애스브라스(Assbrass) 형이랑 라이머 형이 짰어요. 근데 랩은 제 거였어요. 그래서 딱 보면 섞여요. 근데 제가 섞이는 걸 싫어해요. 근데 투자자 입장에선 이게 팔려야 한다는 입장이고, 저의 입장에선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단 입장이고. 되게 많이 섞였어요. 근데 "Lonely"는 개 망했고, "줄래"는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요. 결과주의적으로 보면 그렇게 나쁘진 않았는데, 좋은 경험이었어요.






LE: 근데 두 개보다 "불도저 (Bulldozer)"가 더 잘되었잖아요.


네. "불도저 (Bulldozer)"는 100% 제 마음이었죠.





LE: 거기서 얻은 깨달은 점도 있지 않았나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니까 된다 그런 느낌이랄까요?

 

네. 진짜 사람들은 어쨌든 진하고, 소울이 가득한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전 그때 (그 가사가) 존나 빡쳐서 쓴 가사였어요. 두 번째로 욕 존나 먹을 준비, 각오를 하고 쓴 거예요. 묘한 게 너무 잘 되길 바라고 만든 건 또 잘 안되더라고요. 존나 묘해요. 개 묘해요. 그리고 참고로 제가 "불도저 (Bulldozer)"랑 "For Mother"라고, 엄마랑 같이 얘기해서 낸 노래가 있는데, "For Mother"는 개 묻혔었어요. 라이머 형이, "이건 대중들에게 들려주고, "불도저 (Bulldozer)"는 니가 하고 싶은 얘기로 해서 내자."해서 한 거였는데요. 저도 거기에 동의했었고요. 근데 "불도저"는 순위권에 올라갔었어요. 멜론에서 막 3위이랬어요. 그래서 보면서 ‘와, 이게 무슨 현상이지?’ 이랬어요.






LE: 확실히 좀 이례적인 감이 없지 않아 있었죠. 그런데 브랜뉴 뮤직에 들어간 이후, [#1 Mixtape Vol. Ⅱ]가 나오잖아요. 그 앨범은 또 스윙스 씨 꼴리는 대로, 완전히 터치를 안 받은 느낌이더라고요.


아, 네. 그 앨범은 그랬는데, 그걸로 라이머 형이랑 또 엄청 존나 싸웠어요. 저는 그걸 정규 3집으로 하겠다고 하면서 존나 싸웠거든요. 라이머 형은 무조건 믹스테입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왜?"라고 하니까 이건 너무 힙합이라고. 너무 (셀링 포인트가) 없다고. 근데 저는 이거라고. “듣고 있어?” 내 소울에서 나온 음악인데, 이거 대중적으로 분명히 뜰 거라고. 형, 이거 좀 밀어달라고 했었어요. 근데 아쉽게도 안 밀어줬었어요. 그래서 믹스테입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되게 한이 맺혔어요. 제 3집이었으면 해요.






LE: 사실 그런 게 있잖아요. 앨범 구성의 어떤 불문율이랄까요? 정규 앨범은 정규 앨범답고, 믹스테입은 믹스테입다운 거. 근데 그런 걸 되게 신경 안 쓰시는 것 같아요. 군대 가시기 전에 나왔던 [Vintage Swings]도 그렇고요.


제가 생각했을 때 정규면 돼요. 어떻게 설명도 못 하겠어요. 정규는 좀 더… 모르겠다. 좀 더 형태가 있는 노래들? 제 믹스테입들은 다 형태가 없는 노래들 위주인데… 벌스 하나 딱 하고.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들. 그런 기준 정도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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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런 거로 따지면, [#1 Mixtape Vol. Ⅱ]는 정규 앨범이었네요. 형태도 다 있었고요.


네. 형태가 다 있었죠.






LE: 믹스테입 얘기를 좀 더 하면, 스윙스라는 사람이 가진 면모가 굉장히 많잖아요. 강한 것도 있고, 우울한 것도 있고, 사회적인 얘기도 하고, 기타 등등 많은데, 이 믹스테입에 그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들이 트랙별로 다 담겨있는 것 같거든요. "No Mercy" 같은 경우에는 비장미가 넘치는 곡이었고요. 만드시면서 '이건 내 여러 가지 면모가 다 담긴 앨범이다.'라는 생각도 드셨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그 당시의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그런 식으로 음악 내는 걸 되게 좋아해요. 랩 듣는 사람들 중에 불만 있는 사람들이 막 그러잖아요. "야, 돈 얘기밖에 안 해?", "잘난 척만 하루 종일 할 거야?", "펀치라인만 하루 종일 때릴 거야? 다른 것 좀 보여줘 봐." 그렇게 말하는 거에 대한 답가? 근데 [Punch Line King]도 그렇고 항상 그런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얘기 최대한 많이 하는 거. 그냥 맨날 뭐, "너 죽여버릴게." 말고, 다른 것도 항상 하고 싶었죠. 해야 되고dy.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계속 도전. 안주하지 않는 거. 저 이제는 그냥 잘난 척하는 가사는 진짜 5분이면 쓰거든요. 장난치고 지랄하는 거는요. 근데 그건 저한테 너무 쉬운 게 됐어요. 그래서 또 최대한 어려운 얘기 하기. 해야만 하는데 무서워서 못하는 얘기. 저번 달에 나온 [Levitate]에 그런 거 존나 많아요.






LE: 앨범을 보면, AOMG에 계시는 그레이(GRAY) 씨가 참여하잖아요. 근데 그때 그레이 씨가 당시에 "깜빡"을 제외하면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는데, 이것도 스윙스 씨의 안목이 좋다는 하나의 예시인 거 같기도 해요. 어떻게 함께 하게 되신 건지 궁금해요.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한 번 연락이 닿았다가 말았었는데… 처음에는 기리보이가 존나 추천하는 거예요. 그레이라는 사람이 짱이라고. 그래서 연락을 하고 친하게 지냈는데, 곡들이 진짜 다 X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야, 그레이야. 나 좀 도와줘. 나도 열심히 같이 해보자." 해가지고, 걔가 진짜 우리 집에 맨날 와주고, 믹싱 존나 해주고, 녹음 받아주기도 하고, "듣고 있어?" 멜로디도 걔가 썼고, "A Real Lady" 멜로디도 걔가 쓰고 그랬었어요. 아, "Pool Party"는 제가 다 썼어요. 근데 사람들이 다 그레이가 한 줄 알아요. 그래서 좀 빡쳐요. 이걸 제가 존나 성의 있게 만든 건데, '아, 역시 그레이는 천재다.' 이래요. 과연 스윙스가 만들었다고 알면 사람들이 '스윙스는 천재야.'라고 할지 전 궁금해요. 아무튼… 아, "A Real Man"도. 내 첫 멜론 1위. 사람들은 멜론 1위 하면 막 까는 그런 분위기가 있잖아요. 전 멜론 1위 해서 개X 자랑스럽거든요. 음원 사재기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 아는데, 전 그 사람들처럼 반칙 안 하고 1위 했잖아요. 전 그래서 존나 자랑스러워요. 맨날 1위 했으면 좋겠어요. 아무튼 간에 그레이 존나 멋있는 놈이고, 제가 알아봤다기보다는 너무 잘하니까 누구나 알아보는 거예요. 걔랑 평생 같이하고 싶어요.






LE: 요즘도 좀 보고 지내시나요? 작업을 같이 한다든지 그런 거는 없나요?


아, 있어요. 얘기 많이 하고, 최근에도 한 번 봤어요.






LE: 요즘 되게 잘나가시는 것 같더라고요. 유니클로(Uniqlo) 모델…


맞아요. 걔는 또 얼굴도 잘생겼으니까 할 수 있는 게 많죠.






LE: 잠시 빼먹었는데, 아까 소재 관련해서 얘기하실 때요. 정말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잖아요. ‘너희는 그런 것밖에 할 얘기가 없느냐’, ‘다른 할 얘기도 많을 텐데 왜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하느냐’ 등등… 본인 같은 경우는 소재 같은 걸 일부러 찾아다니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본인의 생각이나 감정이 여러 개로 분출해서 다양하게 퍼지는 건가요?


어떤 식이냐면, 제가 하고 싶은 말이나 평소에 하는 말이 음악에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하는 말이나 생각에 비해서 제 음악은 주제가 한정돼 있거든요. 그래서 저 자신한테 존나 빡치는 거예요. 내가 평소에 이렇게나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내 주관으로 이렇게나 많은 가치를 추구하는데, 왜 난 이걸 표현을 못할까 하는 답답함이 있거든요. 이건 순전히 저를 위한 건데, 그래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죠. 그게 커요. 그래서 대답하자면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나에 대한 도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사람과 의사소통하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 그때 진짜 존나 행복한 거 같아요. 내가 노래를 썼는데, 어떤 사람이"Shit, 나 이거 느꼈어." 할 때. 그때 존나 행복해요.






LE: 그럼 주제가 너무 한정된 사람들은 그냥 그런대로 멋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나는 솔직히 당신한테 매력을 못 느끼겠어.' 이런 생각도 있나요?


왔다 갔다 해요. 이런 생각을 되게 자주 해요. 뭐랄까, '너는 너무 얍삽한 거 아냐?' 이런 기분이 들다가도 '지 마음이지, 뭐.' 이런 기분도 들어요. 그 '지 마음이지, 뭐.를 잊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지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제가 누구라고 자꾸… 이 심판 정신을 계속 버려야 해요. 근데 이게 제 성격이기도 하네요. 하여튼 계속 중간을 찾으려고 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LE: 그렇군요.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빼먹었는데, [Upgrade Ⅱ]의 수록곡 "지금부터 잘하면 돼"에 관한 얘기를 조금 해볼게요. 이 곡도 역시 그런 감정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조금 있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일화들과 엮어서 풀어내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아까 얘기하신 내고서 실수하고, 잘못했더라도 다시 잘하면 된다는 정신이 스윙스라는 뮤지션이 음악을 해나가는 원동력이자 이 노래가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줬던 이유인 것 같아요.


그 노래는 진짜 제 소울에서 나왔어요. 너무너무 제 소울이었어요. 그때 진짜 실제로 호주에서 존나 울었었거든요. 힘들어서요. 그냥 저 자신에게 늘 하는 말이에요. 무슨 일 있을 때, 너무 힘들 때, ‘잘하면 되잖아?’ 해요. 그리고 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얼마나 많겠어요. 그 사람들이 그걸 듣고 기분 좋았으면 싶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인물을 넣은 거예요. 저와 한 여자. 제가 알던 여자. 비슷한 경우가 있었거든요. 아니, 많은 여자가 약간 이런 비슷한 경우였어요. 예뻐서 인기 많았다가 조심성이 좀 없어서 이 남자 저 남자랑 놀아나다가 얘네들이 상처받고, 그것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 애들을 다구리치고 이런 일. 이런 걸 하도 많이 봐가지고. 그리고 제 학생이었던 애 얘기도 있어요. 고등학생이었는데 울고, 집에 가서 연락이 다신 안 왔어요. 한 번도요. 근데 아쉽게 그 노래가 많이 잊혔더라고요. 많이 잊힌 것 같아요.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돼요. 그리고 언젠가 저도 그런 노래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100년 뒤에도 사람들이 듣는 노래. 힘들 수도 있겠지만요. 100년까지는 오바인 것 같고, 아니 들을 수도 있지만, 5, 60년 뒤. 비틀즈(Beatles) 같이. 진짜 시대를 초월하는 클래식. 제 생각에는 "듣고 있어?"가 제 노래 중 그 첫 노래가 될 수도 있어요.






LE: 근데 "지금부터 잘하면 돼"를 들어보면 마지막 벌스에 호주에 사는 형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형과의 얘기도 궁금해요.


호주 갈 때마다 만났어요. 두 번째 갔을 때가 2년 전이었는데, 지금도 연락 가끔 해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형이에요. 존나 멋있는 형이에요. 남자답고. 고등학교에 같이 다녔던 형인데, 제가 존나 좋아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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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리고 아까 레슨 했던 학생도 있다고 하셨는데, 레슨에 관한 얘기도 해보고 싶어요. 뭐랄까, 레슨을 함으로써 어린 친구들한테 영감을 받는 순간이나 혹은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 있을 것 같거든요.


존나 많아요. 어린 애라고 의견 안 듣는 것보다 멍청한 건 없어요. 어린 애들이 제 랩을 듣잖아요? 걔네들이 제일 솔직하게 평가해주요. 진짜 무서운 게 뭐냐면 제가 18살, 20살 때는 전 제가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이 먹고는 18살, 20살 애들 무시하는지. 되게 교만한 생각인 것 같아요. 제 입장에서요. 남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근데 이제 저는 제 랩을 누구보다 애들한테 많이 들려줘요. 제 주위 사람들, 동생들한테. 그럼 애들이 엄청 세세하게 얘기해주는데 다 맞는 말이에요. 저 녹음 할 때 항상 동생들 데리고 해요. 제 학생이었던 애들 한 네 명 앉혀놓고, “너네가 다 얘기해.”라고 하고 랩 존나 해요. 그러면 애들이 존나 솔직하게 말해줘요. '형 No no no', '오, 이거 감정 쩔었어요.' 이런 식으로요. 근데 제가 실제로 감정이 쩔었다고 생각하는데, 걔네들이 알아서 그걸 얘기해줘요. 누구나 다 가슴 안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하는 그게 있어요. 가사에 몰입하고 말하는 건지, 기계적으로 뱉는 건지도요. 저는 동생들한테, 학생들한테 너무 많은 걸 배웠어요. 몇백  명을 가르쳤는데,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요.






LE: 지금은 안 하고 계신가요?


지금은 안 하고요. 제가 한마디 하자면, 레슨을 굉장히 비난하는 그런 래퍼들도 있는데, 그중에 레슨 조금이라도 한 사람 저 꽤 많이 알고 있거든요. 그런 말 안 했으면 좋겠어요. 자기도 했으면서. 두 번째는 하면서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존나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기회잖아요. 저는 저를 통해서 진짜 나아진 사람들 존나 많이 봤거든요. 저를 통해서 변화하는 걸 많이 봤거든요. 그건 제 성향이기도 한데, 전 누굴 발전시키는 걸 존나 좋아해요.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 직업이 부끄러운 것처럼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이건 존나 아름다운 거예요.






- 13. Mr. 쇼미더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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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레슨 얘기를 좀 길게 해봤는데, 아까도 잠시 얘기한 <쇼미더머니> 관련된 질문을 다시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우선, <쇼미더머니 2>에 나간 건 브랜뉴뮤직과는 관계가 없는 일인가요?


오히려 그쪽에서는 싫어했어요. 싫어했고, 저를 의심했고, 그 당시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부터 시작해서 주위 사람들이 다 말렸어요. 너 지금까지 이뤄놓은 거 한 번에 다 잃을 수 있는 기회라고. 미쳤냐고. 다 ‘Fuck You.’ 했어요. 까라고. ‘보라고 XX놈들아.’ 이런 태도였어요. 보란 듯이 보여줬죠. 진짜 다 말렸어요. 나가라는 사람은 거의 한 명도 없었어요.






LE: 사실 <쇼미더머니 1>의 경우에도 테이크원(TakeOne) 씨부터 기성 래퍼라고 할 만한 사람이 몇 있긴 했는데요. 그래도 어떻게 보면 지금 <쇼미더머니>의 전체적인 지형을 만든 첫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스윙스 씨이기도 하잖아요. 기성 래퍼들이 많이 출연하게 된 시발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맞아요. 근데 고맙다는 말 없잖아요. 개새끼들. 나 안 나갔으면 눈치 보고 안 나왔을 거 내가 뻔히 아는데. 얘가 하니까 나도 이제 해도 된다. 이런 사람들 많았던 거 알아요.






LE: 그게 또 <쇼미더머니 3>에 일리네어 레코즈(Illionaire Records)가 나오면서 더 그랬던 것도 있는 것 같고요. 근데 일단은 미디어나 시스템이 있다면 그걸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신가요?


네. 당연하죠. 당연하죠. 그러니까 이거에요. 꿈이 제이지나 칸예 웨스트(Kanye West) 같은 래퍼가 되는 거예요. 제이지 TV 나오는데? 칸예 웨스트 맨날 TV 나오는데? 왜 그런 꿈을 가진 사람들이 TV 나가는 걸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전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실패할까 봐 무서워서. 근데 남들이 하면 자기는 실패할까 봐 무서워서 안나가는 건데, 남이 잘될까 봐 그걸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당연히 미디어를 이용해야죠. 힙합은 언더독의 이야기에요. 언더독이 그 큰 깡패 미디어를 이용해야지. 아니, 깡패라는 건 좀 그렇고, 크나큰 미디어를 이용해야지. 왜 그런 태도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제이지는 되고, 칸예 웨스트는 되고, 트래비스 스캇(Travi$ Scott)도 되고,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도 되고, 제이콜(J. Cole)도 되는데 한국 MC들은 안 되는 이상한 태도. 왜겠어요? 질투지. 얘가 잘될까 봐.






LE: 근데 아까 잠시 얘기가 나왔던 것처럼 <쇼미더머니>의 예선이나 경선 방식에 대해서 꼬집으면서 마음에 안 든다는 스탠스도 타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X같은 프로그램이라도 내가 멋있게 하면 내가 멋있게 보이는 거고, 내 멋이 그냥 보이는 거예요. 두 번째 얘기하자면 래퍼들도 최근에 리얼리티 쇼 있었어요. 막 결혼하고, 연애하고 하는 거 찍는 거 있잖아요. 혹시 알아요?





LE: 미국 프로그램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막 조 버든(Joe Budden) 나오고, 다 나왔었어요. 1, 2년 전이었는데, 무릎 꿇고 여자한테 프로포즈했는데 뺀찌 먹고 하는 거. 1, 2년 전이에요. 아마 한 2년 전쯤? 그런 프로그램도 많고. 예를 들어, 미국 래퍼들 약간 멋없는 CF도 존나 많이 찍고 하는데, 그거 가지고 또 까는 래퍼들도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죠? 나스(Nas) 같은 경우는 CF를 아예 안 찍더라고요.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나스와 같은 세계관을 갖고 있지 않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그냥 제가 멋있으면 끝이에요 어떤 프로그램이든. 진짜 좋은 예로 많은 사람은 인터뷰 영상을 찍을 때나 TV 프로그램, 뮤직비디오 찍을 때 돈 얼마 투자했냐, 그에 따라 때깔이 얼마나 나냐 기타 등등을 따지잖아요. 제 생각은 본인이 멋있으면 아무리 X같아도, 들리기만 할 정도로 멀쩡하게만 하고 얼굴이 찌그러지지 않을 정도의 영상이면, 결국엔 그 사람의 멋이 드러나요. 그리고 결국에는 떠요. 진짜 저예산 뮤직비디오로 뜬 사람들이 한두 명이에요? X같은 프로그램에 나와서 뜬 사람이 한두 명이에요? 아니, X같다고 하기보다는 별로 성의 없는. 더 좋은 예를 들어서, 옛날 믹스테입 시절. 이센스, 스윙스, 사이먼 도미닉, 베이식 그 시절. 우리는 씨X 믹싱도 안 하고 냈는데 존나 떴잖아요. [감정기복] 저 믹싱 안 했을 걸요? 아니, 믹싱 몇 곡은 했고… 마스터링을 안 했을 걸요? 아니, 했나? 하여튼 X같은 음질인데 사람들은 그냥 그 본질을 봤잖아요. 기술적으로는 모자랐지만, 본질은 봤던 거예요. 전 언제나 자기가 멋있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미디어는 당연히 좋지. 왜 안 좋아. 한마디만 더 할게요. 인스타그램도 미디어고, 트위터도 미디어인데, 왜 TV는 나쁜 미디어인지 모르겠어요. 더 많은 사람이 봐서? 항상 인스타그램으로 존나 떠야 멋있는 거예요? 트위터로 떠야지 존나 멋있는 거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LE: 그러면 <쇼미더머니>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보다 차라리 탈락하더라도 뛰어든 게 낫다고 생각하세요? 피타입 씨처럼요.


