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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라디 (Ra.D)

title: [회원구입불가]Melo2014.07.22 22:54조회 수 28937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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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alon] 라디 (Ra.D)

아티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답을 알려주는 줄 알았겠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아티스트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다르므로 알 길이 없다. 그런 아티스트에게 중요한 것으로 누군가는 '상업적 성공'을, 또 누군가는 '생존'을, 또 다른 누군가는 '정체성'을 꼽을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답변이 있을 수 있는데, 이번에 만나고 온 알앤비 아티스트, 라디(Ra. D)가 말한 '재미'와 '합리', 이 두 가지는 꽤 많은 아티스트에게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요소들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것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 납득이 되도록, 합리성을 따지는 것.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그것이 완전하게 상업적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현 대중음악 시장에서 아티스트가 최대한 온전하게 자신의 모습을 지키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물론, 이 역시 정답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도 여전히 멋지게 살아남고, 멋지게 이뤄내고 있는 아티스트, 라디를 만나고 왔다.



LE: 우선 힙합엘이 회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힙합엘이 가족 여러분. 저는 라디입니다. 이렇게 힙합엘이에서 만나게 되는 건 처음이네요. 잘 부탁 드릴게요.





LE: 곧 세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하시는데,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요.

되게 할 이야기가 많거든요. (웃음) 많은 일이 있었고, 2집과 3집 사이에 6년 공백이 있었어요. 6년이라는 시간이 길죠. 어떻게 보면 순식간에 지나가기도 했는데, 굵직한 일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제가 대표로 있는 리얼콜라보(RealCollabo)라는 음악 레이블이 약간 체제가 잡혔어요. 신인들을 포함해서 이런 저런 시행착오와 힘든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 좀 더 도약하는 해가 되었고요. 3집 같은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건 올해 3월부터였어요. 그전에는 간간이 써놓은 트랙들이 있었거든요. 근데 막상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에 대한 것들은 거의 생각도 못 했어요. 그만큼 너무 바빴고, 다사다난했어요. 엄청난 일들이 많이 있었고… 최근에는 작업실도 옮겼고요. 세부적인 건 차차 말씀 드릴게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LE: 2집에서 3집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로엔트리(Loen Tree) 쪽에서 발표한 개인 작품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레이블 멤버들을 챙기는 데 있어 좀 바쁘셨을 것 같기도 해요.

네. 맞아요. 정확하게 보셨고요. 레이블에서 정규 앨범, 미니 앨범 포함해서 다섯 타이틀이 나왔어요. 실장님, 디자이너와 같이 준비하느라고 그 시간이 소요됐고… 아티스트들이 뭐랄까요, 여물어지기 전까지의 시간이 꽤 길었어요. 마인드적인 부분, 실질적인 실력,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제가 옆에서 직접적으로 하는 건 별로 없었지만, 아웃라인을 잡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음악을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도 있었지만, 힘든 게 더 많았죠. 아무래도 제 전문 분야가 아니다 보니까요.





LE: 음악을 프로듀싱하는 그 자체보다 아티스트의 전반적인 느낌을 만들고, 관리해주고, 어떤 식으로 나가야 할 지 방향을 잡아주는 등의 그런 것들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맞습니다.





LE: 우선 간단하게 근황을 여쭤봤는데, 저희가 말씀드렸다시피 라디 씨가 음악을 처음 시작하셨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볼까 해요. 우선 많이 식상할 수도 있는데, 라디라는 이름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요?

굳이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던 해가 2002년이었고, 2008년까지 그랬어요. 아,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어요. 근데 올해부터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요. 그냥 ‘라.디’에요. ‘라’라는 말이 뭔가 어감이 좋잖아요. raw하다든가… 일각에서는 태양신 라 이런 느낌이라고도 하는데, 이런저런 의미 다 떠나서 제가 ‘라’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디는 그냥 말 그대로 두현이니까… 그렇습니다.





