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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리온 x 아티슨 비츠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2011.07.20 12:31조회 수 18158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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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alon] 엠씨 메타, 나찰, 아티슨 비츠

 

엠씨 메타(MC Meta), 나찰(Naachal), 아티슨 비츠(Artisan Beats, Saatan). 한 명 한 명으로도 그 이름이 빛나는, 과거 마스터플랜 시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멋진 세 분을 한 자리에 모셨다. 누가 뭐라고 하건, 어떠한 수식어를 붙이건 한국 힙합 전체에서 이들의 존재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리온, 다크루로 시작해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 예전 이 공간을 개척할 때의 추억, 지금까지의 과정들을 지나서 바라보는 현재의 상황, 그리고 지녀야 할 태도라는 것까지 들어보았다.

 

 

 


Q. 반갑습니다! 먼저 소개와 인사말 부탁드릴게요.

 

엠씨 메타 (이하 ‘M’): 네. 저는 가리온의 엠씨 메타입니다. 반갑습니다.


나찰 (이하 ‘N’): 저는 가리온에서 랩하고 있는 나찰입니다.


아티슨 비츠 (이하 ‘A’): 안녕하세요. 아티슨 비츠입니다.

 

 

 

 

 

Q. 먼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M: 일단 가리온은 작년 10월 26일, 앨범 낸 다음에 계속 2집 활동과 관련해서, 저희가 활동이라고 해봐야 거의 공연무대구요. 저희가 뭐 방송이라든가 그런 쪽에 많이... 뭐랄까요, 그런 성향이 있는 게 아니다보니까 주로 공연무대 게스트로 많이 올라가는데 앨범내고 나서 저희 단독 공연무대가 사실 많지가 않았어요. 앨범 내고 바로 발매기념 공연을 했었는데 그 다음에 약간은 저희 자체적으로 준비를 하는 단계이고... 여름쯤에 단독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 외에는 뭐 아시는 분들은 아시려나 모르겠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디제이 렉스(DJ WRECKX)랑 8월 앨범 발매를 목표로, 2주 간격으로 계속 디지털 싱글을 내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외에는 열심히 가리온으로서 나찰이랑 같이 공연활동을 하고 있구요.

 

N: 네. 저도 가리온 활동을 하고 있구요. 이것저것 피쳐링 작업 계속하고 있고 그렇네요.

 

A: 네 전 놀고 있습니다. (웃음) (나찰을 가리키며) 같이 만날 술 먹구요 이 인간이랑.

 

M: 제일 두드러진 활동이네 (웃음)

 

 

 

 


Q. 가리온 분들은 요즘에 인터뷰나 활동 많이 하셨고.. 아티슨 비츠 님 인터뷰는 요즘 거의 못 본 거 같아요.

 

A: 저는 어차피 프로듀서니까 굳이 인터뷰를 많이 할 이유가 없었고 마지막 했던 게 아마... 마이노스(Minos)랑 앨범 작업했을 때예요. 그게 벌써 한 2년이 넘었나? 2년 좀 됐겠지? 그것도 부틀렉이었는데 어찌 하다보니까 사람들이 정규처럼 생각하는...

 

 

 

 

 

 

Q. 그렇군요.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인 질문! 음악이나, 씬이나, 국내힙합이 많이 발전해왔지만 특히 요즘 들어서 뮤지션들뿐만 아니라 리스너들 사이에서도 과거로의 회귀, 또는 당시의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이 많아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최근에 기획 중인 1세대 힙합 공연도 그런 움직임 중 하나인 것 같고. 그때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요즘 들어서 이러한 현상이 부각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지.

 

M: 글쎄요. 저는 개인적으로 되게 막 그런 과거.. 어떤 것들에 대한 얘기가 다시 되고 하는 게, 어떤 대단한- 무슨 특별한 이슈가 있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약간 좀 음악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힙합이라는 게, 물론 씬은 활발하고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나오고 또 계속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그런 형태잖아요. 그런데 모양새는 좀 더 커지고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표현이 좀 그런지 몰라도.. 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힙합을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MP 시절이라든가,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들한테서는 지금의 힙합이 그다지 취향이 안 맞는 그런 분위기인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이 이제는 나이도 먹고 생업에 종사하고 그런 측면에 관심이나 애정이 예전만 못했다가, 소위 말하는 1세대 분들, 랩퍼들이든 프로듀서든 디제이든 비보이든 그 사람들이 계속 꾸준하게 씬 자체에 남아서 계속 활동을 한다는 거 자체에서 뭔가 인식되는 점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아는 사람들도 계속 움직이고 있고 그때 당시 음악들을 들어보니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그런 감흥이 요즘에 어떤 음악적인 힙합에 비춰볼 때는 맛이 틀린 거죠.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이 다시 나오지 않았나 싶고, 그런 측면에서는 저희는 사실 뭐 그게 이상하다 이런 건 아니에요. 반갑죠. 고맙고 좋은데,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아티슨 비츠도 그렇고 나찰도 그렇고.. 저희는 하는 거 계속 쭉 해왔던 거지, 갑자기 저희가 뭔가 새로운 걸 이슈화 시킨다던가, 어쩌고 이런 건 아니라는 거죠. 저희는 쭉 해오던 거 하고 있는 거고.

 

N: 당사자로서는 약간 조금 뭐랄까... 부담도 좀 가져야된다 라고 보는 게, 1세대, 1세대하면서 예전에 사실 인기가 많았던 사람들이 있고 지금은 음악을 그만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걸 단순히 후광을 보고서, 후광을 믿고서 무대를 올라간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해요. 지금 리스너들은 되게 반길 일이긴 한데, 뮤지션들은 오히려 더 그런 쪽으로 신경을 좀 써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요즘 들더라구요.

 

M: 왜냐면 불리한 게 많으니까요. '늙다리', (웃음) '구려', '옛날꺼'... 그런데 무대 올라갔는데 '새로울 거 없잖아' 내지는 '얘 옛날거 하네' 이런 거. 많이... 비난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꼬투리 잡힐 소지가 많이 있잖아요.

 

 

 

 

 

Q.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네요. 오랫동안 활동해 오신 분들이라.. 이미 다른 인터뷰에서 얘기하신 것들이겠지만 힙합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간단하게나마 듣고 싶어요.

 

A: 그런데 음... 정확하게 어떤 시점이라는 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아마.. 제가 원래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계속, 부모님 권유나 뭐... 이런 식으로 악기를 배우고 (음악을) 하긴 했었어요. 그리고 힙합을 원래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왔었고 또 그 때는 제가 미국에 살고 있었으니까 배경이라는 게, 환경이 힙합 자체에 접근하기가 훨씬 수월했고. 어렸을 때 미국 가서...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인가 그랬으니까 되게 충격이었죠. 아이스 티(Ice T)를 보면서 ‘저 새끼 뭐야?’ 했었죠. 그 때부터 힙합이라는 거에 빠지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악기를 하나둘씩 배우면서 하다보니까 기타 배우고 바이올린 배우고 했으니까 힙합이랑 전혀 상관이 없었지. 그때는 그런 악기들을 배우고 그랬는데 하고 싶은 음악은 힙합이니까. 근데 그걸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그냥 나중에는 결국 다 때려치우고 아버지한테 건반 하나 좀 아무거나 사달라고 해서 혼자 랩퍼로 시작했던 거 같아요.

 

M: 이 인터뷰 졸라 레알이다. (웃음) '아버지 사주세요'

 

A: 건반 그때 한 40만원짜리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사줘가지고... 야마하(Yamaha)인가 아무튼 되게 싸구려 있어요.

 


 

 

 

Q. 가리온 분들은요?

 

M: 네. 저도 다 똑같이... 나찰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고 그랬었는데 되게 다양한 음악들을 다 들었어요. 근데 그중에서도 이제 힙합으로 넘어온 게 그 독창성 때문에 매니아가 됐었고 그러다가 PC통신 시절에 하이텔에서 '검은소리(Blex)'라는 동호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직접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됐었죠.

 

N: 저는 어렸을 때 미군들이 근처에 살았었는데 우연찮게 듣고서는 완전 ‘블랙뮤직빠’가 됐어요. 딴 건 아무것도 듣지 않고 그러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정보 자체가 없으니까는 모르고 있다가 MP라는 곳에 갔다가, 메타 형이 프리스타일 하는 걸 보고서는 말 그대로 뻑 가가지고 한 2주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간 게 첫 데뷔인 거 같아요.

 

M: 그걸 보고 제가 뻑갔죠. 그래서 나찰한테 전화해가지고 같이하자고.

 


 

 

 

Q. 아 진짜요? 처음 듣는 얘기예요. 2주 만에...

 

M: 맞아요. 표현을 이렇게 하는 게 처음이지. 굉장히 길게, 항상 30분에 걸쳐서 이야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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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군요. 조금 전에 말씀하신 PC통신 동호회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97년도 쯤에 BLEX에서 [검은소리. 첫 번째 소리] 라는 앨범이 발매되었고 좀 더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거 같은데 그때 얘기 좀 듣고 싶어요.

 

M: 일단 뭐, 저희 입장에서 얘기할 수 있는 건 중요한 게 말씀드렸다시피 저나 나찰같은 경우에, 제가 나찰을 만난 것도 그 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 만났었던 거고. 물론 MP라는 무대를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지만 이 친구도 동호회 회원이었거든요. 그리고 오프 모임 때 나와서 같이 보고 했었던 적도 있었고. 그런데 검은소리 1집, 2집은 사실 지금 보면 되게 조악한, 음질뿐만 아니라 거기 참여했던 랩퍼들의 실력이나 이런 것도 굉장히 조악한 수준인데 그래도 그때 당시에 저희는 딱 하나였어요. 우리가 듣고 싶은 음악을 우리가 만들자. 그게 제일 컸구요. 가요계에서도 랩퍼들이 있었지만 그때 당시에 계셨던 분들도 여러 사정이랑 여러 상황들 때문에 굉장히 제한적으로 랩을 했던 것도 있겠지만 아이씨, 좋게 얘기하려니까 되게 어렵다. (웃음) 그랬는데 가요계의 그것들은 저희가 즐길만한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동호회 사람들끼리 우리가 듣고 싶은 힙합은 우리가 만들자고 만든 거예요. 물론 실력이나 이런 건 당연히 구렸죠. 그래도 당시 우리 시선으로 우리 음악이 구리다고 생각 안 했어요. 왜냐하면 당시 우리나라에서 랩퍼들을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실력 수준이라는 게, 저희는 그때 자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앨범제작이라는 걸 하게 됐고 그 앨범제작도 저희가 뭐 돈이 많거나 이런 게 아니라 1집 같은 경우는 공식적으로 CD로 제작된 건 한 10장 남짓 할 거예요. 당시에 CD를 굽는 게 거의 반나절 걸리던 시절이라서... 한 열 몇 장을 굽는데 종로인가, 명동 어디에 있는 CD 버닝하는 샵이 있었어. 그래서 거기서 애들이랑 밖에서 놀다 들어왔다 하면서 구워서 소수의 참여진만 나눠가지고... 공식적으로는 동호회 자료실에다가 MP3로 앨범을 발표했었어요. 그게 제 기억으로는 아마 조PD보다 조금 빨리 올렸을 거예요. 그래서 국내힙합사에서는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조PD 앨범이 최초의 MP3 앨범이라고. 저희끼리는 ‘우리가 최초다.‘ (웃음) 왜냐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저희가 게시판에 올렸고.

 

 

 

 

 

Q. 그 앨범 대표곡이..

 

M: 거기 뭐 대표곡이랄 게 없죠. 없었고... 그 다음에 이제 2집이.. 지금은 없어진 강아지 문화예술 통해서 배급이 됐다 뿐이지, 제작은 거기서 한 게 아니고 이름을 다른 회사랑 같이 처음에 했다가 그게 파토가 나버려서 음원... 그때 제가 대학원을 졸업을 못하고 과목 하나가 빵꾸가 나서 다 패스하고는 논문도 다 준비하고 그랬는데, 공연 때문에 과목 하나를 이수를 못했어요. 한 과목. 그거 때문에 교수님이 절대 안 된다고 그래서 한 학기를 더 다녔어요. 제 기억으로 그때 98년인가 그랬는데, 그때 정말 피똥쌌어요. 회사 이름은 못 말하지만 잠실 쪽인데요. 거기에서 살았어요. 살면서 믹싱하고 기사님이랑 같이 다 녹음 다 받고 제가 다했었는데... 물론 제가 다했다고 하면 또 참여진들이 ‘뭔 개소리야‘ 이러겠지만 (웃음) 어쨌건 얘기가 좀 샜는데 검은소리 1, 2집의 의미는 그거였어요. 한마디로 딱 말씀드리면 그 때 당시에 저희는 힙합에 대한 음악적인 갈증이 컸었고 그 음악적 갈증이 외국음반을 통해서 듣는 것만으로 가시지가 않았어요. 왜냐면 우리나라 랩퍼들이 보이니까,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소위 말하는 생 언더그라운드에서도 명호(of 허니패밀리)도 되게 소문난 프리스타일 랩퍼였구요. 되게 만나고 싶었어요. 그런 친구라던가, 몇몇 그런 소문으로만 듣던 사람들 몇몇과 그런 자그마한 씬 아닌 씬이 있었다면. 저희는 이제 그 가능성을 느낀 거죠. 아, 우리말로도 멋있는 랩 음악이 나올 수 있겠다. 힙합음악이 나올 수 있겠다. 했는데 가요계에서 보는 건 너무 아쉽고 안타깝고 그러다보니까 저희끼리는 자체적으로 랩하고 놀다 보니까 자신감이 생겼고 그걸 어떻게든 세상에 내놓고 싶었어요. 증명을 하고 싶었고, 이런 게 있고, 힙합은 우리도 그때 100이면 한 2~30밖에 몰랐지만 2~30정도 알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게 정말 진짜다’라는 것에 대한 걸 끄집어내고 싶었어요. 그 의미가 컸죠.

 


 

 

 

 

Q. 말씀하신 내용 중에, 그때 냈던 앨범들이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약간 조악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당시에는 앨범 내고 어땠나요?

 

M: 되게 좋았었어요. 그리고 발매기념 공연을 97년 11월인가, 공연을 했어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UMC, 그리고 주석(Joosuc) 그 다음에 누가 있는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친구들이 마스터플랜 이전에 푸른굴 양식장이라고 거기가 클럽 공연장이었거든요. 거기서 발매기념 공연을 했었는데, 물론 거의 태반이 동호회에서 소문을 듣고 온... 그리고 동호회 회원뿐만 아니라 그땐 그랬잖아요. 게시판 회원 활동하는 거 보면 여러 동호회에서 활동을 하잖아요. 그런 걸 듣고 오신 분들하고 해서, 제 기억으로는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그때 여(女)사장님이셨는데 공연이 끝난 다음에 굉장히 놀라시면서 어디서 이런 사람들이 왔냐, 한 번 더 하면 안 되겠냐, 장사가 된다, 그래가지고 한 번 더 하자- 하고는 하다가... 그때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하고 준비를 했단 말이예요. 97년도 쯤이었는데 그 공연 때문에 사장님과 통화하려고 푸른굴 양식장 전화하니까 왠 남자가 받더라구요.  '여기 팔렸어요.' 이러길래 '응? 뭔소리지' 그래서 '아니, 거기서 공연하기로 했는데' 하니까 '아, 그냥 준비하시면 돼요' 그래서 제가 '누구세요' 했더니 '이종현이요', '뭐하는데요?', '마스터플랜이요.' 그렇게 해서 MP가 된 다음에 저희가 갔는데 어쨌건 저희는 그때 되게 좋았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컸죠.

