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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3 16:14

[인터뷰] 보니 (B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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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니 (Boni)


생각해보면, 한국에 정통 여성 알앤비 보컬 아티스트는 그렇게 많지 않다. 꾸준히 정식 앨범을 발표하고, 공연을 해나가는 경우는 더더욱이나 없다. '알앤비 씬'은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그 수나 파이의 크기가 크지 못하다. 그런 와중에 10년 가까이 한국형 발라드와의 큰 접합 없이 꾸준히 알앤비 음악을 해왔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아닐까? 그 조용하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행보를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는 멋진 여성 알앤비 아티스트, 보니(Boni)를 만나고 왔다.




LE: 반갑습니다. 먼저 힙합엘이 회원분들께 인사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B: 안녕하세요, 보니입니다. 정규 1집을 들고 오랜만에 찾아뵈었는데, 나온 지가 좀 되어서… 5월 18일에 나왔으니까 벌써 3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요. 오랜만에 이렇게 음악 매거진과의 인터뷰, 수다 속에 재미있는 인터뷰 기삿거리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웃음)






LE: 앨범은 나온 지가 좀 되었지만, 발매 이후 공연은 하신 지 얼마 안 된 걸로 알고 있어요. 작년에 있었던 화이트데이 공연 이후 첫 공연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죠. 그 이후에 벨로주(Veloso)에서 했던 건 화지, 스윗(The Suite)이랑 같이 했었고…






LE: 공연은 어떠셨는지 대략 말씀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워드커피(Word Coffee)에서 진행했던 쇼케이스 같은 경우에는 공연을 정기적으로 꾸준히 하긴 했지만, 정규 1집이라는 앨범이 나오고 나서는 뭔가 내 새끼들을 풀어놓는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기분 때문에 좀 설렜던 거 같아요. 다른 때는 그냥 제가 잘할 수 있는 노래를 들려주고, 악기 연주와 함께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아, 내 새끼들 이쁘게 보여야 할 텐데… 사람들이 좋아해 줘야 할 텐데…’ 그런 생각으로 정말 긴장 많이 했었던 거 같아요. 근데 예상보다 정말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저도 놀라고, 스태프들도 놀라고, 연주하는 오빠들도 놀라고… “이렇게 많이 올 일이야?” 막 이러면서… (웃음) 되게 기분 좋게 진행됐던 걸로 기억해요.






LE: 지난 달에 있었던 공연 같은 경우에는 인플래닛(Inplanet) 소속 아티스트들이 다 같이 하는 공연이었잖아요. 준비는 하시겠지만, 부담은 덜 하실 것 같아요.


그렇죠. 단독 공연 정도의 시간 투자라든지, ‘내가 다 케어해야 해.’ 이런 생각을 가질 정도는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그런 형식의 공연은 인플래닛이 생긴 이래로 처음이라서 되게 재미있게 준비했었어요. 되게 신나있고… (동생들이 저한테) “누나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막 그러면서 되게 긴장하고, 그런 채로 열심히 준비했었죠. 그래서 이번만큼은 제가 할 게 많지 않았어요.






LE: 이번 공연이 새로 영입된 스윗 씨라든가, 윌콕스(Wilcox) 같은 분이 계셔서 가능했던 공연이었잖아요. 예전에 인플래닛 생각하면, 한 명, 두 명 정도만 있는 완전 소규모 레이블이었는데요.


그렇죠. 두 명… (웃음)





LE: 그런데 멤버가 추가되면서 좀 더 재미있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아티스트간에 이런저런 교류도 더 많이 생겼을 것 같고, 그래서 예전보다 재미있는 분위기가 형성됐을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아무래도 소규모였을 때는 교류가 있을 수가 없죠. (웃음) 저 하기 바쁘고, 그 친구 하기 바쁘고… 그때는 화지랑 둘이었으니까요. 그 친구는 그 친구 나름대로, 저는 저 나름대로죠. 근데 (예전에도) 화지가 앨범 작업하다가도 “누나, 잠깐 이 부분에 피처링 한 줄만 해줄 수 있어요?”라고 하기도 했었죠. 그냥 저는 다른 방에 있다가 급작스럽게 “어, 그래?” 하면서 들어가서 해주기도 하고 그러긴 했죠. 그게 첫 시작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 식으로 뭔가 서로 부탁하고 같이 하고… 그러다가 이번에 화지가 어떤 의견을 냈었어요. 스윗까지 들어오면서 아티스트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서 음악에 관한 얘기를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좋다고 그랬죠. 근데 저는 약간 아티스트들간의 음악 이야기를 비롯한 소통, 그거 자체를 잘해본 적이 없어서요. 반대로 화지는 미국 생활을 하면서 그쪽 공동체 안에서 음악하는 친구들이랑 얘기를 엄청 많이 주고받던 친구거든요. 그래서 “그럼 너가 리드를 해라. 누나는 잘 모르니까 일단 참여하는 걸로 시작하자.”라고 했죠. 그 이후로 모이기 시작했죠. 화지가 되게 구체적으로 최근에 본 뮤직비디오 중에 인상 깊었던 것도 얘기도 하고, 자기가 제일 좋게 들었던 앨범 한 명씩 가져와서 얘기도 좀 하는 쪽으로 가자고 계획을 짜더라고요. 그렇게 모이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에 관해 얘기하고, 화지가 갖고 있는 음악에 관한 생각이나 그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더라고요. 그 이후로 제가 정규 1집의 가사를 쓰면서도 화지의 팀을 이뤘던 프로듀서 영소울(Young Soul)과도 같이 얘기하게 되고, 영소울 비트 또 열심히 듣다가 달라고 하기도 하고 그랬죠. 스윗도 같이 듣다가 “형, 그거 제가 해볼게요."라고 하고… 그런 식으로 차근차근히 교류하게 되었던 거 같아요.






LE: 실제로도 변화가 많았던 거네요.


엄청났죠. 정말 많이 달라졌죠. 윌콕스 그 친구도 들어와서 너무 자연스럽게 저희 안으로 녹아들었죠. 그래서 음악 얘기도 많이 하고 하다 보니까 이번 공연에서는 윌콕스의 “Dress Code”에 있는 G2 씨 파트에 제가 16마디 노래를 짜서 같이 하기도 했어요. 뭔가 그런 콜라보 자체가 되게 잘 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된 거죠.






LE: 인플래닛 단체 공연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런 분위기 덕분이었겠네요.


네. 급격하게 좀 더 친밀해지면서, 그 와중에 저도 자극받기도 하고요. 저는 스윗도 좋고, 윌콕스도 정말 잘하지만, 처음에는 화지랑 둘이 있었기 때문에 화지로부터 받은 자극이 굉장히 컸어요. 정규 1집을 하면서 화지의 장점을 제가 닮아봐야겠다, 뺏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질문도 많이 하고, 도움도 많이 받고 그랬죠.






LE: 인플래닛이 최근에 이런저런 변화를 겪고 있는 것 같아서 몇 가지 질문을 드려봤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게요. 우선 처음 음악을 접한 건 언제고, 어떤 계기로 접하게 되어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건가요?


음악을 통틀어서 제일 처음에 접한 건 어렸을 때였죠. 그때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았었어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어서… 먼 친척인 고모 밑에서 자랐어요. 고모는 아주머니다 보니 <가요무대> 같은 프로그램 보는 걸 좋아하시고, 고모의 딸들인 언니들은 그냥 대중음악을 듣는 걸 워낙 좋아했어요. 또, 큰 언니가 악보를 펴놓고 기타 치는 걸 워낙 좋아했어서 전 그냥 그걸 보고 자랐어요. 언니, 오빠들이 음악을 좋아하고, 매일 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를 틀어놓으면, 제가 언니들 방에 가서 언니들 머리를 만지작만지작하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음악을 많이 듣게 되었죠. 그런 식이다 보니까 워낙 흥얼거리기를 잘했고, 친척들이 모이기만 하면 노래해 보라고 하고 그랬었어요. 제가 주변에 기웃기웃 대면 언니가 “너 노래하고 춤추면 언니가 껴줄게.”라고 하고… (웃음) 그때부터 제가 노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때 기억은 제가 좀 가물가물하거든요. 그리고 제가 제일 생각나는 건 가족들이 집에 없으면 저 혼자 고장 난 마이크를 들고 큰 거울 앞에서 노래를 온종일 불렀던 기억이에요. 그렇게 점점 자라면서 듣는 음악도 대중음악에서 팝송으로 넘어가고… 저는 처음에는 알앤비, 흑인음악 이런 건 잘 모르고,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같은 블루 아이드 소울을 듣곤 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또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같은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었죠. 그러면서 계속 따라부르고, 커버를 하고, 반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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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너 오디션 한번 봐봐라.”라고 얘기하셨는데, 그때 저는 절대 생각도 안 했었어요. “난 뭐, 유치원 선생님이나 되련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웃음) 그래서 “선생님, 저 무서워서 못 볼 거 같아요. 그런 거 못 해요.” 그렇게 대답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는 친구들이 그런 얘기를 엄청 많이 했었어요. “너는 공부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음악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런 식으로 진로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러다가 하루는 아버지가 “너 뭐할래?”라고 하셨는데, “공부는 싫고 노래를 하…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해.”라고만 했는데, 아버지가 “그럼 너 지금부터 선생님 붙여야 하고, 재즈 댄스 학원 다니면서 리듬감 익혀야 해.”라고 하시면서 그런 걸 막 알아보시고 준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노래를 제대로 시작한 거죠.


실질적으로 소울이나 가스펠 같은 흑인음악에 빠지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제가 교회에서 드럼 치는 오빠가 “넌 그런 정도만 알아서는 안 돼.”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블랙 가스펠 집회 영상, 앨범 다 빌려주면서 들려주고 보여주니까 ‘새로운 신세계가 있구나.’ 느끼게 된 거죠. 근데 그때 보컬 선생님이 고등학교 1, 2학년 때랑 다른 분이셨어요. 그때 그 선생님이 플로에트리(Floetry), 질 스캇(Jill Scott) 노래를 들려주시니까 ‘아니 이건 또 무슨 세계지?’ 이랬죠. (웃음) 그렇게 빠지다가 완전히 ‘나는 흑인음악을 할 거야.’ 마음먹게 된 거죠. 그전까지는 주로 대중음악이 탑재되어 있었다면, 흑인음악을 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혼자 교회 빈방에 찾아 들어가서 그런 노래들을 틀어놓고 7, 8시간을 혼자 노래 부르고 그렇게 지냈어요. 그게 사실 지금의 보니가 있게끔 해준 진짜 큰 하나의 터닝 포인트였어요.






LE: ‘교회에서 드럼 치는 오빠’는 되게 클리셰스럽네요. (웃음)


그렇죠. 근데 그 이후로 그 오빠는 아예 그냥 뮤지컬 쪽으로 빠졌어요. 어쨌든 저는 그 오빠를 통해서 다른 음악을 듣게 되고, 또 친구들이랑 모여서 그런 음악에 관해서 얘기를 하다가 헤리티지 메스콰이어(Heritage MassChoir)라는 팀이 있다고 듣게 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헤리티지 메스콰이어 활동을 하게 되고… 2기가 저고, 3기가 개그우먼 신보라 씨죠. (웃음) 아, 한번은 헤리티지 메스콰이어에 있으면서 미군 부대에 가서 같이 예배를 드린 적이 있는데, 그때 충격을 많이 받았었어요. 흑인음악 이런 걸 떠나서 뭔가 사람들이 되게 음악에 확 심취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일반 대중음악을 들었을 때와는 다른 감상이… 그전에는 ‘어, 잘한다. 멋있다.’ 이 정도였는데, 뭔가 흑인음악에 잔뜩 취해있는 사람들은 그 노래에 장단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되고,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꼭 열정적으로 임하려고 하는 걸 보면서 ‘이게 진짜 멋있는 음악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었죠. 약간 저도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고요.






LE: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의 얘기를 해봤는데, 이제 대학교로 넘어와 봐야겠죠? 지금 포털 사이트에 보니 씨를 검색하면,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과 ‘재학’이라고 나오더라고요. 일단 알기에는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과가 8, 9년 전쯤에 붐이었던 과 아닌가요? 가수들이 엄청 많이 입학도 했었고 말이죠. 일단 그 당시에 입학했던 과정 같은 것도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일단 대학교 입학 얘기를 하기 전에… 저는 20살 되자마자 대학교를 바로 안 들어갔었어요. 원래는 서울예대 쪽에 진학하는 걸 준비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께서 아무래도 2년제 대학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웬만하면 다른 공부를 해서라도 4년제를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제껏 준비했던 음악을 쉬고 다른 걸로 진학을 하라고 하셔서 제가 그냥 좋아하는 영어 공부를 했었어요. 영어 공부를 하면서 준비를 하긴 했죠. 학교에 시험 보러 다니기도 했고요. 근데 아무래도 저는 강압적으로 끌려다니면서 한 느낌이 좀 커서 ‘이걸 내가 해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에 임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만큼은 안되더라고요. 그 이후에 2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헤리티지 메스콰이어에 있던 언니 중에 이미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과에 다니고 있던 언니가 2007년도 전형 중에 완전 실기 100% 전형이 있다고 얘기를 해줘서 엄마 몰래 전형 예약을 했었어요. 혹시 모르니까요. 미리 말했다가 안 된다는 얘기를 들을까 봐서…  그러고 나서 ‘합격을 하면 말씀드려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결국은 합격했죠. 이건 음악적인 얘기는 아닌데… 동생이 합격 꿈을 꾸었는데, 저보고 꿈을 사라고 해서… (전원 웃음) 엄마 말로는 그래서 제가 입학이 됐다는 얘기도 있고… (웃음) 다시 정리하면, “잠시 길을 잃다”가 나온 2006년에 시험을 보고 그다음 연도에 학교에 들어가게 된 거죠. 그렇게 해서 제가 입학을 했었네요. 아주 오래전에.






LE: 재학이라고 적혀 있어서 궁금한데, 지금도 다니고 계신가요?


저 안 다니고 있어요. 3학년까지 하고요. 학교에 대해서 인제 와서 생각을 해보면, 나이가 서른이기도 하고, 학교에 다니면 1년에 거의 천만 원 정도의 돈이 나갈 텐데, 그걸 내고 수원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통학을 해야 하는 걸 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실제로 그런 생각이 엄청 많이 들었어요. 저는 이미 앨범이나 공연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리고 실질적으로 학교에 다녔을 때보다 나와서 보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배운 게 진짜 많거든요.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큰 벽을 대면해야 할 일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가끔 그런 얘기를 하세요. “졸업을 해서… 교수가 되고…”






LE: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 이거죠.


그렇죠. “그래도 네가… 나중에 꿀을 빨려면… 교수가 되는 게 낫지 않겠니?”라고 하시면, (전원 웃음) “아… 엄마. (나) 서른이야. 학교에 다녀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라고 하고… (웃음) 그리고 경희대학교는 워낙 재즈 중심으로 시스템이 짜여 있어요. 저도 재즈를 좋아하긴 하는데, 그래도 재즈 이외의 흑인음악의 역사를 더 많이 배우고 싶었어요. 전 음악을 들으면서 같이 얘기하고, 합주하고 그럴 줄 알았었어요. 1학년 때는 정말 ‘아, 내가 4년 동안 졸업할 때쯤에는 완벽한 아티스트가 되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재즈 수업 아니면 보컬 수업인데, 보컬 수업도 기초만. 이미 저는 다 해온 기초, 호흡이나 발성을 가르치다 보니까 좀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대학교에 와서 고등학교 때 그 많은 돈을 내면서, 많은 시간을 들여가면서 배웠던 그 이상을 못 배운다는 그 자체가 좀 그렇더라고요.






