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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로우 디가(Row Digga)

Melo2013.03.09 15:09추천수 11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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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ghborhood] 로우 디가 (Row Digga)


이번에 로우 디가(Row Digga)와 인터뷰를 하고 나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트위터에서 주로 사용하는 해쉬태그 중 하나인 #RemainHumble 을 몸소 보여줬고, 힙합에 대한 애정도 가득함을 드러냈다. 레코딩 아티스트로 시작한 그가 아트 디렉터로서 짧은 기간 안에 보여준 것들은 엄청나다. 그가 커버 아트워크를 맡은 믹스테입들은 대부분 그 아티스트가 종전에 가지고 있던 다운로드 기록들을 경신하였고, 지금은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 외국으로 뻗어나가는 인재가 아닌, 외국에서 성공해 국내에서도 인정을 받은 진정한 월드와이드를 실천하고 있는 로우 디가를 만나고 왔다.




LE: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 드릴게요.


Row Digga: 안녕하세요. 언더커버사운즈(Undercoversounds)에 소속되어 있는 로우 디가입니다. 현재는 아트 디렉터 및 커버 디자이너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LE: 최근에 스윙스(Swings) 씨와 작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굉장히 빠듯한 일정이었다고 들었어요.


스윙스 같은 경우는 한 [#1 Mixtape Vol.2] 발매 1주일하고 반 전쯤에 연락이 갑자기 왔어요. 포트폴리오를 이제 봤다며 사정을 얘기하면서 (저에게 작업을) 맡겼는데, 워낙 이번 프로젝트에 애착이 컸던 건지 느낌을 통일하고 싶다면서 다른 싱글 자켓 작업까지 다 맡기더라고요. 그게 상당히 빠듯했었죠. 왜냐하면 앨범을 진행함과 동시에 거의 하루 이틀 간격으로 아트워크를 마감해야하니까… 외국 아티스트랑 작업하면서도 그 정도로 타이트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시기는 개인적으로는 죽음의 주간이라 말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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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ngs [#1 Mixtape Vol. 2] Single Covers



LE: 보통 외국 아티스트들에게 의뢰가 들어오면 작업기간이 어떻게 되시나요?


일단은 클라이언트들 상황에 맞춰서 하는 편인데, 그래도 제 성격이 좀 급한 편이어서 2,3일 정도 잡고 작업하는 편이에요. 그건 국내,외 예외 없습니다.






LE: 스윙스 씨 믹스테잎 이외의 작업과 근황이 어떠신지 얘기해주세요.


일단은 지금 호주 프로듀서인 엠페이지스(M-Phazes)랑 계속 작업하고 있고요. 마무리 단계에요. 또 완벽하게 성사된 건 아닌데, 4월에 나올 우탱클랜(Wu-Tang Clan)의 래퀀(Raekwon)의 앨범 자켓의 시안을 작업하고 있어요. 그리고 국내 프로젝트는 컴백을 준비하고 있는 피타입(P-Type) 형이랑 베이식(Basick). 베이식 씨 같은 경우에는 현재 [Foundation Vol.3] 믹스테잎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믹스테잎 커버 아트를 작업하고 있어요. 그리고 3월 8일 나온 감자 씨 싱글, 그리고 광주에서 R&B 싱어로 활동하고 있는 리코(Rico) 씨의 것도 작업하게 될 것 같아요.






LE: 우탱클랜의 래퀀 같은 경우에는 정규앨범의 커버 아트를 작업하고 계신 건가요?


네. 정규앨범이고요. 아직 세부사항은 그 쪽 에이전트에게 못 들었는데, 하드 카피로까지 발매하는 걸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스트리밍 앨범으로 나오겠죠.






LE: 작년보다 양적으로 많이 늘어나신 것 같네요?


그렇죠. 무엇보다 국내 작업이 전혀 없었는데, 요 근래 부쩍 늘었어요.






LE: 이쪽 바닥에서 입소문 같은 게 돌았었나 봐요.


네. 입소문하고 주변 사람 추천이 많이 도움이 됐죠.






LE: 간단하게 근황 이야기를 살짝 해봤고요. 저희가 인터뷰가 나름 긴 편이라서요. 바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볼게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인데, 로우 디가라는 닉네임은 어떻게 짓게 되신 건가요?


이름을 지은 건 15살 때에요. 그때는 아트워크보다는 랩을 먼저 하던 시절이죠. 제가 그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부분이..지금은 우리나라에도 대중화가 됐지만, 싸이퍼(Cypher)에 관심이 많았어요. 흑인들은 싸이퍼가 되게 과격하잖아요. 그래서 로우라는 단어가 말싸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말싸움을 파고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로우 디가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싸이퍼에서는 기싸움이 중요하니까요.






LE: 그럼 닉네임을 지은 시기와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시기와 비슷한가요?


음악은 13살부터 좋아했어요. 친가 쪽이 한국보다는 거의 다 영어권, 미국에 계셔서 어릴 때 (힙합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그 중에 특히 고모가 브루클린, 뉴욕에 계셨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힙합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거 같아요.






LE: 랩을 시작한 건 닉네임을 지음과 동시에 시작을 하신거고요?


네. 그렇죠. 그때부터 조금씩 시작을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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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할렘에 대한 애착이 강하시다고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브루클린, 뉴욕에 계셨다면 동부힙합을 많이 들으면서 크셨겠네요.


제가 처음 힙합을 접할 때 들은 게 DMX의 초기 데뷔 시절, 그리고 즐겨 듣는 아티스트로는 빅엘(Big L)이라든가, 할렘 출신 위주로 좋아했어요. 물론 그때는 잘 몰라서 그런 거겠지만, 그쪽 사람들이 랩하는 게 다른 지역 출신들보다 랩의 플로우가 구성력이 있고 좋게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할렘 쪽을 많이 듣게 됐죠. 그러다 보니까 그 후에 그런 부분이 아트워크 작업하는 데도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그쪽 아티스트들이랑 작업하는 게… 






LE: 아무래도 동부힙합을 좋아하시니까 말씀하셨던 그쪽 지역의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하는 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네. 제가 국내에서 디플로매츠(The Diplomats) 1호 팬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딥셋(Dipset)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부터 쭉 들었으니까요. 바도(Vado)같은 경우도 옛날에 재 밀즈(Jae Millz)랑 뭔가 해보려던 시기부터, 그 사람들이 데모테잎을 만들어 팔 때부터 알았기 때문에 그때 봤던 그 친구들이랑 작업을 한다니까 굉장히 기분 좋고 영광스럽더라고요.






LE: 고등학교까지 캐나다에서 다니신 걸로 알고 있어요. 태생 자체가 캐나다나 미국, 이쪽이셨던 건가요?


아니에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난 일산 토박이에요. 아까 말씀 드린대로 친가 쪽이 미국에 가서 살다 보니까 그쪽이 굉장히 친숙했어요. 그래서 나가서 좀 더 좋은 기회도 맞고 영어 공부도 하고 그랬죠. 유학 생활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 5년 반 정도 했었어요. 그 정도 있다가 대학도 그쪽에 있는 곳으로 진학을 했는데, 그때 향수병이 심하게 찾아왔고 군대 문제도 있고 하니까 깔끔하게 한국으로 들어오자 해서 정리하고 들어왔죠.