 

 

 

 

 

Q. PC통신으로 힙합에 대해 교류하던 때, 그때의 향수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 추억이야기나 에피소드 같은 게 있다면?

 

M: 그때 그런 게 있었어요. 통신 동호회들 사이에 뭔가 좀 서로간의 시각차이라던가, 아니면 약간 경쟁 같은? 하이텔 Blex 같은 경우에는 저도 개인적으로 다른 운영진 분들을 뵈었어요. 예를 들어 나우누리 쪽엔 Kick It Up이 있었고 Kick It Up은 사실 댄스 동아리인데 거기에 MC 게시판, DJ 게시판이 있었어요. 거기서 나온 게 아마 Dope Soundz 였을 거예요. Dope Soundz는 힙합, 알앤비 블랙뮤직 쪽이었구요. 그 다음에 유니텔 Word Up이 있었고 Camp Groove가 천리안에 있었고.. 그때 공연진 분들도 뵈었던 기억이 나는데 음감회도 하고 이랬던 거 같아요. 그중에서... 창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Blex는 되게 활발했죠. 인원도 많았을 뿐더러 실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자료실을 통해서 본인이 만든 곡들을 많이 올렸었고 검은소리 앨범이건 아니면 <장유유서>같은 그런 되게 다양한 번개송 프로젝트가 굉장히 활발했어요. 심지어는 초기에 MP3라는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저희가 어떻게 했었냐면은... '삐삐랩' 이라는 게 있어요. 그때 삐삐를 썼는데 삐삐 앞에 보면 인삿말을 30초인가 녹음했어요. 그걸 통해서 싱글을 발표해요. (전원웃음)

 

N: 저도 첫 데뷔가 그거예요.

 

M: 자기가 가사 쓴 걸 녹음 하고 어디다 올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냐면 싱글 CD에는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이 있잖아. 이런 인스트루멘탈을 걸어놓고 오디오에 켜놓고 타이밍을 잡고 기다리다가 전화기에 '삐소리 후 말을 남기세요'와 함께 그때 딱 누르는거야. 20초 그 사이 막 랩을 해요. 전화 수화기 들고 막 랩하고 확인을 해요. 모니터링을 하는 거지. '아, 이거 틀렸네' 이러고 다시 녹음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랩을 한 다음에 게시판에 번호를 올려요. '새로 따끈한 싱글이 나왔다' 그렇게 해서 랩 20초짜리 곡으로 그렇게 했었거든요. 그런데 또 얘기가 이렇게 샜네... 어쨌든 여러 에피소드들이야 되게 많은데 대표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각자 활동을 하고 실력의 차이가 있고 하다보니까.. Dope Soundz에서 나온 게 아마 SNP일거예요. SNP쪽에서도 자작곡들을... 그때 이제 진태(Verbal Jint)도 있었고 당시에 한아(절정신운 한아)도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러다보니까 곡을 쓰는 사람과 랩퍼들이 만든 곡들이 올라오는 과정에서 이제 뭐 회원간이건 아니면 당사자간이건 살짝 견제하는 그런 분위기... 그러니까 '누구 랩이 더 좋네', '누구 랩이 엉터리네' 이런 것들. 지금도 물론 그런 게 있긴 하지만 그땐 그런 게 굉장히 미묘하게 뒤에 깔려있던 분위기였던 거 같아요.

 

N: 그리고 전 진짜 기억나는 게 수많은 음감회와 비디오 감상. 볼 수가 없으니까는 누군가가 '이번에 스눕 독(Snoop Dogg) 신보가 나왔다' 이러면 그거 하나 들으려고 저는 파주시 문산에서 2시간을 버스 타고 나가요.

 

M: 그거 때문에 동호회 회원들이 많을 때는 200명씩 모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죠. 싱글 하나 들으려고 카페를 대관을 해가지고 돈을 주고 일일찻집처럼 대관해서 마이크 다 준비해서 설명해. '이번 스눕 싱글은...' (전원웃음) 자켓 보여주면서... 자켓을 무슨 종교행사처럼 돌리면서 봐 .(전원웃음) '때묻어요. 때묻어' 이러면서, 그렇게 했었어요.

 

N: 전설의 그룹이 된 Who's the Man의 마초 형이 미군부대에서 CD 몇 장씩 뽀려가지고 저희한테 팔아먹고 막 싸게... 재미있었어요.

 

M: 별거 다 했었죠 그때는.

 

A: 저는 PC통신이라는 걸 몰랐어요. 저희 팬카페가 있다는데도 거기도 못들어가봤어요. 메타 형이 컴퓨터 하고 있으면, 옆에서 '형, 나 팬카페 있다며 거기 좀 들어가 봐' 이랬어요.  그러니까 인터넷은 하는데 통신을 안 해가지고..

 

M: 제가 볼 때 우리나라가 IT 강국이라 그러고... 지금도 그렇지 않나?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굉장히 네트워크, 인터넷이 잘 되어있잖아요. 그런 거에 영향이 있는 거 같아요. 아티슨 비츠도 그렇고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부분에 크게 관심사가 아니었던 거 같아요.

 

A: 그냥 뭐... 야한사진 보려고 그랬지 인터넷으로.

 

M: 그거 보는 것도 힘들었어.

 

A: 하나 뜨는데 30분 걸리고...

 

M: 그걸 기다렸어?

 

A: 걸어놓고 밥먹고 오면 되죠. (웃음)

 

 

 

 

 

Q. 블렉스 시절 크루였던 Under Blades Crew에 대한 얘기도 궁금해요. 당시 주석, 나찰, 메타가 한 팀으로 구성된 OutRhymez도 있었다고...

 

M: 검은소리 2번째 앨범에서 저희가 UBC라는 이름으로 Under Blades Crew라는 단체곡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약간 그때 검은소리 안에서도 R&B게시판, MC 게시판, DJ 게시판, B-Boy 게시판이 있었는데 MC 게시판 그쪽에서 만들어진 거죠. 국내 랩퍼들이 크루 형태로 해서 다양한 시도를 자꾸 해보자. 2집에서 두 번째 Under Blades Crew 이름으로 한 거.. 제목이 뭐였지? 블레이징인가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 노래하고 하나 더 하고 없어졌죠. OutRhymez는 제가 처음에 나찰이랑 같이 공연 시작했는데, 사실 저는 가리온 시작하기 전에 동호회에서 97년 이럴 때... 주석이가 19인가 20인가 고3, 막 이럴 때였거든요. 그런데 얘랑 제가 작업을 좀 많이 했어요. 가사도 같이 써보고 무대도 같이 올라가고 그랬거든요. 주석이는 나이에 비해서 똑똑하고 흡수하는 속도가 되게 빨랐었어요. 그리고 얘는 얘대로 되게 혼자만의 어떤 색깔이 강하게 가는 친구 같더라구요. 저는 오히려 팀으로서의 뭔가를 하고 싶었는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나찰 프리스타일 하는 거 보고 어떤 걸 느꼈냐면, 그때 동호회 랩 하던 사람들 아니면 MP 무대에 올라가서 랩 하던 사람들 중에서 제일 신선한 느낌을 받았었던 거죠. 많지도 않았지만 그중에서 나찰 톤이나 무대에서의 모습에서 '되게 신선하다' 그런 충격을 받았고. 바로 '아, 이 친구랑 하면 이 친구가 나에게 자극제가 되겠구나' 그런 생각. 다른 사람들이 큰 자극이 안 됐었어요. 그래서 (둘이 팀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얼마 안 됐는데 나찰과 주석이랑 되게 친했어요. 농구도 하고 친했는데 주석이가 저한테 갑자기 그 얘기를 하더라구요. 사실은 형이랑 같이 좀 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있었다. 계속 얘기를 하더라구요. 같이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떡하지' 하다가 나찰이랑 얘기한 다음에 그럼 3인조로 재편성하자.

 

이래서 주석이랑 나찰이랑 저랑 3인조로 편성이 되면서 OutRhymez로 만들었어요. 그때 OutRhymez란 팀 이름을 만든 것도... 사실 가리온이라는 팀이름을 만들 때도 저희는 식겁했거든요. 팀 이름을 어떻게 만들지 몰라가지고 식겁해서 나온 건데, 새로 또 이름 만들려니까 도대체 감이 안 잡히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되지' 이러고 있었는데 그때 동호회에서 뉴욕에서 왔던 여자회원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저희한테 이름을 만들어줬어요. OutRhymez가 뭐, Out이 약간 ‘beyond’ 의미같은? '라임을 뛰어넘는'.. 뭐 굉장한, 하여튼 그런 의미라 그래서 OutRhymez라고 이름을 지어줘서 그 이름을 받아가지고 했는데 저희가 보름만에 깨졌어요. 주석이가 곡을 쓰고 같이 라임도 적고 무대에 딱 올라갔는데 공연 한 번 딱 하고 그때 Muff(DJ Muff)도 막 붙어서한다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랬는데 딱 하고는 주석이가 저에게 간단명료하게 얘기했어요. 자기는 좋았는데 어쨌건 자기는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고 싶대요. 저는 바로 이해했죠.

 

 

 

 


Q. 그렇게 된 거였군요.

 

M: 그런데 그게 주석에 대한, 여기서는 절대 주석이에 대한 부정적인 그런 게 전혀 없고 주석이가 저희랑 같이 했다가 보름만에 깨지고 바로 홍대에서 나간 거에 대해서 100% 공감해요. 왜냐면 주석이란 인물 자체가 굉장히 자기 주도력이 강한 친구고, 그 어린 나이에도.. 저는 되게 인정하는 게 되게 똑똑해요. 애가 똑똑하고 뭔가 판단을 하는 면에 있어서 굉장히 효율적인 길을 잘 찾는 친구라고 봐요. 그러니까 그 나이 때, 사실 다 형인데 '팀합시다' 해놓고는 '형, 저 이런 생각이요. 죄송해요.' 이렇게 딱 나오는게 쉽지가 않거든요. 그렇잖아요. 보통 그렇게 하면 형들이 '이 새끼봐', '뭔 개소리여' 이러고 막 (웃음) 그런데 그런 것에 있어서도 분명한 자기 입장이라는 게 뚜렷한 친구라서, 그리고 그 후에도 제가 막 '쟤 이상해' 이런 적도 전혀 없고 저는 '오케이 좋아, 우리는 그냥 가리온으로 할게. 너도 너대로 잘 준비해.' 이렇게 잘 얘기를 했죠.

 

 

 

 


Q. 그렇다면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물론 '힙합음악'이 굉장히 생소했고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국내에서 이렇게 빨리 발전한 음악 장르도 드문 것 같은데.

 

N: 지금의 씬에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가 그건데, 그땐 서로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소통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오히려 소위 뭐... 쉽게 얘기해서 발전이 더 빠르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드는데 소통이라는 게 저희들끼리 뿐만이 아니라 리스너들하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말 그대로 정말 모를 때니까 힙합이 뭘까- 가장 힘든 질문부터 파고 들어갔을 때부터니까 훨씬 더 그랬던 거 같아요.

 

 

 

 

 


Q. 97년 말에 MP가 만들어졌는데 합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정확한 시기는 날짜는 기억 안 나는데...

 

M: 그거는 확실해요. 맨 처음 시작할 때 가리온이 먼저 나오긴 했어도 동시에 누가 섰었냐면 갱톨릭이라는 팀이 있어요. 갱톨릭, 가리온, 그리고 다크루예요.

 

A: 그게 그때 저랑 세븐(of 다크루)형과 원래 기획사에 있었어요. 97년도였는데 월드뮤직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준비를 했는데 4인조로.. 그때 당시에 H.O.T가 판을 치고 있었으니까. 4인조로 하자고 하면서 2명을 불러줬었어요. 누구인지는 얘기 안 할게요. 다 아는 사람이예요. 지금 아주 유명해졌지... 

 

M: 그냥 얘기해. 상관없지 않나?

 

A: 실명을 얘기하긴 좀 그렇고.. 그 두 명이 있었고, 우리 둘은 랩하고 저는 영어랩, 세븐 형은 한국랩.. 이런 거였는데.

 

M: 큰일 날 뻔했다. (전원웃음) 정말 큰일 날 뻔했어.

 

A: 거기에서는 작곡가를 붙여주니까 근데 가요 작곡가니까 아무리 내가 랩하고 들려줘도 안 먹히잖아. 회사에서도 그런 거 만들면 안 된다고 하니까 그러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때려치고 나와서 우리끼리 어떻게 해보자 이러고 있는데 그때 서브라는 잡지가 있었어요. 언더그라운드 인디문화 잡지 서브. 거기에 마스터플랜에 대한 티저가 하나 나왔었어요 어떤 인터뷰가. 그래가지고 한 번 보러 가보자, 힙합 공연을 한다고 하니까. 그래서 그때 아마 11월인가 그랬어. 갱톨릭이랑 가리온을 그때 보고서 놀러갔는데 또 프리스타일 하라고 막 올라오라고 난리쳐가지고 형이.

 

M: 야, 뭘 난리를 쳐.

 

A: 형 난리쳤어요! 관중도 얼마 없는데 그거 그때 보고서 '너 처음 본다 올라와' 이랬잖아 (전원웃음) 그래가지고 아무튼 공연 끝나고 종현 형이랑 한수 형이랑 얘기를 하면서 '무대에 서고 싶다' 그랬더니 그러면 자작곡 2개정도 준비해서 공개오디션 있으니까 그때 보러오라고 해서 제가 직접 아예 곡을 완성을 한 건 그때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처음 만들고 준비해가지고 오디션 보고 오디션 본 다음에 바로 다다음주인가 바로 공연했었어요.

 

M: 공식적으로는 다크루가 ‘클럽 MP 공개 오디션 1호‘예요. 왜냐면 가리온은 원래 같이 하다가 시작했고 갱톨릭은 원래 활동하던 팀을 데려왔고.

 

A: 갱톨릭은 원래 강아지 문화예술 사장님이랑.. 그리고 또 어떻게 다른 형이랑 친구고 그래서 갱톨릭은 뭐 자연스럽게.

 

M: 갱톨릭은 같이 있었던 거니까요. 그래서 공개오디션 1호로는 다크루가 최초였죠. 그 다음에 사이드비(Side-B), 돕보이즈(Dope Boyz) 막 그런 식으로.

 

 

 

 

 

 

Q. 그러면 아티슨 비츠님은 그때 월드뮤직에서 계속했으면 그쪽으로 잘 됐을 수도 있었겠어요.

 

A: 그런데 우리 담당 매니저랑 이사님이 있었는데 그분들은 서로 따로 해요. 사장 그분들도 그렇게 갈라서서. '아, 그럼 난 연습생들 내가 데리고 나가겠다' 그러셨는데 우린 그렇게 하려고 있었던 거 아니니까 그냥 나와버렸죠.

 

 

 

 

 

Q. 그렇군요. 그리고 MP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메타님의 프리스타일 타임이었어요. 공연도 멋졌지만 그 프리스타일 시간 구경만 해도 제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요즘 공연에서도 간혹 하고 계시지만 정기적, 체계적으로 하지 않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부활시켜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그리고 당시 프리스타일 타임을 회상해보자면?

