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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플로우 (Deepflow)

title: [회원구입불가]snobbi2020.04.15 21:00조회 수 18449추천수 19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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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y Deep]과 [양화]라는 명작을 발표하며 앨범 장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딥플로우(Deepflow). 지난 몇 년간, 그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힙합 커뮤니티의 논란 속 중심에 있었다. 그 사이 그는 [양화] 이후 달라진 본인의 생각과 이야기를 담아낸 앨범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고, 마침내 4월 13일 정규 4집 앨범 [FOUNDER]가 세상에 등장했다. 이번 앨범은 이전 딥플로우의 작품과 전혀 다른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느와르 영화의 OST를 듣는 듯한 분위기도 인상적이다. 앨범에 담긴 딥플로우의 서사 역시 자기 자신과 주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양화] 이후 그의 행보가 시간순으로 잘 담겨 있다. 이렇듯 탄탄한 프로덕션과 스토리텔링이 담긴 [FOUNDER]는 벌써부터 올해의 앨범으로 꼽힐 만큼 압도적인 호평을 얻고 있다. 앨범 속 사운드, 가사, 그리고 게시판 속 논란에 대한 딥플로우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힙합엘이가 그를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딥플로우 인터뷰는 영상과 서면으로 둘 다 확인할 수 있습니다)







LE: 오랜만에 힙합엘이 회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D: 약 5년 만에 인터뷰하는 거 같아요. 반갑습니다.

 

 




LE: 앨범 준비 때문에 정신없으셨을 것 같은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앨범을 마무리하고, VMC에서 준비하는 (다른) 프로젝트들을 하고 있어요. 프로듀서 역할도 하고 있고, 밀린 피처링 작업도 하고 있고요. 집과 스튜디오를 계속 반복해서 오가고 있는데, 아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저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그럴 거예요. 저희한테는 음악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시즌이 온 거죠.






LE: 딥플로우 님의 근황 중에는 작년 '다모임' 활동을 빼놓을 수 없을 거 같은데요. 베테랑 딥플로우 씨에게도 다모임 활동은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물리적인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청춘을 많이 보낸 사람으로서 (요즘에는) 새로운 자극이나 재미를 느낄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레이블을 운영하다 보니까, 동생들이랑 어울리더라도 나 혼자 외딴 섬 같은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같이 동갑 친구들과 함께 다모임을 하면서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도 나누고, 퍼포먼스 하는 것들이 개인적으로 큰 에너지가 되었어요. 몇 년간 회사 리더, 대표의 삶만 살다가 제 개인으로 돌아간 순간이여서 너무 좋았죠.

 




 

LE: 몇 달 동안 다모임 활동과 앨범 작업을 병행하느라 힘들진 않으셨나요?

 

[FOUNDER] 같은 경우에는 제가 작업해야 할 몫을 끝낸 상태였고, 이후에 다모임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홀가분한 상태였지만, 빡세긴 했어요. 힙합 경연 프로그램을 할 때보다 촬영도 많았고, 더 신경 써야 할 부분도 있던 거 같아요. 시간을 좀 많이 써야 했고, 중간중간 작업도 해야 했거든요. 아무래도 (다모임이) 딩고 프리스타일(Dingo Freestyle)이랑 같이 협업한 거였잖아요. 서로 상의하면서 진행을 해야 하다 보니 좀 더 신경을 많이 쏟았던 거 같아요.

 

 




LE: 조금 전에 말씀하신 대로 5년 만의 인터뷰인데요.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주변의 상황들이 많이 바뀌다 보니, 외부에서 봤을 때도 딥플로우라는 사람의 성격이 많이 바뀐 거 같아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확히 그런 거 같아요.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저라는 사람의 코어는 비슷하지만, 제 개인의 커리어에 대해서만 몰두했던 생각이 아주 흐릿해졌어요. 이 변화가 성격에도 많이 반영된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이 때문에 제가 SNS를 활용하는 방법도 많이 바뀐 거 같고요. 제가 많이 성격이 바뀐 거 같다고 저 자신도 자각하고 있긴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저한테 이야기해주지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신기한 거 같아요. (웃음) 나이를 물리적으로도 먹기도 했고, 제가 책임져야 할 게 많아져서 말조심하는 것도 있는 거 같아요. 무엇을 위해서 내가 이런 말은 하지 않고 참아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성격 자체가 불교적인 마인드로 바뀐 거 같아요. (웃음)




 

 

LE: 5년 동안 환경적으로 변화한 부분이 있을까요?

 

일단 사무실이 바뀌었고, 레이블 식구들이 더 많이 늘어났고, [양화] 때와 달리 일을 한다라는 개념에 더 가까워졌죠. [양화] 때의 저는 오로지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고요. 단체의 리더이긴 했지만, 지금은 음악을 병행하는 사람 같은 거죠.

 

 




LE: [양화] 때는 개인 커리어에 좀 더 집중했다면, 지금은 부양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한 몫을 차지하겠네요.

 

[양화] 때는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는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던 게 자존감이었던 거 같아요. 그렇지만 지금이랑은 상대적으로 다르죠. 그때도 그런 기분을 느끼긴 했지만, 지금은 저의 생계와 애들의 생계까지 신경 써야 할 포지션이다 보니 (리더의 자리가) 무게감이 다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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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다면 사장님으로서의 딥플로우는 어느 정도 역할을 수행하는 거 같고, 점수를 매기자면 몇 점을 주고 싶으신가요?

 

제가 기억을 더듬어보면, 5년 전 인터뷰에서는 ‘나는 리더로서 제격이다!’ (전원 웃음) 이런 이야기를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 와서 셀프 체크를 해보면… 많이 다른 거 같아요. 나는 자격이 없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리더 역할은 나랑 잘 안 맞고 어렵다. 이런 마음이 크죠. 그래서 사장으로서 점수를 매기자면 참담할 정도로… (웃음) 생각하고 있어요. 겸손을 떠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나는 이런 걸 잘 할 수 있는 사람인가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 점수는… 여러분이 평가해 주세요. (전원 웃음)

 

 




LE: 다모임 분들도 그렇고, 스윙스(Swings) 씨처럼 주변에 리더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과 스스로를 비교할 때도 있나요?

 

엄청 하죠. 엄청나게 하고, 그런 친구들을 볼 때마다 너무 대단하다고 느끼죠. 동종업계의 비슷한 포지션인 친구들을 보면, ‘저 새끼들은 와… 진짜 뭐지?’ 할 정도로 진짜 대단한 친구들인 거 같아요. 절 거기에 대입시키면서 가끔은 ‘그래, 나도 잘하고 있어’란 용기를 받기도 하고, 어떨 때는 ‘저런 애들이 진짜 리더이고, 저런 걸 할 만하다’는 생각도 하고요.

 




 

LE: 대표를 한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시나요?

 

저는 가정하는 걸 되게 싫어하는 편이라서, 그냥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후회하지 않으려고 많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LE: 다시 근황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보일링 포인트(Boilling Point) 프로젝트를 통해 이현준 씨와 록스펑크맨(Loxx Punkman) 씨에게 많은 지원을 하셨잖아요. 보일링 포인트 프로젝트는 계속될 예정인가요?

