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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Oddisee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2012.04.27 16:39추천수 2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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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alon] Oddisee

 

추운 12월의 겨울, 몇 번의 시도 끝에 연락이 된 오디시(Oddisee)를 만나러 오랜만에 브루클 (Brooklyn)으로 향했다. 저녁이 되면 돌아다닐 수 없고 간혹 총소리도 들렸지만, 잠시 살았던 집 옆 공원에서 존 레전드(John Legend), 질 스캇(Jill Scott), 에리카 바두(Erykah Badu)가 번갈아가면서 공연을 열던 브루클린. 가끔 너네같은 아시안들이 왜 여기 사냐는 말은 들었지만, 어쨌든 지나가는 할머니나 아이들조차 소울풀하게 느껴지던 브루클린. 수 많은 동부 힙합 역사가 만들어진 곳이라지만 내게는 흑인 집 주인이 보증금을 내주지 않아 브루클린 관할 법원에서 소송까지 진행해야 했던, 내 인생 단시간동안 최고 많은 드라마를 제공했던 브루클린.

 

2년도 더 넘게 발길을 끊었던 그 곳에 최근 정착한 오디시를 만나러 가야 하자 좀 겁도 났고,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역시나 '쟤는 왜 여기에?'하는 수많은 브라더와 시스터들의 눈초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애써 무시하고 여러 블럭을 지나 벨을 누르니 드디어 5년 만에 보는 오디시가 서 있었다. 나와 오디시는 2007년 워싱턴 디씨(Washington, D.C.) 출신 프로젝트 그룹 'Ave.To'의 비디오를 함께 하며 처음으로 워싱턴 디씨에서 만난 적이 있다. 도움 반 재미 반으로 시작한 그 비디오는 의외로 일이 커져 Ave.To의 스페셜 패키지 앨범에 포함되어 일본 아이튠즈에 선 발매, 피프티 센트(50 Cent) 옆에 나란히 소개되기도 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오디시는 워싱턴 디씨 음악인들 사이에서 굉장히 똑똑하고 유머러스하며 촉망받는 프로듀서/아티스트로 알려져 있었다. 그 후, 5년 간 꾸준히 자신의 음악 커리어를 신장시켜온 오디시는 어느 덧 미국 동부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음악인이 되어있었고, 유럽에까지 그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우선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물은 후, 그가 내놓은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 인터뷰 영상 입니다. 하단 텍스트와 내용은 같습니다.)

 

 

 

힙합엘이(이하 LE):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흑인음악 사이트 힙합엘이입니다. 한국의 힙합 음악 팬들과 힙합엘이의 회원들에게 인사말 부탁합니다.

 

오디시(Oddisee):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들 그동안 듣고 싶어 하시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MC이자 프로듀서인 오디시라고 합니다. 힙합엘이 여러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LE: 우선 최근 근황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으신가요?

 

전 잘 지냈어요. 굉장히 생산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전 항상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아티스트이고, 또 그렇게 일하는 게 좋아요. 전 그런 상황을 좋은 스트레스라고 부르는데, 요즘 저는 그 좋은 스트레스들이 아주 많습니다.

 

 

 

 

 

LE: 많은 결과물과 피쳐링 작업량에 비해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아쉬운데, 힙합 팬들을 위해 처음부터 소개를 좀 부탁합니다. 어디서 자랐고 힙합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네, 저는 프로듀서이자 MC이고요. 원래는 동부 워싱턴 디씨 출신이고, 현재는 뉴욕 브루클린에 살고 있습니다. 저도 아티스트로서 여타 사람들처럼 비슷한 자기 개발 과정을 거쳤는데요, 처음엔 (힙합을) 취미로 했는데 점점 집착이 생겨서 나중엔 직업이 된 그런 케이스죠. 2004년 정도에 확실히 제 직업으로 바뀌게 된 거 같아요. 그때 처음으로 제 트랙을 디제이 재지 제프(DJ Jazzy Jeff)의 솔로앨범 [Magnificent]에 싣게 되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제가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 돈도 벌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후에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 이렇게 발매를 앞둔 여러 앨범들을 작업하고 투어하고 있어요. 물론 아직 아시아 쪽까진 진출하지 못했지만 곧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LE: 가장 영향을 받았거나 현재 본인의 음악과 비슷한 스타일의 아티스트는 누가 있을까요?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음악을 좀 더 이해하기 쉬웠으면 해서 여쭤봅니다.