 

M: 그런데 뭐... 프리스타일에 대해서는 지금 현재시점에서 국내힙합 씬에서 프리스타일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제일 두드러진 쪽은 당연히 ‘프리스타일 타운‘이죠. 술제이(Sool J)랑, 그 누구였지 울티마? 울티마가 하고 있는 '프리스타일 타운'이고 여기에 셔니슬로우랑 가리온이랑 디제이 스킵(DJ SKIP)이랑 해서 저희도 기본적으로 서포트 하는 입장이구요. 그래서 매년 열리고 있는 '프리스타일 데이'에서 저희가 심사 및 공연으로 참여를 하고 있구요. 근데 예전에 그런 건 있었어요. MP 무대에서 항상 공연 끝난 다음에 프리스타일 오픈마이크를 했던 이유가, 지금도 저는 그 생각 크게 변화가 없는 게, 정말 무대에서의 MC라는 건 어떤 상황에서든 즉흥적으로 리듬 위에다가 자기가 뱉고 싶은, 어떤 메세지건 표현이건 감정이건 즉흥적으로 랩으로. 자기 도구잖아요. 악기잖아요. 뱉을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랩에 대한 기본적인 제 태도예요. 그래서 지금도 가리온은 어떤 무대에 서건 틈만 있으면 막 프리스타일 뱉거든요. 나찰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그런데 그 당시에 그게 저희한테 큰 재미였어요. 심지어 어느 정도냐면 나찰이 아파서 중간에 수술하고 이런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런 시기에는 가리온으로서 저희가 올라갈 수가 없잖아요. 재유(JU)랑 제가 둘이서 듀오로 올라갈 수도 없구요. 그럴 때도 전 매주 갔어요. 가서 애들 공연하는 거 다 보고 제가 올라가서 프리스타일 무대를 시작해요. 그게 의무감에 했었던 것도 아니고 너무 재미있고 즐겁고 제가 뭔가 새로운 걸 찾는 기분이었어요. 뭔가 탐험하듯이.

 

A: 아 형, 전 도망다녔어요. (웃음)

 

N: 메타 형이 얘기하신 것처럼, 저런 생각을 그때 당시에 MP 있었던 모든 랩퍼들이 다 인정을 해서, 집에서 연습을 해서라도 프리스타일 무대를 올라가려고 했었어요.

 

M: 그때 기본적으로 무대를 주도했던 제일 큰 축은 저랑 엠씨 성천, 이렇게 둘인데... 성천이는 뭐 어우, 성천이도 이제 결혼을 하고 딸 키우고 있는데 얘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그때 당시 느낌들을 다시 좀 터뜨려 낼 수 있으면 저는 개인적으로 되게 좋을 거 같아요. 어쨌건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런 프리스타일에 대해서는 제가 큰 의미나 작은 의미, 이런 것보다 저한테는 그게 기본적인 것이었고 그게 잘 유지되길 바라는데 지금 시점에서 '프리스타일 타운'이 그걸 문화적으로 어떤 하나의 형태적인 어떤 것들을 만들어내가는 노력들을 저는 굉장히 높게 평가해요. 높게 평가하는데 그 자체만으로 프리스타일에 대한 어떤 것들... 뭐랄까요. '다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해도 좋을 거 같아요. 그 얘기는 뭐냐면 되게 민감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프리스타일 타운'이 뭐 '박서(Boxer)'라던가 또 그 전에 뭐였죠. '마이크 스웨거(Mic Swagger)'라던가 '프리스타일 데이' 라던가 이런 것들을 하는 거에 대해서.. 저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기본적으로 서포터이고 지지를 하는 입장이고 박수를 쳐주지만, 그게 또 너무 하나의 '형식화' 되는 거에 대해서는 조금 견제적인 입장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MC들이 꼭 '박서'에서나 아니면 '마이크 스웨거' 같은 형태만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프리스타일 랩 자체가 특별히 뭐 굉장히 디테일한 차이가 있고 그런 건 당연히 아니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보다는 조금 더 자율적으로, 큰 형태로서 보여줬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라는 거죠. '박서'같은 경우에도 제가 다 보는 건 아니지만 재미있는 프로라고 생각해요. 왜 그런 얘기를 제가 하냐면 되게 나이가 어리거나 이 문화 자체에 대해서 이해도가 좀 떨어지는 분들한테는 그게 전부로 비춰질 수도 있거든요.

 

 

 

 

 

Q. 그런 측면도 항상 고려를 해야겠어요. 그러면 이건 좀 유치한 질문인데 요즘에는 프리스타일 누가 제일 잘하는 것 같으세요? 아무래도 메타 형님이 1위? (웃음)

 

M: 아니요. 저는 당연히 1위가 아니죠. (웃음) 저는 프리스타일 애호가이자 프리스타일 부추기는데 1위고. '야, 해봐 좀' (웃음) 이런 거. 그리고 1위라는 게 프리스타일이 1위라는 의미는 정말 허무한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리스타일 MC인 성천이 같은 경우도 아무리 걔가 뭐 어떤 무대에서건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굉장히 해학적으로 잘 푸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떨 때는 완전 말릴 때도 있거든요. 민망할 정도로 구리다던가 그러면, 그 사람은 갑자기 넘버원에서 저 지옥으로 떨어져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측면에서 프리스타일은 말 그대로 즉흥적이고 그 찰나의 예술이니까, 그 찰나에서 인식되면 끝이라고 봐요. 그걸 구태여 놓고 기록을 해서.. 그래서 제가 아까 '마이크 스웨거'라든가 '박서' 얘기를 한 이유가 약간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측면이에요. 그게 기록화되고 남겨지면 사람들에게는... 물론 그걸 좋아하고 사랑하는 힙합 입장에서는 약간 컬렉터(collector) 마인드로 조금은 좋아할 순 있을지 몰라도, 만약 그 사람이 그 순간에 뭔가 핀트가 나가면.. 왜냐면 굉장히 예민한 감정상태잖아요. 집중을 해야하는.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졌을 때에는 굉장히 높은 퀄리티가 갑자기 확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러면 이 사람은 터무니없는 평가를 받아요. 그때 참여했던 친구가 나찰의 제자인데 쉽게 말해서 '이미 이 친구는 챔피언이야' 지들끼리 '이 형은 이길 수가 없어' 이랬는데 떨어졌어요.

 

N: 사실 그 친구가 연습량이 어마어마해요. 매일 랩을 달고 사는 애인데도 그 한순간에... 뭐에 꺾였냐면 말장난으로 '너 아바타같이 생겼다'에 뻑이 간 거예요.

 

M: 절대 놀리는 게 아니라, 왜 이 얘기를 하냐면 누구든 그런 치명적인 게 있는데 그 치명타에 대해서 누구든지 거기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가 없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게 프리스타일의 전부로 인식이 되어버리고 그 순간 그 친구가 나락으로 떨어져서, 얘는 ‘아바타에 무너졌고, 끝이야’ 이러고 그러면 그간 그 친구가 쌓아온 거라던가.. 그 친구가 앞으로 쌓아 나가야 될 것들에 대한 게 너무 터무니없이 무너지니까요. 약간 그런 측면에서 프리스타일 자체에 대해서 순위매김. 그러니까 배틀은 배틀인 거구요. 그거랑 예외적으로 프리스타일 자체를 놓고 뭐 우리나라 최고의 프리스타일 MC는 누굴까, 그리고 누가 최고이고 누가 졌으니까 그 밑에 있고 그런 식의 이런 그죠. 상으로서의 수직적인 관계는 좀 반대예요

 

 

 

 

 

Q. 한 순간의 실수 같은 걸로 평가되면 안되니까..

 

M: 저는 프리스타일 랩 자체가 가장 그 찰나의 빛났던 순간의 기억으로서만 간직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나찰이랑도 계속 가리온 무대 할 때마다 틈만 있으면 프리스타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이 순간 이 공간에 함께 있던 사람들하고만 남을 수 있는 걸로 하고 싶은 거지, 그게 뭐 기록화되고 하나의 스킬로서 보여지고 자꾸 뭔가.. 앨범이건 어떤 녹음되는 그런 걸로 남겨지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별로 좋다고 생각 안 해요.

 

 

 

 

 

Q. 얘기가 나온 김에 성천님 랩은 사실 그냥 들어도 알아듣기 좀 힘들잖아요, 그 뜻을. (웃음) 특히나 프리스타일은 더 못 알아 듣잖아요. 그렇긴 한데, 성천님이 물 뿌려가면서 조명 하나 받으면서 프리스타일 막 뱉어내는데 그때 너무 신기했어요.

 

M: 성천이가 되게 좋았던 게 걔는 그런 식이었어요. 뭔가 시니컬한 자세가 있으면서도 따뜻한 친구라서, 저는 MP에서 그 몇 년 간 공연하면서 관객들을 다 앉히고 자기도 앉아서 랩하는 모습을 처음 봤어요. 무슨 그 있잖아.. 모닥불 피워놓고 옹기종기 앉아서 앉으세요. 손들지 말라고 그루브 타지 말라고 사람들이 당황하지, 힙합클럽왔는데 앉으라니, 다 앉았어. 다들 앉고 지도 앉더라고. 나도 당황했어, '뭐하는 짓이야' 이러면서 하면서 프리스타일 하더라고. (웃음)

 

N: 성천 형에 대해서 재미있는 기억이 있는데 작업실 있는데 전날 술을 엄청 먹고 아침 12시엔가 일어났는데 녹음실 부스에 들어가더니 5시간 동안 혼자서 랩을 해요. 무슨 랩을 하나 봤는데 프리스타일을 하는 거예요. 이제 비기(Biggie) 앨범 틀어놓고서는 벌스 나올 때마다 같이 계속 뱉고 커먼(Common) 틀어놓고 계속.. 그런 걸 보고서는 '와, 진짜 랩을 사랑하는구나' (전원웃음) 연습도 아니고 뭐도 아니고 랩이라는 표현법을 되게 좋아했던 친구였던 걸로 기억이 많이 나네요.

 

M: 둘이서 농담삼아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373에 있을 때 걔랑 성천이랑 거기서 둘이서 막 랩하다가 그때 재유도 잠깐 들려서 수동 드럼 치고 손으로 드러밍 하고 이럴 때 같이 막 하다가.. 나중에 지치니까 둘이서 아무거나 틀어놓고 프리스타일 하다가.. 나중에 그게 배틀이 된 거야. 그러다 발라드 틀어놓고 하고, 가요에다가.. 나중엔 TV에 나오는 애국가 틀어놓고.. 애국가 끝나니까 화면 조정 지지지직 거리는데 거기다가도 랩을 하는 거야. 뭐야? 말도 안 되는 거야. (전원웃음)

 

 

 

 

 

 

Q. 생각나는 에피소드 같은 거 혹시 또 있으신가요? 아니면 당시 MP생활이 그립다라거나.

 

M: 그게 아까 나찰 얘기랑 통하는 게 뭐냐면요. 나찰 얘기도 그렇고 아티산 비츠도 잘 알겠지만 그때는 서로 어떻게든 얘기를 많이 했어요. 한 클럽이 있고 그 클럽 안에서, 대기실에서 있건 끝나고 술 한 잔 하건.. 그리고 서로가 막 '저 새끼 싫어, 아 때리고 싶어' 이런 게 있건 없건 어쨌든 그 안에서 버무려져요. 서로가 어쩔 수 없잖아요. ‘힙합퍼스 파라다이스‘ 할 때는 몇 십 팀이 되더라도 하루에 무대에 다 올라왔어요. 나중에는 팀이 너무 많아서 이틀에 걸쳐서 했는데 그때는 하루에 클럽에서 랩하는 모든 팀들이 올라가게 되고.. 그럴 땐 다 모여있단 말이에요. 끝나고나서 뒤풀이에도 엄청 많이 모여있고 그러다보니까 그 안에서 의견의 차이가 있건 어찌됐건, 서로가 계속 같이 굴러가면서 하나의 방향성이 생기는 게 있더라구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되게 좋았었어요. 나찰 얘기처럼, 그 안에서 서로 대화를 많이 하게 된다는 그런 측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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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크루는 어떠셨어요? MP 생활..

 

A: 제가 MP에서 첫 공연하고 종현이 형한테 페이를 받았는데 그때 만원을 받았어요. 형이랑 나랑 5천원씩 나눠 가지면서 이게 뭐하는 짓일까.. (웃음) 아예 주지를 말지, 이건 뭐 차비 하고.. 그때 저희 둘 다 일산에 살았거든요. 좌석버스 타면 왔다갔다 해도 4천원 빠지니까. 우리 둘이 2천원 가지고 뭐하지? 밥도 애매하고 분식집 가야되고.. 그런 식으로 시작했어요. 방금 형들이 얘기했듯이 거기 만의 환경이 있었으니까, 우리끼리 얘기하는 장이 됐으니까. 그리고 전 그런 게 더 있었던 거 같아요. 힙합 문화 자체가 점점 커지는 걸 우리는 직접 보면서 느껴왔으니까 더 신기했던 거 같아요. 갈수록 관객들이 많아지고 팬들이 더 생기고 나중되니까 팬들이 막 선물도 주고.. 나중에는 우리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플랜카드도 들고 오더라구요. 그렇게 커지는 걸 보면서.. 그리고 나중에는 기획사들이나 이런 데에서도 우리를 신경쓰고 있다는 걸 느꼈죠. 그때 신기했고.. 왜냐면 아까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같이 데뷔하려던 친구를 알고 지냈으니까, 그 친구랑 당시만해도 서로 연락하고 있었거든요. 그 친구가 한참 잘나갈 때였는데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아, 그 분도 다 안다고. 형이 누군지 다 안다고.' 그런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다 신경쓴다고 그래가지고.. '그런데 뭐 어쩌라고' (웃음) 거기 갈 것도 아니고.

 

 

 

 

 

 

Q. 인터뷰하는 지금 이 순간이 사실 저에게는 되게 신기한 자리예요. 저도 MP 자주 갔었으니까. 그때는 앨범같은 걸 안 내시는 분들이 많았으니까, 당연히 가사집 같은 것도 없는데.. 매주 가서 보면서 외우고 따라하게 되잖아요. 저도 그중에 한 명이었는데 제가 봐도 너무 신기했어요. 따라하는 거. 예를들어 다크루의 세븐님 랩 같은 건 가사를 알아도 따라하는 게 힘든데..

 

M: 다크루 암기랩, 그때 카피가 암기랩이었어.

 

 

 

 

 

Q. 공연 보러가면 그 암기랩을 막 사람들이 다 따라하니까. 저도 굉장히 신기해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따라하고 있더라구요.

 

M: 그때 이종현 씨가 이상한데 꽂혀가지고 포스터에다 직접 써서 걸어놨지. 무슨 타이틀을 붙여놓고 무조건 다크루는 암기랩이야. (웃음) '암기랩의 달인'. 그리고 나는 무당이었어 '작두탄다, 메타' 이런 거 (웃음)

 

A: 그거 말고 세븐 형 같은 경우에는 무슨 '3음절의 창시자' 막 이러고 (웃음)

 

M: 문창과 출신이잖아. 글 쓰는 사람이고.