 

네, 이제 곧 나올 게 하나 있고요. 제가 염두하고 있는 친구들도 몇 명 있어요. 앞으로 장기적으로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시면 좋을 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제가 먼저 (뮤지션들에게) 접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제가 굳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프로젝트의 소식을 알고 저에게 접근해오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까 이걸 필연적으로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어요. 오히려 이 아티스트랑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선별 기준을 맞추기가 어려운 거지, 진행 자체는 계속해 나갈 거 같아요. 

 




 

LE: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아티스트들의 역량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보일링 프로젝트의 모티브나 컨셉 자체가 큐레이션이다 보니, (어떤 아티스트를 선정할지) 결국엔 저와 VMC 임원진들이 결정하거든요. 취향이 많이 반영되고, VMC 프로젝트에서도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한 부분이에요. “누구는 하고 왜 누구는 안 하느냐.”, “기준이 뭐냐?” 이러시는데, 기준은 사실 제 마음이거든요. (웃음) 이게 정부에서 하는 프로젝트도 아니다 보니, 결국은 저의 취향이 많이 반영된 거고. 저희 반경 안에 있는 친구들이 될 확률이 더 큰 거고요. 무작위로 오는 메일은 사실 판단하기 쉽지 않아요. 예를 들면, 고등학생 혹은 중학생이 믹스테입을 들어 달라며 데모 메일을 보내고, 또 어떤 DM으로는 보일링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메시지가 오죠. 이런 걸 분별력 있게 걸러내는 건 힘들어요. 그러다 보니까 (VMC를) 찾아오는 주변 뮤지션들에게 관심을 더 가지게 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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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FOUNDER]라는 정규 앨범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보려 하는데요. 어떻게 이번 앨범을 구상하게 되었고, 언제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셨나요?

 

저는 정규 앨범을 어떤 시점 이후로는 아이디어가 없으면 만들지 않아요. (정규 앨범을 만드는 작업이) 진짜 힘들거든요. 진짜 힘들어서 “나 이제 이런 거 안 한다, 이런 앨범 안 만든다.”라고 수없이 했죠. 그래서 [양화]를 내고 난 다음에는 많은 걸 쏟아내서 아이디어가 고갈되다 보니깐, 정규 앨범을 더 이상 만들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또 공교롭게도 [양화] 이후로 삶이 많이 달라져서 아이디어가 생기게 된 거죠. 

 

(저는) 앨범을 만든다는 게 무한하지 않은 젊은 날, 유한한 시간 안에서 그때그때 뭔가를 기록하는 행위라고 생각했거든요. (앨범을 만든다는 건) 나의 족적을 남기는 회고록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고, 이야깃거리가 생기니 이걸 풀어봐야겠다는 자연스러운 동기부여가 생긴 거고요. 그래서 어떤 걸 하고 싶다는 건 있었는데,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앨범 제목이나 컨셉이 명확히 있어야 했어요. 이후 고민을 많이 하다가 ‘FOUNDER’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면서 본격적인 진행을 하게 된 거 같습니다. 앨범 작업은 2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2년을 골고루 앨범 작업을 위해 쓴 건 아니지만요. 

 

 




LE: 중간에는 “강변북로”나 “Prime Time”, “SOFA” 같은 개인 싱글도 발표하셨는데요. [FOUNDER]를 내기 전에, 다른 방향의 앨범이나 EP를 발표할 생각은 혹시 없었나요?

 

중간에 사실 마일드 비츠(Mild Beats) 형과 블레이저스(Blazers)라는 팀으로 발표한 EP도 있고, 디액션(D.Action)과 함께 믹스테입 형식으로 낸 [Jam Cook 2]도 있고, VMC 컴필레이션 앨범도 만들었잖아요. 저는 컴필레이션 앨범이나 단체 곡도 제 노래, 앨범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강변북로”, “SOFA” 같은 곡으로 그때 하고 싶었던 걸 간단하게 했던 거 같고, 정규 앨범을 만들 때는 아예 모드가 달랐던 거 같아요. 

 

아, 사실 [FOUNDER]를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전에 다른 걸 하고 싶었어요. 그냥 오락적인 앨범을 만들고 싶었고, 실제로 던밀스(Don Mills)랑 프로젝트 앨범을 믹스 직전까지 만들어 놨다가 내지 않았어요.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다가 내지 않은 건 거의 그게 처음인 거 같아요. 아예 쌩 트랩이었고, 제가 던밀스 색깔에 많이 묻어가는 앨범이었어요. [TRAPICANA JUICE]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런데 고민이 되더라고요. 이거 지금 내면 안 될 거 같다. 만들 때는 진짜 재미있어서 한 거고, 한 마디로 순수창작이었거든요. 그런데 시대가 원하지 않을 것 같다는 서늘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던밀스한테 미안하지만 (웃음) 이건 지금 못 내겠다(고 했죠).

 

 




LE: 사실 정규 앨범이란 포맷이 이전보다 주목도가 덜하잖아요. 그에 따른 고민이나 부담 같은 게 있진 않으셨나요?

 

근데 저는 좀 옛사람이라서... 시대가 변했더라도, 코어가 그대로라서 (스스로) 정규 앨범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죠. 앨범을 만들 때 부담은 되었지만, 못 할 짓을 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LE: 또, 전작인 [양화]가 반응이 너무 좋다 보니 차기작을 만들 때 부담은 없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오히려 [양화]를 내고 인터뷰를 할 당시에는 다음 작품을 내는 데에 대한 부담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그때와 지금의 저도 너무 다르고, [양화]에 대한 감상이 달라졌단 사람들이 있었어요. ‘[양화]에서 썼던 가사랑 지금의 딥플로우가 너무 달라져서 그때의 받은 감동이 사그라졌다. 감상평이 달라졌다.’라는 반응도 많이 봤고, 거기에 대해서 저 역시 공감을 했기 때문에.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은 크게 안 했어요. [양화]는 [양화]이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지금의 저를 담은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은 없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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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작년에 공개하신 “36 DANGERS”는 티저 싱글이라고 칭하셨었는데요. 이 곡을 선공개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36 DANGERS”가 가장 마음에 들어서 빨리 작업을 했어요. (그때는) 마음이 급했죠. 저는 앨범 컨셉이 나오면 진행을 빨리 해요. 가사, 컨셉, 트랙별 주제, 시놉시스가 딱 나오고, 가사를 뭘 써야 할 지 명확해지면 그걸 구현해내는 게 빠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굉장히 앨범 작업이 빨리 마무리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후반 작업, 녹음하고, 편곡하는 작업이 길었어요. 

 

또, (타이틀의) 36이란 수에 꽂혀서, 제가 한국 나이로 36살 일 때 “36 DANGERS”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랩 마디 수도 36마디였고, 3월 6일에 날짜를 맞추고 싶어서 급한 마음에 빨리 냈죠. 그런데 숫자 어그로가 별로 안 끌린 것 같아요. (전원 웃음) 사람들이 이런 걸 느낄 줄 알았는데, 그 날짜에 안 내도 되었겠다 싶었죠. 그래도 제가 “36 DANGERS”를 낸 지 1년이 지났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요번에 무슨 앨범이야? 혹시 “36 DANGERS”랑 비슷한 사운드야?”라고 물어보면 “어, 맞아.”라고 답을 하면 되니까 (그런 면에서는) 좋았던 것 같아요.