네. 당연히 무조건 나와야죠. 대신 하나 얘기하면, 그간 <쇼미더머니> 욕하면서 안 나오다가 위기 느끼고 나온 사람들 보면 어쩔 수 없이 저도 열이 많이 받는데, 어쨌든 간에 그렇게 랩 잘하면 나와야죠.






LE: 입대 후에도 <쇼미더머니 4>가 있었는데, 보면서 어떤 느낌이었나요? 본인이 없어서 앙꼬 없는 붕어빵 같다고 느끼셨는지, 그게 아니더라도 예전과 비교해서 어떤 게 달라진 것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게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거기 나온 래퍼들, 악마의 편집을 되게 두려워하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말을 함부로 안 하더라고요. 의견을 잘 안 내고. 그게 되게 아쉬웠어요. 두 번째는 저 있었으면 시청률 달라졌을 거예요. 저 있었으면 결과 자체가 달라졌을 거예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저는 'Mr. 쇼 미더머니'에요. 난 'Mr. 쇼미더머니'야.






LE: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게 마이크 쟁탈 후에 싸이퍼 하는 스테이지였잖아요.


아, 그거요. 저도 그거 되게 별로였어요.






LE: 되게 얘기가 많았잖아요. 서출구 씨가 혼자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다른 사람들은 마이크를 쟁취하려고 몸싸움을 벌이고.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MC들은 이해가 가요. 나왔으니까 씨X 살아남아야지. 근데 그렇게 짠 분이 조금만 래퍼들 가오들 생각해줬으면 싶었어요. 이미 일어난 일이고, 제가 존나 씨X 이제 와서 센 척할 것도 아니지만… 그냥 다음에는 좀만 더 가오 좀 살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마음이고요. 래퍼들 전 절대 아무도 비난하고 싶지 않고, 서출구의 선택도 존중하고, 다른 래퍼들의 선택 다 존중해요. 아무튼, 각자 다 그렇게 한 이유가 있잖아요? 비난받을 사람 없어요. 단지 그렇게 만들었단 거는 정말로 나는 아쉬워요. 그렇게 했으면 안 됐다고 생각해요. 그냥 아쉽죠.






LE: 저는 그걸 보면서 든 생각이 '죄수의 딜레마' 같다는 거였어요. '죄수의 딜레마'가 그렇잖아요. 둘 다 실토하지 않으면 둘 다 살 수 있고, 실토하면 넌 살려주고 쟨 죽이겠다는 상황에서 어쨌든 사람은 완벽하게 믿을 수 없으니까 누군가는 실토를 하게 되잖아요.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고, 정말 이상적인 상황일 수도 있는데, 그때 모든 이가 거부해서 그 스테이지를 무마해버리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정말 이상적으로 말이죠.


저도 그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려면 리더가 필요해요. 아무도 그걸 리드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LE: 그럼 스윙스 씨가 계셨으면 그렇게 하셨을 것 같나요?


네, 저는 그냥 다 모아서 “야, 이거 그냥 하지 말자.” 이렇게 했을 것 같아요. 이건 그냥 바꿔주십시오. 그냥 한 명씩 하고 평가하는 거. 넌 잘했어. 넌 별로. 이렇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모르겠어요. 아무튼, 전 리드했을 것 같아요.






LE: 사실 <쇼미더머니 2> 때도 그러셨잖아요. 서약서 관련해서요.


아, 그거 알고 계셨어요?





LE: 네. 그때 저희 영상 콘텐츠 힙토쿠(HIPTALK) 때 말씀해주셔서… 서약서 관련해서 서명하는 걸 거부하셨다고 얘기하셨던 거로 기억해요.


그때 <쇼미더머니> 스태프분들 되게 서운해하셨어요. 나쁜 마음에 그런 게 아닌데, 제가 존나 공격적으로 나갔거든요. 저도 그런 성향 좀 고쳐야 해요. 거부를 해도 예의 있게 거부하는 방법을 좀 배워나가는 중이에요. "죄송하지만 이렇게 하는 게 제가 좀 약간 그럴 것 같아서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야하는데, "이거 왜 ㅁㄴㄹ아ㅓㅁㅇ니" 이런 식으로 하니까 존나 미안해요. 그분들도 위에서 누가 하라고 하는 경우가 다수인데.






LE: 그러니까 돌려 말하는 게 아니고, 예의 있게 말하는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죠. 예의 있는 화. 그걸 배우고 있어요. 이 나이 먹고 인제야. 예의 있는 화.

 





LE: <쇼미더머니 4>는 군대에 계실 때 방영이 시작되고, 끝났잖아요. 이 시즌에 블랙넛 씨가 엄청난 문제아이자 이슈 메이커로 떠올랐었는데요. 근데 어떻게 보면 스윙스 씨랑 똑같았던 거 같아요. 스윙스 씨가 4강에서 떨어졌어도 제일 리얼하단 걸 보여줬고, 블랙넛 씨도 4강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마지막 무대에서 제일 잘했던 것 같은데요. 나중에 사람들 반응 같은 걸 접하시고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블랙넛에 대해서요? 일단은 되게 멋있게 했어요. 정말로 누구보다도 멋있게 잘 보여줬고, 누구보다도 거기서 드라마가 많았고요. 블랙넛 자체가 애가 착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저스트 뮤직에서 제일 착한 사람 솔직히 저는 블랙넛 같아요. 다 착한데 걔가 제일 남의 기분 생각해주고, 제일 사람 웃겨줄라고 챙겨주고, 섬세한 놈이에요. 의리도 강하고요. 그래서 그게 TV에 반영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아무리 막 이 새끼 일베충이고, 이런 가사 썼고, 이런 쓰레기고, 인간쓰레기에 악마라고 해도 막상 얘를 보면 그런 위협이 전혀 안 느껴지니까. 사람들은 얘를 다 알았던 것 같아요. ‘얘는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런 애가 아닌데?’라고까지 사람들이 단정 지어버렸던 것 같아요. 그런 것도 큰 몫을 했고… 너무 대견스러워요. 블랙넛 제가 2년 전부터 나가라고 했거든요. 무조건 나가라고. 이건 무조건 기회라고. 너 같이 잘하는 사람은 알려지기만 하면 된다고. 왜 안 하냐고 하니까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릴 샴(Lil Cham)을 보면서. 릴 샴이 가사 절었을 때 표정을 보면서 "제가 저 기분 안다니까요. 형 나 못 나가겠다니까요."하면 "X까. 나가."라고 했었어요. 그게 제 스타일이에요. 너 씨X 할 수 있다고. 이런 식으로요. 약간 영감 코치? 근데 결국엔 나가더라고요. 너무 걱정했는데 나가더라고요.






LE: 블랙넛 씨가 젠더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거론이 많이 되는 래퍼시잖아요. 근데 사실 옛날에 쓰던 가사들 있잖아요. MC 기형아 시절에 썼던 가사들. 대표적으로 문제시되는 가사가 자기가 좋아했던 중학생 여자애를 강간하고, 살인해서 토막 내고, 산에 묻는 내용, 그리고 자기 친구의 엄마를 보고 되게 섹시하다고 느낀 내용의 가사인데요. 그런 가사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질타를 받았단 말이에요. 어쨌든 잘못된 부분이 있긴 한데, 사실 그런 가사들을 쓴 건 데뷔 이전이었고, 데뷔 이후에 정식 음원으로 출시한 음악에서는 적어도 그때보다는 비교적 그 수위가 낮아진 거 같아요. 그래서 MC 기형아에서 블랙넛으로 오면서 어떤 스윙스 씨의 컨트롤 같은 게 있었는지 싶어요.


솔직히 영향은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잠깐 제가 통제를 했었어요. "이거 좀 심하지 않냐."라고 하면서요. 제가 늘 말하는데, 블랙넛한테 항상 여자에 대해서, 이 사람들의 자존감에 관해서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너는 천재라고. 너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다고. 누구도 질투할 필요도 없고. 맨날 물어봤어요. "너 진짜 빈지노 부러웠어?" 이랬거든요. 귀엽더라고요. 새끼. "솔직히 안 부러워요." 이러더라고요. 항상 제가 정신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려고 노력해요. 고마운 건 걔가 항상 제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다음에 알아서 판단하더라고요. 근데 진짜 옛날이랑 아예 달라요. 옛날에 저랑 만나기 전의 음악들 들어보면 진짜 기겁해요. 솔직히 안 듣거든요. 최근에 되어서야 그 노래 들었어요. "수간". 그냥 그런 노래도 있구나 했고, 사람들이 얘를 뭐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되더라고요. 그냥 지금도 영향을 항상 끼치려고 해요. 강요가 아닌 설득.






LE: 블랙넛 씨 얘기를 조금 했는데, 다시 <쇼미더머니> 얘기로 돌아와 볼게요. 참가자들이 소리를 크게 지른다거나, 공간을 넓게 사용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스윙스의 영향을 받아 그런 거라고 편집이 돼서 방송에 나간 적이 있는데요. 실제로도 다른 사람들이 본인을 어설프게 따라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그럼요. 귀엽죠. 귀여운데 한편으로는 영광이에요. 왜냐하면, 모방이 최고의 칭찬이거든요. 그런 쪽으론 영광인데, 두 번째로는 '이제 소리 그만 질러야지.'라는 생각이에요. 그 친구들이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제 모습을 보았는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빡쳐있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 그렇지는 않지만, 힙합 바이브 중 하나가 100%를 보여주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80%만 보여주면서 여유 있게, 상남자 같게. (보면서) ‘내가 너무 110%를 하려고 했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저한테는 도움이 됐어요. Oh, shit. 내가 너무 펌핑했구나. 터지기 직전까지 농구공에 바람을 넣는다고 좋은 게 아니잖아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제 나오는 음악은 80%짜리가 많을 거예요. 절제의 미. 적어도 예전보다는.






LE: <쇼미더머니 2> 하실 때, 탈락하신 무대가 앞쪽의 무대보단 덜 터진 그런 느낌이 있었잖아요. 앞쪽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뒤에선 짧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힙토쿠> 때 말씀하셨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그때 무대를 만들어 나가면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외부 압력 없이 본인의 구상대로 꾸려갈 수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100% 제 구상대로 했고요. 거의 99% 제 아이디어였고요. 그때는 스윙스가 그 어떤 때보다도 완벽주의자 같았어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전 뭘 그렇게 열심히 한 적이… 본선 전에는 대강대강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왜 그랬지.'라는 생각이 들죠. 본선 무대할 때는 완전 제 세상에 있었고 몰입했었어요. 그래서 스태프 진과 (이) 현도 형이 굉장히 피곤해했어요. "더 이상 연습해서 나아질 게 없는데? 됐는데?"라고들 했어요. 최고의 칭찬이죠. 저는 그렇게 열심히 해본 적이 없다니까요. 그때는 굉장히 즐거웠고, 그 어떤 무대도 후회가 없어요.





LE: 무반주로 하셨던 무대가 생각이 나는데, 사실 그 무대의 원형 중에 <힙합엘이 토크콘서트> 때 보여주신 “Love Yourself” 라이브도 있고, 테드(Ted) 강연에서 보여주신 라이브도 있잖아요. 슬래밍 그 자체에 로망이 있으신 것 같아요.


맞아요. 랩하는 사람은 반주가 없어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아노 솔로, 드럼 솔로, 보컬 솔로, 이런 것들은 당연한 건데, 근데 또 제가 그걸 하니깐 되게 욕심내는 사람처럼 보이는 거예요. 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도 저에게는 도전이죠. 저는 이게 힙합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안 해본 것 해보는 실험 정신. 남들이 안 하려고 할 때, '내가 최초야.'라는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제게 다시 해보라고 하면 저는 만 배 더 잘할 수 있어요. 업그레이드됐어요.






LE: <쇼미더머니> 보면, 1차 오디션 때 아카펠라 랩을 하면서 어느 정도 박자에 맞춰서 하는 게 아니라 쉬어가면서 연기 톤으로 랩을 하는 사람도 꽤 있잖아요. 그런 것도 어느 정도는 본인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나요?


보이죠. 이것도 역시 귀여워요. 아까 모방은 최고의 칭찬이라고 했는데, 또 모방은 모든 예술의 시작이라고도 생각해요. 아니, 모든 것의 시작이죠. 제가 말을 어디서 배웠겠어요. 모방한 거잖아요. 엄마, 아빠부터 시작해서요. 이것도 시작이에요. 저는 그걸 욕할 마음이 1%도 없어요.






LE: 이건 여담인데, 사실 비아이(B.I.) 씨가 1차 때 하는 것을 보면서 실패하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눈에 담겨 있는 느낌이 전해져오더라고요. 1차 오디션 때도 실수를 하니까 무대 위로 뛰쳐나가고 그러더라고요. 뭔가 만회하려는 게 보였어요.


비아이 존나 귀엽고 멋있어요. 걔는 진짜 크게 될 거예요. 저스트 뮤직에 새 멤버가 들어오는데요. 물론 걔는 아닌데, 걔도 자꾸 욕심이 나요. 아무튼, 비아이 진짜 멋있어요.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LE: 혹시 앞으로 <쇼미더머니> 참여 제의를 받으시면 하실 건가요?


아마도 할 것 같은데요. 그때는 제가 의견을 많이 주려고요. 예를 들면, 스눕 독이 나온 그 스테이지 있잖아요. 그런 걸 하려고 한다면 강력하게 막을 거예요. 근데 힙합이 음악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엔터테인먼트이기도 하잖아요. 사람들이 그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랩만 잘하고 잊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굳이 이름을 열거하진 않을게요. 제가 좋아하는 미국 래퍼들 포함해서 하는 이야기예요. 엔터테인먼트도 있어야 해요. MC라면 스튜디오에서만 잘할 게 아니라 무대에서도 잘해야 하고, 프리스타일도 잘해보려고 노력해야 하고, TV에 나가서 자기 생각 조리 있게 말하는 방법도 알아야 할 것 아니에요. 진짜 왕은 여유가 있어야 해요. 진짜 알파 메일(Alpha male). 알파 메일은 웃음이 많아요. 그런데 그런 것도 없이 '이렇게 하면 안 돼'.라는 말만 하는 사람은 자기가 쪼다라서 그런 거예요. 뭔 말인지 알죠? 저는 <쇼미더머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게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그렇게 잘났으면서 왜 안 보여주는데? 아카펠라 랩 하는 거 영상 찍어서 보여달라고. 미국 사람들처럼 창의적인 거 해보라고. 뭐, 버거킹 가서 주문할 때 랩으로 해본 적이 있나. '넌 뭘 했냐?'라고 묻고 싶어요. 넌 뭘 했길래 남을 그렇게 비난하냐고.






LE: 힙합엘이에서는 <쇼미더머니> 시즌 3 때 매회 리뷰가 나갔었는데요. 비판적인 논조로 글을 쓰는 동시에 그 안에서 참가자들이 어떤 것을 보여주었는지 조명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었는데요. 사실 프로그램의 형식 자체만 놓고 보면, 아쉬운 점은 매번 있었어요.


물론이죠. 계속 발전시켜야죠.






- 14. 한국힙합 씬의 황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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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는 컨트롤 대란에 관련된 내용인데요. <쇼미더머니> 이후 더 큰 강풍은 컨트롤 대란 때였어요. 기간에 차이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요. 느낀 바도 많았을 것 같아요. 켄드릭 라마가 터뜨렸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파장이 생겨났었잖아요. 전반적인 상황이나 소감으로 컨트롤 대란에 관해 정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당시에 모두가 감정적으로 갔었는데, 저는 재미있었어요. 많은 사람이 저에 대해서 이래저래 많이 오해하는데, 저는 딱히 어떤 해명을 안 했어요. 그냥 엔터테인먼트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재미있게 지나간 일인 것 같아요.






LE: 그러면 컨트롤 대란 이후에 적이 더 많아졌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은 기존의 적이 더 적대적으로 대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게 힘이 생기니까 이런 사건마저도 제 쪽에 사람들이 더 붙게 만들어요. 제가 만약 그때 꼬리를 내렸다면, 다시 복귀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니, 그보단 사람들이 저에게 더 다가오질 않았을 거예요.






LE: 앞서 박재범 씨에 관련해서 얘기해주신 걸 토대로 보면, 박재범 씨와 아주 막역한 사이는 아닌 것 아니지만, 좋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근데 어글리덕(Ugly Duck) 씨가 AOMG에 들어갔잖아요. 딱히 불편한 건 없나요?


없어요.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그때 디스전 끝나고 힙합인들이 거의 다 모이는 공연이 있었어요. 기자들도 많이 모였대요. 누가 때리나, 싸움판이 벌어지나 해서요. 어글리덕이 저쪽 방에 있대요. 제가 깜짝 놀라게 하려고 가서 "야, 이 개새끼야. 맞짱 뜨자."하면서 장난을 쳤었어요. 그러니까 어글리덕이 "뭐래, 돼지 새끼가. 돼지, 돼지, 돼지."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뭐 쿨하게 (받아들였죠). 사실, 서로 감정 상할 수 있죠. 주고받은 말들이 셌잖아요. 그렇다고 그게 현실에서의 폭력으로 이어지는 건 반대예요. 무조건 반대. 그냥 뭐, 제가 먼저 그렇게 말했으니까, 걔에게도 그렇게 말할 권리를 준 셈이죠. 한 달 뒤에 테이크원도 천안에서의 공연장에서 만나서 "야, 너 그때 멋있었어."라고 했더니 특유의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가더라고요. 재미있었어요.





LE: 컨트롤 대란 당시에 나왔던 "황정민"도 그렇고, 그 이후에 나온 "신세계"도 그렇고, 이전 믹스테입에 있었던 "김윤석"이란 곡도 그렇고, 되게 느와르라든가, 대체로 선 굵은 영화나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남자라면 느와르를 안 좋아할 수 있겠어요. 그런 컨셉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저는 영화에서 따온 그 장면들을 가지고 가사를 많이 쓰기도 하는데, "김윤석"이나 "황정민"이 그렇죠. 되게 재미있어요.






LE: 그런 곡에 있는 비장미가 되게 멋있게 느껴지는 거겠죠.


예전엔 되게 그랬어요. 요즘에는 그 감성이랑 멀어지고 있고요. 이제는 특별히 끌리지는 않아요. 사람이 참 쉽게 변한다니까요. 그것도 나름의 매력이죠. 앨범마다 다르니까.






LE: 한국 영화 말고 <무간도>라든지 해외 영화도 좋아하시나요?


개좋아해요. 알 파치노(Al Pacino),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 조 페시(Joe Pesci), 이런 사람 개팬이에요. 존나 좋아해요. 미국 것들을 훨씬 많이 봐요.






LE: 아까도 잠깐 “불도저 (Bulldozer)” 이야기가 나왔었는데요. 컨트롤 대란이 지나고, 연말, 12월에 “불도저”가 나왔었는데요. 인기가 대단했었잖아요. 저스트 뮤직 공연 영상만 봐도 떼창이 엄청나잖아요.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스윙스 씨가 없는 공연에서도 다른 멤버들이 그 곡을 부르기도 하잖아요. 그런 현상이 되게 흥미로운데, 혹시 그 곡에 대해서 더 얘기해 주실 부분 있나요? 


그냥 저는 그 곡 내기 전에 존나 긴장했어요. 컨트롤 대란 당시에 존나 욕먹었던 건 나였고, 이제 이것까지 내면 ‘또 한 번 존나 욕먹겠구나.’ 싶었거든요. 존나 각오하고, 개 각오하고 낸 노랜데, 오히려 이 곡 덕분에 인기가 많아졌어요. 그때 되게 신기했어요. 의아했어요. ‘뭐지?’ 이러면서. 그 정도? 재미있었어요. (웃음) “불도저 (Bulldozer)”가 영쿡 형이 만든 비트인데, 그게 한국에서 처음으로 그런 느낌의 트랩 비트였을 거예요.






LE: 로보토미(Lobotomy) 씨는, 그러니까 영쿡 씨는 트렌디한 스타일을 자주 구사하는 프로듀서는 아니지 않나요?


그게 생소했을 때 그런 음악을 되게 많이 했었어요. 그 형은 그런 스타일의 트랩이 유행하니까, 또 다른 걸 하더라고요. 그 형도 확실한 아웃사이더 스타일이죠.