 

 

 

 

 

 

Q. MP의 마지막 공연인 <Still-A-Live> 공연 때 가리온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M: 간단하게 정리를 드리면 그 공연 당시 저희는 MP 소속은 아니었구요. MP 자체가 기획사도 아니었어요. MP는 말 그대로 그냥 공연장이었고 이종현 씨를 비롯해서 다른 사장단이 있었던 거죠. 같이 투자해서 운영하셨던 분들.. 3~4명 됐었던 거 같은데.. 아까 아티슨 비츠 얘기처럼, 제가 쭉 봐왔잖아요. 관객들의 눈도 점점 커지고 정말 이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사이즈가 커지니까, MP는 클럽에서 기획사로 방향을 바꾸게 되죠. 그런데 저는 그게 나쁘다 이런 게 아니라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클럽을 버릴 줄은 몰랐어요. 그러니까, 공연장을 접어버렸어요. 공연장을 버리고 그냥 기획사로 빠져버리니까 저는 그게 되게 안타까웠죠. 그리고 그때 어찌됐든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저희들도 스스로 MP에 기획사로서 가는 데 대한 생각들을 절충적으로 제휴할 수 있게 생각하게 되는 과정에서 저희는 ‘아니다, 이건 아닌 거 같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죠. 종현 씨라든가, 한수 형님한테도 좀 죄송스런 마음이 있는 게.. 왜냐면 ‘MP 계약 1호’로 저희를 불렀단 말이에요. 그런데 저희가 앞에 계약서 놓고, 면전에다 대놓고, 저희가 안 하겠다고. '계약 안 한다' 이런 거예요. 서로 충격이 있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MP라는 걸 같이 안하는 입장이 되니까 <Still-A-Live> 때도 못 올라갔던 거고.. 저희가 의도적으로 그 이후의 앨범에 대해서 회피를 하고 이랬다기보다는 그 이후의 MP의 행보와 가리온의 어떤 방향과는 좀 차이가 생겨버린 거죠.

 

 

 

 

 

 

Q. 그렇게 MP가 문을 닫은 후, 각자 어땠는지 궁금해요. 기분이나 분위기, 그 외에 외부적으로 그에 따른 방황이나 비즈니스상의 제약이라든가..

 

M: 당연히 안타깝죠. 안타깝고 그리고 닫자마자 바로 아마 정글로 바꿨을 거예요. 여자 분이 한 분 있었는데 그 분이 인수하시고 정글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하게 운영을 했어요. 어차피 같은 장소니까. 그래서 저희도 그때 공연도 하고 그랬어요. 도와주는 의미에서 공연도 하고 그랬는데 그러고나서 어떻게 됐냐면은 MP가 없어질 때 즈음해서, 슬러거는 좀 더 갔죠. 좀 더 가고 갑자기 그러다 홍대의 파티문화라는 게 되게 막 이슈가 됐어요. 그러면서 소위 말하는 '부비부비' 문화라는 게 홍대힙합의 무슨 대표처럼 비춰지는 게 저희는 굉장히 박탈감이 컸죠. 왜냐면 사실 이렇게 표현하면 오글거리지만 그래도 신촌에 있었던 마스터플랜에서 수많은 팀들이 매주.. 많이 할 때는 금요일 주중에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금토일을 기본적으로 돌리고 그랬는데.. 그렇게 음악적인 어떤 걸로 힙합이라는 문화가, 자리가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사실 굉장히 뭐랄까요. 그런 서브적인 것도 되게 많았어요. 비보이들과 연결해서 비보이가 공연도 많이 했었어요. 예를 들어서 디제이 렉스는 기본적으로 비보이 출신이기 때문에 그때 비보이팀들 데리고 와서 비보이 기술 보여주는 것들도 했었고.. 그런 걸 작게 했었구요. 그러니까 비보이 뿐만 아니라 태거(Tagger)들이랑도 콜라보를 했었고.

 

말 그대로 힙합의 대표적인 요소들이 MP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해서 많이 모여들게 되고, 그게 외부적으로도 어떤 작업적인 형태로도 나가고 서로간의 콜라보라던지, 여러 모양새들이 만들어졌거든요. 그런데 이제 문을 닫고 이렇게 된 시점에서 갑자기 구심점이 없어지니까 그리고 판이 묘하게 그런 파티문화랑 동시에 ‘부비부비’가 딱 치고 들어오면서 그게 엄청 앞으로 나와버려요. 그때 케이블에서 했던 모 프로그램에서는 홍대가면 '무조건 여자 엉덩이에 부비부비 할 수 있구나' 이렇게 인식되는 모습들이 보여져 버리니까, 저희도 무대가 없어졌어요. 그때 기억나는 게 저희 스스로가 돈 들여서 어디 공연 대관하지 않는 이상, 공연 무대가 아예 없어가지고.. 뭐 지금 있는 GEEK 이라던가 몇몇 이런 클럽에서, 그냥 춤추는 무대인데 새벽타임에 잠깐 가리온 올라가서 공연하고 이런 식이었어요. 근데 예전이랑 다르죠. 예전에는 가리온 공연하면 다 남자들이 앞에서 막 그루브를 타요. 그런데 파티문화가 대두되면서 여자 분들이 앞에 있긴 한데.. 그게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춤추는 거예요. 되게 막 묘했어요. 그러면서 '홍대에서 힙합' 이러면 다 힙합 클럽만 얘기하고 클럽 얘기할 때 보면 다 그런 춤추는 그런 부비부비, 그런 것들이 되게 저는 참 안타까워요. 지금까지도 영향이 있잖아요.

 

 

 

 

 


Q.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는 부분이죠.. 그리고 폐사오, 갱톨릭 같은 추억의 이름들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잖아요. 저도 궁금한데 이분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M: 폐사오는요. 그중에 폐사오가 원래 3인조였지. 그리고 커빈이 피쳐링하고 이랬는데 어쨌건 폐사오 3인조 중에 한 명인 Malcom이라는 아이디를 썼던, 그때 Blex 회원이었는데요. 그 친구는 결혼하고 지금 보드 의류업체 사업하고 있어요.

 

 

 

 

 

Q. 음악은 안 하시고요?

 

M: 네. 안 하고요. 그 다음에 또 한 명은 동환이라고.. 뮤직비디오 감독이면서 그 쪽 계통에 일하면서 지금 일본에 있구요. 그리고 또 한 명이었던 저기.. 걔..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안나. 걔잖아 근수, 안근수, 김규리? 영화배우?

 

A: 아! 매니저, 맞다 맞다. 아주 옛날에.

 

M: 걔는 군대 제대해서는 음악 안하고 그때는.. 이게 여기서도 약간 재미있는 포인트가요, 폐사오 멤버들도 다 음악에 대한 그게 엄청 컸어요. 저는 Malcom이라는 친구 때문에, 그 친구가 곡을 많이 써서 저한테 되게 많은 영향을 줬어요. 그런데 그 친구도 음악과는 전혀 무관하게.. 결혼하고는 그냥 보드 브랜드 옷, 티셔츠 파는 사업하고 있구요. 그리고 안근수라는 친구도 곡 정말 많이 만들고 제가 알기로는 그때 동호회에서 장비에 대해서 제일 잘아는 친구였어요. 그리고 음악적으로 뭔가 장비적인 문제가 생기면 걔가 거의 기술자였어요. 다 해결해주고 그래서 이 친구도 제대한 다음에 당연히 음악을 하리라 생각했고 제대한 다음에 폐사오 앨범도 냈어요. Brave Man 이런 거 내고 했는데..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친구들 다 공통의 생각이 뭐였냐면 '굶어죽는다, 이거 하다간 굶어죽는다' 이렇게 된 거죠. 그런 급박한 마음에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할 정도로.. 저희는 모르겠어요. 반은 약간 좀 뭔가 상황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반은 되게 '아, 이렇게 끝나기는 쉽다' 는 게 되게 컸던 거 같아요. 그리고 갱톨릭은 미국에 가 있고 한 명은 지금 기획사 뮤지컬 음악감독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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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쉽네요. 당시 정말 즐겨들었었는데.. 자, 이번에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관해서. 대한민국 시리즈에도 MP 출신 뮤지션들이 일부 참여하였지만 어찌보면 [대한민국] 시리즈와 [MP HIPHOP] 시리즈가 충돌하기도 했어요. 가리온의 경우 [MP HIPHOP 2000]에만 이름을 보이고 그 이후로는 MP 컴필에도 없는, 각자 참여한 컴필이 굉장히 다른 편인데 그 사정을 들어볼 수 있는지.

 

M: 컴필레이션 같은 경우.. [2000 대한민국]은요. 처음에 [2000 대한민국] 한 다음에 [초] 앨범이 나와요 . 그런데 [2000 대한민국]을 할 때는 그 종현 씨가 그때 BMG였지? BMG가 천리안이랑 했었는데 그러면서 약간 언더그라운드 랩퍼들.. 원래 [1999]가 재미를 봤단 말이예요. [1999 대한민국]이 재미를 보고나서는 그런 아주 철저하게 어떤 비즈니스적인 걸로 판이 만들어졌는데 저희는 당연히 모르죠. 그리고 저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되게 태도적으로 굉장히 딱딱할 때란 말이에요. 저는 되게 부정적이었어요. '왜 이런 걸 해야하나' 되게 부정적이었거든요. 그랬는데 어쨌든 종현 씨가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참여를 하고 저도 단체곡을.. 그때 <비상>이라는 곡에 참여를 했었구요. 원래는 그때 우리가 한 곡을 하기로 했었나? 그랬는데 그때 나찰이 아파서 참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다크루는 그때 <파수꾼>으로 참여하고 했었는데.

 

A: 죽어도 타이틀 ‘<비상>에는 안 한다‘ 그랬죠. 그랬더니 (메타) 형이 와가지고 하고.

 

M: 저도 입 삐쭉 튀어나와서 랩 했어요. 입 빼고 '내가 왜' (웃음) 그 이후에 컴필레이션 시리즈에 참여를 안 한다던가, 이런 여러 관계들이.. 물론 뭐 부분적으로는 굉장히 태도적인 어떤, '저 쪽은 아니야' 이런 것도 있긴 있었지만 가리온은 적어도 우리 앨범을 내야된다는 게, 그게 너무 컸어요. 원래는 98년에 처음 가리온 1집 얘기를 했단 말이에요. 그랬는데 그게 [2000 대한민국] 넘어서 여기까지.. 컴필이건 뭐건 가리온 앨범이 아닌 다른 걸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희팀 내부적으로 굉장히 호의적이지가 않았어요. 쉽게 말하면 '왜 이걸 해야하지?', '이런 거 저런 거 언제해' 이런 거죠.

 

 

 

 

 

Q. 이런 컴필레이션 앨범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상업적인 이유로 컴필 시리즈가 중단된 걸로 알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국내힙합 발전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잖아요. 조금 더 순수한 의도로 모여서, 이왕이면 여기 계신 세 분이 주도해서 하나쯤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한데.

 

M: 지금 안 그래도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 참여하는 게 하나.. 수면 밑에서 준비되고 있는 게 있긴 한데. [절충] 시리즈를 다시 제작을 할 단계에 있거든요. 그게 제가 볼 때는 말씀하셨던 것처럼 '컴필레이션 붐'이 한 때 좀 있었다가 지금은 거의 없잖아요. 최근에는 브라운브레스(Brownbreath)에서 프라이머리(Primary)가 주축이 돼서 컴필레이션이 하나 나온다고 하던데.. 어쨌든 그런 컴필레이션이 이렇게 인식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앨범 냈어도 단체곡이라는 게.. 쓸데없이 뭉치는 모양새가 되는, 진짜 그러고 싶지 않아요. 모여가지고 '나 여기서 랩했소' 이런 걸로만 있는 건 좀 안타까운 거 같아요. 그런 게 좀 그래서 [절충] 같은 경우는 지금 디제이 스킵(DJ Skip)이 조합과 어떤 균형을 잡고 있는데 재미있는 컴필레이션이 될 것 같아요

 

 

 

 


Q. 지금 하시는 얘기가 [절충]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인 거죠? 라인업은 정해졌나요?

 

M: 라인업은 아직 공개가 안 됐어요. 근데 아마 지금하는 인터뷰들과 다 연관이 있을 것 같고.. 조만간 준비가 되는대로 라인업 공개가 되고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컴필레이션 자체가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괜히 의미없이 뭉치는 그런 거보다는, 정말 좀 주제면 주제, 아니면 앨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목표면 목표, 이런 것들이 좀 뚜렷한 형태로 가야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요.

 

N: 옛날처럼은 안 되죠. 요즘 리스너들 귀가 고급귀라서 앨범이 가지고 있는 어떤 준비가 정확하게, 사전 준비가 되지 않으면 낼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 메타 형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진짜 의미없는 단체곡은 저도 정말 싫어하거든요. '참여해줘' 그래가지고 띡 8마디, 12마디, 16마디, 딱 써놓고선 누가 참여했는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랩을 했는지도 모르고 나오는 결과물은 대부분 다 뻔하거든요. '들어봐', '아 그래? 그냥 뭐 열심히들 했네' 좋은 단체곡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컴필레이션 앨범도 그런 성향인 거 같아서요.

 

M: 어찌보면 씬이나 뮤지션들의 이면같은 걸 수도 있거든요. 뭐냐면은 지금 나찰 얘기처럼 쓸데없이, 그리고 누가 참여했는지도 모르고 대체 뭐에 대한 건지도 모르는 그런 곡들이 나온다라는 거 자체가 사실은 되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속에 어떤 생각을 해야되는 부분인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 얘기는 아까 얘기했다시피 90년대에 그런 힙합이 제일 재미있었고 에너지가 있었다- 라는 건 그 당시에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본인에 대한, 자기가 자기 인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랩퍼가 본인 스스로에 대한 인지. 좀 쉽게 풀어서 얘기하면 어떤 작법이 있단 말예요. 그게 나쁜 의미의 작법이 아니라 정말 그 있잖아요.. 본인으로 하여금 자기를 자꾸 푸시하는 힘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랬어요. 지금도 여전히 전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제가 어디가서 '아, 난 이제 한 10년 랩했으니까 이제 대접받고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그리고 어디서 '나 10년 짜리거든?' 이런 것도 없구요. 그런데 그런 게 어느 순간 보면 되게.. 씬에 지금 막 나오는 친구들한테서도 그런 게 많이 좀 희석된 느낌이 들어요.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뭔가 좀 인위적이고 작위적이고 되게 막 억지로 뭔가 컨셉화시켜서 만들면 더 구리겠죠. 그런데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가 우리가 뭘 먹느냐에 따라서 우리 몸상태가 바뀌는 것처럼 양질의 음악들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는 어떤 태도라고 보는데 그런 게 부족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나오는, 어떤 결과물들이나 뮤지션의 태도나 그런 것들이 너무 너무 옅어요. 흐리고 맛이 그렇게 진하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보세요, 나오는 랩퍼들의 기술은 어차피 계속 증명되고 그게 확립이 되고 적립이 됨으로써 남아있잖아요. 그리고 랩퍼 누구나 거기에 대한 것들은 가질 수 있단 말이죠. 그런데 그거보다 더 어려운 것들이 그런 거예요. 오글거리는 표현이지만 정신적인 측면이라던가 아니면 메세지라든가 비전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없으니까, 다 고만고만.. 다 들을만한 랩퍼들인데 그냥 거기서 그치게 된 거죠. 그런데 그게 아까 나찰 이야기처럼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진짜 굉장히 만연한.. 어떤 분위기가 없지 않아 있다고 느껴져요. 그러다보면 이 사람들은 굉장히 열정적으로 일을 한단 말이예요. 뮤지션을 직업으로 일을 하지만 그 안에 더 뭐랄까, 핵심적인 부분에서 굉장히 태만한 상태가 되는 거죠.