 




 

LE: 실제로, 작년 3월에 “36 DANGERS”를 발표하면서 앨범이 상반기에 나올 거란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게 1년이나 지나게 되었어요. (웃음) 앨범 작업이 늦어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가요? 지금 조금 당황하신 거 같은데요...?

 

(웃음) 그렇죠. 간과를 많이 했어요. 작업 방식이 평소와 다르다 보니까 이게 되게 오래 걸릴 거란 걸요. 보통 컴퓨터로 (작업이) 이루어지는 힙합 앨범은 래퍼가 녹음을 끝내면 80% 이상 작업을 한 거거든요.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 같은 경우에는 제가 (녹음을) 끝내는 게 전체 작업에서 20~30% 정도였던 거죠. 

 

그래서 제가 “다 했으니까 늦어도 6월에는 내자.” (웃음) 이랬었는데 프로듀서가 “안된다고. 이건 빨라야 10월이다.”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절대 안 된다고 했죠. 그러다가 10월이 되었는데도, 프로듀서가 “안된다, 12월로 미뤄야 한다.” 12월이 되어서도 “1월로 가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미뤄졌어요. 저는 답답했죠. “이게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싶었는데, 나중에는 저도 많이 공감하게 되었죠.

 

이런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해 본 사람이라면 속도가 더 빨랐을 수도 있었지만, (프로듀서랑 제가) 서로 같이 처음 해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이런 과정을 습득해야 할 시간이 있어야만 했죠. 세션 작업도 오래 걸렸지만, 사실은 제가 또 곡을 갈아엎는 식으로 변심도 많이 했어요. 제가 짜 놓은 랩은 그대로 있지만, 배경음악을 교체하는 과정이 많았던 거죠. 

 




 

LE: 실제로 사운드에 엄청난 신경을 썼다는 게 느껴진 앨범인데요. 엘 마이클스 어페어(El Michels Affair)의 [Enter The 37th Chamber],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의 [12 Reasons to Die], [36 Seasons], [Sour Soul]와 같은 라이브 세션과 함께 한 작품들, 그리고 [Shaft]와 같은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 OST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언제부터 이런 사운드에 꽂히셨던 건가요? 또, 왜 이번 앨범에서 이러한 사운드를 시도하셨나요?

 

사실 힙합 팬들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운드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도 예전부터 고전 소울을 샘플링한 곡들을 앨범에 많이 수록했고, 지금도 그런 사운드를 되게 좋아해요. 실제로 어릴 때부터 고전 음악을 많이 디깅했고요. 그런 과정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런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새 앨범에서 하고 싶었던 사운드가 명확해졌거든요. 갑자기 전자 사운드, EDM을 (제 음악에) 접목하는 건 관심이 없고, 제가 꾸준히 좋아해왔던 사운드의 농도를 짙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죠. 

 

그래서 이런 생각을 재미있게 구현할 방법을 고민해보다가 들었던 생각이, ‘어떤 (고전) 곡을 샘플링을 하는 게 아니고, 샘플을 따고 싶을 만한 곡을 우리가 직접 만들자.’ 이게 (이번 앨범을 작업할 때의) 첫 목표였어요. 예를 들면 소울이나 훵크(Funk)나 재즈 같은 곡에서 기본적인 샘플링을 할 때 ‘이 부분을 계속 무한 루프시켜서 여기에다 랩 하고 싶어.’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 마음을 모두가 아니까, 우리가 차라리 직접 만들어보자. 그런 의도였던 거 같아요.

 

그리고 말씀하신 에이드리언 영(Adrian Younge)과 배드배드낫굿(BADBADNOTGOOD)이 고스트페이스 킬라랑 함께 했던 앨범들이 저의 그런 니즈를 충족시켜줘서, 자연스럽게 모티브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런 사운드를 선택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던 것 같아요. 또, 똑같은 작법을 계속 유지하려면 유한한 범위에서 디깅을 해야 하다 보니 소스도 고갈이 되었고요. 이미 다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이제 내가 원하는 소스들을 어디에서 구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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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고스트페이스 킬라의 [12 Reasons to Die]는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가 초기에 작업했던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 장르 영화음악에 영감을 얻어서, 이미 관계자들에 의해 시놉시스와 시나리오가 작성된 상태로 작업에 들어간 앨범인데요. [FOUNDER]의 경우에는 어땠나요?

 

저희는 저와 프로듀서가 소통했어요. 저도 시놉시스를 짜고, 트랙 리스트를 짠 다음에 가사를 진행하는 편이거든요. 정확하게 순차적인 작업은 아니지만요. 이렇게 써봤다가, 디벨롭하거나 빠지는 과정을 조금 거친 다음에 정확한 트랙 리스트가 나와요. 거기에 맞춰서 밀도 있게 가사를 채워 나가는 스타일인데. 이걸 프로듀서한테 설명을 해줬죠. “스토리는 이런 거고, 난 영화 같은 앨범을 만드는 걸 좋아하고, 이게 OST처럼 들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선택할 작법도 이런 거고, 네가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아서 이런 배경음악을 만들어 주면 어떻겠냐?”

 

그렇지만 단순히 “우리 고전 레트로풍 소울, 재즈, 훵크 음악 같은 걸 할 거야.” 이런 말로는 설명이 다 안 되는 거죠. 왜냐하면 (사람마다) 트랙에서 느끼는 각각의 정서들이 있고, 심지어 가사를 보여줘도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잖아요. 근데 저는 (트랙에서) 딱 내고 싶은 정서를 (프로듀서가) 그대로 구현했으면 하는 바람에 계속 설명해줬죠. “이 트랙은 배경이 이런 느낌이고, 톤앤매너는 이런 거야, 주인공이 지금은 슬픈 거고, 이건 기쁜 거야.” 이런 식으로 많은 토론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말씀하셨던 것처럼 [FOUNDER]에도 이미 시나리오가 존재했던 셈이죠.

 

 




LE: 고스트페이스 킬라 이외에 “36 DANGERS”라는 싱글 타이틀도 그렇고, 여러모로 우탱 클랜(Wu-Tang Clan)을 향한 오마주가 드러나는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요.

 

르자(RZA)가 우탱클랜에서 보여주었던 디깅 방식이나, 원곡에서 특정 파트를 따오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잖아요. 동양적인 테마를 지닌 파트나, 이소룡 영화의 OST에서 샘플을 따온다든지. 이런 (르자의) 사운드가 저를 매혹시킨 거라서, 기본적으로 저의 취향으로 반영된 거 같아요. 누군가 듣기에는 뽕 끼 있는 음악이나 트로트를 틀어도 저한테는 ‘이거 우탱인데?’란 생각이 들거든요. (웃음) 그래서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 거 같아요.

