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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조한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2012.08.03 17:00추천수 1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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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alon] 김조한

신사동 가로수 길 근처에 있는 작업실에서 김조한을 만났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인터뷰 할 시간도 없어 보였지만 지친 기색 없이 반가운 눈인사로 악수를 건냈다. 한국 최고의 R&B 가수라면 으름장을 놓을 법도 하지만 김조한은 핫식스와 커피 중 어느 걸 마시겠냐며 권하며 한없이 친절한 자세로 인터뷰에 임했다. 간단히 안부를 물은 다음 곧바로 그의 인생과 음악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LE: 처음에 미국에 계실 때 뮤지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조한: 제가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6년 정도 했어요. 또 저희 누나가 피아노를 전공하기도 했고요. 보니까 제 인생의 반은 항상 음악과 함께 있었어요. 아기 때부터, 쇼팽, 모차르트 같은 피아노 연주곡도 다 들었어요. 그렇게 클래식 음악을 항상 듣다가 나이가 들고 보니까 바이올린이 저랑 안 맞는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악보 보는 법을 배워도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하는 게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본 악보는 외워서 했어요. 나라에서 지원하는 50인조, 60인조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는데 악보를 외우고 연주하면 잘하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면 연주가 잘 안되더라고요. 오히려 저는 재즈처럼 음을 직접 만들고 연주하는 게 더 좋았어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만하겠다고 말하면서 혼도 많이 났어요. 그때 당시에 들었던 음악들이 비틀즈(The Beatles),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등 80년대 라디오에 흘러나왔던 음악들이었어요. 저는 힙합 쪽도 많이 들었어요. 그때는 힙합이란 말도 흔히 쓰지 않았고 보통 'Music'이라고 했어요. 특히 올드스쿨 계통의 랩을 많이 들었는데 팻 보이스(Fat Boys), 그랜드마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 더 리얼 락센(The Real Roxanne), 런 디엠씨(Run D.M.C.), 엘엘 쿨제이(LL Cool J), 후디니(Whodini) 등의 가수들의 노래를 처음부터 들었고, 그때부터 비트박스를 시작했어요. 비보이 1세대가 저희 세대거든요. 당시 브레이크 댄스와 웨이브가 있었는데 저는 웨이브를 하는 사람이었어요. 친구들은 브레이크 댄스를 했고요. 학교 가기 전에 춤추기 위한 넓은 BOX를 나무 뒤에 숨겨놓고 그 위에서 브레이크댄스를 추면서 학교버스를 기다리곤 했어요. 그때는 친구들이 다 흑인이고 한국 사람은 저 혼자였어요. 저희 누나하고 형들 빼고… 어쨌든 그렇게 랩음악을 항상 좋아했어요. 당시에는 Atlanta Georgia에 살았었는데 86년에 LA로 이사를 갔어요. 그때서야 많은 한국사람들을 처음 봤어요. 당시 Atlanta Georgia에는 한국사람들이 많은 곳이 별로 없었거든요. 근데 제 발음이 컨츄리 발음(미국남부 사투리)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제 발음을 듣고 엄청 놀렸어요. 사람들이 제 말투가 적응이 안된다면서... 그렇게 한국사람들을 사귀고 알게 되면서부터 힙합음악을 더 좋아했어요. N.W.A, 이피엠디(EPMD), 드라소울(De La Soul), 빅 대디 케인(Big Daddy Kane), 엠씨 해머(MC Hammer), 뉴 에디션(New Edition)이라는 그룹도 나오면서 흑인음악을 계속 좋아하다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했어요. 그 곳에서 찬양할 때 목소리가 좋다고 말해서... 저는 노래 부르는 행위가 되게 여성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식축구, 베이스볼, 카 레이싱, 오토바이 레이싱, 레슬링 같이 남자다운 걸 좋아하고 노래는 좀 멀리했는데, 고3 때부터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니까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노래를 시작했고요… 아마 하나님이 늦게 알려 주신 거 같아요. 하는 행동은 남자 같지만 음악에 관련된 부분은 섬세해요. 그래서 음악할 때는 많이 달라요.