LE: 그래도 일단 3학년까지는 다니셨으니까 저희가 알만한 가수 분들도 몇 분 계실 것 같은데요. 또, 그 당시 과의 분위기도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학교생활을 그렇게 오래 하진 않았는데… 학교를 나와서 생활하다 보니까 별로 안 친했던 동기와 선배들과 나와서 친해지더라고요. 갑자기 연락이 오고… 저는 심지어 MT나 OT를 아예 안 갔었어요. 뭔가 재미없을 것 같고… 그러다가 가끔 학교 행사 있을 때, 만나고 연습하던 언니, 오빠들 혹은 동생들이 그때만 친할 줄 알았는데, 나와서 “누나, 뭐 하세요? 공연하세요?"라고 물어오기도 하더라고요. 또, 저랑 같은 나이인데 한 학번 선배인 친구 중에 오곤이라고, 활동했었다가 잠시 쉬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요. 흑인음악 쪽은 아니고 파스텔 뮤직 쪽 같은 음악을 하고, 힙합 쪽 작곡도 하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아, 안녕하세요.” 이러고 지내다가 지금은 “뭐하냐?” 묻고, “누나 저 술 마셔요.”하는 친구가 지금 라이브 앤 다이렉트(Live & Direct) 만든 준백(Jun Beck) 씨. 그 외에도 재즈 쪽에서 활동하는 친구도 있고, 아예 음악과는 관계없이 유부녀가 된 친구도 있고… 아, 저의 모든 공연에 코러스를 해주는 친구는 저의 동기. 동생이면서 후배인 친구들도 항상 같이 하고 있고요. 학교생활에 대한 기억은 없어도 학교에서 만났던 친구들과는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인연이 이어져서 쭉 만나고, 항상 안부 전하고 있어요. 아, 제이래빗(J Rabbit)의 정혜선 씨도 있네요. 다들 알게 모르게 되게 많이 하고 있네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예 다르게 샹송 이런 쪽 전공으로 들어와서 지금은 쇼호스트 쪽으로 아예 전향한 친구도 있고요. 되게 다양하게 빠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선배님 중에 이나겸 씨… 나겸 언니도 있고, 활동하는 사람이 은근히 많네요.






LE: 완전히 가요계 쪽이랄까요? 그런 쪽에 계신 분들은 활동이랑 겹치고 해서 학교 자체를 많이 안 나오고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같이 어울리지 못했겠네요.


근데 한 명 있어요. <슈퍼스타K>에 나오고, 지금은 스피카(Spica)의 멤버로 있는 박나래 씨. (웃음) 한번은 데프콘(Defconn) 오빠랑 “노토리어스 걸 (N.G.)”할 때, (음악방송) 대기실에서 만났었어요. 정말 많이 예뻐졌더라고요. (전원 웃음)






LE: 들으면서 조금 놀란 이야기가, 사실 인터뷰 오기 전에는 학교를 “잠시 길을 잃다”가 나온 즘에 입학하셔서, 학교 쪽 연을 통해서 015B와 연락을 하게 되고… 이런 식의 과정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예 학교에 입학하시기 전에 “잠시 길을 잃다”가 발표된 거잖아요.


그렇죠. 21살 때…





LE: 그래서 그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잠시 길을 잃다”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고, 015B와 어떻게 만나게 되고 등등… 아무래도 대학교 이전의 작업이다 보니 어떻게 함께하게 된 건지 더 궁금해지네요.


처음 시작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요. 지금은 <슈퍼스타K>에 나오고 하면서 앨범도 낸 당시 아마추어 보컬이었던 연규성 오빠의 공연에 아까 얘기했던 드럼 치는 오빠를 통해서 게스트로 설 기회가 있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였으니까 포동포동하게 살쪘을 때인데, (웃음) 그때 알게 된 밴드의 피아노 치는, 작곡하는 오빠가 가이드 알바를 해달라고 했었어요. SM 엔터테인먼트(SM Entertainment) 쪽에 들어가는 곡들 작업도 해보고, 신효범 선생님 곡에도 가이드해서 보내기도 하고… 근데 아무래도 작곡가들은 인맥이 엄청 쌓여 있으니까 그중에 015B와 친했던 언니 분께서 가이드 작업을 부탁하시다가 “보경아, 015B 이번에 앨범 오랜만에 내는데, 오디션 한번 볼  생각 없니?”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요? 015B요?” 하다가 얼떨결에 가서 정석원 오빠에게 오디션을 보게 됐었어요. “노래 한번 불러보겠니?”라고 하셔서 스테이시 오리코(Stacie Orrico)의 “Stuck”랑 앨리샤 키스(Alicia Keys)의 “If Ain’t Got You”를 불렀었는데, 그때 그냥 “그래, 하자.”라고 하셨어요. 작업도 그렇게 슉슉 진행됐었어요. 되게 의외로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지?’ 이런 생각도 안 하게 되고, ‘이렇게 돼서 노래하게 되는 건가 보다.’, ‘이렇게 해서 데뷔하게 되는 건가?’ 그 정도로만 생각했었죠.






LE: 정신도 못 차릴 정도로 순식간에 그런 거네요.


진짜 빨리빨리 진행이 됐어요. 그냥 가이드 알바를 시작하다가 아는 분을 통해 오디션을 본 거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만나서 얘기하게 되고, 녹음하자고 하니까 “네.”하고 녹음하고… (웃음) 그 이후로 곡 받고, 연습하고, 녹음하고 어느 날 쇼케이스 공연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싸이월드(Cyworld) 미니홈피라는 매체 덕분에 신보경의 “잠시 길을 잃다”가 진짜 많이 알려졌었죠.






LE: 질문지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노래방에서 울려 퍼질지 모르는 노래’라고 써놨는데요. (웃음)


그렇죠. 누군가의 컬러링일 수가 있고… (웃음)






LE: 그리고 사실은 오디션에서도 되게 많이 부르는 노래 중에 하나잖아요.


금지곡인 걸로 알고 있어요.






LE: 왜 금지곡인가요?


너무 많이 불러서… <보이스 코리아>인가 <슈퍼스타K>에서 금지곡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LE: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있는 건 좀 신기하네요.


그렇죠? 그 금지곡 리스트라는 게 있어요. 이 곡들은 부르지 말라고 쓰여 있는 서류를 제가 보고 ‘아, 얼마나 많이 불렀으면…’이라는 생각을 했었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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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하여튼, “잠시 길을 잃다”가 수록되어 있는 앨범 [Lucky 7]이 015B가 10년 만에 내는 앨범이기도 했고, 되게 오랜만에 내는 만큼 여러 가지 변화가 있는 앨범이기도 했잖아요. 순식간에 어쩌다 보니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부담감이라든가,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노래를 받고서 혹은 부르고서, 그리고 015B가 10년 만에 내는 앨범에 자신이 부른 노래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감회 같은 건 그래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해요.


일단 어렸을 때, 고모의 언니, 오빠가 워낙 대중음악을 많이 들었었고,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015B 음악을 9살, 11살 때부터 접했었어요. 해서 그런지 ‘015B와 작업을 한다.’라는 느낌보다는 ‘내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여기에 어떻게 노래를 하게 됐지? 어쩌다가 내가 이분들이랑 알게 됐지?’ 이런 느낌이었어요. 윤종신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앨범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시진 않으셔서 녹음 준비를 할 때는 못 뵈다가 공연 때 오셔서 뵈었어요. 그래서 그때 뭔가 이제 슬슬 제가 연예인들과 같이 대기실에서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싶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신기했던 거죠. 21살이라서 다 클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신기할 뿐인 거죠. 근데 그런 건 있었어요. “잠시 길을 잃다” 녹음을 하면서 저의 보컬에 대한 회의감, ‘아,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내가 지금보다 더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그때는 21살이고, 지금 같진 않았어서… 물론, 지금은 워낙 잘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나오는데, 제가 어렸을 때는 ‘보컬을 지금보다는 더 잘해서 내 앨범을 낼 때는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죠. 그때 당시에 015B 쪽 이사님께서는 같이 하자고 하셨는데, 그쯤에 딱 학교 합격 통지를 받고, 학교에 대한 기대감이 굉장히 부풀어 있었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이사님한테) “제가 지금은 학교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죄송하지만, 더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었죠. 수련을 쌓는다는 말이 좀 웃기지만, 조금 더 공부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던 거죠. 그 이후로 안 했거든요. 또 그다음에 나온 “Be Kind Rewind”라는 곡을 함께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쪽에서 진행하는 공연이라든지 그런 건 못했죠. 제 앨범 준비하느라고… 만약에 이사님 말대로 회사에 들어갔었다면, 윤종신 선배님에게 곡을 받아서 활동을 했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저는 또 제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학교에 대한 (로망이) 있었죠. 지금은 이렇게 되었지만… (웃음)






LE: 근데 되게 어떤 감정인지 알 것 같기도 해요. 좀 더 갖춰진 채로 데뷔하고 싶으셨던 거잖아요. 나중에 조금 더 좋은 목소리로, 좋은 노래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셨겠죠.


저희 아버지도 옆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하셨었어요. “넌 아직 안돼.”라고… 그렇게 말씀하셔서 제가 그 말씀에 팔랑팔랑한 것도 좀 있었죠. ‘아, 그렇구나. 난 아직 멀었구나. 더 해야겠구나.’ 싶었던 거죠.






LE: 그렇게 “잠시 길을 잃다”를 발표하시고, 학교에 다니게 되시면서 데뷔까지 공백기를 좀 가지시는데요. 그리고 인플래닛과 계약을 하시고, 2010년이 되어서야 데뷔 앨범이 나오는데요. 우선, 인플래닛과 계약하게 된 계기나 그 사이의 과정 같은 것도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되게 신기한 게 이 모든 대답이 쭉 연결되는데요. 제가 헤리티지 메스콰이어를 했었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때 대표님이 자연스럽게 인플래닛 쪽하고 가까워지셨었어요. 아무래도 인플래닛이 흑인음악 위주로 유통하는 회사이다 보니까요. 그때 헤리티지(Heritage) 음악하고 조인트를 해서 쇼케이스를 했었나 해서 양쪽이 알게 됐고,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그 대표님이 인플래닛으로 들어가게 되었었죠. 그래서 저를 (인플래닛으로) 끌고 들어오셨었어요. “같이 가자!”하면서 자연스럽게 저는 여기 소속이 된 거죠. 흑인음악을 한다기에… 근데 그렇다고 무조건 일방적으로 끌려와서 하게 된 건 아니고요. 그때 한참 인플래닛에서 진행했던 더 루츠(The Roots) 공연 포스터를 보면서 ‘아, 여기 약간 이런 곳이구나. 흑인음악을 딥하게 할 수 있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었죠. 그래서 아버지한테도 말씀을 드렸죠. 앞으로 이 회사와 음악을 하고 싶다고. 그렇게 해서 (인플래닛)에 들어오게 됐죠. 원래 저에 앞서서 앤써(Answer)라는 힙합 그룹이 있었는데, 그 오빠들이 약간 먼저 데뷔를 하고, 매니지먼트 쪽을 붙여서 해보다가 자연스럽게 제가 바톤을 이어받아서 보니로 데뷔를 했죠. 그러면서 방송 활동도 하고, 여기저기 프로그램 같은 것도 나가보곤 했었는데, 저는 나중에는 프로그램에 나가서 떠들고 이런 게… 라디오에서 수다 떠는 건 좋은데, 뭔가 에피소드를 부풀려서 말해야 하고 그런 게 뭔가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그 이후로 아예 매니지먼트에 대한 부분을 도려내고 완전히 앨범에만 집중하게 된 거죠.






LE: 2010년에만 [Nu One]이랑 [1990]까지, 두 장의 앨범이 나왔었는데요. 작품 활동으로 따지면, 어떻게 보면 되게 활발한 거잖아요.


그렇죠.






LE: 그러면 저희가 보기에는 보니 씨가 인플래닛 1호 가수처럼 느껴지는데요. 맞나요? 아닌가요?


앤써가 1호였는데… (웃음) 지금은 오빠들이 없으니까 그냥… 2인자가 1인자로 올라온 그런 것뿐? (웃음) 겉에서 보기에는 그렇죠.






LE: 저희가 이미지적으로 받는 느낌은 뭔가 보니 씨가 1호 가수처럼 느껴져서요.


네. 제가 제일 누나기도 하고… (웃음) 순서상으로 제가 맏이가 되어버려서… 약간 그런 느낌이죠.






LE: 보니라는 이름 같은 경우에는 계약과 함께 지으신 건가요?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도 궁금해요.


이름을 아무래도 신보경이라고 제 이름 세 글자로 흑인음악을 시작하면, 안 예쁠 거 같았어요. 앨범에 들어갈 때의 폰트의 느낌이라든지… 흑인음악, 알앤비, 신보경. 이러면 뭔가 딱딱하잖아요. (웃음) 제가 그리는 흑인음악의 부드럽고, 뭔가 커브한 느낌하고 제 이름하고는 너무 안 맞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다른 사람은 아무도 바꾸라고 얘기하지 않았는데, “이름 바꾸고 싶습니다. 제 이름 안 쓰고 싶습니다.”라고 했었어요. 그때 제가 기억하는 게 책상에 전자사전을 두고 계속 찾아봤었어요. 보경의 ‘보’를 따서 뭔가 괜찮은, 이쁜 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B로 시작하는 게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뭘 할까 하다가 결국에는 Bonny라고 하는 단어를 찾았는데, 그게 기분 좋게 하는, 매력적인, 어린 아기에게는 살이 찐 이런 뭔가 유복한 뜻이더라고요. 해서 그 단어를 쓰되, 스펠링 제가 좀 바꾸자고 해서 Boni가 됐죠. Bonny라고 하면 너무 일반적인 이름 같아 보일 수 있으니까요. 뜻은 그냥 저 자체도 항상 웃고 있고, 그런 타입이다 보니까… 사람들과 있을 때, 제가 같이 있을 때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되게 주고 싶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Bonny라는 단어에) 부합하는 이미지가 있다 해서 그렇게 이름을 정하게 됐었죠.






LE: 뜻을 들으니 보니 씨와 이름이 매칭이 더 잘되는 것 같네요.


그렇죠? (무슨 뜻인지) 아무도 몰라요. (웃음






LE: 2009년쯤에 계약한 이후로 지금까지 함께할 정도로 인플래닛과 인연이 길게 가고 있는데요. 뮤지션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건 인플래닛이 처음이었고, 또 지금까지도 함께 동반자로 하고 있으니 본인에게 의미가 꽤 클 것 같아요.