 

 




LE: 딥플로우 씨가 워낙 컬트 영화를 좋아하시다 보니, 이런 감성이 본인에게 체화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컬트적인 맛, 소위 말하는 B급이라는 거에 너무 열광하고 있어요. 제가 음악이나, 만화나, 영화나 문화 전반에서 그런 감성을 오타쿠적으로 좋아하는 게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 창작물에서도 (이런 감성을) 끊임없이 반영하고 싶어요. 그래서 붐뱁 비트를 만들 때도, 인트로에 넣는 옛날 만화영화 대사나 고전 대사 같은 걸 이용해서 우탱식의 오마주를 많이 넣는 편이죠. 제 취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계속 맛보여주고 싶은 거죠. ‘나 이런 거 좋아해. 혹시 나 같은 취향 있으면 너도 느껴줘.’ 이런 거죠. 근데 요즘에는 그런 (걸 느끼는)게 한정적인 범위라는 걸 많이 깨닫고 있어요. 말 그대로 B급이니깐요. (웃음)

 

 




LE: 또, 많은 분들이 [FOUNDER]에 참여한 프롬올투휴먼(from all to human)과 반 루더(Van Ruther)에 대해서도 많이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소개를 좀 부탁드릴게요.

 

프롬올투휴먼은 반 루더와 친구이고, 송라이팅을 할 줄 아는 밴드예요. 하지만 제 앨범에서는 작곡하진 않았고, 대신에 조력자, 하우스 밴드 같은 역할을 해주었죠. 저의 모든 곡에 메인 악기가 되는 주요 세션들, 드럼, 건반, 베이스, 기타 같은 요소들을 이 친구들이 분담해 주었어요. 프로듀서 친구랑 워낙 막역한 사이다 보니깐 소통이 원활했죠. 워낙 친하니까, 세션을 보내줘도 “야 구려, 다시 해.” 이런 게 허용될 수 있었거든요. 조금 더 오래 돌아갈 수 있는 작업, 혹은 조금 흔들릴 수 있는 작업을 주도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든 게 프롬올투휴먼이었죠. 그리고 반 루더가 만들어 놓은 기초적인 미디 파일에서 아이디어도 제공했어요. 여기에서는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주거나, 실제 세션을 레코딩하는 과정에서 애드립도 추가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프로듀서가 “이 연주 좋다, 이거 트랙에 넣자.” 이런 식으로 미디 작업을 할 때와 다른 맛의 제작 과정이 있더라고요. 프롬올투휴먼과 반 루더가 친해서 앨범 작업 진행이 시원하게 된 부분이 많았어요.

 

 




LE: 고스트페이스 킬라가 배드배드낫굿과 함께 작업할 때는 프랭크 듀크스(Frank Dukes)라는 중간지점을 통해 작업이 이뤄졌는데, 딥플로우가 프롬올투휴먼과 작업할 때는 반 루더라는 프로듀서가 어떤 역할을 했나요?

 

[FOUNDER] 같은 경우에는 사실 반 루더의 역할이 조금 더 컸죠. 저는 이번 앨범에서 그 친구의 역할이 85% 정도라고 생각해요. (웃음) 그만큼 그 친구의 역할이 엄청 컸던 거 같아요. 제가 주도적으로 진행을 하긴 했지만, (그 친구가) 역 제안했던 것도 많았어요. 여태까지 저는 제 앨범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거든요. 오로지 독재자처럼 제 건 제가 만들어야 하고, 의견은 듣지만 걸러 듣는다. (웃음) 하지만 이번에는 엄청나게 의견을 많이 들었고, 그래서 진짜 프로듀서랑 작업했단 느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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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앨범의 다른 세션 분들 같은 경우에도 반 루더 님이 직접 섭외를 하신 걸까요?

 

초반에는 프롬올투휴먼이 해줄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많이 해결해보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욕심을 내서 오케스트라적인 요소를 넣다 보니, 협업하기 힘든 연주자분들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어요. 평소에 저희가 그런 분들이랑 작업을 많이 안 했거든요. 기타, 베이스, 많이 기분 내면 드럼이었죠. 힙합 장르에서는 (원래) 기타 이상으로 쓸 일이 별로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비브라폰 주자는 어디서 찾아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이번 앨범의 모토는 이거였어요. 진짜 사소한 부분까지 다 리얼 세션으로 넣자. 누군가는 “이거 그냥 가상 악기로 해서 넣읍시다. FX, 퍼커션 하나 정도까지는 그냥 미디로 넣읍시다.” 이럴 수도 있지만요. “안된다, 이거 다 크레딧에 다 넣을 거다”. 이런 식의 약간 말도 안 되는 욕심 같은 게 있었거든요. 프로듀서가 “어? 이거까지 연주로 넣으시게요?” 이랬지만 그냥 밀어붙였던 것도 있어요. 결과적으로는 다 그렇게 해서, 너무 만족하죠.

 

 




LE: 그렇다면, 이번 앨범은 정말 다 실제 연주로만 채워진 작품인 건가요?

 

그렇죠. 신시사이저만 빼고요. 그런데 사실 프로듀서가 교체한 부분도 있긴 할 텐데… 어떤 부분 이후에는 제가 프로듀서한테 아예 다 맡겨버려서 자세히 몰라요. (전원 웃음) 왜냐면 일일이 (프로듀서가) 저랑 소통하고 그러면 작업 시간이 길어지니, 어떤 부분부터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맡겼죠.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 프로듀서의 지분이 크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LE: 이제 인터뷰가 공개될 때에는 눈치를 챈 분들이 많을 거 같은데, 사실 반 루더 씨의 정체가 프로듀서 TK 씨잖아요. 이번 앨범에서는 이름을 바꾼 이유가 혹시 있을까요?


일단 TK가 VMC 초창기 멤버이고, [양화] 때도 많은 도움을 줬고요. 저희가 그 친구를 믿고 신뢰하지만, (TK가) 실제로 뽑는 아웃풋에 비해서 굉장히 과소평가 받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또, 결과물들이 좋지 않은 반응을 얻었을 땐 ‘그 친구가 이걸 진짜 하고 싶은 작업이었을까?’란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TK가) 트랩 작업을 많이 했는데, 요즘 들어서 그 친구의 코어가 (힙합이) 아니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원래 영화음악, 발라드, 클래식 쪽으로 관심이 많았던 친구였거든요. 그러다가 저랑 만나서 힙합 음악을 만들게 되었던 친구고요. 

 

세월이 흘러서 10여 년 가까이하니 그 친구가 힙합을 하는 아티스트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의 코어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많이 느끼게 되었죠. TK가 만든 음악을 많이 들어보면, 음악이 굉장히 서정적이거든요. 또, 그 친구가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을 하고 싶다는 동기도 있었고, 그리고 제가 하려는 걸 구현할 정도의 작곡 능력이 있는 친구가 주변에 그 친구 뿐이었어요. 한 마디로 악보 쓸 수 있는 친구들. 힙합 프로듀서 중에는 그런 친구가 흔치 않거든요. 