LE: 아, 그럼 교회에서 흑인음악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게 되신 건가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자주 들었는데 그 당시 그룹 가이(Guy)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 중 테디 라일리(Teddy Riley)의 팬이에요. 요즘은 소녀시대 곡을 쓰기도 하는데, 저는 올드 스쿨 당시의 테디 라일리를 좋아해요. (비트 박스를 하면서) 바비 브라운(Bobby Brown)의 “My Prerogative”라는 노래 아시죠.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가 다시 리메이크 했잖아요. 그런 뉴 잭 스윙(New Jack Swing)도 정말 팬이었고요. 블랙스트리트(Blackstreet)도 마찬가지고… 그 외에도 그냥 흑인음악이 전체적으로 좋고요. 되게 잘 통해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게 있어서 TAKE SIX란 그룹이랑 음반작업도 했었는데요. 저에게 “동양 사람인데 보이스는 우리와 같다.”라고 얘기도 했었어요. 어릴 때부터 느낀 게 흑인음악이라서 그 영향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클래식, 힙합, 소울, 펑크를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것 자체가 특이한 거 같아요. 그게 어렵잖아요. 보통 한 쪽만 듣는데, 거기에 클래식까지 들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되게 신기해요.





LE: 음악적 베이스가 어릴 때부터 되어 있으셨네요.

비틀즈도 누나들 때문에 들었어요. 비틀즈 음악부터 히피음악, 펑크, 랩, 알앤비 등등 그리고 저희 아버님이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같은 올드팝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 같이 다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클래식까지 배운 게 되게 신기해요. 가끔 오케스트라 분들이랑 공연할 때가 있는데 저는 너무 편한데, 그분들이 저한테 “괜찮으세요?”라고 하는거에요. 저는 잘 이해를 못했어요. 알고 보니까 다른 가수 분들은 같이 공연하기 힘들어하신다고 하더라고요. ‘뭐가 힘들지?’ 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바이올린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어색한 것 없이 50명, 100명 오케스트라 분들이랑 공연을 해도 부담도 없고 재밌어요. 제가 지난번에 ‘MBC 아름다운 콘서트’에서 기타를 치면서 "Now and forever"와 "이 밤의 끝을 잡고"를 부르기로 했는데, 그때 잠을 하루에 두 시간 밖에 못 잘 만큼 바빠서 편곡 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방송국에서 두 곡을 5분 안에 끝내라고 하더라고요. 잠들기 전에 그냥 기타로 딱 한번 노래 부르고 편곡해서 보냈어요. 그리고 '내일 일찍 가서 대기실에서 키보드랑 저랑 맞추면 되겠다.'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밤에 제가 줬던 5분짜리 기타연주를 가지고 (악기 별로 전부) 스코어링(채보)을 다 했더라고요. 근데 문제는 제가 밤에 한 게 기억이 안 나는 거에요. 오케스트라 분들이 제가 연주한 것을 다 알고 계셔서 깜짝 놀랐어요. 오히려 리허설 할 때 제가 다 틀렸죠. 알고 보니 이분들한테 다 보내서 악보까지 다 그려 놓으셨더라고요. 그래서 리허설 할 때 눈치 보면서 많이 틀렸죠. 혼자 틀리면 상관없지만 다 같이 틀리면 안되니까… 리허설이 끝나고 다시 잘 정리해서 방송에는 안 틀리고 잘 나왔지만, 전에 오케스트라와 같이 한 경험이 없었으면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말 식은 땀 났을 거예요. 오케스트라 분들이 연습도 열심히 하시고 방송에서도 신경 많이 써 주셨는데 제가 틀렸으면 정말 휴~





LE: 이야기가 좀 넘어갔는데.. 다시 돌아와서 미국에 계실 때 솔리드 세 분을 만나신 건가요?

L.A 오렌지카운티에서 만났어요. 한인친구들 중에서도 음악 하는 친구들은 몇 명 없었는데 힙합 좋아하는 사람들이 딱 몇 명 있었어요. 저희 학교에서는 제가 춤 대장이었거든요.(웃음) 힙합 대결도 나가고, 가수들 뒤에서 백업댄싱도 했고요. 이준 씨는 학교에서 DJ였어요. 목소리도 좋았고, 그래서 랩이나 디제잉에서 두각을 보였어요. 또 정재윤 씨는 춤을 되게 좋아했어요. 게다가 춤도 추면서 음악도 만들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서로 알게 됐죠. 나중에 같은 교회 다니는 것도 알게 되면서 더 친해지게 됐고, 그때부터 저랑 정재윤 씨는 교회를 같이 다니면서 정재윤 씨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LE: 근데 어떻게 한국으로 넘어오시게 된 거예요?