이 회사에 있으면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저한테는… 모든 저의 이데올로기가 이 회사와 함께 있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니까요. (웃음) 개인적인 것들이야 인터뷰 상으로는 담지 못할 만큼의 엄청난 대량의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런 것까지 자세하게 이야기해드릴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음악적으로 봤을 때, 사실 [Nu One]이나 [1990]과 같은 경우에는 소울사이어티(Soulciety)의 윤재경, 엠브리카(Mbrica) 오빠의 전반적인 작업물에 제가 녹음을 한 거라고 봐야 해요. 그때 그랬다면, 그 이후에 싱글이 많이 나왔잖아요. 그건 딱 봐도 ‘아, 뭔가가 지금 안 나오고 있구나.’라는 게 느껴질 정도잖아요. 팬분들도 되게 많이 기다리셨던 때인데, 그때가 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시기였어요. 왜냐하면, 엠브리카 오빠가 건강상의 문제도 있었고, 음악을 만드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위축되어 있던 시점이기도 했었어요. 그 시점에 오빠가 (인플래닛을) 나가시고… 원래 전속 프로듀서로 아예 있으셨다가 ‘아, 이제 좀 쉬어야겠다.’라는 말과 함께 유유히 떠나셨죠. 그때는 오빠가 약간 엄마 같은 느낌으로 “나만 믿어. 오빠가 다 엄마같이 챙겨줄게.”라고 하셔서 “아, 네. 믿고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항상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오빠가 급작스럽게 나가버리니까 제가 너무 붕 떠버린 거죠. 곡을 받아서 해보자 해서 여기저기서 받아서 해봐도 뭔가 다 와 닿지도 않고, 잘 모르겠고 그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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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40 친구가 잠깐 들어와서 40가 만든 “아파”에 노래를 한 적도 하고요. 정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40 노래 중에 “Bravo”를 제가 바꿔 노래한 버전을 “You Got Me”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 시기에 사적인 인들까지 겹쳐지면서 이래저래 붕 떠버린 거죠. 다 놓고 싶었던 시기였었어요. 또, 일이 안 좋아지니까 그런 변화가 몸으로 오더라고요. 몸도 안 좋아지고, 병원에도 입원해 있었고요. 수술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한참이라는 시간이 걸러져서 슬슬 준비했던 게 [Love] 앨범이 나오기 전에 냈던 화지랑 했던 “연애인”, 스윗이랑 했던 “대답해줘” 같은 거죠. 그거부터가 슬슬 제가 회복기에 들어갔던 시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때부터 천천히 하다가 한 번도 작곡이라든지, 작사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었는데요.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는데, 그러다 일단 모르긴 몰라도 부딪혀 보자 싶더라고요. ‘부딪히면 뭐든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작곡, 작사)를 시작하면서 “Stalk You”가 나오고 그랬죠. 어쩌다가 한 곡이 만들어지고 그러니까 신기한 거예요. 그래서 심지어 제가 코드를 알고 친 게 아니고 그냥 소리 좋은 걸 키보드로 눌러서 만든 게 “Stalk You”였거든요. “Stalk You”의 리드 소리 있잖아요. 그 리드 소리가 제가 좋아서 친 거거든요. 그런 게 제가 본격적으로 음악에 있어서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던 시작이었죠. 보컬리스트에서… 사실 아직도 그 ‘아티스트’라는 단어가 약간 생소해요. ‘아티스트라는 수식어를 내 이름 앞에 붙여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막상 [Love] 앨범이 나오고 나서… 아까 쇼케이스 얘기하면서 ‘내 새끼…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했는데, 그런 생각이 담겨 나오다 보니까 아무래도 정말 (의미가) 크죠. (인플래닛에) 오래 있었던 만큼, 또 20대 초반에서부터 지금 서른이 되기까지 여기에 있었으니까요. 음악적인 견해도 굉장히 많이 달라지고요. 아티스트로서의 욕심도 굉장히 커졌고요. 저는 다른 인터뷰에서도 항상 얘기하는데, 1집을 낸 지금에서야 보니라는 아티스트로서의 시작을 한 것 같아요. 그 정도로 그전까지 이런저런 큰일들이 있었고요.






LE: 인플래닛에 오래 계시긴 했지만, 그 사이사이에 다른 회사에서 제의가 오기도 했을 것 같고, 본인도 변화를 모색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여성 알앤비 디바’라는 타이틀이 여러 기획사에서 끌려 할 만한 이미지라고 생각이 들기도 해서요. 그래서 여러 가지로 (다른 회사와도) 이야기가 오고 갔을 것 같기도 한데요.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어요. 아무래도 상업적으로, 음악 비즈니스 선에서 생각을 하다 보면… 저희도 미팅도 여러 번 해보고, 자문도 많이 구하고 해봤는데, 확실한 건 젊은 여자아이들, 아이돌이 되면 좋을 친구들이 아니면 여자 솔로 보컬을 찾는 회사가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고요. 물론, 제가 시작할 때, 초반에는 여기저기 데모 테입을 보냈던 데에서 연락이 많이 왔었죠. 고등학교 3학년을 갓 마친 스무 살이었으니까요. 근데 제 생각도 그랬지만, 특히 저희 아버지가 “넌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아.”라는 말을 되게 많이 하셨었어요. 그거 때문에 초반에 어딜 들어가서 활동을 일찍 시작하는 그런 게 일단 없었고… 제 견해도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그랬는데, [Nu One]이랑 [1990]을 내고, 그 중간중간에 당시 앨범 활동 기간에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면서 행사를 잡아주시고 그랬던 이사님이 나가시면서 더 좋은 회사로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정도는 제의하셨었어요. 근데 저는 아무래도 다른 회사에 가서 또 적응하고, 음악적으로 뭔가 얘기를 하면서 부딪히느니 진짜 그냥 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과 쭉 같이 가면 나중에 뭔가가 나오긴 나올 거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자꾸 옮겨 다니다 보면 뭔가 또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불편함, 불안감 때문에 이 회사에 있겠다고 이야기를 했던 거죠.






LE: 커리어 초기 때와 비교하면,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알리(Ali) 씨 같은 경우가 여성 보컬로서 인기를 얻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그런 알리 씨 같은 행보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다들 그 이야기를 하죠. 다들 저한테 원하는 건 <복면가왕>에 나가거나, <불후의 명곡>이나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가는 그런 거죠. 중간에 제가 활동이 뜸한 채로 붕 떠 있을 때도 <보이스 코리아>에서 전화도 왔었어요. 두 번, 세 번 전화 와서… 근데 뻔하잖아요. 나가면 뭔가 저의 애환이 담긴 스토리를 다 짜내야 하고…






LE: 엠넷(M.Net) 식으로… (웃음)


네. 저는 CJ E&M이 하는 프로그래밍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슈퍼스타K>가 생기기 전에 <코리안 아이돌>이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뻔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사전 미팅도 하고 그랬었는데, 아무튼 저는 뭔가 그렇게 짜인 상태의 프로그램이 저 스스로 너무 오글거려서요. 못 하겠어서 안 한 것도 있어요. 근데 뭐, 막상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건 저도 어렸을 때부터 그 시간대에 했던 <이소라의 프로포즈>, <이하나의 페퍼민트> 같은 프로그램들을 보고 자랐고, ‘커서 저런 데를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괜찮겠죠.) 지금도 그 프로그램에 나가야 해서 외주 매니저를 계약해서 방송에 꽂는 그런 건 모르겠어요. 그냥 일단 다 모르겠고 제 앨범 내고 공연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이 더 컸죠. 한동안 너무 오래 쉬었었기 때문에 공연에 대한 갈증이 엄청났었어요. 공연 영상만 봐도 앓을 정도였어요. ‘아, 나도 공연하고 싶다. 노래하고 싶다.’ 막 이런 생각이 컸어요. 방송이야 뭐, 나이 조금 더 들어서 나가도 괜찮으니까요. 지금 당장 방송이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사이에 정형돈 오빠랑 데프콘 오빠랑 같이 음악 프로그램도 나갔었고요. 그래서 그런 활동에 대한 중요성 같은 건 크게 모르겠어요. 근데 진짜 (방송을) 해보면 힘들어요. 특히, 공개 방송 식 음악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새벽 6시 30분에 이미 대기실에 있는 상태로 드라이 리허설 해야 하고, 또 잠깐 쉬었다가 카메라 리허설 가야 하고… 근데 카메라 리허설 할 때는 이미 풀 메이크업부터 해서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어야 해요. 온종일을 (방송에) 뺏겨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연예인들을 참 리스펙하지만, 저는 별로 이쪽 일과는 가까이 지내고 싶지는 않은 거죠. 다른 거죠. 그쪽에 기반을 두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패턴과 저의 패턴 자체가 아무래도 다르죠. 그러다가 제 음악을 너무너무 듣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생겨서 섭외가 왔다거나 그러면 저야 뭐… 그럴 때는 부담감이나 거부감 같은 게 크게 없어요. (섭외가 오면) 재미있게 하면 되니까…






LE: 다시 얘기를 데뷔 때로 돌아가면, [Nu One] 때는 그런 방송 활동을 좀 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했었죠. 그래서 그 활동의 종점이 <남자의 자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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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죠. 일단은 그 당시에 프로모션 “잠시 길을 잃다”의 신보경이 데뷔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대를 끌어모았던 걸로 기억해요. 당시 앨범 발표할 때의 상황 같은 걸 조금 회상해볼 수 있을까요?


벌써부터 웃음이 나는데… 제가 처음에 “ResQ Me”를 할 때, 춤 추면서 데뷔를 했었어요. 춤을 뭐, 막 보아(Boa) 씨나 비욘세(Beyonce)처럼 막 완벽하게, 멋들어지게 추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춤을 추면서 뭔가 방송을 함으로써 생기는 긴장감? 팝핀현준 오빠 쪽에 춤추는 댄서들과 같이 준비했었는데, 그런 걸 되게 많이 하잖아요. 아이돌 친구들은 카메라가 항상 정해져 있어서 불이 켜지면 딱 봐야 하고… 그 연습도 심지어 했었어요. “네가 노래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카메라를 안 쳐다보면 안 예쁘게 나올 수 있으니까…” 그런 얘기가 있었죠. 그래서 다 연습했던 거죠. 학생들, 어린 친구들한테 종이에 1번 카메라, 2번 카메라 써서 카메라 켜지는 거에 시선 맞추는 연습하고… 근데 데뷔 때는 진짜 그런 게 정신없었던 거죠. 스케줄, 행사. 그런 게 잡혀 있으면 가서 메이크업하고, 다른 이런저런 준비하고, 무대 올라가고… 광주 갔다가 부산 갔다가… 그때는 진짜 많이 했었어요. 근데 그때는 그때가 딱 좋았던 거 같아요.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하겠어요. 차 안에서 대기하는 시간 그런 거 생각하면, 지금 노래 부르고 내려오거나 아니면 밴드가 생겨서 우리 밴드들이랑 같이 공연하고 내려오는 거? 그게 그냥 제일 재미있죠. 그런 면에서 아이돌 친구들에 대한 측은지심 같은 게 들더라고요. 그 친구들 진짜 스케줄이 정말 힘들겠구나 싶어서요. 아무튼, 그때는 아무래도 그 신인만 할 수 있는 그 활동을 한 거죠. 그래서 나중에는 보니는 방송 쪽 가수인지, 아니면 진짜 음악만 하는 아티스트인지 그 갈림길에서 사람들도 ‘뭐지, 뭐지. 어느 쪽이지?’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저희 회사 쪽에서도 그랬고요. 그 이후로 저의 이미지를 잡아갔어야 했는데, 저 스스로도 그렇고 뭔가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엄청 많이 했었죠. 근데 한계는 분명히 있는 거 같아요. 모든지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은 게 그때는 활동도 많이 하고, 그 덕에 인지도가 어느 정도 생겼던 반면에 지금은 저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 저의 욕심이 채워지고 있어요. 그때는 여러 연예인 쪽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이야기하다 보니까 친구들이 “연예인은 어떤 사람들이야? 누구누구 만났어? 실제로 만나보니까 어때?” 이런 질문이나 하는 정도였죠. 그것도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그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남자의 자격>이랑 박경림 언니가 했던 <별이 빛나는 밤에> 고정 게스트였어요. 라디오는 3개월 정도 했었는데, 다 좋은 분들이어서 지금까지도 연락하면서 쭉 지내요.






LE: 이건 흑역사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프로모션 문구 중에 ‘여자 태양’이라는 수식어가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웃음)


그게! 춤 때문에 그런데! (웃음) 그때는 그게… 어우, 저도 한참 잊고 있었던 문구인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네요. 아, 여자 태양…






LE: 되게 회사 쪽에서 뭔가 해보려고 한다 싶었거든요.


아무래도 처음에는… (웃음) 아시겠지만, 제가 인플래닛의 ‘2호’ 가수였다 보니까 뭔가 자극적인 문구를 넣는 게 중요했었어요. 인지도가 쌓이기 전까지는… 빅뱅(BigBang)의 태양이라고 하면 다 “누구야?”라고 하니까요.






LE: 그때 당시가 또 태양 씨가 미니 앨범 나오고 한창 주가를 올릴 때쯤이긴 했었죠.


그랬었죠. “나만 바라봐”도 제가 그 위에 노래하고 그랬었잖아요. 심지어 그 노래로 행사도 하고 그랬었어요. 행사 세트에 항상 껴서… 여자 태양이라고 해서 되게 웃긴 에피소드 중에 하나 있는데, 그때 싸이클럽이 아직 건재할 때였잖아요. 근데 그때 저한테 쪽지가 왔었어요. 태양 씨 팬인 거예요. “언니, 여자 태양으로 데뷔하셔서 좋게 봤는데… “나만 바라봐”를 불러서 올리신 거 보니까 이거 상업적으로 이용하시는 거 같아서 좀 실망스러워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데 그게 음원으로 풀린 것도 아니고 유투브로 풀린 거라서 저한테는 아무 금전적인 이득이 없는 거였어요. 그냥 진짜 제가 좋아서, 그때는 태양 씨가 제가 좋아했던 아티스트였어서… (웃음) 지금은 좀 다르지만, 그때만큼은 멋있다는 인상이 강했어서… 그래서 (답장으로) “저도 팬입니다. 저도 제가 좋아서 한 거고, 저한테나 회사 쪽으로 실질적인 금전적 이익이 오진 않으니까 그런 거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런 걸 안 좋게 보셨다면 충분히 설명해 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해요. 좋아서 한 거니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보냈었는데, 오히려 나중에 금전적인 이득이 없다는 걸 알고 나서는 얼마나 죄송하다고 쪽지를 보내시던지… 그런 일도 있었어요. 여자 태양… 소름 돋네요. 소오름. 제가 그랬었군요. (웃음) 오늘 회사 식구들이랑 있을 때, 이 이야기 오랜만에 꺼내야겠네요. (전원 웃음) 저녁 먹으면서 “아세요? 제가 여자 태양이었다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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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아무튼, [Nu One]이 나올 때 그랬었는데, “잠시 길을 잃다”에서 [Nu One]으로 건너오면서 여러 가지로 보컬리스트로서 중점적으로 보완했던 부분이랄 게 있을까요? 아니면 보완까지는 아니더라도 변화한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었나요? 또, 그런 것들이 결과물로써 잘 드러났는지도 궁금하고요.


아무래도 제가 한참 노래를 시작하고, 포스트모던음악과가 막 뜨고 그랬을 무렵에 보컬의 유행이 가창력 있고, 뭔가 소울풀하고 그런 거였어요. 저는 롤링이라고 하는데, 한 음절에 해당하는 글자의 길이가 길게 길게 늘어지는 것들에 대한, 거기서 오는 파워풀함이 되게 유행이었어요. 저도 그때는 헤리테지 메스콰이어를 했었고, 또 가스펠이 약간 그런 류의 방식이 많잖아요. 그런 거에 익숙해져 있다가 어반 알앤비를 하게 되면서 그냥 제가 흥얼거리는 것만 좋아했지, 직접 녹음하거나 곡을 가지고 유려하게 그루브를 만들어낸 적이 거이 없었어요. 그래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있는 반면에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장르의 노래들이라서 진짜 기대에 엄청 부풀어 있었죠. 엠브리카 오빠도 처음에 “Nu One”의 비트를 들려주고, 버벌진트(Verbal Jint) 오빠가 딱 녹음 끝냈을 때쯤에 저 스스로 ‘이건 대박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게 뜰 거라는 느낌보다는 제가 너무 마음에 들었었어요. 너무 하고 싶어했던 곡을 들었을 때의 두근거림. ‘드디어 내가 이런 곡에 노래를 부르는구나.’라는 생이었죠. 처음에 “ResQ Me”, “너를 보내도”, “Nu One”, “Hot Soup” 이런 걸 불렀을 때는 아무래도 빠르게 진행되는 사이에 제가 어떤 그루브를 만들어내야 해서 그런 기술적인 부분에선 부담감이 있었죠. 말이 너무 빨리 지나가니까 다 씹어야 하는데 다 안 씹히는 것 같으니까 다시 녹음하는 그런 부분들이 어려웠었어요. 근데 그런 게 지금 들어보면 다 티가 나더라고요. 한참 데프콘 오빠 거 할 때였나 음악 방송하러 가면서 갑자기 [Nu One]을 재생했는데, 얘가 누군가 싶은 거예요. (전원 웃음) 빵 터졌어요. 너무 열심히 녹음한 거예요. “Hot Soup” 들어보면, 혈기가 막 느껴질 정도로… ‘아, 진짜 열심히 했구나.’ 싶더라고요. 그때 가지고 있던 부담감이라든지 그런 게 앨범에 녹아있었던 거죠. ‘내가 이때 진짜 부담스럽긴 했나 보다. 너무 열심히 했다.’ 싶었죠. 돌아가시면서 한 번 들어보세요. (웃음) 지금이랑은 다른 신인만의 혈기, 패기 그런 게 느껴질 거예요. (음악뿐만 아니라) 그때 했던 인터뷰부터 모든 것들이 다 혈기왕성했었죠. 여자 태양이라는 수식어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전원 웃음) 예전에 제가 [1990]할 때 파운드 매거진(FOUND Magazine)이랑 한 번 인터뷰했었는데요. 그때도 얘기하시더라고요. (데뷔 때) 인터뷰 보니까 굉장히 패기 있으셨다고… “저도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했었는데… (웃음) 아무튼, [Nu One] 때는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부담감이라든지 그런 게 고스란히 음악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들으면 느껴지실 거예요.