 

조금 전에 제가 2년 동안 작업을 했다고 말씀드린 건, 밀도 있게 앨범을 작업한 시간을 말하는 거예요. 저는 이번 앨범의 컨셉을 3년 전쯤에 전달했고, 그 친구는 1년 동안 공부를 했어요. 왜냐면 같은 작곡이라도 악기를 다르게 써야 하고, 음악의 코드 진행과 테마를 구성하는 게 현대 음악이랑 엄연히 다른 부분이 있거든요. 그걸 (TK가) 캐치하기 위해서 시간 투자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그걸 기다렸고, 한 2년 전부터 곡을 받기 시작했어요. 지금 앨범에는 13곡이 들어 있지만, 거의 100곡 정도가 왔었거든요. 이런 게 정말 미안하죠. (웃음)

 

제가 “36 DANGERS”를 내기 전에, 그 친구한테 “야, 그런데 너 TK라는 브랜드가 좀 과소평가되는 거 같지 않냐? 거기다 너가 트랩을 많이 찍는 이미지인데, 음악이 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을까?”라고 했더니 그 친구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면 재미있게 한 번 속여볼까? 하면서 반 루더라는 이름을 달고 곡을 발표한 거죠. 당시 “36 DANGERS”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을 때 기억에 남는 리플이 그거였어요. ‘역시 TK가 안 하니까 사운드가 좋네요.’ (웃음) 그 친구가 그 리플을 보고 진짜 엄청 좋아했어요. (전원 웃음) 

 




 

LE: 이제 앨범의 트랙들을 하나씩 살펴볼게요. 먼저 “Panorama”는 제목 그대로 딥플로우라는 음악가의 행보를 파노라마처럼 풀어놓은 곡인데요. 가사를 보면서 2분 30초도 안 되는 곡 길이에서 커리어를 요목조목 정리한 내용에 감탄했는데, 이를 줄이느라 단어 선택에 대한 고민도 되게 많으셨을 거 같아요.

 

20년 전부터 기억을 되짚어가면서 써야 하는 가사였지만, 기억이 단편적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기억나는) 그만큼씩만 썼어요. 이렇게 그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을 나열하다 보니 가사를 쓰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대신 곡 컨셉 자체가 주마등이다 보니, 사운드도 정말 주마등처럼 나의 20년이 쓱쓱 지나가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든 마디를 분할 녹음했고, 패닝(Panning) 효과도 줬어요. 듣는 사람은 제삼자니깐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트랙이 주마등처럼 보이기를 원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가사는 너무 부담을 가지지 않고 생각나는 걸 썼던 거 같아요.

 

 




LE: 곡 구성도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이야기에 따라 달라지는 게 되게 인상적이었는데, 곡의 구성 같은 것도 딥플로우 님이 직접 관여한 부분이 있을까요?

 

“Panorama” 같은 경우에는 ‘이 앨범이 어떤 사운드인지를 표현할 수 있는 트랙이면 좋겠다, 이 앨범이 어떤 정서가 있고, 어떤 컨셉의 사운드인지를 한 곡에 설명되는 곡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 곡이 가장 영화 OST 같아야 한다”는 주문을 프로듀서한테 하게 됐고요. 그리고 중간에 파트가 한 번 바뀌는데, “(전환하는) 무드가 드라마틱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도 했어요. 


또 “내 랩이 랩보다 앰비언스처럼 들렸으면 좋겠으니 편곡을 좀 뽐내 줘라. 변주를 준다거나, 악기를 추가하는 식으로 네가 가장 (실력을) 뽐내는 트랙으로 만들어달라.”라는 주문도 했고요. 그런데도 다섯 번 갈아엎었고, 설명으로는 다 안 된다는 걸 깨달아서 (랩을) 녹음해서 주니까 그때는 (제대로 된) 트랙이 나오더라고요. 이런 작업을 할 때는 랩을 녹음한 뒤에 이걸 배경음악처럼 만드는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LE: 뒤를 이어 나오는 트랙 “500”과 “Low Budget”은 VMC가 크루에서 컴퍼니로 되는 과정, [양화] 발매 당시의 레이블 운영을 담아낸 가사를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담아냈던 것 같아요.  “500”의 주제가 된 500만 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금액인가요?

 

500만 원으로 앨범도 만들고, 회식까지 했던 그때 저희의 가내수공업 마인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희가 실제로 그랬어요. 500만 원은 앨범을 만들기엔 최소한의 적은 돈이지만, 어떨 때는 매달 나에게 요구되는 큰 부담의 고정 지출 비용이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깐 그때는 500만 원이라는 단위의 금액에 한창 얽매여 있던 시기인 거 같아요. 즉, 500만 원이란 가치가 활용되는 여러 가지 관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LE: 또, 두 트랙은 블루스 뮤지션인 최항석 씨의 참여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앨범 사운드랑도 너무 들어맞는 기용이어서 더욱더 좋았는데, 어떻게 같이 작업을 하게 된 건가요?

 

우연히 최항석과 부기몬스터의 라이브를 네이버 온스테이지(Naver Onstage)를 통해 접했는데, 저는 아예 한국에서 처음 보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한국에도 다양한 블루스 뮤지션이 존재하지만, 항석이 형이 하는 음악이 옛날 블루스거든요. 모던한 스타일의 요즘 블루스랑은 다른 느낌이에요. 그러다 보니 이런 걸 하는 뮤지션이 있다는 것을 (거의 처음) 알게 된 거죠. 그래서 SNS로 DM을 몇 번 보냈는데,답장이 없으셨어요. 기다리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회사 계정을 통해서 DM을 보내니 (컨택이 되었는데) 항석이 형이 “DM을 읽는 법을 몰랐다.” 그러시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만나서 좀 음악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고, 친해진 다음에 작업을 같이했던 거 같아요. 보컬은 그 형에게 아예 맡겼어요. 두 트랙이 사실 블루스는 아니거든요. 근데 저에게는 블루지한 느낌이 있다고 느꼈던 거고요. 막상 곡이 블루스 템포랑 블루스가 아니다 보니까, 항석이 형이 보컬을 얹길 어려워했어요. “이 느낌 맞아? 이거 맞아?” 이러시면서 녹음하실 때 프리스타일로 부르신 게 많아요. 그런데 하시는 것마다 느낌이 다 좋아서, 오히려 더 좋은 걸 골라내는 작업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LE: “품질보증”은 “Low Budget”에서 가사로 암시한 “악당출현”의 멤버들이 참여한 만큼, 전 트랙과 연결성을 찾을 수 있는 곡이라 흥미로웠어요.

 

“품질보증” 같은 경우에는 곡 컨셉을 참여 래퍼들한테 설명할 때도 “악당출현” 프리퀄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악당출현”을 만든 게 2015, 2016년쯤이었던 거 같은데, 곡의 정서 자체가 아예 언더독(Underdog)이었거든요. 그래서 애들한테도 우리가 언더독인 시절보다 더 언더독일 때를 이야기하는 거다. 이렇게 설명을 해줬어요.


애들이 처음에는 단순한 단체 곡인 줄 알고 그냥 가사를 썼는데, 시대적 배경이 2014년도라고 알려 주니까 다시 가사를 쓴 친구도 있어요. [양화] 같은 경우에는 공간을 나눠서 컨셉을 짰던 거 같은데, [FOUNDER] 같은 경우에는 시간별로 설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2013, 2015년도 때부터 시작해서 그 이후의 현재 모습을 설명하는 트랙이 필요했고, 때문에 “품질보증”을 그런 컨셉으로 만들게 된 거 같아요.