LA Boys란 그룹의 곡은 정재윤 씨가 작곡을 해줬어요. 세션도 필요해서 보컬세션으로 제가 들어가게 되었죠. 녹음실에서 처음으로 녹음을 하니까 매니저가 저희한테 데모를 한번 만들어보라고 했어요. 데모를 만들고 카피를 떠서 하나는 대만으로 보내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으로 보냈어요. 근데 그게 같은 날에 스카웃이 되었어요. 원래는 대만에 가려고 준비하다가 그래도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으로 가기로 했죠. 정재윤 씨는 음악을 잘하니까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저는 정말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오게 됐어요. '어느 순간에 보니까 한국에 있네'라고 느꼈을 정도였어요.





LE: 처음에는 한국말이 많이 서투셨잖아요.

하나도 못했어요. 아니, 했는데요. 예를 들면 지금 영어를 조금씩 다 하시잖아요. 그거보다 2배, 3배 잘해도 미국 가서 자신 있게 얘기 못하잖아요. 제가 그랬죠. 그리고 한국인이 영어를 못해도 사실 창피한 일은 아니에요. 한국 사람처럼 생겼는데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못하니까 사람들이 안 좋게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미안하게 되고 죄를 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1집이 잘 안됐고 또 그때가 여름이라 대학교 입학 서류를 다 보냈는데 제가 원하는 대학교에 붙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나는 ‘한국이랑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미국 대학으로 돌아가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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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게 미국으로 돌아가셨는데 2집의 ‘이 밤의 끝을 잡고’라는 곡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잖아요. 탄생 배경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때 당시 1집을 하면서 꽤 유명해졌어요. 음반은 아무도 모르지만… 언더그라운드 쪽 가수들이나 PD님들은 저희 음악을 듣고 ‘어떻게 한국에 이런 음악이 있을 수 있나’라고 평가했어요. 1집은 기존의 음악과는 달랐기 때문에 1집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매니저가 다시 한국에 들어오라고 했어요. 이번엔 잘 될 것 같다고  우리가 했던 음악을 사람들이 그리워한다고… 2집은 정재윤 씨랑 김형석 씨가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한 음반이에요. 김형석 씨와 정재윤 씨가 ‘이 밤의 끝을 잡고’의 데모를 같이 보내주셨는데 저는 정말 안 간다고 마음먹었었지만, 정재윤 씨랑은 친구기 때문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한국에 가기로 했어요. 제가 안 갔으면 언젠가 TV나 매체에서 K-Pop 가수를 봤을 때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하고, 친구의 의리를 위해 같이 한국으로 갔죠. 힘들 거 알면서도 한국에 가야 되니까 그 결정이 힘들었어요. 힘들 것이 뻔한데 한국 들어가야 하니까… 그렇게 가서 ‘이 밤의 끝을 잡고’란 노래를 부르게 됐고, 그 이후에는 역사(history)죠. 잘 됐고 뭐 (웃음)





LE: 처음 데모 곡을 들으셨을 때 어땠나요?

웃었어요. 이 밤의 끝을 잡고 가이드 데모를 녹음한 게 진짜 웃겼어요. 어떻게 인간이 이런 소리를 내나 이럴 정도로… (웃음) 그래도 편곡이 괜찮았고요. 멜로디가 살아있는 노래였어요. 그래서 '이 곡이다!' 욕심이 났죠.



 

LE: 히트 예감은 있었나요?

아니 거기까지는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노래는 좋다.', '이거 부르면 느낌이 온다.' 그거는 알았어요. 히트곡을 그 나이에 알겠어요? 몰라요.





LE: 그 당시가 몇 살이었나요?

그때가 22살이었을 거예요.





LE: 몇 년 전 015B가 "끝이 아니기를"이라는 노래를 샘플링 했는데, 샘플링이라고 하면 미국에서도 보통 올드팝 명곡을 샘플링 하잖아요. 샘플링 한 노래를 들으셨을 때 감회가 남 다르셨을 거 같은데요.

샘플링 한 그 노래가 나름대로 저희들한테 역사적인 노랜데요. 일단 사람들이 좋아했죠? 좋아했으면 된 것 같은데...(웃음) 그리고 015B란 그룹이랑 인연이 많아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장호일 씨가 저희 1집 프로듀서였어요.