LE: 이건 랩 테크닉적인 얘긴데요. 트랩에 랩을 하는 분들을 보면, 전형적인 플로우가 몇 개 있잖아요.


따라라 따르르 따라라 따.






LE: 네. 그런 거. 그런 전형적인 스타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하는 게 아닌가?’ 혹은 ‘그런 비트, 그런 템포에서는 그게 가장 적당하다.’ 라든가 등등 생각이 있으실 것 같아요.


그냥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웃음) 일단 재미있을 때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기운이 빠지면 다른 거로 넘어가는 건데. 저도 그런 식으로 몇 번 하긴 했었거든요. 막 엄청 많이 하진 않았는데, 전 그걸로 재미 봤어요.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유행도 적당히 알면서 항상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하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근데 지금 제 마인드는 이제는 유행하는 거에 최대한 제 스타일을 많이 넣어보는 거예요. 결론은 전 뭘 해도 상관없는 거예요. 너무 카피캣처럼만 안되면.






LE: 카피캣 얘기가 나와서 질문하는데요. 한국힙합 씬에서 미국 트렌드를 반영하고, 그쪽에서 레퍼런스를 따오는 등 그런 분위기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개인적으로는 최대한 오리지널리티 있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계속 찾고. 저는 그런 부분에서 되게 떳떳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사실 (다르게 생각해보면) ‘미국 래퍼끼리 서로 영향 안 받고 음악 할 수 없는 건가요?’라는 질문도 유효하다고 봐요. 유행을 만드는 사람은 실은 몇 명 안 돼요. 대부분이 그걸 따라 하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아시죠?






LE: 네. 


근데 한국의 문제가 뭐냐면 ‘자기화’ 시킬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이지가 트랩을 하는 건, 그 사람의 입장에선 애새끼, 그러니까 후배들이 만든 유행을 보고, ‘오 이거야?’ 한 다음에 그 유행을 자기 것으로 만든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MC의 다수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고, 오히려 어설프게 따라 하다가 망하는 경우를 전 너무 많이 봤거든요. 얼마 전부터 이 생각이 짙어졌는데, 한국힙합 뿐만 아니라, 한국 가요계 자체가 이제는 외국 것에서 벗어나서 자기 것을 찾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저 또한 제 음악에서 그런 방향으로 더 가려고 노력해보려고요. 이번 앨범에서도 한 번 시도했어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감성을 만들어보려고요. 그걸 이루기 가장 쉬운 방법은 ‘자기’가 되는 거거든요. 인간이 다 다르고, 독특하기 때문에 그걸 찾으려고 돌아가고 있어요. 이건 확실한 것 같아요. 어쨌든 한국 래퍼들이 더 따라 하는 느낌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미국 애들이 미국 애들 것을 따라 할 땐, 조금이라도 자기화시키려는 모습이 보이긴 하거든요. 우리나라는 아예 똑같이 하니까, 아예 똑같이 하려고 하는 애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게 존나 문제인 것 같아요.






- 15. 저스트 뮤직의 본격적인 붐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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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는 2014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013년이 스윙스 개인의 커리어가 많이 성장한 시기라면, 2014년은 스윙스의 사람들이 같이 붐업되는 시기였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씨잼 씨와 바스코 씨의 영입 과정은 아까 말씀해주셨는데요. 씨잼 씨의 경우에는 예전에 나왔던 믹스테입 [Go So Yello]나 “A-Yo”의 뮤직비디오가 영입하는 데 영향이 컸겠죠?


[Go So Yello]의 영향이 컸고, “A-Yo”는 귀여웠어요. (웃음) 본인이 그걸 되게 싫어하더라고요.






LE: 씨잼 씨가 저스트 뮤직 입단 전에 저희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는데요. “A-Yo” 훅 부분에서 가만히 있는 퍼포먼스를 공연장에서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네. 봤어요. 존나 웃겼는데.






LE: 본인은 그때 그게 간지라고 생각했는데, 관객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 옛날에 그랬어요? 재미있네. 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된거지. (웃음)






LE: 바스코, 씨잼 씨 영입 이후, 스쿼드가 갖춰지고 나서 [파급효과 (Ripple Effect)]가 발표됐는데, 확실히 한 팀이라는 느낌이 잘 묻어났던 것 같아요. 네 명의 래퍼가 각자의 역할을 잘하고, 천재노창 씨가 그걸 하나로 묶는 역할을 프로듀서로서 잘한 것 같아요.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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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래서 [파급효과 (Ripple Effect)]를 기획할 때, 누가 주도를 했고, 누가 컨셉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냈는지 궁금하거든요. 


네. 좋은 질문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나름 1년 동안 억울했었거든요. (웃음) ’파급효과’라는 앨범 타이틀도 제가 낸 것이었고, 앨범 자켓 컨셉도 제가 낸 아이디어였어요. ‘노창, 니가 그림 그리는 식으로 가.’ 이런 식으로. 한두 개 빼고는 모든 곡 제목도 제가 다 지었어요. 곡 제목도 제가 지었지만, 주제도 제가 생각해냈고. 가사를 제가 항상 제일 먼저 썼었어요. 씨잼이 옆에서 보면서, 같이 쓰고, 그다음에 바스코 형이 들어왔고, 그다음에는 대개 노창한테 맡겼어요. 하여튼, 아이디어도 거의 다 제 것이고, ‘파급효과’와 어울리는 주제와 노래 제목, 이런 걸 제가 엄청 많이 기획했었어요, 그 나머지는 아까 말한 대로 노창이. 노창의 역할과 제 역할, 둘 다 존나 빡셌죠. 아쉬운 건 제가 인정 안 받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사람들이 오히려 저를 욕하더라고요. ‘너는 씨X 천재노창 같은 천재 데리고 와서 아무것도 안 하냐?’, ‘걔한테 그걸 다 맡기냐?’ 뭐 이런 식으로. 그때마다 되게 서운하고, 빡쳤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했던 것에 대한 크레딧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엄청 뭐라고 하니까. 근데 어쩌겠어요. 덕분에 노창은 또 엄청 클 수 있었으니까.






LE: 뭐랄까, 천재노창 씨의 포텐이 터진 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전작들도 정돈이 덜 된, 그 거친 느낌이 가진 결이 좋았는데, [파급효과 (Ripple Effect)]에서는 그 거칢이 어느 정도 정돈이 되어서 나온 느낌도 있었어요.


완벽하게.






LE: 그런 부분은 순전히 천재노창 씨 본인의 역량이었나요? 아니면 프로덕션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옆에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줬던 건가요?


조언해주고 그런 건 별로 없었어요. 거의 걔가 반지 들고 모르도르 갔죠. (웃음) 그 새끼가 진짜 그때부터 쩔게 해줬어요.






LE: [파급효과 (Ripple Effect)] 수록곡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트랙이 있으신가요?


전 “소문”이 제일 좋아요. “소문”하고, “더”도 존나 좋고. “소문”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가사 쓸 때, 저는 ‘소문’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해석해서 썼거든요. ‘사람들이 지랄할 때 내가 느끼는 기분에 대해서 쫙 써야지.’ 하면서 쫙 쓴 것이거든요.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 얼굴에 침 뱉는 기분이었어요. 나중에 시간 되시면 한 번 더 들어보세요.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될 거예요.






LE: "소문"을 들어보면 곡 후반부에 "Niggas In Paris" 같은 곡을 아예 가져다 썼는데요. 그런 부분은 샘플링이라기보다는 오마주에 가까웠잖아요. 스윙스 씨는 그런 파트를 들으면서 '아, 이거 좋은데? 괜찮은데?' 하셨나요?


그거 들으면서 '이게 표절 소리 듣지는 않겠지.', '너무 대놓고 했으니까 표절 소리는 듣지 않겠지.' 하면서 상의를 살짝 했었는데, '이 정도야 뭐.' 하면서 했었어요. 진짜 오마주니까. 존나 얍삽하게 해놓고 안 그런 척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 느낌이 전혀 아닌 걸 원작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거라 생각했어요.






LE: [파급효과 (Ripple Effect)]의 프로덕션은 대부분 샘플링이었나요?


거의 없었어요. 그렇다 할만한 샘플링은 없었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LE: 만약에 한다고 해도 잘게 쪼개는 그런 식이었나요?


기껏해야. 






LE: [파급효과 (Ripple Effect)]가 나오던 때가 컴필레이션 앨범이 많이 나오던 시기로 기억해요. 저스트 뮤직을 포함해 하이라이트 레코즈(Hi-Lite Records)나 일리네어 레코즈도 그 부근에 나왔었고요.


[Orca-Tape]도 나왔었고요.






LE: 근데 앨범 구성적인 측면에서 [파급효과 (Ripple Effect)]은 완벽한 느낌까지는 아니였던 것 같아요. 뭐랄까, 후반부로 갈수록 약간의 난잡함을 매력으로 내세우는 그런 앨범이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노창이 그거에 대해서 지적했었어요. ‘다음에 우리 컴필 앨범 내면 조금만 정돈해서 하자’라고. 이렇게 얘기했었어요. 되게 잘 짚으셨네요. 대부분 사람들이 그걸 모를 거라 생각했어요.






LE: 다른 컴필레이션 앨범과 [파급효과 (Ripple Effect)]를 비교하면서, ‘이런 면은 저 앨범이 더 메리트가 있네.’ 싶었던 점도 있으신가요?


남의 것도 멋있었던 건 멋있었죠. 그렇지만 결국에는 우리 앨범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웃음) 전 맨날 들어요. 수영장 가도 스피커로 틀어놓고 막 그래요. 자랑스러운 앨범이에요.






LE: [파급효과 (Ripple Effect)]가 나온 시기가 바스코, 씨잼, 기리보이 씨가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던 시점과 거의 겹쳤었죠?


네. (앨범이) 나오자마자 <쇼미더머니>가 시작됐었죠.






LE: <쇼미더머니>에서 씨잼 씨가 2차 예선을 볼 때는 아예 탈락 버튼을 누른 채로 심사하셨었잖아요. 그런 방식으로 공정하다는 부분에 대해서 나타내면서도, 살짝 낯 뜨겁다거나 그런 점은 없었나요? 


아니요. 일단 제가 누른 게 아니거든요? 사실 저도 깜짝 놀랬는데, 그건 산이 형이 누른 거예요. 일부로 눌렀는지도 몰랐고, 알고 나서는 ‘뭐지?’ 이 생각 했어요. 딱 눌렀다는 거 알고 나서는 ‘뭐, 씨잼인데.’ 이런 생각 했죠. 아까 제가 걔한테 <쇼미더머니>가 독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고 했잖아요. 걔는 <쇼미더머니> 때문에 독, 병에 걸렸던 기간 빼고는 우리나라에서 자신감 제일 쩌는 래퍼 중에 하나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걔는 뭘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LE: 당시에 기리보이 씨도 그랬고, 씨잼 씨, 바스코 씨 모두 <쇼미더머니> 무대를 가질 때, 원래 다른 공연에서 보여주는 모습보다 덜 보여준 감이 없지 않아 있었잖아요.


네. 완전히 그랬죠.






LE: 예를 들면, 기리보이 씨 같은 경우에는 첫 무대에서 비트 템포가 빠르다 보니까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 아쉬운 게 있었을 것 같아요. 


전 너무 아쉬웠죠. 보면서 ‘아~ 이 새끼 긴장해가지고는.’ 이러고. 근데 뭐 어쩌겠어요. 지나간 일인데. 본인이 그거에 매달리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LE: 그래도 <쇼미더머니> 무대에서의 아쉬운 부분을 통해 얻은 것도 많았다 싶은가요?


그럼요. 어쨌든 본인들이 그걸 통해 다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요.






LE: 사실 기리보이 씨가 올해 나온 [성인식]에서는 랩을 많이 보여주시긴 했지만, 보컬과 프로덕션 부분에서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아티스트잖아요. 그런 면에서 스윙스 씨가 기리보이 씨에게 랩을 더 잘해야 한다거나 하는 조언도 해줄 것 같아요.


네. 항상 하고요. 기리보이는 이것저것 다 하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시기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랩만 하니까 쑥쑥 느는데, 제가 프로듀싱까지 한다고 생각하면, ‘어, 씨X 어떻게 되지?’하면서 사람이 이상하게 될 것 같아요. 제가 그런 것까지 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되거든요. 기리보이한테 여러 번 얘기했었는데, 근데 (기리보이는) 너무나 젊은 친구이기 때문에 천천히 터득하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LE: 올해 초에는 <No Mercy>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잖아요. 저스트 뮤직 멤버들이 그 프로그램에 굉장히 많이 나왔었는데, 나중에라도 모니터링을 하셨는지 궁금하고, 멤버들이 출연해서 잘했다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해요.


그때는 얘기만 듣고 제가 일부러 안 봤어요. 그 프로그램이 전체적으로 잘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아, 됐어. 그냥 안 볼래.’ 이랬고, 노창도 되게 슬픈 사연이 있었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냥 아예 안 보기로 했어요.






LE: 스윙스 씨 입대 이후 저스트 뮤직의 활동을 되짚어보면, 올해만 해도 저스트 뮤직에서 앨범이 많이 나왔잖아요. 활동도 활발하게 했고, 그렇지만 ‘내가 있었으면 이런 부분은 더 잘 됐겠지.’ 하는 마음도 있나요?


매일 매일 그 생각해요. 매일 매일. 보통 공중전화로만 애들이랑 얘기할 수 있고, 면회 때만 애들을 볼 수 있었는데, 저는 그때 제 나름대로 힘들었거든요. 신경을 아예 못 썼었어요. 너무 미안했어요. 저 없이 저 어린 애들이, 바스코 형 빼고 다 어린 애들인데, 이걸 이끌어 갈 수 없다는 걸 제가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훈련소 간 날 아직도 기억나는데, 저 진짜 울음 터질까 말까 했거든요. 마지막에 뒤돌아볼 때. 간간이, 가끔 보는데, 솔직히 저는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래서 너무너무 걱정했어요. 예를 들면, 씨잼 보면서 제가 걱정했던 게, 휴가 때나, 면회 때 가끔 보잖아요. 눈빛이 점점 피폐해져 가는 모습을 전 봤어요.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저도 존나 미칠 것 같았어요. ‘그렇게 자신감 많던 애가 왜 이렇게 됐지?’ 하면서. 그다음에 노창은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죠? 제 전화도 잘 안 받고, 너무 힘들어하고, 면회도 한 번밖에 안 왔어요. 그 나쁜 새끼 그거. 한 번밖에 안 왔는데, 전 (걔에 대한) 안 좋은 소식만 듣고… 근데 제가 옆에 있는 것과 전화로 얘기하는 거하고 차이가 너무 크잖아요. 예를 들어, 문제아 아들이 있는데 아빠가 혼자 돈 벌러 외국에 나갔어요. 엄마하고 아들 이렇게 둘이 남았을 때, 아빠가 전화로 얘기하는 것과 집에서 뭐라고 하는 거랑 그 차이가 있다는 걸 우리가 알잖아요. 그리고 기리보이는 다행인 게 나름의 실수를 많이해서 그런지 오히려 발전하더라고요. 바스코 형도 그렇고요. 대웅이는 <쇼미더머니> 나가서 힘들어하고. 어휴, 진짜. 어쨌든 제가 돌아왔더니 한 명씩 얘기하더라고요. 형이 아무리 힘들어도, 돌아오니까 마음 상태가 바뀌었다고. 아빠가 집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표현한 애들이 많았고요.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하대요. 제가 아무것도 안 해도. '아, 내가 그런 존재였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기뻐요. 저야 속상하기도 하고, 지랄하고 약도 먹고 있지만, 어쨌든 애들이 좋다니까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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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심적인 부분에서 도움되는 것도 있지만, 음악적인 부분에서, 이를테면 A&R 같은 역할을 스윙스 씨가 하는 경우도 있나요?


A&R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전체적인 컨셉이나 아이디어를 계속 던지죠 저는. 계-속 던져요. 계속 던지고, 이 노래가 될 것 같다는 얘기를 엄청 많이 해주고, 제가 제일 잘하는 거는 애들이 모여있을 때, 회의할 때나 좋은 얘기 억지로 해요. (웃음) 외로운 할배처럼. 근데 애들이 즐겨 들어줘서 엄청 고마워요. 옛날부터 그랬어요. 바디랭귀지 관련된 책 읽고 애들한테 바디랭귀지 알려주고, 카리스마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도 엄청 알려주고… 장난 아니에요 진짜.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해보니, (제가) 있을 때, 없을 때 차이가 엄청 큰 거 같네요. 특히 저보다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린 애들. 바스코 형도 그렇긴 하지만요. 씨잼은 진짜 스폰지거든요. 제가 하는 말을 다 믿어요. 제가 그래서 얘 앞에서 말을 엄청 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해요. 얘가 신기루를 봤다고 했잖아요? 제가 그 신기루가 될까봐 무서워요. (웃음) 무슨 말인지 알죠? 실망시키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전 되게 힘내고 있어요. 조금 더 솔직한 제 심정을 얘기하면 도망가고 싶고, 음악 한 1년 정도는 때려치우고 싶기도 하고, 항상 뭘 부수고 싶어요. 제가 아까 그랬잖아요. 풍선이 달아나려고 하는데, 묶인 기분? 마음이 요즘 너무 왔다 갔다 하니까… 근데 애들 앞에 서는 순간, 딱 정신 차리게 되더라고요. ‘내가 이러면 애새끼들 어떻게 되는 거지?’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 완전 이기적인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얘네들이랑 하고 나서부터는 사람이 변하는 게 저한테 좋네요. 좋은 것 같아요.






LE: 스윙스 씨가 짊어지는 짐이 스스로 맡는 면도 있지만, 주변 동료로 인해 떠맡게 되는 그런 면도 있지 않나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두 개 다 있는 것 같아요. 이건 몇 퍼센트, 이건 몇 퍼센트 이렇게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LE: 약 10개월간 군 생활로 저스트 뮤직에서 자리를 비웠잖아요. 그 시기, 저스트 뮤직의 활동에 대해서 총평을 한다면?


그래도 안 망하고 있었네요. 몇몇은 회사를 휴짓조각으로 만든다고 했는데. 일단 되게 웃긴 게, 절대적인 잣대를 들이대자면, 매출은 올랐어요. (웃음) 제가 없는 데도 올랐어요. 그래서 ‘아 다행이다. 나 없는 데도 매출이 올랐다니. 존나 웃기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이 회사 전체 매출의 못해도 70%는 할걸요? 저는 대중적인 곡도 있고, 히트곡도 있고 하니까. 행사도 다른 애들보다 훨씬 많이 하니까. 그런 면에서 봤을 때는 선방이고, 진짜 우연하지 않은 시기에 돌아오게 된 것 같아요. 이 정도는 애들이 고생을 해야 했다는 생각도 들고, 각 회사마다 굉장히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일리네어 레코즈 같은 경우는 한 명이 빠진다고 해서 회사가 주춤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아,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튼, 저희보다는 덜할 거예요. 근데 저희는 애들이 저 믿고 온 게 너무 많아서 좀 다른 것 같아요. 그쪽은 자신들의 능력을 모아서 힘 합쳐보자고 한 거고, 우리는 약간 ‘가자!’, ‘힘내!’, ‘대웅아, 힘내. 노창 넌 천재야.’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아무튼 좋은 타이밍에 제가 돌아오게 된 거 같아요.






LE: 만약 군 복무를 끝까지 하게 되었다면 상황이 어땠을 것 같나요?


제가 봤을 때는 되게 안 좋았을 것 같아요. 특히 지금 와서 보니까 군 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돌아왔을 때 진짜 이상했다니까요. 나중에 다들 말했는데, 일하기 싫다고 맨날 찡찡댔대요. 엄청 짐이 많아진 거죠. 결정을 자기가 내려야 하는 그런 거죠. 대부분 사람이 두려워하는 건 책임 아니겠어요? 그 책임이 각자에게 분산되니까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LE: 그 와중에 군입대 전에 CEO를 블랙넛에게 넘겼다라는 얘기가 있던데, 맞는 얘기인지도 궁금하고, 만약 그렇다면 왜 그랬는지도 궁금하거든요. 