LE: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쪽 대학은 회화로 진학을 했고요. 근데 그 당시가 제가 조금씩 포토샵 같은 걸 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는 부모님이 많이 반대하셨지만 제 고집을 부려서 컴퓨터 그래픽 관련 학과로 들어갔죠.






LE: 한국에서 졸업하고 군대도 바로 갔다 오셨죠?


네. 제가 졸업한 곳이 서울예술대학인데, 지금은 대학’교’로 바뀌었지만 그때만 해도 2년 전문대라서 휴학 하는 것도 애매 할 것 같고 해서 졸업하고나서 군대를 갔었죠.






LE: 2006년 즈음에 블루 시티(Blue City)라는 이름으로 믹스테잎도 내셨고, 디시 트라이브(DC Tribe)에 번개송도 올리고 그랬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가 국내에서 음악작업을 시작한 시기인 건가요?


네. 일단 그때 가장 마음이 넓은 딥플로우(Deepflow) 형을 만나고, 뭔가 시작을 해보려고 했죠. 번개송도 집에서 해보고, 그때 마침 또 같은 대학 동기인 루크(Luk2)도 만나고 그러면서 같은 동네다 보니까 이것저것 했죠. 근데 그냥 이것저것 해보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뭔가 정식적으로 했다기보다는…






LE: 그럼 그때부터 아트워크 작업 같은 것도 동시에 같이 해오셨었나요?


그때는 정식이라고 말 할 수는 없고요. 아는 사람들에 한해서 했어요. 저보고 너 포토샵 좀 한다 해서 맡기는 지인들 위주로 작업을 했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아트워크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LE: 그럼 그때만 해도 어떤 클라이언트와 작업자의 관계가 아니었던 거네요.


그렇죠. 그냥 다음에 밥 한끼 사줘 정도






LE: 스윙스 씨의 첫 믹스테잎인 [Punch Line King] 자켓도 작업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시기가 딱 그런 시기였어요. 스윙스도 그때 자작 게시판이라든가, 그런 데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던 시기였고 동갑이다 보니 쉽게 친해졌죠. ‘86ers’라는 크루도 만들고요. 그러면서 이 친구가 라마(Rama) 형이랑 옵티컬 아이즈 엑셀(Optical Eyez XL) 형이 이끄는 베지터블 허슬러즈(Vegetable Hustlers)라는 크루에 들어가고 제가 그 믹스테잎을 도와주고 그랬죠. 그리고 그 이후에 [Upgrade] EP 때도 작업을 도와줬던 거 같아요.






LE: 그 후로 2008년에 싱글을 내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때 [The Greatest March]라는 싱글이었는데, 군대가기 전이었어요. 군대를 가기 전에 뭐라도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냈는데, 막상 그걸 내고 제가 군대에 가있으니까 피드백 오는 것도 받을 수 없었고 그냥 조용히 묻혔죠. 






LE: 군대를 다녀 오신 후엔 바로 회사 생활을 하셨던 건가요? 몇 년간 소식을 접하거나 찾기 힘들었거든요.


네. 전역하고는 그랬죠. 사실 그때 제가 좀 외도를 했죠. 군대 다녀오신 분들 전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실 거예요. 갈팡질팡하고, 내가 이 길로 가는 게 맞는 건가 의심도 들고… 그래서 내가 전공한 걸로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강남 소재의 영상 회사에 들어갔었죠. 






LE: 회사 생활은 어느 정도 하신 건가요?


근 1년 반 정도한 것 같아요. 한 회사만 다닌 건 아니고, 처음에 6개월 정도 한 곳에서 하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가서 하고 그랬어요.






LE: 회사에서 주로 영상 작업들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네. 주로 케이블 방송 일을 했었고요. 작업했던 걸로는 MSL이라고, 스타크래프트 관련 프로그램의 타이틀 영상 제작을 했어요. 그 외에 이것저것 케이블 방송 관련 기획을 하고 아이덴티티를 잡아주고 이런 작업들을 많이 했어요. 종편 채널인 채널A의 초안도 제작을 해줬었고요.






LE: 아무래도 회사를 다니시다 그만둔 이유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일단은 안 그런 회사도 있겠지만, 영상계열 회사들이 대부분 많이 힘들고 고돼요. 우스갯소리로 싹이 틀 때 회사에 들어갔다가 눈이 내릴 때 퇴사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깐요. 그 정도로 집에 안 보내주거든요.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가 굳는 느낌이 점점 들더라고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게 뭔지 대충 알고, 막연하게 손만 움직이는 일을 하다 보니까… 건강도 나빠지고요.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리고 그때가 또 마침 옵티컬 아이즈 엑셀 형님이 [Wreckage]를 내신 시기였는데, 그 앨범을 듣고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박차고 나오게 되었죠. 형님 앨범 수록곡 제목 그대로요.






LE: 여유가 생기시면 영상 작업도 다시 해볼 생각이 있으신가요?


제가 사실 작업하던 것이 촬영이라기보다는 모션 그래픽 관련 작업이라서 만약 모션 그래픽만 전적으로 저에게 맡기신다면 모를까, 제가 촬영 기술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무하기 때문에 아마 동업자가 없으면 힘들 것 같아요.






LE: 제이팩토리(JayFactory)라는 분을 보면, 최근에 이쪽 씬에 있는 분들과 작업을 굉장히 많이 하시잖아요. 어떻게 보면 같은 팀을 만들어서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합작은 힘든가요?


저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마음만 맞는다면 언제든지 작업 할 수 있고요. 다만 제가 작년 8월부터 커버 아트워크로 자리를 잡고자 결심을 했기 때문에 정말 진지하게 제의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면 영상 작업은 아마 안 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LE: 말씀하신 대로 작년 8,9월부터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기간을 감안하면 굉장히 좋은 사례가 되어주신 것 같아요.


글쎄요. 제가 좋은 사례가 되면 참 좋겠는데, 사실 제가 너무 무식하게 돌진했던 케이스라서…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건 좋아하는 걸로 무식하게 들이대고, 노력을 열심히 하다 보면 콩고물이라도 하나 떨어진다는 점은 확실한 거 같아요.






LE: 원하는 걸 하고 계시긴 하지만 프리랜서시잖아요. 회사에서 비교적 원치 않은 걸 해오긴 했지만, 회사는 그래도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시스템인데, 그에 반해 프리랜서는 금전적으로 왔다갔다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지금은 잘되고 있으시지만 그런 부분에서 부담감이 좀 있으실 것 같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제가 어딘가에 확실히 소속되지 않는 이상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근데 분명한 건, 회사에 다시 들어갈 생각은 하고 있어요. 대신 제가 사회생활을 조금이나마 했던 것에 의거해서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웃음) 그리고 힙합관련 쪽으로 들어가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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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nis "I Know Ya Type"


LE: 그렇게 8,9월에 시작하셨는데, 결과물의 순서만 놓고 보면 게임보이(Gameboi)와의 작업물이 처음인 것 같아요.