LE: 네. "끝이 아니기를" 이후로 솔리드가 해체를 했잖아요. 그때 강제 해체됐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앨범을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는 작곡을 안 받았어요. 세션의 99%를 우리가 다 했어요. 저희는 음악만 했어요. 이런 그룹이 얼마 없거든요. 지금 가요계가 옛날이랑 매우 달라요. 정재윤, 김조한, 이준 셋 다 곡을 썼고요. 요즘 가수들은 사운드부터 트렌드까지 다 프로듀서나 다른 사람이 해주는데 그만큼 시스템이 잘 되어 있잖아요. 예전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었어요. 저희들이 그냥 알아서 “다음 음반 준비하자” 그러면 녹음실 잡고 녹음했어요. 정말 시스템이 좋았으면 더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았을까 해요. 1993년에 솔리드가 나왔는데 10년 뒤인 2003년에 나왔어도 문제없었을 텐데… 지금 큰 회사인 JYP, SM, YG, DSP 등등 말고 예전에 있던 회사 있나요?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참 음악시장이 많이 변했죠. 정재윤 씨는 아지아틱스(Aziatix)로 훌륭하게 하고 있고… 다들 음악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게 팬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요. 사실 좋은 게 있다면 저희 음악이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 그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솔리드 음악은 20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이 듣고 찾는 것 자체가 정말 신기하고 영광이에요.





LE: OST 작업도 많이 하시는데 다른 음악작업 할 때랑 다른 점이 있나요?

OST 작업을 부탁하는 사람은 대부분 형이나 동생이나 친구들이에요. '형이 너가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데 이런 부분은 인간관계니까 '어, 알겠어.'하고 같이 참여하죠. 코미디 노래도 했어요. UV가 하는 노래 코러스도 했거든요. 재밌잖아요. 음악은 즐기는 거니까요! 한번 공연 보러 보세요. 공연 한 번 오면 제가 어떤 가수인지 보여드리니까. 나 이런 사람이고 난 어떤 가수인지 공연을 통해서 보면 될 거 같아요. 공연하면서 재즈도 하고, 힙합도 하고, 다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어디에요.

 



LE: ‘다시 사랑하자’ 싱글에도 한글로 랩 하신 부분이 있던데

기타를 치면서도 '내가 이걸 왜 치고 있지?', '내가 랩을 왜하고 있지?' 이런 생각은 들어요. 유명한 래퍼가 와서 해줄 수도 있지만 그 래퍼가 와서 제가 생각했던 그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제 느낌을 잘 살리고 싶어서 제가 했어요. 제가 잘해서 한 건 아니에요. 하면서도 창피하기도 했고… 그때 당시에는 솔직했고 도전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LE: 요새는 음원시장이 구조가 바뀌어서 CD가 많이 안 나오고 회사에서도 단기이득을 빨리 볼 수 있는 싱글이나 디지털 싱글을 내는데 반해서, 김조한 씨 같은 경우는 음악적으로 컨셉을 가지고 꾸준히 앨범을 내고 계시잖아요.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음반 만드는 속도가 달라요. 빌보드 차트가 예전 같은 경우는 마이클 잭슨의 ‘thriller’가 연속 빌보드 1위를 되게 오래했어요. 적어도 몇 개월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십 몇 주 하는 가수가 어디 있어요. 한 명도 없어요. 아무리 노래가 좋아도 없어요. 점점 우리가 빨라지고 있어요. 휴대폰도 LTE가 빨라요. 컴퓨터 쓸 때 듀얼 코어도 나쁘지 않았어요. 근데 쿼드코어, i-7 이잖아요. 그 전에는 조금 느렸어도 괜찮았는데 요즘은 못 기다리잖아요. 몇 초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정말 급해졌어요. 승부를 바로 보려고 해요. 그래서 농사의 기다림을 기다리지는 못할 거 같아요.





LE: 요즘은 아이돌 중심이잖아요. 지금 ‘글로벌 슈퍼 아이돌’이란 프로그램에 심사를 맡고 있는데 아이돌 중심의 음악시장이나 오디션프로그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거는 좋고 나쁜 게 아닌 거 같고 현실이에요. 제가 그런 기회가 있었다면 저도 했을 거예요. 자기 실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좋은 기회예요. 제 생각에는 아이돌이 바로 아이콘이죠. 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도 아이돌 아니에요? 정말 실력 있고 어리고 작곡, 작사, 악기까지 다해서 음반 만들어서 하는 친구들이 아이돌이 아닐까요? 그 친구들도 상당히 아이돌이죠.
 




LE: 요즘 음원 정액제 얘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아래에서도 그렇고 위에서도 그렇고.

올리고 내리고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분배가 문제에요. 아티스트들한테 공평하게 해줘야 할 텐데 공평하진 않고요. 아티스트들이 음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할 텐데. 외국과 같은 경우는 (음원 수익을) 공평하게 하는거 같은데… 핸드폰 잘 파는 회사 있잖아요. 하얀거(애플, 아이튠즈). 그 회사처럼 공평하게 잘 해주면 좋을 거 같아요.(웃음)





LE: 김조한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애드립을 떠올리는데 너무 애드립이 과하다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지금은 괜찮아요. 옛날엔 더 그랬어요.





