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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디지 (Deegie)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2011.08.19 01:43조회 수 23961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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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반갑습니다. 오래 활동해오셔서 이런 건 좀 어색할 테지만 그래도 먼저 간단한 소개와 인사 부탁드릴게요.

 

일단 생각보다 활동을 많이 안하는 사람이라.. 게시판에서 이슈 되는것 보면 활동이 되게 많은 것처럼 보이는데 몇 년에 걸쳐 앨범 하나 내고 그 사이에 공연도.. 1년에 많아봤자 5번, 6번? 앨범활동도 그렇게 많이 안 하는데, 워낙 적들이 사방에 있어서 활동이 되게 많은 뮤지션처럼 보이는 (웃음) 힙합계의 볼드모트 김디지입니다.

 

 

 

 


LE: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웃음)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인터뷰는 조금 특이한 스타일이라.. 힙합엘이의 댄스디(DanceD)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먼저 말씀하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 양반(댄스디)이 내가 알고 있기론.. 나 같은 경우는 공연 레파토리가 알려진 노래보다 안 알려진 노래로만 공연을 해요. 애들이 그거 듣고 공연 때 퓨어하게, 진짜 놀 수 있게 하는데.. 트랙리스트에 아예 없는 노래들을 하는데 그 노래 리뷰를 쫙 올리고 거의.. 어떻게 표현할 수 있냐면 한국힙합의 데이타베이스? 그래서 아예 제리케이(Jerry.K)한테 전화해서 ‘나 권우찬(댄스디) 씨하고 인터뷰 할래’ 그랬더니 제리케이가 얘기하기를, 힙합엘이는 홍보성 인터뷰 안 한다고. 그래서 나도 그걸 더 원한다고. 그리고 너무 베일에... 베일이 아니라 세대차이가 너무 나버리니까 중간에 나오지 않은 앨범들은 사람들이 못 들어보고, 내가 왜 무브먼트(Movement)인지도 모르고 왜 1세대인지도 모르고, 1세대라고 말하는 것도 되게 웃기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 양반은 아니까, 그래서 가감없이 인터뷰 할 수 있으니까, 어디 편중되거나 ‘아, 그거 몰랐어?’ 그렇게 얘기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정확한 얘기들 할 수 있고요. 또 씬에서 그 당시 궁금했던 것들이 이제는 장년층이 돼서 편안하게 얘기하는 게 가능해졌다보니, 그냥 아예 지목을 했죠.

 

 

 

 

 


LE: 그렇군요. 요즘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 좀 얘기해주세요.

 

학교 학과장 하고 있고, 강의도 나가는데 거의 안 나가고 있고... 음반 작업하고 책 번역하고 있고 그 다음에... 거의 스튜디오에서 작업 위주로 하고 있어요.

 

 

 

 

 

 

LE: 작업이라면 주로 어떤?

 

음반 작업 말고도 지금 미국 쪽으로 나갈 것도 준비하고 있어요. 네잇독(Nate Dogg) 추모공연 블랙아이피스(Black Eyed Peas) 디제이 모티브(DJ Motive), 티 페인(T-Pain)이랑 같이 쇼케이스 열고 디제잉 작업하는 디제이 엽(DJ YUP) 이랑 미국 일렉트로니카, 하우스 기반의 '메쉬업' 음악 콜라보 작업(1 DJ & 1 Producer) 을 하고있고, 같이 유럽 투어 생각 중이고 유럽에서 10월 중 나올 클래식 콜라보레이션 음반 작업 진행중 임!

 

 

 

 

 

LE: 책은 어떤 책이에요?

 

스케이드보드로 유명한 토니호크(Tony Hawk) 자서전인데, 몇 천억 번 사람이라... 지금 UMC는 투팍(Tupac) 꺼 하고 있을 텐데, 나한테 투팍을 주고 그러지... (웃음) 아무튼 토니호크의 자전적인 성공스토리에 대해서 번역하는 중이고, 토니호크의 자전적 경영 & 비지니스 서적이에요.

 

 

 

 

 

LE: 아예 맨 처음으로 돌아가 볼게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처음부터 랩이나 힙합음악을 한 건가요?

 

옛날에 했던 인터뷰 내용이 팩트니까 그대로 말하면, 16~17살 때 집에 있는, 왜 집에 가면 아버지들이 업어온 키보드 있잖아요, 엄친아들이 쓰던 거. 그런 거 하나를 가져다 주셨는데... 처음으로 음악 들었던 게 AFKN에 사이프레스 힐(Cypress Hill)이었거든요. 완전 좋더라고. 또 그때 DJ DOC 형들의 <삐걱삐걱> 그거 듣고, 랩은 하고 싶고, 근데 인스트루멘탈은 없고...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고, PC통신이 있긴 했지만 완전 초기였어요. 95~96년도였으니까. 파란 텔넷화면도 나오기 직전일 거예요 아마. 그러니 미디음악이니 뭐니 아예 할 수도 없었고, 커뮤니티도 없었고.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랩 한다’ 그러면 다 DJ DOC, 듀스(Deux) 등 가수들 밖에 없고... 그러다보니까 그걸로 뚱땅뚱땅 거리다가 테이프에다가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녹음을 했어요. '둥탁둥탁' 손으로 다 눌러 놓고, 음악적 지식도 아무것도 없는 채로... 근데 힙합음악을 몇 개 들어보니까 거의 비슷하더라고요, 룹(loop)밖에 없으니까. 그러면 비트만 있으면 되겠구나 싶어서 그걸로 비트 하나씩 하나씩... 음질은 지금으로 치면 아예 안들리는 수준이었죠. 그렇게 해서 비트를 만들고 거기다 랩을 했어요.

 

첫 곡이 <고양이의 시체>였나? (전원웃음) 아, 이 얘기 진짜 처음 한다. 아침에 학교 가고 있는데 고양이가 차에 깔려서 죽어있는 거예요. 골똘히 그걸 보다가 청소년 보호법이 생각났는데, 우리의 청소년들은 저 차에 쳐죽은 고양이의 떡된 저 시체와 같지 않을까 (웃음) 되게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오그라드는 그런 가사에... 녹음을 해서 친구들에게 들려줬어요. 그때 중학교 동창이 일스킬즈(Ill Skillz)의 비니(Vinnie), 요즘 음원유통 회사에서 성공가두를 달리고 있는  MC 신건.. 이렇게 셋이 있었는데, 근데 그 사이에 제가 유학을 왔다갔다한 시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애들한테 들려주고 유학 갔다왔는데.. 캐나다에 가보니까 동네마다 스튜디오가 다 있더라고. 우리나라는 지금 그래도 10만원 주면 한 트랙 녹음이라도 할 수 있고, 아니면 여기 F&C 학원 스튜디오 와서도 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녹음실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한국에서는 일반 학생이 갈 수 있는 녹음실이 없었죠. 그런데 캐나다에 락밴드 애들이 데모테입을 주는 거야, 그래서 어디서 녹음했냐고 물어보니까 스튜디오에서 했다고... 완전 충격이었지. 그때부터 정신줄 놓고, 학교 잘 안 가고 스튜디오 가서 뭐라도 시켜달라고, 그게 제 처음 시작이었어요. 나는 그때도 꿈꿨던 게 싱어송라이터였고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지. 물론 겉으로, 랩으로, 나대는 건 대한민국 상위 1%지만 (웃음) 스튜디오 콘솔 앞에 앉아서 일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이 지금 현실이 됐거든요. 당시도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캐나다도 때려요.

 

 

 

 


LE: 학교 말하는 거예요?

 

아니요, 스튜디오에서. 왜냐면 만약 어떤 전선 하나가 1미터에 8만 원짜리 전선이다. 이거 내가 감다가 망가뜨리면 나한테 물어달라고 할 순 없잖아요. 그만큼 비싼 장비들을 다루기 때문에 굉장히 집중을 해야하는데, 덤벙거리다가 한두 개만 날려버려도... 당시엔 또 디지털화가 안 되어있고 아날로그라서 한 번만 잘못 건드리면 데이터가 다 날아가버리니까, 거기서도 굉장히 엄격하게 했어요. 재떨이도 비우고 걸레질도 하고, 돈도 없으니까... 외국에서는 인턴 시키면 돈 진짜 한 푼도 안 주거든요. 게다가 고등학생이고. 그러니까 학교 거의 안 나가고 베이비시터(babysitter)도 하고... 먹고 살아야하니까 할 게 많거든. 그래서 유흥비 마련은 다 그런 걸로 하고 (웃음) 그렇게 해서 음악을 하고 다시 한국에 왔는데, 그때도 중학교 동창 친구들이 힙합음악 듣고 좋아했고, 힙합 옷들은 살 수 있는 데가 이태원 아니면 압구정인데, 전 이태원에 ‘틴틴’이라는 가게에 갔어요. 또 캐나다에서 올 때 데모테입 DAT로 작업한 걸 갖고 왔었거든요. 지금은 거의 안 쓰는 디지털 오디오 테입인데, 그걸 들고 한국 들어오자마자 그 MR 트랙 가지고 공연할 수 있는 곳을 찾았죠. 근데 우리나라에 단 한 군데밖에 없더라구요. 그게 신촌역 8번 출구에서 쭉 나오다보면 삼성표구사가 보여요. 농협 지나서, 삼성표구사 골목에 있는 마스터플랜(Master Plan).

 

근데 자꾸만 사탄(아티산 비츠)이 본인이 나를 오디션에서 떨어뜨렸다고 망언을 하시는데 (전원웃음) 그런 적 없구요. 나름대로 오디션을 봤는데 그 아티산 비츠는 철저히 반대했다고 하더라구요. 격 떨어진다고. 전 그때도 상스러웠거든요. 그때 마스터플랜 이종현 씨랑 가리온 나찰 형도 있고 다 있었는데, 때마침 그 다음 주가 ‘힙합퍼스 파라다이스’ (Hiphopper's Paradise)라는 공연이었어요. 아마 Vol.2였을 거예요. 그 공연에서 해보라고 했는데, 그 다음 주에 제가 또 말레이시아로 공부하러 가야돼가지고, ‘오케이 그럼 힙합퍼스파라다이스는 하자’ 해서 그 공연은 했어요. 끝나고 나니 애들은 떨궈져 나와있고. 그래서 얘들이 어떻게 했냐면, 그때 커빈(Curbin) 형이 있었거든요.

 

 

 

 


LE: 거기서 CB Mass가 나오나보네요.

 

그게 이제 CB Mass가 된 거죠. 내가 커빈 형한테 부탁을 하고 갔어. 완전 진짜 불알친구잖아, 중학교 동창이니까, 그 친구 둘을... ‘형 어차피 혼자 하는 것보다 낫지 않냐’ 그래서 MC 커빈이 비니랑 MC 신건을 데리고 갔죠. 나는 말레이시아 가고, 거기서도 하라는 공부 안 하고 도박과.. 즐거운 유흥생활을 하지는.. (전원웃음)

 

 

 

 


LE: 그때 몇 살이셨어요?

 

16, 17살이었는데.. 유흥비 마련을 위해 악기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근데 그 아르바이트가 진짜 나의 모든 사기의 모토가 되는... '이것봐봐, 이걸로 5분이면 곡 다 만들어, 이거 사서 너네 집에 가서 만들면 된다고' (웃음) 아마 제가 아르바이트생 중에 제일 많이 팔았을 거예요. 거기서 음반 작업도 많이 했어요, 워낙 고가의 장비들이 많아서. 콜그 (Korg)라는 악기샵 전체를 썼으니까. 항상 녹음실에서 작업을 하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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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러면 CB Mass는..

 

CB Mass가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모르죠? (웃음) 이것도 아마 처음 밝히는 걸 텐데, CB Mass는 처음 커빈 형이 해서.. '커빈과 아이들'로 하자는 쪽으로 뉘앙스를 풍겼데요, 이런 식으로 간 거야 (웃음) 거기에 누구도 끼고 누구도 끼고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완전 시초는 커빈, 비니, MC 신건 이렇게 셋이었어. 그러다가 나중에 누구 끼고 그렇게 된 거였고.. 하루는 작명을 해야하는 데 한남잭슨 (당시 일스킬즈 비니)가 사전을 찾다가  ‘CB’는 ‘커빈’ 그렇게 하고 막 찾다보니까 Mass라는 게 있더래. Mass가 덩어리야. 그러니까 '커빈과 덩어리'야 (전원웃음) 그걸 누가 지었냐면 일스킬즈 비니가 지었어요.

 

(*주: CB Mass는 커빈, 개코, 최자 3인조가 되기 전에 거의 다른 멤버 구성이었으며, 멤버는 커빈, 비니, MC 신건, 주신 (Joosin), 메이크원 (Make-1)으로 알려져있다.)

 

 

 

 

 


LE: 이름에 관한 루머가 진짜였네요?

 

진짜로 그렇게 지었어요. ‘커빈 매스’(CurBin Mass)가 맞아요. 크리티컬 브레인(Critical Brain Mass) 라고 말하는데 그때 그 인터뷰 보면서 많이 웃었지. (웃음) 어쨌든 갔다오니까 CB Mass가 있는 거야. 나는 캐나다 유학 동기였던 만두라는 동생하고 같이 있었는데, 그때 MC 신건을 CB Mass의 스타일하고 안 맞는다며 커빈 형이 내보냈어 (웃음)

 

 

 

 

 


LE: 진짜요?

 

근데 이거는 좀 이쁘게 포장해주세요. 아니면 신건이 또 입 튀어나올까봐 (웃음) 그래서 이렇게 “멤버간의 불화”로 인하여.. (웃음)

 

 

 

 

 


LE: 그게 멤버간의 불화.. (웃음)

 

이렇게 크게 뭉뜽그려야지. (웃음)

 

 

 

 


LE: 커빈 씨가 한국 최초의 스웨거였군요 (웃음)

 

'형 힙합이 뭐야?' 그러면 무조건 '간지, 힙합은 간지지' 이거를 제일 먼저했던 사람이 커빈 형이에요. 그러고서 비니만 CB Mass 안에 있다가 어쩌다가 나온 거지. 나랑 만두랑 둘이서 작업하다가 MC 신건이 나왔길래 ‘잘 됐다, 나랑 밴드나 하자’ 그러면서, '코스모스 악기'라는 악기점이 양재동에 있어요. 그리고 PC통신 동아리 중에, 나는 블렉스가 아니었고 넷츠고. 넷츠고 힙합 스트릿 컬쳐? 그거였어요. 거기서 페니(Pe2ny)형을 만났죠. 또 코스모스 악기점에서는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를 만납니다. (웃음) 그래서 페니와 소울스케이프와 저와 만두가 한 밴드를 이루어서 공연을 하기 시작하죠. 공연을 한 6주 정도 했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너무 저속하니까. (전원웃음) 뭐, 주옥같은 노래들이 많습니다. <미아리 가>, <뻑큐로보트> (웃음) 그 곡이, 지누션(Jinusean)이 ‘로보트 태권 V~' 그거 했었잖아요. 그 노래 듣자마자 우리는 'fuck you 로봇~' 하고. (웃음) YG 패밀리 나왔을 때는 '딸딸이 패밀리'도 만들고. 그렇게 가감없이. 어쨌든 다른 데서는 다 심각한 얘기만 하고 있고, 우린 6주 정도 지났는데 반응이 재밌었죠. 그러면서 어느 잡지 인터뷰에서 '너네 밴드명이 뭐냐' 그랬는데 '어.. 글쎄요.' 6주 동안 밴드명 없이 활동하다가. (웃음) 그러다 그냥 'PD...PB요' 그렇게 해서 나온 이름이 PDPB가 된 거예요.

 

 

 

 

 

LE: 그럼 ‘핏덩이가 된 피바다’라는 의미는 그 다음에 붙인 거예요?

 

원래는 피차 더러운 거 피하고 보자 라는 느낌으로 페니 형이 이름을 같이 생각해서 붙였지.. 그러다가 별 의미없이 공연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뭐냐고 계속 물어보니까... 모 방송국에서 나왔을 때였을 거예요, 그때 ‘우리가 제일 어리거든요. 핏덩이가 피바다가 돼서~’ 이렇게 말하다가 만들어졌어요.

 

 

 

 

 

 

LE: 그때 원타임(1TYM)이나 YG패밀리 팬들끼리는 '야 언더에서 이런 노래가 나왔대' 이랬었는데 (웃음)

 

대박이었죠. 그때 공연 올라갔을 때 YG패밀리 순서 앞에 나를 붙여달라고 했어. 그때 양현석 사장이 보고 있었거든? 그 앞에서 물병 가지고 딸딸이 치는 것처럼 완전 뿌리고. (전원웃음) ‘개같은 새끼’ 이러면서 휴지 던지고, 그때 아이돌 팬들이 있잖아요. 내가 '이 개같은~'이러니까 그 애들이 나보고 '저건 미친 거지' (웃음) 그것도 방송 촬영하는데.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죠.

 

 

 

 

 

 

LE: 그때부터 거침없었네요. 그러면 라이오타(Riota)는..

 

그게 비니랑 신건이랑 저랑 셋이서.. ‘riot’ 이라는 말이 '폭동'이에요. 멋있잖아요 그게 (웃음) 힙합플레야처럼 -er 대신 -a 붙이고... 그렇게 라이오타가 됐어요.

 

 

 

 

 


LE: 활동 얼마 하지 않았던 걸로 아는데

 

그렇죠. 라이오타는 굉장히 짧게 활동했죠. 근데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 무슨 프리스타일 랩 배틀 같은 게 있었거든요. 거기 나갔는데 ‘디지 of 라이오타’ 이런 이름으로 나갔었어요. 그런 식은 몇 번 있었죠.

근데 전 음악을 너무 진지하게 하면은... 그게 3개월을 못가요. 다른 미친 앨범을 준비하든지, 뭘 해야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음악이 진지하면 죽을 거 같아요.

 

 

 

 


LE: 얼마 전에 했던 ‘힙합엘이 가리온 인터뷰’에서 메타(MC Meta) 형님이 디지의 어린 시절을 '광기 있는 아이'라고 표현했었어요.

 

그때 미쳤죠. 그냥 광기 있는 아이가 아니었어요. 전 지금 그 형들이 절 봐준다는 것만 해도 감사해요. (웃음) 메타, 가리온 나찰, 킵루츠(Keeproots) 근수형, 션이슬로우형, 아티산 비츠나 이 분들이 이삭(Issac)이나.. 제 와이프를 잡고 웁니다. 세상을 구했다고. (전원웃음) 하루는 나찰 형이, 그때 내 이름으로 방송출연료가 나온 게 있어서 이종현 씨가 ‘김원종’하고 부르니까... 본 지 한, 3년도 더 된 시간만에 나찰 형이 '너 김씨야?' 그래요. '왜요?' '난 너 피씨나 마씨일 줄 알았는데' (전원웃음) 그랬던 적도 있죠. 광기 있는 아이 정도가 아니고, 그땐 진짜 미쳤었어요. 뭐라 그러지... 창피한 게 아무 것도 없고 그런, 약간 조증 환자였죠.

 

 

 

 

 

LE: 어떻게 보면 부러워요.

 

아우.. 그게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알아요? (웃음)

 

 

 

 


LE: 근데 그렇게 하면서 디지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아졌겠어요.

 

엄청나게 많았죠. 왜냐면 힙합은 간지인데... 근데 소울컴퍼니 (Soul Company) 처음 등장할 때 키비(Kebee)는 쇼킹이었지. 이 얘기가 아무래도 내가 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난 진짜 가감없이 다 얘기하니까. 소울컴퍼니가 처음에 나왔는데, 애들 옷이 힙합이 아닌 거야. 고딩 스타일 인거야, 진짜 그 느낌이. 그래서 솔직히, 그때 음악 같은 거보다 더 왜곡적인 시선들 같이, 그때 힙합 자체가 굉장히 폐쇄적인 게 심했었어요. 당시 힙합 공연장이 마스터플랜, 슬러거 (Slug.er), 라이브클럽이 있었는데 슬러거나 라이브클럽은 말 그대로 급 안 되는 애들 공연하는 곳, 그 다음에 마스터플랜은 잘하는 사람만 있는 곳. MC 스나이퍼가 슬러거에서 활동하다가 마스터플랜으로 왔다가 여기서 약간의 논란이 나서 다시 돌아간 그런 케이스였고. 그렇게 폐쇄적인데, 소울컴퍼니가 등장했을 때, ‘아니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중고등학교 얘기를 할 수 있지?’ 그게 되게 충격이었어요. 내가 충격을 받았으니, 다른 힙합 팬들은 무시를 하기도 하고, 디씨트라이브(Dctribe.com)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근데 그 사람들도 다 밖으로 끄집어내면 되게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근데 그런 평범함이 뮤지션 가오가 안 난다고 생각한 거죠. 그리고 몇 년 지나고 키비를 보고 소울 컴퍼니의 성장을 보았을 때 나는 굉장히 기뻤어요. 진심으로 한 문화가 된 그들을 보고.. "키비 보고있나?"