네. 아시겠지만 바도가 저에게 먼저 연락을 줬고,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서 하게 된 친구인데 그 친구는 제가 먼저 연락을 해서 해주겠다고 한 케이스에요. 그때 마침 그 친구가 스태틱 셀렉타(Statik Selektah)에게 도움을 받고 싱글을 만드는데, 존 코너(John Conner)와 XV가 함께 해서 냈었죠. 그걸 듣고, ‘어, 이 친구 괜찮네’싶어서 작업을 제안 했었죠. 근데 아무래도 어리다 보니까 작업하는 게 힘든 건 있었어요. 소위 말하는 애들 칭얼거리는 소리가 많았죠. 그리고 제가 돈을 받고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친구가 아무래도 학생이다 보니까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서 거의 공짜로 해줬던 것 같아요.






LE: 그 다음이 처비 잭(Chubby Jag)인가요?


결과물로 따지면 처비 잭이죠.






LE: 처비 잭의 [Hell Week]은 댓핍(Datpiff)에서 우여곡절이 컸어요.


그랬죠. 묘하게 처비 잭의 믹스테잎이 그렇게 히트를 친 적이 없었거든요. 근데 [Hell Week]은 내자마자 반응이 좋았어요. 그런데 그 시기에 딱 캐시디(Cassidy)랑 믹 밀(Meek Mill)이 싸움이 난 거죠. 근데 하필이면 댓핍이 메이백 뮤직 그룹(Maybach Music Group)이랑 동업관계였던 거죠. 그러니까 믹 밀이 믹스테잎을 내리라고 해서 다운로드 기록 리셋이 한 세 번 정도 됐었죠. 제가 알기로 원래 기록은 100만 다운로드까지 간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아무런 것도 없이 그냥 구석에 묻혀 있어요.


(* 처비 잭은 캐시디의 크루이자 레이블인 라시니 패밀리(Larsiny Family)의 일원이고, 믹 밀은 싸움에 대한 보복으로 위와 같은 식으로 캐시디 측에 피해를 주었다.)





LE: 그러고 나서 Reloaded로 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 커버는 제가 작업해준 것도 아니긴 한데… 그게 징크스라면 웃긴 건데 저랑 작업했던 사람들이 흥행적으로 다 기록을 경신을 했어요. 근데 제 커버가 아니다 보니까… (웃음) 그게 퀄리티가 안 좋거든요. 그래서 그냥그냥 조용하게 묻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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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do [Slime Flu 3]



LE: 그 이후에 [Slime Flu 3] 때도 다른 커버를 사용한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그때 그게 바도랑도 얘기가 안됐던 거예요. 그게 처음에 발표될 때 제목이 [Slime Flu 3]도 아니고 우리나라로 치면 ‘노숙인 복지권’ 이런 제목이었어요. 그래서 그때만 해도 바도가 제 뒷통수를 치는 줄 알고 이거 어떻게 된 거냐고 바도에게 물었더니 바도가 오히려 펄쩍펄쩍 뛰면서 알아보더라고요. 결국 해결이 되어서 그건 내려가고, [Slime Flu 3]가 올라갔죠.






LE: 지금까지 이야기를 하신 이 모든 작업과 교류가 바도라는 아티스트에서 시작이 된 건가요? 또, 바도를 통해 시작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세요.


그렇죠. 바도에서 시작이 되었죠. 보통 제가 작업을 할 때, 컨택의 방법으로 이런저런 방법을 많이 써요. 보통은 메일로 많이 하지만, 될 수 있다면 그 사람들 시간대에 맞춰서 전화도 걸고요. 그리고 이게 또 앞에서 얘기한 할렘과 연결된 부분인데, 메일을 보낼 때 추억팔이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나는 그냥 너랑 작업 한번 해보고 싶은 그루피가 아니라 진짜 예전부터 너를 지켜봤고, 널 응원하는 진짜 팬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기회를 달라는 식으로 추억팔이를 많이 했어요. 근데 바도가 그런 말에 감동을 했는지, 연락을 거의 하루 만에 주더라고요. 그렇게 작업해보자 해서 하게 됐죠.






LE: 그럼 바도와는 앞으로도 계속 작업을 같이 하는 건가요?


네. [Slime Flu 3]부터 시작해서 그 친구가 저에게 믿음이 생겼는지, 같이 일하던 디자이너를 자르고 거의 저를 전속으로 쓰고 있죠. 그래서 차후 프로젝트도 계속 작업하게 될 거 같아요.






LE: 근데 이번에 나온 바도의 [V-Day]의 자켓을 보니까 참… (웃음)


그건 저도 되게 반대를 많이 했어요. 너는 이건 안 어울리는데… 네가 왜 사랑 얘기를 하냐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끝내 그걸 고집하더라고요. 전 안될 것을 직감을 했는데… (웃음) 결국엔 안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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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Fuck Em We Ball]

LE: 그러고 나서 시간 순서는 다르지만 어쨌든 비오비(B.o.B)의 믹스테입, [Fuck Em We Ball]이 크게 히트를 쳤는데, 혹시 비오비와의 작업이 후의 작업이나 컨택에 도움이 되었나요?


그렇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이건 비오비한테 따져야 하는 건데, 저는 항상 작업을 할 때 보통 비즈니스 차원에서 원래 가격에서 10~20% 정도를 디스카운트해줘요. 그러는 대신 난 프로모션이 필요하니 트위터든 인스타그램이든 나를 Shout Out 해달라고 요청을 하죠. 근데 그걸 비오비가 안해줬어요. 하지만 다행히 제가 긴가민가 하기도 하고 해서, 선견지명처럼 백커버에 한글 표기 같은 걸 했던 거죠. 주소도 남기고… 그걸 보고 저에게 연락을 하는 친구들이 있긴 했는데, 아쉽게도 그 친구들이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아니고 ‘네 작업 좋다’라고 칭찬해주는 일반 시민(?)이었어요. (웃음)






LE: 비오비가 그런 후의 작업과 컨택에 도움이 안됐다면, 혹시 다른 작품 중에는 도움이 된 케이스가 있나요?


바도인 것 같아요. 비오비 같은 경우에는 팝적인 사람이다 보니까 속칭 여자 그루피들이 많죠. 그래서 크게 의미가 없었는데, 바도 같은 경우는 제가 작업했던 앨범을 내면서 이 친구가 다시 사람들이 기억하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고, 캠론(Cam’Ron)없이도 할 수 있다는 걸 평단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커버도 같이 이슈가 됐고, 그러면서 저한테도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그때부터 이 사람 저 사람 연락이 오기 시작했었죠.






LE: 보면 초안이나 얼터너티브 아트워크같은 것들이 실제로 자켓에 쓰이는 버전보다 더 나을 때가 있더라고요.


그건 진짜 모든 디자이너 분들이나 영상 하시는 분들이 다 공감하실 거라 생각해요. 초안이나 얼터너티브 아트워크들이 아무래도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베스트죠. 근데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자기 이름이 더 보였으면 좋겠고 같은 의견들을 조율하다 보니까 빠지거나 추가해야 할 부분이 생기죠. 그런 이유 때문에 아무래도 디자인적으로는 초안이나 얼터너티브 아트워크들이 본 버전보다 좋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LE: 가장 친절했던 클라이언트로는 누가 있나요? 아무래도 바도가 그런가요?