LE: 예전에는 뜻이 리얼 아티스트 두현이라고…

어우, 닭살 돋아요. (웃음) 본인 입으로 그게 뭐예요. 그때는 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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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y Name Is Ra.D] 앨범이 나올 때부터 그 이름을 쓰신 걸로 아는데, 그 이전에는 와썹(Wassup)이라는 이름을 쓰신 걸로 알고 있어요.

와썹! 그건 사실 아이디였어요. 나우누리, 하이텔… 혹시 빔스(VIMP)라는 미디 동호회나 블렉스(BLEX)라는 흑인음악 동호회를 아실까요? 프리젠트(pre)라는 댄스 뮤직 동호회도 있었고… 그런 동호회에서 활동할 때 제가 주로 쓰던 닉네임이었는데, 제가 신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쯤에 잠깐 그 이름을 쓰게 됐죠. 근데 그건 정식 이름은 아니었어요. 아이디였어요. 지금도 쓰고 있는 아이디에요. 와썹이라는 아이디를 여기저기서 쓰고 있어요.





LE: 활동을 처음 시작하셨던 게 부산의 DMS 크루로 알고 있어요.

네. 정확합니다. DMS는 온라인 크루는 아니었고요. 그 전에 제가 IF 크루라는 데서 처음으로 활동했었어요. 그 크루는 인터넷에서 만났던 것 같아요. 그때 마침 제가 비트를 찍고 있었고, 저도 래퍼였어요.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그때가 98년도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은 해에 DMS를 만난 거죠. 클럽에서 공연하다가 만났어요. (공연하는 걸 봤는데,) 되게 좀 하는 팀이었어요. 자기네들이 비트를 직접 찍어서 하는 거예요. 근데 잘하는 거예요. 그래서 문을 두드리고, 첫날 만나서 실컷 얘기하고, 소주 7병씩 까고… 그렇게 친해져서 가족이 되었죠. 그러고 나서 거기서 한참 활동하고, 그 사이에 저는 서울로 올라갈 계기가 생겨서 올라가게 됐죠. 그때는 인터넷에 노래를 올리면서 UMC나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서 활동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LE: 저희가 알기에는 춤도 추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원래는 음악을 먼저 시작하셨던 건가요?

DMS가 댄싱 머신스(Dancing Machines)의 약자였어요. (전원 웃음) 킵루츠(Keeproots) 형한테 물어보면 아실 텐데, 진짜 웃겨요. 근데 그 크루가 춤을 출 때는 제가 없었고, 저는 DMS 크루가 음악으로 전향했을 때의 원년멤버에 가까웠죠. 흑인 음악 레이블.





LE: DMS 크루 이후에 제가 알기에는 공식적으로 공개되었던 트랙이 조PD 씨의 "My Style"로 알고 있어요. 이전에 함께 활동을 해오다가 자연스럽게 스타덤(Stardom)/퓨처플로우(Future Flow)가 회사가 되면서 함께하게 된 건가요?

그렇죠. 2000년에는 거의 DMS보다는 소울 트레인(Soul Train)이라는, 당시 손전도사가 있고, DJ 우지(DJ Uzi)도 있던 곳에서 활동했었는데, 제가 조력자로서 역할을 했었어요. 그 사람들이 음악을 하면 제가 믹싱이라든가, 비트, 편곡, 프로듀싱 같은 것들을 서브로 담당하면서 활동했었죠. 그러던 중에 조PD 씨를 만나서 4집의 타이틀곡에 참여를 해달라, 곡을 써달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만들었던 것이었고요. "My Style"이라는 노래는 DJ 우지랑 같이 만들었어요. 전반적인 프로듀싱은 제가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DJ 우지도 함께 했으니까 약간 원작자 개념이었죠. 그걸 계기로 해서 제가 곡에 피처링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갑자기 뜬금없이 팬카페가 생겼어요. 뮤직비디오에도 나오고 하니까… 맨 처음에는 퓨처플로우와 프로듀서 계약을 했었어요. 그랬는데 갑자기 옵션으로 가수 계약까지 하게 된 거예요. 음반 계약까지 말이죠. 그래서 덜컥 냈어요. 1집 같은 경우에는 몇 개월 준비를 못 했어요. 써놓은 트랙들을 모아서 4, 5개월 정도 만에 발표하게 됐죠. 그때는 써놓은 트랙들이 되게 많았으니까요. 다작했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시작했죠. 추억의 퓨처플로우네요. 소울트레인도 그렇고요.