제 인생 최악의 실수였고요. 저는 블랙넛이 애가 차분하니까, 진짜 차분하거든요. 그래서 잘 이끌어가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바스코 형은 성격이 세니까 맡기면 애들을 너무 기죽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블랙넛이 딱 중간 형이니까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얘 리더십 0이에요. 리더십 제로. 그냥 자기거나 해야 해요. 사실상 리더 없이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돼요.






LE: 저스트 뮤직은 현재 어떤 상황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비전도 궁금하긴 한데, 그 전에 현재의 저스트 뮤직은 어떤 상황에 있는지 궁금하네요.


지금은 애들이 열심히 칼을 갈고 있고, 총알을 장전 중이고, 내년부터 터질 건데… 내년부터 터져요. 내년부터 많이 터질 거예요. 일단 다들 자신감이 엄청 충전되고 있어요. 너무 보기 좋아요.






LE: 하이라이트 레코즈가 CJ E&M와 함꼐 하게 되었잖아요. 그 뉴스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은 의견을 내놓기도 했었는데, 만약에 내년에 CJ E&M 같은 큰 회사에서 레이블에 관한 어떤 제안이 들어오면 어떨 것 같나요?


많이 들어와요. 많이 들어왔어요. 경영권만 상관 안 하면, 머니만 맞다면 상관할 게 뭐가 있어요. 합병이나 인수는 제가 능력이 되니까 제안이 오는 거예요. 누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사 가겠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걸 좋아해요. 대신 조건이 맞아야죠.






LE: 음악적인 부분에 관한 터치라든가, 경영권만 안 건드리면 괜찮다?


네. 두 개만 손 안 대면 되는 거 아닌가요. 밀어주지, 도와주지, 책임도 나뉘지, 그러면 음악에 더 신경 쓸 수 있지. 그러면 얼마나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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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경우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세한 내막은 모르니까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데, 그냥 경영권 안 뺏겼으면 좋겠네요. 음악 창작권과 경영권, 그런 것만 지켜주면 무조건 좋은 일이지. 어쨌든 간에 저는 이렇게 믿어요. 돈에 관한 제 철학을 알려드릴게요. 뭐든지 잘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영상을 찍는 사람은 카메라가 필요하고, 기왕이면 더 좋은 카메라가 있으면 좋고, 기왕이면 렌즈가 더 좋은 게 있으면 좋고, 렌즈가 100개 있으면 더 좋아요. 기왕이면 더 잘 찍기 위해서, 자동차도 있으면 좋고, 기왕이면 운전기사 있으면 좋고, 기왕이면 헬기 있으면 더 많은 풍경 찍을 수 있으니까 좋고요. 기왕이면 돈이 더 많아서 비행기 일등석 편하게 타고 가서 찍으면 더 좋아요. 돈은 무조건 좋은 거예요. 인생에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해요. 우리나라 힙합 씬이 예전부터 X신 같은 게, 돈을 너무 미워해요. 음악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괴로워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풍토가 있는데, 그걸 깨부수고 싶거든요. 돈은 좋은 거예요. 물론, 얻는 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게 있겠죠. 누군가를 해쳐서 얻는 거는 안 좋은 거겠죠. 무언가를 훔친다든지, 그건 너무 뻔하잖아요. 설명할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돈은 좋은 거예요. 성장하기 위해서 좋은 거예요, 비유를 하나 들자면, 나무를 산에다가 하나 심어요. 10년 뒤에 돌아와요. 그럼 그 나무는 어떻게 되어있어요?






LE: 웬만하면 살아있겠죠?


존나 커 있잖아요. 그게 생명의 특징이에요. 자라고, 번식하는 욕구가 있단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죠? 감자 같은 거 물에 담가 놓으면 존나 자라잖아요. 그게 모든 생물의 기본적 욕구에요. 애기에게 밥을 먹이면 어른이 되잖아요. 돈 가지고 우린 더 성장할 수 있어요. 우리 생존, 우리 성장의 물이 돈이에요. 그래서 정신적, 육체적, 영혼적으로 크려면 돈이 있으면 좋아요. 더 많은 걸 할 수 있어요.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고 전 믿어요. 그렇기 때문에 돈을 싫어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바로 그거에요. 아티스트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해요. 아니 모두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해요.






LE: 도끼 씨가 <나 혼자 산다> 프로그램 나왔을 때도, 그런 얘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도끼 씨가 자기 집에 돈 진열해놓고, 좋은 거 많이 취하고 하겠다는데, 거기다 대고 ‘너가 돈을 많이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냐, 정우성이나 배용준 같은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버는데, 그런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냐.’ 뭐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한국에선 사실 그런 시기나 질투 어린 말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웃음) 저는 돈 자랑하는 건 좋은데, 돈 때문에 남을 깔보기 시작하면 엄청 위험해지는 것 같아요. 저도 저 모르게 가사에서 가끔씩 그런 경우가 있는데, 되도록 전 안 그러려고요. 남이야 그러든 말든 상관 안 하는데…






LE: 아까 저스트 뮤직 라인업에 관해서 얘기를 했는데, 스윙스라는 아티스트가 참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당연히 각각의 오리지널리티가 없다는 이야긴 아니지만, 바스코, 천재노창, 블랙넛, 기리보이, 씨잼 등 멤버들이 스윙스 씨가 가진 특정 면면이 극대화된 버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와, 저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가만 생각해보면 무의식중에 제가 그런 사람만을 데리고 온 것일지도 몰라요. ‘씨잼의 이런 모습은 꼭 나 같네? 되게 매력적이다.’ 생각하고. 비슷한 것들끼리 모인다고 하잖아요. 그랬을지도 모르는데, 의식적으로는 안 그랬어요. 그냥 직관적으로 다 멋있다고 생각해서 뽑았어요. 






LE: 천재노창 씨는 “무와뷰이풀” 할 때가 저스트 뮤직 딱 입단할 때잖아요. 그 전에 나온 EP도 듣고 같이 하게 된 건지 궁금하고, 아까 간략하게 얘기 해주시긴 했지만, 좀 더 그 과정이 듣고 싶거든요.


이건 자세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기리보이가 자기 동창 중에 노창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비트를 존나 많이 받았어요. 50개인가, 100개인가 받았는데, 다 트로트에요. 다 트로트를 샘플링한 힙합이었어요. 일단 트로트를 이렇게 온전하게 샘플링해서 힙합으로 만든 사람은 처음봤어요. 가끔은 그런 시도가 있었잖아요. 45RPM도 예전에 했었잖아요. 근데 얘는 대중적인 것도 아니고, 무조건 창의적인 거. 전 그 곡들을 딱 들으면서, 사실 저 존나 막귀거든요 . 믹싱 뭐가 좋은지 차이도 모르고 그러는데, 보내준 걸 들으면서 이건 너무 직관적으로 개짱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전 뭘 봤냐면, 이 사람이 허슬러인지 아닌지를 봤어요. 작업량이 많은 사람은 X같은 게 50개나 되어도, 그중에 좋은 게 나오거든요. 일단 많이 하고 봐야 해요. 근데 작업 많이 안 하는 사람은 아무리 시켜도 많이 안 해요. 게으름은 진짜 못 고치거든요. 그래서 100개인가, 50개인가 보내준 거 듣고 나서, ‘얘 허슬러, OK.’ 하고 그때 만나자고 한 거예요. 전화로 “우리 회사 할래? 들어올래?”하니까 “네.”, “그럼 만나자.” 하고 끝. 그렇게 해서 들어오게 된 거예요. 얼굴도 안 보고.






LE: 천재노창 씨는 기리보이 씨를 통해서 알게 된 건데, 다른 신인을 볼 때는 어떤지 궁금해요. 옥석을 가리는 어떤 나름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이 있는지, 그보다는 직관적으로 직감 위주로 가는지 궁금해요.


둘 다인 것 같은게, 노창에 대해서 얘기할 때도, 비트 들으면서 직관적으로 ‘와, 씨X 이건 존나 창의적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지랄.’ 이 생각 플러스 조금 더 논리적으로 보려고 했었죠. 그게 허슬러인가죠. (노창이 보내준) 많은 비트가 그걸 증명해준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뭐가 중요하냐면요.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 중에 1위가 남한테 영감을 주는 거예요. 제가 마음만 먹고, 영감을 주면 저는 어떤 사람이든 변화시킬 자신이 있어요. 그때부터는 그 훈련만 하면 되는 건데, 저는 예술도 굉장히 후천적이라고 믿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이 새끼가 첫 번째로 자기를 믿는 게 중요하고, 믿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사람은 그 과정에 가기 전에 ‘재능이 있어, 없어?’ 이 질문만 하다가 존나 포기하는 거 같아요. 근데 제가 이걸 언제부터 믿게 되었냐면, 어떤 학생이 있었는데, 약간 좀 바보 같았었어요. 좀 얼빵한 애였는데, 라임을 가르쳤는데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한 한 달 가르쳤어요. 근데 안 되는 거예요. 얘가 가사를 뭘 써와도 되게 말이 안 되고 이상했는데, 제가 태어나서 딱 한 번 학생을 쫓아낸 적이 있었는데, 걔가 걔였어요. “나 힘들다. 미안해. 가.” 막 이랬어요. 근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중에 걔 랩을 들었는데, 꽤 잘하게 된 거예요. 아는 동생이 들려줬는데, 잘하길래 “야, 얘 누구야? 잘하는데?” 했더니 “형 걔 얘예요.” 하는 거예요. “누구? 걔? 내가 옛날에 가르쳤던 걔?” 했더니 맞대요. 그래서 X까지 말라고, 그 새끼일리가 없다고 했는데, 또 목소리 들으니 맞고. 전 그때 충격받았어요. (예술적 능력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줄 알았었어요 전. 근데 그때부터 바뀌어서, 어떤 사람이든 보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걸 발견하는 건 자기 자신한테 달려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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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10,000시간의 법칙이라는 개념을 되게 좋아하는데, 뇌가 어떤 기술을 익히려면 최소 10,000시간을 해야 한다고 해요. 대부분은 2,000시간도 안 하고 끝난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대학생들도 어떤 걸 전공할 때 5, 6,000시간이라고 하더라고요. 많이 해봤자요. 그런 사람들 기껏 해봐야 누구 가르치는 정도. 프로로 올라가는 사람은 무조건 10,000시간 이상. 그러니까 그 10,000시간을 해봐야 자기를 알지 않겠느냐 이거예요. 노창이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걸 딱 봤을 때, 실제로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머릿속으로 생각했을 때는 이미 많은 시간을 한 게 보였어요. 거기에다가 시간을 훨씬 많이 투자하면, 앞으로 제가 걔한테 원동력을 되어주면 얼마나 더 늘겠느냐까지 생각했어요. 다들 엄청 크고 있는 게 보이잖아요. 걔네들 아직 10,000시간 안 했어요. (웃음) 아! 근데 노창은 했을 것 같아요. 왠지. 아, 기리도 왠지 했을 것도 같다. 둘 다 엄청 미친 작업 벌레들이에요. 바스코 형도 작업 벌레고.  다 작업 벌레에요. 아! 블랙넛도 개X작업 벌레에요. 그 새끼는 한 곡 한 곡 엄청 노동해서 힘들게 내는 스타일이에요. 굉장히 능동적이에요. 즉흥적으로 보일 수는 있어도.






LE: 되게 허슬에 관한 생각이 많으신 것 같은데, 그런 생각도 들어요. 예술, 창작이라는 게 되게 비선형적인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루에 이만큼 하고, 다음날 이만큼 하고 이런 게 안되고, 하다가 갑자기 어느 날 결과물을 엄청 많이 내놓고, 또 그러다가도 한동안 못 내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맞아요.






LE: 근데 사석에서 만나 뵈었던 어떤 평론가분이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음악가 입장에서 팬들을 소비자로 상정한다면 그들에게 자신이 노동에 임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을 꾸준히 보여줘야 하는 게 어떻게 보면 하나의 책임이라고. 물론, 그 책임을 어떤 음악가에게 누군가가 짊어지게 할 수는 없지만요. 하여튼, 그런 식으로 예술, 창작 자체를 하나의 노동이라고 본다면 앞서 말한 그런 방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저는 제 자신을 전체적으로 그런 식으로 봐요. 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그리고 또 일이 즐겁거든요. 전 좋아요. 근데 게으른 사람들 꽤 많잖아요.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 했던 말이 기억나요. 너가 게임한테 진실하면 게임이 너한테 진실하다고. 제가 두 시간만 투자했으면 그 두 시간 만큼의 결과만 나오는 거예요. 제가 10,000시간 투자했으면 그 정도의 결과가 또 나오는 거예요. 그건 모두가 알아야 하는 사실인 거 같아요. 날로 먹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창작의 길에 있어서요. 뽀록이 터져도 그냥 그 뽀록으로 끝나고.






LE: 뭔가 내는 데에 되게 오래 걸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디 안젤로(D’Angelo) 같은 사람도 정말 오랜만에 앨범을 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디 안젤로 같은 천재는 상관없어요. (웃음) 디 안젤로, 닥터 드레 같은 사람은 상관없어요. 근데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나라에서 힙합 앨범 내는 사람 중에서는 늦게 내도 될 자격을 갖춘 사람 제가 볼 땐 단 한 명도 없어요. 나를 포함해서. 에미넴 같은 뭔가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제이지, 칸예 웨스트같이 뭔가를 갖고 온 사람이 아니면 다 핑계 같아요. 그리고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뭐냐면, 특정 인물을 겨냥해서 하는 얘기는 아닌데, 별로 한 것도 없으면서, 오래 했다는 이유로 대접받으려 하는 걸 제일 싫어해요. 조금 더 그런 사람 동경하지 않아요. 그걸 이용하는 사람도 보이더라고요. 작업물을 존나 가끔 내면서, 그걸로 최대한 뽑아먹고, 최대한 시간 끄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나는 별로 그런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별로 리스펙트 하지는 않아요.






- 16. 끝나지 않은 감정기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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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감정기복 Ⅱ에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쇼미더머니3>에 출연하시고, [파급효과 (Ripple Effect)]까지 내면서도 허슬을 놓치지 않으신 것 같아요. [감정기복 Ⅱ Part.1 : 주요 우울증(Major Depression)]  [감정기복 Ⅱ Part.2 : 강박증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이 다 2014년에 나왔었어요. 그런데 이제 레이블이 바뀌기도 했으니 [감정기복 II Part.3]가 나오는 건 힘들겠죠?

 

아니요, 내야죠. 그 마지막 작품은 조울증이 될 건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저도 생각 중이에요.

 





LE: 이번에 나온 버벌진트 씨의 [Go HARD Part 1 : 양가치]도 그렇고, 브랜뉴뮤직에서 나오는 앨범들을 살펴보면 대개 파트화해서 발표되는 편이잖아요. 전략적인 측면에서 앨범을 나누는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저 같은 경우, 그때는 (나눠서 내는걸)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좋은 곡들을 컨셉에 맞춰서 내는 게 뭔가 조금 더 깔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게 내고 싶지가 않네요. 그때는 저한테 브랜뉴의 논리가 생겼었나 봐요. 이제 밖에 있는 사람으로서 브랜뉴를 바라봤을 때, 진짜 보이는 게 너무 달라요. 저는 브랜뉴 안에 있을 때, 최대한 ‘Just Swings’로 있으려고 했거든요. 최대한뭐랄까, 조금 더 건방지게, 조금 더 저 하고 싶은 대로 음악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건 정말 브랜뉴의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그것도 좋은 면이 너무 많아요. 그래도 (작품을 한꺼번에) 쭉 다 하고 넘어가는 게 저한테는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LE: [감정기복 Ⅱ Part.1]의 서브타이틀은주요 우울증이고, [감정기복 Ⅱ Part.2]의 서브타이틀은강박증이에요. 그만큼 두 앨범의 성격이 조금은 달랐던 것 같아요. ‘주요 우울증에 담긴 곡이 기본적으로 막 빡세고 그랬던 것 아니었어요. “좀 쉬자같은 트랙도 있었으니까요. 반면에, ‘강박증에는 “Gravity”처럼 완전 때려 부수는 트랙도 있었어요. 그런 질환의 특징에 중심을 두고 파트를 구분하셨던 거겠죠?

 

맞아요. 근데 그거보다는 조금 더 단순했어요. ‘강박증이라는 단어에는 제 나름의 표현이 있었어요. ‘나는 최고이고, 최고가 되어야 하고, 최고를 유지해야 하고, 회사에 있으면서도 이런 음악을 내야 한다.’ 이런 게 되게 컸었어요. “전화번호는 여자에 대한 하나의 강박이었고요. “공약에는X, 내가 여기 있으면서도 다 무너뜨릴 거야.” 같은 게 있었고요. 그 앨범의 1번 트랙 내 운명도 마찬가지였고요. '강박, 강박, 강박' 하면서 만든 곡들이에요.

 





LE: 제 기억에는 [감정기복 Ⅱ Part.1 : 주요 우울증(Major Depression)]보다 [감정기복 Ⅱ Part.2 : 강박증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이 더 주목을 받았던 것 같아요.

 

,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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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아무래도역주행이나 “Gravity” 같은 트랙 때문일 거 같아요. “불도저 (Bulldozer)” 같은 걸 또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이 보였달까요.

 

아니요. 오히려불도저 (Bulldozer)” 같으면서도 좀 더 부드러운 느낌. 그걸 노렸었어요. 그런데 거칠게 나오더라고요. 아마 매드 클라운 형 때문일 거예요. 매드클라운 형이 너무 잘해놔가지고 제가 원래 거를 버리고 다시 녹음했어요. ‘~ 털렸다.’ 싶었거든요. 진심으로 그때 놀랐어요. 타고났어요, 그 형은.

 





LE: 매드 클라운 씨는 발성 자체가 좀 세게 나오는 편이라서 그런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발성 정말 좋고, 발음도 좋아요. 혀가 남들보다 조금 더 우월하다는 느낌이 되게 많이 들었어요. 뭔가 조금 더 빨리 움직여서, 더 편하게 발음한다는 느낌? (웃음) 저는 혀가 뚱뚱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빠른 거는 되게 힘주고 해야 하거든요. 유치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요. 매드 클라운 형은 그런 게 타고난 것 같아요.

 





LE: 매드 클라운 씨도 본인이 하고 싶은 스타일이 있을 것 같아요. 강한 느낌의 음악 같은 거요. 매드 클라운 씨도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아 보였나요?

 

제가 매드 클라운 형이랑 연락할 때, 형은 씨X,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해보라고 좀. 하고 싶은 말 다 해보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지금 하는 음악도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그런데 저는 좀 독기 있는 매드 클라운을 좋아하거든요. 빡친 매드 클라운, “Gravity”의 매드 클라운.

 





LE: [감정기복 II Part.3 : 조울증]은 아직 발매된다는 소식은 없지만, 낼 계획을 하고 계신 거죠?

 

내야죠. 마무리 지어야죠.






- 17. 입대를 앞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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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군대 갈 때 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입대 직전쯤에 낸 결과물로는 에일리(Ailee) 씨와 함께한 “A Real Man”, “Rap Star”, “다녀올게”, 그리고 [Vintage Swings]가 있는데요. 우선 “A Real Man”은 본인이 되고 싶은 어떤 상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굉장히 훈훈하다 싶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조금은 여성을 가르치려 드는 교조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입장에 따라서 말이죠.


아니요. 전혀. 블랙넛이나 송민호 등등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잖아요. 여자들을 공감해줄 수 있는 래퍼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아요. 있었다고 해도 큰 파급은 못 일으켰던 것 같고. 저는 그냥 공감해주고 싶었던 게 컸어요. 근데 혹시 누가 교조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하나요?






LE: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사실 공감대를 잘 형성했던 노래라고 생각이 들었는데요. 다만,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 노래도 그렇게 본다면, 그건 굉장히 극단적인 시각일 것 같아요. 물론 시각이야 다양하겠지만, 제가 그런 마음으로 쓴 것도 아니고요. 혹여 그렇게 생각한다면, 안타깝네요. 그런 게 아니었는데.