친절했던 클라이언트요? 아뇨. 바도는 가장 까다로운 사람이에요. 제일 속 썩였어요. 친절했던 사람은 처비 잭이랑 비오비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서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떨스(Thurz)라고 있어요. 제 기억으로는 굉장히 젠틀했던 것 같아요.






LE: 본인이 먼저 연락을 하면서 작업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연락이 오기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혹시 작업 요청을 거절할 때도 있으신가요?


되도록이면 해주려고 하는데, 수지 타산이 안 맞거나 말도 안되는 금액을 요구하면 그 부분에 있어서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이 좋지 않으면 안 하죠.






LE: 작년에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페이가 많이 올라간 편이신가요?


가격이… 아주 조금 올랐어요. 제가 아직은 그렇게 큰 사람들이랑 작업을 못해서요. 차차 올라가겠죠. 대신 국내 아티스트들한테는 좀 다르게 접근을 하고 있어요. 저도 뜨뜨미지근하게라도 이 바닥을 경험했었기 때문에 국내 분들은 각각 그 분들 사정에 맞춰서 견적을 내고 있죠.






LE: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하시고 입지를 다지셨는데, 나름의 비결이 있으신가요?


일단 좀 무식했죠. (웃음) 무식했던 게 제일 커요. 그리고 이게 참 웃긴 건데, 영화 해리포터에 보면 헤르미온느가 시간모래시계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제가 주로 작업하고 접하는 사람들이 미국 사람이다 보니까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열 몇 시간 정도 느리잖아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된 거 같아요. 저는 당일 날 준다고 주는 거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하루 이틀 전에 받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시간을 벌고 벌고 하니까 진짜 헤르미온느의 시간모래시계처럼… 대신 저는 잠을 많이 못 잤죠.






LE: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떤 영업적인 부분에서 ‘이렇게 하면 연락이 더 많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해본 시도나 노하우 같은 것도 있나요?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 힙합은 이런거다 하고 생각할 때 무조건 리스펙이랑 로열티라고 생각해서 그걸 많이 앞세웠죠. ‘나는 동양인이지만, 너희 흑인들만큼이나 힙합으로서 지키는 그런 게 있어. 난 리스펙과 로열티에 있어서는 분명히 지키는 놈이니까 나에게 맡겨봐라.’같은 식으로 접근을 많이 하긴 했는데, 그 외에 별다른 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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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아까 하신 말씀 중에 작업을 할 때 음악이 좋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럼 작업 제의가 들어오면 일단 음악을 먼저 들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하시는 건가요?


보통 그래요. 물론 ‘네 음악이 안 좋아서 안할게’라고 하면 그 사람이 상처를 받으니까 그렇게는 안하고요. 제가 보통 작업할 때 음악을 틀고 작업하거든요. 그 음악의 무드를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 그래서 내가 너의 음악을 들어야 어느 정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으니 마스터가 안된 거라도 좋으니까 나에게 보내달라고 요청을 하는 편이에요. 그러고 나서 만약 음악이 안 좋으면 다른 변명을 대면서 안되겠다고 말을 하죠. (웃음)






LE: 실제로 그렇게 완곡하게 거절한 적이 있으신 건가요?


네. 있어요. 한 다섯 번 정도… 그 친구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죠. (웃음)






LE: 처음엔 외국 클라이언트가 많으셨다가 최근에는 국내 클라이언트도 굉장히 많아지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이 뻗어나가는 방식과 다른 것 같아요. 보통 음악을 비롯해서 여러 분야에 걸쳐서 많은 사람들이 국내에서 잘한 다음에 외국으로 뻗어나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로우 디가 님은 외국을 먼저 선점하신 다음에 국내 작업들을 하시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독특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죠. 이게 제 성격과 연결이 되는 건데, 제가 2006년에 한창 랩을 하려고 했을 때도 그랬듯이 그렇게 나대는 성격이 아니에요. 되게 조용하게 할 말만 딱 하고요. 어떻게 보면 형들 입장에서는 되게 재미없는 동생이죠. 그러다 보니까 가령 딥플로우(Deepflow) 형이 ‘너 좀 형들이랑 더 부대껴.’라고 하기도 하고, 스윙스도 당시에 저한테 잔소리를 했었어요. ‘너 공연이나 활동 지금보다 더 많이 해야지’라고 했는데, 저는 오히려 그때 괜찮다고, 아니라고 그랬죠. 그래서 인맥이 되게 제한적이게 된 거죠. 친한 사람들하고는 되게 친한데… 인맥이 되게 개족보같이 되서… (전원 웃음) 그래서 국내에는 일을 달라고 할 사람이 없는 거죠. 그 분들도 얼핏 얼핏 보면서 인사 정도는 해서 아는데, 얘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는 모르고 하니까… 그리고 2006년, 그 당시엔 제 실력이 그렇게 좋지가 못했고요. 일을 하려고 해도 막상 받아오기도 힘들고 뭐하니까 이럴 거면 차라리 내가 영어는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외국힙합도 많이 들어서 그쪽 지식도 있으니 그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친구가 있네?’라고 하면서 알아주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게 작년 8월이었어요. 사실 가장 최종 목표는 국내 아티스트들과 작업하고 싶은 거라서 외국 쪽 문을 두드린 거죠. 어떻게 보면 그게 재밌는 부분 같아요.






LE: 보통은 반대의 경우가 많잖아요.


네, 보통 동네에서 인정받고 ‘나 이 정도 했으니까 밖에 나가야겠다.’라는 식이 되어야 하는데,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랑 작업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하면서 외국 쪽이랑 먼저 작업을 하고 ‘저 이만큼 했으니 이제 저 써주셔도 될 것 같아요’라고 국내 아티스트 분들한테 피력을 한 거죠.






LE: 최근 본 아트워크 중에서 본인 것을 제외하고 가장 최고였다 싶은 게 있나요?


제가 이게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인데, 이쁜 것들을 감상하면서 보진 않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기계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면서 괜찮네, 아니네, 괜찮네, 아니네 하면서 스캔만 해서… 연상이 별로 안되는데, 보통 제가 좋다고 하는 아트워크들은 저랑 친한 외국 디자이너 친구들이에요. 지금 가장 잘나가고 있는 차즈 모간(Chaz Morgan) 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메이백 뮤직 그룹 쪽 아트워크를 해주는 친구에요. 그 친구 아트워크를 가장 좋아하는 편이에요.








LE: 반면에 최악이다 싶은 건 어떤 게 있나요? 아무래도 트위터에서 말씀하셨던 바우 와우(Bow Wow)가 그런가요?