LE: [Nu One]을 들어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이 포진되어 있잖아요. “너를 보내도”나 “ResQ Me”는 정통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고, “BONI Get Started”나 “Hot Soup”에서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편이에요. 특히, “Hot Soup”은 락 어프로치를 활용하기도 했었고요. 앨범 안에 다양한 걸 담아내면서 다이나믹하게 가고 싶었던 건가요? 뭔가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고요.


솔직히 얘기하면, 그때는 저 스스로 어떤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알앤비를 정말 하고 싶어 했었기 때문에 엠브리카 오빠의 전적인 리드에 끌려갔던 편이었죠. 끌려갔다기보다는 저는 그냥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스승님.” 이러면서 갔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때는 엠브리카 오빠가 약간 물 만난 고기처럼 “이거다.” 그러면서 그동안에 오빠가 하고 싶었던, 만들어 놨던 음악에 제일 부합해서 나타내 줄 수 있는 저라는 보컬을 찾으면서 만들게 된 게 [Nu One]에 있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ResQ Me” 같은 경우에는 오빠가 엄청 잘 쓰는 스타일이고, “Hot Soup”같이 락킹했던 건 그때 한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Ain’t No Other Man”이 나왔을 때였어요. 그때보다도 더 전에 쓴 건데, 원래는 풀 밴드, 빅 밴드의 느낌이 더 많이 있었던 곡이에요. 그게 너무 흡사해서 이렇게 나가면 표절했다고 얘기가 나올 거라 해서 아예 락킹하게, 일렉 기타를 더 써서 편곡했던 거죠. 그렇게 나오면서 파워풀함, 알앤비의 그루비함, 보컬로서의 역량, 저의 패기… 그런 걸 [Nu One]에 압축시킨 거죠. 






LE: 압축되어 있다는 느낌도 예전에도 받았던 거 같아요. 얘기하시는 걸 들어보니까 커리어가 진행되어 오면서 경직되어 있던 게 풀어졌다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Nu One] 때는 이병의 느낌이죠. (전원 웃음) 그때는 “하겠습니다!” 그랬으면 이제 저는 병장이죠. (전원 웃음) 곧 제대를 앞둔 병장 같은 느낌인데… 그때는 진짜 뭐든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었고, 흑인음악을 워낙 좋아하고 또 그때 흑인음악을 하는 가수가 많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약간 사명감? 의무감 같은 게 있었어요. 어렸을 때인데도 ‘흑인음악을 많은 사람이 좋아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하나 때문에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컸었어요. 인터뷰에서도… (웃음) 많은 사람이 흑인음악을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항상 이야기하고 다닐 만큼… 근데 지금 흑인음악 (하는 아티스트들이) 정말 많아졌고, 많이들 좋아하게 됐으니까 결국은 제가 소망하던 뜻을 이루게 된 셈이죠. 저 때문에는 아니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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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게 데뷔를 장식한 앨범이 [Nu One]이고, 그다음이 [1990]인데요. [1990] 같은 경우에는 되게 컨셉츄얼한 앨범이잖아요.


엄청나죠. 사진과 함께 전해져 오는… 90년대 알앤비의 황금 시기를 딱 나타내주듯이 제 머리 색깔도 황금색이었고…






LE: 그래서 그런지 경직되어 있던 모습이라든가, 혈기왕성한 그런 느낌이 컨셉에 가려졌다는 인상도 드는 것 같아요. 그 컨셉에 녹아드는 것에 집중을 많이 한 앨범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엠브리카 오빠 생각도 똑같았고, 회사 식구들의 의견과 제 의견도 동일했던 부분이 ‘완전 컨셉에 집중하자.’였어요. 어떻게 보면 촌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지만, 아예 그냥 노래에서부터 자켓, 모든 제작 과정까지 완전한 부활의 느낌. 90년대의 재해석이자 다시 태어난 느낌으로 우리가 만들어보자는 게 주요 포인트였어요. 그랬다 보니까 진짜 그 부분에만 집중하게 됐었죠. [Nu One]에서 발랄하거나 혈기왕성한 느낌보다는 무드 있고, 딥하고… 오히려 한국인의 한 정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1990] 앨범을 진짜 좋아하세요.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라는 노래를 제가 라이브를 잘 안 해요. 그 노래는 진짜 긴 데다가 한 번 부르고 나면 슬픔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차는 느낌이라서… 근데 공연은 빠르게 빠르게 전환이 되어야 하는데, 되게 딥하게 가는 곡이라서요. 그래서 그 노래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아직도 제가 공연 준비한다고 하면 댓글에 그 곡 왜 안 하시느냐고 하면서 그 곡만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세요. 한의 정서가 잘 서려져 있는 앨범이기도 하죠. “기다릴게”, “무엇이라도”… 저는 (그 앨범을) 녹음하면서) 그 무드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아직도 신기할 때가 있어요. 지금이야 [Love]에서 많이 풀어냈었고 하니까… 근데 지금 이렇게 풀어놓고 할 수 있는 게 다 [1990] 때 했던 나름의 가닥이 있어서인 것 같아요. 그때는 “기다릴게”도 한 번에 녹음해본 적이 없었어요. 했다가 엠브리카 오빠가 “다시 하자.”라고 하면 또 며칠 지나서 녹음하기도 하고… 보컬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 표현력이 더 잘해야지만, 더 성숙해져야지만 부를 수 있는 곡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마일드비츠(Mild Beats) 오빠의 “연인”, “1990” 두 곡만 빼면 모든 것들이 다 제가 잘해내야지만 좋게 들릴 수 있는 곡들이어서 준비하는 동안에는 되게 어려워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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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말씀해주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가 라디오 에디트 버전도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 긴 버전의 원곡만이 가진 매력이 되게 풍성하잖아요. 곡 안에 담겨 있는 감정들이 완곡으로 들어야만 느낄 수 있다고 봐요. 하여튼, 뭔가 그런 아련한 감성, 한의 정서가 앨범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근데 90년대를 컨셉으로 한 앨범임에도 막상 또 한 곡 한 곡 떼놓고 봐서 각각 확실한 레퍼런스가 있다기보다는 신스를 90년대 스타일의 것을 가져다 쓴다든가 이런 식인 것 같아요. 지금 기린 씨가 뉴잭스윙을 딱 정체성으로 삼는 그런 느낌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모든 곡이 주는 느낌을 주로 포인트로 잡았던 거고… (장르를) 정확하게 구현해낸다는 느낌이 지금은 많이 있고, 기린 씨 같은 경우에는 정말 아예 거기에 빠져 있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걸 완전히 본인이 표현하고, 프로듀싱할 수 있는 반면에 저는 엠브리카 오빠가 빠져 있는 부분의 노래적인 해석을 제가 한 거고, 아무래도 담당이 나뉘어 있다 보니까 컨셉츄얼함이 전체적으로 드러났던 거 같아요.






LE: 그래도 90년대 알앤비를 좋아하셨기에 가능한 프로젝트 앨범이었을 거 같은데요. 90년대 알앤비 아티스트 중에 주로 어떤 아티스트를 많이 좋아하셨었나요?


90년대라 하면 보컬이었으니까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예전에 “Saving All My Love For You” 이런 노래… 굉장히 어쿠스틱하고 드라이한 사운드에서만 느껴지는 보컬. 또,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조데시(Jodeci), 실크(Silk), 토니 토니 톤(Tony! Toni! Toné!), 키스 스웻(Keith Sweat)… 딱 이런 류죠. 딥하다… (웃음) 끝을 달리는.






LE: 앞서 잠깐 얘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혹시 뉴잭스윙 같은 스타일에 도전해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어떤 특정 스타일을 내가 확실하게 구현해보고 싶다든가…


언젠가는 해보지 않을까요? 지금이 제가 (제 음악을) 구체화시키는 시점이다 보니까요. 언젠가는 할 수 있을 때가 오지 않을까요? 최근에 원더걸스(Wonder Girls)가 완전 복고로 앨범을 냈잖아요. 제가 어떤 거에 꽂히면 특정 사운드로만 채워진 앨범을 내지 않을까 싶어요. 전 그냥 꽂히는 대로 하는 스타일이어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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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럼 뉴잭스윙은 90년대 쪽이지만, 넓게 생각하면 본인의 목소리나 스타일에 가장 잘 맞는 알앤비 장르라는 게 따로 있을까요?


저는 약간 저의 이상향이자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제가 제일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오히려 네오 소울 쪽. 이제 디바처럼 할 수 있는 건 보컬리스트는 많아지는 거 같아요.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고, 저는 그 힘을 이전에 많이 쏟아 부었다면 이제는 좀 빼고 싶어요. 지금도 많이 뺐지만, '소리를 높게 내서 정곡을 찔러줘야 해.'라는 생각에서 오는 부담감 같은 걸 더 빼고 싶어요. 한 번은 그러더라고요. 제가 “Push”를 냈잖아요. 근데 “Push”도 도전하고 싶었던 장르의 곡이었어요. 피비알앤비 같은 곡인데, 친구 중 한 명이 재즈 보컬을 하는 친구인데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자기가 제 앨범 들으면서 “Push” 같은 스타일을 이렇게 잘하는지 몰랐다고. 노래야 뭐, “잠시 길을 잃다”를 시작으로 알앤비 발라드, 팝 발라드 같은 걸로 워낙 잘하고, 열심히 하고 그랬잖아요. 제가 주로 많이 했었고요. 그래서 그걸 참 잘하는 건 알고는 있었는데, 오히려 네오 소울적인 어떤 묘한 느낌을 잘 소화해낼 줄 몰랐다고 얘기해주더라고. 그 점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확실하게 있는 것 같기는 해요. 리드미컬함 속에서 나오는… 엘 발너(Elle Varner) 같이 그루브를 갖고 노는 그런 노래라든지, 플로에트리 같이 뭔가 딥한… 또는 약간 나이 들어서 잘해보고 싶은 건 미쏄 은지디오첼로(Meshell Ndegeocello)가 예전에 했던 재즈, 네오소울, 모던 락이 다 퓨전된 묘한 음악 있잖아요. 그런 것들도 해보고 싶고요. 그리고 자이언티(Zion.T) 씨처럼 달달하게, 크러쉬(Crush) 씨처럼 멋있게 하는 건 이미 많은 사람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보다는 오히려 딥해지고 싶어요. 제가 이제껏 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도전인 거죠. 그냥 일반적으로 실용음악과 보컬들이 다 밟아오는 순서대로 밟아왔다가 아예 홱 가는 게 저의 목표거든요. 그래서 저는 저 스스로가 좋아하는 거에 대해서 잘할 수 있는 거 같아서 그런 쪽으로 더 해보고 싶어요.






LE: 다시 정리하면, 기승전결이 확실하진 않더라도 전반적인 무드를 잘 유지할 줄도 안다는 느낌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곡 안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정서를 잘 다듬고, 내 것으로 만들어서 무던하더라도 내놓을 수 있는…


그렇죠. 약간 그 부분에 대해서 확신하는 건 혼자 노래 불러놓고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하면 모르겠는데, 아까도 잠시 얘기했듯이 제가 한때 미군 부대에서 공연을 많이 했었어요. 근데 공연 가서 노래를 하면 흑인 친구들이 그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미국에 있는 흑인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많이 변했는데, 본인들은 예전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 그립다는 거예요. 근데 보니의 목소리에는 그런 소리들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 소리를 가지고 네오소울적인 걸 했을 때 그게 너무 좋다고… 그 얘기를 듣고서 ‘아,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네?’라고 확신을 한 거죠. ‘그래도 흑인 애들이 인정했는데, 그럼 나 괜찮다는 얘기잖아?’ 약간 이런 거죠. (전원 웃음)






LE: 얘기를 다시 돌아오면, 2010년, <남자의 자격>에 출연할 때는 앞서 말한 힘을 많이 쏟아내야 하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송년의 밤 행사 때 부르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때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니가 노래를 정말 잘한다는 게 더 넓은 채널로 드러났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진짜 잘했었나요? 저는 그때 되게 못했다고 생각해서 한 번 보고 안 봤었거든요.






LE: 근데 프로그램에서는 되게 폭발적인 걸로 비쳤던 것 같아서요.