LE: 꾸며내시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냥 나오는 거고. 애드립은 항상 바뀌고 달라져요. 많이들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고, 애드립을 줄일 생각은 없어요. (웃음)





LE: 예전에 브라이언 맥나잇(Brian McKnight)이 한국에 왔을 때 같이 공연도 많이 섰는데 그때 애드립 대결하신거 기억나세요?

기억이 안나요.



 

LE: 그 영상이 있을 거예요.

아마 있을 건데요. 그냥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워낙 훌륭한 분이고 저도 "One Last Cry"란 노래는 진짜 좋아하거든요. 제가 신인 때 정말 브라이언 맥나잇 노래를 많이 듣고 데뷔 후 브라이언 맥나잇이 유명한 알앤비 가수라고 방송에서 많이 소개 했어요. 지금은 브라이언 맥나잇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은데, 제가 라디오에서도 브라이언 맥나잇 노래를 정말 많이 틀었어요. 추천곡하면 매일매일 브라이언 맥나잇… 그만큼 좋아하는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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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브라이언 맥나잇 말고도 좋아하는 분이 있었나요? 처음에 이런 스타일로 해보고 싶다. 이런

뉴 에디션이라는 그룹이 있어요. 뉴 에디션 되게 좋아했었고요. 예전에는 마빈 게이(Marvin Gaye), 마빈 게이는 지금도 저에게 중요한 가수예요. 음악 자체가 되게 좋아요. 그냥 음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좋은 거 같아요.





LE: 밝은 분위기 음악을 좋아하시군요.

마빈 게이가 사실 밝은 게 아니에요. 사랑에 담겨 있는 한이 있고요. 디안젤로(D' Angelo)도 좋아해요. 맥스웰(Maxwell), 샤카 칸(Chaka Khan), 비욘세(Beyonce)도 요즘에 유행하지만 너무 잘하잖아요. 알리샤 키스(Alicia Keys)도 좋아하고. 그냥 다 좋아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도 좋고,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도 다 좋아요. 베이비 페이스(Baby face)도 좋고요. 보이즈 투 맨(Boyz II Men)도… 다 좋잖아요.(웃음)





LE: 요즘에는 어떤 거 들으세요? 최근에 꽂힌 노래가 있나요?

원래 알켈리(R.Kelly)를 좋아하는데요. 알켈리가 되게 신비한 세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 유행을 안타는 사람이에요. 알켈리도 (데뷔한 지) 20년 정도 됐거든요. 아마 23년 됐을 거예요. 나이도 꽤 있을 건데요. 정말 안 좋은 일로 알려졌던 것도 있고 해도 그 음악이 독특해요. 그 특이한 세계가 있어서 어떤 가수들은 한번 하면 없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가수는 뭘 하나 하더라도 자기만의 느낌이 있어요. 타고난 재능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독특하게 듣고 있고 좋아하고 있어요.
 




LE: 연예인 중에 제시카(소녀시대), 태연(소녀시대), 재범(Jay Park) 등을 보컬트레이닝을 하셨는데 그 중에 제일 애착이 가거나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

다 좋아요. 재범이도 잘하고 있어요. 태연이도 너무 잘하고 있고 2pm, 2am 조권, 효린(씨스타)이도 잘하고 있고요. 에이핑크도 열심히 하고 있고, 슈퍼주니어 애들도 잘하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바랄 것 없고, 이제는 제가 선생님으로서 더 열심히 해야 될 거 같아요. 같은 무대에 서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못하면 바로 티가 나기 때문에 내가 느슨하면 안 되고 더 멋진 음악을 해서 ‘선생님은 역시 선생님이야’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게 열심히 해야 돼요.





LE: ‘이 밤의 끝을 잡고’라는 노래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특유의 발음 같은 것을 코믹하게 패러디 하기도 하는데요. 얼마 전에 윤종신 씨랑도 스케치북에서 같이 공연 하셨잖아요. 그런 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상에 살면서 그냥 재미있게 저는 코미를디 되게 좋아해요. 미국엔 스탠드업 코미디 라는 게 있잖아요. 제이미 폭스(Jamie Foxx)같은 그런 사람을 좋아해요. 데이브 샤펠(Dave Chappelle), 크리스 락(Chris Rock), 짐 캐리(Jim Carrey) 이런 사람들 다 재미있게 잘 봐요.
 