 

제가 하는 음악들을 분류하자면, 아마 클래식 언더그라운드 힙합, 인디 힙합 등에 속하지 않나 싶어요. 모스뎁(Mos Def)이나 탈립 콸리(Talib Kweli), 커먼(Common) 등과 비슷하죠.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와 퍼렐(Pharrell)과는 프로듀싱 쪽으로 비슷한 면이 있고요. 저한테는 프로듀서로서의 제 모습과 MC로서의 모습이 각자 있는데, 대략 이래저래 분류를 해보자면 의식적인 힙합음악에 속해요. 여자나 물질적인 것, 폭력 등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좀 더 사회, 정치에 관련된 자연스러운 이야기들을 하죠.

 

 

 

 

 

 

LE: 부모님에게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네. 제 부모님이 제 음악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셨죠. 문화적인 면에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고요. 저희 어머니는 워싱턴 디씨 출신의 미국흑인여성이시고, 저희 아버지는 수단 출신이세요. 아버지는 수단의 북쪽에 있는 카툼(Khartoum)이라는 도시 출신이시죠. 그 곳 사람들이 듣는 음악들과 이 곳 미국의 음악은 차이가 좀 있는데, 전 집에서 그 모두를 섞어서 들으면서 자랐어요. 또 어릴 때 수단으로 자주 여행을 가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 음악에는 그런 경험이나 영향들을 통해 얻은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많이 묻어나는 편이에요. 전 일부러 그런 스타일을 의식적으로 제 음악에 넣으려고 하지 않아요.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거죠. 여하튼, 그런 점에서 제 부모님은 저에게 새롭고 또 넓은 세상을 많이 열어주셨어요. 그리고 저의 음악적 뿌리나 소울을 주셨고요. 특히 미국 흑인 음악과 아랍, 중동 쪽 음악의 혼합 스타일이 바로 제 자신이자 또 제가 만드는 음악들이에요.

 

 

 

 

 

 

LE: 수단은 어떤 나라인가요?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가보는 것은 또 많이 다를 텐데, 어떤 분위기인지 알려주세요.

 

수단의 어느 곳을 가느냐에 따라 다른데, 저희 가족이 사는 곳은 암둘 만이라고 불리는 도시에요. 수단의 수도인 카툼 근처에 있죠. 나일강이 중간에 있고 카툼이 오른쪽, 암둘 만이 왼쪽에 있어요. 맨하탄(Manhattan)이랑 브루클린과 완전 같죠. 강 건너 서로 마주 보고 있다는 것도 같고요. 수단 북쪽은 그냥 전형적인 북 아프리카, 중동 도시 느낌이 나요. 사막 있고 콘크리트 집들 있고… 이집트나 튀니지에 가보신 분들이나 그 풍경을 아시면 대략 그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LE: 수단의 음악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스타일인가요?

 

수단의 음악은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어요. 토착 원주민인 누비안의 리듬과 남쪽 수단의 리듬이 섞여있고 또 중동 쪽 리듬도 있어요. 최근 현대 수단 음악 스타일엔 레게 비트도 섞여있어요. 에티오피아와 자메이카는 음악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인데 에티오피아가 저희 이웃나라거든요. 그래서 수단의 음악 또한 자연스레 영향을 받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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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현재 MC이자 또 프로듀서인데, 이 두 가지를 전부 하려고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처음엔 MC로 시작했는데, 스스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 프로듀싱을 시작했어요. 그러면 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렇게 시작하긴 했는데, 나중에 하나 깨달은 게 있어요.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MC일 때 보다 프로듀서일 때 돈 벌기가 더 쉬워진다는 걸 알게 됐죠. 프로듀서는 10곡을 만들어서 각자 다른 10명의 아티스트에게 보낼 수 있고 그럼 동시에 10곡을 끝낼 수가 있잖아요. 근데 MC로서는 일 년에 끝낼 수 있는 곡의 양이 확실하지 않죠. 그래서 곡을 만드는 것이 좀 더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했죠. 물론 현재는 MC나 프로듀서 부문 둘 다 균형을 잘 맞춰가면서 일을 하고 있어요.

 

 

 

 

 

 

LE: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기에 둘 중 어떤 걸 더 잘한다고 생각하나요?

 

하하, 그런 질문 참 많이 받는데요. 솔직히 전 정확히 50대 50인거 같아요. 왜냐하면 한 쪽이 다른 쪽을 완벽하게 할 수 있게끔 도와주거든요. 가사가 정말 잘 써질 때 전 빨리 가서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또 곡이 잘 써질 때 빨리 가사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그 둘은 제 안에서 서로 더 나아지려고 끊임없이 선의의 경쟁을 하는 셈 인거죠.

 

 

 

 

 

 

LE: 그렇다면 둘 중 어느 것에 더 애착이 가나요?