LE: "My Style"같은 경우에는 어반알앤비 스타일이 드러나는 곡 같은데, [My Name Is Ra.D] 같은 경우에는 비트에 비중이 강한 음악들이 많은 것 같아요. 당시 영향받은 음악이 따로 있었는지 궁금해요. 사실 리얼콜라보가 설립된 이후의 음악과 그때 당시의 음악이랑은 느낌이 좀 다르잖아요.

비중이요… 그냥 그때그때 할 수 있었던 음악을 한 것 같고요. 사실상 제가 제 장르를 뭐라고 딱 규정짓기가 저도 힘들어요. 들어왔던 음악을 제 식으로 표현하는 정도겠죠. 제가 무슨 어떤 장르의 창시자 같은 사람이 아니니까… 많은 흑인음악을 들었어요. 어려서부터 보니 엠(Boney M)을 되게 좋아했고요.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도 되게 좋아했고요. 그다음에 또… 알켈리(R.Kelly)도 좋아했고요. 우탱클랜(Wu-Tang Clan)도 있었고요. 주로 그루브하고 어반한 쪽의 노래들을 두루두루 좋아했어요. 에리카바두(Erykah Badu), 디안젤로(D’angelo), 다 선생님들이죠. 뮤지끄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 조(Joe), 또 누가 있을까요? 가깝게는 윌아엠(Will.I.Am)이 있는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를 되게 좋아했고요. 뭔가 세련되면서 비트가 강한 음악들을 골라서 들었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제일 오랫동안 많이 들었던 아티스트는 보니엠. (웃음) 물론, DJ DOC, 듀스(DEUX), 서태지와 아이들은 당연히 우리 세대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고… 선배님들 음악도 많이 들었죠. 조관우 선배님… 저한테는 그런 감성들이 다 섞여 있어요. 어느 한 가지만 고집한 것이 아니고요. 유승준의 "가위"도 되게 좋아했고요. 잡식? 트로트 빼고 다 좋아했던 것 같아요.





LE: 힙합, 알앤비 음악에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고 들어오셨던 건가요?

본격적으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춤을 췄어요. 고등학교 2학년 초반까지 췄고, 3년 이상을 춤을 추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었고,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어떻게 보면 ‘비트를 내가 만들어서, 직접 만든 비트에다가 춤을 추고 싶다.’ 이런 거였어요. 컴퓨터 음악을 그렇게 비트부터 접근한 거예요. 신스… 그때는 그런 것도 없었구나. 그냥 키보드 한 대에 미디 연결이 되니까… 카시오 키보드. (웃음) 당시에 386 컴퓨터 있잖아요. 갓 486이 나왔나 그랬을 거예요. 그걸 물려서 그냥 사운드카드 하나 박아놓고서 했었어요. 그때만 해도 대단했죠. 그리고 처음 산 게 SC-88, 아니다 SC-55(Roland Sound Canvas 55)였구나. 사운드 캔버스(Sound Canvas)라는 모듈이 있어요. 아세요? 그걸로 했고요. 무슨 얘기를 하다 이게 나왔죠?





LE: 예전에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가 언제였는지…

아, 본격적으로 흑인음악을 들은 때는 95, 96년쯤이었죠. 그때 우탱클랜, 사이프레스힐(Cypress Hill)같은 하드코어한 것들부터 들었어요.