 

 

 

 

 

 

Q. 그렇다면 앞으로 나올 [절충] 시리즈는 이런 것들을 충분히 고려해서 나오겠네요.

 

M: 그런 점도 당연히 감안한 거죠. 아까 디제이 스킵 얘기를 왜 했냐면, 이건 앨범의 컨셉과 직결되어 있는 부분이라서 지금 자세히 말하긴 힘들지만, 기존의 뮤지션들이 단체곡이든 뭐든.. 어떤 콜라보 하는 형태에 있어서 굉장히 다른 조합들을 스킵이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어요.

 

 

 

 

 

Q. 조만간 베일을 벗을 [절충], 상당히 기대되네요. 예전에 다크루 같은 경우, 가라사대 프로덕션을 할 때만 해도.. 당시 그런 레이블이나 크루 자체의 수도 적었을 뿐더러 그 이전에 비슷한 모델도 없었고 사실상 불모지에 개척한 셈인데, 가라사대를 만들게 된 계기와 하고자 하는 음악 성향이나 노선은 어떤 것이었는지도 궁금해요.

 

A: 힙합 인디 레이블로는 저희가 처음인 걸로 알고 있어요. 저희가 그거를 원래 98년도? 99년도인가 이미 만들었었어요. 원래 가라사대라는 거를 프로덕션이라는 느낌으로. 그래서 저희 1집에도 보면 가라사대 프로덕션이라고 이미 들어가있어요. 그래봤자 저랑 세븐 형, 이렇게 둘이었죠. 그냥 저희들끼리 외국 따라한 거죠. 보면 왜 '프리모 for Walmart 프로덕션' 이런 거 써 있으니까, 뭔가 있어보인다, 우리도 하나 만들자. 이런 거죠. 처음에 그렇게 만들었는데 그런 다음 계속 MP랑도 아무래도 뭔가 계속 안 맞는 것들도 있고 하다보니까 MP와 재계약 때가 됐는데 계약 조건이 서로 얘기하는 게 너무 달라서 안되겠다 싶어서 그때 나오면서 '그냥 우리끼리 가자' 그렇게 해서 재계약 하지 않고 저랑 형이랑 둘이서 시작한 거죠. 그래서 나온 게 <Coma> 싱글이었고 그걸로 회사 같은 걸 처음 한 거예요. 그때 등록하고 <Coma> 내는데.. 되게 힘들었죠. 또 그때 세븐 형이 4학년이여서 졸업 이런 거 때문에 작업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었어요.

그러다가 <Coma>를 계기로 해서 아예 그때 친했던 동생들 중에 트레스패스(Trespass)라고, 이삭(Issac)이. 걔를 1호로 계약을 했었어요. 어차피 항상 잘 따라다니던 동생이었고 랩도 곧 잘하는 동생이니까, 그때 얘를 여기서 키워보자 그러면서. 그런데 저희 회사에 들어오면 그냥 소속 아티스트가 되는 게 아니라 직원이 되는 거였거든요. 다 해야돼요. 회사 일을 분담해야하니까.. 걔한테 다른 일들도 맡기고. 그러다가 이삭이가 TKO도 데리고 와서.. 학교 후배였거든요. 그리고 근수, 킵루츠(Keeproots)를 만나가지고 그때 킵루츠 계약을 했는데 트래스패스는 아직 좀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서 킵루츠를 먼저 시작한 거예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거든요. 그렇게해서 킵루츠 꺼를 한 달 반 만에 제작했어요. 저랑 근수랑 둘이서 붙어가지고.. 그때 제 방에 같이 살았거든요. 그래서 아예 그냥 한 달 조금 넘게, 그냥 매일같이 작업만 했어요. 작업해서 한 달 반 만에 녹음, 믹싱, 마스터링까지 끝내가지고 디자인까지 다해서 바로 냈었죠. 그때 그걸 내면서 좀 탄력을 받기 시작한 거죠 회사로서. 우리 회사 자체가 그거였거든요. '진짜 힙합 문화를 좀 더 활발하게 만들어보자' 그러니까 MP는 클럽 문화만 되게 신경을 썼던 곳이고, 힙합 전체적인 문화가 어떤 힙합 마인드나 운동을 만들자는 거였어요. ‘Control Movement’라고 해가지고 만들자는 게 원래 가라사대라는 회사의 주된 목표였어요.

 

 

 

 


Q. 그게 Grassroots Movement 캠페인이었군요.

 

A: 그렇죠. 그래서 원래 했던 게 오디션 같은 것도 공개 오디션, 오디션이라고 하기엔 웃기지만 이런 문화를 주기적으로 해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아티스트 발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 해가지고 했던 게 'ONE MIC'인가.. 이름도 기억이 안 나네.. 아무튼 공개 오디션 거기서 뽑았던 게 이센스(E-Sens)였고 그리고 그 외에도 사람들 소개 통해서.. 프라이머리 데리고 오면서 프라이머리가 집시의 탬버린을 또 데리고 온 거고 그런 식이였죠. 원래 걔네들이 고등학교 동창인가 그런데, 그렇게 연결이 돼서 집시의 탬버린 데리고 오고 그러다보니까 그때 피타입(P-Type) 같은 경우에도 원래 그 전에 다른데 있다가 계약 빠그러진 다음에 같이 하게 됐어요. 걔가 행동대장이 됐었는데.. 회사의 잡일 다 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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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런 스토리가 있었군요. 그럼 가라사대는 현재는 사라진 거죠? 문을 닫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어요?

 

A: 제일 큰 이유는 결국 저랑 세븐 형이랑 서로 운영방침에 대해서 너무 달랐죠. 형은 회사를 규모있게 키우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정작 손은 부족한데, 일손은 부족한데 형은 너무 크게 가려고.. 메이저 이렇게 가려고 하니까, 저는 그냥 우리는 우선 애들 것부터 먼저 하자 이런 식으로.. 서로 의견이 맞질 않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래서 저는 먼저 빠져나왔죠.

 


 

 

 

 

Q. 그러면 다크루 세븐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A: 글쎄 뭐.. 제가 마지막으로 얘기했던 건 작년인데 그런 얘기는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고 (웃음) 그냥 지금 세븐 형은 하와이에서 사업을 해요. 음악과 상관없는 사업 하면서, 원래 워낙 자기 얘기를 떠벌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구체적인 얘기는 저한테도 잘 안 했구요. 어차피 저도 이메일로 연락한 거니까 깊이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Q. 근황이 궁금했는데.. 그렇군요. 그러면 아티슨 비츠님이 프로듀서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요?

 

A: 그때 제 1집 때부터 이미 그때부터 랩 안 했어요. (웃음)

 

M: 아우 인터뷰 시원해!

 

A: 1집을 준비하면서 제가 이미 만들어놨던 랩만 녹음을 한 거예요. 그때 작업하면서 새로 쓴 게 하나도 없어요. 랩을 그만둔 이유 중에 제일 큰 이유는 우선 저랑 세븐 형이랑 내용이 너무 안 맞았어요. 그러니까 주제를 같이 잡았는데 형은 형만의 산을 가고 있고

 

M: 나 이런 인터뷰 처음 봐. (웃음)

 

A: 저는 언덕에서 놀고 있는데 형은 갑자기 다른 곳에서 다른 얘기하고 있고.. 제가 그때 한국말이 많이 서툴러가지고 가사의 내용적인 거.. 주제, 모티브는 알겠는데 그걸 풀어내는데 있어서 서로 너무 따로 진행이 되더라구요. 음악적 배경도 다르고 형 같은 경우는 책이나 이런 거 되게 즐겨읽고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거든요. 예술이나 이런 쪽에 있어서 저랑, 그러니까 문화적 레벨도 너무 다르고 표현법 이런 것도 그렇고.. '아, 괜히 내가 곡을 다 망칠 수 있겠다' 싶더라구요. 딴소리 하다가 서로 안 맞는 소리하면..
그래서 이제 나 안 할래. 이렇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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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MP 10주년’ 때 공연하신 걸로 아는데 근데 그 자리에서 다시 랩을 할 거라고 얘기한 적이 있으세요?

 

A: 아니요. 공개적으로 그런 얘기는 안 했는데.

 

 

 

 

 

Q. 그럼 다시 랩 해 볼 생각은 없으신 거예요?

 

A: 그때 막 민호가 하자고 꼬셔가지고.. 할까 말까 (웃음) 그러다.. 괜히 섣불리 했다가는 안 될 것 같고, 저 혼자서 재미로 하는 거면 몰라도.. 근데 가사를 안 써본 지가 하도 오래 됐고.. 마지막 했던 게 사이드-비 2집이었나? 그것도 한 2년 만에 쓴 가사였는데 (웃음)

 

 

 

 

 

 

Q. 다크루는 "가난한 노래에 씨를 뿌리리", "조잡한 상술에 지배되지 않는 절대 배합 금기악제"와 같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의미있는 멋진 문장들도 많이 남겼고, 비트도 지금 들어도 지금 들어도 정말 좋은 비트들을 많이 남겼어요. 예전같은, 시쳇말로 "먹통 스타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은 없으신지.

 

A: 솔직히 말해서 먹통은 금방 만들 수 있어요. 할 수는 있는데 굳이 할 이유는 없고 먹통만 하게 되면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그리고 MC가 누구냐가 되게 중요하잖아요. 물론 먹통도 화려하게 만들 순 있어요. 근데 그 표현법이 먹통이 되지 않거든요, 먹통은 단순함과 강렬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그런 거 마음만 먹으면 하루라도 몇 개씩 만들 순 있어요. 근데 곡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재미가 좀 없어진 것도 있어요. 좀 더 새로운 것도 해보고 싶고. 새로운 사운드를 더 연구해보고 싶고 그런 것도 되게 많기 때문에.

 

 

 

 

 

Q. 그러면 가리온이나 아티슨 비츠 님은 레이블 또는 크루를 조직해서 활동할 생각해 본 적은 없으세요? 레이블은 조금 부담되더라도 크루 형태는..

 

A: 하고는 싶은데 나서길 싫어하는 거죠 다. 귀찮아서 (웃음)

 

M: 앞에 이름을 걸고 그런 게 없어서 그렇지, 다 식구였기 때문에. 최근에 몇 년 전부터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특히 셔니슬로우, 나찰이랑 같이 많이 얘기했던 건데 씬에 어떤 구심점이 좀 필요하다. 근데 그 구심점이라는 게 굉장히 뭐.. 정치적인 성향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눠본 적 있어요. 그 얘기가 뭐냐면, 절대 홍대 같은 그런 게 아니라 이쪽 판에서 오래 있었던 형들이, 형들이건 누나건 언니건, 좀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게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저는 근데 이런 걸 다른 데서 역할을 해줄 줄 알았거든요. 힙합플레야라든가, 리드머라든가, 힙합관련 커뮤니티 쪽에서 충분히.. 그리고 힙합 쪽에서도 전문적인 평론을 하시는 분들이랑 거기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충분히 조절을 할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아시잖아요. 어디가 어떤 식인지.. 그런 역할들을 못하게 됨으로써 나온 얘기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아닌 건 아닌 거 같다' 라는 얘기를 우리 스스로가 편하게 풀 수 있는 어떤 채널이 있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그게 뭐 저희가 막 무슨 거창하게 인터뷰를 통해서 '최근 힙합계에 만연한 디스에 대한 저희의 의견입니다. 제 나이 41세' (전원웃음) 이러면 얼마나 웃겨요. 그래서 생각한 게 뭐냐면, 사탄이 했던 얘기처럼.. 우리가 막 들어내놓고 이런 걸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저희끼리는 항상 있으니까. 대놓고 그런 걸.. 세력화되는 움직임을 보이기는 싫지만, 음악적인 게 당연히 기본인 거구요. 그걸 바탕으로 좀 더 얘기를 했으면 하는 것과.. 저희가 생각하는 어떤 하나의 새로운 방향 같은 거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인물과 얘기하려고 했던 게 하나 있어요. 구체적인 게 나오면 말씀드리겠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어서 아직 말씀드리긴 좀 그렇고.. 질문하셨던 거에 대답을 하자면 (그렇게 하고 싶은 건) 당연히 있어요. 아까 얘기했던 [절충] 같은 시리즈를 통해서 하나의 크루? 아니면 음악적인 패밀리 같은 거.. 이름도 한 번 만들어보고, 좀 더 정면으로 드러내고 싶은 어떤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얘기를 하고 있어요.

 

 

 

 

 

Q. 당연히 다 이렇게 친하시고 그런 건 알지만,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런 게 밖으로 드러나는 게 되게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에서 질문드려봤어요.

 

M: 그런 부분도 지금 진행이 되고 있어요.  

 

A: 이름을 정해야 하는데 아무도 생각이 없어서.

 

M: 나왔어 내가 하나. 도형이도 되게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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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리고 가리온에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 중 하나. 재유 님이 탈퇴한 정확한 이유가 궁금해요. 그리고 당시 재유 님과의 작업물은 정말 대단했는데 앞으로 재결합, 또는 같이 작업할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M: 탈퇴라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재유가 가리온으로서 몇 년 간 활동을 하다가 헤어지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서로간의 방향성의 차이죠. 그게 방향성의 차이라고 모호하게 얘기하는 거는.. 사실상 모호하진 않거든요.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재유가 지금 음악적인 활동을 하고 하지 않고에 대한 걸 떠나서 그 친구가 그때 당시 같이 활동을 하면서 저랑 나찰이랑 힙합에서 음악적인 어떤.. 뭐랄까요, 음악이 만들어지고 그 음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어떤 것들과 그리고 태도적인 것들에서 그 음악이 만들어진 이후에 뮤지션으로서 어떤.. 여러 부분들에 대해서, 저는 지금도 영향을 크게 받은 게 여전히 남아있어요. 그 정도로 그 친구가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가리온 두 MC에게 미친 영향이 막대하다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구요. 근데 뭐, 여러 상황들..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 가지 다 포함해서 생각해 봤을 때 그 시점에서는 계속 같이 하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헤어지게 된 거였고 저희는 다시 가리온으로 돌아오게 된 거죠. 근데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저도 알아요. 근데 그게 마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에게 낱낱이 밝혀라라는 식의 어떤 거라면.. 저흰 거기에 대해서 얘기할 것도 특별히 없거니와 이유도 없는 것 같아요.

 

N: 저희가 팀을 하는데 있어서 '우린 죽을 때까지 같이 가야 돼' 이러고 팀을 한 것도 아니었고 일반적으로 보통 팀내에서 있는.. 나쁘게 얘기하면 불화인 거고, 그게 막 특별하게 어떤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되게 조그만 부분부터해서 음악적인 견해 차이, 나중에는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 이런 거에서 안 맞다 보니까.. 어, 그러면 더 이상은 같이 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결국은 그래서 합의하에 헤어지자. 이렇게 된 거죠.

 


 

 

 

 

Q. 다른 팀들보다 이런 얘기가 더 많이 나오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세 분의 조합이 엄청났기 때문에, 가리온하고 너무 잘 맞았고.. 그럼 다시 같이 해볼 생각은 없는 건가요?

 

N: 지금으로서는 계획은 없어요.

 

M: 지금으로서는 다시 같이 활동한다 이런 계획은 없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힙합이라는 음악 자체, 힙합을 음악으로 놓고 봤을 때 어떤 식의 공정과정을 거쳐서 시작점과 정착점이라는 게 있다면.. 그때 재유와 작업했던 방식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여러 측면에서 뮤지션들에게 어떤 힘든 부분도 있겠지만 전 그걸 통해서 굉장히 많은 것들을 얻었기 때문에. 근데 그 이후에 가리온 2인조로, 나찰이랑 저랑 둘이 하는 입장에서 저희가 가야하는 방향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거기에 매진을 해서 저희가 생각하는 어떤 지점까지 가는 것만 하더라도.. 계속 달려야죠. 그래서 지금 다시 재유와 만나서 당시 재유와의 체계로 다시 돌리는, 그런 계획은 없어요.