 

(웃음) 글쎄, 어떤 걸 더 좋아하는지는 고르기가 힘들어요. 둘 다 저한테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둘 다 저로 하여금 서로 다른 한 쪽을 하고 싶어 하게끔 해요.

 

 

 

 

 

LE: 시작 할 당시부터 금방 유명해져서 승승장구해온 걸로 알고 있고, 특히 2000년 쯤 전후로 네이티브 텅(Native Tongue)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컸던 것 같은데 그 때의 경험이나 느낌은 어땠나요?

 

일단 전 (노력에 관해서) 단 한 번도 물러선 적이 없어요.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그냥 내가 잘되고 있구나하고 알게 된 거 같아요. 사람들은 보통 쉽게 클럽에 들어가게 될 때나 갑자기 많은 돈을 벌게 되면 '아 내가 잘되고 있구나' 하는 걸 알잖아요. 저는 잘되고 있다는 걸 알게 돼서 기분 좋았던 가장 큰 계기가, 제가 사람들에게 전화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전화를 더 많이 걸어올 때였어요. 그때는 정말 내가 이렇게 진행하는 일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잘 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중간에 변화하는 시점이 딱 있었어요. 계속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작업하고 어떻게든 곡을 작업해서 팔아보려고 여기저기 뿌려보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저에게 전화해서 자신들의 앨범에 넣을 곡을 의뢰하거나 투어, 라디오나 인터뷰를 같이 하자고 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때 일이 잘되고 있고 좀 더 유명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LE: 초기에 여러 유명한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했지만, 역시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았던 건 디제이 재지 제프(DJ Jazzy Jeff)와의 작업이었어요. 어떤 계기로 작업이 이루어진 건가요?

 

저와 친한 친구 켑 브라운(Kev Brown)을 통해 소개를 받았어요. 켑 브라운은 재지 제프 앨범 [Magnificent]의 대부분의 곡들을 프로듀싱한 친구에요. 저와 같은 지역 출신이고 비슷한 음악을 하는 사이였죠. 저희 둘 다 언더그라운드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서로 알게 되자마자 굉장히 빨리 친해졌어요. 켑은 피트 락(Pete Rock)의 친형제인 그랩 러바(Grap Luva)를 알고 있었어요. 그 사람도 메릴랜드(Maryland)에 살거든요. 켑 브라운이 그랩 러바한테 자기 노래를 틀어줬고 그랩 러바는 피트 락한테 들려줬죠. 그러고 나서 피트 락은 말리 말(Marley Marl)한테 켑 브라운의 노래를 들려줬고 말리 말은 재지 제프에게 그 노래를 들려주게 된 거예요. 그래서 재지 제프가 켑 브라운한테 전화를 해서 켑 브라운은 필라델피아(Philadelphia)로 가서 재지 제프와 작업을 하게 됐고 그러던 중 제 노래를 틀어주게 된 거예요. 다 이렇게 엮이게 된 거죠.

 

 

 

 

 

LE: 그렇군요. 모두 다 그렇게 연결이 된 거군요. 재밌어요. 그때의 경험은 어땠나요?

 

저한테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왜냐 하면, 사실 전 그때 아버지한테 최후통첩 같은 걸 받은 상황이었거든요. 만약 제가 만 21살이 되도록 제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없다면 음악을 그만 두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 아버지의 사업을 위해서 일해야 했어요. 마침 그때 막 21살이 된 해였었고 제가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마지막 해였죠. 그리고 그렇게 잘 돼서 음악 커리어를 시작하게 돼서 저한테는 굉장히 특별한 순간이었어요.

 

 

 

 

LE: 그랬군요. 그럼 디제이 재지 제프와는 같은 스튜디오에서 작업한건가요?

 

네. 그럼요. 필라델피아로 가서 노래를 틀고 모든 보컬 녹음을 다 같이 했죠. 그 후에도 재지 제프랑 종종 연락했고요. 그런데 얼마 안 돼서 상황이 좀 바뀌었어요. 그때는 음악 시장이 사람들이 돈을 주고 CD를 사던 시절에서 다운로드를 받는 냅스터(Napster) 시대로 넘어가던 과도기였거든요. 그런 상황이 재지 제프나 여타 다른 음반사, 기획사, 스튜디오 등 음악인들의 수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죠. 처음으로 제가 막 발을 들일 시점에 재지 제프의 앨범은 메이저 음반사에서 유통하기로 계약이 잡혀있는 상황이었는데, 시장이 안 좋게 돌아가니까 음반사에서는 미리 잡힌 계약이나 작업, 판매 일들을 잘라내기 시작했어요. 시작한 시점에 그렇게 앨범 발매가 중단이 돼버려서 전 다른 길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인디 레이블로 가서 같이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요.