LE: 그런 음악을 듣고 만들면서 춤보다 음악을 더 잘하는 것 같다고 느끼셨던 건가요?

댄스 쪽에서 쭉 있다 보니까 그때가 또 나름 되게 사춘기…라기보다는 방황기라고 해야 하나요? 저는 고등학교를 방송통신고등학교로 다녔어요. 인문계를 다니다가 고등학교 2학년 초에 전학을 갔어요. 좋은 계기로 간 건 아니고요. (웃음) 말썽을 좀 피우다 갔는데, 그때 소위 집에서 쉬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한 거죠. ‘뭘 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TV에서 어떤 작곡가가 컴퓨터를 띡 누르더니 거기서 노래가 나오는 장면이 나오는 거예요. 그때 당시만 해도 컴퓨터 음악이 흔하지 않았는데, 저는 그전까지는 스튜디오 안에서 사람들이 다 모여 합주하고 그러는 것만 작곡이라고 하는 줄 알았었거든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저게 뭐지?’ 하는데 컴퓨터 음악 어쩌고저쩌고 해요. <연예가중계>인가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 전화번호부 알죠? 옛날에 그 노란색. 그걸 다 뒤져서 컴퓨터 음악 학원을 찾아서 등록했어요. 등록해서 다녔는데, 저는 진도를 이만큼 빨리 나가고 싶은데 거기서는 분량대로만 탁탁 진행하더라고요. 좀 아닌 것 같더라고요. 한 달을 채 안 다녔어요. 거기서는 교재가 뭔지도 안 가르쳐줬었어요. 프린트해서 나눠주고… (LE: 영업비밀 같은 거였네요.) 네. 너무 치사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 화장실 간 사이에 슬쩍 보고, 그렇게 케이크워크(Cakewalk)를 시작한 거예요. 그렇게 시작해서 그걸 바탕으로 다른 음악을 만들었었죠.





LE: 뭔가 '학원이 내 그릇을 담을 수 없다.' 이런 느낌이네요.

거만하게 말하자면 그런 거죠. (웃음)





LE: 다시 얘기를 돌아와서 1집 이야기를 좀 해보면, UMC 씨와의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소울 트레인 때부터 알고 계셨던 건가요?

UMC는 맨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나네요. 이건 본인은 그렇게 좋아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처음 만났는데, 아는 형이 소개를 해줬어요. 그 형이 UMC랑 친했는데, 친한 동생이라고 소개해준 거죠. 그때까지는 그 친구가 뭘 하는 친구인지도 몰랐고, 서로 그렇게 잘은 몰랐어요. 근데 말이 너무 잘 통하는 거예요. 무슨 얘기를 해도 그냥 너무 잘 통하는 거예요. 그래서 막 서로 웃고 그러다 술을 엄청 먹고, 당시 있던 지하 작업실에서 같이 잤어요. 근데 (UMC가) 자다가 꿈틀꿈틀해요. 뭐하나 싶어서 봤는데, 방바닥에다가 이만한 피자를 만들어놓은 거예요. (웃음) 그걸 같이 치우면서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죠.





LE: 그래서 UMC가 안 좋아할 만한 이야기라고 하셨군요.

그렇죠. 좋아하지는 않겠죠. 근데 뭐, 사실은 사실이니까… 본인은 미안해하고… 저는 처음이었어요. 친구의 토를 그렇게 막 정성스럽게 치워본 건…





LE: UMC 씨가 색채가 강렬하고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는 음악을 하시잖아요. 음악만 놓고 보면 라디 씨와 얘기가 잘 통한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해요.