 

 

  

 

 

Q. 2007년에 했던 뮤지컬 '랩퍼스 파라다이스', 인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뮤지컬 배우로서 '가리온'은 스스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N: 배우로서는 평가가 불가능하죠. (웃음) 근데 그거는 확실해요.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진짜. 배우 역할이라는 그것에서.. 랩퍼로서, MC로서, 가져야할 어떠한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고.. 사실 페이도 못 받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런 게 그다지 불평이 안 생길정도로.. 하는 동안에 많은 피드백들부터 해서,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면 이것도 굉장히 재미있는 작업이구나- 그랬죠. 메타 형이랑도 항상 얘기하는 건데 우리가 한 번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Q. 오, 마침 다음 질문이 그거였어요. 음악과 관련된 뮤지컬을 만들어보거나 다시 출연할 생각이 있는지.

 

M: 저는 그러고 싶은데, 뭐 저 혼자 그러고 싶다고 그게 되나요. (전원웃음) 그리고 제가 나찰이랑 한 번 해보고 뮤지컬판을 안다, 모른다 이렇게 말할 입장은 전혀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얘기하긴 힘들지만, 근데 거기서 하는 동안 느낀 게.. 힙합 씬은 정말 너무 순수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함부로 뭘 못하겠어요. 그냥 마음은 되게 있어요. 제가 하자센터에 있을 때도 랩퍼들이 대사를 뮤지컬 형식으로 랩을 하면서 장면들을 연출하는 것도 실험적으로 해보기도 했는데.. 계속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은 가지고 있는데 한국 뮤지컬판에 들어가서 그런 것들에 대한 걸 끄집어 내보자- 이런 생각은 아직 없어요.

 

N: 근데 뮤지컬판이 아니더라도 일반 공연 무대에서라도 그 방식을 도입해보고 싶긴 해요. 왜냐면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한 번이라도 그런 무대를 경험해 보면- 가장 중요한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는 자기 방법론을 찾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아예 초보 MC도 괜찮고 씬에서 활동하는 MC도 괜찮고 같이 한 번 해보지 않을래 라고..

 

M: 나찰이 얘기해버렸네요. (웃음) 사실 이게 저희가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N: 어? 그 얘기 하는 게 아닌데?

 

M: 그 얘기잖아 지금. (웃음) 근데 이런 것들을 연출적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되게 좋을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되게 어색하게 되고 이상하게 될 수 있다는 걸 저희가 많이 경험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공연적인 측면에 도입을 시키겠다하는.. 사실은 저희가 조금 앞날을 보면서 그림을 그린 거였는데 지금 너무 일찍 얘기한 거 같아요. (웃음)

 

 

 

 

 

Q. 지금 말씀하시는 그런 부분들.. 준비만 잘 된다면 굉장히 좋을 것 같아요.

 

M: 근데 그게 되게 어려운 게, 정말 그런 요소들이 느껴질 정도로 하려면 굉장히 많은 부분들이 투자가 돼야해요. 무대뿐만 아니라 스탭들도 많이 필요하고.. 근데 단순히 흉내내기식으로 하면 효과도 못보고 그냥 끝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건 생각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정말 길게 보면서 단계적으로 해나가야하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Q. 이번에 나온 ‘하우 투 랩’은 어떤 책인가요? 감수는 어떻게 맡게 되신 거예요?

 

M: 아 그건 제가 예전에 가리온 1집 할 때 저희가 알렉스뮤직이었는데요. 그때 저희 매니져 일을 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거의 7~8년만에 연락이 오셔서.. 그 분 선배분이 출판사에서 일하시는데 이런 책을 번역해서 발간할 예정인데 이게 완전 랩에 관련된 서적이다, 그래서 실제 씬에서 활동하는 랩퍼 중에서 감수를 누구한테 맡기면 좋겠냐- 했는데 그분이 저랑 인연이 있으니까 저한테 연락을 해준 거예요. 근데 저도 그때까지는 이런 책이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2009년인가 나온 건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책이 되게 좋았어요. 물론 <제이지 스토리> 책도 좋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제이-지(Jay-Z)의 이야기잖아요. 근데 이 책은 말 그대로 어떻게 하면 랩하는 지가 다 써있어요. 랩퍼로서의 자세와.. ‘플로우 다이아그램’ 이런 것도 있고, 어떻게 라임을 만들고 라임을 쓸 때 어떻게 배치해야하고.. 저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되게 체계적으로, 구체적으로 랩을 어떻게 하는 지를 쓴 책은 처음 봤어요. 우리나라에서 보면 '랩 이렇게 하면 된다' 같은 온갖 인터넷 찌라시가 많잖아요. 근데 그런 걸 보면 대다수의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게 '그건 니 생각이지' 이런 게 많단 말이예요. 근데 이 책은, 쿨 쥐 랩(Kool G Rap)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 '그건 니 생각이지' 누가 그래요 (전원웃음) 그런 식으로 인터뷰를 100명 이상의.. 올드스쿨부터 지금까지 랩하고 있는 베스트 MC들이 그 내용을 진행해요. 꽤 재밌게 봤어요.

 

 

 

 

 

Q. 약간 학문적으로 다루는 그런?

 

M: 그렇지도 않아요. 인터뷰로 진행되기 때문에 어떤 구어적인 표현들도 굉장히 많고. 예를 들어서 이런 식의 플로우를 짠다라는 식의 약간은 가이드처럼 씌여진 문장들이 적어. 그런 거 있잖아. 플로우는 무엇인가, 플로우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가, 등에 대해서 '나는 말이지...' 뭐 이러면서 큐-팁(Q-Tip)이 얘기하는, '난 이런 식으로 플로우를 짜, 이렇게 해서 이렇게 가' 그런 식이예요.

 

 

 

* 이때 나찰 님은 개인용무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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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찰, 아티산비츠, 두 분은 ‘F&C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그리고 그곳의 분위기는 어떤지.

 

A: 계기는 디지(Deegie)죠. 디지가 아이디어 자체를 만든 사람이에요. F&C가 원래 그냥 실용음악 학원이었는데 디지가 거기서 어느 날 특강을 한 번 하고선 원장님이랑 얘기를 나누다가 힙합파트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디지가 아이디어를 얘기한 거예요. 그랬더니 ‘좀 더 구체적으로 짜와봐라‘ 그래서 저한테 그 아이디어를 저한테 가져와서 얘기를 하더라구요. 이런 거 해보려 하는데 어떠냐, 저를 포함해서 여러 형들에게도 상담을 했고. 그렇게 해서 얘가 구체화를 시킨 거죠. 어떤 식으로 할 건지.. 수업내용 같은 건 어차피 담당하는 선생 마음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개념자체를 만들어서.. 원장님이랑 어떻게 어떻게 진행하자, 그렇게 해서 시작한 거고.. 그때 시작했던 멤버가.. 키비(Kebee), 민호, 저, 그리고 디지 이렇게 맨 처음 시작했었어요. 그렇게 했는데 이제 금방금방 수강생들이 느니까 선생이 더 필요해지잖아요. 수요가 있으니 공급을 빨리빨리 해줘야 하니까. 그런 식으로 된 건데.. 근데 저희가 시작한 의도가 '애들 가르쳐서 돈이나 벌자' 이런 게 아니라, 그거보다는.. 물론 돈이라는 걸 없다고 배제할 순 없죠. 왜냐면 아무래도 저희 같은 뮤지션들은 고정수입이 없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조금이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는 거니까 보탬이 되고.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거보다는 더 큰 의도가.. ’발굴하자‘는 거였어요. 요즘 너무 신인들도 없는 거 같고 나오는 애들은 기본기도 없고. 막 배운 티가 나는 애들도 많이 있는 거 같아서.. 기반을 잡고서 좀 체계적으로 발굴을 해보자, 이런 거가 의도였거든요. 그리고 학원 출신의 몇몇 애들과 계약하고 준비하고 있는 애들도 있고.

 

 

 

 

 

Q. 지금 수강생들이 많나봐요. 강사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A: 지금 자료를 안 봐서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수강생들이 힙합 쪽으로 대략 130명 정도 될 거예요.

 

 

 

 

 


Q. 많은 분들이 질문하는 것 중 하나인데요. 일각에서는 랩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어요.

 

M: 저는 지금 더스쿨(The Skool)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저는 오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요. 이걸 배운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랩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랩을 코치, 그러니까 트레이너 같은 역할로 이해를 해라. 옆에서 당신이 랩하는 데 있어서, 내가 경험적으로 당신보다 조금 더.. 1년이건.. 하다못해 하루라도, 당신보다 조금 더 랩을 한 입장에서 뭔가 경험적으로 줄 수 있는 정보가 있다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 만약 이 사람이 점프를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하면 당신이 좀 더 멋있게 더 멀리 점프할 수 있게 옆에서 코칭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사람들이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건 '가르친다'는 것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선생질'이라고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여기에 대해서 어떤 고압적인 어떤 것과, 알잖아요, 가르침이라는 건 지식이든 정보든, 어떤 절대적인 걸.. 여튼 그런 태도적인 것 때문에 '뭐? 랩을 가르쳐?' 이렇게 이해를 하는 건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나찰이건 사탄이건, 대놓고 ‘이걸 따르라’ 이런 건 없거든요. 물론 절대적인 부분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말 그대로 트레이너로서 옆에서 도와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만약에 예를 들어서, 내가 랩을 하는 입장에서 좀 더 진지한 자세가 있다. 내가 나이가 어리건 반대로 나이가 많건 간에 진지한 자세로 랩을 하고 싶은데.. 막상 그런 정보를 얻으려고 인터넷 같은 데 들어가보니까 어떤 얘기인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 정보들이 많은 거 같고 막상 이해를 한다고 해도 스스로가 증명이 안되니까. 인터넷을 통해 접한 정보들로 내가 랩 가사를 쓰고 랩을 뱉어봤단 말이에요. ‘이게 과연 잘한 건가? 이거 증명 받게 솔컴에 전화해서 공연 잡으라고 해야겠구만.’ (웃음)

 

제 얘기는 뭐냐면 그 사람들 입장에서 답답하다는 거죠. 그럴 때 이런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있고 트레이너들이 있다면.. 저는 이거 합법적이고 (웃음)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지불을 하고 한 달이건 몇 달이건 그걸 통해서 자기의 방식을 도움받는.. 한 달이면 해보면 알 수 있잖아요. 한 달 동안 붙어서 '제발 제 것 좀 분석해주세요.'라고 해도 막 '어, 2만원 더 내셔야해요' 이러진 않을 거 아니에요. (웃음) 그러니까 그런 부분들은.. 거기에 대해서 오해를 하시고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거라든지, 좀 고깝게 생각하시는 것들.. 막상 실제로 프로그램 자체를 들여다 보시고 어떤 식으로 되는지 보시면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막말로 랩퍼들이 돈에 미쳐가지고 터무니없는 비용을 제시해서 돈 뜯어먹는 형식으로 하진 않아요. 물론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건데 자질이라는 측면에서 비난을 받거나 뭔가 의심을 받는 사람이 있을 순 있겠죠. 그건 소비자 입장에서 당연히 그런 얘기 할 수 있으니까. 근데 그게 아닌 그냥 그 자체로만 봤을 때, 저는 '랩 트레이닝'이라고 표현하거든요. 저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봐요.

 


 

 

 

 

Q. 그리고 공연장에 대한 얘기, 저의 얄팍한 생각으로는 '흑인음악 전문 공연장' 운영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큰 수익을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유지/활성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씬 내에서 다시 가동해보자 하는 의견은 없는지.

 

M: 제가 최근에 가리온 2집을 나온 다음에 몇몇 인터뷰에서 이 부분을 되게 강조를 했어요. 그러니까 인터뷰 말미건 중간에서건, 우리나라에 왜 더 이상 MP같은 공간이 없냐. 누가 그런 공연장을 오픈하면 가리온은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겠다... 이런 식으로 제가 몇몇 인터뷰에서 얘기를 했는데, 그 이후에 제가 혼자서 생각을 해보니까... ‘지금 시점에서는 약간은 좀 맞지 않는 생각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 얘기를 번복하는 말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생각에 대한 번복은 아니에요. 그런 클럽이 생기고 그런 공간들이 계속 유지가 되길 바라는 건 여전해요. 딱히 옛날 MP 같은 곳이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공연, 아마추어 랩퍼들이 데뷔할 수 있는 무대라든지..이런 것에 대한 생각은 당연히 가지고 있는데 다시 한 번 씬을 들여다 보니까 지금 이걸 누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이건 할 수 없는 시스템이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조금 노골적인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공연들이 있어요. 뭐냐면 공연장이 옛날 MP처럼 돌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브랜드가 있는 거죠. 공연 브랜드요. 이제는 그렇잖아요. 시대 자체가.. 브랜드가 있고 그 브랜드 자체로서 이미 신용도가 있는 거. 예를 들어 A라는 공연브랜드가 있고 그 브랜드는 매달 한 번씩 공연을 해요. 아니면 A라는 뮤지션이 있고 그 뮤지션이 매달 한 번씩 공연을 한단 말이예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면 그 공연을 통해서 기본적인 수익모델이 잡혀 있을 거고요.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거기에 당연히 집중을 할 거고 그러면 그게 구태여 괜한 군더더기를 붙일 필요가 없는, 굉장히 효율적인 방식으로 가게 된단 말이죠. 이게 지금의 한국 힙합 씬에서의 공연을 통한 수익창출이라는 측면을 봤을 때 기본 시스템인 것 같아요. 그게 뭐 브랜드건, 뭐 뮤지션이건, 크루의 방식이건.

 

그게 기본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제가 말씀드렸던.. 어떤 클럽이 갑자기 생겨서 거기서 언더그라운드에 데뷔하고 싶어하는 아마추어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또 어느 정도 수준까지 못올랐지만 열심히하고 성실히 하는 뮤지션들이 계속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고.. 그러니까 표현을 좀 격하게 하면은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의 공연 방식에서는 (MP 같은 공연장을 만드는 건) 불필요하거나 효율적이지 못한 거에 대한 설거지를 하는 거나 다름없지 않나.. 무슨 말인지 이해가시죠. 그런 식의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 식이라면 결국 이건 취지라든가 이런 건 되게 좋지만 실제로 행해질 때는 운영상에 있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붓지 않을까 하는 (웃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차라리 그런 거면 아주 다른 방식으로.. 지금의 시스템과 같이 갈 수 있는 형태로 뭔가를 만들어버리는 게 차라리 낫겠구나.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던 어떤 클럽이 MP처럼 나오는 거에 대해서는, 어떻게보면 번복하는 건지 몰라도,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좀 현실성이 떨어지는 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Q. 어떤 말씀인지 이해가 갑니다.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 무슨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앞에서 힘들게 닦아놓은 길을 후대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편하게 걷게 되잖아요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이 몰라주거나 간과할 때의 아쉬움이나 섭섭함도 있을 거 같아요.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 같고..