 

 

 

 

 

 

LE: 그렇게 해서 인디로 간 후에 하프투쓰(Halftooth)와 로우 버젯 크루(Low Budget Crew)에 몸담고 있었던 걸로 아는데, 그들과 일하는 건 어땠나요?

 

하프투쓰와 일하는 건 저에게 정말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제가 인디 레이블에 진출할 수 있던 기반이기도 했고요. 시행착오도 굉장히 많았지만 전 그 기회에 감사해요. 그때 우리가 처음 냈던 음반에서 제가 제작자를 맡을 수 있었거든요. 그때 제가 냈던 앨범은 컴필레이션 음반이었고 처음 일하자마자 벌써 음반제작자의 타이틀을 갖게 돼 버린 거죠. 그때 한 1년 정도 A&R(Artists and Repertoire)의 역할도 하면서 트랙을 모으고 아티스트를 고르고, 가사의 주제를 정하고 노래를 많이 들었죠. 또 누구한테 어떤 노래를 어떻게 시킬지, 어떻게 이 앨범을 만들고 그들을 홍보할 지에 대해서 늘 고민했었고 처음으로 발매되는 앨범을 통해 그 모든 경험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죠. 또 그때 했던 실수들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또, 하프투쓰 레이블은 CD 구매에서 디지털 다운로드, 일반 잡지에서 블로그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존재했었는데, 당시 많은 음반사들이 그 과도기를 잘 못 넘겼어요. 그 이유는, 그들은 이미 시장이 무너져가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잘되려면 그저 돈을 더 부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된다고 생각할 수가 없을 때였거든요. 저는 당시 그런 상황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유명 잡지사들을 통해 홍보를 한답시고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프로젝트들도 한 1-2년 후에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걸 많이 봤죠. 그리고 나중에 웹사이트나 블로그의 중요성을 늦게나마 깨우쳐서 그때가 돼서야 음악을 블로그를 통해 올리고 하는 걸 봤죠. 전 운 좋게도 적당한 때에 적당한 곳에서 그런 실수들을 겪고 장점을 찾아내서 새로운 변화에 적용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때의 그 과도기는 정말 많은 회사를 망하게 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의 커리어를 앗아갔어요. 저한테도 하프투쓰와 함께 하던 때는 (이 일을 하는 것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LE: 그렇다면 다이아몬드 디스트릭트(Diamond District)는 어떤 팀인가요?

 

전 모든 종류의 음악들, 특히 힙합의 세부 장르들의 음악들을 좋아해요. 상업적 힙합, 언더그라운드, 서부, 남부 힙합 기타 등등 다 좋아하죠. 그 중에서도 제 마음에 가장 와 닿는 건 클래식 힙합, 즉 90년대의 붐뱁(Boom-Bap) 스타일의 힙합이었어요. 전 항상 그런 붐뱁 음악관련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사는 워싱턴 디씨에서는 당시 그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1990년대에 워싱턴 디씨는 고고 음악이 성행하고 있었고 우리는 다른 도시들만큼 힙합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데에 큰 공헌을 한 곳은 아니에요.

 

그래서 전 어느 날 '만약 1990년대 워싱턴 디씨에 클래식 힙합, 즉 붐뱁 스타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테마에 맞춰서 다이아몬드 디스트릭트를 만들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같은 워싱턴 디씨 출신 음악인들 엑스오(XO)와 와이유(yU)를 만나서 팀을 조직하게 됐어요. 워싱턴 디씨의 도시 모양이 다이아

몬드고 DC는 원래 District of Columbia라는 뜻인데 Diamond District는 DC를 다르게 부르는 슬랭이에요.

 

그렇게 함께 하다가 알게된 게 있는데, 사람들이 그 아이디어를 참 좋아해주고 관심을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앨범을 인터넷으로 냈는데 난리가 난 거예요. 그때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투어도 하고, 지금 말하기도 쉽지 않은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어요. 결론은 지금은 현재 메이저 음반사를 통해 발매될 2집을 작업하고 있어요. 당시 모든 일들이 갑자기 폭풍같이 휘몰아치고 있을 때 무엇보다도 감사했던 건, 우리가 듣고 자라왔던 힙합의 전설적인 존재들이 직접 전화를 해서 앨범 정말 좋았다고 얘기해주신 거예요.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죠. 특히 드 라 소울(De La Soul)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모든 분들도요.

 

 

 

 

 

LE: 오드 어툼(Odd Autumn), 오드 스프링(Odd Spring) 등의 시리즈는 좋은 평들이 많았어요. 심지어 2010년 워싱턴 포스트가 선정한 '베스트 지역 힙합 음반' 에도 뽑혔는데요. 음악적으로도 전형적인 힙합이 아니라 신선한 느낌이 있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시리즈들을 이어나갈 프로젝트들을 계획하고 있나요?