LE: “Rap Star” 안에는 말 그대로 랩스타가 된 이후 변화한 환경과 상황이 담겨 있어요. 뭔가 기쁘고 찬란한 게 아니라, 부정적인 뉘앙스가 더 컸는데요. 실제로도 작년 이맘때, 그 곡을 발표했을 때쯤이 잘 되고 있으면서도 안 좋은 감정과 생각이 들었던 시기였나요?


나쁘게만 보면 끝도 없이 나쁘고, 좋게만 보면 끝도 없이 좋을 수 있어요. 근데 그 당시 저는 나쁘게만 보고 있었어요. 어떤 느낌이 제일 컸느냐면, ‘사람들이 나를 존나 모르는데 나를 계속 판단한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는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었나 봐요. 그래서 나왔던 곡이에요. 제 랩 인생 8년을 간추리면, ‘너무 맞짱 뜨고 싶은 마음’ 정도가 되는데, 그 노래에서는 맞짱에 임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친 사람으로서 이야기했었어요. 지치고 혼란스럽고, ‘씨X, 나도 이제 모르겠다.’ 이런 마음… 지금은 그 노래 듣지도 못해요. 왜냐하면, 이제는 끝도 없이 좋게 보려고 하거든요. 제 노래 중 제가 절대 못 듣는 노래들이 있는데, 이제 “Rap Star”가 그 노래 가운데 하나가 됐어요. 나쁘게 보면 끝도 없고, 너무 힘들어요. 사람이 생각하는 게 곧 현실로 다가온다는 말처럼,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안 좋은 일들이 정말 많았어요. 영원히 말할 수 없는 것들도 있어요. 제가 랩으로 스타가 되지 않았다면 생기지도 않았을 일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제가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먼 훗날이 되면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은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더는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절 힘들게 했어요.





LE: 혹시 “Rap Star” 말고도 지금 못 듣는 노래가 또 뭐가 있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No Mercy”요. 그때 저 존나 빡쳐 있었거든요. 제가 겪은 일들이 담긴 곡인데, 그것도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여러 일들이 있어서 그런 곡을 만들었던 건데, 지금은 그런 곡 절대 못 들어요. 공감할 수조차 없고, 너무 많은 고통을 생각나게 해요. “A Real Lady”도 이제는 못 듣겠어요. 그런데 라이브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해요.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듣고 싶어 하는 거는 들려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왜 듣기 싫어하느냐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자가 더는 그 가사와 맞지 않아요. 절대 안 맞아요. 옛날엔 이런 몸매, 이런 얼굴, (특정한 뭔가가) 좋았는데, 이제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제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더라… 특별히 뭐 이상형이라는 것도 없는데, 뭔가 정형화시키는 것도 이제 재미없어요. “A Real Lady”의 후렴 부분 가사는 제가 쓴 걸 그레이(GRAY)가 편하게 정리해서 노래해 준 거예요. 그 부분 가사가 “섹시한 걸 과시하지 않아. 네가 진짜 여자야.”인데, 이거 진짜 너무 잘못 썼던 것 같아요. 죄송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여자를 너무 가두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여자를 만든 게 아니라, ‘이게 진짜 여자.’라는 식으로 말했었으니까. 섹시한 거 과시하면 뭐 어때요. 자기 마음이지. 오천 명과 섹스하든 말든, 그건 내 알바가 아니에요. 뭘 하든지. ‘남자가 뭘 하든 상관하면 안 되듯, 여자도 뭘 하든 상관해서는 안 돼.’ 이제는 그게 저한테 ‘A Real Lady’에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






LE: 확실히 “A Real Man”이 느낌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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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Vintage Swings] 같은 경우는 스윙스 씨가 가진 감정 중에서도 격한 감정만 모아놨다는 느낌이 되게 컸거든요. 일부러 그런 곡만 담으신 건지, 그리고 이 앨범을 두고 혹평을 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런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본인의 의도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앨범의 타이틀 ‘Vintage Swings’는 그냥 ‘영원한 스윙스’라는 뜻이에요. ‘Vintage’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하나의 의미로만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요. 좀 올드한 거. 그런데 저는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게 아니라, ‘Classic’이랑 똑같은 의미에서 쓴 거예요. 시간의 시험을 이겨내는 것. 그러니까, 100년 뒤의 스윙스를 이야기했을 때, 지금까지 한 것 중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걸 재편곡해서 낸 거예요. 사람들이 빡친 이유 완전 이해해요. 일단 신곡이 한 개 정도밖에 없었을 거예요. 아예 없거나. 갑자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LE: “Rap Star”랑 “섹시돼지뽀에버”가 있었어요.


맞아요, “섹시돼지뽀에버”. (웃음) 그렇기 때문에 이해는 해요. 그런데 저는 제 곡을 세상에 내놓는 순간, 그건 더는 제 음악이 아니라는 걸 자꾸 염두에 둬요. 그리고 이 태도가 제일 중요해요. 사람들이 가진 의견을 제가 조종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욕 들으면 당연히 기분 뭐 같죠. 기분 더럽고,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고. 그래도 일단은, 아니 앞으로도 계속 이래야 해요. 이번 것도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래도) 저한테는 너무 의미 있는 앨범이고, 특히 제가 죽고 나서는 사람들이 그 앨범 되게 좋아할 거라고 난 장담할 수 있어요. 앨범에 그런 노래들이 많아요. 음원으로 못 나왔던 노래나 홍보가 망해서 등의 이유로 개 묻혔던 노래. 그런 걸 넣었어요. 그런 걸 들려주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내 뒤에 서줘”를 정말 사랑하거든요.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 노래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 곡을 넣었던 거고, “이겨낼거야”는 음원으로 낸 적이 없어서 엄청 묻혔기 때문에 넣었고, “괜찮냐?”도 좋아하는 곡인데 너무 묻혀서 또 넣었고. 무슨 말인지 알죠? 나중에 제가 은퇴 후에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노래 중 제일 진한 것들만 넣은 거예요. 그래도 싫다면, 이해해요.






LE: 이 앨범에 담긴 버전의 “이겨낼거야”는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면서 계속 똑같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감정을 더 증폭시키잖아요. 마치 레이스의 마지막으로 달려가는 느낌처럼. 엄청난 힘이 느껴졌었는데요. 정말 비장하고, 거칠고, 날 것 같다 싶었어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너무 과잉됐다고 생각하기도 하셨나 봐요.


네, 충분히 이해해요. 충분히.






LE: 싱글 “다녀올게”는 출간한 책 <파워>와 함께 군입대 전의 마지막 작품이었어요. 곡에서 많은 걸 이뤄내며 스웩을 뽐내기도 했지만, 본인의 성격과 성향상 걱정도 많이 되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시간 없이 레이블 관련 일을 하고, 본인의 곡 작업과 콘서트까지 하느라 바쁘게 군대에 들어가서 몸과 정신을 추스릴 시간도 없었을 것 같은데요.


정말 (시간이) 없었어요. 정신 차리니 어느새 들어가 있었어요. 준비도 안 된 상태로, 저도 모르게 들어갔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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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파워>에 대한 반응 같은 건 많이 보셨나요? 보니까 예전에 SNS에 남기신 글들을 여과 없이 담아낸 책이더라고요. 긴 부분도 있는 반면, 무척 짧은 부분도 있었어요. 예전에 스윙스 씨의 소원 가운데 하나가 작가가 되는 거라고 들었던 거 같아서 책에 대한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이 책은 제 시작을 알리는 책 정도에요. 이제 굳이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책을 낼 생각이에요. 영원히 낼 거예요. 제가 손을 움직일 수 있는 한 계속. 이 책에는 제가 8년 전에 쓴 글도 있고 그래요. 제게는 수많은 꿈이 있었는데, 작가는 중학교 때부터 생각했던 꿈이에요. 그리고 이제야 용기를 냈어요. 저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워요. 랩을 하는 것보다 이게 더 무서웠어요. 랩은 너무 쉬웠거든요. 그러니까, 앨범을 내고 녹음을 하고 발표하는 마음이 그랬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거는 겁나서 못하겠더라고요. 표지를 볼 때마다 고생한 흔적이 보이고 그래요.






LE: 출판사와 별다른 트러블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하나 국민들에게 신고를 하자면, 큰 업체들이 이거 돈 다 가져가요. 저 이거 (하나 팔면) 겨우 10% 먹어요. 전체 수익 중에서. 책이 12,000원인데, 저 한 권당 1,200원 받아요. 그러니까… 알고 있으라는 얘기에요. 팬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거예요.






- 18. 군악병 문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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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입대하신 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네. 편하게 질문하시고, 제가 편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은 대답해 드릴게요.






LE: 군대에 딱 처음 들어갔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해요. 군대에서 지내며 자기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도 궁금하고요. 


많은 사람이 모르는 게 있는데, 저는 제가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에요. 제가 자원입대했다고 많이들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 원래 가기로 되어있었고, 이 나이쯤에 갈 거라는 건 쭉 알고 있었어요. 힘이 들 것 같아서 공익을 여러 번 신청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네요. 재검도 두 번인가 떴었고요. 그래서 결국은 가게 됐고, ‘기왕 가게 된 거 인사나 잘하고 가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주위에서 많이 걱정해줬어요. 무엇보다 제가 많이 걱정했어요. 군대에서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싶어서.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저, 훈련소에서 문제가 정말 많았어요. 그건 말씀드리지 않을게요. 그러다가 자대 배치받고, 조금 나아지나 싶었는데… 아, 훈련소에서부터 병원에 다녔어요. 자대에서도 다니고, 약도 먹다 말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약은 계속 먹었어요. 이후에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좀 있었어요. 그러다가 나오게 됐어요. 그게 다에요. 군대에 대해서는 이렇게만 이야기 드릴게요.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LE: 보이비(Boi B) 씨가 선임이었나요?


맞아요. 






LE: 어땠나요? 보이비 씨는.


보이비 씨는 천사예요. 진짜 개 천사예요. 존나 착해요.






LE: 보니까 좀 있으면 병장이신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이제 나왔을 거예요.






LE: 군대 내에서는 씬이 움직이는 디테일한 과정이나 동향 같은 것들을 쉽게 캐치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답답한 면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아니면 군대 들어와서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바뀌었다든가 하는 게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뒤처질까 봐 되게 많이 걱정했어요. 가끔 TV 보면 <4가지쇼>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 다 나오는 거예요. 래퍼든 가수든 다요. 되게 슬펐어요.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 1은 배 아파서 아예 못 봤어요. 배 아프다는 표현이 맞나? 보고 있으면 제가 너무 하고 싶어지니까. <쇼미더머니>는 보긴 봤는데, 거의 울먹거리면서 봤어요. ‘아 씨X… 나도 저기 있고 싶은데… 맨날 약 먹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신기한 게 뭐냐면, 행사시킬 때 빼고는 거기서 랩을 한 번도 안 했다는 거예요. 작사를 한 번도 안 했어요. 하기가 싫더라고요. 영감이 아예 없었어요. 제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게 너무 신기해요. 랩에 관한 건 아무것도 안 했어요. 행사 때만 했어요. 행사도 자주 있는 건 아니었어요. 저라는 사람이 가사를 안 썼다는 게 너무 신기해요. (그런 생각이) 왔다 갔다 했어요. (뒤처질까) 두렵다가도, ‘지랄하네, 씨X. 여기서 나는 정신으로 이길 거야. 나는 여기서 플로우가 존나 늘 거야.’ 이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도 ‘입을 안 움직이는데 어떻게 늘어.’ 같은 생각도 들었는데, 무조건 늘 거라고 믿었어요. 이제 나와서 가사 쓰고 작업하면서 느끼는 건데, 오히려 늘었어요. 진짜 신기해요. 하여튼 군대 얘기는 잘 정리가 안 되네요. 그냥 별로였어요.






LE: 사회로 나와서 처음 본 한국힙합의 이미지는 어땠나요. 전과 별다를 게 없었나요?


큰일은 없었던 거 같은데, 되게 재미있는 일들은 조금씩 있었던 거 같아요. 그게 흥미로웠어요. 산이 사건도 그렇고, <쇼미더머니> 사건도 그래요. 대웅이가 그렇게 된 거. 그리고 또 무슨 일이 있었나요?






LE: 올해 상반기 말씀하시는 거죠? 글쎄요.


‘별로 변한 게 없더라.’ 딱 이거인 것 같아요.






LE: 하지만 사람들이 체감하는 건 또 다른 것 같아요. 게시판에 ‘누가 누구랑 싸우더라.’ 이런 류의 글이 올라오면 사람들이 정말 뜬금없이 그래요. “아, 스윙스 그립다.”라고. 이런저런 사건이 있을 때면 꼭 ‘스윙스가 들어오면 게임 다 끝났을 텐데.’ 같은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스스로도 씬 안에서 자신의 공백이 있다고 느껴졌나요? 아니면 그런 의견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많이 들었어요. 주위에서도 그렇고, 군대 가기 전에도 그렇게 될 것 같다고 얘기한 사람이 되게 많았어요. 사람들이 저 되게 보고 싶어 할 거라고. 그게 맞는 말이라는 걸 나오고 나서 많이 알게 됐어요. 고맙게 느껴졌어요. 한편으로는 작업물을 자주 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너무 자주’요. 저는 사람들이 소화하기 전에 또 내는 편이니까, 사람들이 오히려 “지겨우니까 그만 좀 내!”라고 했던 것 같아요. ‘얘 왜 또 나와?’ 같은 거. 제가 저를 너무 싸게 팔았어요. 그러다가 제가 좀 안 나오니까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데, 제가 기분이 다 묘하더라고요. ‘날 보고 싶어 한다고? 난 항상 제일 미움 받던 사람이었어.’ 같은 기분이었는데… 고맙더라고요. 그리고 희소성의 가치에 대해서도 깨닫게 됐어요. ‘앞으로는 보고 싶어 할 때까지 안 낼 거야.’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피처링도 이제 잘 안 할 거예요. 저는 너무 많이 하니까 좀 아껴도 돼요.






LE: 피처링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스윙스 씨는 진보(Jinbo) 씨의 앨범 [Fantasy]의 수록곡 “It’s Over”에 참여하셨잖아요. 그런데 진보 씨가 인터뷰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스윙스랑 작업하려고 한다고 주변에 말했더니 사람들이 “스윙스?”라고 했다고. 괴리감이 있다는 식이었던 것 같아요. 진보 씨가 활동하던 반경과 스윙스 씨가 활동하던 반경을 비교할 때 말이죠.


네. 진보 형이 저한테 그걸 똑같이 이야기하셨어요. ‘도대체 얘랑 왜 하느냐.’ 뭐 그런 식이었대요. 저를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LE: 확실히 피처링을 여기저기 많이 하시면서 소모가 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게 더 많았던 거 같고요. 피처링 같은 부분은 항상 제의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죠? 그렇다면 쳐낸 것도 많은지, 아니면 웬만한 건 다 했는지 궁금해요.


제가 의외로 거절을 잘 못 해요. 그래서 기준을 정했어요. ‘한 달에 한 개, 두 달에 한 개.’ 같은 식으로요. 많이 했더니 오히려 욕을 먹는 경우가 많고 하니까요. 저도 이제 그냥 덜 내려고요.





LE: 혹시 기억나는 피처링 트랙이 있으신가요? 


긱스(Geeks)의 “Siren”을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그건 별로 안 알려졌더라고요. 그다음에는 박재범 씨의 “사실이야 (1hunnit) (Remix)”요. 그때 정말 물올랐었는데. 그거 정말 좋아요. 요즘은 그 두 개가 생각이 나요.






LE: 힙합이 아닌 장르는 기억나는 게 없나요? 


아닌 거라면, 태양 씨의 “네가 잠든 후에”가 재미있었어요. 태양 씨도 힙합이긴 하죠. 근데 그거 존나 재밌었어요. 그래도 아이돌인데, 아이돌 노래를 제가 정말 개더럽게 해놨거든요. ‘‘네가 잠든 후에’가 주제니까 존나 더럽게 써야지.’ 하고 (가사를) 썼었어요. 그랬더니 많은 사람이 “가사 쓴 새끼 존나 양아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재밌었어요.






LE: 그렇게 보면 크러시(Crush) 씨의 “Crush On You”도 그런 편이에요.


네. “Crush On You”도 존나 재미있었어요. 그건 비트도 좋고, 노래도 좋으니까 했는데, 재미도 정말 있더라고요. 실제로 제가 연애하는 여자라든지, 가까운 여자한테 그런 장난을 많이 쳐요. 약간의 띠꺼운 자신감이 있는 장난, 그런 장난을 많이 쳐요. 용서되는 띠꺼움. 씨잼한테 맨날 그래요. “용서되는 띠꺼움이 제일 재밌는 거다.”라고요.






LE: 미워할 수 없는 느낌이네요.


네, 미워할 수 없는 띠꺼움. 뻔뻔함.  






LE: 다른 얘기로 이어가 보면, 아까도 잠시 얘기해주신 린치핀을 요즘 들어 정말 많이 얘기하시잖아요. 무언가를 새로 런칭도 하신 것 같은데, 뜻이 궁금해요.


짧게 얘기하자면, 세스 고딘이라는 작가가 있어요. 마케팅하는 사람으로 세계적으로 정말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쓴 책 네다섯 권 정도를 읽었는데, 제가 예술을 생각하는 관점 자체가 바뀌었어요. ‘예술은 리스크가 있어야 한다. 예술은 개인적이어야 한다. 예술은 남들과 공유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술은 오리지널 해야 한다.’ 이런 법칙이 정립화된 건 그 사람 덕분이에요. ‘이래서 외줄 타기 하는 사람이 박수를 더 받는구나.’ 싶었고, 퍼포머와 예술가의 차이 또한 배우게 됐어요. 요리사, 그러니까 ‘Cook’은 예술가가 아니에요. 하지만 셰프(Chef)는 예술가예요. (요리를) 새로 발명하는 거니까. 근데 요리사는 레시피대로 하는 거고. 무슨 말인지 알죠?






LE: 네, 대충은 알고 있죠. 백종원 씨랑 다른 분들을 비교하는 그런 식이죠.


아, 알고 계셨구나. 저는 몰랐어요! (알게 된 지) 3년 정도 됐어요. 이런 거 읽기 전까지 셰프와 요리사의 차이가 그런 건지 몰랐는데, 알게 됐어요. “황정민”이 인기가 많았던 이유, 디스전이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알게 됐고요. 리스트가 존나게 크니까. 그리고 진짜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사람들과 공유를 하니까. 그런 공유를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죠. 우리 집에 내가 그린 그림이 백 점 정도가 있는데, 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보다 잘 그렸다고 해봐요. 그러면 상대방은 보여달라고 할 권리가 있죠. 거기에 “싫어.”라고 하면 내가 왜 예술가예요? 누군가와 나누어야지만 예술가가 된다는 거예요. <Linchpin>이라는 책을 제가 사서 읽었는데, 그 린치핀이라는 게 뭐냐면, 바퀴 같은 데에 많이 들어가는 부품이에요. 이게 빠지면 모든 게 무너져요.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작은 부품인데, 이 부품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애플(Apple)의 린치핀은 스티브 잡스(Steve Jobs)였죠. 한국힙합의 린치핀은 스윙스죠. 무슨 말인지 알죠? 옛날에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이런 말을 했대요. “아시아의 린치핀은 한국이다.”라고. 그런 식이에요. 원래는 일본이라고도 했다던데, 그냥 심심해서 네이버(Naver)에서 찾아 읽어봤었어요. 아무튼, 제 꿈이에요. 제가 늘 되고 싶은 것. 그리고 우리 사람들이 늘 됐으면 하는 것. 자기가 어디 속해있든 린치핀이 되었으면 해요. 지금 생각하면 지금 저스트 뮤직에서 누구 한 명 빠지면 절대 안 돼요. 나래가 빠져도, 노창이 빠져도, 제가 빠져도, 기리가 빠져도, 블랙넛이 빠져도, 바스코 형이 빠져도, 씨잼이 빠져도 X 돼요. 다 마찬가지예요. 언제나 이 마인드를 가지고 살았으면 해요. 그 누구보다도 저 자신이요. 독특하면서도 쉽게 교체할 수 없는 거. 대체 불가한. 그러기 위한 모든 걸 다 갖기 위해서 매일 새롭게 다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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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저스트 뮤직의 새 로고가 그 린치핀이라는 부품을 형성화한 건가요?