 

M: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아까도 말했듯이 1세대, 2세대.. 내지는 최근에 1세대 콘서트 준비하고 있고.. 그런 거 하는 거 되게 좋게 봐요. 취랩이 나름대로 또 고심을 하고 이런 어려운 자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당연히 긍정적으로 보고 저도 당연히 도와주는 입장인데. 근데 저는 두 가지 입장 다 조금씩 개인적인 불만은 있어요. 첫 번째 입장은 뭐냐면 이렇게 힘들게 해왔다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약간은 저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오글거림이 있어요. 저희도 물론 힘든 경험이 있었죠. 근데 지나갔단 말이에요. 지나갔고 거기에 대해서 저희가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 보상받길 바라는 그런 심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 자체가 우리에게 상처를 안기고 지금 시점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트라우마가 되고.. 모르겠어요. 정말 그런 분들도 있겠죠. 초기에 했던 저나 나찰을 비롯해서 그때 하던 음악 하던 친구들 중에서 뭔가 상처를 받았거나 했던 사람들도 있겠죠. '아 지난 시간 돌이켜보니 난 너무 속상해. 근데 난 왜 사람들에게 아무런 피드백을 못 받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봐요. 근데 그냥 그런 구체적인 경우를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놓고 봤을 때, 마치 저희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유물처럼.. 내지는 '이렇게 해오셨던 거에 대해서.. 얼마나 힘드셨어요' 이런 얘기가 되게 낯설어요. 왜냐면 저희는 여전히 MC고 여전히 진행형이고 저희가 해온 걸 돌이켜보면서 '난 이만큼 걸어왔으니까 이제 이쯤에서는 나도 뭐..' 이런 거 없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면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대한 억지스러운 리스펙을 뽑아내려고 하는 태도들도 저는 별로 안 좋아해요. 인터뷰하는 입장에서나 평론하는 입장에서 그런 표현을 쓰시잖아요. 힙합뮤지션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라는 등의. 물론 감사하죠. 감사한데.. 제가 힙합엘이 인터뷰를 통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거예요. 감사한 건 감사하지만 그게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더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저는 1세대, 2세대 구분 짓는 거 싫어요.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우리를 MC로 힙합아티스트로 얘기하는 게 좋지, '어후, 허리 안 아프세요 1세대님' (웃음)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그런 게 있단 말이에요.

 

 

 

 

 

Q. 그러면 ‘1세대’ 이런 식으로 불리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겠어요.

 

M: 네 저는 그런 거 싫어요. 어디 공연장에서도 얘기한 적 있는데.. 힙합계 큰형님, 힙합계 전설, 힙합계 조상.. 이러다가 시조새도 들어봤어요. 힙합계 시조새라고 하더라구요. (웃음) 제가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저 인간이 나오기 전 세대로 보내고 있는지.. 그래서 그냥 십수 년을 했다는 자체, 그 팩트만 놓고 보면 그렇게 말씀하실 수는 있어요. 오래하셨다. 그동안 고생 많았죠. 이 정도로 끝났으면 좋겠어요. 저희에 대해서 음악적인 평가는.. 뭐 당연히 칼을 들고 평가해도 상관없고 후라이팬으로 후려친 자세로 평을 해도 상관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칼에 꽂힐 랩을 했고 칼에 꽂힐 구린 음악을 하고 있으면 칼을 꽂아야죠. 그리고 저희가 터무니없는 걸로 거기에 대한 미친 리스펙을 요구하는 그런 구린, 진짜 꼰대가 됐어 당신이- 이렇게 손가락질을 해야한다고 봐요. 근데 그게 아니기 때문에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거거든요. 저희는 힙합아티스트로서 진행형이고 단순히 묻히기 싫어서.. 이런 게 아니라 여전하니까. 여전해요 저희는. 10년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fuck up 됐어 그런 거 없어요. 물론 그동안 반복적으로 해오다보니까 좀 귀찮은 것도 있고 아니면 어떤 때는 그런 걸 너무 잘 알아버려서 그거는 그렇게 하는 게 맞아. 이렇게 얘기하는 모습은 가지고 있죠. 그건 경험이 준 거니까. 근데 그걸 놓고 마치 무슨 세파에 쪄들어서.. 기껏해봐야 10년밖에 안되는데 그걸 놓고 뭐 무슨 ‘구세대 아저씨 랩퍼들’ 이렇게 보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음악으로 봐야죠.

 

 

 

 

 

 

Q. 근데 이번에 하는 '1세대 콘서트'라는 이름은..

 

M: 처음에 취랩이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형님이 좀 허락을 해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뭘 허락을 해? 했더니만 1세대 콘서트라고 하길래.. 안 그래도 자꾸 뭐 시조새까지 나오는 마당에, 근데 취지가 되게 좋았어요. 어떤 의도냐면 아까 말씀드렸던 그런 구린, 꼰대 마인드로 ‘우리가 처음 너희 길 다 터줬단 말야, 인간들아 우리 한 번 봐봐’ 이런 게 아니라 ‘당신들은 잊고 있었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었어요. 누구도 있었고, 그러니까 한 번 보세요’ 이런 태도였어요. 그건 좀 다르잖아요. 한 번 보시라, 잊지 말아줘 라는 의도라고 봤고 앞으로 취랩이 앞으로 어떤 식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되게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되게 긍정적으로 봤어요. 그래서 저는 누가 나한테 허락을 받고 안 받고는 벌써 넌센스다, 이건 말이 안되고. 당연히 공연 기획하는 입장에서 할 수 있으면 하고 나는 인간적인 관계건, 아니면 음악적인 동료로서로 당연히 도와줄 수 있는 거니까 그런 측면에서 편하게 하라고. 그 친구가 진행되는 대로 계속 연락을 줘요.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1세대, 이런 세대 구분 짓는 건 평론하시는 분들이나 아니면 음악을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저를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죠. '아, 메타는 1.2 버전이지' (웃음) 이런 식으로 불러도 상관없어요. 근데 적어도 그 주체가 되는 입장에서는, 내지는 울타리 안에서 음악을 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거기에 대한 인식들을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Q. 그럼 그 콘서트에 여기 계신 분들 다 출연하시겠어요?

 

A: 저는 없어요. (웃음) 취지는 좋긴 하지만 ‘MP 10주년’ 때는 했던 이유가 있거든요. 왜냐면 거기는 저희가 음악을 시작했던 곳이니까. 그런 의미가 있으니까 참여했었던 건데.. 그때도 세븐 형 없이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민호를 불러다가.. 같이 했는데.. 제 파트가 원래 적거든요? 그래서 세븐 형이 없으면 되게 힘들어져요. 메들리로 하기도 좀 애매하고 그러다보니까 그때는 (세븐 부분을) 영상으로 때웠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세븐 형 죽였네‘ 이렇게 되고 (웃음)

 

M: 그렇지, 영상으로 나오니까 (웃음)

 

A: 그러니까 이제.. 한 번 하는 건 괜찮지만 더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아니면 차라리 제가 만든 뭐.. 아니면 저보고 민호랑 같이 한 번 해라 이러면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게 아니라 옛날 거를 지금 나와서 다시 할 수는 없다고 봐요.

 

 

 

 

 

Q. '이런 뮤지션은 정말 싫다' 같은 게 혹시 있나요? 예를 들어 힙합음악을 가장한 댄스음악을 하다든지, 한영혼용, 아니면 그외에 어떤 사생활 부분이라든지.

 

M: 전 그렇게 생각해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음악이라는 걸 놓고 얘기했을 때는 음악으로만 판단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요. 그다음에 사생활이라든가 아니면 태도적인 것들.. 그런 것들 다 포함해서 저는 그게, 어차피 음악 하는 사람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음악에서 다 드러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걸 놓고 판단할 때 다 그려지는 거지, 태도적인 측면에도 뭐.. '저는 리얼 힙합이고요, 먹통힙합이에요' 근데 들어보면 '도대체 어디가 리얼이야? 어디가?' 이런 식으로.. 다 드러날 거예요. 생각해보니까 이런 건 있는 거 같아요. 소위 말하는 리스너건 음악하는 사람이건 다 포함해서, 약간 정상인인척 하는 광인이 있어요. 반대로 광인인척 하는 정상인이 있어요. 그건 좀 되게 싫더라고요.

 

 

 

 

Q. 그게 누군가요? (웃음)

 

M: 그게 누구라는 얘기가 아니라 (전원웃음) '이건 미친 건데' 이런 게 있단 말이에요. 미친 건데 막 정상인들 속에 섞여서 스며들게 한다는 거죠. 그리고 표현이 좀 웃기지만 거기에 대한 안정장치가 없다보니까 나이를 떠나서 다 그런 걸 전부 받아들여지는 그런 게 좀 웃겨요. 인터넷이든 실생활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든 간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그 광인이라는 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아니에요. 근데 정말 좀.. 이건 아닌데 싶은, 정말 생각이 다르고.. 드물긴 해도 그런 경우가 있는 거 같아요.

 

 

 

 

 

Q. 어떻게보면 연관되는 얘기인데 국내힙합씬에서 디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마디씩 듣고 싶어요.

 

A: 우리나라는 디스를 해도 서로 어차피 다 아는 사이인데.. 참 애매해요. 그러니까 디스를 할 거면 나중에 만나면 한 대 때릴 생각으로 해야죠. 디스라는 건 사실상 싸운다는 건데, 이게 뭐 힙합이라고 해서 싸움이 안 나는 건 아니잖아요. 근데 보통 애들이 서로 디스해놓고 막상 얼굴 보면은 인사하고 가버리고 이러니까.. 그게 좀 재미가 없는 거 같아요. 만났을 때 뭔가 진짜 멱살잡고 싸우고 그래야지 (웃음) 그거 아니면 하지 말라고 하세요. 할 거면 싸울 생각으로 하라는 얘기죠. 만약 누가 저 디스해봐요. 저는 우선 곡으로 디스를 하겠지만 일단 골라내죠 그냥. (웃음)

 

M: 그렇지, 몇 다리만 걸쳐도 다 찾아낼 수 있으니까. 저는 디스에 대한 생각이 딱 하나예요. 할 자격이 있으면 하라는 거예요. 자격이라는 말이 좀 웃기지만 아니, 누가 들어도.. 얘가 얘를 디스했다고? 이런 경우가 있잖아요. 이런 경우가 많다는 거죠 제가 볼 때는. 미국에서 하는 것처럼 뭔가 게임의 모양새? 뭔가 경합을 벌이는 모양새가 되고 서로가 주고 받는 겨루기의 합들이.. 멋있으면 이건 정말 엄청난 이슈가 되잖아요. 싸움구경이라는 건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서건 제일 재밌는 쇼니까. 자, 보세요. 저희는 다 불리해요. 다 불리한 입장.. 여기 계신 분 성함이 뭐죠? (박준우요) 준우 씨가 갑자기 데뷔하면 메타부터 씹고 '꺼져, 41세 랩퍼 꺼져' (전원웃음) 제가 거기에 대고 '당신 왜? 나한테 왜 그래요?', 그러면 '너 41세잖아. 41살 처먹고 뭐하는 짓이야' 이러면 제가 거기다 대고 뭐라고 그래요. 제가 '당신 몇 살이야', '안 가르쳐주지' 이러면은 '씨발' 이러다 끝나는 거죠. (전원웃음) 그러니까 그런 식이기 때문에 저희는 항상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근데 대다수를 보면은 지금까지.. 물론 뭐 서로 주고 받는 재밌는 게임도 있었단 말이에요. 근데 그걸 제외하고 보면 정말 노이즈마케팅 같은 것도 있었고 대놓고 그냥, 내가 어차피 랩퍼로 갈 것도 아니지만 이목이나 한 번 끌어보자' 이런 사람들 있단 말이죠. 그러면 누가 불리할까요. 100% 음악 활동하는 사람들이 불리하죠. 왜 거기에 대응을 안하냐부터 시작해서 겁먹었냐, 남자도 아니다 같은. 그거 일일이 다 대응하다보면.. 싸움거는 놈들 대응하기 바쁘지, 그렇잖아요. 그거를 정말 무서워서 더러워서 피하고 자시고 할 어떤 내용도 아니잖아요. 자격도 안 되는 애들이 말 그대로 흙탕물 한 번 일으켜 보는, 저는 그런 거하고 똑같다고 생각해요. 싸이 미니홈피 투데이 숫자 올리려고 깝치는 거랑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요즘 국내 씬에서 어떤 친구들이 잘하고 있는 거 같아요? 실력으로 보나, 마인드로 보나 뭐.. 요즘 어떤 친구들이 괜찮은지.

 

A: (옆에 키비를 가르키면서) 키비요. 결코 우리가 솔컴사무실에서 인터뷰한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전원웃음) 키비랑 민호.

 

 

 

 

 

Q. 그럼 솔컴 빼고요 (웃음)

 

M: 솔컴 빼고라잖아. 솔컴은 기본적으로 잘한다치고.

 

A: 제가 솔컴빠여가지고요. (전원웃음)

 

M: 아까 말씀드린 거랑 똑같아요. 랩의 기술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는, 지금은 저나 여기 있는 사람들이 시작할 때보다는 되게 참고할 수 있는 레퍼런스들이 되게 많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랩에 애정을 가지고 시작하는 친구들은 좋아하는 랩퍼들 따라하고 하다보면 금방 그 느낌들을 알게 되잖아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트레이닝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또 각각의 재능에 따라서 시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랩을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기술적 측면만 놓고 봤을 때 그렇게 확 땡기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별로 못 느껴요. 근데 그래서라도 더.. 그런 걸로 가질 수 없는 부분들, 메시지 적인 측면이나 정신적인 측면이나, 그런 걸로 보면은.. 오히려 그런 데서 다른 느낌을 주는 친구들이 더 끌리는 거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은 잘 모르겠고 저는 아날로그소년 좋았었어요. 아날로그소년이 썼던 그런 내용들 좋아했었고 키비나 민호가 쓰는 것도 좋아했었고요. 그다음에 제리케이(Jerry.K)도 갈수록 자기 주관이나 이런 게 더 뚜렷해지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지켜보고 있고..

 

 

 

 

 

Q. 이 씬에 대한 비전이나 전망, 지금 씬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 물론 지금까지 하신 말씀들이 다 그런 얘기들이었지만 어떤 식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등.

 

M: 각자 포지션들이 있잖아요. 음악을 하는 주체로서의 포지션도 당연하고 MC면 MC, DJ이면 DJ. 프로듀서면 프로듀서. 그뿐만 아니라.. 이 안에 다 있는 포지션이요. 그러니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면 비즈니스, 책이건 평론을 하건.. 인터넷 상에 블로그를 하건.. 이 문화에 한 손가락이라도 걸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단 말이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이익이라는 거나 이해관계에 의한 본인의 네트워크 늘리기건.. 그런 거를 통한 개인의 보상심리건 뭐건 상관없는데, 그걸 다 아우르는 차원에서 한 번 더 애정을 보여줬으면 해요. 내가 단순히 어느 순간에는 힙합이라는 게 내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을지라도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는지와 지금 그게 현재 나한테 여전히 사랑스러운 건지, 아니면 그런 감정은 식어버렸고 그냥 일상과 하나의 반복되는 루팅이 돼버린 건지.. 이런 것들을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해요.

 

 

 

 

Q. 아티산 비츠님은요?

 

A: '아이씨, 좆같은 거 하지말고 그냥 좋은 거 해' 이러면 끝나는 건데 (전원웃음)

 

 

 

 

 

 

 

Q. 그럼 이번에는 음악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어요.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니.. (웃음) 가장 좋아하는 '외국' 뮤지션은 누군가요?

 

A: 근데 '가장'을 뽑기는 애매하니까.. 워낙 많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사람도 워낙 많으니까, 한 사람을 뽑기에는 좀..