 




 

LE: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프로덕션과 함께 말 그대로 ‘쯩’을 얻는 과정을 녹여낸 곡이잖아요.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대중문화산업법이나 콘진원(콘텐츠진흥원) 같은 시스템의 문제점이나 답답한 일 처리를 또 느낀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사실 엮일 일이 별로 없어요. 그 정도로 엮일 일이 없는 곳에서 저희가 허가를 받는 게 아이러니하죠. 이런 아이러니한 감정으로 노래를 만들었던 거 같아요. 물론 당시 저희는 그 불합리함을 타파해서 ‘쯩’이란 걸 받기도 했지만요.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긴 한데,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이 아티스트들이 인디펜던트로 자연스럽게 레이블을 만들게 되는 움직임을 싹수부터 막는 제도거든요. 엔터 회사의 병폐, 연습생을 뽑아 놓고 앨범을 안 내주는 거 같이 뉴스에서 보는 안 좋은 일들을 막기 위해 제도가 있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양면이 있는 거죠. 

 

저희 같은 회사에는 해당 사항이 없는 문제인데,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제도. 당시에 저는 그 제도에 대해 격분을 했었고, 그런 상황에서 저돌적으로 밀어붙여서 ‘쯩’을 받았단 게 저희한테는 당시 큰 에피소드였어요. 왜냐면 당시에는 사업자는 냈는데, 불법 사업자라 하면 엄청난 문제니까요. 그래서 그런 트랙을 만들었던 거 같아요. 최근에는 찾아보니 그때보다 조건이 덜 까다로워졌더라고요. 4년 동안 엔터에서 근무했던 기록이 있어야 했는데, 2년으로 줄고 나름 합리적으로 바뀌었어요. 하지만 그것조차도 누구한테는 걸림돌일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아예 인디펜던트로 있고 싶어 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이런 회사를 만든 건데. 자격을 검토받아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하죠.

 





LE: 이어서 신스베이스 소리와 화지 님의 훅이 인상적인 “Big Deal”이란 곡이 흘러나오는데요. 곡에서 말하는 빅딜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CJ와의 유통 계약도 포함된 건가요?

 

물론 CJ 유통 계약이 포함되긴 하지만, 그것만 아니라 방송을 나가는 결정을 한 것, 대중문화예술기획업 증을 받아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한 것, 그리고 우리의 사무실을 옮기게 된 것, 처음으로 광고 제안을 받고 그거에 대한 비즈니스를 했던 경험들이 모두 저에게는 빅 딜인 거죠. 예전과는 다른 삶의 챕터 전환을 했던 순간이 저에게는 빅 딜인 거고요. 그리고 예전에 몸 담았던 레이블이 빅딜(Big Deal Records)란 말장난도 있어요. 

 




 

LE: 이어지는 트랙 “Harvest”와 "BEP"는 회사의 CEO만이 쓸 수 있는 가사가 담겼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회사나 지금의 힙합 씬을 바라보는 관점이 [양화]를 발표할 때와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저도 아까 그 질문을 (미리) 보고, 뭐라고 대답할지 생각을 해봤는데요. 사실 제가 서술할 만큼 (뭔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크진 않아요. 시대가 변하긴 했지만, 제가 바라보는 관점과 핵심은 그때와 비슷해서요. <쇼미더머니>가 옛날보다 영향력이 줄었다, 그 정도? 딩고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뜨고 있다, 옛날보다 랩 스타들이 많아졌다. 근데 이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왔던 감상들이라서 “요새는 그게 다르죠”, 이렇게 말씀드릴 만한 건 안 떠오르네요. 

 



 


LE: 생각해보면 VMC는 아직 딩고 프리스타일과 제대로 된 협업을 하지 않은 상태인데, 혹시 따로 이유가 있나요? 

 

일단 던밀스(의 부재)가 가장 커요. (던밀스가) 엔터테이너적인 요소가 가장 큰 친구잖아요. 그 친구랑 넉살의 케미가 되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던밀스의 전역 후에) 기회가 된다면 뭐… 재밌는 걸 할 수 있겠죠. (LE: 일단은 제의에 대해 열려있으신 걸까요?) 당연하죠. 근데 사실, 저희가 <던밀스의 DDR>이라고, 어떻게 보면 래퍼가 유튜브에 나와서 다른 무언가를 하는 콘텐츠를 한국 최초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때 소모된 것들이 많아서요. (만약 하려면) 많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황치와 넉치>도 있었고, 그것들이랑은 조금 달라야죠. 만약 좋은 아이디어와 콘텐츠가 있다면 당연히 (할 생각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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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쯤에서, 국내 힙합 커뮤니티의 오랜 떡밥이라 할 수 있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양화]라는 앨범을 통해서 CJ와 미디어에 대해 반적인 태도를 유지했다가, 지금은 노선을 바꿨다”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쇼미 욕하고 나간 게 사실이니까 맞는 말이죠. 제가 현실부정자도 아니고. 그걸 인정하냐는 질문을 받는 건 약간 재판을 받는 느낌이에요. (웃음) 게시판을 보면, 그걸 인정했냐, 안 했냐가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그걸 어디에 공식 발표 느낌으로 해야 하는 건지. 제 속에선 이미 정리가 된 건데… 이미 가사를 통해서, 인터뷰를 통해서 입장이 전달된 줄 알았는데, 끊임없이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LE: 말씀하신 대로, 아직도 이 주제에 관해서 끊임없이 논쟁이 오가고 있잖아요. 이번 앨범의 발매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다시 한번 기다렸다는 듯(?) 불타오른 느낌이 있고요. 

 

결국엔 그게 여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민심. 생각해보면 인정보다 사과를 원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최대한 진심으로 답변하고 싶죠.

 

 




LE: 뭔가 많은 분이 속 시원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솔직히 비판의 프레임이 너무 다양하고 입체적이어서, 입장 표명보다 Q&A가 적합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저는 이번 앨범에서 전반적으로 (저의 입장을) 많이 말했다고 생각해요. 예전처럼 무슨 일 있을 때마다 SNS에 장문 올리는 건 피차 피로감을 느낄 거고. 어쨌든 ‘노선이 바뀌었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물으신다면, 변한 게 맞죠.

 

그런데 저한테 ‘반성하냐?’, ‘후회하냐?’라고 묻는다면, 미안하지만 저는 그냥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고. 가정법을 싫어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가정해봐도 그때 전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때 그런 생각을 담았던 게 [양화]고. 그러니까 지금 달라진 상황의 새 앨범도 만들 수 있었던 거고요. 더 그럴싸하게 재조립하고 싶어도, 이미 그게 저니까. 그래서 지금 돌아오는 비판에 겸허하거든요.

 

저한테 그간 일련의 사건들이 많았잖아요. SNS로 누군가와 설전도 벌이고, 디스전도 벌이고, 불특정 다수한테 공격도 받았고. 그런 것들을 겪으면서 ‘안 좋은 기운’이 사람한테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최근에 팔로알토 형이 진행하는 <갱생>을 보면, 이 친구들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딴딴해진 어른인데도 이런 일들이 굉장히 상처로 다가오는데. 그래서 그런 배드 바이브가 풍기는 기운 자체가 이제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지난날 누군가에게 품었던 그런 배드 바이브, 헤이팅. 난 힙합이니깐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에게 안 좋은 영향력으로 끼칠 수 있다는 게 의식되더라고요. 저는 그 후로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꽤 개선하려고 하고 있어요. 티가 날진 모르겠지만요. ‘너는 구리고, 내가 너보다 나아’라는 방식의 가사를 많이 썼었는데. 이런 패턴으로 날 돋보이게 하는 가사가 갑자기 좀 싫어 보였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을 봐도, 최대한 타인과 나의 대비를 멋있는 장치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아요. 내 안에서 끝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연습하고 싶었어요.