가장 최근에 본 최악은 유명세 더해서 꼽으면 진짜 바우와우였어요. ‘나는 그런 멋진 커버 없어도 다운 받아줄 사람들이 있어’라고 생각하는 건지는 몰라도… 정말 퀄리티는 욕이 나올 정도로 안 좋았어요. 바우와우도 연락을 했었거든요. 근데 오히려 그쪽에서 ‘우린 이미 디자이너가 있어.’라고 하는데, 그 아트워크를 가지고 나왔으니 ‘뭐야?’하면서 어처구니가 없었죠.






LE: 근데 그런 아트워크들을 보고 있으면 하시는 입장에서는 앨범 자켓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보고 작업을 하시는 건데, 그렇게 대충대충 만들어서 내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안타깝죠.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하드 카피로 많이 나오고 음원시장 크지 않았을 때는 말 그대로 아트워크가 사람 이목을 끄는 거니까… 그때는 투자를 어느 정도 했었죠. 근데 지금은 음원시장이 커지고 아트워크를 해 봤자 요만한 픽셀, 썸네일 정도밖에 안되니까 사람들이 이름만 크게, 타이틀만 크게 하면서 대충대충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하지만 이번에 스윙스와 같은 케이스를 보더라도 아트워크가 괜찮으면, 분명히 팬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도 ‘이게 뭐지?’하면서 클릭하게 되있거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사람들의 인식은 물론이고, 아트워크 분야를 발전시키고픈 마음도 있어요.






LE: 라이벌까지는 아니더라도 되게 친하게 지내는 아트워크 디자이너가 있으시다고 알고 있어요. 


그게 아까 언급했던 차즈 모간이라는 친구인데, 그 친구는 시카고 출신 친구에요. 시카고 기반으로 치프 키프(Chief Keef), 릴 리즈(Lil Resse) 같은 친구로 시작해서 지금은 퓨처(Future)라든가, 릴 웨인(Lil Wayne), 트레이 송즈(Trey Songz)같은 아티스트까지, 거의 유명한 사람들은 이 친구가 도맡아서 하고 있어요. 사실 저도 메이백 뮤직 그룹이랑 작업을 하고 싶어서 그쪽으로 알아봤는데, 저를 계속 커트 치더라고요 그래서 누가 그쪽 작업을 하는 건지 알아보니 차즈 모간, 이 친구가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이 친구한테 제가 ‘네 아트워크 괜찮은 거 같아.’라고 말을 건넸는데, 되려 이 친구가 저한테 ‘넌 내가 가지지 못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라고 화답해줘서 쉽게 친해졌고, 지금은 협력관계에 있어요. 저한테 말하기를 기회가 될 때 같이 합작을 해보자고 해서 아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 같아요.






LE: 보통 랩퍼들은 씬이라는 게 있잖아요. 랩퍼들이나 프로듀서들은 이제 씬을 구성하고 같이 교류를 하고 경쟁도 하는데 아트 디렉터들 간에도 씬이 조성되어 있나요?


씬이라기보다는 그냥 진짜 약육강식이고 춘추전국시대 같아요. 땅따먹기라고 하죠. 작년 11월, 12월이 제가 가장 열을 올렸던 때인데, 그때가 아마 차즈 모간이라는 친구랑 저랑 지유닛(G-Unit) 쪽으로 해주는 제임스 던(James Dunne)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랑 되게 열을 많이 올렸던 것 같아요. 서로 묘한 경쟁이 되어서 댓핍 메인 화면 누가 더 많이 가져가나 하는 식이었죠.






LE: 그게 한 사람이 인기나 각광을 많이 받으면 그 때부터는 독식을 하게 되는 체제인가봐요.


그렇죠. 그래서 지금 차즈 모간 친구가 굉장히 위에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 친구가 저를 아무리 인정을 한다 한들 실제로 클라이언트들이 맡기는 친구는 그 친구고, 제가 알기로는 앞으로 나올 루다크리스(Ludacris) 앨범도 그 친구가 담당하는 걸로 알고 있고요. 지금은 거의 차즈 모간 시대인 것 같아요.






LE: 혹시 로우 디가 님처럼 미국 밖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이 또 있나요?


그게 제임스 던이라는 친구에요. 그 친구는 백인이고, 생뚱맞게 아일랜드 사람이에요. 전혀 힙합이랑 관련 없고 완전히 다른 일을 할 것 같은 친구인데, 지유닛이랑 슬로터하우스(Slaughterhouse)랑 되게 친하더라고요. 또 최근에 핍티 센트(50 Cent)가 그 친구를 칭찬한 적 있어요.






LE: 그렇게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본인이 한국인이다, 백인이다 얘기를 안하고 진행을 하게 되나요? 어디 소속이고, 어느 국가고 이런 얘기는 안하나요?


근데 저 같은 경우는 메일을 보낼 때 무조건 얘기를 해요. 난 한국인이고 이러이러해서 너한테 왔다. 근데 나는 자신 있으니까 맡겨라 이렇게 얘기를 하죠.






LE: 한국인이나 동양인에 대한 편견 같은 건 없나요?


영화를 보면 스테레오타입이라고 해서 되게 동양인들 무시하고 이런 게 보이는데, 실제로 제가 작업했을 때는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친구들한테는 비즈니스이니까 비즈니스가 잘 끝나면 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작업은 큰 문제 없이 수월하게 진행됐던 것 같아요.






LE: 보여주는 게 좋은 거면 상관 없는거죠?


결과물이 잘 나오면 좋은 거죠. 근데 제가 유일하게 실망했던 친구는 사이곤(Saigon)이에요. 그 친구는 약간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와는 작업을 조금 하다가 안 되었는데, 좀 그런 게 있더라고요. 말투 같은 게 동양을 무시하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쳤죠. ‘미안하지만 난 못할 것 같아.’라고 하면서요. 그 이후로 트위터도 언팔하고 (웃음) 꽝이 되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랩퍼 중 하나 였는데…






LE: 정치적으로 바를 줄 알았는데 실망이네요.


그렇죠.






LE: 작업을 하시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어떤 부분이 있나요?


중점이라면 아무래도 아트워크가 자석처럼 그 음악에 붙는 게 중점이 되겠죠. 그래서 작업할 때 늘 음악을 계속 틀어놓고 작업하는 편이고, 그 안에서 가장 캐치한 프레이즈가 뭔지 보고 사람들이 들었을 때 이게 연상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을 이미지화 시키는 데 주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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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작업을 하다 보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이 있잖아요. 디자이너로서는 ‘이게 더 좋은데’라고 생각하는데, 클라이언트는 그렇게 생각 안 해서 양쪽에서 괴리감 같은 걸느끼실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상황에서는 어느 쪽으로 가는 편이신가요?


정말 멋진 디자이너라면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겠죠. 그게 베스트 디자이너죠. 근데 그렇다 하더라도 비즈니스다 보니까 ‘고객은 왕입니다’가 되어서 속으로 내가 보기에는 ‘이건 별로 안 좋은데’라고 생각해도 클라이언트 입에서 ‘와~’ 소리가 나오면 거기서 그냥 70,80점 생각하고 만족하는 편이예요.






LE: 거래 방식은 페이팔(Paypal)인가요?


아무래도 그게 가장 빠르고 정확하죠. 페이팔을 써야 저도 확인을 바로 하고 태그을 떼고 최종본을 건네 줄 수 있으니까요.