 

그런 속에 디지란 애는... 저는 무브먼트에서도 외전이구요, 마스터플랜에서도 외전이에요. '저런 애는 한 명만 있으면 족해' (웃음) 뮤지션 사이에서도 저한테 반감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들도 되게 많았죠. 그런게 다 풀리기 전까지는, 딴 거 하지 말고 그냥 음악만 하라고 했던 형들이 많았으니까. 그냥 자신이 살고 싶은데로 사는 자유인 취급 정도.

 

 

 

 


LE: 그럼 지금은..

 

지금은 안 건드리지, 볼드모트가 되다보니. 지금은 제 이름도 잘 안 불러요. '그'라고 부르지 (웃음)

 

 

 

 

 

LE: PDPB 때,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님과 함께 한 것도 그렇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조합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람들이 그래요, 밖으로 보여지는 이미지하고 안에 같이 음악 하는 사람들, 내가 진짜 친한 사람들은 래퍼보다는 프로듀서들이 훨씬 많거든요. 그쪽 라인... 아예 작곡가 라인. 또 엔지니어 생활도 길게 했으니까, 음악으로 들어가서 얘기하면, 정치 얘기랑 음악 얘기를 하라고 그러면 진짜 재밌게 담론을 할 수 있는 깊이가 되니까. 그리고 그 당시에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트 엔지니어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프로듀서들, 당시 가리온이었던 재유(J.U.) 형이든 아티산 비츠 형이든 늘 어떤 악기 쓰고 어떤 식으로 믹싱하고 같이 고민했죠. 근데 나는 그때는 약간 '갑' 입장이긴 하죠, 녹음실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또 그 당시에 유진박 씨 세션 전체 팀들이 같은 작업실 안에 계셨거든요. 그런 음악적인 배경들이 있으니까 되는 거죠. 그래서 소울스케이프 형이랑도 음악 얘기가 주가 됐지, ‘형 난 이런 밴드를 만들 거야, 이런 노래를 할 거고' 이런 것보다, 음악 안에서 프로듀서의 역할, 디제이 역할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나눴어요.

 

근데 어느 날은 마스터플랜에서 했던 공연이 개판이 된 거야. 스피커도 나가고.. 제가 이종현 씨에게 마이크를 집어던지고 난장판 부린 적이 있어요.. 저랑 나이 차가 띠동갑 차이인데, 그렇게 된 거예요. ‘너 공연이 왜 그래’ 그러니까 ‘스피커나 고쳐!’ 그러고... 그래도 거기 클럽 사장인데 (웃음) 민준이 형 (소울스케이프)이 뜯어말리면서 ‘그래도 내가 너 때메 음악했잖아, 왜 형들한테 이래’ 그런 일화도 있었어요. 덕분에 그런 조합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지. 그리고 원래 '디지를 왜 만났어요' 이렇게 물어보면 누구든 얘기하기를 꺼려해 (전원웃음) 나도 잘 알아요.

 

 

 

 

 

 

LE: 그때부터 굉장히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무대매너를 보여준 걸로 알고 있어요. 이는 뮤지션으로서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지만, 방금 말했듯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거부감에 대한 부분은... 저는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게 전부 쇼라고 생각해요. 무대 올라가는 건 이미 쇼가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쇼가 시작되는 순간에, 사람들은 쇼를 보러온 거지, 감상을 하러 온 거라고 생각은 안 해요. 음악 장르의 특성상. ‘팔짱 끼고 음악 들으려고 힙합 공연장에 온다는 게 과연 맞는 건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이번에도 1세대 공연할 때도 피투성이 옷을 입고 올라간 거.. 형들이 '넌 어떻게 10년이 지나도 똑같냐' 이러는데, 그냥 그건 늘 똑같은 거 같아요. 무대 장치를 만들어주고 그걸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를 시켜주는 게 맞다는 거지. 동선 파악도 해야 되고 조명 파악도 해야하고... 그 공연에 돈을 내는 관중들은 1,000원이라도 합당하게 지불을 하는 건데.. 그런 생각이 되게 크고요. ‘힙합, 힙합‘ 이렇게 얘기는 하지만, 난 진짜 ‘또라이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가 맞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1집 냈을 때 '조선일보 좆까' 그러면 진짜 가서 하고. 그리고 ‘난 [The Last Winter Story]야’ 했을 땐 그만 두고, 어디 여행 갔다오면 그걸로 앨범 또 내고, <김디지를 국회로> 하면 국회도 한 번 출마하고. (웃음) 이런 거예요 애초에. 전체가 하나의 퍼포밍 아트(performing art)가 됐으면 좋겠어요. 진짜 행위 예술. 전 유명해지기도 싫어요. (웃음)

 

 

 

 


LE: 이미 유명하시잖아요

 

그건 우리 씬 안에서 그렇지, 근데 밖으로 얼굴 팔리거나 알아보는 건 생각보다 못 하니까 참 다행인거 같아요.

 

 

 

 

 

LE: '1세대'에 대해서 할 말이 있으실 것 같아요. 사람들의 편견에 대한 얘기, 평가, 추억 등등.. 먼저 '1세대'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단, 강한! 거부감이 들구요. 매번 이 얘기를 하는데, 지금이 바로 1세대가 만들어진 시기에요. 커리큘럼이 생기고 컨텐츠가 생기고 그 컨텐츠가 활용될 수 있는, 그걸 보고 답습을 할 수 있는. 지금 이제 데뷔하는 친구들이 1세대 문을 닫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해요. 최소한 어떤 세대가 구분 지으려면 최소 10년 이상의 기간이 지나야하는데 그 구분점이 무슨 '70년생부터 83년생까지는 1세대' 이런 식으로. 지금 보면 느낌이 거의 그렇잖아요. 아니면 뭐 '78까지 1세대, 그 다음엔 약간 벗어난 세대' 이건 진짜 웃긴 거 같아요. 1세대는 이제 생겨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거 같기도 하고. 그전까지는 1세대에 대한 얘기가 없었는데. 근데 요즘 2세대, 3세대 얘기하는 건 되게 웃긴 거지. 포괄적으로 보면 걔네도 포함되는 건데. 전 100세대까지 갔으면 좋겠어요. 천년만년 힙합왕국을 꿈꾸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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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PDPB 때도 그렇고, 페니(Pe2ny) 님과의 인연이 각별해 보여요.

 

일단 PDPB 해체 이유는 아주 단순해요. 제가 그때 성격이 진짜 너무 나빴어요. (웃음) 멤버들이 내 성격을 견디질 못해. 그러니까 약간 백조 같은 거 있잖아요. 겉으로 얘기할 땐 '너 존나 잘해' 이러는데 뒤에선 연습량이 막 8~9시간 되고 '너 왜 4시간 밖에 안했어' 이런 간지가 너무 심해서 그거를 견딜 수가 없는.. 제가 콜라보한 게 아니면 백업 래퍼들과 무대에 같이 안 올라가는 이유가, 백업래퍼들이 설 자리가 아예 없어져버리고, 제가 그들 존재감 자체를 그렇게 만들어버리니까. 또 그 당시 페니 형 말에 의하면, '형! 솔직히 형 하는 거 존나 구려' 이렇게 말했대요 매일매일. 제가 아예 꽁해있고 그런 성격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소울스케이프는 알아서 이렇게 빠지시고.. (웃음) 소울스케이프의 진면목은 음악에 대한 설명을 해줄 때가 진면목이에요. 비트를 만들 때도 최고지만, 음악 해석이 장난이 아닌 사람이에요. 거의 모타운(Motown) 시절 펑크 이런 것들을 정말 분석을 잘하는 사람. 정말 최고예요 제가 봐도. 물론 훌륭한 프로듀서이고, 훌륭한 디제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음악 트는 거 보면은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환장할 정도로 좋은 음악을 틀어요.

 

어쨌든 페니 형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시고..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나서 [The Musium] 작업을 다시 하게 되면서 같이 한 거지. 그땐 성격도 지랄 같지, 스튜디오도 가지고 있으니까 나대는 것도 지금의 한 40배 정도 되지, 그걸 어떻게 견뎌? 조금만 뭐 했다하면 '당연히 형 구리지, 왜냐면 형은 장비가 없거든' 이러니까 (웃음) 거 얼마나 얄미워. 그리고 나서 [The Musium] 작업할 때 형은 에픽하이(Epik High) 프로듀서하고... 서로 따로 작업을 하다 만났는데, 애가 10년 전이랑 똑같아보이는 데 온순해진 거야. 페니 형이 그때 놀랐대. ‘나이가 들면 사람이 조금은 바뀌었겠지’ 하고 만났는데 아예 180도 바뀌어있으니까, 그래서 놀랐다고 하더라고.

 

 

 

 


LE: 예전에 힙합 더 바이브 (Hiphop the Vibe)에 출연해서 인터뷰하셨을 때 놀랐었어요. 저렇게 차분하게 얘기하다니, 머리 스타일도 5대5 가르마였고 (웃음)

 

(웃음) 근데 그때 PD가 당시 스나이퍼 형 기획사 사장한테 뭔가 좀 받은 거 같아. 그래서 편집 방향성도 의도적으로 틀고, 내 바로 뒤에 MC 스나이퍼 당시 나왔던 앨범 타이틀곡도 틀어버리고... 그냥 뭐... 그 PD는 잘 살려나... (전원 웃음)

 

 

 

 


LE: 또 데킬라 에딕티드(Tequila Addicted) 때 골리앗 몬스터 (Goliath Monster *주: 현 Bizniz)랑 같이 하셨죠.

 

아 그건 또 어떻게 된 거냐면, 원택 (골리앗 몬스터)이 아버님이 지휘자 하성호 씨세요. 그 분이 당시 서울예술종합학교에 학장님이셨거든요. 근데 저랑 비즈니즈 (Bizniz)랑 넋업샨이랑 셋이 대학에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대학 동기예요. 근데 난 2주만에 나왔고, 술마시고 매일 피아노 연습실에 있고.. 그러니까 '차라리 나오지 마라' 그러죠, 맞는 얘기죠. 사실 교수진들이 밖에 나가면 다 형들이었어요. 밖에서는 작업 받고 '네 형 갈게요' 이런 사이였는데 다음 날 학교 가면 교수인 거야. 그러니까 형들이 술 먹을 때도 ‘넌 여기 왜 있냐?’ 그러면 '엄마가 아들 밖에 나가서 뭐 하냐 그러면 대학생이라고 얘기라도 해줘야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웃음) 그렇게 잠깐 다녔고... 그때 비즈니즈와 넋업샨이 '기계치'가 있었고

 

 

 

 


LE: 그럼 세 분 다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학교에서 만난 거예요?

 

그렇죠... 학교에서 만났는데.. 아닌가? 그건 내가 좀 헷갈린다. 어쨌든 그 근방에서 시작했던 사람들이에요. 넋업샨 노랑머리, H.O.T. 머리할 때. 그때 만났던 사람이에요.

 

 

 

 


LE: 그때 다른 동기 분들 중에서 지금 힙합음악을 하고 계신 분도 계세요?

 

아 시진이, 소지섭하고 앨범 냈던, 엔썬 (N-Son). 시진이는 나랑 동갑내기 친구라서 되게 친했었고, 나머지 둘이야 뭐 매일 마스터플랜에서 봤으니까. 어쨌든 [MP HIPHOP 초] 앨범 사진 찍을 때, ‘아 그러니까 데킬라 애딕티드 이게 팀이 아니라..’ 갑자기 이렇게 된 거예요. 근데 그때 원택이는 활동을 하던 친구는 아니었으니까 '너 사진 찍을래?' 그러니까 '예~' 그러길래, 듀렉 씌우고 사진을 찍은 거예요. 별 의미는 없어요.

 

(*주: 데낄라 애딕티드는 디지가 했던 ‘원맨 밴드’이다.)

 

 

 

 


LE: 또하나 잘 안 알려진 경력, 일로직 위즈덤 (Illogic Wisdom)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세요

 

그게 원래 노래 부르는 형, 셔니슬로우(Sean2slow) 형님 결혼식 때 축가불렀던 창건이 형이랑 저랑, 셔니슬로우랑 그때 건반 치던 형.. 이름을 까먹었는데 그 형도 되게 유명한 작곡가거든요. 그게 그렇게 해서 그냥 프로듀싱 팀이었어. 근데 그 곡 (Sean2slow <Moment of Truth>) 전체 편곡을 내가 했어요. <Moment of Truth>의 co-producing이지. 공동 프로듀싱으로 보면 돼요. 실제로 거의 일거수 일투족을 아주 다 싣는.. 셔니슬로우 형이랑은 어저께도 만나서 술 먹었고 정말 존경하는 나의 엄마지만 (웃음) 작업 한 번 같이 하면 아주 죽을 거 같아요. 그때가 최고였어요. 1곡을 3주 작업했어요.

 

 

 

 


LE: 정말요? 그래서 앨범이 늦게 나오시는 것도 (웃음)

 

네. 그래서 앨범이 안 나온다는 얘기가.. 진짜 깐깐해요. 근데 그 곡 작업할 때는 내가 지금까지 제일 재밌었던... 근데 애들은 모르더라, 내가 그 곡을 썼었는지. (웃음) 요즘에 '<Moment of Truth> 이 곡은 레전드고 프로듀서는 누구지?' 이러는데 그거 내가 만들었어. (웃음) 편곡 전체랑 사운드 엔지니어링 전체 다 담당했었어요.

 

 

 

 


LE: 그 후에는 The Motiphie라는 프로듀싱 팀도 하셨었죠.

 

그거는 철저히 상업화 시켜서 나간 팀인데, 이름은 여러개에요. 가요 쓸 때는 ‘압구정건물주’ 이렇게 쓰고 (웃음)... 압구정의 건물주가 된다는 얘기죠 열심히 해서. 어쨌든 그거는 완전 가요나 CF 음악할 때고, 이비아 <삐까 Chu>할 때도 했고, 대놓고 방송 나갈 때 한다는 거? 아닐 때는 다 디지로 가요.

 

 

 

 


LE: 그런 프로듀싱 팀은 디지와 다른 컨셉을 세우기 위해서 결성하는 건가요?

 

그냥 누가 편곡하면 같이 들어간다든지... 있다가 ‘하자’ 하는 거예요 아무런 야망 없이 (웃음)

 

 

 

 


LE: 즐기면서 하시는 편인 거 같아요.

 

그게 없으면 이건 못하는 직업인데, 직업 자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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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외에도 여러 활동을 했지만 정리를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웃음) 특히 은퇴나 컴백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게 은퇴는 아닌데 (웃음) '잠깐 접을게요' 이런 식이었긴 하고.. 지금도 은퇴는 유보상황이에요. 2001년에 얘기했던 은퇴는 아직도 은퇴예요.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컴백은 없을 거예요. 음악은 나한테는 가장 값진 취미예요. 가장 값진 부업이기도 하고.

 

 

 

 

 

LE: 아무래도 음악과 회사를 병행하는 게 힘드셨나요?

 

아니요. 그게, 리프레쉬(refresh)가 되게 많이 필요해요. 그리고 나는 가요를 쓰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게 제일 우선 조건... 그러니까 내 음악을 참고로 해서 이비아(e.via)가 만약 언더에 데뷔했다, 그러면 그걸 참고해서 ‘오빠’라는 단어를 가요계에서 써요. 원래 그전까지는 금지되어 있던 거예요. 뭐 그런 식의 약간.. 여긴 공장, 또는 R&D 센터라고 생각해요. 이런 걸 작가주의라고 하잖아요.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같이 가는, 그런게 저한테는 다 기계적인 장치라고 여겨져요. 보면, 1집 앨범부터 지금까지 전체 스토리 다 이어져요. 근데 그거는 아직 아무도 다 풀지 못 했었요. 앨범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트랙들이 꼭 있어요. 사랑 얘기를 보면 두 여자에 대한 얘기 밖에 없어요. <너는 천사다, 난 아닌데> 그거는 한 여자 때문에 그 앨범 전체가 나온 거예요. 그런 것도 있고.. 국회의원 그거 하기 전에 복선. 2004년에 냈었던 <오냐 씨발 것들아>가 2008년의 복선이에요.

 

 

 

 


LE: 아 미리 염두해두고..

 

네. 첫 앨범 나오면서부터 지금까지가 다 스토리에요. 다 복선이 깔려있어요.

 

 

 

 

 

LE: 약간 '이상(소설가)' 소설 같기도 해요.

 

아예 애초부터 그런 식으로 캐릭터화 시키는 거지. 근데 이거를 구차하게 얘기하는 게 얘기하는 게 싫었어요. 특히 어렸을 때는 진짜 싫었어요. [The Last Winter Story] 마지막에 그때 크로우라는 헤비메탈 팀하고 했었던 게, 무역회사 다니는 김대리가 와이프를 밀어 죽여, 근데 와이프가 음악이야. ‘내가 죽은 줄 알았냐?’하고 나와서 다시 살아있긴 해. 그 곡이 2000년 말에 나와서 2001년 1월인가? 그때쯤에 풀렸는데 거기에 얘기했던 복선이 [417일간의 세계 일주] 부틀렉을 제외한 다음 부틀렉, 2004년에 나온 부틀렉의 '무역회사 김대리'야. 여기에 이미 '무역회사 김대리'가 깔려있는 거지. 이런 얘기들이 여기저기 깔려있어서, 안에 회사원 김대리도 있고 그 다음에 진짜 섹스중독자 디지도 있고, 데낄라 애딕티드도 있고... 사랑 노래를 하는데도 표현 방법이 '씨발년아 너 사랑해' 이런 표현을 할 수 밖에 없는 디지라는 캐릭터도 있고. 그리고 인스트루멘탈도 다 연결돼있고.

 

 

 

 

 

LE: 그러면 이런 걸 2001년도 쯤에 미리 다 생각을 하셨던 거예요?

 

첫 앨범이 나오면서부터에요. 그래서 음악을 그만둔 것도 사실 여러 가지 해프닝들이 많았는데.. 그 당시 인터뷰에서도 그랬었지 ‘맞아요, 음악 그만두는 건데, 그래도 제가 이거 안하고 살 수 있겠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프로로서는 음악 안 할 거예요.’ 나 나름대로는.. 그게 대단한 아티스트나 대단한 예술가가 아니고 그냥 내 이야기책...

 

 

 

 


LE: 무섭네요 (웃음)

 

재밌잖아. 시류를 따르지 않아도 디지는 디지로 살 수 있게. 그게 재밌어서.. UMC도 비슷하지 뭐, 근데 앨범마다 다른 거지, 나는 앨범이 이어지게...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앨범이 2집까지밖에 안 나와있는 거예요.

 

 

 

 


LE: 그럼 아까 말씀하신 대로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는 건 그때 그때 리프레시가 다 되었기 때문에..

 

네, 그때마다. 사실 곡이.. 지금 클래식 앨범 같은 경우는 곡이 이미 다 나와있고. 이미 2년 전에 다 나와있었어요. 재즈 앨범도 곡은 이미 그때 아이삭 스쿼브(Issac Squab)하고 한다고 뉴스가 떴을 때, 12곡이 트랙리스트까지 다 나오고 녹음만 남겨둔 상태였고... 이삭이 삐졌더라고 (웃음) '결국 나 시켜준다고 그래놓고' 이러면서.