제 얼굴이 터질 뻔했었는데… 저희 아버지도 보면서 “야, 네 얼굴 터지겠다.” 이러시고… (전원 웃음)






LE: 어쨌든 그 당시에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건 보니로서는 가장 큰 노출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프로그램 자체가 인기가 많기도 했었고요. 당시에 프로그램에 함께하게 된 과정이라든지, 아니면 하고 나서 이후 활동에 도움이 됐다든가 여러 가지 해주실 만한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남자의 자격>은 그때 매니지먼트가 붙어서 함께 할 때였는데요. 그때는 아무래도 뭔가 홍보의 수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죠. 근데 오디션을 제가 스스로 봐야 하고, 또 오디션을 보면 뒷거래가 전혀 있을 수가 없는 게 일단 박칼린 선생님과 지금은 <응답하라 1994>와 <응답하라 1997>을 만든 신원호 PD님이 진행하시면서 항상 강조하시던 게 “이 프로젝트에서는 촬영하는 도중에 너희 스스로 개인 PR 절대 하지 마라. 이건 무조건 합창 연습하는 거고, 그걸 위해서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카메라 앞에서 돋보이려고 하는 식으로 노력하지 마라.”였어요. 근데 사실 (합창단원들이) 다 그 걸 노리고 있는 친구들이었죠. 저 같은 경우에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이긴 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런 걸 잘 못 하기 때문에… 친구들끼리라든지, 소소하게 지인들이랑 모여 있을 때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그런 건 좋아하는데, 뭔가 TV 앞에서 하는 건 잘 못 해요. 그때 같이 했던 멤버 중에 <섹션TV연예통신> 했던 박슬기 씨, 그 친구가 하는 것처럼 저는 절대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 진짜 열심히 합창만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저는 사실 합창단이니까 못 붙을 줄 알았어요. 성악 같은 걸 잘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어렸을 때 성가대 같은 걸 한 적이 있긴 했어도 성악적으로 본격적으로 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근데 심지어 그때 오디션에서 윤미래 씨의 “시간이 흐른 뒤(As Time Goes By)”를 불렀거든요. 그래서 안 붙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또 붙게 됐고, 녹화를 들어갔고, 하루에 5, 6시간씩 파트 나눠서 연습하고… 매니저들은 아예 근처에도 못 오게 했었어요. 데리러만 오시고, 일 보러 다니시라고… 저희가 MT를 가거나 거제도에 합창단 대회를 갔을 때도 (PD님이 매니저 분들 보고) 절대 따라오지 말라고, 차 대절해서 갈 거고, 갔다 오면 알아서 픽업하라고 하시고…  진짜 그냥 합. 창. 단. 아무것도 없어요. 알토면 알토 연습이고 그런 거죠. 카메라만 있는 것뿐이지, 거기서는 진짜 저희끼리 연습하고, 얘기해봤자 딱 그런 거였어요. 예를 들면, 아이폰녀로 유명했었던, 지금은 일본에서 음반 활동 열심히 하고 있는 김여희라는 친구도 같이 있었어요. 근데 그때 합창단에 저나 그 친구처럼 다들 노래를 한창하고, 막 소속사에 들어가서 앨범이 나온 초기 이등병들이 많았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 딱 할만한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고 그랬었어요. 회사 관련된 부분이나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거죠. 근데 녹화 자체는 온전히 합창단 연습 중심으로 갔던 거기 때문에 저희 율동 배울 때도 그 율동 배우는 데에만 집중하느라 아무 생각이 없고 그랬어요. 밥 먹는 것도 어떤 PR 없이 정말 밥만 열심히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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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다행인 건 PD님이 그 송년의 밤 기회를 주신 거예요. 저는 생각도 안 했어요. 심지어 저는 친할아버지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이었거든요. 그날 송년의 밤 녹화가 밤 10시에 시작했었는데, 저는 대전에서 장례식 치르고 올라와서 밤 8시 메이크업하고 갔던 거라서 엄청 피곤해 있었거든요. 심지어 저 못 갈 수도 있다고 했는데, PD님이랑 작가님이 꼭 오라고, 무조건 와야 한다고 그러셔서… 오히려 저는 감사했던 게 제가 서인국 씨처럼 방송 활동을 했던 것도 아니고, 박슬기 씨처럼 TV에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닌데도 진짜 신기하게 작가님들이랑 PD님이 엄청 잘 챙겨 주셨었어요. 노래도 해야 한다는데, 저는 안 하려고 그랬었거든요. “저 오늘 듣기만 할 거예요.”라고 했는데, (방송에) 많이 내줄 테니까 꼭 하라고 하셔서 했었죠. 그렇게 하게 됐으니까 그래도 이왕 할 거면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고 아는 걸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그 송년의 밤 행사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었거든요. 그 해에 <남자의 자격>에 나왔던 모든 출연자가 와계셨던 거기 때문에 그냥저냥 하는 노래를 들려드릴 수는 없었어요. 그런 자리가 자리인 만큼 좋은 곡을 해야겠다 싶어서 노래를 제대로 했더니 피곤함에 찌든 채로 얼굴이 빵 터지는 결과가 나왔었는데… 아무튼, 그 노래 경연 대회에서 저는 심지어 뽑히지도 않았었어요. 그랬더니 PD님이랑 작가님들이 “왜 안 뽑혔지? 왜지?” 막 그렇게 걱정하실 정도로… 근데 나중에는 경품 추첨해서 내비게이션 하나 받긴 했는데… (전원 웃음) 나중에 PD님이 끝나고 잘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너 분량 많이 나오게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리고 저희는 오히려 대회 끝나고 오는 길에 거제도에서 진짜 식겁하게 회식을 했었는데요. 그때 너무 웃겼던 게 제가 버스 맨 뒷자리에서 신원호 PD님이랑 앉아서 “음악이라는 게요…”라고 하면서… (전원 웃음) 진지한 얘기를 드렸던 게 생각이 나요. 그때 PD님이 경청해주셨었어요. 그러고 나서 그 후에도 앨범 나오고 공연할 때도 가끔 카카오스토리로 댓글 달거나 문자 돌리거나 인사드리기도 하고요. <응답하라 1997> 보고서 너무 좋아서 “PD님 너무 좋아요.” 막 이러고… 링거 꽂고 엄청 힘들게 촬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얘기 하면 PD님이 “보니야, 너도 빨리 멋있게 더 떠서 내 옆에 짜잔하고 나타나야지.”하시는데, 그러면 저는 “아유, 그냥 공연 와서 들으세요. 뭘 짜잔하고 나타나요.” 이러고… (전원 웃음) 그때 그 계기로 제가 주로 있지 않은 영역에 있는 친구들하고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항상 얘기하고 보면, 그런 연예계 쪽 친구들에게 저는 뚝심 있게 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 것에 이어서 앞으로 저의 행보를 그런 식으로 이어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어요. (그 친구들이) 기대에 부푼 눈빛으로 쳐다보고, 항상 물어보고 했어서 제가 진짜 그런 존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친구들 눈에는 소속사의 관계 속에서 강압적으로가 아닌 자의로 편하게 음악 활동을 하고, 방송 활동도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아니면 안 하는 식으로 얘기가 통하는 회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해 보였나 봐요. 부러워하기도 했었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그렇게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쯤 알게 된 인연의 친구들은 지금까지 그때만큼의 끈끈함을 유지한 채로 연락하지는 못하지만, 간간이 좋아요가 눌러진다든지 그런 걸 보면 서로 멀리서라도 보면서 ‘잘 지내는구나.’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아요. 아무튼,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크게 뭔가를 바꿔놓지는 않았지만, 그때만큼은 좋은 추억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항상 인터뷰 때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좋은 PD님도 알게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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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신 다음에 2010년이 지나, 2011년부터 싱글 위주로 활동을 이어가시잖아요. “By My Side”, “아파”, “The First Noel”, “27살”이라는 노래도 있었어요. 활동의 방식이 바뀌었는데, 아까도 말씀해주셨지만 그 기간에 활동반경이 바뀐 이유를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딱 이렇게 리스트로 정리해서 들어보니 느껴지는 게… 싱글을 내는 중에는 앞으로, 다음 앨범에는 어떤 음악을 해야 할까, 어떤 보컬을 담아야 할까 그런 걱정이 있었어요. 저는 정말 타이트하게 기초를 쌓아 올라온 보컬이었고, 이런 쪽도, 저런 쪽도 잘하고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회사 측면에서나 저 스스로도 앞으로 어떤 포인트를 확실하게 제시하지 않으면 계속 흐지부지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전까지는 저는 음악적으로 작곡이나 작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 시기에 곡을 받으면 받는 대로 나왔던 게 앞서 말씀해주신 싱글들이었죠. 그래도 너무 활동을 쉬거나 아예 딱 끊어버리면 너무 순식간에 제가 있던 사람에서 없던 사람으로 되어버리니까 싱글이라도 꾸준히 내자는 생각에 나오다가…



그러고 보니 [Love]에서 첫 작곡을 한 게 아니었네요. “27살”에서 첫 작곡을 했네요. 27살이 되면서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그 곡을 통해 정리했던 것 같아요. 가사 중에 “더 지혜로워지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거야”라는 구절이 저한테는 주문이었던 거죠. 스스로에 대한 소망이기도 하고… 그동안 너무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는 내용이 가사 안에 있는데, 싱글만 냈던 시간이 보니로서는 어두운 터널을 계속해서 지나오던 시간이었어요. 그 터널을 빠져나온 것도 “27살”이라는 곡을 낼 때가 아닌 그 이후로 시간이 좀 많이 지나서였어요. 왜냐하면, 그 곡을 내고서 형돈이와 대준이 것도 하고, 데프콘 오빠 것도 하면서 저 스스로 위축되어 있던 시간을 그런 다른 대외적인 활동을 통해서 보여지고 풀어지게끔 했었거든요. 확실한 건, (그 시기의) 싱글들은 제 어둠의 시기를 고스란히 보여준 작업이었다는 거죠.






LE: “27살”을 빼놓고 2013년에는 거의 활동이 없으셨던 걸로 기억해요. IPT, 샛별 씨와 함께했던 싱글이 있었고, [Behind The Scenes]에 참여한 정도인데, 질문지를 짜면서 대략 예상해봤던 게 아마 그 시기부터 보컬 레슨 같은 걸 하시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쉬는 시기에 시작하긴 했는데,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흑인음악을 좋아해서 배우고 싶어 했던 2, 3명을 레슨했었어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많이 도움되었던 것 같아요. 23살 때부터 교회에서 어린 친구들 가르치면서 점점 가르치는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달라지더라고요. 가르치면서 해줬던 이야기들이 나이를 먹고 음악적인 정체성에 혼란이 오면서 되게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예전에는 보컬리스트로서 지켜야 할 부분에 대해서 엄격하게 지키게끔 하고, 저 스스로도 그랬거든요. 또, 그걸 (학생들에게) 몰아부쳤던 반면에, 지금은 그 생각을 많이 해요. 제가 “잠시 길을 잃다” 때나 첫 번째, 두 번째 앨범을 낼 때 들었던 이야기였는데요. 항상 저 스스로 깨고 싶었던 미션이기도 했어요. 뭐냐하면, 보니는 노래는 참 잘하는데 뭐가 안 온대요. 뭔가 찡한 그런 게 없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되게 많이 들었어요.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죠. 당연히 모르죠. “그게 뭔데?!” (웃음) 하면서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 나중에는 그 얘기를 두, 세 번 그 이상으로 들으니까 ‘진짜 뭐가 문제이긴 한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항상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아버지가 음악적 활동을 지지하심과 동시에 특히나 굉장히 엄하셔서 “너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돼. 최고가 되지 않으면 안 돼. 그럴 거 아니면 말도 꺼내지 마.”라고 하신 적도 있고요. 데모 녹음을 할 때도 테이프를 집어던지시면서 “이따위로 할 거면 하지 마! 나가!” 그러셨거든요. 그러다 보니 음악에 강박감이 생겼고, 저도 모르는 새에 ‘노래는 완벽해야 해.’라는 생각이 생긴 거죠. 누가 들어도, 심지어 십년지기 친한 친구의 친동생도 “보니 언니 노래는 진짜 좋긴 한데, MP3에 넣고 오래 듣게 되지는 않아.”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첫 번째 앨범이 나오고 나서 자기 동생이 그런 얘길 해줬다고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럴 수밖에.”라고 말했어요. (웃음) 왜냐하면, 지금 제가 제 (예전) 음악을 들어도 그냥 완벽해지려고만 노력해서 노트 하나하나에 집착하고, 그루브나 소울이 느껴지지 않거든요. 물론, 제 발자취이고, 다 의미 있고 좋은 곡인 건 분명하지만요. 동경하던 흑인음악의 자유로움, 푹 빠져 취해서 부르는 걸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그냥 따라 하고 커버하면서 완벽함만을 추구했던 거죠.






LE: 그런 것들을 처음에는 레슨생들에게 얘기하셨던 거죠?


그렇죠. 완벽해야 해. 커피 마시지 마. 술 마시지 마. 담배 피우지 마. 물은 생수만 마셔. 꼬박꼬박 운동해. (웃음) 제가 배우고 했던 그대로, 아버지로부터 교육받았던 그대로를 아이들에게 주입했었죠. 근데 어느 순간부터 이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게 싱글이 많이 나오고 그랬던 시기였죠. ’내가 잘하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한 거죠. 제 노래 중에 좋은 노래도 많았지만, 제 생각에 ‘아직도 멀었네.’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끔 해준 노래도 있었어요. 가르치면서 나중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했죠. (웃음) 예전에 가르쳤던 친구들한테도 연락해서 다 얘기해줬어요. “그때는 그렇게 얘기했는데, 음악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기술적인 것만 가르치려고 했었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음악 해. 좋아하는 것 하고, 앞으로 그런 거 너무 신경 쓰지 마”라고 했었죠. 근데 자기네들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지금은 (성격이)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사실 성격도 부모를 닮는다고 하잖아요. 아버지를 닮아서 시시비비에 대한 명확한 선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음악을 하기에는 그 선들이 방해가 됐던 것 같아요. 노래를 하고,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쓰는 거에 있어서 말이죠. 그래서 1집을 만드는 데 되게 오래 걸렸어요. 10년 가까이 음악 생활을 하면서 잡혀 있던 뭔가를 다 깨부숴야 했기 때문에 오래 걸렸고요. 싱글은 어쩔 수 없이 꾸준히 나왔어야만 했고요. 그러다 풀어졌던 게 IPT 작업하면서였던 것 같아요. 이보(Evo) 오빠 거라든지, 다른 아티스트와의 작업을 하면서부터 듣는 이야기들이 있었죠. “보니 씨, 그전에는 다가갈 수 없는 아티스트의 느낌이었는데, 막상 같이 작업해보니 굉장히 털털하시네요.”라든지… (웃음)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제 맘이 열리기도 했죠. 예를 들면, 샛별 언니 같은 경우에는 원래 알고만 있는 채로 ‘언니 노래 잘한다, 좋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남자 래퍼들이나 보컬들은 두루두루 아는데, 막상 여자들은 서로 잘 모르더라고요. 저도 좀 제 집 밖으로 잘 안 나가는 그런 게 있어서 잘 몰랐다가 피처링 부탁하고 하면서 친해졌죠. 점점 음악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방금까지 쭉 얘기했던 회의감이나 부족하다 느꼈던 부분을 열고 얘기하니까 오히려 그때부터 작업이 수월하게 되더라고요. 마음의 병이 치유되니까 그때부터 작업하고 가사를 쓰고 하는 거에 대해서 벽이 많이 허물어졌었죠. 그래서 되게 신기했어요. 시기들이 하나같이 완전 필요했던 시기들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활동했던 시기도, 터널을 지났던 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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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보컬 레슨하시는 분들 중에 그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더라고요. 당시 보컬 풍에 있어서 특정 시기에 어떤 유행이 있다고. 그런 유행이 불 때, 특별히 지적해주시는 부분이 있다거나 레슨생들에게 유의사항으로 알려주시는 부분이 있을까 궁금해요.


저는 항상 “나는 너의 음악을 터치할 생각이 없어.”라고 얘기해요. 호흡, 발성, 목을 좋게 쓰는 방법 같은 부분에 있어 도움을 줄 뿐이지, 그 이후에 음악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에 관해서는 자문만 구하라고 해요. 대신 스스로 찾으라고 해요. 저는 그러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제 음악을 찾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보통 자기가 좋아하는 걸 처음에 시작해서 그 음악으로 앨범을 내고 쭉 해나가야 하잖아요. 근데 우리나라는 너무 많이 휘둘리는 것 같아요. 하나의 유행이 있으면 거기에 막 몰리는 경향이 있어요. 이래서는 음악 씬이 활발하게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음악의 폭이 좁아지면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저도 처음부터 흑인음악만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여러 음악을 좋아하면서 그중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음악이 흑인음악인 걸 아는 게 되게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요. 근데 어린 나이에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고 얘기하는 건 도를 지나치는 가르침인 것 같고요. 저는 그럴 때마다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스스로 그리라고 얘기해요. 제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에요. 어떤 식의 보컬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고, 구체적인 그림을 세워놓지 않으면 그냥저냥 아무것도 아닌 보컬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해요. 대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거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너는 락 음악에 어울리지, 흑인음악은 못해. 안 어울려.” 이렇게 얘기하신 적이 있었어요. 제가 저음역의 소리를 내면 정말 역겹다는 소리까지 하셨는데, 그런 거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자기가 내고 싶은 소리를 어떤 사람은 좋아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싫어할 수도 있는 거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다고 해도 너무 거기에 연연하지 말되,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 너무 내가 좋아하는 것만 좇다가 아예 아무것도 안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땐 직접적으로 얘기를 해줘야죠. 선생님이니까요.