 




 

LE: 사실 이번 앨범 [FOUNDER]에 레이블 수장으로서의 딥플로우 씨의 생각이 잘 담겨있어서, 앨범을 듣고 어느 정도 납득을 하시는 분들이 꽤 많을 것 같긴 한데요. 

 

팬들이나 리스너들이 들으면서 알아주면 좋긴 하겠지만, 사실 이 앨범은 되게 개인적인 앨범이에요. [양화] 때보다 더. [양화]는 그래도 누군가와의 공감을 약간 유도하는 장치들이 있는데, 이번 앨범은 VMC 애들만 들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누군가한테 설명해주려는 느낌은 아니고, 우리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이 서로 생각을 정리했으면 좋겠다. 이런 의도가 더 커요. 


왜냐하면 삶을 살다 보니까 각자 바빠지고, 옛날 같지 않거든요. 서로 모이는 횟수도 적어졌고, 각자의 영역도 생겼고. 그래서 이번 앨범을 남들이 들었을 때, 누군가는 알아챌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더 커요. 나와, 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VMC의 동료들이 듣고 만족하면 됐다는 생각인 거죠. 팬들이 듣고 공감해준다면 얻어걸려서 좋은데. 너무 지극히 개인적인 앨범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피처링 진도 VMC 애들만 있었고요.

 

 




LE: 그런 의도가 있으셨군요. 그러면 다시 트랙 질문을 해 볼게요. “Dead Stock”과 앞서 말한 “36 DANGERS”의 가사 중에는 현시대를 거품이 꼈다고 표현한 부분이 있는데, 이를 자세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거품이라고 생각하는 게… 저도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수치, 통계를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니까. 제가 “Harvest”라는 트랙을 만든 것만큼, 수확하는 시즌이 있었어요. 근데 (나중에) 힙합을 서포트하는 매체들이 없어지고, 래퍼들을 조명해줄 수 있는 상황이 조금 더 옛날로 다시 돌아가게 되고, 저희가 특혜를 누릴 수 있는 부분들이 거세되었을 때. 우린 어떤 준비가 되어 있냐는 고민을 할 때 막연하게 느끼는 싸늘한 기운이 있는 거죠. 그래서 거품이라 이야기한 거 같아요.

 

미디어가 없어졌을 때도 저희 래퍼들이 그 상황에 대비 되어있어야 하거든요. 더콰이엇(The Quiett)처럼 <랩하우스(Rap House)>를 열 수 있는 기본적인 재력이나, 그것에 대해서 수익을 기대하지 않아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는. 그런 기본적인 환경, 조건, 여유 이런 것들이 부합되는 사람들이 많진 않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보일링 포인트 프로젝트가 있지만요. 

 

<쇼미더머니> 같은 것들이 없어도 그런 기능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다면, 그런 방송 매체들이 없어지고 나서도 저희가 서브컬처로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텐데. 지금은 ‘안전장치가 부족하다’라는 생각 때문에 거품이라는 말을 쓴 거 같아요. 사실 뭐 씬 전체를 걱정할 수도 있는데, 당장 우리 회사, 혹은 저한테 놓인 문제일 수도 있는 거니까 복합적인 고민이 되는 거죠.






LE: 실제 대사가 녹음되었던 스킷 격 트랙인 “Pretext Interlude”도 흥미로웠어요. 작년 VMC 연말 공연에서 녹음이 된 건가요?

 

거기서도 녹음이 된 부분이 있고요. 제가 행사나 옴니버스 공연 같이, 게스트로 서는 공연에서는 멘트를 잘 안 해요. 그런데 저희 콘서트 때는 제가 말을 많이 하죠. 우리 팬들이니깐요. 그래서 아저씨같이 주절주절 말하는 게 많이 남아있거든요. (하고 싶었던 말은) 저희가 앨범 나오는 속도가 늦어요. 친구들이 앨범을 작업하는 기간이 비슷하다 보니까 4~5년 전에 몰아서 나오고, 나중에 또 앨범이 몰아서 나오는 거예요. 항상 그 중간 시기에는 좀 곤욕스럽죠. 그래서 우리를 찾아와주는 팬들한테 항상 기다려 달라, 걱정하지 말라, 우리 놀고 있는 거 아니고 앨범을 만들고 있는 거다. 이런 변명 같은 이야기를 엄청 하죠. 이런 멘트를 모아서 “Pretext Interlude”를 만들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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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마지막 트랙인 “Blueprint”는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의 예전 음악을 듣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특별히 사운드적으로 의도하신 부분이 있었을까요?

 

프로듀서한테 앨범에서 제일 소울풀했으면 좋겠고, 여기서 가장 모타운(Motown)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요구했어요. 그런데 저스트 블레이즈 느낌이 났다면, 그것도 조금 실패예요. (웃음) ‘왜냐면 우리가 그 느낌 내지 말자’ 이랬거든요. 이게 어려웠던 게, 제가 랩을 완성하고 그 친구가 배경음악을 만들어주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템포가 정해져 있었어요. 곡의 BPM이 정해져 있는 건 그 친구한테 안 좋은 조건이었던 거죠. 우리가 생각하는 모타운 시절의 그런 소울, 블루 매직(Blue Magic)이라든가, 제가 좋아했던 앨범들은 어떻게 보면 거의 발라드 수준으로 느리거든요. 근데 저는 BPM이 80 중반인 랩을 한 거죠. 그러다 보니까, 모타운 느낌을 최대한 내면서 BPM을 맞춰야 하는 작업이 프로듀서한테는 어려웠을 거예요. “Blueprint”가 앞 트랙들의 무드랑은 좀 다르거든요.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인털루드를 넣었던 거도 있어요.

 

 




LE: 이제 [FOUNDER]에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와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나눠본 것 같은데요. 스스로 생각했을 때, 이번 앨범은 만족스러우신가요?

 

아쉬움은 늘 있어요. 이번 앨범에 한정해서 이야기하면, ‘아, 내가 더 잘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프로듀서가 역량을 엄청나게 발휘한 앨범이거든요. 만약에 프로듀서와 아티스트 밸런스 점수를 매긴다면 ‘내가 졌다, 프로듀서한테’ 이런 식으로 셀프체크가 되거든요. (웃음) 다음에 같이 뭔가를 한다면 랩을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LE: 점수로 따지자면, [FOUNDER]에게 매길 총괄 점수는 몇 점일까요?

 

그건 제가 매기면 안 되죠. (LE: 그래도 준다면요?) 제가 최근에 꽂힌 숫자가 ‘84’라서, 84점으로 가죠. (웃음)

 




 

LE: 이제 몇 가지 질문 이후 인터뷰를 마무리하면 될 것 같은데요. 평소 딥플로우 씨의 랩 스타일에 대한 피드백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어떤 순간부터 좀… 제 주법 같은 것에 한계를 느꼈거든요. 내가 잘 할 수 있는 주법이 이미 존재하고, 그걸 마스터했는데. 또 다른 더 테크니컬한 주법을 생각하고, 시도한다고 해서 잘 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선택한 주법을 더 밀도 있게, 완성도를 높여가는 쪽이 제가 꽂힌 방향인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선택한 스타일에 대해서 호불호가 갈리고 취향이 갈리는 거에 대해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죠.