 

 

 

 

 

LE: 그럼 이삭님은 참여 안 하는 건가요?

 

며칠 전에 1세대 콘서트에서 이야기 했는데 참.. 참여 안 시킬 거예요. 삐쳐서, 미안해가지고 특강도 좀 잡고 그럴려구요. (웃음) 그 앨범이 그래서 만들어진 거예요, 이삭이가 이비아 앨범 나왔을 때 방송에서 날 존나 씹은 거야. 빡돌아서 찾아가서 3자대면 하자고 그랬다가, 나랑 재즈앨범이나 하나 하자 그랬는데 덥썩 문 거지. 그래서 원래 하기로 했었는데, 얘가 공익도 가고... 요즘에 은혜 받아서 살아요. 목사가 된 건 아닌데 술도 안 하고... 말도 안 되는 거지, 천하의 그 쌍놈이.. 그래도 박이삭은 제가 13년 넘게 아웅다웅하는, 친하디 친한 싸가지 없는 후배랍니다.(웃음)

 

 

 

 


LE: 한때는 은퇴의 이유를 '음악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이라고 말한 적도 있으시잖아요.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요?

 

네. 세상을 바꿀 수 없어요.

 

 

 

 


LE: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근데 꼭 세상을 바꿔야 할까요?

 

제가 ‘호치민 전기’ 읽기 전까지는 생각이 약간 달랐었거든요. 20대 때 진짜 패기로 생각할 수 있는 거 있잖아요. 다 갈아엎어버리자 이런 주의? 근데 호치민은 뿌리만 흔들리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용납은 된다. 공산주의건 민주주의건 상관없이 어차피 이건 베트남 사람들을 위한 거지 않냐. 그래서 아마 베트남 사람들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이고, 타임즈가 뽑은 세상을 바꾼 100명 중 하나에 들어갈텐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이가 마흔이 되면 우리 사회의 심장이 돼요. 스무 살 래퍼가 부르는 거 하고 마흔 살에 심장이 됐을 때, 즉 시스템 안에 CPU 근처에 있을 때 하는 말은 달라요. 저는 기생충처럼 살고 싶어요. 심장까지 들어가는... 야망이 있는 게 아니야 절대. 야망이 있진 않아. 언젠간 지구를 향해서 fuck you를 날릴 수 있는? 지구를 발밑에 둘 수 있는? 그런 삶. 개인적인 거지, 그거를 뭐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서 그런 건 아니고..

 

훌륭한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그건 나랑 안 어울리거든. 그저, 일개 쓰레기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라면 봉지가 쓰레기가 되는 건 라면 포장지로써 값어치가 없어서 그런 거지, 그 전까지는 라면봉지라는 존재 이유가 있잖아. 그런 것처럼 모든 게 존재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내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음악으로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어요- 그 노래가 계속 들려진다면. 근데 그거는 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는 효과랑 똑같은 거지. 절대 한 번에 파란색으로 변하지 않아요. 똑같이 한 방울씩 떨어지다가 점점 색깔이 옆으로 옆으로 색깔을 변하게 만들 뿐이지, 순수 물은 변하지 않아요. 말하자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트렌드를 바꾸는 거죠. 그렇게 얘기한다면 음악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소녀시대가 바꿀 수 있는 거죠. (전원웃음)

 

 

 

 


LE: 소녀시대는 매일 나오니까요? (웃음)

 

그럼. 소녀시대는 대통령도 만들 수 있으니까. (웃음) 소녀시대가 말하면 다 뽑지 왜 안 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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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뭔가 씁쓸한 얘기네요 (웃음). 다음으로, 사람들은 보통 '디지' 하면 음악적으로는 '재즈힙합'을 떠올리잖아요. 이런 이미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즘 음악 트렌드가 매쉬 업(Mash Up)이거든요. 일렉트로니카를 틀어놓고 거기다 힙합을 집어넣는 크로스오버 형식의 음악. 근데 난 매쉬 업이란 단어가 나오기 전부터 그걸 했어요. 형태로 보면, 전 늘 그랬으니까. 난 내가 만든 모든 노래에 랩만 들어가면 돼요. 랩의 형태만 들어가 있으면. 메시지가 강한 거라면 음악이 반드시 힙합이지 않아도 될 거고..

 

근데 스킬은 절대 평가 기준이 없잖아요. 우리가 체조 선수는 아니니까 점수를 매기는 기준이 없단 말이죠. 그러니까 팬들 입장에서는 '디지 씨는 랩을 할 때가 제일 나아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 그러니까 이 질문은, 재즈힙합이 그 당시에 아예 한국에 없었다는 것? 제일 먼저 했었다는 것 때문인 거고, 지금도 제일 잘하는 거긴 해요. 제일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악이에요 나한테는. 며칠 전에 루피 (Lupi of Young Boyz)하고 통화하다가 '형, 저도 한 곡 할래요' 하길래 '어 알았어' 하고 끊자마자 20분 만에 곡 만들어서 줬으니까. 이미 가지고 있는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거라서, 이렇게 레고 껴맞추듯 만들 수 있고, 그래서 그건 맞는 거 같아요. 질감 있는 느낌을 잘 찾아낸다고 한다면. 근데 그거 말고 다른 시도, 예를 들어 락 음악도  하고 싶고, 9월 쯤에 헝가리 가서 클래식에 힙합에 가요, 테너 섞은 그런 아예 다른 시도들도 있고요.

재즈힙합의 대명사는 분명히 맞아요. 그건 내가 봐도 그래. 그리고 작법이 남달라서.. 시로스카이(Shirosky)나 재즈힙합을 표방하는 좋은 프로듀서가 되게 많은데 저와는 작법의 차이가 되게 커요. 나는 철저히 연주인과 프로들에게 거의 맡겨요. 그리고 그들의 플레이 그루브를 내 그루브로 바꾸면서도, 최대한 사람 손맛을 살려놓고 만들어요. 샘플 커팅의 수가 달라요. 작법이 달라서.. 보통 재즈힙합이라고 하는 누자베스(Nujabes)나 이런 사람들하고 내 노래는 소리가 틀려요. 거기에 욕까지 해버리니 아주 대박이지. (전원웃음) '세상에 이런 게 어딨어'. 어쨌든 매쉬 업이라는 단어가 딱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거 같아요. 랩만 있으면 돼요 어떤 곡이든.

 

 

 

 


LE: 그럼 꼭 랩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야 랩이 좋아서 음악을 했으니까요.

 

 

 

 


LE: 재즈 힙합의 대명사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을 만들었어요. 특히 <김디지를 국회로> <J.N.P.> <힙합 리듬에 맞춰>는 완전 신나는 힙합 스타일이고.

 

약간 락 적인... <힙합 리듬에 맞춰>는 드럼이 힙합이 아니야. 'We will, we will rock you~' 그거예요, 락이에요. (웃음)

 

 

 


LE: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시는데.. 어떤 영감으로 그런 시도와 작업을 하시는 건지.

 

제가 프로듀서를 하고 교수를 하는 게, 음악을 잘 만드는 것 때문에 행복한 거면 이유가 될 수 없는데, 음악이 좋아서 듣던 사람이 이 길로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음악을 듣는 귀가 어마어마하게 열리는 거예요. 특히 프로듀서, 엔지니어 쪽에 있으면 질감, 사운드 전체를 구분해서 들을 수 있고.. 어떤 장르의 음악을 가져다 줘도 그 사운드 스펙트럼이 눈에 보이니까 얼마나 행복해. 내가 어렸을 때 원했던 게 '음악 잘 듣는 귀를 갖게 해주세요' 였는데 그게 되니까...

 

평론가하고 뮤지션하고 절대 붙을 수 없는 이유. 평론가는 감상자, 뮤지션은 크리에이터 (creator). 그렇기 때문에, 평론가는 크리에이터가 하는 걸 할 줄 모르잖아. 사운드가 어떻게 합쳐지고 하모니를 이루는지, 그런 방법들. 물론 음악을 정말 많이 들은 평론가는 그걸 안다고는 하지만, 그건 절대 1~2년 정도 된 작곡가한테도 견줄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영감인 거 같아요. 저는 공연장을... 펜타 같은 락 페스티벌 같은 걸 거의 빠지지 않고 매년 가요, 집사람이랑. 그리고 클럽도 너무 좋아하고, 재즈클럽도 진짜 좋아하고, 펑크 가서는 슬램도 하고 그 다음에 클래식 공연장도 거의 빠지지 않고 가고, 뮤지컬도 보고, 미술관 가고, 끝없이. 그러니까 진짜 노는 게 직업이잖아요. 보고 듣는 만큼 얘기해 줄 수 있고 만들 수 있으니까... 그거인 거 같아요. 직업에 충실하다 보니까. (웃음)

 

 

 

 


LE: 그런 예술을 많이 접할 때 더 많은 영감이 나오신다는 얘기네요.

그렇죠. 감상이죠. ‘이나중 탁구부’ 보다가 갑자기 꽂혀서 펑크밴드 만들고 그런.. 그런 거 같아요. 아무 이유 없이 나오는 거 같아요.

 

 

 

 

 

LE: 잠시 질문을 돌려서... 작법 차이를 얘기하셨는데 그 때문일까요. [The Musium] 홍보할 때는 재즈힙합의 정수가 될 앨범이 나온다고 홍보가 되었는데, 나머지 다섯 프로듀서 분이 디지 님의 스타일하고 다르다보니 앨범이 조금 애매하게 된 감이 있었어요.

 

전체적인 컨셉에서, 뉴올(Nuol)한테 해달라고 했더니, 뉴올이 해석한 재즈힙합의 방식은 브러쉬(brush)를 쓰는 거더라구요. 우리가 나와서 그 설명을 안 하긴 했지. 그리고 전형적인 재즈힙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청자들의 느낌이 뭔지는 알고, 그리고 음악가지고 절대 변명을 안 할 뿐더러 할 이유도 없지만, 표현 방식들이 다 다르더라구요. 저도 그게 처음으로 내 것이 아닌 다른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은 거거든요. 전체 프로듀서로, 곡도 섭외하고 곡 위치도 맞추고 질감도 맞추고 엔지니어하고도 상의하고 그렇게 해서 그냥 버라이어티 앨범이 아닌.. 하나의 컨셉을 가지고 한 앨범인데, 곡자마다의 해석방법이 너무 다르더라구요. 사실 뉴올은 좀 더 튀었고 그 다음에 프라이머리(Primary)도 작법이 완전 달랐고, 아티산 비츠도 비밥(Bibap)이 기반이어서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음악들, 근데 조금 뚱딴지같은 음악들이 한 두 개가 들어가 있는 느낌은 저도 들었어요. 오히려 동시에 나왔던 피타입 [Vintage] 앨범이 훨씬 더 재즈힙합에 가까웠어요. 완전 어쿠스틱 앨범. 근데 뮤지션 입장이니까 악기 성분을 그쪽에서 많이 쓰는 악기를 쓰면 이건 재즈힙합으로 본다, 라는 철저히 그 곡자들의 시선, 생각, 색깔들. 그거에 대해선 제가 뭐라할 수 없으니까... 다 들어보고 순서를 맞춰서 만들었는데 힙합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100% 어쿠스틱도 아닌 것이, 프로듀서 6명이 모여서 나온 거죠. 근데 결국 재즈힙합이라고 달아 놓은 게 전부 다 똑같이 공감했었던 단어이긴 했었어요. '그래 뭐, 네가 굳이 기획한다면 재즈힙합으로 가야지' 이랬는데 온 곡들이 다 그래. (웃음)

 

앨범 자체는 되게 잘 되긴 했어요. 그때 제 안티를 거기서 다 확인하긴 했죠 (웃음). 앨범 자체도 잘 됐지만 더 좋았던 게.. 프로듀서들이 이렇게 같이 놀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요. 프로듀서를 위한 음반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거? 개인의 인스트루멘탈 앨범 말고 진짜 프로듀서들의 잔치 이런 게 없었기 때문에.. 그게 더 컸어요. 앨범 만드는 데 3,000만원 넘게 들었거든요? 홍보비 없이 제작비만 3,000만원 넘게 들었어요. 있는 장비 없는 장비 다 쏟아부어서... 그러고보니까 모여서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웃음) 지금도 만날 보는 사람들이니까.

 

 

 

 


LE: 당시 <Damn Ex-President>나 <JNP>로 방송에도 나가고 그러셨다고 하는데... 그런 방송 출연이 앨범 판매에 영향이 있었나요?

 

네. 델리 스파이스(Deli Spice) 보다 많이 팔았어요. 그래서 그 당시 우리나라 인디앨범 가장 많이 팔린 게 4천 장인가 그랬거든요. 근데 저는 2만 8천 장인가... 그러니까 당시 방송에 안 나왔는데 판매고가 진짜 높은 인디뮤지션 중 하나였고.. 여담으로 그 후에 ‘이소라의 프로포즈’ 이런 데서 하는 재즈 세션하고, 같이 방송할 수 있는 걸 만들어달라고 해서 [The Last Winter Story]를 만들었어요. 근데 그게 싫었던 거지, 그래서 그만 둔거지. (웃음) 지금도 제 프로듀서예요. 그 형한테 빗자루로 맞고 음악 그만 둬버리고.. (웃음) 당시 방송 나간 파급력이 지금 검색어 일주일 정도 가는 거보다 셌어요.

 

 

 

 


LE: 그당시 제 친구가 욕 되게 잘하는 래퍼 있다고 그러면서 (웃음)

 

‘와 저 뭐야?’ 그랬겠네요. (웃음) 근데 왜 아직도 없지? 전 좀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수위를 넘나드는. 근데 아직도 내가 가장 세다고 해. 아마추어 애들은 있는데 밖으로 활동하는...

 

 

 

 


LE: 아무래도 보수적인 면이 좀 있나봐요

 

있나봐요, 그것 때문에 힙합이 고2나 고3들의 공부 스트레스를 표출하는 문화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것에서 조금 회의적입니다. 같이 성장을 했어야하는데, 리스너들이 회사에 들어가면 음악을 안 듣게 되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입니다.

 

 

 

 


LE: 평소의 일반적인 작업 방식이 궁금해요. 아니면 최근에는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 걸 즐기고 있다거나..

 

세션 위주. 리얼 어쿠스틱 샘플 위주. 제가 드럼을 찍으면요, 사람이 치는 드럼하고 똑같이 나와요. 그건 제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해요. 제가 손으로 찍으면 똑같이 나와요.

 

 

 

 


LE: 실제로 드럼을 좀 치셨나요?

 

드럼 좀 칠 줄은 아는데 연구를 진짜 많이 해서.. 예전에 스튜디오에 있을 때도 딱딱딱 하는 소리가 다 들려. 발로 치는 것도 누가 치는 거에 따라서 소리가 다르고 압이 달라요. 미세한 질감인데, 들으면 그냥 센소리 작은 소리라고 하지만 진짜 사람이 치는, 손으로 하는 건 다르거든요. 그래서 프로듀서들이나 지휘자들이나 악기를 다 다룰 줄 안다는 게, 그 소리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드럼 같은 경우에 오히려 더 빈티지하게, 옛날, 808 소리를 집어넣는다든지 혼용시키곤 하는데, 드럼 라인만 딱 나와버리면 난 그 위에다가 어떤 음이든 얹을 수 있거든요. 4/4박이든 3/4박이든 다다닥 배치시키고. 작업 방식이 거의 리얼 어쿠스틱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근데 그렇게 들릴 뿐이지 정확히 얘기하면은 요번에 들어가는 것 중에 단 한 개도 어쿠스틱의 성향을 가지지 않았는데 세션들이 와서 연주한 줄 알아요. 그런 걸 밖으로 밝히지 않을 뿐이지 전 그런 게 되게 많아요. 사람들이 쳤다고 생각해요. [417일간의 세계 일주]는 그냥 골방하고 호텔룸에서 만들었거든요. 유럽 여행가서 띵가띵가해서 대충 만들고 가사 쓰고 그냥 막 낸 앨범인데, 개코 형한테 전화가 온 거야. '야 넌 돈도 많다. 풀 어쿠스틱 세션을 썼네' 그런 게 아니거든요. (웃음)

 

 

 

 


LE: <내 주파수를 돌려줘>도 그렇고 국내외 오케스트라와의 작업이 꽤 있으셨는데 계기부터 접촉 방법, 작업 방식 같은 게 궁금해요.

 

그게 조금만 연구하면 되게 쉬워요. 그리고 음악을 되게 오래했잖아요. 그래도 구력이라는 게 있어서, 예전에 처음에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다 한 자리씩 가 있어요.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뛰어난 아이디어가 있어도 절대 못따라오는 단 한 가지, 노련미. 천잰데 이게 음악이 혼자하는 게 아니라 하모니라서, 하모니 조합시키는 능력은, 그건 시간밖에 없어요. 몰라, 솔직히 나는 내 머릿속엔 그게 보이고 들리거든. 난 그게 보여요. 내 귀에는 들려. ‘저기에 뭐 집어넣으면 되겠다.‘ 근데 그게 사람마다 틀린가봐. 오히려 랩 같은 경우 이번에 디렉팅에 손을 안댔어요. 난 그냥 놀고 있고, 이루펀트(Eluphant)도 키비가 하고 민호(Minos)가 하고.. 가리온은 메타 옹한테 제가 디렉팅하기는 좀.. (웃음) 열심히 녹음 받아드리고. 그래서 철저히 그 사람들, 그들이 하는 걸 보면 ‘저게 음악을 저렇게 해석할 수 있구나’ 그래서 역으로 제가 놀라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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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배울 수 있는 게 많겠네요.

 

그렇죠. 상대적인 거니까. 오케스트라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게, 지휘자 귀에 들린다고 하잖아. 우찬 씨가 128khz를 듣다가 96khz를 들으면 음질 확 떨어지는 걸 느끼죠? 아니면 중간에 파일이 잘못되어가지고 하나가 뭔가 튄 거야. 들리잖아. 왜냐면 100번 들었거든. 들리지 무조건. 아니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톤이 변했어. 그런 것도 알지. 그러니 매일 듣고, 알고 있는 음들이 있는데 저쪽에서 바이올린 하나가 튜닝이 안돼서 줄 하나가 느슨하게 살짝 튀면 당연히 그거 잡아낼 수가 있지. 이제 이해가죠. 사람들이 지휘자가 하는 역할을 굉장히 잘못 알고 있더라고. 전체 하모니를 한 사람이 이끌어가는... 그 사람 아니면 그 소리가 안나요. 동네 깽깽 바이올린하는 사람들 10명 모아놓고 정명훈 씨가 지휘하면 열흘도 안 걸려. 3~4일이면 무대에 올릴 수 있어. 그게 프로듀서의 역할이야. 근데 일반인들은 좀 알 수 없는 것들, 그냥 프로듀서는 노는 거 같잖아. 놀아요 네. (웃음) 다 해놓고 정리만..

 

 

 

 


LE: 리스너 입장에서 오케스트라하고 했다라고 하면 좀 신기한 게, 일반적으로 한국힙합에는 단순히 음원 샘플링이 많잖아요. ‘컴퓨터만 있으면 만든다’라는 건데, 그보다 훨씬 복잡한 작업 같아보이거든요.

 

이게 리샘플링이에요. 샘플링 방식이 다른 거지, 리샘플링이에요. 오케스트라 녹음된 걸 가져다 그대로 쓰느냐? 그들의 연주를 라이브로 쓰느냐? 아뇨, 수정과 편집을 거쳐요, 편곡이라는 걸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리스너 입장에서는 '와 저걸 한 번에 쏵 지휘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물론 잘 얘기해서 하는 건 맞아. 근데 그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내 음악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 정도만 가늠하고 있는 거고, 그게 경력이라는 거지. 기술직이잖아요 프로듀서는. 가사를 쓰는 건 기술직이 아니라 말그대로 크리에이터라면 프로듀서는 크리에이티브에 기술이 합쳐진 그런 거지. 작곡이라는 건 기술이니까. 

 

 

 

 

 

LE: 그러면.. 국회의원 출마 얘기도 빼놓을 수가 없어요. (웃음) 계기가 어떤 거였나요?