네. 부품이 원래 그렇게 생겼어요. 쇠로 만든 거예요. 구글(Google)에 린치핀 치면 딱 나와요.






LE: 여담인데, 로우 디가 씨가 그렇게 로고를 새로 만든 걸 보고 ‘스윙스는 내가 정말 오래전부터 본 애지만, 저런 건 나한테 좀 맡겼으면 좋겠다.’ 같은 뉘앙스로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네, 맞아요. (웃음) 걔가 이런 걸 많이 아쉬워했어요.






LE: 그래도 린치핀의 철학이 그 로고에 담겨있으니 좋다고 생각하시는 거겠죠.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예뻐도 좋은데, 제가 이걸 유명하게 하면 사람들이 멋있다고 할 거예요. 이해 가시죠? 제가 그거 증명할 거예요. 나중에 로우 디가한테 전해주세요. 디가가 틀렸다는 걸 내가 증명해주겠다고.






- 19. 못다 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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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자, 이제 남은 잔여 질문, 기타 질문을 드릴 거예요. 네네치킨 광고 찍을 때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스윙스 씨가 쓴 가사인 건지, 그런 거요.


다 써드린 거예요. 그땐 정말 정신이 없었을 때였어요. 군대 때문에 우울해 있었고, 생일날 촬영이기도 했어요. 서태지 씨랑 그날 낮에 만나서 뭐했고, 그 촬영 끝나고 난 후에는 광주로 갔을 거예요. 정말 정신없는 이틀이었어요. 유재석 형님은 빛이 보였어요. 사람이 빛이 나더라고요. 사람들이 되게 (유재석 씨를) 좋아하는 것도 보였고요. 처음에 저를 무척 조심스럽게 대하시더라고요. 제 이미지가 있으니까. “오우, 그래 스윙스야. 네가 뭐, 그래, 누구랑 친하니?” 막 이러면서요. 어색어색한 대화를 몇 번 나눴어요. 그 형이 정말 멋있는 게 뭐냐하면, 진짜 열심히 하는 게 티가 나더라고요.






LE: 본인에게 맞는 옷이든 안 맞는 옷이든 일단 열심히 하는 건가요?


네. 태도가 정말 멋있었어요. 사람이 전체적으로 좀 따뜻했고, 좋은 의미에서의 권위, 파워 같은 것도 느껴졌어요. 누가 보면 되게 말랑말랑한 분일 수도 있잖아요? 아니에요. 충분히 포스 있었어요. 아쉬운 거는 촬영만 그렇게 하고 그 이후로 뵙거나 한 게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좀 더 대화 나눴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에 <힙토쿠>에서 제가 그랬잖아요. 저는 먹는 거 CF 찍어보고 싶다고. 그 광고로 제 꿈이 이뤄졌어요. 그래서 정말 행복했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리복(Reebok), 아디다스(Adidas) 같은 거 찍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저 둘 다 찍었잖아요. 이제 더 해야죠.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감사하고.






LE: <SNL> 이상민 편에도 출연하셨어요. 그때는 어땠나요?


그게 군대에 가기 한 사흘 남겨놓은 때라 개 멘붕인 상태였어요. 찍으면서 집중도 잘 안 됐어요. 집안에 여러 가지 문제도 있기도 했고, 촬영하는 거 자세히 보면 저 그렇게 행복한 느낌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건, 그래도 너무 행복했던 게 있다는 거예요. 신동엽 형하고 안영미 누나는 제가 진짜 좋아하거든요. 코미디 쪽을 자주 보는 건 아닌데, 제가 이 두 분은 특히 좋아했어요. 둘 다 제가 하는 거 보더니 “<SNL> 들어왔으면 좋겠다.”라고 했대요. 정말 그랬어요. 제 친구 이혁진 본부장이 가 있었는데, 안영미 누나가 저 없는 자리에서 그랬대요. “쟤는 그냥 우리 애들 같아. 쟤 우리 팀으로 데리고 와.”라고요. 신동엽 형님도 제 칭찬을 엄청나게 하고, “쟤 진짜 잘한다. 영입하자.” 라고 했대요. 나중에 제 앞에 오더니 “너 진짜 잘한다.”라고 하시고, 옆에 있던 다른 분이 이 형님 원래 칭찬 그렇게 안 한다고, 진짜 인정해서 얘기하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옛날부터 <SNL>하고 싶었어요. 박재범 씨처럼. 저한테는 그런 면도 있어요. 대체로 진지해서 그렇지, 장난끼도 엄청나게 많아요. 장난칠 때는 엄청나게 쳐요. 래퍼 중에 그런 애들 하나씩 있잖아요. 코미디, 노래 등 다 하는 애들. 제이미 폭스(Jamie Fox), 엘엘 쿨 제이 같은 사람.






LE: 미국 <SNL>에는 힙합, 알앤비 아티스트들이 되게 많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근데 한 편을 말하는 게 아니라 크루로 들어가는 걸 얘기하는 거예요. 존나 배우고 싶어요. 저도 코미디를 너무 좋아해서요.






LE: 어릴 때, 그러니까 정말 처음 랩을 세상에 공개하기 시작했을 때의 감정이 아직도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는지 혹은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지 궁금해요. 그때의 느낌이 여전히 생생한지도 궁금하고요.


솔직히 별로 안 생생해요. ‘내 초심이 뭐였더라?’하고 생각하면, 사실 기억이 안 나요. (웃음) 기억 안 나는 게 어떻게 보면 좋은 거예요. 그만큼 멀리 왔다는 거니까. 지금은 그냥 무조건 더 크게, 무조건 더 잘하자는 게 커요. ‘절대로 난 발전을 멈추지 않겠다. 나는 힙합뿐만이 아니라 모든 장르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음악을 할 거다. 나는 세상을 바꿀 거다.’ 이 마음이 정말 커요. 그 와중에 “X 부자가 되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요. 저는 1조 원 버는 게 꿈이거든요. 1조 원 벌 거예요.






LE: 저희 에디터 중 한 분도 그러더라고요. “초심은 그냥 초심일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라고. 초심을 생각하고 살면 처음 그대로 할 뿐이지, 발전이 없다고. 중요한 건 그다음의 발전이라고요. 그러니 초심을 계속 생각하지 말고, 그냥 초심은 초심 그대로 내버려 두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와, 신기하다. 우와! 그분이 저랑 하는 생각이 똑같다는 게 정말 멋있는데요? ‘내가 X신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왜 난 까먹었지?’하면서 자책하는 게 되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거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제가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멀리 왔다는 거죠.






LE: 여전히 랩 하는 건 재밌나요?


제 의사가 그랬다니까요. 저 이거 안 했으면 조현병 환자, 아니면 범죄자 됐을 거라고요. 아직도 존나 좋아요. 재미를 떠나서, 이걸 안 하면 제가 뭘 못해요. 저는 이걸 해야 해요. 나와서 두 달 만에 [Levitate] 작업 다 끝냈다니까요.






LE: 근데 랩이 재밌다는 게 언어 유희적인 펀치라인을 쓰는 게 재밌다는 건지, 아니면 가사를 쓰고 랩을 하는 것 자체가 재밌다는 건지 궁금해요.


저는 기본적으로 제 생각을 누구와 나누는 걸 무척 좋아해요. 근데 거기에 음악이 더해지는 거예요. 힙합이라는 음악 자체가 멋있잖아요. 나누는 데다가 멋있기까지 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존나 재미있어요.






LE: 그럼 앞으로도 언어 유희적인 건 많이 안 쓰실 생각이신가요?


흥미가 떨어졌어요. 그동안 많이 보여줬더니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예요. 요즘 트렌드 자체가 펀치라인을 엄청 나열하는 것과는 멀어요. 한 곡에 엄청 몰아넣는 건 약간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요. 이제 80%로만 해보려고요. 일은 150% 열심히 하는데, 랩을 할 때 그 느낌은 ‘여유 Shit’으로. 그걸 조금 더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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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스윙스 펀치라인을 보고 유치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처럼, ~처럼.”같은 것만 한다고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 사람들이 뭘 좀 모르는 것 같아요. 제가 [#1] 믹스테입에 쓴 펀치라인이 우리나라에서 나온 모든 펀치 라인 다 씹어먹는다고 생각해요. 모든 래퍼가 쓴 펀치라인이 그 믹스테입 하나에서 이미 다 끝났어요. 그 나머지는 전부 다 제 것에 대한 주석을 단 거로 생각해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펀치라인 킹에 대한 토론은 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제가 짱이에요. 워드 플레이 가지고 저 같은 창의력을 보여준 사람 아무도 없어요.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면 옛날 것부터 쭉 들어보면, 제가 예전에 도치법 썼을 때 사람들이 다 저 기형아, X신 취급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다 도치법 써요. 옛날에 제가 잘난 체하는 랩을 처음 썼을 때는 겸손하지 못하다고 저랑 버벌진트 존나 욕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다 그렇게 쓰고 있어요. 자랑하는 가사, 옛날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제가 최초로 시작한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근데 다 지금 그렇게 쓰잖아요. 그런데 왜 나만 유치한 거예요.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돼요. <쇼미더머니> 나왔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스윙스를 많이 까요. 근데 지금 다 나왔어요. 왜 제가 (나간 게) 반칙인지 저는 묻고 싶어요. 근데 뭐, 그렇게 느끼고 싶다면, 마음대로 생각하시면 돼요. 5천 명이 저한테 “너는 펀치라인 킹이 아니다.”라고 해도, 저는 제가 펀치라인 킹인 거 알아요. 싸울 필요가 없어요.  






LE: 타블로(Tablo) 씨도 이긴다고 생각하세요?


네, 당연히. 멋있는 형이지만, 당연히 저죠.






LE: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느껴지는데, 동시에 극적으로만 왔다 갔다 하시는 것 같기도 해요. 이성적일 때는 엄청 이성적이고, 감성적일 때는 엄청 감성적이랄까요. 스윙스 씨는 본인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그거 오래 생각해봤는데, 저는 그냥 감정의 폭이 너무 넓은 사람이에요. 그때그때 변하는 사람. 그래서 옛날에 그걸 막으려고 했는데, 그냥… 이게 저인 것 같아요. 방금 하신 말씀이 맞아요. 감성적일 때나 이성적일 때나 이쪽저쪽으로 확확 가고 그러는데, 제가 그런 사람 맞아요.






LE: 본인의 감정 상태에 대해서 되게 이성적으로 말로 잘 설명하시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그게 잘 안 되는 사람도 있잖아요.


네, 맞아요. 존나 연구했어요. (웃음) 나름 존나 연구했어요. ‘나는 왜 이러지? 왜 내 행동은 늘 다르지? 어떤 것에 대한 내 의견은 왜 항상 바뀌는 거지?’ 생각하면서요. 존나 괴로워하다가 이게 저라는 걸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일관적이지 않은 게 제 일관성이에요.






LE: 다양한 감정 중에서도 스윙스 씨의 원동력이 되는 감정이라면 열등감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일단 부정적인 측면을 에너지로 삼아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실제 과학적으로 밝혀졌다고 하더라고요.


신기하네. 우와! 칭찬만 하는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거네요.






LE: 네. 부정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는 사람이 있더라고 하더라고요.


네, 저는 그래요. 저는 진짜 누가 심하게 지랄해야지 더 잘해요. “잘한다, 잘한다.” 하면 저는 교만해져서 “예~ 나 잘해.” 그렇게 굴거든요. 예를 들어, 어글리덕이 디스전 때 저한테 그렇게 랩을 했는데, 제가 그래서 깨어났거든요. ‘아, 씨X 맞아. 이 개새끼들!’ 하면서 그때 지구에서 제일 빡치는 랩 보여줬잖아요. 저는 욕 처먹고 힘든 일이 있어야 잘해요. 정작 본인은 괴롭지만, 그게 맞아요.






LE: 자신을 갈아 넣어야만 좋은 게 나온다는 거잖아요. 그런 게 힘들고 괴롭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괴로워요. 괴로울 때가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만큼 뭔가를 해내면 그만한 만족감이 찾아오니까요. 또 모르죠, 제가 이렇게 퍼붓는 걸 좋아하니까,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이럴 수도 있어요. “이 XX놈아. 너도 맞아봐. 너 그동안 내 욕했지? 이 앨범 너희 마음에 안 든다고 했지? 그동안 존나 실컷 욕했지? 자, 난 이거 하나로 너 입 닥치게 해줄게.”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또 헤이터들이 자동으로 생겨나요. 또 싸우는 거예요.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죠. (그런 상황이) 영원할 수도 있어요. 은퇴할 때까지는 각오하고 해야죠. 뭐.






LE: 지금은 여러모로 자타가 공인하는 랩스타가 되셨잖아요. 혹시 그렇게 돼서 열등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나요?


이제 열등감보다는 ‘모두가 나보고 최고라고 말하는 순간’을 위해 이 지랄을 하는 거 같아요. 이게 혹시 열등감인가요? 아니면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인가요? 뭔지 잘 모르겠어요.






LE: 열등감이라고 하기는 조금 모호한 것 같아요.


네, 그런 마음이에요. 다 저를 인정하게 하는 거. 겸손한 척하면서 인정하게 하는 게 쉬운 길이라는 건 알아요. 다 좋은 말만 하는 앨범 내는 거. 조금만 더 가식 부리고, 조금만 더 헤이터 얘기 안 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싫어했던 사람들도 ‘이제 얘 조용히 음악 하네. 칭찬해야지.’ 하면서 반응이 달라질 거예요. 그걸 저도 알지만, 제 성격이 그걸 감당을 못해요. 허락을 안 해요. 웬만하면 거의 그렇게 또 나오는 것 같아요. 그동안 맞은 게 있어서 모르는 척하는 걸 되게 힘들어하는 성격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죠? 증명할 거예요. 곧 모두 닥치게 할 거예요. 메이웨더처럼 되는 게 제 꿈이에요.






LE: 그런 얘기를 듣고는 철이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 본인이 철 들었음을 자각하는 순간이 있나요?


엄청 많이 있어요. 한 2년 전부터 느꼈어요. 그리고 공포를 느꼈어요. ‘내가 철 들면 도대체 음악에서 무슨 얘기를 하지? 내가 철 들면 내 창의력은 어디로 날아가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철이 든다는 건 자기를 자각하고, 자기를 누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 누른다기보다는 자기와 멀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옛날에 어떤 인터뷰에서 제가 그렇게 얘기했었어요. “영원히 중2병이었으면 좋겠다.”라고. 그런데 자꾸 철이 드니까… 성숙해지고는 싶어요. 그런데 철은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뭔가, 모험을 포기하는 사람, 리스크를 피하는 사람, ‘만약’을 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LE: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편입되는 게 그 리스크를 포기하게 되는, 안정을 찾게 되는 순간인 것 같아요. 혹시 결혼 생각 같은 건 없으신가요?


잘 모르겠어요. 옛날에는 무조건 하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결혼 뒤에 따라오는 책임이 너무 크잖아요. 아직 제가 그만큼 성숙하지는 못해요. 아직 멀었어요. 확실해요.






LE: 결혼하면 좋겠다는 여성분이 있었는데, 놓친 적도 있었나요?  


물론, 있었죠. 있었는데, 그냥… 지금 후회나 아쉬움은 전혀 없어요. 모든 건 그냥 일어났고, 지나간 일.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쪽에 있어서는 더 쿨하게 되더라고요.






LE: 인생을 살면서 결정,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을 거 아니에요. 그럴 때의 후회 같은 건 있을 법해요. 당연히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요.


존나 많아요. 말도 못하게 많아요. 그나마 다행인 건, ‘반드시 일어나야 했구나.’ 하는 건 딱 그런 순간에 일어났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 후회들을 붙잡아 놓고 때렸었어요. 요즘에는 저를 용서하는 방법을 알고, 제가 그 누구에게도 심판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아 가고 있어요. 그걸 믿으려고 하고 있어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심판받을 이유가 없어요. 같은 인간들끼리. 제가 만약 게이라서 그 누가 저한테 삿대질한다 해도 제가 그 사람에게 변명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에요. 엄청 멋있어서 몸에 배게 하려고 하는 말이 하나 있어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좀 어려울 수도 있어요. “변명하지 마라.”라는 말이에요. “변명하지 마라. 네 친구들은 그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고, 네 적들은 어차피 안 믿을 거다.” 요즘은 이 말대로 잘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되게 힘들었거든요. 더 몸에 배게 해야 해요. 죄책감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는데, 죄책감 느껴서 좋을 거 아무것도 없어요. 본인이 본인을 용서하면 끝이에요.






LE: 그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과정이 굉장히 어렵지 않나요?


어떨 때는 어렵고, 어떨 때는 쉬운데, 요즘은 되게 쉬워졌어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LE: 가사에서 여자가 싫을 때가 있었다고 한 적이 있으시잖아요.


어떤 노래죠? 아, “이겨낼거야 2” 말씀하시는 거구나. 맞아요.






LE: 실제로도 정체성을 고민했는지가 궁금해요. 가사 뜻을 오해한 걸지도 모르지만요. (웃음)


아~ 그거, No, No. (웃음) “한 땐 호모섹슈얼한 사람, 또 여자에 대한 학습된 편견을 갖고 살았지만 성찰을 통해 그 불을 껐어” 이 부분인데, ‘호모섹슈얼과 여자’라는 말이에요. 한때는 호모섹슈얼, 여자를 다 싫어했다는 소리에요. ‘나는 한때 호모섹슈얼이었다. 그리고 여자에 대한 학습된 편견을 가졌다.’라는 뜻이 아니라. A와 B가 싫었다는 거죠. 근데 다들 많이 물어보긴 했어요. (웃음) “혹시 게이였어?”라고. “아니… 아니라니까…”라고 했죠. (웃음) 저는 화살만큼 스트레이트예요.






LE: 군대 있으면서 혹시 좋아하게 된 걸그룹이 있나요? 


AOA 조금 좋아하게 됐고, EXID 조금 좋아하게 됐어요. 음악적으로는 SM 엔터테인먼트(SM Entertainment)에서 나온… 레드벨벳(Red Velvet) 되게 좋아했어요. 한 번은 군대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아이린 빼고 다 왔었어요. 근데 다 제 노래 따라 부르면서 막 팬이라고 하더라고요. 되게 고마웠어요. 왜냐하면, 저는 군대에 있을 때 얘네가 되게 힘이 되어줬거든요. 그 당시 저 “Ice Cream Cake”, 씨X 가사랑 춤 다 외웠었어요. ‘와~ 군인이 되면 이런 거 맨날 보는구나.’ 싶었어요. 옛날에는 원더걸스(Wonder Girls) 같은 그룹 이후로는 아예 관심이 없었거든요.






LE: 만약 그런 아이돌에게서 콜라보 컨택이 오고, 아다리(?)가 적절히 맞다면 작업할 의향이 있나요?


아다리가 맞으면, 그리고 뭔가 실험적이고 재미있으면요. 옛날에는 그냥 누가 피처링해달라고 하면 별로 생각 없이 많이 했는데, 이제는 확실한 뭔가가 있어야 해요.






LE: 기리보이 씨가 구하라 씨 노래에 피처링하기도 했고, 바스코 씨랑 기리보이 씨가 샤넌(Shannon Williams) 씨 노래에 참여하기도 했잖아요. 특히, 가요계 쪽으로는 기리보이 씨가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근데 그런 피처링 같은 경우에는 스윙스 씨가 어느 정도 제어하시나요, 아니면 그냥 뮤지션의 의향에 다 맡기시는 편인가요?


의향에 맡겨요. 제가 저한테 요구하는 기준을 걔네한테도 똑같이 요구해요. “너무 희소성을 버리지는 마라. 너무 싸게 내놓지는 마라.”라고요. 근데 본인들이 저보다 더 잘해요. (웃음)






LE: 아까 ‘섹시돼지’라는 말이 나왔었잖아요. 그거, 여전히 유효한가요?