 

그럼요. 저는 테마가 있는 앨범을 좋아해요. 저는 그냥 주제 없이 막 내놓는 앨범들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또 다른 계절로 Odd 시리즈를 이어 나갈 거냐는 질문도 받았었는데, 그렇게 하진 않을 거 같아요. 이미 충분히 만들어봤고, 지금까지 해놓은 걸로도 저는 만족하거든요. 물론 다른 주제로는 할 거 같아요. 가장 최근 낸 [Rock Creek Park]도 워싱턴 디씨 근처에 있는 Rock Creek Park을 주제로 한 인스트루멘탈 앨범이고요. 앞으로도 계속 주제 있는 앨범을 만들 거예요. 다이아몬드 디스트릭트도 90년대 붐뱁 스타일이라는 주제가 있는 앨범이었고 Odd 시리즈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 선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고요. [Rock Creek Park]도 워싱턴 디씨 출신인 저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곳이었고요. 어떤 주제를 또 하고 싶어질 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주제가 명확히 있는 앨범으로 갈 것 같아요.

 

 

 

 

 

LE: 앨범 [Travellin Man]은 색다른 시도였다고 평가됩니다. 트랙 제목도 도시 명이고, 트랙마다 지역의 특징을 담으려는 듯 보였습니다. 혹시 실제로 여행을 다니면서 영감을 얻어 만든 것인가요?

 

아뇨, 제가 [Travellin Man]을 만들 당시 투어하던 여러 도시에 만들어졌어요. 전 그때 투어하고 있었고 전 늘 랩탑(Laptop)을 들고 다니면서 음악작업을 하거든요. 늘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기차나 비행기나 버스나 상관없이요.

 

 

 

 

 

 

LE: 그럼 그냥 도시는 이름만 붙인 건가요? 아니면…

 

아, 제가 그 트랙을 만든 도시의 이름을 따서 제목을 붙였어요. 만약 트랙 제목이 <Stockholm>이라면 그 트랙은 제가 스톡홀름에서 만든 거고 트랙제목이 <Khartoum>이면 그건 제가 카툼에서 만든 트랙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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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군요. 그럼 주로 어떤 장비들로 작업을 하나요?

 

제 장비는 굉장히 단순해요. 전 제 랩탑으로 작업하고, 주로 프로툴tm(Protools)를 써요. 비트도 프로툴스로 만들고 보컬도 프로툴tm로 녹음하고.. 모든 걸 다 프로툴스로 하죠.

 

 

 

 

 

LE: 멜로 뮤직 그룹(Mello Music Group)과의 인연이 깊어 보입니다. 어떻게 함께 하게 됐고, 또 당신이 느끼기에 MMG는 어떤 곳인가요?

 

저는 2008년쯤부터 멜로 뮤직 그룹과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엔 오너인 마이클 톨레(Michael Tolle)가 저한테 많은 (곡)프로덕션을 부탁했어요. 굉장히 많은 프로덕션을 부탁을 하기에 뭐에 쓸 거냐고 물어봤더니 컴필레이션을 만들려고 한다더군요. 그래서 전 이미 하프투쓰와 함께 컴필레이션 음반을 제작해 본적이 있으니 아예 손잡고 제대로 같이 일 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그렇게 하자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첫 번째 음반 [Mental Liberation]을 발매했는데 꽤 잘 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인터넷에서 제가 1년 반 정도 전에 블로그에 제 음악을 공짜로 발매한 걸 보고 아직 돈 주고 살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더 이상 공짜로 제공하지 말고) 정식 발매를 하자고 하더군요. 저도 그런 생각을 아예 안 한건 아니에요. 그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결국 둘 다 어느 시점에서 동의한 건, 이미 공짜로 발매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돈을 주고라도 구매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많긴 많다는 것이었어요. 그 일이 멜로 뮤직 그룹에 어떤 새로운 철학을 주는 도화선이 된 거 같아요. 또 우리는 좀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어쨌든 우리는 음반사니 음반을 팔아야 하긴 하지만, 음반을 파는 방식을 옛날처럼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요.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여러 가지 새로운 방식이 성행하고 있고 우린 여느 때보다 팬들에게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팬들에게 (실력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해 공짜로 음악을 어느 정도 제공하면 그들은 결국 우리를 지지해주게 되고, 그럼 우린 그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 음악을 더 열심히 만들어서 그때 팔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제가 여러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나니까 마이크 톨레가 절 이사회로 불러서 실무 담당 디렉터로 임명하더라고요. 간단하게 말하면, 전 제가 싸인된 음반사를 위해 음악도 하고 비지니스 일도 하는 거죠. 그 전에는 저 스스로를 위해서만 일하면서 하프투쓰와 멜로 뮤직 그룹의 중간쯤에서 제 투어도 잡고, 컨설팅도 하고 매니지먼트도 하고 그러고 있었는데, 그가 제 일을 하는 것처럼 멜로 뮤직 그룹의 다른 아티스트를 위해서도 그런 매니지먼트 관련 일들을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제 의무가 막중하죠. 어떤 날은 음악을 잘 만들어야 하고 그러다가 어떤 날은 또 비즈니스로도 신경 써야 하고. 마이크 톨레와 저는 그렇게 책임을 나눠서 지고 있는 사이에요.