 

2000년도에 생각했고, 한겨레 4페이지 장식한 그 인터뷰. 거기에 기자하고 얘기했던 거. '때가 되면 국회회원 출마할 거예요' 그게 계기예요.

 

 

 

 


LE: 그때는 아무도 안 믿었을 거예요 (웃음)

 

아무도 안 믿었겠지. (웃음) 더군다나 인세인 디지, 광란의 디지가? 아무도 안 믿었어요. 그리고 나는 나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봤는데 조건만 맞으면 되는 거잖아. 공탁금 1500 있으면 되고 나이 만 24세인가? 넘으면 되고, 그게 제일 억울했지. 아니었으면 미리 나갔을 거야. 내가 제일 억울했을 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했을 때, 나이가 1살이 모자라서 못나갔어요. 그래서 그 이듬해에 나온 게 18대 총선이니까, 숫자도 나하고 딱 어울려서 (전원웃음) 세보니까 딱 그렇더라고 내가 좋아하는 8자가 딱 있더라고요. 그래서 계기가 그거예요. 어렸을 때는 말도 안되는 공약이 난무하니까, 힙합당을 만들자, 세금은 5백원으로 가고. 어차피 다른 사람들 공약이나 내 공약이나 똑같을 거 아니냐. 공약 자체가. 그때 이미 훅은 나와있었어요. '김디지를 국회로 국회 의사당으로 다같이'.. 다 만들어져 있었어요. 그러니까 회사 다닐 때도 회사일이 안 힘들 수밖에 없는 게, 왜냐면 난 2008년에 나갈 거거든. 그거 생각하면 밤에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존나 재밌겠다' 온 머릿속에 '진짜 재밌겠다' 그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군대를 가서 수양록을 쓰는데 거기에 그림으로 다 그려놨어요. 봉고차 위에서 막 하는 공연. 근데 문제는 서태지 <필승>처럼 2톤 트럭 촥~ 원래 이거였는데, 망할 제작비가 없어가지고 (웃음) 그렇게 그림도 다 그려놓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Sleep Now in the Fire>인가? 제작된 뮤직비디오가 마이클무어(Michael Moore) 감독이 했어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뉴욕 증권거래소 문을 닫았어요. 1분에, 아니 1초에 몇 십 조가 돌아다니는 동네인데. 만약 10분이라도 일찍 닫게 되면 자본주의 자체가 장이 서버리는 거잖아. 실제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그걸 공표하고 했어요. 마이클무어 감독이 다 작전 짜주고. 그거 이쁘더라고, 멋있잖아. 그래서 나는 '오케이, 그럼 국회의사당에서 해야지' 근데 뮤직비디오는 제 꺼가 더 멋있어요. 경찰에 둘러싸이고 하는 게, 내 거가 훨씬 나아. (웃음)

 

 

 

 


LE: 그렇게 해서 소위 '정치판'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간접적인 체험을 하게 됐는데 겪어보니 어떻던가요?

 

한나라당 아저씨들이 나를 더 좋아하더라. (전원웃음) 진보나 사회당.. 완전 소수당들이 있는데 이런 당 같은 경우에는 거기도 정치판이랑 똑같아서 직업이에요. 표 뽑아가지고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 지역구 출마하려고. 그래서 그런 아마 절 제일 싫어했었던 게 진보신당. 왜 당시에 레즈비언 국회의원 나오시고 했던 그 당 있죠. 왜냐면 그 사람은 내가 없었으면 집중 타겟이거든. 근데 레즈비언보다 ‘20대에 최연소 강남구 갑에서 출마한 랩하는 국회의원’이 훨씬 더 이슈가 됐거든. 미디어가 그쪽을 1분 찍는 동안 우리를 5분 찍으니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싫지. 그 사람이 뽑히려고 나왔겠어? 오히려 그쪽 당들이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는 거. 그 사람들 생각하기엔 강남에 존나 부자집 아들내미가, 웬 망나니가 (웃음) 랩하면서 나온 거. 정작 열린 우리당, 민주당이 더 싫어했고요. 어차피 강남은 개가 지나다녀도 개한테 딱 한나라당 붙여서 공천해주면 개가 뽑혀요. 그건 그럴 수밖에 없어요. 오히려 다른 당들이 진짜 싫어했고 같이 출마한.. 총 10번까지 출마했는데 2명은 먼저 그만두고 8명이 나가서 내가 4번째였는데 우리가 공식적으로 2억까지 쓸 수 있거든요. 다른 아저씨들은 보통 3~4억 정도 쓰는 거 같은데, 내가 2,300만원 썼다니까 눈깔이 뒤집어진 거지. 열 배도 적게 썼으니까.

 

느낀 거라면, 솔직히 지금은 ‘똥으로 된장을 만든다’ 그러면 믿더라고. 굉장히 유리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거고. 또 하나가 말로만 정치 참여... 힙합플레이야 안에 있는 친구들하고 비슷해요. 한국힙합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네들이 존나 한국힙합 부흥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발전할까요? 우리가 논의를 해봅시다. 이래놓고 앨범은 사지 않는. 공연 안 보고. 평가만 하고.. 평가도 아니고, 악플 달고 불법 다운로드 받고. 똑같아요 완전히 애새끼들이나 어른이나 똑같아요 판이. 그래놓고 정작 나오라고 하거나 공연보자 그러면 나가기 싫은 거지. 정확히 그게 일치해요. 나 투표율.. 내 이론대로면 투표율이 70% 넘는 순간에 내가 당선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았던 거죠. 부재자 투표까지 다 포함하면 투표율이 가능했어요. 박빙 승부도 가능해요. 근데 50% 이하인데 뭘..

 

 

 

 


LE: 그럼 다시 나가볼 생각은 있으신 거예요?

 

전혀요. 그건 20대 때, 최연소일 때만 가능한.. (웃음) 정치에 대한 꿈은 그렇게 없어요.  정치에 관심이 많은 거지.

 

 

 

 


LE: 그런 것들이 일종의 퍼포먼스가 될 수 있잖아요.

 

위트에요 위트. 위트로 받아들이시고.. 사실은 해외토픽, CNN, 헤럴드 이런 데는 나가는데 오히려 한국 내에서는 집중을 안 했던.. 아니 우리나라에도 많이 나오긴 했지. 2주 동안 검색어 1위를 8번 했으니. (웃음) 거의 융단폭격을 받았으니. 근데  VJ 특공대 감 정도 밖에 안되는?

 

 

 

 


LE: ‘시사매거진 2580‘ 같은데 나오지 않았어요?

 

나왔을 거예요. 몇 군데 나왔어요. 거의 방송 3사 다 나왔어요. 예능 빼고 다 나왔어요. 

 

 

 

 


LE: 저는 이런 게 진짜 힙합이 아닐까 하기도 해요. (실제로 행동하는)

 

근데 되게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아. 우리나라 힙합 리스너들이 제일 잘 못 알고 있는 거; 힙합은 저항적인 음악이다? 아닙니다. 내가 지금 하는 게 락이야. 원래 락커들이 가능한 일이야.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가 했으면 가능한 일이야. 시드 비셔스(Sid Vicious, 섹스 피스톨즈 멤버)가 의식만 있었으면, 물론 그러면 그게 시드 비셔스가 아니었겠지만. (웃음) 아니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힙합은 철저히 상업적으로 많이 변했고.. 제일 잘못 알고 있는 게, 슈가힐 갱(Sugar Hill Gang)을 데뷔시킨 프로듀서는 백인 프로듀서인데... 힙합은 저항의 문화일 수도 있겠죠, 케이알에스-원(KRS-One), 그건 저항의 문화 맞아요. N.W.A.? 저항 문화 맞아요. 저항 문화도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있는 트랙 중에는 거의 대부분 마약을 하거나 여자들과 섹스를 하거나 돈을 뿌리거나 돈을 벌고 싶다는 얘기, 자기 차 산 얘기, 거의 내가 알기로는 그래요. 그리고 미국 애들하고는 조금 다른 거 같아요. 우리 애들은 음악을 되게 가볍게 듣거든? 매니악이 되면 그 아티스트의 팬이 되는 거지 한 장르의 완전 팬이 되질 않아요. 자기 취향에 맞는 걸 선별하고 그런 팬덤문화가 있는데 한국은 무슨 힙합문화가 먹여살려야 되는 것처럼 (웃음) 아니면 저항을 하고 공권력에 유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원래 락 형들이 이런 걸 너무 하고 싶어했어요. 근데 거기는 팬층이 너무 없었어. 팬들이 그만큼 없었어. 그러니까 UMC도 거의 한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급진적인 가사들... 에미넴(Eminem)도 정치 얘기는 했어요. 그게 모쉬 (Mosh)야. 하지만 그거 한 곡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힙합은 철저히 놀이문화고 배틀 문화고. 라킴(Rakim), 쥬라식 파이브(Jurassic 5)... 그게 언더그라운드잖아요 미국은. 철학적인 운율을 읊어주는 래퍼들은 오히려 언더 쪽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고, 라킴은 슈퍼스타이긴 하지만. 그런 것도 배틀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철저히 놀이문화이기도 하고. 클럽이 맞다는 거지. 음악을 들을 때 공연만 보는 거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거지, 뒤에서 춤도 출 수 있는 거고, 소리도 지르고 춤도 추면서 종합적인 게 돼야 하는데, 힙합에 대한 시선이 완전 편협한 거야. 힙합은 저항의 문화고 다 가난해야 하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봤을 때 에미넴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에미넴 가사를 몰라. (웃음)

 

 

 


LE: 근데 에미넴을 저항적이라고 보기에는..

 

가사 대박이지. 내 가사보다 훨씬 상스러운데? (웃음) 나보다 40배 정도는 상스럽지.

 

 

 

 


LE: 영어가사라서 우리가 들을 땐 좀 걸러서 들리는 거 같아요.

 

못 알아들으니까. (웃음) 제잊 (Jay-Z) 꺼 <03 Bonnie & Clyde> 이런 건 최악의 리릭상 받았잖아 (웃음) 오히려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 빌보드 올라가는 건 되게 폭력적이고 진짜 상스럽고. 가사들도 그런 거 있어요. <Stacy's Mom>이라는 락 곡이 있는데, Stacy's Mom이 뭐냐면, 여자친구 엄마야. 여자친구가 잠깐 뭐 가지러 간 사이에 여자친구 엄마가 샤워하고 나왔는데 여자친구 엄마 하고 눈 맞은 내용이야. 그래서 Stacy's Mom이야. 그러니까 그게 왜 그걸 심각하게 들어, 웃길 수도 있지 뭐. 라임의 배치가 어쩌고... 그래서 학원 형태 같은 것도 빨리 오지 않았나 싶어요.

 

 

 

 


LE: ‘힙합은 쇼‘ 인데..

 

철저히 쇼-문화고 철저히 배틀문화고 철저히 즐기는 문화인데. 재즈도 그렇잖아요. 우리나라 힙합보다 더 문제는 재즈. 장난 아니에요. 최악이야 최악, 엉망. 되게 편협해요. 음악을 듣는 시선 자체가 편협하니까. 너무 진지해. 그게 뮤지션이 진지할 때는 있겠지만 진지한 뮤지션을 바라보는 청자들은.. 아무튼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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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군요. 이번엔 화제를 조금 돌려서.. 사용하시는 장비에 대한 얘기 해줄 수 있나요? 프로듀서 지망생들에겐 좋은 정보가 될 거 같아요.

 

장비는요, 어떤 걸 쓰냐면.. 레코딩 장비는 앙상블(Ensemble)을 써요. 근데 저는 서울 시내에 시간 구애 받지 않고 쓸 수 있는 스튜디오가 8개 있어요. 내 작업실 안에도 스튜디오가 있구요. 여기(F&C)서도 다 녹음해요. 스윙즈(Swings)도 여기서 녹음하고, 다 해요. 쓸 수 있는 녹음실 8개예요. 그래서 장비를 설명하라고 하면 그 녹음실 이름을 대는 게 빠를 거예요. (웃음) 근데 쓰는 시퀀서는 누엔도(Nuendo)하고 로직(Logic). 로직9 하고.. 그거 하고 스케치할 때 애시드 (ACID)로도 하고요. 그리고 큐베이스(Cubase)도 쓰고 소나(Sonar)도 쓰고 그날 기분에 따라서. 모든 시퀀서를 다 써요. 왜냐면 제 시작이 숫자로 하던 케이크워크(Cakewalk) 3.0으로 시작해서 개념이 똑같아요, 내 머릿속에. 그래서 아무때나 어떤 식으로나 가능해요.

 

 

 

 

 


LE: 그럼 이번에 발매되는 앨범에 대한 소개 좀 해주세요. 프로듀싱만 하신다고..

 

랩이 하나도 안 들어가 있는 앨범이죠. 철저히 MC들의 시각으로 씌어진 가사와 철저히 프로듀서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음악. 그렇기 때문에 내 음악을 듣고 가사를 쓴 MC들에게 철저히 맡긴, 그래서 가사의 주제나 전체 흐름은 MC들의 생각.

 

 

 

 


LE: 그러면 만약 다른 MC들이 녹음한 걸 보고 결과가 별로일 때는 어떻게 하세요?

 

그런 거 없어요. 왜냐면 참여한 아티스트들이 거진 10년 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놓칠 게 없어요. 그리고 '시켜주세요' 이런 아티스트들이 아니니까. 앨범을 최소한 5~6장 이상 발매한 아티스트들은, 애초에 앨범을 그렇게 발매했다는 것이 팬들이 그만큼 샀다는 얘기고, 검증이 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아쉬움은 저는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고맙죠. 철저히 인맥빨로 만들어진. (웃음)

 

 

 

 


LE: 이번 앨범의 뭐랄까.. 목표가 있다면요? 예를 들어 상업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하고 싶다거나.

 

일단은 야심은 없으니까. 되게 가볍게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런 것들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약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솔직히.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그 얄팍한 걸 조금만 바꾸자면.. 그런 거 있죠, ‘나는 그냥 냈어. 그냥 낸 걸 애들이 알아서 사서 들어. 난 그게 신기해.’ 이게 제 철학이거든요. 난 앨범 사주는 사람들이 진짜 고마워요. 앨범을 구매해서 내 걸 들어주는 게, 모든 아티스트들이 같은 생각이겠지만 나는 더 심해요. 왜냐면 이 음악들, 내가 만든 것들은 철저히 내 개인적인 시각으로 만든 거거든요. 저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게 아니에요. 철저히 내 꺼, 내 생각, 내 악기, 내 장비, 내 음악 색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걸 듣는 사람들이 공감해준다는 게 저한테 다가오는 게 엄청나요. 그래서 솔직히 애들이 잘 모르니까 댓글을 ‘888장이나 어서 파시죠’ 이렇게 다는데.. 지금 70% 팔렸거든요. 근데 앨범 발매 전에 한정반 1,000장 미리 팔아놓고 시작하는 건 나밖에 없어요, 내가 알고 있기론. 사는 사람들이 원래 듣던 사람들도 많고, 내 앨범 가격이 비싸서 사재기로.. 이 잡것들 죽여버려. (웃음) 사재기로 사두는 애들서부터.. 그런 것들이 있어서 상업적 욕심이 그렇게 크진 않아요. 어차피 제작환경 이런 게 다 있는 상태에서 움직이는 거니까요. 그래서 그게 되게 재밌어요. 그들한테 이 음악을 들려주는 거? 지난 10년 동안의 서머리(summary)인데. 잘 되면은 좋겠죠. 무덤덤한 편이에요.

 

 

 

 


LE: 그럼 앨범 나오면 리스너들 반응에 민감한 편이세요?

 

개민감해요. 장난 아니게 민감해요.

 

 

 

 


LE: 커뮤니티 사이트나 음원 사이트 이런 데 다 한 번씩 보시는 건가요 (웃음)

 

사람들이 내가 되게 바쁜 줄 아는데 나 진짜 다 봐. (웃음) 난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번역도 하고, 곡도 쓰고. 남들보다 집중도가 많이 심할 정도로 해요. 난 시간이 남아돌아, 그러니까 인터넷 좀 끊었으면 좋겠어. (웃음) 가위까지 가져갔었어, 내 작업실에 (웃음) 매일 그거 보고 있으니까.. 그거 다 봐요. 전체 반응들 다 모니터하고 다 봐요.

 

 

 

 


LE: 그런데 피드백이 부정적인 게 많잖아요. 대표적인 게 디지의 '랩' 측면인데... 최근에는 스킬을 더 많이 강조하는 면도 있고요. 그렇다면 '래퍼로서 디지'는 스스로 어떻게 평할 수 있을까요?

 

욕을 제일 잘하는 래퍼? 트랙에다가 '이 개새끼야 sucker', 진중권처럼 얘기한다면 '시발년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도 욕한 것처럼 만드는 거?

 

 

 

 


LE: 평소에도 욕 많이 하세요?

 

아니요. 설마. (전원웃음) 온순해졌다니까. 근데 랩스킬이라는 것도 되게 상대적인거라서.. 가장 디지털로 릴리즈 된 거는 [Mad Bull]인거 같은데.. 인세인 디지 2는 나도 랩에다가 거는 기대가 없었던 앨범이에요. 철저히 메시지, 좀 억지스럽다 싶을 정도로 메시지, 메시지, 메시지. 그러니까 '가사만 잘 들리면 돼' 이런 게 되게 컸고. 랩에 대한 비중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으니까 그게 바로 걸리더라고. 사실은 나는 발표 안 된, 디지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앨범들 때문에 사람들이 '디지 랩 되게 재밌어' 이랬는데 그걸 지금 찾아들을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그 몇 개만 들으면.. 한 10년 전에 랩한 걸 들어놓고 랩 못한다고 하고.. 릴리즈 된 게 얼마 없으니. 후배들도 그런 얘기를 했어요. '아니 형 음악은 랩 잘하고 못하고 그게 아닌데.. 형 노래를 애들이 모르나?' 나도 그래서 생각을 해보니까 안 보여지는 앨범이 네 장이에요. 그러니까 얘는 ‘오래전에 데뷔해서 앨범도 조금 내고 발표도 거의 안했고 활동도 거의 안 한 사람이 왜 1세대야.’ 거기서 반발심이 되게 큰 거 같아요.

 

클래식 앨범은 랩 다 할 거거든요. 랩이 들어가는데 그 방식이 '싸이(Psy)가 랩 잘하나?' 이렇게 묻는 거랑 똑같은 거 같아요. 어차피 그들한테 랩스킬로 평가받는 거라면 래퍼로써 나설 텐데 저는 엠씨 메타가 아니에요. 저는 사이먼디가 아니고 저는 버벌진트가 아니거든요. 관심을 받는 게 내가 OMP 같아서 관심을 받는 게 아니잖아요. (웃음) 와니 같아서는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다른 식이라서, 예를 들면 귀여니 욕 많이 먹잖아요. 그런 거랑 같은 거 같아요. 필체가 틀리다고 해서 작품을 아예 부정해버리니까. 그거는 좀 아닌 거 같아요. 그리고 빠져나갈 생각도 없어요. 랩 못해. 랩 못 하지.