LE: 예능에 가끔 출연하시는데 아직 울렁증이 있으신지

에이, 그건 뭐 (예능 하는 분들이 저한테 웃긴 이야기를) 바라면 '웃긴 얘기 없어~ 그냥 가자' 이러고 말죠.(웃음) 





LE: 지금 이렇게 대화를 해보니까 예능도 잘 하실 거 같아요.

내 모습 그대로 나오면 될 거 같아요. 코미디언도 아닌데 엄청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힘들잖아요.





LE: 요즘엔 트위터도 열심히 하고 계시더라고요 (웃음) 트위터를 하니까 어떤 점이 좋던가요?

트위터 같은 경우는 일단 시작했으니까 바로 바로 있었던 일들을 올리는 거예요. 여수에서 나가수 공연을 했는데 재미있었고 사람들도 많이 오셨어요. 끝나고 우리 스태프가 운전하느라 힘들었는데 마침 일요일이었어요. 그래서 아침에 노래를 15곡이나 부르고 끝나자마자 여수 비행기 타고 내려와서 피곤한 우리 스태프 맛있는 거 먹이고 싶어서 횟집을 간 거죠. 근데 ‘이 사진 올리면서 미안합니다.’ 아마 제가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왜냐면 혼자 이렇게 맛있는 거 먹어서.(웃음)





LE: 아까 따님 얘기도 하셨는데 가족이 생기고 전과 후의 생활은 어떠신가요?

제 딸이 태어나기 전에 정말 많이 바빴었고 그 이후에는 작곡, 선생님으로 활동해서 2pm, 2am 소녀시대가 모두 우리 딸을 알고 그래요. 그래서 아빠가 노래를 잘 하는 건 알아요. 왜냐하면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선생님이라면서 (저한테) 노래를 배우고 있으니까 '아빠는 노래 잘 하나 봐' 이렇게 생각은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아빠가 진짜 가순가?' 이거는 어리니까 모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정말 감사한 게, '너희 아빠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하며 텔레비전을 통해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게 너무너무 행운이었어요. 첫 번째 나가수 경연하고 나서 저는 (제가 몇 등인지) 결과를 알았죠. 그런데 일부러 말 안 했어요. 텔레비전으로 보라고 딸은 그 나이에 아빠가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했겠죠. 근데 나오자마자 첫 주에 1위 했잖아요. 이런 것들이 딸에게 (아빠의 그런 모습이) 어떤 추억이 될까. 그게 제가 느끼고 있는 것을 10살, 9살의 어린 친구가 어떻게 느낄까. 나이 들어서 기억할까 그런 것들 이제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음악으로 딸에게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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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앞으로 해외진출 계획은 없으신지

다음 음반을 열심히 작업 중인데 가요와 팝의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k-pop같은 음악은 아니고, 들었을 때 미국 느낌도 나는 음악이 될 거예요. 또 반대로 미국에서는 흑인음악인 것 같으면서도 한국과 관련된 감성들을 느낄 거예요. 제 안에 있는 것들을 느끼게 해주고 싶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해요.





LE: 해외도 생각이 있으신 거네요.

네, 다음 음반. 전 세계 아이튠즈로 공개하면서 전체적으로 OST 활동은 한국에서 꾸준히 하려고 생각하고 있고요. 국내에서 하는 활동은 국내에 맞게 열심히 할 거고요. 그런데 다음 음반 컨셉 자체는 글로벌한 음악이 되었으면 하는 게 제 마음이에요. 





LE: 알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김조한 - 다시 사랑하자


인터뷰 | 쏘울풀몬스터, Bluc
인터뷰. 사진 | Sou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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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8.3 18:56

    노래도 잘하고

    인터뷰 내용도좋네여

  • 8.4 02:42

     진짜 대한민국 알앤비의 대부시죠 ㅎㅎ

    전설의 솔리드 김조한씨까지 인터뷰 해주시고..

    힙합엘이가 진리입니다!! ㅋㅋㅋ

  • 8.4 12:53

    솔리드4집은 정말 아까운 앨범이죠ㅠㅠ


    애드립  대결 ㅋㅋㅋㅋㅋㅋ


    정말 모르실까나

  • 8.4 14:55

    귀여우심ㅋㅋ 잘봤어요

  • 8.5 11:18

    방송도 많이 하고 유명해지긴했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과소평가받는 아티스트중 한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8.6 11:12

    김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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