 

 

 

 

 

LE: 당신은 MMG를 대표하는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떠오르는 레이블, 주목받는 레이블인 건 사실이지만 힙합씬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성향의 언더그라운드 힙합음악은 침체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분명히 메인스트림의 어떤 부분은 달라지고 있고, 특히 유럽은 더 그런 거 같아요. 아시아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본적으로 듣는 음악의 스타일이 언더그라운드 힙합 음악에서 다른 음악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미국의 사정은 약간 반대인 거 같아요. 현재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는 큰 규모의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있고 특히 의식 있는 가사가 중심인 서정주의 쪽으로 변화하고 있죠. 프로듀싱 부문에 있어서도 메인스트림이라고 해도 될 만큼 괜찮은 프로덕션들로 바뀌어가고 있어요. 아마 세상이 원하는 음악이 가는 방향과는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미국은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저한테는 사실 늘 똑같았던 것 같고요. 적어도 저는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거든요. 요즘 각광받는 제이콜(J.Cole)이나 드레이크(Drake),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등도 다 언더그라운드 힙합 출신이고 서정주의 가사가 중심인 래퍼들이고 샘플을 기반으로 한 음악들을 하고 있고요. 그들은 스스로 메인스트림과 연결되는 길을 찾았고 팬들은 그들을 지지하죠. 그래서 저는 절대 언더그라운드 힙합음악의 침체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적어도 미국에서 만큼은요. 그리고 이 음악을 하는 저한테는 미국이 세상에서 가장 큰 마켓이기도 해서 별로 걱정 안 해요. 사실 저는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최고의 시기. 아까 말씀드렸듯이, 다이아몬드 디스트릭트의 새로운 앨범은 메이저 음반사에서 계획한 거예요. 왜냐하면 그런 사운드들이 다시 미국에 돌아오고 있거든요. 저한테는 굉장히 좋은 상황이죠.

 

 

 

 

 

LE: 언더그라운드 힙합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다른 장르나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해볼 생각은 없나요?

 

그럼요. 전 언제나 다른 장르를 많이 시도해보고 싶어요.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어요. Odd 시리즈도 그런 다양한 스타일을 개척하고 시도해보는 것들 중의 하나의 일환이었죠. 늘 다른 스타일을 해보고 싶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작업하는 데에 관심도 많아요. 전 힙합하는 사람 이전에 한 명의 음악인이고 그냥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거든요.

 

 

 

 

 

LE: 시도해 본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장르를 해보고 싶나요?

 

음… 전 필름 스코어링(Flim Scoring)을 꼭 해보고 싶어요. 여러 가지 혼합된 사운드가 주는 다이나믹한 것들이 좋아요.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이나 얼터너티브(Alternative) 음악이나 인디 음악 같은 것들을 많이 시도해보고 싶고요.

 

 

 

 

LE: MMG의 뮤지션들이 대부분 가사를 쓸 때 격한 단어나 세속적인 이야기들을 자제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가사를 쓸 때 추구하는 방향이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게 가장 기본적인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차이점인 것 같아요. 우리는 꼭 얼마나 잘 팔릴지에 초점을 맞춰서 가사를 써야 할 필요도 없고, 음반사들에게서 이 곡은 된다, 안 된다 하는 허락을 받아야 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자유는 저희에게 음악의 본질적인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해주죠.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려는 곡을 쓰려고 하는데, 거기에 더 복잡하고 더 많은 한정을 두게 되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없게 되는 건 당연한 결과잖아요.