 

문제는 대부분 그런 얘기를 하는 친구들이.. 아마추어나 자작녹음 게시판에서 랩을 하고 있는 친구들, 장비를 물어보는 친구들이 70~80%예요. '내가 하면 너보다 잘해' 이런 친구들이에요. 그럼 너도 앨범을 내. (웃음) 그 얘기가 아마 제일 잘 맞는 거 같아요. 리스너 입장에서 '랩스킬이 많이 떨어지는 거 같아요' 그러면 전 '네, 인정합니다. 가사는 잘 들리죠? 공연 때 가사 전달이 50% 이상은 되죠?', '네' 그거에 중점을 맞춰서 변명 정도까지만 하는 거지, 음악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진 않고.. 랩 연습도 그만큼 안 되어있으니까, 음악 만드는 시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것도 맞는 거예요. 근데 그런 걸 막 악착같이 뜯는 친구들이 60~70%가, 본인이 랩을 해야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다는 거죠.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래? 그럼 올라오면(데뷔하면) 날 꼭 봐야할텐데~' 그래서 아까 좀전에 다른 데서 인터뷰 할 때 그 얘기 했어요. 한 명 그런 놈이 있었는데 내가 그 새끼 이름을 알아. 근데 얘가 돌아다니면서 앨범 사지 말라고 아주 난리를 친 적이 있어. 근데 나온 걔가 얘가 맞나, 긴가 민가 한 거야. 근데 이름 들어보니까 맞아. 나보다 나이도 많이 어린 친구긴 한데.. '혹시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어?', '아..네. 근데 또 직접 또 뵈니까 느낌이 틀리시고..’ 이런 간지로 가더라고. 그래서 나도 이렇게 얘기해줬지 '나도 너가 한 거랑 똑같이 돌아다니면서 너 음악하지 말라고 내 전체 인맥한테 공지하고 문자도 바로 돌릴 거야' (웃음) 이랬거든. ‘우리 둘 중 하나는 그만둬야 할 거야.’ 그리고 왜 언더그라운드 힙합음악을 해? 왜 여기서 기웃거려? 나가. 나중에 또 그 얘기할 거 아냐, 나중에 너 안되면 인맥 없어서 안 된 거라고. 애초에 막아버려야지. 제 인생에 용서는 없습니다. (웃음) 당한 거에 100배. 잘 살고 있겠지 뭐 알게 뭐야. 나중에 떠서 디스하면 되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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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아까도 잠깐 얘기했던 무브먼트 크루(Movement Crew)는 어떻게 같이 하게 된 거예요?

 

내가 알기로는 <Movement I>’ 윤희중 씨, 3534 디스곡이었고.. <The Movement>라고 드렁큰 타이거 2집 수록곡, 그때서부터 그게 계기가 돼서 만들어졌을 거예요. 그때, 지금 이제 마크 (Mark) 형이라고 불리는 디제이 샤인(DJ Shine)이 오토바이 사고가 났었을 거예요. 되게 크게 났었고.. 그리고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 2집 때, 이런 저런 안 좋은 일들이 있을 때 제일 먼저 모였던 멤버들이에요. 나중에 가서 그런 것들이 와전이 됐지만, 원래 처음은 드렁큰타이거, 셔니슬로우(Sean2slow), 바비킴(Bobby Kim), 타샤(T), 나, 그 다음에.. CB Mass.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렇게 해서 처음에 말은 했을 거예요. 그리고 여기에 라스코(Roscoe) 형, 미키 아이스 (Micki Eyez) 이런 식으로. 이게 처음이에요. 이후에 CB Mass랑 에픽하이랑 친하니까 들어오고 따블이(Double K)도 리쌍에 길 형이 있어서 그렇게 되고.. 이런 식으로 됐어요. 애초에 패밀리는 다 달랐어요. 그래서 따로 들어갔다고 할 게 아니에요. 입단 자체가 없죠. 그냥 무브먼트에요. ‘우린 무브먼트야’ 이렇게 된 거였는데.. 어느 순간 '입단' 뭐 이렇게..

 

그때 제가 그 집단에 속한 일 중 재밌던 일 하나가, 3집 때 <Good Life> 인기가요 1위할 때 그때 내 <까불지마> 트랙이 들어갔어요. 제 곡을 쓰겠다고 형님이 말씀하셔서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계속 마스터플랜이 있었잖아요. 양동근(YDG) 씨도 공연하고 있으면 힙합하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동근이 형은 당시에 힙합을 사랑하는 배우였는데 나랑 나이가 얼마 차이 안 나요. 막 스물 그랬던 형이었는데 제가 '어, 짱이야 양동근이다'하고 프리스타일 하는데 올려보내고 그랬었어요. 그 땐 나만 동근이 형을 알아봤어요. (웃음) 그래서 친해졌고.. 마스터플랜에 있었을 때는 제가 드렁큰타이거보다 잠깐 유명했었죠. 어쨌든 멤버들이 그렇게 뭉친 거라, 입단 그런 건 없어요. 아, mc K 형은 JK 형이 제작을 해서 그런 거고.. 어쨌든 무브먼트가 어느 순간에 프리미엄이 붙더라고요.

 

 

 

 


LE: 다들 열심히 하셨으니까..

 

예. 예전만큼 자주는 못봐요. 예전엔 만날 술 마시고 그랬는데..

 

 

 

 


LE: 그럼 좀 더 앞으로 가서 드렁큰 타이거하고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거예요?

 

제가 술 먹고 꼬장부렸어요. (웃음) 공연 끝나고 뒷풀이 하러 신촌 어느 술집에 가서 술을 먹었는데 그때 타샤(T)도 있었고 JK 형도 있었고 리오(L.E.O) 형도 있었나? 아무튼 그렇게 있었어요. 술을 먹는데 그땐 제가 성격도 너무 안 좋았고, 인간이 아니었다니까. 거기다 술까지 먹어봐 이건~ (웃음) 특히 음악 얘기하면 되게 자존심 세니까.. 내가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못되게 했나봐, 나도 잘 기억은 안나. 아무튼 그렇게 술 먹고 실수를 되게 많이 한 거예요. 이제 와 진짜 형이 됐고 형수가 됐고 조카가 생겼고, 나도 서른이 넘어 유부남이 돼서 회고하지만.. 다음날 술병 막 나고 그랬어요. 그럴 때 제일 먼저 챙겨준 게 타샤예요. 나는 타샤를 3년 동안 누나라고 불렀는데, 어느 날 얘기하다가 '나도 81년생이야’ (웃음). 그래서 78년생이라며 하니까 ‘나 6년째 78년 생으로 살아' 그래서 진짜냐고, 진짜 맞다고 해서.. 나는 3년 동안 누나라 부르고 이거 뭐냐고. (웃음) 지금도 타샤 공연 가고 그러면 되게 반갑게 맞아줘요. 진짜 고마운 친구이자 형수. JK 형도 그랬고. 또, 전국투어를 도는데 서울이 꽃이었거든. 지금 얼굴이 빨개지는데, 거기에 서병후 선생님 (타이거 JK의 아버지)도 계셨는데. 근데 내가 그때 올라가서 개지랄 떨고 욕하고 바지 벗고 뛰어내리고 막.. 이런 공연한 애를, 서울 콘서트는 좀 해줘라, 하면서 무대에 올려줬던 사람이기도 해요. 그 전국투어 할 때 서울이랑 부산이 꽃이거든. 그렇게 해줬던 사람.

 

저한테 드렁큰 타이거의 JK 형이 아빠라면, 셔니슬로우가 저한테는 엄마에요. 좀 애틋한 것도 있고.. 물론 무브먼트도 그렇게 친했지만 셔니슬로우하고 마스터플랜 때 같이 했었던 사탄 형이나 킵루츠, 어렸을 때 만났던 사람들 위주가 돼서 친하게 지냈고.. 난 절대 형들 똥꼬 안 빨았어. 그 성격에. (웃음) 늘 격의 없이 대해주던 형들이 잘 된 것 뿐이지, 저는 여지껏 쓴 가사 중에 그게 제일 맘에 들어요. '모두가 비웃어도 모두가 떠나가도..'

 

 

 

 


LE: <스틸 언더그라운드>요?

 

<스틸 언더그라운드>. 난 그 가사가 아직까지도 제일 마음에 들어요. 언더라서 돈을 못벌어서 있다? 뭐가 있다? 그게 아니거든. 내일 아침 그만두라면 그만둘 수 있는 게 음악이기도 해요. 근데 그게 좋은 거 같아요. 그 순간에 만났던 사람들. 죽을 때까지 추억이니까. 뭐가 무브먼트가 중요하고, 뭐가 1세대가 중요한 거냐는 거지, 어차피 디지는 계속 랩하고 그 지랄 떨면서 살고 있는 애인데. 무브먼트에 대한 수많은 얘기들 중에 내가 바라보는 시각의 무브먼트는 이게 제일 정확해요. 또 리쌍이 생각하는 무브먼트, 에픽하이의 무브먼트는 또 틀릴 거예요. 아마도 셔니슬로의 무브먼트는... 저랑은 좀 비슷하지 않을까요. (웃음)

 

 

 

 

 

LE: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래도 서로간에 보이는 음악작업 같은 게 없으면 불화가 났다든지, 누가 나갔다던지 이런 얘기들을 하게 되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아시스(Oasis) 같은 성격을 가진 뮤지션들은 드물어요. 형 기타 동생 기타 깨부시고, 그런 사람들이 아니니까. 팀 간의 불화도 웬만해선 없고... 보증 안 서고 채무 관계만 깨끗하면 (웃음)

 

 

 

 

 

LE: ‘Insane.d Deegie’는 어떻게 됐는지? 어느 순간인가 무기한 연기된 거 같은데..

 

그게 클래식 앨범이에요. 저하고 테너 조용훈 씨하고 같이 한 앨범이에요. 그래서 테너와 랩이 붙어있는 앨범이에요. 테너 나오고 오케스트라 나오고 랩 나오고 이번 재즈 앨범처럼 다른 또, 이런 식으로 하이브리드가 되는 음악인데 그 당시 무기한 연기가 나온 게,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심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 있었어요. 우리가 아무리 프로여도 차라리 연기를 시키지... 곡은 이미 완성되어있고 녹음만 하면 되는 상태니까. 조용훈하고 저하고 친구라서.

 

 

 

 


LE: 그럼 그 앨범이 이 재즈 앨범의 연장선에 있는?

 

아, 그게 원래 먼저 나왔어야 해요. 재즈앨범은 그냥 외전인데.

 

 

 

 


LE: 그러면 Insane Deegie 시리즈의 연속선인가요?

 

아니요, 모두 부틀렉이에요. Insane.d Deegie긴 한데... 그거는 그냥 “또라이였던” 디지니까, 사랑 노래도 좀 할 수 있고...

 

 

 


 

LE: 꽤 많은 사건과 이슈가 있었어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왜' 그러는지가 궁금하기도 해요. 혹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그냥 무시한다거나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내 인생인데 뭐 어때요? 같이 동참 하실라우?" 이렇게 물어보면 다들 도망가던데.. (웃음) 근데 내가 하는 일은 꼭 모티브가 있어야 해요. "불편한 건 참아도 부당한 건 못 참는 거..." 그건 강자건 약자건 내겐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다 조지는거지, 그것이 만약 내가 타깃이라면 나 역시 성역은 없겠죠. 저도 제가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보기에는 허술하고 광적인 애인데 되게 치밀하잖아요. 하는 짓거리 보면 허술하게 보이잖아 되게. (웃음) 이미지가 지랄 같아 보이지, 치밀해보이거나 이런 이미지는 아니잖아요. 근데 솔직히 말해서 성격이 거지 같아서 그래요. 왜 굳이 분란을 일으키냐 그러면 딱히 할 말은 없어요 (웃음). 내 인생인데 뭐 어때? 니들이 책임질려면 지던가? (웃음)

 

 

 

 

 

LE: 이슈 중에는 노이즈 마케팅에 관한 얘기도 많았었는데 그 중 가장 컸던 것 중 하나가 [개] 앨범의 <Fxxxing VJ>에 관한 거예요. 그때 상황을 정리해보면, 디지 님이 힙플라디오에 출연해서 오버클래스와 ‘빠순이’를 욕하는 방송을 했고, 그다음에 [개] 앨범의 트랙리스트가 나왔죠. 그 중 트랙 하나의 제목이 “Fxxxing VJ"다 보니 모두 Fucking VJ라고 분명 생각을 했겠죠. 근데 정작 들어보니 이건 VJ를 옹호하는 거 같기도 하고 전혀 무관한 트랙 같기도 하면서, 그냥 이슈 한 번 만들려고 괜히 제목을 이렇게 지은 거 아니냐는 말이 많았어요.

 

그 트랙은 진태(버벌진트) 형이랑 통화하고 그 트랙을 넣은 거예요.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고, 그 앨범 전체가 ‘현상’이거든요. 추측, 억측, 오류, 일반화.. 존 케이지의 ‘4분 33초’와 똑같은 맥락의. 트랙 자체에 그렇게 설명이 되어있어요. 트랙 안에 존케이지의 ‘4분 33초’라는 노래가 있는데  정확하게 현상이라고. 그거 원 트랙 제목이 '거울'이니까. ‘니들이 했던 거하고 똑같아’. 근데 이게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앨범 판매에 도움이 돼야 해요. 이미 앨범 판매가 거의 끝난 상태였어요. 거진 다 팔리고.. 트랙리스트가 공개되고 나서 더 빨리 팔리긴 했는데.. 그러니까 마케팅이라고 얘기하는 거면 '청담동 클럽 사진 유출'  같은 게 노이즈 마케팅이에요. 그 다음에, 노이즈 마케팅은 자작극 같은 거 있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섹스, 폭력, 돈. 이 세 개를 가장 선호하고 그 다음에 재밌어 하는 게 정치. 이게 성립이 되면 무조건 노이즈가 다 돼요. 그렇게 치면 난 마케팅의 정석을 다 하고 있는 거지. 근데 마케팅은 말 그대로 마케팅이잖아. 돈을 많이 벌어야 되는 거거든.

 

난 되게 몸값이 비싼 마케터이고, 컨설턴트예요. 일 년에 일도 몇 개 안할 뿐더러, 해주면 그걸로 돈 되게 많이 벌어요. 기획서 한장에 250~300만원 이상 받고 시작하니까.. 근데 앨범 800장 때문에? (웃음) 오케이, 뭐 그것도 맞는 얘기라면, 그것도 노이즈 마케팅이라면.. 그게 중학생 기준에서는 되게 커보이는 마케팅일 수도 있고. 혹은 한국힙합씬을 반증하는 케이스인 거지. 800장 밖에 안되는 한정반 앨범을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얘기하는 것. 완벽한 반증이겠죠. 만약 그게 노이즈 마케팅이라면. 내 입으로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한 적은 없거든요. 마케팅이 성립하려면 이쪽에서 마케팅이라고 얘기를 해줘야하는데.. '피싱 VJ (Fishing VJ)'는 정확하게 정말 다 낚인 거지. 다 낚인 거. 버벌진트와 나만 알고 있고 나머진 다 낚인 케이스인 거예요. 난 아무 얘기도 안했거든. VJ도 아무 얘기 안하고. 정작 당사자들은 함구하고 있는데, 또 통화까지 했는데.

 

(*주: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피아니스트가 4분 33초 간 피아노 앞에서 아무런 연주 없이 침묵을 지키는 작품으로, 존 케이지는 이 침묵 동안 이어지는 군중들의 웅성거림, 불평, 뭔가 떨어지는 소리 등이 모두 자신의 작품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LE: 근데 그때 오버클래스 비난을 하긴 했었잖아요.

 

오버클래스는 진짜 싫어요. 오버클래스 안에서도 버벌진트, 산이(San-E), 스윙즈 이 세 사람하고는 작업을 하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저번 주 바스코(Vasco) 결혼식에서도 진태 형이랑 봤거든요. 개인적으로도 잘 알고 있고 작업도 같이 하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이 셋 빼고는 오버클래스라는 자체가 싫어요. 표현하자면 로보토미(Lobotomy), 영쿡(Youngcook) 이렇게 나온 사람들 있잖아요? 역겨워요. (웃음) 그들의 인터뷰하고 똑같이 하는 거예요. 역겨워요. 구역질나요. 노래 몇 개 들어봤는데 역겨워요. 너무 퀄리티가 떨어져서. 돈 좀 들이지... 그래서 최근 그랜드 라인 (Grand Line) 엔터테이먼트 만드셨잖아요? 리미(Rimi), 감자도 있었고.. 리미와 감자는 실제로 봤는데 되게 예의바른 친구들이에요. 어쨌든 근데 뒤에 가서 뒷박 치다가 걸리면 죽여버린다고, 아예 대놓고 선전포고.. 오버클래스 겨냥해서 해버렸으니까.

 

옛날에 ‘IP 조작사건’ 이런 거 있었잖아. 보니까 이거 혹시 뮤지션끼리 조작한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웃음) 솔직히 말해서 되게 역겨워요. 내가 노도(Nodo) 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오버클래스 전체를 얘기한다면 거기에 있는 다른 뮤지션들이 싫다는 얘기에요. 음악이나 잘하면.. 보여주고 증명하라며, 버벌진트, 산이, 스윙스를 제외한 다른 모든 뮤지션이 판매한 음반이, 제 2집 앨범 판매량에도 못 미쳐요. 보여주고 증명하라며? 전 그게 맞는 거 같아요. 그럼 판매량만 있어야하느냐? 아니요. 근데 왜 그들은 작업을 계속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많이 안할까, 이런 의문이 또... 그렇게 잘하시는 분들이 공연을 하면은 왜 그렇게 욕을 먹을까? 뮤지션의 기본 소양, 공연. 그러면 그들은 왜 그들 크루 안에서만 인정을 받을까, 그리고 왜 그들은 적이 그렇게 많을까? 디지가 적이 제일 많은 것처럼 보였는데 아시다시피 적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제 이번 앨범 보면 아시겠지만, 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안에 들어가 있진 않겠죠? 모든 크루를 다 했는데 오버클래스만 빼고. 그렇게 돼버리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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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리고.. 이비아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당시 노이즈 마케팅 얘기도 많았고.. 이비아 씨가 원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음악부터 무대, 홍보까지 철저히 기획된 느낌이 들었는데..

 

맞아요. 그걸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맞는 얘기고. 여자 래퍼가 진짜 없어서, 눈에 불을 켜고 다녔거든. 리미가 저 정도 팬층을 가지고 있다라면 밖으로 얼굴이 드러나서 조금 귀염상에 랩만 어느 정도 맞춰서 한다면.. 리미 <I'm Hot> 듣고 되게 충격이었거든요. '맞아, 여자 래퍼가 저렇게 해야 돼. 지 목소리로 해야 돼' 전부다 병든 닭 목소리, 병든 병아리 목소리가 나니까 저렇게 해야돼. 이런 생각이 빡 왔어요. 저거 진짜 좋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여자 래퍼를 불을 켜고 한 번 찾아봤죠.

 

사실은 클래식 앨범이 [개] 앨범이 나오고 그다음 나오는데 중간에 텀이 비잖아요. 이 텀이 비는 동안에 뭐라도 해봐야지 하고 만들었는데 그렇게 된 거야. 그렇게 하니까, 진짜 0~100까지 연습, 동선 전체가 완벽하게 컨트롤돼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거더라구요. 근데 첫 번째 앨범은 거의 프로듀서빨이고 두 번째 앨범서부터는... 근데 그 첫 번째 쇼케이스 끝나고 나서 다른 뮤지션들의 전체적인 반응은 한 가지. '저거는 힙합적인 형태는 분명히 아니다, 근데 분명히 언더그라운드 안에서 공연을 할 때 저 정도 프로페셔널리즘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긍정도 부정도 아닌 결론이 났어요, 그 쪽에서도. 저 역시도 이거는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하고 틀리거든, 나가서 예쁜 짓을 할 수 있는 애가 아니거든. 아주 단순하게 얘기해서 '씨발‘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소녀시대 태연이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개인적인 소망? (웃음) 프로듀서들의 소망? 이런 거였으니까, 그런 이미지들이 분명히 필요하다, 이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우린 솔직히 ’500장만 팔렸으면 좋겠다’ 하고 만든 음반이었어요. 그러니까 만약에 상업적인 걸 노리고 만들었으면 그렇게 안됐을 거예요.

 

음악 매출, 우리 전체 회사 이익금이 말고 음악 매출만.. 괜히 이비아가 ‘오빠 왜 나한테 돈 안줬어요’ 이럴까봐 (웃음) 이비아 음원 매출이 첫 번째 앨범이 6~7억. 언더그라운드 래퍼가, 그거 제작비 800만원 들었어요. 물론 그게 순제작비고 인건비를 다 안 친 거긴 한데. 밥숟가락 얹어놓고 만들어보자 이거였어요. 왜냐면 스튜디오가 있었거든요. 스튜디오가 있고 장비가 있고 엔지니어들 있고 다 있으니까.. '뭐 놀면 뭐해 한 번 해보자'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 포토그래퍼도 쉬는 타임이었고. 가보자! 이왕이면 취향대로 만들어보자. 그리고 더 중요한 거는 아티스트가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아예 시작을 못했던 프로젝트니까. 그게 제일 아쉬워요. 목소리 바꾸는 데 3일밖에 안 걸렸어요.