그리고 저한테는 보통 흑인음악의 리듬, 소리, 이런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 저에게 배우러 오는 편이에요. 입시생도 절대 안 받아요. 걱정해줘야 하고, 학교에 따라 가르쳐줘야 하고 그런 건 제가 생각하거나 했던 음악과 전혀 다른 길이기 때문에 입시 준비는 안 받는다고 하죠. 대신 곡을 선정하는 것에 있어 도움은 드릴 수 있는데, 그거에 맞춰서 교육을 하거나 레슨을 하진 않으니까 그렇게 알고 오라고 얘기해요. 저에게 배운 친구들이 제가 했던 것처럼 오래 걸릴 수는 있는데, 그래도 음악을 옳게 가르쳤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쪽의 편견으로만 음악을 하지 않게끔 해주고 싶어요. 락 하는 것도 좋고 다 좋아요. 대신 멋지게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강조하죠. “말하듯이 노래를 해봐.” 이런 조언은 그런 걸 좀 해봐야 하는 애들, 너무 노래하듯이만 불러서 자기 노래에 끌려가는 친구들에게 하는 조치죠. 중화시켜 주는 것, 그런 팁은 주는데 강하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지는 않는 편이에요.






LE: 앞서 레슨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이 바뀐 것과 이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레슨에서의 엄격함이 풀어진 만큼 보니 씨의 음악에서도 그런 지점들을 찾아볼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작년에 나왔던 “미안해서 그래”는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요? 저희 윅엘이(WeekLE)에 수록된 글에서도 ‘노래 속 상황이라든가, 그 상황 속 주인공들의 감정이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라는 표현이 있었거든요. 박제된 이미지가 아니라 정말 있을법한 상황이라 더 확실하게 다가왔던 것 같은데요. 말씀해주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숙성되어서 나온 노래 같아요.


맞아요. 그때 녹음했을 때도, 녹음하면서 푹 빠져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질질 짜면서 녹음을 했어요. (웃음) 두루마리 휴지 가지고 들어가서… 벌스 부분을 되게 좋아하는 게 제이 크라이(Jay Cry) 오빠 가사가 되게 현실적이고, 진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편이에요. 제가 그동안 노래하듯이 가사를 읊었다면 “미안해서 그래”는 짧게 말하듯이 얘기하려고 했어요. 그게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좋은 것 같아요. 그 이전까지의 보컬 방식과는 좀 더 다르게, 많이 내려놓고 힘을 빼고, 그렇게 하다 보니 뒷부분에서도 집중이 되고, 기승전결도 더 좋아졌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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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번 앨범은 방금 언급해주신 제이 크라이 씨와 많이 작업을 하셨는데요. 일단 앨범이 나온 지가 좀 되었지만,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Love]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앨범이고요. 정말 1번부터 12번 트랙까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도 안 빼놓고 얘기한 앨범인데요. 처음에는 ‘Love’라는 타이틀이 진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상적이고, 많은 사람이 노래하고, 보편적이고 흔한 타이틀이라서 꺼려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Woman’이라는 컨셉을 잡았다가 노래를 쓰면서 제가 쓰고 부르려고 했던 것들이 다 사랑과 일맥상통하고 있어서, 결국 제가 ‘Love’로 하자고 얘기를 했어요. 기술적으로는 그동안 보컬에 있어서 집어넣었던 힘을 굉장히 많이 뺐죠. 특히, 화지의 곡 중 하나를 가져온 “똥차라도 괜찮아”에서는 그루브하고 편안한 보컬을 집어넣으면서 진짜 똥차 안에서 달리면서 그냥 창문 내리고 듣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LE: “똥차라도 괜찮아”도 아까 그 느낌이 딱 있는 것 같아요. 그림이 그려지는 생동감.


네. “밀당”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되게 오바스럽게 했었어요. 근데 다들 얘기하던, 저도 녹음해놓고도 이상한 부분이 있었어요. 밀당인데 오바스러우면 웃기잖아요. 밀당이 싫다고 얘기하는데, 오바떠는 게 좀 웃긴 거죠. 그래서 힘을 많이 빼고 했고, 그런 식의 트랙이 많아졌죠. “Strawberry”라든지, “밀당”, “똥차라도 괜찮아”, “With You”, “글쎄” 등 제가 편안하게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던 욕심이 (앨범에) 고스란히 들어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나는 보컬리스트야!’라고 대놓고 PR하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난 그런 것도 잘하고 이런 것도 잘해’와 같은 말년병장의 포스를 이 안에 담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전 앨범들도 중요했고, 특히 [1990] 앨범으로는 한국대중음악상 상도 받았지만, 사실 저에게는 되게 무거운 상이었어요. 그 상은 오히려 저보다는 엠브리카 오빠가 받아야 할 것 같은 그런 마음도 있었고요. 회사 식구들은 위로 차원에서 “어쨌든 너가 노래를 했으니까 상은 받아야지.”라고 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더 욕심이 났던 거죠. 그 상을 받아서 더 뿌듯해지고 싶었고, 또 가볍게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그 상이 정말 무겁기도 한데… (웃음) 정말 무겁거든요. 근데 그걸 다음에 받을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받고 싶어요). 앞에 나가서 받고 소감 얘기하잖아요, 그때는 (소감이) 되게 짜여 있었던 거예요.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다음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들로 채운 소감을 얘기하고 싶고, 그래서 그럴만한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여기 들어가 있죠. (상을 받은) 이후로는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었어요. 아까 네오소울도 얘기했지만, 에리카 바두(Erykah Badu)가 했던 어쿠스틱함도 좋아하거든요. 최근에 단독공연을 준비하면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는 풀 세션 밴드와 합주 연습도 엄청 하고, 편곡을 엄청 해서 거대한 느낌을 소극장에서 최대한 노력해서 보여주는 듯한… (웃음) 그런 식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얼마 전 공연에서는 너무 자유롭고 싶은 거예요. 노래에 대한 강박도 그렇고, 멘트를 중간중간 했을 때도 그렇고… 제가 A형에 처녀자리거든요 (웃음) 멘트를 다 짜요. 써요. 그걸 외워요. 그렇게 하면 사실 다 티 나죠. 근데 전 몰랐죠. 제가 그렇게 어색할지 몰랐어요 사실. (웃음) 화이트데이 공연 때도 그랬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세션 다 없애고, 영소울이랑 중간중간에 쉬는 동안 만나서 춤을 배웠던 허니제이(Honey J)라는 친구랑 같이 하면서 공연을 준비했어요.


그런 것도 생겼어요. 이제는 전혀 부담감이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곡을) 썼고, 그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제이 크라이 오빠한테 받은 곡이어도 제가 애정을 담았고, 부스 안에서만큼은 제 곡이라는 생각으로 빠지려고 했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멘트를 하거나 노래를 해석할 때도 너무 편한 거죠. 그래서 그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공연이 어떻게 될까 하는 설렘도 있었고, 제가 편해진 만큼 절 보는 관객분들도 편해야 할 텐데 싶기도 했어요. 근데 다행히 그랬더라고요. 보는 분들이 이전에 세션이 있는 화려한 공연보다도 보니가 되게 편해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얘기도 듣고… 예전에는 항상 멘트를 짜다 보니까 공연 시간이 되게 남아서 피아노 치는 언니가 “더 해. 더 해” 그랬는데, 이번에는 공연 시간을 오버했어요. “집에 못 갈 뻔했어요.”라고 얘기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오히려 더 좋았고… 이 앨범은 그런 것들이 전반적으로 크게 담겨 있는 앨범이 아닌가 싶어요.






LE: 이제는 다른 사람의 곡이든 아니든 간에 다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랄까요? 혹은 부담을 많이 내려놓고 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번 앨범 작사의 경우에는 본인 말고도 제이 크라이 씨도 하시고, 그레이스 신 씨도 하셨는데, 본인이 쓴 가사를 부를 때의 느낌과 다른 사람이 작사한 걸 부를 때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요. 아니면 어떤 걸 선호한다든지 그런 게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가사 같은 경우에는 살리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확실한 건 사람에 따라 많이 다르다는 걸 엄청 느껴요. 제 작업뿐만 아니라 스윗 노래를 작업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스윗은 요즘 자기가 곡 쓰고 혼자 녹음하고 그런 걸 되게 많이 하고 있는데요. 신기한 게 보컬리스트들이 곡을 직접 써서 노래를 하면 음성적으로 쓰이는 발음이라든지 어감 자체가 되게 부드러워요. 자이언티 씨나 크러쉬 씨가 그런 걸 되게 잘하시는 것 같아요. (보컬리스트의 곡에는) 자기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느낌이 되게 많이 녹아있기는 해요. 예전에도 노래하는 사람이 직접 곡을 쓰면 그 곡은 자기가 제일 잘한다고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어요. ‘어떻게 그게 더 잘 나와? 다 똑같은 거 아냐? 노래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죠. (웃음) 근데 정말 다르더라고요. 제가 곡을 쓰다 보니 도전적인 것도 할 수 있게 되고, 불러봤다가 좀 아니면 바로 수정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편했어요. 집에서 가이드하고, (스튜디오) 와서 후딱 두 시간 만에 본 녹음 끝내고… 그러다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부터 해서 제가 한 곡의 스토리를 만들어낼 때 저의 그 모든 게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해석 능력 자체가 다르겠죠. 근데 제이 크라이 오빠의 가사는 보컬리스트로서 쓰인 게 아니잖아요. 예전에는 서로에 대한 융통성이 없었어요. 그냥 오빠가 곡을 쓰면 바로 녹음에 들어간 거죠. 가이드를 하건, 뭘 하건 말이에요. 이제는 오빠가 먼저 저를 불러서 “여기 한 번 불러봐. 소리가 어떤 느낌이 나?” 이런 식으로 먼저 물어봐요. [Love]를 만들 때는 정말 의사소통을 많이 했어요. 바로 옆 방을 쓰니까 오빠가 작업할 때는 무조건 제가 그 방에 들어가서 “내가 한 번 그거 불러볼까?”, “음이 너무 높으면 이상할 수 있으니까 이 키로 불러볼까?”, “한 키 내려보자.” 이런 식이었죠. 그 자리에서 불러보고 하다 보니 제게 더 많이 붙은 거죠. 가사가 너무 현실적이라서 때로는 어색한 감이 있어요. 그렇게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어서 이 노래하고는 안 붙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하거나 생각해놓은 게 있으면 바로 꺼내놓고 고치고 그랬어요.



그레이스 신 같은 경우에는 그 친구가 교포인가 그럴 텐데, 그런데도 영어로 생활하고 자라온 대신에 집에서는 꼬박꼬박 어머니와 한국어로 대화하고 일기를 한글로 썼대요. 게다가 그 친구는 보컬이기도 하니까 그 친구가 써놓은 가사와 멜로디가 되게 잘 어우러져서 들어보면 소녀적인 그 감성, 고백하기 직전의 두려움, 설렘, 기대감 같은 게 곡에 잘 녹아있는 거 같아요. 그레이스 신이 원래는 학교 친구하고 밴드로 녹음했던, 자기가 노래한 버전으로 가져왔었는데, 제가 부탁을 했죠. 곡이 너무 좋은데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는데, 굉장히 흔쾌하게 “네! 언니! 하세요! 언니 드릴게요!”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항상 코러스 해주는 친구가 피아노 전공으로 들어왔는데, 그 친구가 (피아노를) 녹음해주고, 워낙 편한 환경에서 같이 작업해서 좋았어요. 또, 노래마다 곡을 쓰는 사람과의 상관관계 없이 제가 많이 주도하고 해서 대부분은 딱 들어도 보내 노래 같고, 한결같은 게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하나하나가 멋있다거나 좋다거나 이런 게 아니고 전반적으로 [Love]라는 앨범이 주는 무드가 하나로 나타났다고 얘기를 많이 해주셨거든요. 제가 예상했고, 기대했던 반응과 같았어요. ‘진짜 멋있어.’보다 열두 곡이 어우러지면서 전체적으로 좋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LE: 어쨌든 타이틀곡은 있잖아요. 뮤직비디오가 참 아름답더라고요. 뮤직비디오 안에서 연기도 많이 하셨는데, 힘들진 않으셨는지 궁금해요.


일단 모든 것이 한 장소에서 진행되었다는 점. (웃음) 엄청 떨었어요. 긴장도 엄청 많이 하고요. 예전에 뮤직비디오 찍은 건… 본격적으로 찍은 건 “아파”, “노토리어스 걸 (N.G.)” 정도? 립싱크만 찍는 건 감정 잡고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쉬운 편인데, 이번에는 (지금 인플래닛에서 일하는) 강연정 팀장이 정말 일을 크게 벌여 놓은 거예요. 처음에는 자기들끼리 미팅을 다 해서 시안을 저한테 보내줬어요. “그러니까 내가 연기를 해야 하는 거네?...”라고 했더니 “응. 너만 잘하면 돼”라고… (웃음) 그래서 처음에는 어떻게 하지 싶더라고요. 연기를 배워본 적도 없고… 멘붕이 왔어요. “나 내일 어떡해?”하면서 막 긴장하다가 어쨌든 노래를 할 때도 노래를 하기 위해 감정을 잡고 스토리라인을 제 것으로 만들잖아요. 그걸 표현하는 거로 생각하고 (촬영장에) 갔는데, 막상 다행인 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감독님께서 칭찬을 계속 해주시는 거예요. “잘하는데요?”라고 하시면 “그래요? 더 할까요?” 이러고… (웃음) 술을 좀 마시고 해야 하나, 이성적인 끈을 놓아야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메이크업하고 의상을 입으니까 기분이 점점 바뀌더라고요. ‘하면서 배우는 거니까 잘 못 하면 리드해주시겠지.’ 생각하고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걸 하기 전에는 미치겠어서, 심장 튀어나올 것 같아서 “저 못해도 이해해 주실 거죠?” 그랬는데, 오히려 감독님이 정말 의외로 잘한다고… 어쨌든 제가 (영상 쪽으로는) 해 놓은 게 많이는 없잖아요. 근데 찍으면서 감독님이 자기 예상보다 엄청 빨리 집중하고 촬영이 잘 진행되어서 다행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재미있었어요. 비욘세가 자신을 비욘세와 사샤 피어스(Sasha Fierce)라는 두 개의 자아로 나누잖아요. 저도 그런 분리를 느꼈던 것 같아요. 좋은 언니, 털털한 언니, 성격 좋은 선생님 그런 정도의 포지션에서 저를 잡고 있다가 노래를 하거나 무대를 올라가거나 촬영을 할 때는 확 바뀌는 거죠. 스스로도 용기 내서 다가가자고 생각했고요. 아직도 보고 있으면 부끄러워요. “내가 미쳤지…” 촬영장에 되게 친한 ‘남사친’이 와있었는데, “이 새끼야.” 이러고 대화하다가 남사스럽게 끼라는 끼는 다 부리고 있으니까 “으이그, 너도 여자긴 여자네.”라고 하더라고요.





LE: “One In A Million”은 곡도 그렇고, 뮤직비디오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2000년대 초, 중반에 여성 솔로 아티스트가 할 법한 거라고 생각이 들었는데요. 참조한 게 있는지 궁금해요.


2000년대 초반에 리오나 루이스(Leona Lewis)의 “Bleeding Love” 같은 시원하고 상쾌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One In A Million” 들으면 드럼 셋 자체도 킥 소리라든지, 그런 것들이 시원하잖아요. 영상미도 그렇고, 밝고 대찬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사실 그동안 제 노래 중에는 맑고, 밝고 이런 이미지보다는 슬프고, 락킹하고 그런 것만 있었잖아요. 뭔가에 잡혀 있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이번 곡에선 제 성격을 그대로 나타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앨범은 나 그대로였으면 좋겠다고 제이 크라이 오빠, 영소울, 화지한테도 들려주면서 얘기했어요. “이건 나 그대로야. 어떤 것도 덧붙이거나 덜어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나.”라고… 이 곡도 처음에는 (제이 크라이) 오빠가 걱정을 하더라고요. 자기가 상상한 만큼 그런 모양이 나올까 엄청 고민하더라고요. 불안하다고 하길래 “뭘 불안해. 그냥 하면 되지.” “아니면 안 하면 되지. 오빠 노래잖아.’라고 하면서 했는데, (웃음) 그냥 저 그대로의 모습이 나온 것 같아요. 어쨌든 2000년대 초반의 팝, 시원함, 디바스러운 상쾌함이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그게 그대로 나온 것 같아요.