 




 

LE: 더콰이엇 씨 같은 경우는 [glow forever] 같은 앨범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잖아요. 딥플로우 씨는 그럴 생각은 없으시다는 걸까요?

 

모르겠어요. 예를 들면 제가 완전 붐뱁식으로 랩을 메이킹 했을 때가 있고, 808사운드나 트랩 BPM 식으로 변화한 시기가 있고, (따지자면) 요즘은 트랩식의 메이킹이나 조금 더 트렌디한 사운드적인 시도를 앨범에 해야 할 시기잖아요. 하지만 저는 최근에 나온 그리셀다(Griselda)의 앨범을 듣고 ‘아, 아예 90년대 초반 식의 메이킹으로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서. 그런 선택이 무의미한 거 같아요. 그냥 비트에 따라서 하면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LE: 레이블 대표로서 사업적인 다른 시도를 해볼 생각도 있으신가요? 예를 들자면 서브 레이블 같은 게 있겠는데요.

 

서브 레이블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죠. 근데 일단 저는, 제가 가진 브랜드를 더 밀도 있게 만들고 확장하는 선택을 한 거 같아요. 서브 레이블을 만드는 건 엄연하게 VMC와의 연속성도 있으면서 또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건데, 약간 저한테는 조삼모사 같아요. 그래서 어떤 조삼모사가 나한테 유리한가를 생각해봤을 때, VMC 하나만을 확보하는 걸 선택하는 거죠. 근데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게 있죠. 떡볶이도 하고 싶고요. 하지만 그건 음악과는 다른 부분이니 하고 싶은 거죠. 지금은 정규 앨범 하나를 끝냈기 때문에 재밌는 걸 하고 싶은 욕구가 충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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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딥플로우 씨가 아티스트로서 바라보고 있는 다음 단계도 있을까요?

 

계속 멋있는 음악을 만들자. 지금보다 랩을 잘하겠다. 이런 건 좀 막연하고, 그냥 좋은 텐션을 유지하고 싶어요. 살아남고 싶고요. 이번 [FOUNDER] 앨범이 작법 적으로 조금 변화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누구한테는 이런 작법으로 만든 게 극단적인 선택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붐뱁을 만들 때는 우탱 오마주를 앞에 넣는다거나. “36 DANGERS”라는 곡을 굳이 만들고 “야 이건 이걸 패러디한 거고, 날짜도 3월 6일에 나오는데, 랩도 36마디야.”라고 설명을 해도 아무도 이해를 안 해주는 기분이 늘 들어요.


그래서 점점 더 집요해지는 거 같아요. [FOUNDER]가 ‘야, 나 이런 거 좋아해.’(라고 보여주는) 집요함의 결정체인 거 같아요. 힙합엘이 같은 데서는 ‘이번 붐뱁 앨범은…’ 이렇게 그냥 퉁 치고 말잖아요. 누구는 또 트랩이라 말하고. 그런 식으로 이해를 잘 못 하니까, 제가 탐미하는 걸 집요하게 보여줘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분명히 저와 같은 취향인 사람이 있을 거고, 그 사람들이 열광해줬으면 좋겠다는 걸 계속 (앨범에서) 더 시도하려는 거 같아요. 그래서 앨범을 더 마이너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웃음)

 




 

LE: 앞으로 나올 뮤직비디오 같은 게 있을까요?

 

“36 DANGERS” 이후로 뮤직비디오는 안 만들었어요. 너무 개인적인 가사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라이브 세션이 뮤직비디오에 나와야 하는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뮤직비디오처럼 ‘아티스트가 앞에 나와서 립싱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 와중에 “품질보증”이 유일하게 그림이 그려져서 ‘이건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지만, 던밀스가 군대에 있어서 못 찍었어요.


말하자면 ‘최대한 라이브 세션과 찍어서 내가 하려고 하는 걸 티를 내야겠다’라는 생각인 거죠. 이런 생각은 (티내지 않으면) 여기 있는 인터뷰어들 같은 사람들만 알아줄 수 있는 거로 생각해요. 밴드랑 같이 한 리얼 연주라는 것에 관심 없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영상을 보여줄 때는 밴드와 같이 나와야 한다, 이런 전제가 있어서 뮤직비디오에 대해서 큰 욕심은 없죠. 

 

 




LE: 올해 VMC의 남은 계획도 궁금해요. 남은 2020년 동안 과연 어떤 행보를 보여주실 예정인가요?

 

저는 원래 엄청 이런 거 미리 떠드는 스타일인데, 저기 앉아 있는 희정이의 규칙이 있거든요. 앞으로 말하면 입을 꿰매 버린다. (전원 웃음) 왜냐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인데, 왜 미리 말해서 사람들이 물어보게 만드냐고 이런 것에 대해서 엄격하거든요. 그런데 진짜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앨범 발매) 차례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밀려 있습니다. 좋은 음악을 많이 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LE: (웃음) 저희도 기대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팬들과 헤이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팬분들은 늘 고맙죠. 앨범 기다려줘서 고맙고. 팬에 대한 개념이 되게 막연했다가, 어떤 시점 이후로 여유를 갖고 돌아보다 보니까 팬들이 내 눈에 꼭 보이지 않더라도 되게 많다는 걸 느꼈어요. 예를 들면, 되게 생뚱맞은 장소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붙잡고 뭐 ‘티비에서 봤어요, 사진 찍어주세요’ 이게 아니고. 제 믹스테입이나 옛날에 냈던 트랙에 관해서 이야기해주는 경험을 간혹 할 때가 있거든요. 만든 음악을 누군가가 듣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들이 창작자한테 되게 필요한데, 옛날에는 이런 경험을 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왜 피드백이 없지? 팬들은 어디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믿고 있는 거죠. ‘아, 어딘가에는 있구나.’ 이제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요. 그래서 내가 이런 걸 만들어도 누군가는 찐탱으로 좋아해 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그런 팬들한테 정말 감사하고. 제 앨범을 기다려줬다는 점에 대해서 정말 고맙죠. 

 

그리고 헤이터들에 대해서… (웃음) 사실 헤이팅을 막을 방법은 없어요. 이미 나를 헤이팅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을 바꾸는 건 너무 어려워요. 안타까운 사실이지만요. 이건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엘이 게시판이 한국 힙합에서 정말 중요한 장소라고 생각해요. 유일한 장소잖아요. 한 나라의 한 장르, 서브컬처에 영향을 미치는 공간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유저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해요. 유명 래퍼들의 가십과 헤이팅에 에너지를 쏟을 시간에, 언더독 뮤지션들에게도 관심을 보여주세요. 그분들에게 동기부여를 주세요. 다음을 해나갈 수 있게 말이죠. 이미 잘나가는 유명 래퍼들은 유튜브를 가도, SNS에서도, 좋든 안 좋든, 반응을 어디에서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엘이에서만 (반응을) 볼 수 있는 (피드백이 절실한) 래퍼들은 따로 있다는 거죠. 에너지를 좀 더 유익하게 태웁시다. 그걸 헤이터들이 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CREDIT

Editor

INS, snobbi, cynthesi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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