그럼요. 약간 웃기잖아요. 옛날에 무대에서 “사람들이 자꾸 나를 보고 돼지라고 하는데, 나는 나 스스로 섹시하다고 생각한다. 씨X, 나 섹시돼지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더니 (관중들이) 빵 터졌던 기억이 나거든요. 되게 캐치하잖아요. 그러니까 섹시돼지죠. 저를 돼지라고 놀리는 걸 사람들이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남이 나 놀리는 걸 여유 있게 뒤집는 걸 좋아해요. 무슨 말인지 알죠? “너, 씨X 비율 쩐다.”라고 하면, “그래 XX 새끼야, 나 비율 쩐다.”라고 답하는 거죠. 그런 재미를 굉장히 좋아해요.






LE: 무대에서 웃긴 모션 같은 걸 많이 하시잖아요. 즉흥적인 건가요, 아니면 팬 서비스 차원에서 계획하고 하시는 건가요?


즉흥적인 거죠. 여유가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어요?






LE: 그걸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더라고요. 


네, 엄청나게 많아요. 그런데 어떡하겠어요. ‘싫어하려면 싫어해라. 어쩌라고.’ 하는 거죠. 맨날 가오 잡으면서 매 순간 흑인인 척하는 애들보다는 만 배 나은 것 같아요. “난 나야. 어쩌라고. 이거 누구 따라 하는 것 같아? 너희보다는 만 배 오리지널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 이건 아티스트가 싫어했다면 하고 싶은 말이고, 팬들한테는 그냥 보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LE: 내년이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2016년 안에 당장 해야 할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내년이요? 내년에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내야죠. 준비하고 있는데, 맨날 엎어졌어요. 제가 없으니까…






- 20. Outr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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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기타 질문까지 완료했어요. 슬슬 마무리시간이 다가옵니다. 이건 어떤 뮤지션 분들에게나 다 드리는 질문이에요. 저희 힙합엘이에는 자주 오시는지,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저 힙합엘이 개좋아하고, 개지지해요. 존나 좋아해요. 존나 존나 좋아해요. 맨날 들어가고요. 힙합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힙합 설명할 때 힙합엘이 들어가요. 특히, 외국 뮤직비디오 보여주면서요. “외국 애들이 무슨 말 하는지 궁금해? 이런 거야. 재미있지 않아?”라고 하면서요. 제가 직접 해석해줄 수도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그래서 (힙합엘이가) 더 고마워요. 제일 중요한 건, 힙합엘이 일동이 아직도 돈을 안 받는다는 게 졸라 쎄요. 지금까지 힙합엘이가 잘 돼서 스폰서나 광고 통해서 돈을 받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듣고 되게 감동했어요. 좋아서 한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누가 돈도 안 주는 데 시간 들여서 해요. 강제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예요.






LE: 예전에 스윙스 씨가 더 게임의 “My Life”를 해석해서 미니홈피에 올리고 하셨잖아요. 그냥 해석이 아니라, 디테일한 주석 같은 것도 달아서 하셨던 거로 기억하는데, 혹시 힙합엘이 가사 해석을 보면서 틀린 게 있는지, 뉘앙스 같은 게 부족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는지,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물론, 가끔 나올 때가 있어요. 근데 뭐, 그럴 수도 있죠. 한국 분들이 하시는 데다가, 외국에서 안 살다 온 분도 많을 텐데 어떻게 그걸 다 해요. 보완할 점은… 제가 가서 뭐 보태주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 건 따지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열심히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본인들이 열정이 있으므로 알아서 발전할 거라고 믿어요. 그러니 제가 굳이 이래라저래라 할 게 없다고 생각해요. 잘하고 계시는 분들한테 제가 지적할 게 아니라는 거죠.






LE: 앞으로의 계획을 여쭤보려고 해요. 단기적인 계획과 장기적인 계획 둘 다 여쭤 볼게요.


2년 뒤에 MTV VMA(Video Music Awards)에서 저를 보게 될 거예요. 그거면 끝난 것 같은데요.






LE: 네, 저희 준비한 질문이 모두 끝났습니다. 정말 많은 질문을 드렸지만,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한 말이나 마지막으로 힙합 팬분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면 한 말씀 부탁합니다.


잠시만요… 네. 그냥 다들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말 외에는 별 말이 안 떠오르네요. 다들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LE: 네, 알겠습니다. 인터뷰 시간 너무 길었는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니에요. 그만큼 잘 나올 거예요.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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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nus Track: 복귀를 앞두고 -


*본 챕터는 2016년 7월 28일, 복귀를 앞두고 스윙스와 추가적으로 가진 인터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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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일단은 시간이 또 꽤 많이 흘렀어요. 그 사이에 어떻게 지내오셨는지 간단하게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일단 전체적으로, 진짜 터놓고 이야기해서 괴로움의 연속이었어요. 지난 1년은. 너무 답답했어요. 저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그러지 못해서) 그냥 되게 답답했어요. 자기 성찰이란 걸 많이 했는데, 무서운 게 뭐냐면요. 옛날에는 저라는 사람이 생각이 많아서 그게 저한테 도움이 되는 줄 알았는데, 똑같은 생각만 맨날 하니까 오히려 독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을 되게 많이 했어요. 근데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냥 빨리 돌아오는 게 저한테 답이었던 거 같아요.






LE: 음악은 많이 챙겨 들으셨나요?


제 거 듣느라고 바빴고, 우리 애들 것 듣느라 바빴어요. 솔직히 음악을 엄청 많이 듣지는 않았어요. 들을 마음이 별로 없더라고요.






LE: 그게 힙합이든, 아니든 간에 그랬다는 거죠?


어느 음악이든요. 영화도 안 보고, 저 지난 1년 동안 책 한 권도 안 읽었어요. 군대에서 나오고 나서 한 권도 안 읽었어요. 두 페이지 이상을 못 넘기겠더라고요.






LE: 그게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에게 집중했던 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다 내려놓았다고 해야 하나요?


내려놓으려고 했는데, 잘 안된 그런 느낌이었어요.






LE: 기억하기에 올해 초에 스윙스 씨, 그리고 저스트 뮤직을 두고 이런저런 일들이 꽤 많았어요. 일단 레슨 얘기부터 해볼까요? MBC 다큐 <랩스타의 탄생>이나 자체 유스트림 방송에서도 얘기해주셨었는데요. 그때 다 얘기해주셨을 수도 있지만, 레슨에 관해 좀 더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더 있을까요?


그냥 그건 제 실수라고 생각해요. 그 당시에는 제가 인정하기가 되게 힘들었는데, 경솔했던 것 같아요. 깊이 생각 안 하고 내린 실수. 그래서 그거에 관해서는 저도 별로 할 말이 없어요.






LE: 지금도 모집했던 레슨생들과 레슨을 진행하고 있나요?


No. 레슨은 두 달하고 끝냈어요. 하다가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사람들한테 그냥 “여기까지만 합시다.”라고 이야기하고 그만뒀어요.






LE: 근데 그 사실을 SNS라든가, 어떤 공식적인 방법으로 밝히지 않으셨잖아요. 근데 아마 그만둔 후의 시점에도 게시판에서 사람들이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것 같기도 하고, 그걸 보셨을 것 같기도 한데요. 레슨을 이제 더 진행하지 않는다고 따로 말씀하실 생각은 없으셨나요?


굳이 그래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고요. 사람들이 욕을 해도 그건 제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으니까요. 별로 깊이 생각 안 했어요. 이미 지나간 일이고.






LE: 그 당시 본인의 감정 상태나 주변 상황이 아노미라고 해야 할까요? 되게 혼란스러웠던 때였겠죠?


진짜 혼란스러웠어요. 지금도 많이 혼란스러운데, 웃겨요. 이제는 제가 한 회사의 리더로서,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하면 제 식구들이 상처받을까 봐 걱정되기도 하는데요. 근데 그냥 솔직하게 말해서 제 인생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워요. 지난 1, 2년은 너무 혼란의 연속이었어요. 그 와중에 갈피를 잡으려고 되게 애를 썼어요.






LE: 복귀하고 나서는 어떨 것 같나요? 스윙스가 컴백하니까 사람들도 기대를 많이 할 것 같고, 그 기대에 맞춰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부응하기 위해 그동안 준비해왔던 걸 많이 선보일 것 아니에요. 그래서 약간 ‘아, 이제 일해야지.’ 모드가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랬으면 좋겠어요. 또 웃긴 건 뭐냐면, 지난 2년 동안 제가 평생 느끼지 못한 감정들을 다 느끼고 있는 거 같아요. 나중에는 분명히 제가 성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만, 제가 쉬다가 복귀하는 데에 이렇게까지 부담을 느끼는 게 처음이에요. 부담이라는 걸 거의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제대로 느끼는 거 같아요. 옛날에 달리기가 되게 빨라서 100미터, 200미터 육상 선수였어요. 서울시 대표였고, 초등학교 때 맨날 1등 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까지도 끌려나갔는데… 아무튼, 서울시에서 항상 1, 2등이었어요. 근데 그때 제가 육상을 하기 싫었던 이유가 뭐냐면요. 그 총성 울리면서 출발하기 전의 그 부담감 때문이었어요.






LE: 긴장하는 상태인 거죠.


네. 지금 제가 복귀해야 한다는 그 긴장과는 조금 다른 긴장이긴 한데, 저 너무 부담스러워요. 지난 ‘Levitate’ 시리즈 1, 2, 3는 되게 가볍게 냈었거든요. 근데 마지막 거를 내고 나서 이제는 복귀하면서 앨범을 내야 하는데, 그거 때문에 엄청나게 힘들어하고 있어요. 지금은 병원에 다니다 말았는데요. (군대에서) 나와서 오랫동안 다녔는데, 의사가 저를 되게 심층적으로 분석한 적이 있었어요. 돈 되게 많이 내고 하는 그런 게 있거든요. 저는 몰랐는데, 무의식적으로 그런 부담감이 많았나 봐요. 그 분석 결과지를 보는데, ‘이 사람은 현재 복귀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전 의사한테 제 입으로 그렇게 얘기한 적도 없는데. 그게 되게 무의식중에 나오나 봐요. 그래서 저는 그걸 읽고 의식적으로 알게 됐죠. ‘내가 진짜 부담을 느끼는구나.’ 하면서. 지금 현재 복귀까지 20여 일 정도 남은 상태인데, 기쁨보다는 조마조마함이 되게 커요. 그래서 문제가 뭐냐면, 창의력이 오히려 떨어지더라고요. 저는 기분이 좋을 때 가사가 잘 나오고, 훅이 잘 나오고, 음악이 잘 나와요.






LE: 아이디어가 고갈된 상태인 거죠?


네. 고갈되고, 묶여 있는 느낌? 이걸 성문에 비유하면, 문이 열려서 사람들이 나가게 해줘야 하는데요. 아니면 들어오게요. 그게 막힌 느낌이에요. 그래서 되게 쥐어짜 내고 있어요. 이것도 분명히 먼 훗날, 아니면 가까운 미래에 저에게 추억이 될 거고, ‘아, 이런 시기가 있어서 내가 성장한 거구나.’라고 생각되겠지만, 당장은 너무 괴로워요. 그런 느낌이에요.






LE: 작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을 상기해보면요. 물론 작품의 퀄리티를 아예 신경 안 쓴다는 건 아니지만, 욕을 먹든, 잘한다고 얘기를 듣든 일단 좀 결과물을 내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하셨었는데요. 지금은 단순히 그 생각보다는 갈아엎는 것도 많고, 완벽하게 하려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거죠?


(지금) 제 정신 상태가 말씀하신 일단 내고 보자는 그 마인드셋이 아니에요. 세팅 자체가 달라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잡혀 있는 것 같아요. 전 애초에 완벽주의자가 아니에요. 노창 같은 성격도 아니고, 보면 빈지노도 앨범을 되게 완벽하게 만들려는 스타일인데, 그 외에도 제가 아는 많은 뮤지션들은 대부분 완벽주의자인데요. 저는 대충 내는 그 맛을 좋아하거든요. 저는 제 앨범들 나중에 들으면서 ‘아, 이때 씨X 대충 녹음한 게 존나 맛깔났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근데 제가 (최근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짓이 있는데요. 제목을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아요. “24”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 편곡을 벌써 한 여덟 개는 받았어요. 프라임보이(PrimeBoi)가 만드는데, 걔만 편곡을 세 번 시켰어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맡겼어요. 기리보이, 노창, 돕플라밍고(Doplamingo)… 근데 저 태어나서 제 입으로 편곡 바꾸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어요. 비트메이커가 비트 주면 성격이 급해서 아무리 그 비트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해도 오히려 편곡자한테 (편곡)하지 말라고 해요. 그냥 빨리 믹싱 맡기자고 해요. 비트 신경 안 쓴다고. 그냥 랩이 좋으면 땡이라는 마인드였어요. 비트메이커들은 그게 좀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진짜 한 번도 편곡 바꾸자고 한 적이 없었어요. 그게 너무 신기해. 제가 정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결론인 것 같아요. 잠깐 제 자신감에 구멍이 났어요. (그 구멍으로) 새어나가고 있어요.






LE: 그럼 지금까지 만들어온 곡이 총 몇 곡 정도 되나요? 그렇게 고민하는 와중에도 많이 만드셨을 것 같기도 한데.


[Levitate 3] 내고 나서부터 한 두세 달 정도가 지났더라고요. 제 계산이 맞다면요. 새로 만들고, 버리고 했던 거 다 합하면 한 20개 정도 되더라고요. 예를 하나 들자면, ‘불도저 (Bulldozer) 2’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려고 벌스를 한 10개 정도는 갖다 버렸어요. 결국에는 안 만들 거야. 존나 웃겨요. 그냥 다 갖다 버렸어요. 씨X. 딱 쓰고 보는데 제가 저 자신을 의심하더라고요. 근데 ‘Levitate’ 시리즈 보면 엄청 자신감 넘치거든요. 음악하면서 즐거웠어요. 즐거움을 넘어서서 제가 생존하는 데에 필수인 공기 같은 거였어요. ‘이거 안 되면 안 돼. 미쳐.’ 이런 느낌이라서 맨날 믹싱 맡길 때 노창한테 이런 말을 했었어요. 세 개 다 똑같이 말했어요. 이 앨범이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2 낼 때 이 앨범이 더 중요하다고. 3 낼 때 이 앨범이 또 더 중요하다고. 계속. 그만큼 (‘Levitate’ 시리즈는) 공기 같은 거였어요. 안 내면 안 됐어요. 막 미치려고 그랬거든요.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뎌서. 거기서 또 깨달은 게 있어요. ‘아, 내가 경영자로는 아직 X도 없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왜냐하면, 음악을 안 하는 대신 경영을 열심히 하면 되잖아요. 근데 전 경영 X도 모르고 그냥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거거든요. 근데 그것마저 못하니까 ‘아, 씨X 앨범을 내서라도 애들한테 영감을 주자’ 이 생각이었어요. 허슬을 보여주면 애들이 영감을 받겠지 싶었고, 거기다가 즐기면서 산소처럼 (자연스럽게) 마시면서 했죠.






LE: 그럼 그 ‘Levitate’ 시리즈에 안 들어간 짤린 곡들도 많나요?


네. 많아요. 되게 많아요. 제 컴퓨터에 폴더가 따로 있는데요. ‘Throwaway Verses’라고, 갖다 버리는 벌스들이에요. (웃음) 그게 100개 가까이 되거든요. 근데 더 웃긴 건 뭐냐면, 거기다가도 저장 안 하고 그냥 지워버린 벌스들도 있어요. 이 폴더마저도 들어갈 자격이 없다 생각하는 벌스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어. 그 폴더(에 있는 벌스들)도 버릴 거면서 왜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가끔 들어가서 읽지도 않고. 그냥 존재할 뿐이에요. 그냥 (웃음) 스타크래프트에 있는 그 지나가는 동물들. 존재할 뿐이에요. 아무도 신경 안 써. 보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고, 살리지도 않는. 아무튼, 진짜 많이 갖다 버렸어요. 지금 생각하면 웃겨요.






LE: 그럼 ‘Levitate’ 시리즈에 실렸던 곡들은 그 많은 것 중에 일종의 바를 넘어선 경우일 거 아니에요. ‘이 정도 퀄리티는 되어야 내놓지.’, 아니면 ‘이 곡은 이런 특징이 있으니까 여기 실려도 충분해.’ 등등 여러 생각에 따라 수록을 결정했을 것 같은데요. 그 기준에 어떤 포인트 같은 게 있었다면 어떤 거였나요? 직관적으로 내가 듣기에 좋았다고 하실 수도 있고 말이죠.


전 항상 직관적인 게 항상 제일 크고요. 두 번째로는, 플로우가 좋으냐 안 좋으냐를 전 요즘 되게 많이 따져요. 옛날에 쌈디랑 센스랑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래퍼가 가사를 잘 써야 하느냐, 플로우를 더 잘 타야 하느냐로 토론했었는데, 저는 그 당시에 가사였어요. 그 태도가 제 음악에서 나왔죠. 전 진짜 리리컬했거든요. 막 [#1]이나 [Punchline King], [Punchline King Ⅱ] 이런 거 (낼 때는) 씨X 완전 가사적으로 신경 많이 쓰고, 플로우는 오히려 되게 단순한 걸 좋아했었어요. 근데 지금은 제 기준이 많이 바뀌었어요. (물론,) 당연히 둘 다 완벽해야 하는데, 플로우가 더 재미있더라고요. 플로우를 재미있게 짜는 거. 그래서 (‘Levitate’) 1, 2, 3할 때, 플로우가 X같으면 그냥 버렸어요. 딱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느낌이 안 온다 싶으면 갖다 버렸고… 그리고 저는 되게 추상적인 걸 좋아해서요. 제 커리어에서 논문처럼 가사 쓴 게 몇 곡 없거든요. 그런 스타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보다는) 추상적으로 제 노래 하나가 제 하나의 감정처럼 느껴졌으면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Money”라는 노래가 있는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 중 하나거든요. 그 노래 들어보면, 김연아 money, 이수만 money 막 이런 식으로 가사를 썼었는데, 얘가 얼마나 야망이 쩌는지 느껴졌으면 하고 낸 거였어요. 사람들이 들었을 때, ‘와, 씨X 이 새끼 야망 존나 쩌네. 존나 골 까는 새끼네.’ 이게 느껴졌으면 했어요. 5만원 짜리 지폐 억장 위에서 섹스한다고 하는 Shit. (웃음) “그릇의 차이 1”에서도 ‘와, 이 새끼 그릇 존나 크다.’ 이 느낌이 딱 느껴졌으면 했어요. ‘와, 이 새끼는 진짜 MC다. 아이유랑 자이언티(Zion.T) 꼬신대.’ 이런 느낌. 만리장성이 독수리한테 무슨 소용이녜. 아무튼, 각자 곡마다 색깔이 진했으면 싶은 마음이 컸어요.






LE: “튀어나온 못”도 색깔이 굉장히 진하지 않나요?


네. 그건 완전 대한민국 31년을 산 저를 표현하는 곡이었어요. 되게 철학적인 곡이고…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용기가 되었으면 하는 곡이었어요. 너네도 그냥 튀어나온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박히지 말라고.






LE: 근데 시리즈를 전체적으로 보면, 1, 2보다 3가 사실 스윙스라는 아티스트의 디스코그라피를 감안하면 ‘아, 이런 사람들도 스윙스의 음악에 참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규영 씨도 그렇고, 포레스트(Forrest) 씨, 키드 밀리(Kid Milli) 씨도 그런 케이스라고 볼 수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름, 뉴 페이스들을 예전보다 훨씬 대거로 기용했단 말이에요. 그런 부분에서도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새로운 사람에게 새로운 영향을 받고 싶었던 건지 싶어요.