 

대중에게 어필하려면 최대한 단순하게 노래를 써야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고, 좀 더 복잡하게 쓰거나 한정을 두면 둘수록 더 적은 사람이 공감하게 되죠. 그래서 메인스트림 음악은 단순한거 같아요. 왜냐하면 더 넓은 층을 아울러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굉장히 복잡해질 수 있죠. 왜냐하면 처음부터 넓은 층을 아우르는 게 아니니까요.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이해시키려고 만들어진 것도 아니죠. 분명 제 노래를 듣고 무슨 말인지 아예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제가 선택한 단어나 라임들, 저의 표현방식이나 제가 말하는 것들이 어렵거나 심하게 다듬어져서 한 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고요. 그러니 저희가 하는 음악 스타일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게 당연하고 그 말은 곧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자유가 있다는 말도 되는 거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걱정도 전혀 할 필요가 없고요.

 

 

 

 

 

LE: 그럼 만약 메인스트림 쪽에서 같이 일하자고 컨택이 온다면 해 볼 의향이 있나요?

 

당연하죠. 전 아마 2012년에는 메이저 음반사들을 통해서 많은 음반을 발매하게 될 것 같은데요. 현재까지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보전하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최근 메이저 음반사들이 깨닫고 있는 것들 중의 하나가, 이제는 더 이상 한 가지 방식으로 일이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어요. 특히 한 명의 뮤지션에게 모든 걸 투자해서 백만장을 파는 상황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요. 차라리 작은 규모의 여러 뮤지션들을 조금씩 지원해주고 그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종국엔 더 큰 규모의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죠. 그리고 그 뮤지션들이 가진 고유의 스타일과 그 스타일을 사랑하는 팬층을 존중해줘요. 그리고 그들을 뽑죠. 만약 내가 팬이 조금 있고 또 누가 팬이 조금 있는데 우리가 같이 앨범을 내면 음반사들은 우리 둘 다한테서 돈을 한꺼번에 벌어들일 수 있죠. 그래서 예전처럼 아티스트의 스타일을 억지로 바꾸려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이 최고의 시기라고 생각해요.

 

 

 

Oddisee (Feat. Toine of DTMD) - Different Now

 

 

Oddisee - The Blooming

 

  

 

LE: 본인의 사운드를 정의하자면? 오디시의 음악이란 어떤 것인가요? 소울풀하고 감성적인 느낌이 많다고 생각되는데요.

 

흔들리는 드럼, 감성적이고 소울풀한 느낌에 옛 것과 새로운 것들이 섞인 음악이에요. 아날로그하면서도 동시에 일렉트로닉하죠. 또 감성적이에요. 감성과 관련이 많고 드럼이 특히 그렇죠. 저의 드럼은 사람들을 위 아래로 끄덕거리게 하는 것보다는 약간 사람들로 하여금 좌우로 천천히 원을 그리면서 비트를 타게 만드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LE: ‘Oddisee Music’이라는 레이블 이름으로 앨범을 내기도 하셨죠. Odd 시리즈도 그렇게 나왔고요. 굳이 그러한 방법을 택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음… Oddisee Music은 레이블이 아니에요. 그냥 브랜딩이죠. 그냥 제 도장을 찍었다는 정도로 생각하시면 돼요. 만약 어떤 음악에 Oddisee Music이 찍혀있는 걸 제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 본다면, 그 음악도 좋아하게 될 수 있다는 거죠. 전 여러 명의 아티스트와 일하고 있고 그들은 별로 유명하지가 않은데, 전 그런 새로운 무명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는 것도 굉장히 좋아해서 사람들이 Oddisee Music 이라는 걸 보고 신뢰를 갖고 그 음악을 듣게 하고 싶어요. 그렇게 브랜딩이 된 걸 보면 사람들은 제가 참여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제 비트를 어디서 구해서 거기다가 랩을 해서 뭔가를 내고 프로듀싱은 제가 했다고 써놓는데 어쩔 때는 저는 그 사람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아예 모르는 때도 있어요. 제 이름을 팔아서 홍보하거나 그런 거죠. 근데 거기에 Oddisee Music이라는 말이 없으면 그건 제가 한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제 음악을 그냥 갖다 쓴 거예요.

 

 

 

 

LE: 영감의 원천이 되는 건 주로 어떤 것들인가요? 평소의 생각이나 사상, 책 등이 있다면?

 

저희에게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은 삶 그 자체에요. 전 살아가는 것을 사랑하고, 살면서 경험하는 것들을 사랑하고, 또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좋고 나쁜 것들이 포함된 삶 자체를 사랑해요. 깨어있을 때 우리의 눈은 마치 켜져 있는 텔레비젼 같은 거예요. 그리고 저는 눈으로 그 모든 걸 끊임없이 보고 받아들이고 분석해서 제 음악으로 표현해내려고 하죠.

 

 

 

 

 

LE: 좋아하는 MC와 Producer를 각각 3명씩만 꼽아본다면?