LE: 작업 방식은 보통 순서가 어떻게 되나요?


작업 순서는 보통 제가 먼저 우리나라에서 미팅을 하는 것처럼 메일이나 트위터 DM으로 회의를 해요. 던져봐라. 저는 무조건 클라이언트에게 맞추는 게 중점이 되어서 니가 이 곡을 듣고 생각했을 때 어렴풋이라도 생각나는 단어 하나라도 던져보라고 해요. 브레인스토밍 하듯이요. 그게 많이 도움이 될거라고 하면서 기본 컨셉 하나를 뽑고, 대표 할 수 있는 곡을 들으며 시안을 한 세 개 정도 보내요. 그 중에 그 친구가 베스트를 하나 뽑으면 수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완성하는거죠.






LE: 그럼 시안을 주실 때 바로 못 쓰게 어떤 태그 처리 같은 걸 하시나봐요?


소심한건데, 박명수 씨 같은 거죠. 이놈이 내 걸 떼어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샘플 줄 때는 작고 저퀄에다가 태그된 걸 줘요. 항상 말을 하죠. ‘진짜 최종본은 좋을거야.’라고 말을 하고요. 속내는 얘기 안하죠. 괜히 말하면 그 친구도 빈정 상하니까요.






LE: 왔다갔다하는 수정 작업이 굉장히 오래 걸릴 수도 있겠네요? 몇 차에 걸쳐서…


그렇죠. 그래서 바도(Vado)가 되게 힘들었어요. 그 친구는 거의 한 달 가까이 작업을 했거든요. 보통은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 안에는 끝나는데... 그 친구는 시안도 한 네 번은 바꿨던 것 같네요. 수정도 수정대로 엄청 많이 했고요.






LE: 의사소통은 대체로 원활한 편인가요?


네. 보통 제가 깨어있는 시간에 연락을 주면 좋으련만, 그 친구들이 보통 새벽 네, 다섯시에 피드백을 줘요. 당연한 거죠. 그 친구들은 그 시간이 업무 시간이니까요. 그래서 원활한 작업을 위해서라도 제가 그냥 희생하는 편이예요. 잠 줄이고 늘 알람은 켜 두고, 보는 대로 일어나서 수정하고 그런 식으로 해요.






LE: 느긋한 사람들도 있지 않나요?


느긋한 거라고 볼 수도 있고, 게으른 거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웃음) 그게 코리건즈(Cory Gunz)거든요. 코리건즈가 정말 게을러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빨리 소스를 받고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런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사진 찍을거야.’라고 하면 3주는 기본으로 걸리고 ‘어떻게 되었어?’라고 물어보면 ‘찍을 거야.’라는 말만 나오고… 지금 코리건즈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파이널 시안은 거의 다 나왔거든요. 에이전트도 좋아하고 코리 건즈도 좋아했는데, 코리건즈가 그 놈의 사진을 안 찍어서 지금 딱 사진 들어갈 부분만 비어있는 상태에요. 많이 게으르죠. 에이전트들은 아무래도 그런 일련의 매니지먼트 일이 주 업무이다 보니까 그렇게 게을렀던 사람은 못 본 것 같아요. 근데 프로의식이 결여가 된 케이스를 말하자면 그냥 동네 친구들과 일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그래요. 바도가 그렇죠. 바도도 정식 매니저는 아니고 제이뉴스(J.Newz)라고 자기 친구랑 같이 일을 하거든요. 아무래도 전문 매니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친구랑 일할 때도 조금 힘들었어요. 






LE: 느긋하고 게으르다고 하더라도 로우 디가 님 입장에서는 사실 크게 상관할 일이 아니기도 하지 않나요?


근데 진짜 1차적으로 제가 성격이 너무 급해요. 작업이 홀드되어 있는 상태를 두고보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오히려 제가 닥달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제가 누구랑 작업을 합니다’라고 알렸을 때 우리나라 분들한테도 좀 더 최대한 빨리 이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빨리 내놓으라고 더 닥달을 하는 편이죠. 그래서 제가 끌어가는 것도 되게 많아요.






LE: 뭔가 이러한 작업을 '무료'라고 생각하고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 해요.


그렇죠. 저도 옛날에는 그랬어요. 시장 개념이 별로 없었고, 다들 어렸고 패기나 열정이 넘치니까 가능했던 건데, 저도 회사 생활 2년하고 이걸 하다 보니까 소정의 금액이라도 줘야 하는 거라고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물론 무료로 해달라고 할때 사정이 너무 딱하면 도와줄 수 있어요. 가령 진짜 우리나라에 나스(Nas) 같은 친구가 돈이 땡전 한푼 없다, 근데 음악은 죽인다 하면 도와줄 의향이 있지만 보통 무료로 해달라는 사람치고 태도가 좋았던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당연히 해주는 거 아닌가요’라는 식의 태도가 많아서 쳐내는 편이죠. 죄송하다고 하면서.






LE: 그 중에서도 원래 친분이 있었던 사람이 있으면 쳐내기가 좀 곤란하지 않나요?


다행히 제 주변에는 없었어요. 다들 나이가 있다 보니까… 사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그래도 벌이가 있어야 하는 입장이라 클라이언트가 먼저 얘기해 주는 게 편해요. ‘액수는 어느 정도 드려야 되나요’라고 하면 편한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얘기를 안 해주면 ‘이 정도는 줘야 되지 않느냐?’라고 말해야하는 애로사항이 있어요. 근데 다행히 제 주변엔 없었던 것 같아요. 






LE: 아무래도 문화적으로 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 정도 금액이면 괜찮을까요?’하는 것보다 그 쪽에서 먼저 제안하는 게 올바른 쪽으로 가는 것 아닌가요?


그렇죠. 그 쪽에서도 그런 말을 먼저 한다는 것은 저의 능력을 인정해준다는 이야기도 되니까요.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져야 하죠. 근데 제가 알기로는 우리나라도 그렇고 심지어 미국도 그런게 아직은 잘 안되어 있어요. 가령 어떤 흑인 친구는 저한테 ‘나는 스트릿을 위해서 이 음악을 하고 있는데 내가 왜 돈을 줘야 해?’라고 하는 안하무인인 친구도 있었거든요. 그건 미국이나 우리나 확실히 잡혀져야 할 것 같아요. 타인의 영역을 존중해줘야 하는 거죠.






LE: 아트워크에 대한 존중 자체가 다른 영역들에 비해 조금 취약한 것 같기도 해요.


포스트 프로덕션에 해당되는 모든 직종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메인 코스 요리를 위해 뒤에서 해줘야 하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일이 많죠.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그 중에서도 (커버 아트워크가) 가장 포지셔닝이 가장 안 되어있고요. 지금이야 좀 나아졌지만… 아무튼 그런 취약한 영역이 바로 커버 아트워크인 것 같아요. 국내에서는 되게 비일비재하죠. ‘하루면 되지?’같은 식으로 얘기하고… (웃음) 커버 아트워크라는게 아무리 손이 빨라도 생각을 해야 하는 거라 그렇게 바로 하기 힘들죠.