그럴 수 있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UMC가 대신해줘서 저는 되게 좋아요. 그러니까 통하겠죠? 예를 들면, 감미로운 멜로디에 욕을 붙일 수는 없잖아요. (웃음) 요즘에는 그런 경우가 있긴 있어요. 근데 당시에는 그런 경우가 없었어요.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알앤비라는 장르가 사실상 발라드에 가까웠죠.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그런 게 많이 없어지긴 했죠. 당시에 제가 진짜 과감하게 더 하고 싶었던 음악을 요즘 자이언티(Zion.T)나 그런 친구들이 다 하고 있어서 되게 기분이 좋아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흑인음악, 알앤비에 있어서 저는 1, 2세대 이렇게 구분될 거예요. 아시다시피 사실 알앤비는 거칠잖아요. 감성만 아우르는 게 아니라 원색적인 이야기를 멜로디에 실어서 하니까요. (그래서 생각이 UMC와) 닮아 있었어요. 근데 거듭 말씀 드리지만, 당시에는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고, 간접적으로나마 UMC랑 음악 작업을 하면서 풀어낸 거죠. 녹음하면 한 70%는 웃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UMC는 뭘 해도 웃겨요. 걔는 녹음하다가 NG를 내도 웃기거든요. 혼자 막 이상한 소리 내고… 아무튼 재미있는 친구예요.





LE: 1집 수록곡인 "Media Doll"이라는 트랙이 앨범 전체로 보면 가장 튀고, 부드러운 알앤비 스타일이라기보다는 UMC 씨의 색이 많이 들어가 있는 트랙이잖아요. 그 트랙을 수록하는 데에 있어서 이질감이나 이런저런 부분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으셨나요?

전혀 안 했어요. 어차피 제가 하는 음악이 힙합, 알앤비잖아요. 저는 샘플링을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게 아마 최초의 샘플링 곡이지 않았나 싶네요. 제 기억에는 그래요. 보통 시퀀싱으로 다 했는데, 재미있었고요. UMC가 거기다 랩을 잘해놓았고요. 저도 되게 만족했어요. 그때는 ‘우리가 늘 하던 거 하자.’ 했었죠. 제가 그걸 안 하면 뭘 하겠어요. 늘 했던 거니까 자연스럽게 들어갔죠. 이질감 없이 말이죠.





LE: 샘플링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1집 앨범에서 가장 튀는 트랙은 역시 "요술공주 세리"인데요. 듣기 전부터 트랙 명만 봐도 가장 튀잖아요. 만화 주제가를 샘플링하고, 소재로 삼으면서 활용하시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자꾸 술 먹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어쨌든 호프집 이름이 ‘마징가Z’인 호프집이 있었어요. 당시에 ‘기운 센 천하장사’ 이 라인에 꽂혀서 애니메이션 음악으로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있어"라는 트랙을 들어보면, 베이스 라인이 ‘기운센 천하장사’ 이 라인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어요. 그걸 하면서 재미있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연장선인 거예요. "내가 있어" 다음 트랙이 아마 "요술공주 세리"일 거예요. 그렇게 하나의 컨셉이었어요. 유명한 애니메이션으로 말이죠. 그게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당시에 유명한 것들이었고… 재미있으니까 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마스타 우(Masta Wu) 형도 당시에 친했어서 피처링을 부탁 드렸었고요.





LE: 마스타 우 씨도 얘기해주셨고, UMC 씨 이야기도 더 할 것 같은데, 그 두 분과는 요즘도 보고 지내시나요?

마스타 우 형은 YG 엔터테인먼트(YG Entertainment)에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근데 그때 이후로 미국에 다시 한 번 갔다 오셨나, 연락이 잘 안 되었는데 보고 싶어요. 한번 보고 싶은 형이에요. 안 좋은 일이 있었다거나 그런 건 하나도 없었고요. UMC랑은 며칠 전에 만났어요. 그리고 이번 앨범에 또 참여했어요. UMC는 베스트 프렌드니까…





LE: 사담이긴 한데, UMC 씨는 한동안 몸이 안 좋으셨다고 알고 있어요.

좀 괜찮아졌어요. 다리가 좀 안 좋았는데…





LE: 음악도 계속 하시는 거죠?