 

제가 늘 좋아하는 MC는 제이지(Jay-Z)에요. 지금 가장 좋아하는 MC는 드레이크고요. 제가 늘 좋아하는 프로듀서는 제이딜라(J.Dilla)고 지금 가장 좋아하는 프로듀서는 카니예 웨스트에요.

 

 

 

 

 

LE: 그들 외에 눈 여겨 보고 있는 신인, 혹은 같이 작업해 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저는 켄드릭 라마와 같이 작업해보고 싶어요. 더 루츠(The Roots)와도 해보고 싶고… 그리고 또 많아요. 페이스트(Feist)와도 하게 되면 제 꿈을 이루는 게 되는 거고… 또 본 아이버(Bon Iver)와도 일하고 싶고.. 반 헌트(Van Hunt)와도 작업하고 싶어요.

 

 

 

 

 

LE: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데, 메이저 급 정규 앨범은 언제쯤 낼 계획인가요?

 

제 다음 솔로 앨범은 지금 멜로 뮤직 그룹과 함께 발매할 예정이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다이아몬드 디스트릭트는 이미 메이저 음반사를 통해 발매 기회를 얻었어요. 그리고 2012년에는 꼭 메이저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를 위해 곡을 쓰고 싶어요. 그렇지만 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전 굉장히 좋은 상황에 있거든요. 내가 싸인된 레이블을 위해서 비지니스 부분 일까지 해주는 건 정말 잘 된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편안해요. 그렇지만 더 좋은 딜이 생기면 당연히 고려해볼 거예요.

 

 

 

 

 

LE: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말해주세요. 

 

제 솔로앨범은 뭐 될 때 알아서 나올 것 같고… 2012년에는 여러 아티스트들을 내놓게 될 것 같아요. 캔자스시티 출신의 스틱 피규어(Stick Figure), 런던의 트랜퀼(Tranquill), 워싱턴 디씨와 런던의 올리비 데 소울(Olivie De Soul) 등등… 다이아몬드 디스트릭트의 멤버인 와이유의 앨범도… 그리고 인스트루멘탈 앨범, 컴필레이션 앨범도 나오고요. 전 지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프로듀싱하고 있어요. 현재 누구와 작업한다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굉장히 많은 프로덕션 목록에서 제 이름을 볼 수 있으실 거예요. 

 

 

 

 

 

LE: 매일 매일 일해야겠네요.(웃음)

 

(웃음) 매일 해야죠. 전 이미 2013년에 있어요. 멜로 뮤직 그룹은 이미 2012년 계획을 다 짜놨기 때문에 우린 2013년의 계획을 이뤄나가고 있다고 보면 돼요.

 

 

 

 

LE: 아시아의 아티스트들과 작업할 계획이나 의향도 있나요?

 

직접적인 계획은 없어요. 왜냐하면 직접적인 연락망이 없어서요. 근데 연락이 오면 당연히 할 거 같아요. 하지만 전 공짜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약 공짜를 원하면 저에게서 답변을 받으실 수 없을 거예요. (웃음)

 

 

 

 

 

LE: 마지막으로 한국에 있는 팬들과 힙합엘이 회원들에게 끝 인사 부탁합니다.

 

힙합 엘이에게 정말 감사하고 힙합 음악을 사랑해주시는 여러분들도 감사합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에게도 모두 감사하고 모든 힙합 리스너들도 사랑합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Peace!

 

 

 

관련링크 |

트위터: twitter.com/oddisee

웹사이트: www.mellomusicgroup.com

 

 

인터뷰 | Kayla

인터뷰, 글 | Bluc, h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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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 4.27 18:06
    와 대박!! 선리후감이네요이건
  • 4.27 20:26

    번역 인터뷰인 줄 알고 클릭했더니...올!?

  • 4.27 21:11

    오오미!!!! 엘이대단합니다!!! 멜로뮤직그룹 실력에 비해 너무 안알려진거같아요 한번꼭들어셨으면!!

  • 4.27 22:06
    우어 오디씨

    진짜 그 도시에서 만들었군
  • 4.28 08:47

    저도 라마와 오디씨의 조합을 한번 듣고싶네요

  • 4.29 12:55

    뭔가 새로 샬롱 나온 느낌 들어서 와봤더니....대박(!)

  • 5.2 23:32

    이게 말로만 듣던 브루클린산 인터뷰인가여ㅋㅋㅋ

  • 5.6 23:43

    멜로뮤직그룹은 너무 인디펜던트라 더 성장하길 바라지만 oddisee 는 훌륭한 뮤지션! 말하는게 영리해보이네요.


  • 1.9 03:10
    오디씨 인터뷰가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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