 

 

 

 


LE: 사실 이비아에 대한 비난은 상업성이라는 것에 집중되어있는데요.

 

진짜 그게 아니었어요. 지금에야 다 할 수 있는 얘기들인 건데 당시 실시간으로 검색어가 올라갈 때 걔 학교에서 조교일 하고 있었어요. 걔는 그런 거야, 마치 앨범은 자기 걸 만들려고 돌아다니고 나대고 다했는데, 땅만 쳐다보고 공연도 해보고 했는데 막상 만들려고 하니까 너무 부딪히는 게 많은 거야. 편의점 알바 뛰고 해서 그 돈 모아서 앨범 낸다고 했는데, 때마침 '야 얼굴 좀 보자', 그렇게 해서 만났고, 한 번 들어가 보자, 했죠. 그런데 걔는 녹음실 이런 걸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하는 거니까, ‘한 번은 진짜 너도 바뀌어야 되지 않겠냐’라고 했고, 때마침 이비아도 '저도 가사가 안 써지고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친구들 대부분의 특징은 앨범이 나오면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 뭔지 알죠?  돈도 확 벌고 저작권 생기고. 나름대로 몇 년은 했다고 하니까. 그랬는데 '그러면 저 이거.. 학교에서 조교일 하는 거 그만둘 거예요' 그러길래 욕을 한 마디 시원하게 해줬죠. '절대 앨범 나온다고 인생이 바뀌지 않아'라고. 일단 앨범이 나왔으면 넌 된 거니까, 넌 네 자리 돌아가서 해. 대신 공연하고 그런 건 시간 쪼개서 연습하면 충분하고. 앨범 만들 때 걔가 월수금인가 조교일을 나가고 화, 목 밖에 녹음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럼 그거 이틀 녹음하는 거야. 대신 연습량이 퇴근하고 바로 8~9시간 된 거지. 집중곡을 아예 만들어놓고, 정해놓고 그렇게 쏟아부으니까 단시간에 만들 수 있던 거고. 그래서 그게 상업적인 염두를 뒀으면 내가 걔하고... 앨범 나올 때 계약했거든요.

 

 

 

 


LE: 아 앨범 다 만들어두고요? 티저 광고도 다 나가고 나서요?

 

다 하고 나서. 티저, 이런 것들은 일종의.. 나한테도 시험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거예요. 이게 이렇게 상업적인 것으로, 눈으로 보이게 '오빠 나 해도 돼'였잖아. 이런 키워드가 가능할까, 나한테도 뭐라 그럴까.. 챌린지? 이게 이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과연? 매번 여자 래퍼는 안 된다고 다 그랬는데? 그것도 여자 솔로 래퍼가. 돈을 벌었으니까 상업성이 되는 거지. 그 뒤로 나온 <Shake>나 <삐까 Chu> 가지고 상업성 없다 그러면 그건 진짜 거짓말이지. (웃음) 그건 아예 대놓고 그런 건데.  근데 첫 EP가 나올 때.. 근데 그게 왜 1집이 아니냐면, 몇 집 몇 집에 대한 약간 징크스 같은 게 있어서, 개인적으로 제작자가 ‘1집으로 하지 말고 그냥 EP로 가자.’ 그런 거고... 계약도 부모님이랑 식사하면서 계약을 했었고.. 다른 루머들 많았던 것 중에 내가 이비아를 건드렸느니 뭐니 그런 스캔들도 돌았었는데 그건 내 이미지가 그렇다보니까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웃음) 그때 결혼 전이었던 우리 와이프도 보고 다 보고 전체 검증이 된.. 우리 아빠도 ‘얘가 이렇게 살을 이렇게 빼야되고' 이러니까. (웃음) 걔는 살빼는 게 제일 힘들었을 거야 아마.

 

 

 

 


LE: 이비아 씨 인터뷰 봤는데 되게 좋은 멘토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그렇죠. 그게 유일한 제 칭찬일 수도 있어요. (웃음) 되게 저한테 스승의 날 술 사주는 좋은 제 아티스트에요. 그렇게 되더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옥주(이비아)는 절대음감이에요. 음을 네다섯개를 막 잡아도, 불협화음 전체를 맞춰요. 진짜 남들이 못 가진 재능이거든요. 그래서 ‘이 음에서 이 음으로, 이 음으로 가면 이렇게 될거야’라고 말하면 뭔지 바로 이해해버리는 거야. 그게 얘가 가진 가장 큰 탤런트야. 아 너무 딴데로 왔나 (웃음). 아무튼 이비아는, 초반에는 상업적으로 접근 안 했어요. 생활형 뮤지션이었어요. 확실한 건 앨범이 5천장, 6천장 돌파하고 있는데도 걔는 여전히 조교일을 하고 있었고 나도 그때 중학교 심리상담사 자원봉사하고 있었어요. 뮤직비디오 찍을 때도 계속 조교일하고 있었고.

 

 

 

 


LE: 이제 중고등학생들도 이비아 많이 알잖아요.

 

걔는 중고등학생 취향이지. (웃음) 근데 연습벌레 그리고 음악이 인생에 모토인 나랑 비슷한 녀석이라서 그 새끼를 내가 많이 이뻐라해요. 이제 좀 어른 음악을 할 수있는 음악적 실력을 쌓아가고 있으니까.. 내 욕 다 먹으면서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강철심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죠. 옥주는.

 

 

 

 


LE: 어쨌든 디지에게서 그런 가수가 나왔다는 게 사람들한테는 충격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 거 같아요. 나는 그 전까지 헤이터는 많았어. 안티는 많았는데 공격은 하지 않았던 게 얘는 상업적으로는 난공불락이었던 거야. 건들 수 없는.. 얘는 그냥 완전 순수.. 돈 없이 살 거 같고, 자연인, 임재범 같은 (웃음) 그런 간지. 그랬는데 얘 하나로 물꼬가 터지니까 지금까지 벼르고 있었던 안티들이 거기로 다 들어오더라고. 와, 엄청나게 들어오더라, 유입량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화살이 돼서 돌아오더라고. 그래서 되게 좋았어요. (웃음) 왜냐면 내가 나중에 더 잘되고 그랬을 때 그게 터져버리면 무너져버릴 텐데 그때 터지니까.. 그리고 이비아는 지금도 음원, 음반 시장에서는 랭킹이 되는 애니까. 내가 키운 것도 아니고 지가 한 거죠. 좋은 프로듀서와 좋은 인력들이.. 지금은 되게 어마어마한 프로듀서 5명이 한 싱글씩 5개가 나온 다음에 앨범이 나와요. 사실 이비아라는 친구 자체는 프로듀서빨이 되게 커요. 근데 본인이 랩을 그만큼 받아먹어야 돼. 이건 프로듀서가 단순하게 연출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가 제일 중요하니까. 아티스트가 파는 거지, 프로듀서가 직접 나가서 파는 건 아니니까.

 

 

 

 

 

LE: 이번에는 '디스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한 질문이에요. '화해하지 않을 거면', '실제로 만나도 그럴 수 있으면‘ 디스해라, 라는 얘기가 많잖아요. 이런 국내의 디스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디스, 좋게 생각하죠. 오히려 화해를 해서 문제인 거 같은데... 나는 내 인생에 용서한 건 단 한 번밖에 없으니까. 단 한 사람과 단 한 번밖에 없을 테니까.

 

 

 

 


LE: '없을 테니까'라는 건..

 

그게 앨범에서 밝혀지겠죠. 클래식 앨범이나 어느 앨범에서.. 앨범에서 해야 되는 얘기들인데. 그 누가 디스를 걸었다가 게시물 전체를 다 내리고 그랬던 적도 있었죠. 이비아 나왔을 때 아주 작살났잖아요. 그거 루머 되게 많을 텐데.. 근데 그게 루머였으면 또 반격을 했겠지. 빼도 박도 못할 정도의 책을 잡혀가지고. 그러니까 애초에 덤비려면 덤비는 거지. 감당할 수 있으면. 딱 그게 제일 확실한 거 같아요. 나는 그거에 대해선, <김디지를 국회로>, <대통령 좆까>를 했을 때, 조선일보 앞하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할 때 동대문 경찰서에서 군대 보낸다고 했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 ‘지금 협박 사유가 됩니까, 녹음해도 돼요?’ 경찰아저씨가 수첩들고 왔어요 직접. ‘이게 법적으로는 절대 잘못된 게 없는데, 왜요? 제가 뭐 시위를 조장했나요? 선동했나요. 아니면 내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나, 왜요?’ 가시더라고. ‘이러시면 저도 내일 언론에 뿌릴 거예요. 저도 군대 보낸다는데 어떡해요, 제가 그냥 가겠어요? 아저씨 이름 뭐라고요?’ (웃음) 그거였고.. 다른 건 정치칼럼 쓸 때, 안기부한테 진짜로 전화가 와.

 

 

 


LE: 그런 거 쓰지 말라고요?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전화가 오기는 와. 근데 잘못한 게 없잖아. 심지어는 별의별 새끼들이 다 있어가지고.. 약간 협박 아닌 협박 식으로, 밖에 나가서 하도 술 처먹고 돌아다니고 그러니까 그런 게 쓱 온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지, ‘너 만약에 그걸로 스크래치 생기는 순간에 나 음악 그만두고 학교 교수직 싹 내려놓고 너만 보고 갈 거야. 난 그럴 거야, 그리고 내가 너한테 그렇게 해서 문제 생기면 나 한국에서 안 살면 돼, 괜찮아.’ 내가 이렇게 가니까.. 그러니까 난 감당할 수 있으면 하는 거야. 근데 그 정도 감당없이, 상대방한테 디스하려면 진짜 심하게 해야되는데? 옛날에 스나이퍼 그랬을 때 ‘나 깐다’ 그러면 나도 맞아야지. 맞든지, 싸우든지 둘 중에 하나 난리나고 beef 가야지 뭐 어떻게 해. 그리고 디스는 진짜 센스, 위트전 아니야? 그거 싸움이잖아.

 

 

 

 


LE: 그래서 E-Sens VS OK Bone이 히트를 쳤죠.

 

그렇지, 재밌잖아. 누구도 패자는 아니야. 기분 나쁘면 기분 나쁘다고 랩하고, 좋으면 좋다고 하고. 이렇게 주고 받는 게 되어야 하는데.. 와 그렇게 해놓고 미안하다고 하니까. 진짜 안 볼 거면 아예 화끈하게 안 보던가. 그리고 뜰려고 디스하는 거.. 디스하는 새끼들 대부분이 디스하면 이름값 난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짜 바보같은 거지.

 

근데 그게 멋있으면.. 이번에 제이통(J-Tong), 그 새끼 원래 성격이 그래요. 만약에 걔가 매슬로(Maslo) 만나게 되잖아? 제이통은 '까, 이 개새끼' 이렇고 갈 애예요. 애 자체가 성격이 되게 시원시원해요. 그렇게 해야지. 거기에 대해서 반격이 있고 욕먹고 뭐 하면 그렇게 해야지. 걔가 그게 싫다는데. 근데 막 리미 명예훼손.. 왜냐면 드러나지 않은 아마추어가 일방적으로.. 가령 성적으로 공격을 한다, 성적으로 공격해도 돼. 근거가 있으면. 배틀이니까.. 근데 배틀을 가야되는데 그게 아니라 악플 달 듯이 배틀 가는 거 있잖아. 그것도 문제인 거 같아. 이왕 가려면 진짜 가야지. 지들끼리만 알던, 관심이 없던 얘기들 아냐. '리미, 너 그때 엠씨메타 구렸다며' 뭐야? (*주: 리미 VS 유니크원 디스전) 제일 열받았던 게 왜 거기서 엠씨메타 얘기를 해? 관심 받고 싶어? 니깟 것들이? ‘스나이퍼를 씹어, 덩달아 다들 씹어, 근데 같은 편 되려고 까는 새끼들이 더 싫어’ (*주: <스틸 언더그라운드> 가사) 난 편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까는 새끼는 더 싫어. 왜 당사자 문제에 니들이 껴가지고 지랄이야. 원래 문제 있으면 우리가 붙는 거지, 니들이 왜 옆에서 그래? '형, 나도 스나이퍼 디스했어요' 이러고.. 난 너도 싫어. 그건 내 문제야. 건들지 마. 그리고 디스를 무슨 철학처럼 얘기하니까 (웃음) 아니거든. 그건 욕하는 거잖아. 그런 얘기 많이 있었어요. 근데 정작 저한테 디스 거는 사람은 없어요.

 

 

 

 


LE: 세상을 디스하고 계시니까. (웃음) 그리고 사람들이 좀 겁내하는 거 같아요.

 

이미지가 좀 그런 거 같아 (웃음) 요즘엔 더해졌어. 소문이 아주 극악무도하게 나서, 묻어버린다는 둥. 몇 개월 전에 문신 되게 많은 헤비메탈 형들하고 강남 쪽에서 술 마시는데 디지를 아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서는 '저 새끼(디지) 이제 조폭들하고..' (전원웃음) 아 무슨 루머가 그렇게 많아. (웃음)

 

 

 

 


LE: 아내 분도 힘드시겠어요. (웃음)

 

근데 집사람은 아니까. 집사람은 처음에 내가 음악하는 줄은 몰랐고.. 그러니까 결혼할 땐 알았는데 연애 때는 몰랐고. 와이프 만난 것도 외국계열 회사에서 직장 동료로 만나고 그런 거라서..

 

 

 

 


LE: 밖에서 해명하고 해야하잖아요. (웃음)

 

어른이잖아요. 성인이니까 별 문제 없어요. 그리고 디스에 대한 담백한 얘기라고 하면은 진짜로 부정하고 싶으면 부정해라, 덤벼라. 그리고 그 덤빈다는 건 진짜로 덤벼야하는 게 맞다는 거죠.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하는 거에 대해서 왜 잘못됐는지 말하라는 거죠. 내가 만약 우리 각하가 별로라고 얘기하면 내가 뱉은 말에서부터 시작하는 거기 때문에, 그건 당연히 감당해야죠. 정치칼럼에 이명박이 삽들고 있는데 마릴린 맨슨 (Marilyn Manson) 옷 입혀놓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면, 그거 이미 사진 게재한 순간 시작된 거지. 반박이 오면 왜 잘못 됐는지, 헌법은 뭔지 등등 다 가져가야죠.

 

 

 

 


LE: 이런 질문도 준비를 하긴 했어요, “디스하면서 후회한 적이 있는지?”

 

0.1%도 없어요, 0.1%도.

 

 

 


LE: 네, 없으실 것 같아요 (웃음)

 

퓨어하게. 단 한 번도.

 

 

 


LE: 예전에 조PD 디스 사건도 있었는데..

 

그게 디슨가? 나 패러디한 건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LE: 시작이 'fuck 스타덤' 이러니까..

 

어, 멋있잖아요. (웃음) 근데 디스로 받아들이시더라고. 난 그거 철저히 패러디였는데. 가끔 그때 생각나서 패러디하는데.. 패러디를 그렇게 받아드리고 청자들 입장에서 디스라면 뭐.. 근데 저는 그거 디스 아니었어요.

 

 

 

 


LE: 디스 얘기의 연속상으로, <Diss Me If U Can>은 어떤 계기에서 하신 거예요?

 

이벤트죠. 보통 뭐 걸잖아. 앨범 10장 주고 후기 감상문 써주세요 그런 거. 그 당시 그런 앨범 발매 이벤트가 내가 아마 처음이었을 거야. 그때 말레이시아 있었을 땐데 손 본을 따주는 그게 있더라고. (웃음) 그럼 이거 따자 해서 fuck you를 한 세 개를 만들었어요. 봤더니, 아 재밌겠다 하면서 fuck you 트로피 수여하고. 진짜로 수여하고 같이 자장면 먹고 (웃음) 그때 힙플 김용준 사장님이 오셔서 훈화말씀하시고 방에서. (전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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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게 요즘에 열렸다면 불이 붙을텐데... 어떻게 보면 최초의 랩 컴피티션이거든요. 아마 그때 10명도 안 되게 참여했던 거 같은데...

 

근데 그게, 지금 또 해도 아마 내가 열면 그때랑 수준이 비슷할 거예요. 지금도 디지가 열면, 분위기가 그때랑 크게 다르지 않을 거 같아. 스킬이나 펀치라인 팍팍 터져주고 그래야되는데... 그때도 장비는 다 대준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하려면 다신 안 볼 자신을 가져야하지만, 선정되면 봐야하는 사람이 되니까 (웃음). 거기서 꺾이더라고. 그래서 거기에서 최대의 실패는 그거인거 같아, 디스하고 직접 봐야되잖아.

 

(*주: <Diss Me If U Can>은 디지의 [Bleu Film + 클리토리스] 앨범 발매 시 했던 이벤트로, MR이 주어진 상태에서 디지를 디스하는 곡으로 하는 랩 컴피티션이었다. 당시 우승자에게는 ‘fuck you' 트로피가 수여되었다.)

 

 

 

 


LE: 다음으로 넘어와서... 최근 힙합플레이야 차단 사건 때문에 맘고생이 있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해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 같고.

 

그것도 0.1%도 없어요, 무슨 맘고생이야. 그 캡쳐된 사진 있잖아. 그 위가 가관이야. 진짜 가관이야. 뭐지.. 9단지 독서실은 못했네 그러고.. 걔들도 다 음반 나온 거잖아. 뿌린 것도 있고 음반 나온 것도 있고. 그걸로 애들 평가를 하니까. ‘감사요’라고 한 사람들은 일단 공모한, 공범이 되는 거고 그걸 가지고 또 평가까지 해버리고, 그거는 ‘감사합니다‘ 가 아니여야 되거든. 피드백이 없어야하는 거거든. 아무 말도 없었으면 ‘내려’ 그러고 끝났겠지 그냥. 근데 공범들이잖아. 캡쳐 다 떠놨어요. (웃음) 그래서 괜찮아. 무슨 맘고생이야 중고등학생들한테.

 

근데 보니까 되게 또라이인 거 같아. 그걸로 희열을 느끼는 거 같아. (웃음) 또라이인 것 같아. 조금조금씩 내리면서 ‘우!’ 그러고 (웃음). 그리고 사실은 차단당하고 그 다음 날 앨범 이벤트 뭐 있어서 힙플 관계자랑 통화했거든요? '차단 잘했어’ 라고 말했죠. 아니면 내가 내리려고 했으니까. 거기 게시물 기준 따로 있는데 나한테만 성역이 있으면 안 되지. '씨발넘들아' 들어갔으면 차단되어야지. 내가 무슨 웃기려고 한 게 아니라 진짜 욕한 거잖아. 당연히 차단되지. 차단되라고 신나게 남겼지. 고맙게도 신고까지 해주시니까. 신고까지 해주시니까 완전 땡큐된 거지. 근데 그 위가 진짜 가관이야. 밑에 있는 애는 '뭐 그럴 수도 있죠'.. 얘는 그냥 배틀인데 위에 있는 애가 대박이야. 걔는 그 글에서 '니 애미 창녀라는 가정하에‘ 그런 리플 있잖아요? 걔들은 그게 충격인가봐. 걔네 입장에서는 '와, 이런 얘기를 그냥 써버리네' 이런 거. 약간 상처 받을 만도 하지. 최초에 올렸던 애가 그 다음 날 내 음반 전체 공유 한 번 했었었고. 그 친구는 이번에 '디지가 쏜다' 이벤트에 차비까지 다 줄테니까 와라. 내가 특별히 주말로 잡아줄게. 주말에 학원 있어서 못오면 쪽지 계속 공개하고. 노골적으로 까는 애들이 있어요. 조민식이라는 애. 그런 애들 몇 명 있거든. 걔들 다 해서.. 너네는 무조건 다 초대할테니까. 안 때릴게. 인증샷 다 올릴테니까. 예전에 20명을 초대했는데 1명도 안 왔어. 단 1명도 안 왔어.

 

 

 

 


LE: 그때 가장 큰 게스트가 ‘완허‘였죠.