LE: 다른 트랙을 이야기해보면 역시 “잠시 길을 잃다 Part 2”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원곡이 인기가 많았고, 말씀하셨듯이 금지곡이 되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불렀으니까 속편을 만드는 게 부담이 될 법도 해요.


그렇죠. 속편은 무조건 원작보다는 재미없다는 그런… (웃음) 기획 의도에 속편이라는 생각이 없었다면 그건 뻥이고요. “잠시 길을 잃다”라는 곡을 통해 신보경이 알려졌고, 아직도 신보경과 보니가 동일 인물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대중분들이) 두 이미지를 합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기가 없었잖아요. “잠시 길을 잃다”를 부른 사람이 저라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거였으니까요. 저한테는 리버스(rebirth)의 의미도 있어요. 그 곡을 통해 제가 처음 본격적으로 녹음을 해봤고, 공식적으로 제 이름을 세상에 알렸던 거잖아요. 또, [Love]라는 앨범은 저에게 또 다른 시작이자 다시 태어났다는 시점이고요. 지금의 시점에서 (파트 2를 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속편이라는 기획 의도가 껄끄러웠어요.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고 싶었어요. <EBS 스페이스 공감> 나갔을 때도 얘기하고 공연 때도 얘기했지만, “잠시 길을 잃다”라는 곡이 어찌 보면 정말 잠시 길을 잃게 만들었을 수도 있는데, [Love]를 통해 결국 보니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LE: 알앤비 음악에서는 섹스를 주제로 한 노래들이 되게 많잖아요. 한국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제약도 좀 있는 것 같아요. “위험해”에서 같이 노래하신 샛별 씨도 도발적인 곡들을 더러 발표하신 분이신데요. 보니 씨도 특별히 그런 부분에 욕심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언니는 외적으로도 도발적인… (웃음) 그래서 했던 게 “Strawberry”라는 곡인데, 웃긴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킥앤스냅(kick&snap)이랑 그 곡으로 영상을 찍은 적이 있었는데, 그 영상에 가사가 너무 유치하다는 댓글이 달린 거예요. ‘속뜻을 모르시는구나. 너무 어리신 분이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었죠. (웃음) 비욘세가 로켓, 워터폴에 비유했던 것처럼 저도 달달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달달한데, (웃음) 되게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 거죠. 근데 누가 댓글로 “알앤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알앤비는 비유에 능통한 장르입니다.”라고 적었는데, 너무 드러내놓고 하는 것들이야 다들 잘하시잖아요. 박재범(Jay Park) 씨도 잘하시고요. “몸매”도 그렇고, “My Last”도 그렇고… 그런 거에 너무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걸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섹스 뮤직만 많이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재즈민 설리반(Jazmine Sullivan)도 있고, 페이스 에반스(Faith Evans)도 있고… 어반 알앤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슬로우잼 넘버들은 오히려 “Strawberry”에서 하는 식이었죠. 앨범 표지만 봐도 아시겠지만, 섹시한 느낌보다는 앨범으로 다양한 사랑의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게 표현되려면 제 욕심에 따라서, 음란마귀가 인도하심에 따라 그렇게 표현하면 되는 거고요. “Strawberry”에서는 가볍게 표현하는 식이었죠. 정규 앨범이고, 나를 드러내고 싶음과 동시에 이 곡을 컨셉추얼한 곡으로 정의하면서 빼진 않았으니 직접적으로 많이 드러나진 않았죠. 아무튼, 다들 잘못 알아듣더라고요. 다들 그냥 딸기랑 휘핑크림으로만 생각하고, 어떤 여학생도 “선생님, 저는 휘핑크림 할래요!”라고 해서 “어, 그건 안돼요.”라고 했던 적도 있어요. 어제도 갑자기 와서 “선생님, 그거 속뜻이 뭐에요?” 눈을 반짝이면서 묻더라고요. 다 알려줬어요. 고1인데… (웃음) “그래. 너도 알 건 알아야지. 사실 이런 거야.”라고 하면서…






LE: 1집 얘기까지 길게 얘기해봤는데, 몇 가지 질문을 더 드리려고 해요.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되게 많이 올리시더라고요. 보니 씨 앨범 자켓을 봐도 항상 보니 씨 얼굴이 들어가 있고… 그래서 본인이… 많이 드러나길 좋아하시는지? 그런 질문인 것 같아요.


그런 질문인 것 같은 건 뭐에요! (전원 웃음) 자켓 컨셉은 순전히 제가 정한 건 아니고요. 142 대표님께서 아트워크를 꼭 이렇게 시안을 해놓으세요. [Nu One]도 제 옆 모습, [1990]도 클로즈업, 정규 앨범은 전신, 심지어 싱글 커버도 그렇죠. 회사 식구들도 여성 솔로 알앤비 가수 앨범이라고 생각했을 때, 무조건 드러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도 자기가 안 나온 커버가 없잖아요. 그런 것처럼 항상 앞에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셀카 요새는 잘 안 찍게 돼요. 요샌 인스타그램도 다른 사람 위주로 찍고 그러는데, 오히려 제가 안 올리면 주변에서 “셀카 좀 올려라.”라고 해요. 그렇게 해서 찍는 경우가 많고요. 이제는 노래를 녹음해서 올리라는 얘기도 들어서 알았다고 하죠. 모든 인스타그램 활동이 지겨워져서 눈팅만 하고 있어요. 근데 사람들은 저를 보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에 오는 거니까… 한 번은 통계를 낸 적 있어요. 제가 그냥 남들을 찍거나 어떤 모습을 찍고, 고양이를 찍고 그럴 때 올라가는 좋아요 수가 저를 찍은 것과 다르더라고요. 저를 제 3자가 찍은 것과 셀카의 좋아요 수도 달라요. 그걸 보고 확실한 게 사람들이 멋진 사진, 예쁜 사진을 제일 우선으로 선호한다는 사실이었죠. 회사 측에서도 “어쨌든 사람들이 많이 보고 눈길이 가려면 네 사진을 올리면서 공연 이야기를 한다든지 그런 식으로 홍보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본다. 본능적인 거고, 어쩔 수 없는 거다.”라고 해서요. 그래서 고양이 사진 올리는 계정도 따로 팠어요. 주변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저를 혼냈어요. 고양이 사진 올리지 말라면서…






LE: 그런 면모를 보면 TV라든가 미디어 같은 데 출연하는 것도 거리낌 없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또 그렇지 않아요. 그런 것들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괴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요.


근데 미국 애들이라고 해서 그런 걸 다 많이 하고, 화려하게 잘하진 않잖아요. 걔네도 공연을 하고, 그 시기에 맞춰서 방송 나가서 라이브를 한다든지 단지 그런 것뿐이죠. 그 안에서 또 특출난 애들이 연기도 하고 싶어 하고, 뮤지컬도 하고 싶어 하고 그런 거죠. 한국에서의 홍보 수단이라고 하면 TV, 미디어 나와서 직접적인 노출을 하는 게 주인데, 저는 제가 제일 기본으로 생각하는 건 제가 안 끌리는 거예요. 그래서 TV를 나가면서 하고 싶지는 않은 거죠. 초반에 방송 나가면서 느낀 건 그쪽에서의 기 싸움, 흔히 말하는 연예계 기 싸움과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때 여기다가 적당히 살을 붙여서 얘기하는 식으로 방송에 임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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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나오기 전에 한번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섭외가 온 적이 있었어요. “한국의 비욘세로 나갔으면 좋겠다.”라고 그쪽 작가가 얘기해서 컨셉 자체를 맞춰 가는데, 정말 이건 차마 제 입으로 얘기하고 싶지 않지만 ‘쓰레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작가로부터 무시당하는 게 심했어요. 존중해주지 않고 프로그램의 이미지에만 맞춰서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고 하고… 워낙 그 작가분이 여러 사람 상처 주기로 유명한 분이기는 해요. 저도 성깔이 못됐어요. 친한 사람들 앞에선 드러나지 않지만, 저를 공격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저도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는데요. 그때는 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도 “너무 자존심을 밑바닥으로 깔면서까지 살지 마라.”라고 하셨고, 그게 뼛속 깊은 데서 우러나오시던 분이었기 때문에 (그 작가한테) 저도 대놓고 저랑 안 맞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었거든요. 저랑 안 맞는 것 같다고. 그런 식으로 시키는 게 거슬리고, 저 또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매니저한테도 저 안 할 거라고 얘기하고 끝냈어요. 연예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임이 확실하고, 또 그게 굉장히 힘들어도 해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저는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도전! 골든벨> 비슷한 경인방송 프로그램에도 나가고 그랬는데, 저와는 정말 맞지 않았죠. 애교를 부려야 한다든지 그런 게 저와는 정말 안 맞아서 그냥 저는 공연을 열심히 하는 걸로… (웃음)






LE: 공연을 되게 많이 하셨잖아요. 방송에 나가는 공연 있잖아요. 네이버 온스테이지(ONSTAGE), <난장>, <EBS 스페이스 공감> 등 음악가가 출연할 수 있는 방송 포맷의 공연들은 다 소화를 하셨어요. 그점에서 뿌듯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저는 노래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죠. 어쨌든 잘하는 사람, 멋있는 아티스트들이 들어갈 수 있는 무대잖아요. 같이 촬영하는 아티스트 중에 짙은, 안녕바다 같은 사람들이 진짜 많았어요. 인정받는 것 같아서 좋았죠. 예뻐서, 뭔가를 잘해서 끼로 인정받는 것보다는 음악으로 인정을 받는 거니까 뿌듯하죠. 그런 걸 보고 음악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그것만 생각하고 음악을 한다고 해도…






LE: 공연 얘기를 좀 더 해볼까요? 단독공연 얘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요. 첫 번째 공연을 하실 때는 게스트도 많았고, 공연장도 브이홀(V-Hall)이었어요. 잘 되었던 걸로 기억을 해요. 기억이 나신다면, 첫 단독공연이었어서 힘들었던 점 같은 게 있었는지 궁금해요.


어머, 그랬네요. 아무래도 신인 때잖아요. 그때 기가 팍 들어간 데다가 팝핀현준 오빠 댄서 분들과 특별한 무대를 준비해야겠다고 해서 춤 연습을 엄청 열심히 했어요. “Single Ladies”, “My Love” 이런 곡들 안무 연습도 하고… 마돈나(Madonna)의 “Vogue”도 준비하고요. 뭔가 다 보여줘야겠다고 준비를 한 거죠. 보니를 드러내는 데 있어 어떻게 보면 처음이니까. ‘여자 태양’이라고 (전원 웃음) 나왔으니까 기대에는 부응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준비한다는 게 (규모가) 커져 버린 거예요. 그때 “보니가 춤도 추는구나.”라는 얘기도 듣고 그랬죠. 전문가처럼 추는 건 아니지만, 춤추는 걸 좋아해서요. 그때는 아무래도 보여주기 식이었죠. 신인답게 열심히 하겠다고 패기를 보여준 거였고… 점점 지나면서는 무대에서 즐길 수 있을만한 걸 많이 찾았던 거고요. 확실한 건 첫 단독공연 때와 (지금은) 엄청 달라졌죠. 무대 올라가는 마음가짐도 많이 달라지고요. 그때는 ‘저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였다면 지금은 그냥 ‘내가 최대한 즐겨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포인트가 초반에는 관중들에게 잡혀 있었고, 지금은 ‘내’가 즐기고 완전 빠져야 한다는 거에 있죠. 작년 공연까지만 해도 첫 공연과 마음가짐이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이후 했던 벨로주 공연, 올해 공연들에서는 또 엄청 많이 바뀌었죠. 화이트데이 때 했던 공연은 신인 때 마음이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해 줬으면 좋겠고, 그만큼 내가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다음 달에 했던 벨로주 공연 때는 노래하면서 저 스스로가 되게 좋았어요. 화지랑 같이 공연하고 그러는 게요. 그게 ‘With U’ 공연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LE: 2010년에 행사를 다니실 때는 행사 때도 춤을 추셨잖아요.


아, 그랬었나요? (웃음) 기억이 안 나서… 네, 그랬었어요. (전원 웃음)






LE: 그때는 같이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것도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권유했던 건지 궁금하네요.


인플래닛 자체가 매니지먼트로 유명한 회사는 아니어서 아무래도 매니지먼트 쪽을 매니저분들을 통해서 만났죠. 그쪽에서 팝핀현준 오빠와 친했고, 그래서 같이 준비했던 거고요. 근데 그때 그랬던 게 새로웠고 좋았지만, 제 음악과 팝핀현준 오빠의 춤 색깔이 지금 생각해보면 괴리감이 좀 있지 않았나 싶어요.






LE: 그리고 두 번째 단독공연은 좀 특이하게 백암아트홀에서 하셨어요.


그랬죠. 제 주제에 백암아트홀에서 하다니요. 그게 백석대학교 친구들과 조인해서 한 거였어요. 그 친구들이 공연기획 과제를 해야 하는 게 있어서 대상을 저로 잡은 거예요. ‘쟤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알고 잡은 거지?’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막상 하니까 신기하더라고요. 그 친구 중에 리더 친구가 제 팬이었던 거에요. 그래서 독단적으로 이끌고 갔던 것 같은데, 저에게는 좋은 기회였죠. 백암아트홀도 좌석이 꽉 차야 하는 곳인데, 거기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여자 솔로 알앤비 가수로서는 정말 쉽지 않게 찾아오는 좋은 기회잖아요. 커리어 전체에서도 뿌듯한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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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세 번째 공연인 화이트데이 공연 때는 풀 세션이다 보니 합을 맞추고 이런 점에 있어서 시간이 좀 걸렸을 것 같아요.


근데 그 세션 분들이 워낙 잘하는 언니, 오빠들이어서 제가 하는 건 ‘이 부분에서 더 쉬고 더 들어가면 돼.’ 그런 정도였어요. 워낙 언니들도 잘하는 언니들이시고 유명하시다 보니까 수월했죠. 1집 때 같이 했던 언니도 있는데, 중간에 저도 활동을 잘 안 하고 언니도 나가고 그러다 제가 다시 부탁했죠. “언니, 때가 왔어.”하면서… 그때 셋 자체가 달랐던 게 보통은 건반 둘에 드럼, 베이스, 기타 이렇게 하는데 건반을 한 명으로 하고 색소폰이 들어갔었어요. 그 분은 에반스(Evans)에서 공연도 많이 하시는 분인데 정말 재미있었죠. 그런 분들을 알게 되고 같이 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공연하면서 제일 좋은 점 중 하나였죠. 그때 화이트데이 공연은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세션들이 돋보였었죠.






LE: 네 번째 단독공연을 하셨을 때는 퍼포먼스를 많이 보여주심과 동시에 편하게도 하셨던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이 네 번째 공연이죠? (웃음) 공연을 워낙 계속 하니까 단독공연은 뭐고, 단독공연이 아닌 건 또 뭔가 싶네요. (웃음)






LE: 이번에는 정말 편하게 하시는 것 같았고, 그만큼 관객들도 같이 편해졌던 것 같아요. 화이트데이 공연 때는 다들 지켜보는 느낌이었는데 말이죠.