LE: 아트워크에 관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요. 다시 넘어와서 로우 디가 님의 아트워크 작업이나 열정 같은 것도 음악에서 비롯된 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음악에 대한 애정이 정말 가득하신 것 같아요. 요즘은 힙합 말고 타 장르도 좋아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네. 하지만 저 말고도 모두 그러실 것 같아요. 어릴 때 ‘그냥 이것만 해야 해. 이것만 좋아.’라고 했다가 오히려 기회를 많이 잃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가리지 않고 좋은 음악이면 다 듣는 편이에요.






LE: 타 장르에서도 작업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나요?


두 번 있었어요. 아직 진행은 안 되고 있는데 제가 하우스 음악을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그 쪽으로 알아보다가 연결이 된 사람들이 포터 로빈슨(Porter Robinson)이랑 다다 라이프(Dada Life)에요. 연결이 되었는데 아직 크게는 진행 되지 못했어요. 몇 번 교류만 있었고요.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몇 번 얘기를 했는데 그 뒤로 크게 진전은 없었죠.






LE: 힙합 덕후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선생님이라고 불릴 정도로요.


제가 랩퍼로서는 보여드린 것이 별로 없지만 이렇게나마 힙합 쪽에 남아있겠다고 선택을 한 게 사실 힙합을 정말 좋아해서인 것 같아요. 며칠 전에도 오글거리는 트윗 글을 하나 쓰긴 했지만 진짜 힙합이 없었으면 전 정말 못 살았을 것 같아요. 워낙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이고..힙합 덕분에 많이 좋아졌죠. 제가 근데 사실 또 덕후 성향이 있어요. 제가 그렇다고 해서 막 미미 인형을 모으는 건 아니지만… (웃음) 게임 같은 것도 그렇고, 뭔가 콜렉트 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까 힙합도 자연스럽게 다방면으로 쑤시고 다닌 거죠. 






LE: 스스로가 레코딩 아티스트이기도 한데, 요즘은 자신만의 결과물을 빨리 낼 수 없어서 아쉬울 것 같아요.


사실 정말 내고 싶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시작한 게 랩이거든요. 그래서 이것 저것 준비하고 EP로 딱 준비를 했고, 곡 작업도 다 끝났어요. 녹음도 다 했고요. 근데 아무래도 사람들이 원하는 게 커버 아트워크다 보니까, 그리고 또 제가 마음을 그렇게 먹었으니까… 꼭 랩을 안해도 힙합을 하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만약에 이 모습을 좋아해준다면 카멜레온같이 ‘이 쪽으로도 보여드리면 되겠구나.’하고 한 건데, 사실은 아쉬움이 되게 커요. 어떻게든 내고 싶기는 한데 지금 묵히는 느낌이거든요.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되어서 아트워크 작업이 조금 마무리가 되면 중단시키고 어떻게든 낼 생각이에요. 처음에는 아예 발매할 계획으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또 마음이 변해서 그냥 노출을 많이 시키고 나를 자주 보여드리는 게 나을 것 같다 싶어서 아예 무료로 공개하는 걸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LE: 만약에 그 작업물을 내시면 다른 분들에게 아트워크를 맡기실 생각이신가요? 아니면 직접 만드실 건가요?


이게 되게 재미있는 게, 예전에는 제 꺼 할 때도 그냥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했어요. 근데 이게 일이 되니까 보통 요리사들이 집에서 요리 안 한다고 그러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도 어느 순간 힘들어지더라고요. 작년에 “숲을 봐” 작업을 하는데도 그게 너무 귀찮은 거예요. 그래서 아마 상황이 되면 제가 하겠지만, 뭔가 다른 분한테도 맡기지 않을까 싶어요. 






LE: 그때는 이제 클라이언트가 되시는 거네요.


그렇죠. (웃음). 






LE: 까다롭게 하시는 거 아닌가요?


아니에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LE: 음악과 커버 아트워크, 자신의 일 사이에서 겪는 것들을 딜레마라고 생각해본 적도 있으신가요?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행복했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 안에서 이렇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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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 Digga Feat. B-Free, Rico "숲을 봐"



LE: “외골수”, “숲을 봐” 이렇게 싱글을 발표하셨어요. 그 전에 공백기가 되게 컸는데 다시 작업하는 데 있어서 부담이나 그런 건 없었나요?


당연히 부담은 됐죠. 종종 옛날 녹음물을 들어보면 되게 오글거리는데 어렸을 때는 패기만 가득 차있던 것 같아요. 힘만 잔뜩 들어가 있고요. 지금은 그냥 스스로 인정해요. 제 실력이 그렇게 훌륭하지 않다라는 걸 알고 있어요.






LE: 지금은 언더커버 사운드 소속이시잖아요. 소개를 해주세요.


일단은 일산 기반이고, 처음에는 루크랑 비몬스터(B.Monster)라는 친구랑 크루같이 결성했던 모임이에요. 그 당시 저는 저 나름대로 블루 시티라는 곳에 있었지만, 블루 시티 멤버들이 다른 길을 가고, 또 제가 군대를 가면서… 마땅히 관리 받을 곳이 없으니 제가 들어와서 레이블 관리를 해주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합류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 하고, 일산 기반으로 루크가 맘에 들어 하는 친구들 위주로 해서 성장하고 지금은 나름대로 괜찮은 작업실도 차리고, 아무튼 좋은 음악 들려드리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레이블이에요.






LE: 루크라는 분이 LUK2라는 이름을 쓰는 분 맞으시죠?


네. LUK2. 루크라고 읽어야 하는데… 제가 늘 그 이름가지고 잔소리를 해요. 되게 버디버디 같은 이름이잖아요. (전원 웃음) 솔직히 대외적으로 썼을 때 영어권에서 누가 그걸 루크라고 읽겠어요. 럭투라고 읽겠지. 근데 아무튼 그 친구죠. 엘유케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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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일산 자랑을 한 번 해주세요. (웃음)


일산 토박이에요. 제가 갔을 때는 정말 아파트 단지 몇 채랑 텃밭 매는 할머니 있고 진짜 뭐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발전하는 풍경을 지켜보면) 감회가 새롭죠. ‘여기가 커지고 있구나’ 하면서… 이게 웃긴 건데 신도시끼리 경쟁심리 같은 게 있어요. (전원 웃음) 가장 큰 게 일산 대 분당인데요. 개인적으로는 토박이다보니 일산이 제일 좋더라고요. 일산은 예전에 번개송으로도 한 적이 있는데, 먹거리의 천국이죠. 미디어의 집결지이고요. 국내에서 가장 좋은 암센터가 있죠. 호수공원도 있고요. 거주지역으로는 좋은 것 같아요. 요즘 세상이 흉흉해져서 안 좋은 부문으로 1위가 되기도 했지만요. 살기는 좋아요. 그래서 일산 사는 사람들은 일산에 취한 히키코모리라고 해요. 가령 크라이베이비(CryBaby)같은 친구는 일산 밖으로 잘 안 나가거든요. 저도 그렇고요. 그게 일산의 매력인 것 같아요. 일산 밖으로 안 나가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으니까요. 물론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입니다.