 

완허는 지금도 초대할 거고. (웃음) 성역은 없다니까. 내가 보고 싶어서 그래. 성역은 없어. 걔가 보낸 쪽지 다 가지고 있어요. '랩진' 이런 애들 리드머에서 존나 까고 다니잖아? '랩진' 쪽지 나 다 있어. 다 깔 거야. '형님 제가 죄송하고요, 다신 안 그럴 거예요' 이런 거 다 공개할 거야. 완전 재밌게 다 깔 거야. 그런 재미도 있어야지.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찌질해. (웃음) 근데 그게 재밌는 걸 어떻게 해.

 

 

 

 

 

LE: 몇년 전에 힙플라디오 방송하실 때 KINKIN 초대한 거 재밌었는데

 

걔네는 진짜 왔잖아. 바로 영웅 추대되고 (웃음). CDPPP는 이비아랑도 아는 애라고 하더라고. <김디지를 국회로> 촬영할 때, 홍대 놀이터 살 때, 옥주랑 CDPPP가 같이 보고 있었대. 걔는 막가더라고.

 

 

 

 

 


LE: 어떤 뮤지션의 경우, 'MP3로라도 내 음악을 들어주는 것에 감사하다'라는 말도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료로 뿌리는 거요? 그건 아티스트 맘이죠.

 

 

 

 


LE: 아니, 이번 경우처럼 누군가 허락 없이 공유를 한다든가 하는 거..

 

불법 다운로드가 불법인데, 창작자 본인, 음원제작자일 경우, 그 사람이 오케이라고 했을 경우. 고맙다는 건 그 사람이고 난 그게 싫다는 거지. 난 그 무료 공개 안 해서, 프리뷰 공개 안했다고 해서 존나 썩었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거지. 전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거예요. 뮤직비디오에서 노래 들려주는 것도 솔직히 아까워. 왜냐면 뮤직비디오는 프로모션 비디오야, 음악을 뮤직비디오에서 공개해서 보여주는 거라고. 물론 프로모션을 위한. 불법 다운로드 단 한 번도 안했다고 하면 나도 거짓말이고, 근데 그걸 가지고 평가의 잣대가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제일 커요. 불법이라며? '나 지나가다가 무단횡단했어' 이런 거 자랑 안하잖아. 그거랑 같은 거지. 남의 주머니에서 돈 가져가는 거랑, 남이 주는 거랑은 엄연한 차이가 있는 거고.

 

솔직히 말해서 악순환.. '무료 믹스테입 공개' 이게 제일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해. 네임밸류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 자, 생각해봅시다. 루이비똥은 가격이 계속 올라요. 근데 장사가 안 되고 창고 대방출하는 브랜드들은 특정 브랜드들이야. 망해가는 브랜드들은 가격을 낮춰요. 그게 망하는 최고의 지름길. 마찬가지로 '무료 믹스테입'이 만연하면 그만큼 돈을 못 번다는 얘기고, 돈을 못 벌면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얘기고 그러면 리스너의 퀄리티도 같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되고 리스너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동시에 이 시장도 퇴보하는 거지. 계속 전체적으로 악기나 모든 것들이 발전되고 있으면 발전 속도에 맞춰서. 비주류에 온 이상 상업성을 포기해라? 난 진짜 그건 야마돌았어. 근데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야. 그거는 그 중학생 친구가 생각하지 않아야 될 문제. 걘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너넨 학생이 된 이상 공부를 열심히 해라. 이건 논리적으로 설득이 되거든. (웃음) '무료 믹스테입 공개' 한다고 해서 절대로 네임벨류 안 올라가, 내가 알고 있는 한. 무료로 누군가에게 공짜로 주면 그만큼 값어치가 떨어져. 100만 원짜리 컴퓨터는 100만 원짜리 값어치가 있는 거고 500만 원짜리 컴퓨터는 500만 원짜리 값어치가 있는 거야. 그걸 산 사람만 알아. 그거를 들어보지도 못한, 그냥 불법으로 공유했던 그 사람들은 그만큼 값어치가 떨어지겠지. 그러니까 듣는 거에 분명히 어떤 한계점이 있겠지.

 

지금은 옛날하고 틀려, 옛날엔 CD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잖아. 근데 그때도 CD 충분히 살 수 있었고 그걸 공유 안했어도 됐기 때문에 그랬던 거지만 그것도 분명히 불법이고 잘못된 거긴 하지. 지금은 다운로드 공유하는 '버스' 태우는 게.. 음원사이트 가서 스트리밍으로라도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야. 그래서 진짜 개썩었다는 거지. 누가 힙합발전을 논해. 어떤 새끼가. 뭐라 그러는 줄 알아? '우리 같은 사람이니까 그나마 당신들 음악 들어주고 CD 사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난 그 새끼한테 안 팔아. 안 팔 거야. 그런 새끼들 필요없어, 듣지 말라고 해. 이게 나한테 되게 확고한 얘기예요. 그런 새끼들 힙합 발전에 도움이 0.1%도 안되는 뭔가.. 버러지?

 

 

 

 


LE: 뮤지션 위에 군림하는 듯한..

 

근데 그 중에 50% 이상이.. 찌질해. 중고 악기 거래 장터나 아마추어 자작녹음 게시판에 랩하는 애들이에요. 그 새끼들이 무료믹스 테입을 배포하는 새끼들이야. 내지는 아이디를 2~3개 가지고 있거나. 음악을 하고자 하는 애들이 굉장히 많아요. 힙합은 접근성이 쉬워서 그래요. 왜냐면 릴 웨인(Lil Wayne) 비트에다가 자기가 녹음을 하면 마치 자기가 릴 웨인 같거든, 느낌이. 그게 되게 좋은 거거든. 그래서 힙합이 발전한 것도 있긴 해. 접근성이 좋으니까 빨리 빨리 올라가고. 근데 이제는 체계가 잡혀가고 그 체계 안에서 가줘야 하는데 이름, 이름이 떴다고 생각하는.. 그러니까 300장 판 새끼가 200장 판 새끼한테, ‘내가 너보다 100장 더 팔았으니까 넌 상업성이 떨어져.’ 이렇게 얘기하는 이런 촌극인 거지.

 

그리고 비주류, 상업성 이런 것들 있잖아요. 아, 이 얘기 꼭 하고 싶었어. 이비아는 내가 제작하는 친구지만 이비아 저작료가 피크(peak)칠 때는 500~600도 나와요. 그러면 이비아가 피크칠 때 그 정도 나오면 난 얼마 나온다는 얘기야? 뮤지션들이 학원이나 아카데미를 통해서 한 달에 벌어가는 건 정말.. 그냥 일반 월급쟁이들만큼 가져가요. 딱 그 정도 수준. 근데 그 사람들이 그것만 하는 게 아니라 앨범도 팔거든. 힙합은 불쌍하거나 구걸의 문화가 아니에요. 뭔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어. 도끼(Dok2) 벤츠 샀다니까? 공중파 한 번도 안 하고. 도끼 벤츠 샀을 때 화면에다가 뽀뽀했다니까 (웃음) 공연만 했지, 믹스테입만 팔았지. 예능에서 안 굴러도 됐고 자기 할 것만 하고 랩만 했어. 표현방식이 뭐가 됐든 간에 랩만 하고 공연만 했어, 앨범 만들어서 팔았어. 그걸로 자기가 할 수 있는 프로모션하고 다녔어. 근데 벤츠 샀어. 회사 차렸어. 그럼 된 거야. 우리 처음 시작 했을 때 진짜 힙합한다고 하면 막막했거든. 아무 생각 안 났거든. 근데 이제 보여. 우리 학교 교수 됐을 때.. 나 같은 쓰레기도 됐는데, 요즘 애들은 '엄마 나 랩 공부도 하고 비트메이킹, 이거 힙합 프로듀서 할 거예요', '그게 뭐하는 건데?', '대학 교수도 될 수 있고요. 성공한 사업가도 될 수 있고요. 잘나가는 뮤지션이 될 수 있어요.' 이제는 그걸 꿈꾸게 만들어 줄 수가 있잖아. 그러니 그게 경사고 박수칠 일이지. 근데 믹스테입 무료 배포하거나 그런 친구들에 대해서 난 한 가지 생각이야. 공부하기는 싫고 하고 싶은 거해서 성공하고 싶은데 대부분 놀죠. (웃음)

 

 

 

 


LE: 다음 질문으로, 힙합을 가르치시면서, 힙합을 하는 입장이랑는 뭔가 다르게 느껴지는 게 있을 거 같아요.

 

저는 없어요. 어린 친구들하고 같이 작업을 하니까. 그 중에 해서 요번에 앨범에 들어가는데 그 친구 2년 동안 대전에서 레슨하고.. 그러니까 대학교도 나랑 같은, 나 보고 따라 들어온 친구인데 걔가 방사능의 곡을 하나 썼어요. 걔 곡을 내가 편곡하고 몇몇 라인들을 바꿔서 저랑 걔랑 공동 작곡이 됐어요. 걔가 김꼬기야. 그 왜, 웃대에 샴푸하면서 눈뜨고 머리 감았던 사진이랑 그런 거 있거든? 존나 골때려. 개 또라이 같은 새끼 있어. 힙플에 김꼬기 찾으면 또라이 같은 애 하나 나오는데, 진짜로도 개또라이예요. 그러니까 이런 게 되게 많아요. 이거 하면서 같이 참여하는. 학원생들 다 갖다 쓰고 학교애들 다 갖다 써요, 필요할 때. 

 

 

 

  


LE: 흑인음악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생각 역시 궁금해요.

 

힙합플레이야도 필요하고 리드머도 필요하고 ROK도 필요하고 힙합엘이도. 다 필요해요. 그리고 색깔이 다 틀리잖아. 하나는 평론 중심이고 힙합엘이는 보니까 매거진 중심이고 ROK는 이슈 중심, 휘발성 강한 것들. 블로그 형식 돼있고. 힙합플레이야는 지금 이 힙합 커뮤니티 안에서는 공룡이니까. 그러긴 한데 기업 형태로 돌아가야 하는 형태가 맞고. 저기 안에서 만들어진 아티스트들이 거의 다잖아요. 문제는 하나가 독식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좀 어떤 면에서는 한 쪽에 다 몰리니까. 근데 또 디시인사이드 힙합갤러리도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다 나뉘어져 있잖아요.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어차피 사람이 늘면 유치해지고 게시판 글들이 구려질 수밖에 없는 건, 나이 때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별의별 사람들이 다 유입되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건데.. 어쨌든 커뮤니티는 무조건 있어야 돼요. 어느 것이든 존재해야돼요. 특히 제가 힙합엘이는 인터뷰 자청한 것도 여기 매거진 성격에 맞아서 그런 거지, 무슨.. 인터뷰 한다고 해서 앨범 더 팔리나? 그런 건 아니니까.

 

 

 

 


LE: 인간 디지가 디지의 음악적인 면모보다 더 관심받는 것 같아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 아쉬움은 없는지.

 

네. 없어요. 전체가 하나의 통으로 다 그림이라. 근데 그게 어쩔 수 없이 다 들어가 있는, 손가락 하나 잘라낸다고 안 아픈 건 아니니까. 다 내가 한 거니까. 근데 내가 지른 일에 대해선 후회가 없는 쪽이라서.

 

 

 

 


LE: 중간 중간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신 거예요? 음악과는 관련이 없는?

 

국제회기획사, 그 다음에 칼럼니스트도 하고. 무역회사인데 라이센스만 가지고 하는, 계약서만 가지고 중계를 하는. 힙합 이 쪽하고는 완전 틀려요. 마케팅 컨설턴트 회사. 전부 다 컨설턴트로만 했어요. 그니까 프리랜서, 시간이 그래서 남는 거예요. 그때 이만큼 일해주고 이만큼 결과물 보여주고 이만큼의 보수를 받는 직종들. 고소득 직종이라고 말하는 그런 것들. 정확히 말하면 여기 가서 마케팅 플랜 짜주고 저기 가서 플랜 짜주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기획서 1장 당 300만원 짜리도 있어요. 그렇게 받을 때도 있어요, 덩어리 큰 것들은.  

 

 

 

 


LE: 근데 언더그라운드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음악을 하다가 그런 구조가 잡혀있는 회사 같은데 들어가서 일하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나요?

 

되게 이면적인 부분이기도 한데 전 생각보다 굉장히 프리한 커뮤니티 안에 존재했어요. 그래서 외국계 회사만 다녔던 것도 있어요. 아마 삼성이었으면 못 다니지. 그거 어떻게 다녀.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은 아예 안해요. 내 인생의 모토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자'거든요. 대신 그거는 요만큼 힘든 일이 있어도 힘들지 않다고 아예 그렇게 세뇌를 해버리고. 재밌는 일만 해요. 재밌는 일이 많아서 일을 많이 하는 거지. 하나하나가 다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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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원래 그런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거예요?

 

음악 그만두자마자 마케팅 공부를 하면서.. 그런 일들을 했어요. 통역하면서 마케팅 기획서 써주고 이런 일들. 그러니까 남들이 보면 '이 사람 뭐야, 정체성이?'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이해를 하는데 글이나 인터뷰로 보면 진짜 하나도 안 맞잖아. 그런 힘든 일이 없었다는 거지. (제가 일한 곳엔) 그런 위계질서 같은 게 생각보다 없었어요.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나 5억 줘, 너 50억 벌어줄게' 이거니까.. 대신 내가 일을 어떻게 하든 건들지 마. 여긴 내 거니까.

 

 

 

 


LE: 사람들이 군대에 관한 얘기도 많이 궁금해하더라고요.

 

국회위원 출마하려면 그 군대 관련 정보가 다 공개돼요. 군필이예요. (웃음) 공직자 신상 그거 다 까잖아요. 세금 채무, 보유 자산, 군대, 가족관계 이런 거 다 까잖아. 의병 제대구요. 의병 제대는 맞고. 의병 제대도 불명예 제대는 따로 나와요. 전 안 나와있어요.

 

 

 

 


LE: 그게 정신 이상으로 나왔다는 얘기도 있어요 (웃음).

 

그냥 그렇게 루머로 갔으면 좋겠어요. (웃음) 정신 이상자가 강남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가고 마케팅 컨설팅도 하고 대학 교수도 하고 (전원웃음) 완전 신난다.


 

 

 

 

LE: 이번엔 씬에 대한 얘기. 단골 질문입니다. 국내힙합씬에서 누가 가장 잘하는 거 같나요? 디지 님이 보는 관점은 다른 사람들과 왠지 조금 다를 것 같기도 한데..

 

제가 보기에는.. 제이통 되게 좋구요. 애가 좋아요. 랩 멋있잖아, 잘하잖아. 그 다음에 줄리 (Julie), 근데 빨리 작업 좀 끝났으면 좋겠고... 방사능 대박이고. 방사능 같이 작업해봤는데 진짜 노다웃. 너무 신나게 해. 그 에너지가 막.. 작업하는 자체가. 근데 걔네 셋은 항상 합위일체가 돼야 돼. 그리고 좀 맘에 들면 아메바 컬쳐(Amoeba Culture)에서 다 가져가. (웃음) 좀 좋을 거 같으면. 진짜 너무해. (웃음)

 

 

 

 


LE: 반대로 별로인 친구들은?

 

뭐 UMC, 피타입, 가리온... 캬캬캬.. 은 절대 아니구요. 제가 제일 사랑하고 존경하는 혹은 같은 생에 태어나 같이 음악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부분에 많아 감사하는 아티스트들이구요..  지금은 아마추어 게시판들이 제일 눈에 거슬려요. 혹은 인맥 탓하는 애들이 제일 거슬려요. 죽여버리고 싶어 진짜. 자기 음악이 안되는 게 그거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애들, 죽여버리고 싶어요. 사석에서 만나도. 물론 겸상도 안 할 거지만.

 

 

 

 


LE: 그럼 반대로 ‘인맥때문에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맥이 어떤 인맥이냐면, 시작과 동시에 옆에서 같이 뛰었던, '요이 땅!' 했던 게 인맥이에요. 나한테 인맥이 많다고 하면 이렇게 같이 시작한 이런 인맥이 많을 텐데.. 인맥은 위에서 아래로 존재하지 않아요. F&C 와서 선생을 잘 만났다고 해서 인맥이 생기진 않아요. 프로잖아. 이 사람들이 프로인데. 미쳤어? 자기 이름에 먹칠하게? 얘 하나 잘못 써버리면.. 맘대로 끌고 할 수가 없지. 철저히 베이스가 되어 있는 애들. 최소한 10년 더 살았으니까 그 친구의 인성이 보이잖아. 그게 보이는 거지. 그래서 트레이닝 계속 시켜서 될 거 같으면 같이 가는 거지. 내가 누구 데뷔시키면 그건 내 얼굴하고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에.. 인맥은 절대로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아요. 뭐, 친분빨로 피쳐링해주고.. 근데 그거 막하지 않잖아요. 안 되면 피하지. 바본가... 딱 듣고 ‘역시!’ 소리를 들어야지.

 

 

 

 


LE: 대학 교수 & 아카데미는 어떻게 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아카데미 얘기 되게 많이 나오는데 아티산 비츠가 얘기했던 내용이 거의 내 얘기거든요. 그렇게 된 거였어요. 그게 이유였고. 아카데미는 스튜디오를 쓸 수 있는 방법, 환경을 만들어 주는 방법. 대학 교수는 그냥 나오라고 해서 나가서 프로듀서로. 그러니까 대학에서는 예술 분야 같은 경우는 박사급이나 그게 아니고 앨범 장 수 같은 걸로 치는데 내가 제작한 앨범만 쳐도 지금까지 한 40장 되니까, 그것만 쳐도.. 그리고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내역도 있어서.. 그 한 분야만 10년을 넘게 했으니까.

 

 

 

 


LE: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는 편이세요? 가르치다보면 왠지 욕 많이 할 거 같은데 (웃음)

 

힘들지는 않은데, 워낙 말하는 거 좋아해가지고...

 

 

 

 


LE: 혹시 때리기도.. (웃음) 캐나다에서 당했던대로..

 

전 주로 얼굴에 침을 뱉죠. (전원웃음) 애들한테 ‘디느님’ 소리 들어가면서..

 

 

 

 


LE: 신인 발굴에 상당히 관심이 많으신 듯 해요. 이비아도 그렇고 '17세 신인여성 랩퍼 Julie', '15세 최연소 프로듀서 rhee' 씨...

 

rhee, 걔 건 접혔고. 아예 뻐그러졌어요. 학교를 그만뒀어요. 학교 그만두면 음악 접는다고 했거든요. 근데 진짜 학교를 그만뒀어요. 음악한다고 관뒀는데 음악을 안 해. 나름대로는 한다고 왔다갔다 돌아다니는 거 같은데 난 절대 그 꼴 못 봐. 이제 고2 됐을 텐데.. 난 그 꼴은 못봐요. 무슨.. 보아(BoA) 같으면 이해 가는데, 보아 아니잖아. 충분히 학교 생활하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인데 거기서 영민한 것들을 끌어주려고 했던 건데.. 그리고 쥴리(Julie) 같은 경우는 트라이먼트 팩토리에서 아예 데려가서. 페니가 아예 계약해서 전속으로 데려갔고.

 

 

 

 


LE: 그렇게 신인 발굴을 계속하는 게 여기 F&C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건가요, 아니면 개인적으로 욕심이 있어서인가요?

 

물론 애들이 뜨면 여기도 뜨는 건 당연한 거고. '애들한테 빨리 떠' 이러면 걔 입장에서 좋잖아. 근데 우리가 더 좋은 거는 '저 새끼 내가 키웠거든' (웃음) 이런 게 되고, 여기서 배출했다는 게 꿩 먹고 알 먹고가 되는데. 가장 큰 건 아까 말했던 1세대가 100세대까지 되는 그런.. 그 시장 넓어지는 거야. 그게 제일 커요.

 

 

 

 


LE: 아빠 같은 마음이네요.

 

아니지. 좀더 더 해먹겠다는 얘기지, 문어발식 경영을 (전원웃음). 이제 힙합 1세대들이 전부 문어발식 경영을 한다는 거야. 아무튼 그래서 재능이 있으면 무조건 밀어준다는 거고, 그래서 우린 눈독 들이는 게 많아요.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우리는.