제가 편해지니까 확실히 관객들도 달라지더라고요. 이번에는 다들 살랑살랑 움직이기도 하고… 저는 관객들의 반응을 다 볼 수 있고, 반응도 느껴지잖아요. 이번 리허설 때는 공연하듯이 쭉 리허설을 했어요. 진짜 소리 엄청 질러가면서 춤추고 무대에서 뛰놀고 그랬는데, 그대로 공연을 한 거죠. 무대와 의상만 바뀌고요. 어쨌든 그게 제가 동경했던 거잖아요. 미군 부대 공연을 했을 때도 그랬고요. 제가 미군 부대 공연을 할 때, 뮤지끄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의 “Just Friends”를 불렀었어요. “Somethin’ Somethin’”도 불러달라고 해서 부르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리에 앉아있지를 않아요. 여자친구, 부인, 남자친구 다 데리고 나와서 춤추고, 꼬맹이들도 춤추고 그래요. 처음에는 제가 워낙 한국인의 관람문화에 익숙하다 보니 ‘내 무대에 집중을 안 하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오히려 그게 더 좋더라고요. 한두 번 공연을 하고 나서 보니 정말 제 노래를 즐기고 있는 거죠. 집중하고 있다기보다는 정말 즐기는 거잖아요. 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게 가능해질까?’ 싶었어요. 다른 거죠.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 관람 문화가 ‘내가 너를 테스트하겠어.’ 그런 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한국 사람들은 그런 마인드라기보다는 정말 집중하는 문화인 거거든요. 그래서 이번 공연에는 정말 신기했어요. 그렇게 활발한 그루브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흐느적거리는 게 느껴지니까 신기했어요. 옷 갈아입으러 가서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고 있어.” 그러고… 확실히 흑인음악도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고, 어린 친구들도 많이 좋아하다 보니 즐기는 문화가 이제 좀 생기는 것 같아요. 한동안은 메르스 때문에 공연에 사람이 많이 오고 그러진 않았지만, 공연 문화 자체가 넓어지는 느낌은 좋죠.






LE: 공연을 하시면서 커버곡을 계속 선보이셨는데, 고르는 데 있어서 기준이 있는지 궁금해요.


이제 커버 자체를 안 하려고 해요. 작년 화이트데이 공연 때는 아무래도 이번 앨범이 나오기 전이라 하던 곡을 매번 하기도 했고, 컨셉 자체가 화이트데이기도 했기 때문에 분위기를 좋게 만들 수 있는 곡을 많이 선정했었어요. 제 곡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 다른 곡으로 채워야 했기 때문에 선정한 것도 있었어요. 근데 하면서 내 공연인데 다른 사람 곡을 굳이 커버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제 공연인데 제 곡을 많이 보여줘야죠. 보니 공연에 왔는데 브루노 마스(Bruno Mars) 곡을 하고 그러면… 이제는 제 곡을 많이, 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번 공연에는 “똥차라도 괜찮아” 앞에 딱 한 곡, 에리카 바두의 “Didn’t Cha know”만 넣었어요. 노래 속 똥차 안에서 달리고 있을 때, 제가 CD를 넣었건, 카세트를 넣었건 그 노래가 나올 것 같다는 상상을 했었거든요. 그런 생각으로 특별하게 넣었죠. 벨로주 공연 때, “Mr. Chu”를 커버했던 건 피아노 치는 밴드 마스터 언니의 의견이었어요. 약간 ‘놀래켜 주자.’ 식의 이벤트성 곡이었어요. 제가 그 곡을 하면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생경한데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근데 화이트데이 공연 이후로는 앞서 말한 이유로 커버곡을 많이 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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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단독공연을 계속 한다는 게 사실 쉽지는 않은 일이에요. 준비도 많이 해야 하고, 어떻게 보면 부담일 수도 있는데 계속 하게 되는 이유나 동력이 따로 있을까요? 혹은 단독 공연이 담고 있는 의미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공연을 하는 게 이제 유일하게 저 스스로를 즐겁게 노출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제일 큰 원인이고요. 종종 공연을 그렇게도 생각해요. 앨범만 내고 딱 그걸로 활동이 끝인 건 제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 같아요.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어요. 이 마음 하나는 첫 활동 때의 패기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제 공연을 보고 그 안에 있던 어떤 사람이 음악을 좋아하게 되어서 음악을 하게 된다거나 아니면 원래 음악을 하고 싶어 했는데 저나 다른 사람의 공연을 보고 자극을 받아 더 멋진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게 좋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다른 가수들의 공연을 보며 ‘나도 저런 공연을 하고 싶다. 저런 음악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고, 제가 했던 생각을 다른 누군가가 느끼고 갈 수 있다면 앞으로 더 하고 싶죠. 그렇지 않아도 씬 자체가 침체가 좀 되었는데, 그래도 너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공연이 어쨌든 제가 보니로서 살아있고, 음악을 하고 있고,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기에 가장 충분한 방식인 것 같아요. 제가 공연을 준비하면서 머리를 쓴다거나 곡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얘기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니까 공연을 계속 하려고 해요. 제 욕심이죠.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욕심.






LE: 공연 얘기까지 이래저래 해봤는데, 인터뷰가 막바지에 왔습니다. 항상 드리는 질문 중 하나로 힙합엘이는 자주 오시는지 궁금해요.


제가 이 앨범을 준비하면서 가사를 쓰는 게 되게 힘들었어요. 다르게 써보고 싶기도 하고, 솔직하게 써보고 싶기도 한데, 정말 외국 사람들 가사 쓰는 거 보면 정말 여러 주제로 다양하게 잘 쓰잖아요. 그런데 가사해석을 힙합엘이만큼 잘하는 데가 없고… (웃음) 저는 가사해석 창을 아예 즐겨찾기로 해놓고 자극을 받으려고 일부러 가서 봐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영상을 보는 것과 동시에 내용을 완벽하게 흡수한다는 게 화지처럼은 절대 안 돼요. 인터뷰도 많이 봐요. 사실 리드머(Rhythmer)가 옆에 있다고 해서 체크하고 그러지는 않거든요. (웃음) 강일권 편집장님 미안해요. 예민해하시기도 해요. 화지 앨범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고, 리드머와 인플래닛이 같이 있기 때문에 소속사 가수를 커버해줄 거라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되게 예민한 편이신데요. 되게 차가운 분이에요. 필요할 때, 안 필요할 때 딱 나누시는 분이거든요. 우리끼리야 재미있게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는데, 힙합엘이 같은 사이트를 보면 확실하게 흑인음악을 보고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리드머는 솔직히 좀 무겁고 무서워요. 저는 솔직하게 말하거든요. 앨범 나올 때 리드머는 안 가요. (웃음) 무서워서요. 제 리뷰를 안 보려고 하거든요. (사람들이) ‘인플래닛 소속이니까 잘해주겠지.’ 하는데, 저도 무섭고 화지도 리드머 되게 부담스러워 해요. 일부러 강일권 편집장님도 저희 앞에서 음악 얘기는 잘 안 해요. 그 자리를 일단 피하세요. 저희는 사실 그런 것까지는 상관없는데, 오히려 되게 예민해하시죠. 힙합엘이는 글도 부드러운 편이고, 편하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LE: 가사해석을 참고하시면서 최근에 인상 깊게 본 알앤비 아티스트로 누가 있나요?


즈네이 아이코(Jhene Aiko)도 있고요. 저번에 비욘세 앨범이 되게 획기적으로 나왔잖아요. 이전과는 다르게요. 제이지(JAY Z)의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에 영감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제이지가 “좀 더 아티스트적일 필요가 있어.”라고 비욘세에게 얘기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은 있는데… (웃음) 하여튼 궁금했거든요. 아무리 노래로 듣고 무드가 있어도 가사를 봐야 비욘세가 얼마나 도약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좋아했던 아티스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가사를 다 훑었는데, 몇 곡을 빼놓고는 완전 다 야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언니는 그쪽으로 갔구나.’ (웃음) 생각했어요. 그런 걸 보면서 자극받은 게 뭐였느냐면, 비욘세도 “Halo”나 “Best Thing I Ever Had” 같은 곡도 하고, 디바적인 곡도 하고 그랬잖아요. 저도 더 도전해야겠고,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음악 씬에 있는 사람 중에 특히 회사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것, 많이 듣게끔 하는 음악을 만들어서 스트리밍 많이 되게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일련의 과정이 흔하다 보니까 제가 거기에 협력할 것인가, 아니면 굳세게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물론, 미국과 한국이 서로 시장이 다르고, 미국에서 비욘세가 가지고 있는 의미도 다르지만, 미국도 엄격할 거 아니에요.


아무튼, 비욘세의 저번 앨범은 한국이라는 땅에서 내가 좋아하는 흑인음악을 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50이 넘고 내 음악을 돌아봤을 때 내가 정말 흑인음악을 재미있게 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앨범이었어요. 가사를 쭉 보면서 읽는 와중에 내용도 내용이지만, 박자나 그 박자에 가사를 집어넣는 방식, 곡의 구성까지 다 부숴버린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비욘세는 항상 어떤 공식에 의해 불러왔잖아요.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 때부터 솔로 앨범까지요. 실험적인 시도가 조금씩 있기는 했지만, 저번 앨범에서는 많이 바뀌었었죠. 급작스럽게 공개하는 바람에 이슈도 많이 되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비욘세가 ‘여성’ 아티스트들, 여성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에서도 자극을 받았어요. 저도 또 다른 여성 가수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저냥 알앤비, 사라질 듯한 그런 거 말고요. 꾸준히 도전하고, 나이가 좀 들어도 이제 시작이라고 얘기했으니까… (웃음) ‘빼박캔트’니까 열심히 하자는 자극을 받았죠.



Boni6.jpg


LE: 그런 만큼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이제야 본연의 모습을 많이 보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해주셨는데, 단순하게 올해 계획도 좋고 크게 봐서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장기적인 것도 좋고요.


앞으로는 약간 더 딥한 컨셉을 잡아서 해보고도 싶어요. 예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보다는 좀 더 자기 음악, 깊어진 음악, 컨셉추얼한 이미지를 담아보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외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시도해보고요. 진부하고 평범하게 가지 않고 조금 더 도전적으로 가보려고 많이 노력할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공연은 밴드랑 하든, 어떻게 하든 저만의 편안함을 많이 보여주는 걸 하게 될 것 같고요. 사실 좌석공연을 자주 안 했어요. 사람들이 좋아하기는 하는데 많이 못 들어오니까요. 마진의 문제도 있고 해서 안 했는데, 좌석이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웃음) 자꾸 왔다 갔다 하니까 집중 못 하시고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적은 사람이 와도 제 음악을 같이 즐기고 공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만큼은 집중할 수 있게끔 해보고 싶어요. (공연 중에) 왔다 갔다 한 사람들이 저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집중을 흐트러지게 할 수 있는 요인인 것 같아서요. 레이블 공연도 계속 하고 싶고요. 그동안 인플래닛에서 단독 공연은 저만 계속 했었어요. 제가 동생들한테 욕하면서 “앨범 작업하라고. 단독공연하라고. 나도 게스트 하고 싶다고.” (웃음) 그랬거든요. 동생들 공연을 많이 하면서 제 공연보다도 인플래닛 레이블 자체가 흑인음악의 축이 되어 성장했으면 바람도 있고요. 그래야 제 음악도 살고, 다른 동생들 음악도 사니까요. 음악에 대해서는 아까 말한 대로 꽂히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가려고 하고 있어요.






LE: 이제 저희가 드릴 질문은 다 드렸는데요.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 한 말, 그 외에 하고 싶은 말, 인터뷰 소감 같은 게 있으시면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진짜 오래 해서 다 한 것 같아요. (웃음)






LE: 인터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관련링크

보니 트위터: @iam_boni / 페이스북: iamboni / 인스타그램: BONI_ITSME

인플래닛 공식 홈페이지: 링크 / 트위터: @inplanet / 페이스북: inplanetmusic



인터뷰, 글 | Melo, bluc

사진 | bluc, ATO

Comment '26'
  • profile
    로직 2015.09.03 18:05
    유일한 여성 rnb 아티스트, 보니
    언제나 응원합니다
  • profile
    title: Tyler, the Creator뻗어왼손 2015.09.03 18:07
    보니쨩 다이스키..
  • profile
    아이러브힙합 2015.09.03 18:25

    인터뷰 글자 하나하나 정독했네요
    저는 보니님을 이보 뷰티풀 마인드 앨범에서 처음 접했는데요
    보컬이 정말 좋아서 이보 쇼케이스까지 갔었어요!
    그후로 쭉 관심가지며 음악 잘 듣고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보컬 많이 들려주세요 

  • profile
    title: Rick RossXX Iso 2015.09.03 19:04
    누님 응원합니다 스타킹 나쁜넘들이구만
  • profile
    title: 2Pac - All Eyez on MeBadMTone 2015.09.03 19:14
    잘 읽었습니다!
    보니라는 아티스트와 더 가까워질수 있는 인터뷰였어요.
    다시 찾아듣는중이네요.
  • profile
    Robert Sylvester Kelly 2015.09.03 21:08
    잘 읽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도 빠짐없이 정독했네요!
    사실 보니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인터뷰도 좋네요!!
  • ?
    ASTROUNIQ 2015.09.03 22:27
    015B 앨범에서 같이 작업하신 곡 듣고 그 이후로 꾸준히 듣고 있어요. 작년에 새로나온 곡도 좋았고 좋은 음악 활동 앞으로도 계속 해주시면 대한민국의 리스너들의 귀가 행복할 것 같네요~
  • ?
    summertime 2015.09.04 01:20
    인터뷰찰지당
  • profile
    murvin 2015.09.04 03:43
    보니는 사랑입니다...
    인터뷰 정말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
    ktydktydk 2015.09.04 03:48
    옛날부터 팬이였는데 앞으로도 기대중!
  • ?
    진중권 2015.09.04 05:43
    남자친구 없으시면 연락좀 주시면 안될까요? 진심입니다
  • ?
    Brake 2015.09.04 09:09
    중궈형 많이외로우신가보네..
  • ?
    ee 2015.09.04 09:51
    Nu One때부터 계속 팬이었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 profile
    title: Snoop Dogg원팍투팍쓰리팍 2015.09.04 19:57
    잘봤어요 넘좋아 ㅠ
  • profile
    title: 2Pac - Me Against the WorldMigh-D-98brucedemon 2015.09.04 22:56

     진짜 보니누님 이른바 '인생영상'이 있죠. 남자의 자격 2010년 송년의 밤 파티때 '합창단원 신보경'으로 부르셨던 휘트니 휴스턴의 그 유명한 I Will Always Love You 그건 지금 들어도 정말 예술입니다.. 그런 보니누님이야말로 정말 소울이 그윽한 톤으로 노래하는 유일무이한 보컬이라 생각됩니다..

  • profile
    title: Kendrick LamarLogiB 2015.09.05 08:46
    사랑해요!! 지금 Love 앨범 사서 들으면서 보니까 더 좋네요 ㅎㅎ
  • ?
    EastShyne aka Deflyde 2015.09.05 18:08
    보니 사랑해요
  • profile
    JYECOLE 2015.09.05 20:48
    정말 응원해여 사랑해여! 보니씨같은 아티스트가 되는게 꿈이에여!!!
  • profile
    title: [일반] 별 (1)폴라미 2015.09.09 00:08
    인터뷰 잘봤습니다
    보니 화이팅 ! 잘 듣고 있어요
  • profile
    A!!워럽 2015.09.11 02:02
    싸랑합니다. ^^
  • profile
    대마왕(King Of Weed) 2015.09.14 00:53
    If I have a daughter, guess what I'ma call her? I'ma name her Boni
  • ?
    공동구매 2015.09.16 13:24
    항상 응원합니다. 생일도 축하합니다.
  • ?
    디쓰이즈히팝 2015.10.07 16:29
    보니 항상 응원합니다~
  • ?
    THEeeee 2015.11.11 09:28
    음색 굿입니다~~ 화이팅요ㅎㅎ
  • ?
    title: [일반] 왕mishka 2015.11.22 04:42
    와 인터뷰로 책내도될듯
  • profile
    n.e.r.d 2016.01.07 15:26
    인터뷰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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