일단 첫 번째는, 그 앨범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저랑 5, 6년 이상 안 애들이에요. 그리고 다 제 학생이었어요. 옛날부터요. 그리고 지금 인간적으로 제일 친한 동생들이고요. 애들이 다 랩이 존나 늘어서 제가 영감이 되어주고 싶었거든요. 사람마다 각자 자신한테 행복을 주는 게 다른데, 누구는 PC방 게임이고, 또 누구든 자기 자식을 매일 보는 거잖아요. 저는 요즘 확실히 배운 게, 이제 나올 곡 가사로도 썼었는데, 저는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발전시키는 게 저한테 제일 행복이더라고요. 저와 같이. ‘같이 잘 되자.’ 이 마인드가 저한테 있어요. 그래서 애들이 열심히 했다, 나랑 인간적으로 친하다, 이제 잘한다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또 있나 싶어서 “Getting Better”라는 곡에 낀 거죠. 그 마음이 컸어요.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덕분에 (얘들을) 세상이 아예 몰랐다가 이제는 힙합 씬에서 이름 정도를 알려졌잖아요. 규영이라는 새끼가 있대. 포레스트가 누구지? 이게, 아예 포레스트가 없다가 포레스트가 생긴 거잖아요. 스타크래프트에 있는 동물이 된 거야. (전원 웃음) 예전에는 무한한 정보 속에 하나의 숫자였을 뿐이었지만, 이제는 하나의 캐릭터가 됐지. 비록 아직 누군가가 관심을 두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이제 울트라리스크가 되거나 캐리어가 되든지 해야죠.






LE: 앞으로 나올 작업물에서도 그런 새로운 얼굴들을 볼 수 있나요?


네. 저는 일단 업보를 믿는 사람인데요. 제가 받은 좋은 거가 있으면 남들한테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전 신인들 많이 도와줄 거예요. 그리고 저는 기성세대들한테 불만이 많았던 게 저를 많이 안 도와줬거든요. 근데 저는 항상 도와주고 싶은 태도가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비와이(BewhY). ‘Levitate’ 시리즈에 유일하게 다 참여한 사람이에요. 전 예전부터 걔 보면서 ‘너 씨X 그냥 떠. 너 잘하니까 떠. 너 마음에 들어’ 이런 느낌이었어요. 애가 이빨 튀어나와 가지고 못생긴 게 너무 좋았거든요. 랩보다는. (웃음) 착하고 무게감도 있고. 그래서 비와이 씨X하자. 경쟁 마인드도 있고요. 잘하니까 한 번 붙어보자. 이게 힙합이지. 존나 잘하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를 스눕 독(Snoop Dogg)이 막으면 그게 힙합이에요? Fuck That. 그건 힙합이 아니야. 예전에 친구가 물어봤었어요. 씨잼이 너보다 잘한다는 얘기를 팬들이 가끔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언젠가는 날 추월할 수 있다고 생각해.”라고 했었어요. 그랬더니 제 친구가 “근데도 넌 회사로 받아줬네? 나 같으면 죽여놨을 텐데.”라고 하더라고요. 전 거기에 “솔직히 두려움은 있는데, 난 그냥 걔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게 멋있는 거라고 생각해.’라고 했었어요.






LE: 비와이 씨 관련해서는 스윙스 씨가 예전에 SNS로 샤라웃을 해주셨던 거로 기억해요. [Time Travel] 나올 때쯤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이미 그때부터 정말 잘하는 애고, 지금보다 더 주목을 받아야 하는 애라고 얘기하셨던 것 같아요.


신기하네요. 까먹고 있었거든요. (전원 웃음)






LE: 저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네요. (웃음) 내용도 살짝 생각나는 게, 이미 목소리에 이펙트가 걸려 있는 상태에서 랩을 하는 게 매력적이라고, 그런 식으로 얘기하셨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 잘되는 걸 보면 당연히 그만큼의 가치를 받는다고 생각하시겠어요.


당연하죠. 많은 사람이 과대평가라고 하는데, 전 질투라고 생각해요. 적응이 안 되는 거죠. 무서운 게 뭐냐면요. 저를 포함해서 사람은 변화를 무서워해요. 예를 들어, 갑자기 정치적인 체제가 바뀐다고 생각해보면, 모두가 난리를 치겠죠. (그런 게 아니더라도) 맨날 시켜먹던 짬뽕집이 없어져도 미치잖아요. 근데 비와이가 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얘 자체가 변화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아요. ‘나는 스윙스가 짱이라고 믿었었는데!’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겠죠. (웃음) 정말 재미있는 게, 일반적으로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LE: 그 변화에서 오는 일종의 위화감, 괴리감 같은 게 있다고 보시는 거죠?


제가 볼 때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인 거 같아요.






LE: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었잖아요. <쇼미더머니>에 많은 래퍼가 출연하지만, 사실상 씨잼 씨와 비와이 씨가 결승전에 갈 것 아니냐고. 예상이 충분히 되는 부분이라는 거죠. 스윙스 씨는 보면서 어떠셨나요? 스테이지 치르면서 올라가는 과정이나 결승전을 포함한 경연 무대라든가…


너무 훈훈했어요. 보기 좋았고, 자랑스러웠어요. 비와이는 우리 회사는 아니지만, 제가 엄청 아끼고 리스펙하는 동생이에요. 씨잼은 뭐랄까, 제가 너무 애지중지하는 (동생이에요.) 걔는 모를 것 같은데, 저는 씨잼의 그 어린 소년 같은 남자다움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지켜줘야 하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되게 여린 거 같거든요. 제 관점에서 봤을 때는 7살 어린 동생을 보는 느낌이에요. “신기루 (Illusion)” 낼 때도 이런 거 내면 얘 멘탈이 X될까 봐 엄청 많이 걱정했었어요. 이번 시즌 보면서도 저는 엄청 많이 긴장했었어요.


근데 저는 사실 처음에 이번 시즌 <쇼미더머니>에 나가지 말라고 했었어요. 나가지 말라고 하고, 다툼도 없이 걔도 동의했었어요. 그전에 시즌 3 나와서 4강까지 가고, 끝나고 얘 행보를 쭉 봤을 때는 너무 걱정하고 있기도 했고요. 오히려 <쇼미더머니>에 나간 게 얘한테 독이 됐나 싶기도 했어요. 너무 어린 나이에 나갔었거든요. 22살에. 근데 <쇼미더머니> 참가자 모집 이틀 전인가 하루 전에 제가 다시 하라고 했었어요. “야, 이거 하자. 너한테 도움될 거 같아.”라고 하면서요. 결국, 다시 나가게 하길 너무 잘한 것 같아요. 걔가 너무 순수해서, 제가 볼 때는 아직 자기를 덜 찾은 느낌이거든요. 자기 자신이라는 원석에 진흙이 많이 묻어 있어요. 그걸 조금씩 닦아내야 하는데, (결론적으로 이번 시즌이) 자기 원석에 더 가까워진 계기가 된 거 같아요.






LE: 물론, 재참가하는 래퍼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씨잼 씨는 좀 특별한 케이스잖아요.


그렇죠. 좀 달랐죠.






LE: 사실 딱 보면 ‘아니, 경연까지 치른 사람이 또 나와?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하는 걸 보니까 또 꽤나 많은 분들이 ‘아, 다시 나오려면 저 정도는 성장해서 나와야 하는구나.’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떤 연습량이라든지, 마인드셋 같은 게 시즌 3 때랑은 많이 달라진 건가요? 스윙스 씨가 보기에는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는지 싶어요.


성숙해졌죠. “신기루 (Illusion)” 낸 이후이기도 했고요. 많은 일을 겪고 나서 정말로 걔가 여유를 찾게 됐죠. 여유를 찾아서 거기 나간 게 느껴졌어요. 긴장 진짜 하나도 안 했어요. 그건 연기가 아니었어요. 1차 예선 때, 아이스크림 쪽쪽 빨아먹을 때였나? (웃음) 아, 무슨 우유 같은 거였다. 전 그 장면이 제일 명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씨잼이 정말로 남자가 되어서 나간 느낌. 물론, 아직도 많이 어리긴 한데, 너무 보기 좋았어요.






LE: 랩적으로는 어떤 것 같나요? 시즌 3 때는 약간 본인이 정해놓은 일종의 테크닉적 틀이 있으면 그거 자체를 완벽하게 소화해내긴 하는데, 제스처를 비롯한 다른 무언가를 하지는 못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어요. 근데 이번에는 마치 자다가 일어나서도 랩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다 연습을 해오고, 추가로 능청스러운 어떤 모션 같은 게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여유죠. 걔 엄청 노력해요. 온종일 뮤직비디오 보고요. 그게 걔 생활이에요. 온종일 뮤직비디오 보고, 사람들 만나고. 계속 긍정적인 것만 찾고. 걔는 긍정적이지 않으면 다 피하는 스타일. 그게 걔한테 엄청 큰 성장의 기본적 도구가 됐죠.






LE: 또 보면 그런 부분도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그 사람만의 어떤 인상을 남기는 게 중요한데, 이번 시즌의 씨잼 씨를 보면 그런 인상을 남긴 것 같거든요. 보고 재수 없다고 할 수도 있고, 되게 쿨하고 멋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시즌 3때보다는 어떤 인상이든 간에 대중들에게 좀 더 강하게 각인됐던 것 같아요. 캐릭터가 생겼달까요?


일단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게 첫 번째라고 생각하는데, 아까도 얘기했지만, 걔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에요. 그러면서 자기를 사랑해야 스타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자기가 누군지 알고, 자기를 좋아하는 것. 근데 씨잼이 그 과정을 밟고 좋은 길로 가는 것 같아요. 비와이도 마찬가지고요.






LE: 씨잼 씨는 그렇게 잘 가고 있는데, 다른 멤버들은 어떤 것 같나요? 간간이 작업물이 나오긴 했지만, 팬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정확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모르잖아요.


지금 시기가 우연히 모두가 작업에 대한 어떤 완벽주의적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저를 포함해서요. 기리보이만 엄청 내고. 회의 때 그러더라고요. “저 언제 또 내요?’라고. 저희가 “내지마. 이 X신아.”라고 했었어요. (웃음) 그만 좀 내라고. 너무 내니까. 근데 기리보이는 그냥 알겠다고 하고, 천천히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저스트 뮤직을 처음 설계할 때요. 저스트 뮤직은 역사를 두 개로 나누어야 하는데, 하나는 싸이코반, 제이통이 있었을 때인데, 그때는 제가 너무 X신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리더십이 부족했기 때문에 모두가 떠난 거죠. 다시 시작할 때는 일단 기본적으로 얘네들이 허슬을 하고 있느냐, 안 하고 있느냐를 중요시했었어요. 평소에 말이죠. 그리고 제가 얘네들을 허슬을 시킬 수 있느냐, 영감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를 제 기준으로 삼고 애들을 뽑았어요. 진짜 저스트 뮤직 애들 겉보기에는 망나니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진짜 작업실에서 안 나와요. 블랙넛 개 허슬러. 기리보이 미친놈 허슬러. 노창도 미쳤고. 노창은 음악 안 하고 있으면 그림 그려요. 만화 그리고. 우리 사무실에 그림들을 덕지덕지 붙여놨어요. 바스코 형 완전 열심히 하면서 클럽 두 개 운영하지. 씨잼은 뭔가를 창작한다기보다는 (웃음) 보는 거로. 배출한다기보다는 먹는 걸 되게 좋아하는 애예요. 다 허슬 엄청 열심히 해요. 누가 더 많이 한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데 지금은 타이밍이 우연히 어떤 걸 발표한다는 생각보다는 그걸 잘 만들어내는 데에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LE: 힘을 모으고 있다고 보면 되겠네요. 트랙들을 쌓아놓고 낼 준비를 하는.


맞아요. 제가 빨리 나와야지 보면서 자극을 받지 않을까 싶어요.






LE: 블랙넛 씨 같은 경우에도 되게 허슬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번 상반기 때 블랙넛 씨를 두고서 일들이 되게 많았잖아요. 말도 많았고. 요즘은 조금 그 이슈가 비교적 가라앉은 느낌은 있는데, 어쨌든 그래서 특히나 궁금한 멤버거든요. 디스전을 겪고, 여러 말들을 듣고 보면서 작업을 할 때의 마인드셋이라든가 이런 게 어떤 상태가 됐는지 궁금해요.


블랙넛은 미친놈이에요. 맨날 자기 핸드폰으로 가사를 쓰고 이메일로 보내요. 그 자기한테 보낸 이메일이 몇 백 개가 있더라고요. 근데 절대 안 보여줘요. 정말 특이해요. 걔는 완벽할 때까지 절대 안 보여줘요. 맨날 작업하고. 어쩌면 우리 중에서 제일 완벽주의자가 아닐까 싶네요. 제일 심해요. 보면 제가 괴로울 정도로. 자기가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 굉장히 많이 시달리고요. 저는 그냥 내라고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저는 순간 마음에 들어서 그거에 대한 평이 안 좋아도 괜찮아요.) 제 태도는 뭐냐면요. 지금은 이상하게 안 그러는 건데, ‘또 내면 되지.’ 이거예요. 이번 거 X 구리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요. 다음 거 내면 그게 그 전 거에 비해서 좋아 보이니까. X 구리면 반성하게 되거든요. (웃음) ‘씨X 내가 존나 이상했나? 난 그때 분명히 좋았는데 사람들이 별로라고 하네.’라고 하면서 저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서 자존심 상하고 더 열심히 하거든요. 근데 걔는 저랑 너무 달라요. 근본적으로 너무 다른 두 사람이기 때문에… 블랙넛은 진짜 피곤한 완벽주의자고… 방에서 안 나가요. 어제도 저는 놀러 나갔는데, 걔는 안 따라오겠다고 하고 혼자 맨날 새벽에 작업실에 있어요. 솔직히 작업실에 혼자 있으면 귀신 나올까 봐 무섭거든요. 걔는 그런 거 없어요. 피곤한 새끼에요.






LE: 상반기에 있었던 이슈에 관한 본인의 의견을 내비친 적도 있나요?


걔는 의외로 좋아해요. (웃음) 깡이 좋고, 관종이기도 하고. 슈퍼 관종이라서 좋아해요 그냥. 근데 요즘 독기가 많이 올라와 있어요. 원래 엄청 여유롭고 재미있는 알바로 애들 생일 파티 같은 데 가서 풍선 부는 광대 같은 느낌의 동네 바보 형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독기가 있어요. 열 받아 있어요. 그래서 저도 그걸 좀 만져주고 싶은데, 제가 저를 못 챙기니까 남을 어떻게 챙기겠어요. 아무튼, 저도 노력하고 있고, 블랙넛도 돌아올 거예요. 이제 한 번 내면 걘 터질 거예요.






LE: 기억하기에, 아마 블랙넛 씨가 이번에 한국힙합 최초로 평론가 같은 뮤지션 외의 인물을 가사에서 디스하지 않았나 싶어요. 또 기억나는 건 “펀치라인 애비 2”와 “Part 2”에 걸쳐서 두 남자 여자의 스킷이 상반되게 나왔던 거였는데요. 딱 들어서도 이건 논란이 안 될 수 없겠다 싶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서 스윙스 씨는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싶어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과한 블랙넛은 안 좋아해요. 저를 깔 때나 제 믹스테입에 수록된 “Watch” 정도의 수위를 좋아해요. 아니면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같은 감성? (웃음) 그 외의 (블랙넛이 가진) 엄청 극단적인 감성이 있잖아요. 저는 별로 안 좋아해요. 제가 맨날 말해요. 난 이런 거 싫다고. 그러면서도 너도 예술가니까 내가 어떻게 니가 하는 거에 있어서 침범하겠냐고 하죠. 항상 제가 사랑으로 보여주려고 해요. 맨날 대웅이한테 니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알고 보면 이런 관점도 있다고 얘기하거든요. 그랬더니 많이 변하긴 했는데, 그냥 저는 그 곡 재미있기도 하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얘가 그 예전에 코미디언 식으로 랩했던 때가 좋았는데… ‘존나 빡쳐 있네 얘?’라고 생각이 드니까. 진짜 화나 있고, 독이 많이 차 있다고 느껴져요. 전 “100” 감성을 좋아해요. 딱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블랙넛이에요. 장난 존나 치고, 웃기고, 유쾌하고. 위험한 말을 하고, 그게 보는 사람은 조마조마한 외줄 타기인데, 결국에는 그걸 해내고. 그걸 너무 좋아했어요. “100” 정도.






LE: “Indigo Child”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존나 세죠. 그때부터 독이 생겼던 거 같아요. 근데 오해받는 라인도 있더라고요. 제리케이 씨가 잘못 해석한 거죠. ‘세월호’ 라인. 그게 아마 메타 형 얘기를 한 걸 텐데. 세월호 자체가 너무 민감한 단어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렇긴 한데, 오해받는 건 좀 안타까워요.






LE: 간단하게 몇 가지 이야기해볼 만한 부분들에 관해서 짚는 식으로 얘기를 해봤는데요. 지난 몇 개월간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게 당연히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가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남은 올해도 아직 1/3이 남았고, 또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잘 돼야 할 거 아니에요. 저스트 뮤직도, 스윙스 씨도. 계획이라든가, 비전이랄까요? 염두에 두고 있는 것들 등등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이래저래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일단은 다시 말하지만, 제가 회사를 이끌어 가는 방식은 다른 게 아니고 그냥 애들한테 영감을 주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이 사람들한테 그 어느 때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보여줘야 할 거 같아요. 두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우리효과]는, 지금 기리보이가 프로듀싱하고 있는데요. 진행 중이고요. 플레이어로서 각자 멋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워 레인저처럼 뭉칠 때는 또 뭉쳐야 해요. 그게 단체의 힘을 경험할 수 있는 거니까요. 애들이 조금씩 퍼져 나갈 때 제가 조금씩 중심을 잡아 나가는 역할을 할 거예요 옛날처럼. 군대 가있던 시간이나 지금이나 제가 조금 손을 떼긴 했지만, 이제 다시 시작할 거고요. 제 목표는 이제 힙합이 대세가 됐잖아요. 거기 맨 위에 애들을 다 올려놨으면 좋겠어요. 힙합하면 떠오르는 사람들. 기리보이 같은 경우는 가요 쪽도 하고, 다른 장르들을 많이 하지만, 걔 역시도 음악성이 최고라는 걸 전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컴필레이션 앨범을 꾸준히 낼 거예요. 다른 회사가 하지 못했던 거. 위대한 레이블들, 미국도 마찬가지고, 컴필레이션 앨범 두세 개 이상 내는 걸 못 봤거든요. 그게 진짜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전 4개 이상을 내야 해요. (웃음)






LE: 아, 그게 어떤 구체적인 목표치인 거군요?


네. 보여주고 싶어요.






LE: [우리효과]는 딜레이가 됐다가 다시 진행되고 있는 거죠?


네. 너무 많이 (딜레이 됐죠.) 계속 엎어지고 그랬어요. 많이 만들었다가 다시 엎어지고, 또 그러고…






LE: 그래도 올해 안에는 볼 수 있나요?


무조건 나올 거예요. 무조건.






LE: 앨범도 앨범인데, 공연에서 스윙스 씨 보고 싶은 사람들이 되게 많을 거 같아요. 공연에서 멋있게 컴백하는 걸 기대해봐도 될까요?


맞아요. 저 솔로 콘서트 열어야죠 돌아오면. 벌써 대관 잡혔는데… 무대에 서고 싶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강아지들은 뛰어야 하잖아요. 특히, 허스키 개들을 뛰어야 하잖아요. 걔네 본성이 있잖아요. 저는 제 본성이 무대인 거 같아요. 가사 쓰고 앉아 있는 그런 작가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플레이어 스타일로. 진짜 MC 스타일인 거 같아요 제 성격은. 진짜 그거 하나 기다리면서 참았어요. 계속 무대에 서면 진짜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첫 무대에서 할 말까지 존나 생각해놓고 그랬어요. 너무 돌아가고 싶어서.






LE: 대관도 잡힌 상태면 그렇게 멀지 않은 시기에 있는 거네요.


네. 돌아오고 얼마 후에. 9월쯤?






LE: 스윙스가 정식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하니 아마 이 인터뷰를 꽤나 많은 분들이 보실 거 같은데요. 힙합을 오랫동안 좋아해 왔든, 좋아한 지 얼마 안 됐더라도 아마 많이들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전 이걸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거든요. 죽을 때까지 이거 할 거예요. 이게 제 사명이에요. 그래서 전 제 사명을 다 할게요. 그거예요.






LE: 인터뷰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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