 

 

 

 


LE: 그렇다면 크게 봤을 때 현 국내힙합씬은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너무 '아이들' 취향. 100% 성인 취향의 공연이 없잖아요. 그래서 몇몇 레이블들이 저한테 좋은 제안이 들어와서 강남에 클럽을 운영하기로 했거든요.

 

 

 

 


LE: 정말요?

 

근데 그거를 쇼케이스 보고 완전 100% 성인 취향. <How Do U Want It> 투팍(Tupac), 완전 성인 간지. 아예 성인들만 놀 수 있고 성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 그런 것들.  뭐랄까, 디씨트라이브(dctribe.com).. 거긴 힙합트라이브가 아니잖아. 대치트라이브인데 너무 편협한 거야. 힙합 가수들은 어떻고 어떻고.. 너무 불쌍하게 안봐줘도 된다니까. 그거 생색내가면서 앨범 사주려면 안 사줘도 돼요. 음악 듣고 싶어서 사는 거면 모르겠는데 무슨 한국 힙합 발전을 위해서 ‘내가 너의 뭘 해줄게’.. 안 그래도 돼요. 뮤지션은 그럴 이유가 없어요. 당신들 말대로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자유영혼들한테, 무슨 뭐 언더그라운드 힙합 아티스트들은 존나 배고프고 이렇게 얘기하는데.. 아니에요, 지금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아티스트들 중에 그렇게 배고픈 아티스트는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 걱정 안하셔도 되고 음악 열심히 들어주면 되는 건데 자꾸 그런 걸로 뭐라 그러는 거야. 그러면 기분이 좀 낫나봐. (웃음) 그런가봐. '저 새끼 돈도 못벌고 못살고' 이렇게 생각하는 거. 우리 무브먼트 막내 도끼가 벤츠 탄대도.

 

 

 

 


LE: 다른 인터뷰를 살펴봤었는데 의외로 이런 질문은 없던 거 같아요. 좋아하는 뮤지션은 누구에요? 아니면 영향을 많이 받은 뮤지션이라든지.

 

재즈마타즈(Jazzmatazz of Guru). 재즈마타즈, 또 재즈마타즈. 그 다음에 확 필받을 때는.. 가리온 들으면 필조차도 못받아요. 저건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죽을 꺼 같아.. 진짜 리스너가 되니깐 (웃음) 뮤지션으로서는 감흥조차도 없어, 음악인으로서. 팬으로서는 죽어나는데, <무까끼하이> 와, 이랬는데 뮤지션으로서는 감흥이 안 느껴져. 철저히 리스너가 되니까..‘저건 내가 할 게 아니야‘ 이러면서 JK형 꺼는 굉장히 좋아라 하는 실험성, 우리 아빠음악! T는 노다웃! 무브먼트 만세! (웃음) UMC도 영향 되게 많이 받고. 굉장히 많이 받고. 되게 좋아하는 래퍼고.. 해외 뮤지션은 에미넴 당연한 거고.. 그 다음에 오아시스 같은 성격? 이런 것도 되게 좋아하고. 빌보드도 거의 다 듣거든요. 요즘엔 클래식 공연장 다니면서 졸라보고, 클럽 일렉트로닉 음악 많이 듣고, 참... 그러고 보니 펑크 공연을 많이는 안 보네.. .영향 받는 뮤지션들이 되게 많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시초는 재즈마타즈였고. 근데 더리사우스(Dirty South)는 내 취향이 아닌 거 같아. 내 취향은 정말 아닌 거 같고. 그 음악을 만들 수는 있는데 그게 잘 안 나오는 거 같아. 괜히 어설프게 흉내낼 필요도 없고 그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도 워낙 많고. 사람마다 음악 듣는 취향이 달라서 내 취향은 아닌 거 같아요.

 

 

 

 

 

LE: 재즈마타즈하니까 갑자기 생각나는데, Guru가 사망했을 때 발표한 재즈마타즈 헌정 곡은 무료 공개였어요. 아까 말씀하신 ‘무료 믹스테입’ 얘기와는 약간 모순이 되는 면이 있지 않나요?

 

재즈마타즈를 알리고 싶었던 곡이에요. 그리고 정말 그냥 뿌린 곡. 그건 내가 재즈마타즈를 위해서 선물할 수 있잖아요. 누군가 재즈마타즈 음악을 들을 수 있게. ‘재즈마타즈가 뭐야?’ 하면서 적어도 나 아는 사람들은 들을 수 있는 거? 그게 무료지. 그거 가져간다고 내가 지랄은 안 하니까. 나를 알리기 위한 곡은 아니니까.

 

 

 

 


LE: 언제는 안 그랬겠냐만은 요즘도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잖아요. 이쯤이면 디지님이 한번 터뜨릴 때도 된 거 같은데 (웃음)

 

우리 각하께선 그럴 리가 없는 분이니까. (웃음) 딴지일보 ‘나는 꼼수다’ 그게 아이튠즈 미국 차트 2위했는데, 2위했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리플 달았더라고. '우리 각하는 1등밖에 기억 못하십니다' (웃음) 각하는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거, 저는 알아요. “‘나는 꼼수다’를 꼭 들어보세요. 그게 저랑 견해가 비슷하네요.”가 제 답이겠네요. 각하는 그러실 분이 아니에요. 아는 사람은 알아요.

 

 

 

 


LE: 요즘 계획하시는 게 있다면 듣고 싶어요.

 

미국 진출. 올해 안에 하려고요. 메쉬 업으로 갈 수 있으면 일렉트로니카도 해보고. 미국투어가 생각보다 어렵진 않다고 하더군요. 지금 작업 들어가고 있으니까, 가보게요. 디라인이 아니라 디지로, 내가 가는 건데, 랩으로 가는 건 말고, 그 래퍼 말고 다른 프로디지 (Prodigy) 있잖아, 그것처럼 프로듀서 집단으로 가는 건데 거기에도 공연을 하거든요. 그런 형태의 완전 하이브리드. 그거 시도를 해본다는 거지, 아직 안 나가봤잖아. 본 적이 없으니까 한 번 보게.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있는지.

 

 

 

 


LE: 뮤지션, 리스너, 커뮤니티 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음악 좀 들었으면 좋겠고... 뮤지션들 리스펙 안해도 좋으니까, 좋은 피드백이 필요한 거지, '이건 비판입니다' 이래놓고 누가 봐도 약올리려고 쓴 글이고 누가 봐도 그런 글인데.. 글 많이 안 올라와도 좋으니까 피드백을 주려면 피드백을 주던가. 아니면 그냥 닥치고 공연장에 좀 오세요. 뮤지션들에게는.. 소주나 한 잔 합시다. (웃음)

 

 

 

 


LE: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혹시 아직 하지 못한 얘기가 있으면 하셔도 돼요.

 

편집하는 사람이 더 걱정되네. (웃음) 오늘 뭐 거의 다 뱉은 거 같은데? 그리고 이 정도로 치밀하게 다 물어보고 했으니까.. 일로직 위즈덤까지 나왔으면 거의 뭐. 이래서 댄스디랑 인터뷰 했어야 된다는. (웃음) 정확하게 히스토리 알고 있는 사람하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게 김대형 씨나 힙합플레이야 이런 데 하고는 좀 틀린 게 그분들은 나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아니까. 내 개인사도 알고.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게 나한테도 맞다는 생각이 들고.. 힙합엘이 자체 성격에 맞게. 제일 고마운 거는 이 인터뷰가 나가도 홍보를 위한 인터뷰가 아니고 쌓여있던 루머에 대한 인터뷰, 역사의 시작과 그 안에 있었던 인물에 대해서 정리하는 인터뷰가 될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거 같아요. 고맙지 뭐.

 

 

 

 


LE: 마지막으로 끝인사 부탁드릴게요.

 

나이가 벼슬이야, 이 새끼들아! (전원웃음)

 

 

 

 

[힙합엘이 뮤직살롱 CD 이벤트]

 

- 댓글 달아주신 분들 중 추첨을 통해 총 10분께 "디지 님의 신보 [Bleu Film : 2 Jazzy for Hiphop Vol.2 / Deegie's In Trumental]와 재즈 기타리스트 임현기 님의 앨범" 2장의 CD를 드립니다.

 

- 이벤트 기간: 9월 19일까지 / 이벤트 발표: 9월 21일 -

 


  

인터뷰 | DanceD, Paperdoll, (bl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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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7
  • 2011.8.19 20:41 댓글추천 0

    드디어 올라왔네요-

    때가 때인지라 눈살 찌푸려지는 리플이 많이 달릴거 같아 걱정이 괜히 되네요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디지님과의 만남은

  • owl
    2011.8.19 20:45 댓글추천 0

    악플하나 달고 갑니다. 정말 비호감이다. 

  • 2011.8.19 20:53 댓글추천 0

    화끈하네요, 30분 동안 정독했어요

  • 2011.8.19 21:38 댓글추천 0
    디지님 잘듣고있습니닼ㅋ 우와미국진출ㅋㅋㅋrepresent 해주세요!
  • 2011.8.19 22:03 댓글추천 0

    오 댄스디님이 인터뷰 하신듯? ㅎㅎ

     

    디지님은 그렇게 오랫동안 힙합씬에 있었는데도 굉장히 일관성 있게 약간 미친 음악을 하시는 게 신기함 ㅎㅎ

     

    물론 좋은 의미에서요 ㅎㅎㅎ

     

    Bleu Film : 2 Jazzy for Hiphop 1도 좋았는데 2는 더 기대됨 ㅎㅎㅎ

  • 2011.8.19 22:07 댓글추천 0

    아마도 오버클래스 몇몇을 비판하신 거 때문에 악플이 예상되지만 전 응원함 ㅎㅎㅎ

  • 2011.8.20 00:36 댓글추천 0

    디지의 음악은 거의 못들어봤고

     

    최근에 이러저러한 트위터질로 안 좋은 이미지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인터뷰들은 김디지란 사람에대해 좀 더 제대로 알수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운 인터뷰입니다

  • 2011.8.20 01:06 댓글추천 0

    요즘들어 사건도 그렇고 쭉 지켜봤을떄, 뭔가 참 독특하고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음악도 되게 멀리했었는데.. 이번 앨범은 한번 들어보고싶네요

     

    진석이형이 디지씨를 되게 좋아하시던데 저는 처음에 그런걸 이해 못했어요

     

    "아니 이렇게 특이하고 과격한사람이 좋단말야?" 이랬는데

     

    웬지 이 인터뷰를 보고나니까 알수없는 분위기랄까 카리스마? 과격하지만 웬지 관심이가는 그런 느낌이 드네요

     

    솔직히 저도 디지씨가 어떤사람인지 잘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지만..

     

    조금은 이해할것같네요 어쩃든 인간성과 별개로 , 음악은 한번 진지하게 접해보고 싶네요

     

    일단 기대 해볼게요 , 아 걱정은 마세요 합법적인 방법으로 들을테니깐요 ㅋㅋㅋㅋㅋ

  • 2011.8.20 01:29 댓글추천 0

    읽을때는 몰랐는데 다 읽고보니 엄청 긴 인터뷰였군요ㅋㅋ

    정말 시간 가는줄 모르고 정독하게 된.. 재밌는 인터뷰였습니다.

     

    CB MASS의 CB가 커빈의 약자라는 루머가 사실이었다는게.. 재밌네요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인터뷰! 매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1.8.20 14:18 댓글추천 0
    비록 공감이 안되는 부분도 있지만 한국 힙합의 그동안의 진행도 알수 있었고 디지라는 사람의 철학도 알수 있어서 좋았어요.
  • 2011.8.20 14:59 댓글추천 0

    디지 진짜 엄청 부잔가 보네;

  • 2011.8.20 17:41 댓글추천 0

    그간 국내 힙합 관련 웹사이트에서 했던 인터뷰 중에 가장 알차고 내용있는 인터뷰

     

     

    늘 어렴풋이 짐작은 가면서도 확신하진 못했던 그의 행보와 스스로 창조한 캐릭터들, 아울러 디스코그라피 상의 안배에 대해 감탄함과 동시에 매우 흥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확고하게 중심잡힌 그만의 가치관과 캐릭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으며 또한 공감가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사운드 메이커로서, 래퍼로서, 또한 퍼포밍 아티스트로서, 기타 모든 그가 임하고 있는 역할로서

    그가 시대에 있어 굉장히 소중한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고

    그 모든 역량과 가치들이 일체의 외부영향없이 오직 본인 한 사람이 순수히 하고싶었고 원했던 일들의 결과

    라는 사실이 더욱 더 놀랍고 가치있게 느껴집니다. 

     

    미친 디지 (Insane Deegie)라는 단어는 실은 중간에 '천재'라는 단어를 중간에 생략하고 있는 타이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천재라는 말이 유일하고 비범한 재능을 일컫는 말이라면 그 누구와도 다르고 압도적으로 유일한 그야말로

    Insane Genius Deegie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모쪼록 앞으로의 프로젝트와 작업물들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2011.8.21 01:21 댓글추천 0

    미국진출...글쌔요..이런 말하면 안대겠지만

    미국에서 거주하는 사람으로써 말하는거지만

    미국애들은 Boa(보아)도 모릅니다. 

    동방신기? 모르죠 당연히 다른 아시아 나라에서는 유명해도..

    말이 미국진출이지..

  • 2011.8.21 01:22 댓글추천 0

    음... 말그대로 요즘 핫하신데.

    뭐..

    암튼 인터뷰 잘봤어요~

  • 2011.8.21 09:27 댓글추천 0
    요새 사건때메 안좋은 시선밖에 없었는데 인터뷰 보다보니까 또 다르게 느껴지네요
    비록 몇부분은 공감이 안갑니다만..
  • 2011.8.21 19:35 댓글추천 0
    디지 형 인터뷰 잘 봤습니다. 일단 Bleu film vol.2 정말 기대하고 있구요. 후진양성하시면서 전진하시는 모습 정말 보기 좋네요.

    그리고 '중간에 공부는 하기 싫고 하고 싶은 거 하려는 애들' 이라는 구절은 뜨끔했습니다. 딱 제 이야기라서요.

    처음 힙합을 들으면서 느꼈던 리스너와 뮤지션과의 간극이 점점 좁혀져가는 듯합니다.

    그들만의 문화에서 모두의 문화로 진화해가는 거니깐요. 어찌보면 1세대는 뮤지션뿐만 아니라 리스너도 포함하는 말일 듯합니다.

    서로 없어서는 안될 공생관계에서 모두가 그 세대에서 함께 즐기고 놀았으니깐요.

    그런 세대 안에 포함된다는 것만해도 너무 행복합니다.

    LP에서 CD로, 또다시 CD에서 MP3로 넘어온 시대를 지나 (지금 이 시기가 과도기일지도..) 또 다른 음악의 소통도구가 생겨났을 때 디지형과 같은 뮤지션이 있어야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인터뷰 잘 봤구요.

    한국 힙합 100세대까지 모두 힘냅시다.
  • 2011.8.24 19:05 댓글추천 0

    확고한 신념가지고 계속 달려주세요. '김원종 교수님'보다는 '정신나간 디지'로 더 많은 활동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비아씨 앨범도 하나 더 나왔으면 좋겠고...




    논란에 휩싸이실때마다 개싸움이다 뭐다 말이 많지만 솔직히 제3자 입장에서 보는 맛이 쏠쏠해요.


    의도치 않은 이슈메이커로 계속 달려주시길. gogo.

  • 2011.8.24 19:44 댓글추천 0
    디지형의 앨범들은 그냥 참 재밌고 편하게 듣게 되어서 좋아. 욕이 진창된 앨범이든 뭐든 그만의 메시지는 범벅이잖엉. 그냥 이유없이 욕하는 것도 아니고ㅋ 성의는 상대적인 게 아니야. 그건 개인이 더 잘 알테고. 공개된 두곡의 재즈힙합의 질감이 상당히 좋아서 3cd가 그냥 양으로만 만족시켜줄 앨범이 아닐 것을 증명해 주리라.
  • 2011.8.28 12:16 댓글추천 0

    그냥 이번 앨범얘기만 잠깐 할줄알았는데 디지님 인생이 있네요ㅎㅎ

    다이내믹한 인생사에 '나는 그 시절 책상앞에서 그러고있다가 지금 이게 뭔가....'싶기도 하고^^;;;;

    하지만 앨범발매 미뤄진거 때문에 Black을 아직도 못받았으니 디지님 미워!ㅋㅋㅋㅋㅋ

  • srg
    2011.8.31 23:41 댓글추천 0

    화끈하다!!!!!!!!!!!!!!!!!!!!!!!!!!!!

  • 2011.9.1 23:53 댓글추천 0

    디지. 옛날 이야기들 들어보니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그의 생각과 사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알 수 있었고 정말 항상 솔직한 모습이 좋은 것 같습니다.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뮤지션이지만 이번 앨범만큼은 정말 기대됩니다!

  • 2011.9.4 06:09 댓글추천 0

    ' 오버클래스'가 싫다면서 자기보다 잘나가는 버벌진트,산이,스윙즈한테는 뭐라못하고 영쿡이나 까고있는 꼴이라니ㅠㅠ

    그리고 디지님 왜이렇게 횡설수설하시나요,,인터뷰어님도 귀찮으셨나ㅋㅋㅋ문장편집좀해주시지ㅠㅠ 읽어본 인터뷰들 중에서 가독성 제일 구리네요.

    +다른 인터뷰들에 비해서 주변사람들 얘기가 많네요. 누구는 내아빠고 누구는 내엄마다.....

     

    ㅋㅋㅋㅋㅋㅋㅋ

  • 2011.9.8 11:08 댓글추천 0

    ㅋㅋㅋㅋ언제나 인상적인.. ㅋㅋㅋ 잘봤습니다.

  • 2011.9.13 20:42 댓글추천 0

    DanceD님과 함께 한 인터뷰라 그런지 옛날 얘기들 많이 나와서 간만에 보이는 이름들도 있고 즐겁게 읽었습니다 :) 이 형도 한때는 어마어마했는데 최근에 알게되어 모르시는 분들이 인터뷰 읽으시면 좋을듯 하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 kij
    2011.9.14 00:49 댓글추천 0

    디지님의 시원한 면 뿐만 아니라 진중한 면도 인터뷰에서 비춰지는 것 같아 인상적이였습니다. 디라인의 행보에 밝은 날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 2011.9.18 22:32 댓글추천 0
    인터뷰 두번 읽었네요.

     

    개인적으로 디지라는 캐릭터를 참 좋아는데 (음악도 물론이구요)

    그동안 디지가 내놓았던 앨범들 꾸준히 듣고 있는 사람으로써 이번 앨범 어느때보다 기대가 많이 됩니다.

     

    예전 'DT - 까불지마' 에서 디지 목소리 처음 들었는데 디지도 음악 정말 오래한거 같습니다.

    이번 앨범이 디지의 최정점인 앨범이 될것 같네요.

    지금까지 창작했던 앨범중 가장 완성도가 높고 빈틈없는 앨범일거 같아요.

    이번 앨범으로 더 많은 뮤지션들과 교류가 있었음 좋겠고 더 다양한 활동 많이 했으면 좋겠네요.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글쓴이
    2011.9.28 20:44 댓글추천 0

    ■ 디지 뮤직살롱 댓글 CD 이벤트 당첨자 발표

    -"힙합엘이닉네임/본명/연락처/주소"를 mustbemaybe@hotmail.co.kr 로 보내주세요. (ex: Cutybaby/송지효/010-1234-1234/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1203-15)

     

    - 제게 쪽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mustbemaybe@hotmail.co.kr 로 메일을 보내셔야합니다.


    - 당첨 발표일을 기준으로 21일 이후의 건에 대해서는 무효처리 됩니다.


    * 당첨자 명단

    디지 [Bleu Film : 2 Jazzy for Hiphop Vol.2 / Deegie's In Trumental] 10명
    vizualiza
    roadman
    srg
    thegaming
    brongs
    식혜
    블랙드머
    Fatddong
    truplaya
    karldemith

     

    [재즈 기타리스트 임현기님 앨범] 2명
    kij
    wurd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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