 

 

 

 

 

Q. 아니면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됐던, 또는 평소에 즐겨듣는..

 

A: 그렇게 따지면 시작으로 따지면.. 아무래도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N.W.A., 제가 힙합을 처음 들었을 때가 그때니까 그렇게 시작을 해서.. 시대별로 우상이라는 게 달라지는 거 같아요. 음악을 더 깊게 알게 되고, 언더그라운드도 파고 메이저도 파고 이렇게 하다보면.. 그리고 또 프로듀서로 영역을 넓히면서 음악도 더 폭넓게 듣게 되니까.. 그러다보니까 한동안은 힙합을 안 들었어요. 70년대, 60년대 음악 위주로 빠지다 보니까 그런 음악 미친듯이 듣기도 하고. 그게 다 영향을 줬고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는데.. 한 사람 얘기하기도 애매하고 굳이 줄여도 열 몇 명이 돼버리니까.

 

 

 

 

 

Q. 그러면 프로듀싱하는데 영향을 많이 미쳤던 뮤지션이 있다면요?

 

A: 샘플링에 있어서 당연히 뭐.. 프리미어(DJ Premier)도 있었고 큐 팁도 있었고 제이딜라(J. Dilla)도 그렇고. 되게 많죠. 프로듀서로서 저를 빠지게 한 사람들이야 여러 명 있고. 퀘스트러브(?uestlove)도 그렇고. 패션 쪽으로 가게 되면 루츠를 빼놓을 수 없는 거고.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더 그랬어요. 90년대 초반에는 프리모가 절대적인 신이였기 때문에.. 특히 MP에서는 그냥 신이였어요. 프형, 프형 이렇게 부르고 했었으니까. (웃음) 얼마 전에 ATCQ(A Tribe Called Quest) 다큐멘터리 나온 거 그거 때문에 요즘 계속 ATCQ만 계속 돌리고 있어요.

 

 

 

 

 

Q. 메타 님은요? 다 얘기하면 너무 많을 테니까.. 요즘에 들은 걸로만.

 

M: 저는 다 영향 받았으니까요. 100% 다. 외국힙합 안 듣거나 싫어하는 것들 특별히 없었어요. 요즘은.. 작년 가을 쯤에 소개받고 되게 좋게 들었던 팀이 블루 칼라(Blue Collar) 언더그라운드 팀 거를 좋게 들었고요. 그다음에 민호가 소개해줘서 알게 된 타일러(Tyler, the Creator), 그 친구도 재밌었어요. 요즘에 좋게 들었던 건 그 정도인 거 같아요.

 

 

 

 

 

Q. 네, 더 얘기하면 끝도 없을 거 같고 (웃음)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외국에서도 언더그라운드 씬은 많이 죽어버린 상황이잖아요. 언젠가 다시 부흥할 거라고 믿지만 당분간은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M: 90년대에 소위 말하는 골든에라를 얘기할 때.. 우리가 음악들을 때는 90년대 초중반 음악이 올드스쿨이 아니라 제일 트렌디한 거 였는데 이제는 올드스쿨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는 그런 트렌드가 계속 바뀌고 그런 것에 대해서 당연히 저도 다 지켜보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게 누군가의 얘기처럼 '힙합은 죽었다'.. 물론 그때의 힙합은 죽었겠죠. 내 10대의 힙합, 나 14살 때 힙합, 26살 때 힙합은 지나갔으니까요. 근데 그런 게 지금 왜 지나갔고 왜 다시 안 보일까? 이런 거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그게 온 것들을 생각하고 그게 어디로 갈지를 생각하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요. 개인적인 생각인데 지나간 힙합들을 돌이켜보면서 지금은 왜 다 죽었고 보이지 않을까..에 대한, 질문이 그런 거에 대한 향수나 아쉬움에 대한 얘기인 거 같은데 저 역시 없진 않겠죠. 저 역시 그 시기를 같이 지나왔으니까요. 그치만 다 지나갔다는 거죠. 지금 이 시기도 다 지나가요. 지나간 것에 대해서 물어보면 저는 큰 의미를 안 두려고 해요. 오는 것들에 대해서 더 의미있게 바라보려고 하지. 그때 그 시기는 그 시기대로 빛나게 남아있는 거고 앞으로 올 것들에 대한 기대감이나 그것에 대한 대비? 대처, 이런 거에 더 관심이 있는 거 같아요. 다른 음악들의 어떤 색깔들이 개인의 어떤 걸로서 반영이 될 수도 있겠죠.

 

 

 

 

 

007.jpg

 

Q. 그렇다면 국내, 국외 통틀어서 꼭 들어봤으면 하는 앨범은 어떤 게 있을까요? 본인 앨범 추천하셔도 되고 (웃음)

 

M: 인터뷰에서 할 수 있는 당연한 질문인데, 요즘에는 인터넷에 자료가 워낙 많으니까 ‘힙합 뭐 들어야 해요’ 이러면 엄청 답변들 많잖아요. 저는 그런 측면에서, 힙합 뭐 아예 올드스쿨.. 사람들이 잘 안 듣는 거 찾아서 들어보면 어떨까 싶네요. 엄청 촌스럽겠지만 랩이 초기에 어떤 모양새였는지.. 대표적인 거 많잖아요.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걸로 치면 퓨리어스 파이브(Furious Five) 앨범 같은 것도 좋고, 그 전에... 한 장만 골라보라면 저는 음.. 왜 자꾸 슬릭 릭(Slick Rick)이 생각나지? 슬릭 릭 데뷔 앨범 좋은 거 같아요. [The Great Adventures of Slick Rick] 그 앨범 추천할게요.


A: 저는 최근에 ATCQ 다큐멘터리에 꽂혀가지고 그 중에서 하나 꼽으라고 하면은 [The Low End Theory
]

 

 

 

 

 

 

Q. 그게 최고로 흥했던 앨범.. 네, 어쨌든 추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외국 힙합씬에 가장 부러운 점이 있다면?

 

M: 저는 당연히 그 시장이 부럽죠. 나머진 별로 부러울 것 없는데.. 근데 그게 디스 얘기했던 것처럼 좋은 거는 받아드리고 나쁜 건.. 아까 난데없는 얘기지만 가라사대 얘기를 좀 하다가 반진담 반농담으로 나찰한테 칼자국 내자고 했거든요. (웃음) 이런 게 먹어준다고.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은 그런 측면의 것은 좀 안 맞다고 보거든요. 부러워할 필요도 없는 거 같고.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저 칼도 맞아보고 총도 맞아보고 여럿 죽여봤어요'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걸 드라마틱한 어떤 걸 받고 거기에 뭔가 동요되거나 감정적으로 동화될 수 있는 그런 민족이 아니니까, 그런 부분은 전혀 부러워할 게 없다고 봐요. 그리고 현재에서도 그게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부분은 아니지 않나요? 그런 측면은 그렇고.. 저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규모가 큰 게 제일 부러운 거 같아요. 사이즈가 크니까. 하나 더 얘기한다면.. 음악을 듣는 소비자들을 봤을 때 되게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옛날 ‘언더그라운드 힙합닷컴’ 같은 곳도 힙플이랑 비슷한 분위기가 있긴 해도 자기가 서포트하는 뮤지션들에 대한 그런 게 되게 좋았어요. 거기도 광인은 있어요. 광인은 있지만 되게 애정 어린 그런 게 있죠. 우리나라는 조금.. 저도 싫어하는 단어지만 '빠' 이런 단어 있잖아요. 좀 맹목적인 어떤 것들, 무작정 그러는 게 너무 크잖아요. 오히려 그렇지 않고 되게 쿨한 태도로 뮤지션의 팬임을 자처하는 사람들한테 대해서는 별로 힘이 그렇게 안 실리는 거 같아요. 그게 좀 부러워요.

A: 소위 말하는 그런 말이 있잖아요. 힙합은 졸업한다고. 왜 리스너가 졸업을 해? 자기가 좋아서 듣던 걸 갑자기 사회에 성인이 된다고 해서 그걸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이건 쪽팔린 음악이야, 남들 앞에서 듣기엔' 이렇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Q. 거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웃음) 서로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나에게 가리온은 이런 존재다, 엠씨 메타는 이런 사람이다' 같은.

 

M: 사탄이랑은 아주 처음에 시작할 때부터 있어왔고.. 음악적으로도, 제가 첫 피쳐링을 다크루에 했던 걸로 기억나요. 가리온으로 시작하면서 첫 피쳐링을 다크루와 했었고.. 음..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한국힙합을 얘기할 때 절대로 뺄 수 없는 팀이라고 생각하고 그 중에서도 사탄이 되게 중요한 포지션에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한테 사탄은 현재진행형인 한국 최고의 프로듀서죠.

 


 

 

 

Q. 너무 훈훈하게 가는 데요? 이렇게 얘기할지 예상 못했는데.. (전원웃음)

 

M: 항상 예상을 깨죠. (웃음)

 

 

 

 

Q. 사탄 님도 한 말씀..

 

A: 그냥 형들이죠. (전원웃음)

 

 

 

 

Q. 그럼 마지막으로.. 먼저 메타님부터 끝인사 부탁드릴게요.

 

M: 저는 오늘 일단 힙합엘이.. 저는 사이트 처음 만들어지고 가봤던 거 같은데 주로 거기가 외국 컨텐츠를 주로 다루는 사이트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보니까 자막 뮤직비디오라든가 뉴스 같은 외국 소식들이 많은데, 재밌었던 거는 인터뷰만 국내 뮤지션들 인터뷰가 있더라고요. 저도 다 봤어요. 그런 측면이 어떤 의도에서 하는지 약간 궁금하긴 했지만, 근데 내용들을 살펴보니까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 있더라구요. 재밌게 봤었어요. 이런 자리 만들어주셔서 되게 감사하고 이렇게 독특한 조합으로 인터뷰한 것도 되게 신선했구요. 그리고 저는 힙합엘이를 통해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올해 가리온은... 가리온 2집 이후에 저희가 좀 묵혀놨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렉스와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외에도 계속 생각하고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생각만큼 단계적으로 나와준다면 올 한해 그 어느해보다 가장 바쁘게 움직이지 않을까.. 저희팀 자체적으로 봤을 때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저희가 주로 싸이클럽이나 트위터를 통해서 계획들이 나오는 족족 올리니까 저희 팀에 관심가지고 계시는 분들은 잘 지켜봐주시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할 것 같아요.

 

A: 우선 지금은.. 프로듀서니까 프로듀서로서 계속 활동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지금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게 있고, 근데 그 담당 MC가 참 게을러져서 문젠데, 그 부분만 해결되면 빨리 나올 것 같아요. 이번에 하는 건 아예 컨셉이, 물론 힙합이긴 하지만 좀 밴드랑 섞어서 하려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에 있어요. 제가 좀 그 MC를 족쳐야죠. (웃음)

 


 

 

Q. 그 MC가?

 

M: 아직은 공개하기가 애매하니까.

 

A: 그렇죠. 지금은 준비가 아직 안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그거를 빨리 끝내고 그외에 제 개인적인.. 아마 인스트루멘탈 앨범을 하나 구상 중에 있고요. 이 앨범은 원래 아무 생각없다가 페니(Penny)가 일본에다 풀자, 그래가지고. (웃음)

 

 

 

 

 

Q. (웃음)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에 더 알찬 내용으로 인터뷰 꼭 다시 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국내 힙합-언더그라운드의 태동부터 이젠 레전드가 되어버린 추억의 이야기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음악 여정, 그리고 그에 관한 그들의 다양한 생각을 만나보았다. 단지 오래 했을 뿐이라는 말에 오히려 더 존경할 수밖에 없었고, 인터뷰 내내 듣고만 있어도 많은 도움을 받는 느낌이었다. 내용이 다소 길지만 그만큼 알차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며, 다른 인터뷰에서 얻기 힘든 귀중한 것들을 읽으면서 함께 느꼈으면 한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Garion 프로필 보기]

[Artisan Beats 프로필 보기]

 

 

 

[ HIPHOPLE X SOULCOMPANY 공동기획 ]
인터뷰 | heman, bluc, Paperdoll, Jerry.K, Won.J
장소 | 소울컴퍼니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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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온 트위터: www.twitter.com/garionhiphop

아티슨 비츠 트위터: www.twitter.com/Artisan_B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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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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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 2011.7.21 19:41 댓글추천 0

    수고하셨습니다!

  • 2011.7.21 19:51 댓글추천 0

    오! 인터뷰 오랜만에 나왔네요! 댓글먼저 달고 나중에 읽어야지....ㅠ

  • 2011.7.22 02:22 댓글추천 0

    저는 가리온 이름만 뜨면 10중에 8은 클릭하고 보네요 ㅋㅋㅋ무한도전처럼ㅋㅋ

    가리온의 인터뷰가 참재밌어요. 더욱이 MC메타씨는 ㅋㅋ 재밌는 사람이네요.

    여기서나 다른 인터뷰에서 옛날얘기나 충고들 항상 보면서 느끼고 배웁니다!!!!!


  • 잘 읽었습니다! 가리온 리스펙!!

  • 2011.7.22 11:06 댓글추천 0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제가 랩을 좋아하는 것에 무게를

    실어주는 가리온이라서 더

    재밌게 본거 같네요.

    항상 좋은 인터뷰 잘 보고 갑니다

  • 2011.7.22 12:26 댓글추천 0

    와... 알찬인터뷰 잘봤습니다.

  • 2011.7.22 13:47 댓글추천 0

    프로젝트에 대한 언급이 굉장히 많네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문명하신다던 킵루츠님은 어찌되셨는지...ㅠㅠ

  • 2011.7.22 15:09 댓글추천 0

    와 사설에 아닌게 아니라 굳이 "1세대"라는 말을 쓰기 싫었는데 (우회적으로 표현했죠) 잘 한 것 같습니다. 팬이나 이 씬을 오래 지켜보신 분들이 '존경을 기반으로 하는 연륜있는 뮤지션에 대한 배려'를 하는 거야 좋죠. 어쨌든 넘쳐버린, 도식화에 가까운 (over)respect는 받는 사람 입장에서 불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메타님이 그런 생각을 밝혀 주셨네요.

     

    그나저나 '시조새' ...심했군요. (근데 원치 않게 웃음이...아무튼 심했어요)

     

    정말 단어 하나하나가 제 개인적으로 참 좋은 인터뷰입니다. 너무 감사. 인터뷰해주신 분이나 하신 분이나.

  • 2011.7.22 19:16 댓글추천 0
    우오가리온!!아티슨비츠!!ㅠㅠ으헝헝수고하셨습니다!근데무려가리온과아티슨비츠인데댓글이12개뿐이라니!
  • 2011.7.23 01:55 댓글추천 0

    아 매번 너무 재밌고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LE 정말 최고네요.

    회사에서 야근하면서 틈틈이 보다가 집에 와서야 끝까지 다 보게 됐네요-

    respect.

  • 2011.7.27 18:15 댓글추천 0

    와우 역시 힙합씬의 레전드 그저 리스펙이란 단어밖에 안드네요 ㅎㅎ

    가리온의 탄생기부터 정말 듣기 힘든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담아낸거같네요!!

    앞으로 LE에서 이런 인터뷰를 많이 들을수있길 기대해보겠습니다 ㅎㅎ

  • srg
    2011.7.28 16:41 댓글추천 0

    너무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와!!!!!!

    항상 LE인터뷰는 너무 많은걸 배우고갑니다 

  • title: Kendrick Lamar (2)KIJ
    2011.9.14 00:50 댓글추천 0

    아티슨 비츠님이 사탄님이셨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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