네. 여전히 욕도 잘 하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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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UMC 씨의 정규 앨범인 [XSLP]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XSLP]의 경우에는 라디 씨의 1집과 2집 사이에 있던 앨범인데, 아무래도 그 앨범의 전반적인 프로덕션을 라디 씨가 담당하셨으니까 이야기해볼 것이 몇 가지 있을 것 같아요. 앨범을 들어보면 "Media Doll" 때 구사했던 프로덕션과 비슷한 느낌의 프로덕션이 주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기존의 알앤비 곡들보다도 더 비트가 강한 스타일이에요. 원래 그런 스타일도 많이 좋아하시고, 구사할 줄 아셨던 건가요?

그렇죠. 그런 게 더 편하고 재미있어했죠. 비트가 있는 음악을 기본적으로 먼저 시작해서 그런지 훨씬 자연스럽고, 재미있고… 다만, 그 앨범에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건 믹싱을 왜 다른 분에게 맡겼을까 하는 부분이에요. 제가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당시 회사가 약간 보수적인 그런 게 있어서 믹싱을 힙합 쪽을 많이 안 하시는 분에게 맡겨서 사운드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나도 많이 있어요.





LE: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다시 들어보니까 "XS Denied", "음악하지마"를 비롯한 센 트랙들은 닥터드레(Dr.dre)가 에미넴(Eminem)과 결합했을 때 주로 보여줬던 프로덕션과 흡사하게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그렇게 들으니까 재미있네요.





LE: 그런 걸 특별히 그때 좋아하셨던 건 아닌 거군요.

닥터드레도 좋아하고, 다 좋아하기는 했는데 글쎄요. 에미넴을 특별히 엄청 좋아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음악은 되게 좋은데, 특별히 모티브로 삼았다거나 그래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음악을 들어서 좋으면 거기서 그칠 뿐이지, 어떤 컨셉이나 레퍼런스를 잡아서 거기에 따라서 음악을 만들어 본 적은 솔직히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얼마나 어려워요. (웃음) 그걸 잘하는 작곡가들이 제일 신기해요.





LE: 레퍼런스로 다른 곡을 잘 차용하는 사람이 신기하다는 건가요?

네. 레퍼런스를 딱 받고 나서 ‘그거랑 비슷하게 만들어주세요.’라고 한다고 그게 되나요? 심지어 옛날에 2000년 초반에 제가 잠깐 벅스(Bugs) 뮤직 작곡가로 있었거든요. 아주 짧게 있었는데, 요청 들어오는 게 그랬어요. ‘룰라의 섹시함과 클론의 강렬함.’이라고 얘기해버리면… (전원 웃음) 저는 되게 벙쪄가지고… 그런 얘기를 듣는 게 너무나도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거기에 오래 못 있었었죠. 그냥 필 받는 대로, 있는 트랙 중에 괜찮은 게 있으면 디벨롭시키는 게 훨씬 편했죠.





LE: 아까도 나왔던 얘기지만, [XSLP]에 실린 곡 중에는 원색적인 내용이 많은데, 그런 내용적인 면에서 라디 씨도 전반적으로 동의를 많이 하셨던 건가요?

UMC의 사상이요? 특별히 못 할 말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솔직히 말해서 자유를 갈망하는 많은 아티스트가 진보 성향이 강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언제나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 있어서 시원하게 풍자하는 것들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동의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이제는 같이 얘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제가 더 급진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그래요.





LE: 라디 씨의 음악적 스타일을 보면 그런 쪽의 가사를 쓰기가 좀 어렵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이질감이 크기도 해서 그런 부분이 궁금했어요. 다음 얘기로 넘어가 보면, 이후에 리얼콜라보를 설립하면서 2집 앨범을 발표하기 전에 군 복무를 하신 게 맞나요?

맞아요. 제가 2004년 말에 군대에 갔죠. 2004년 12월 겨울에 가서 훈련병 때 죽을 뻔했죠.





LE: 그럼 [XSLP]는 그 이후에 나온 거네요.