LE: 트위터를 보면 정치적 이슈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크게 관심을 갖는다기보다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가 잘 돌아가는지 보는 편이죠. 정치권에는 크게 관심없고, 돌아가는 게 잘못되고 있다 싶으면 그냥 제 생각 쓰는 편이에요.






LE: 트위터의 매력이 사실 짧은 글들을 올리는 건데, 로우 디가 님은 거의 140자를 다 채워서 쓰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140자를 굉장히 알뜰하고 일목요연하게 채우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똑같은 내용을 굉장히 많이 올렸다 지웠다 해요. 그게 정리의 산물이에요. 어찌보면 트위터를 엄청나게 잘못 쓰고 있는 케이스이기도 하죠. 하지만 어쨌거나 트위터 덕분에 저는 많은 사람들을 알았고, 또 이렇게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저에게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죠. 






LE: 인터뷰가 막바지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볼 수 있는 결과물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말씀드렸던 대로 3월 8일에 나온 감자씨 싱글에서 제 아트워크를 보실 수 있고요. 또 피타입(P-Type) 형의 싱글이 하나 나올 것 같고, 베이식(Basick) 믹스테입이 나오고 그 즈음에 리코(Rico) 믹스테입도 나오고요.






LE: 혹시 그 분들이 공개하는 거랑 상관없이 인터뷰에서 해도 되는 이야기인가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얘기가 되어야겠죠. 근데 감자 씨와 피타입 형은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국외 작업은 계속 하겠죠. 업데이트 사항은 그때마다 트위터를 통해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LE: 최근 같이 뭔가를 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국외는 아무래도 제이콜(J.Cole)나 제이 일렉트로니카(Jay Electronica)같은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친구들과 작업해보고 싶어요. 사실 가장 이름이 알려지기 좋은 메이백 뮤직 그룹이랑도 해보고 싶긴 하지만, 워낙 옛날부터 빅엘(Big L)을 좋아하고 붐뱁(Boom-Bap)을 좋아하고 하다보니까 랩을 좀 더 타이트하게 하는 친구들을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메이백 뮤직 그룹 중에서도 가장 먼저 컨택을 시도했던 게 스탤리(Stalley)였고요. 그 다음에 제이콜, 제이 일렉트로니카, 돔 케네디(Dom Kennedy) 정도... 그런 친구들하고 많이 하고 싶어요. 또 그런 친구들은 대체적으로 아트워크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여부가 있겠나요. 저는 항상 국내 아티스트들과 작업하고 싶고요, 불러주신다면 좋은 작업물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LE: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형님들 보시면 또 혼나는 소리인데, 나이가 들다 보니까 (전원 웃음) 자연스럽게 저도 랩 부분에 있어서는 제 스스로가 되게 둥글어진 것 같아요. 물론 랩을 포기하는 건 아니지만요. 예전처럼 뾰족하지 않죠. 제가 어떻게 하든 힙합 판에 있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A&R 쪽으로도 많이 기우는 것 같아요. 저희 레이블 안에서도 아트 디렉터 일도 하지만, 총괄적으로 매니징 하는 게 좀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최근에는 진짜 국내에서도 믹스테입 내시는 분들 하나하나 다 찾아가며 듣고 있어요. 괜찮은 분들 있으면 같이 작업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하고 있고요. 또 지금은 대외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비트 프로덕션도 계획하고 있어요. 아무튼 앞으로는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걸 많이 하고 싶어요. 조만간 여러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LE: 갑자기 생각난 질문인데 작년 굿뮤직(G.O.O.D. Music)이 여러 싱글이나 자켓에서 대문자 제목으로 꽉 채우는 듯한 인상을 줬잖아요. 우리나라로 봐도 오케이션(Okasian) 씨의 싱글이나 앨범같은 경우도 있는데, 그런 자켓은 어떻게 보시나요?


그 당시 트렌드였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굳이 힙합 아트워크가 아니어도 그래픽 계열에서 되게 많이 이용했던 디자인 중 하나였고요. 일단 결과물이 이쁘니까요. 텍스트만으로 그러한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전 매우 좋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제가 가장 못하는 디자인 중 하나거든요. 그 느낌을 내는 것이 쉬운 게 아니니까… 국내에서는 그 디자인을 쉬운 디자인이라고 접근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사실 텍스트만으로 멋지게 만든다는 게 참 어려운 거거든요. 그걸 잘못 접근해서 좀 질이 떨어지는 퀄리티로 결과물을 내시는 분들도 더러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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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이 없어서 아쉬웠던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너무 두서없이 얘기를 한 것 같아서 정리가 잘 될지 모르겠네요. 일단 커버 디자인만 놓고 보면 경력이 이제 막 6개월을 넘긴 신입인데도 불구하고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제가 커버에 한글을 추가하는 건 저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대리만족을 드리고 싶어서에요. 한국 사람이 나가서 이런 것도 한다고. 보시면 또 기분이 좋으시잖아요. 한글 있다고 반가워하시고요. 가장 안타까웠던 건 소스(The Source)에서 한국을 다룰 때 한국을 모르는 상태에서 기사를 쓴 적이 많았어요. 그런 맥락에서라도 앞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더 알리고 싶고, 국내,외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포지션을 굳히고 싶고, 커버 아트워크이라는게 한 장르로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또 아직 들려드리지 못한 제 음악들은 신경 써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완성시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LE: 그럼 한글을 전면에 내세운 커버 디자인도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정말 제가 가장 하고 싶은 디자인 중 하나에요. 이상봉 선생님처럼요. 물론 접근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한글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적 요소가 많잖아요. 그걸 가지고 메인 커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아직까지는 제가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 디자인을 적용하기에 합당한, 괜찮은 클라이언트를 못 만난 것 같아요. 되도록이면 국내 아티스트보다는 외국 아티스트에게 그런 걸 하고 싶어요.






LE: 인터뷰 수고하셨습니다!



관련링크 | 

로우 디가 트위터: @Rowdee38

로우 디가 텀블러: http://rowdee3886.tumblr.com/

인터뷰, 글 | Bluc, Melo
인터뷰, 사진 |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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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3.11 19:44
    오.. 멋있다.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고,
    소신이 있어야한다는걸 느낄 수 있는 인터뷰였어요.SWAG!
  • 1 3.11 23:21
    Vado의 Slim Flu 아트워크가 이분작품이었군여.
    깔삼해서 계속 봤는 데

    잘 읽었습니다
  • 3.11 23:35
    근데 이분이 조형기씨 아들맞나요?? 어디서 들었던거 같은데
  • 3.12 14:57
    대단하심 정말
  • 3.13 15:57
    예전 DCT에 딥셋자료 많이 올려주셔서 저도 참 많은 도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게 아트웍 디자인 아티스트로 다시 뵙게되어 반갑네요. 앞으로도 멋진 커버 부탁드립니다~!
  • 3.16 18:23

    이 분 아트웍은 다 죽임. 정말 커버로 예술을 한다는 느낌이 팍! ㅋㅋ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 2.9 02:31
    몇 년이 지난 지금 봐도 스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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