그러네요. 제가 그걸 하고 나서 군대에 갔어요. 그리고 돈을 한 푼도 못 받았죠. 그때 가뜩이나 어려웠는데…





LE: 당시에는 군악대라든가, 아니면 다른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었나요?

훈련소에서 어떤 군악대 병장 분이 UMC랑 저를 되게 좋아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시험을 봤는데, 제가 군악대에서 만점을 받았었어요. 잘하지도 않고, 이론적인 걸 빡세게 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하다가 만점을 받았죠. 근데 지원해서 온 친구들에게 밀린 거예요. 저는 제가 지원을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군악대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차병을 갔죠. 탱크 탔어요.





LE: 전혀 음악 활동을 못 하셨겠어요.

하긴 했죠. 대대가를 만들었었어요. 밖에서 작곡하다 왔다고 하니까 대대장님이 대대가를 만들어 달래요. 저희 군대 대대가를 만들어서 아직도 부르고 있을 거예요. 병장들이 엄청 싫어했죠. 말년에 그걸 외워야 하니까… 저는 포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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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2006년 말, 2007년이 되어서 전역을 하시고, 이후에 정확히 기간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는데요. 2집이 나오고 리얼콜라보를 설립하기 전에 아메바컬쳐(Amoebaculture)와 잠깐 계약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건 계약은 아니었고, 가계약서가 오가는 단계였어요. 계약을 했다고 기사가 좀 빨리 나갔죠. 제대로 나간 기사는 아니었고, 저도 당황하기는 했는데… ‘합류’ 이렇게 막 뜨고, ‘뭐지?’ 하면서 약간 당황했는데, 기획사 입장에서는 쐐기를 박는 그런 게 좀 있었어요. 그 이후에 계약서 초안을 거쳐서 두 번, 세 번 정도 수정하고, 본격적으로 계약 들어가기 이틀 전에 갑자기 뭐가 생각이 난 거예요. 갑자기 생각났다기보다는 군대 시절부터 계속 머릿속에서 떠올렸던 것. 제 레이블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냥 제가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퓨처플로우가 나빴다는 건 아니에요. 훌륭한 기획사였고, 조PD 씨도 당시 좋아했던 형이고, 다 좋았어요. 다만, 석연찮은 일들이 있더라고요. 퓨처플로우에 있으면서 단순히 음악만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게 되었어요.





LE: 방송활동 같은 것 때문에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병행해야 하는 그런 것이었나요?

그런 느낌은 아니었고요. 당시에 기획사라는 시스템에 대해서 제가 회의감이 많이 들었었어요. 그런 게 상처 아닌 상처가 되었고, 붕 떴었거든요. 조PD 형도 당시 사정이 있었겠지만, 저는 이해를 못 했었고요. 지금도 솔직히 왜 그러셨는지는 이해가 안 되기는 해요. (웃음) 이유가 있었겠죠? 하여간 그런 일들이 있었고, 공중분해가 되고… 저는 저대로 굉장히 많은 타격을 받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약간 무섭더라고요. 아메바컬쳐에 들어가서도 그런 비슷한 일이 생길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들고 그랬죠. 그래서 이틀 전에 말씀을 드렸어요. 아닌 것 같고, 정말 죄송하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고, ‘저는 제 레이블을 하고 싶습니다.’라고도 말했죠. 고경민 이사님, 누님한테 말씀드렸고, 지금은 아주 친한 누나로 잘 지내고 있어요.





LE: 계약과는 별개로 다이나믹듀오(Dynamic Duo) 분들의 네 번째 정규 앨범에 "어머니의 된장국"과 "아버지", 두 트랙에 걸쳐 참여하셨었는데요. 그건 계약과는 별개의 일이었던 건가요?

맞아요. 그 전에 했던 거예요. ‘패밀리가 되자.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에서 나왔던 곡이고, 개코, 최자 둘 다 만족해줘서 되게 고마웠었죠.





LE: 당시 리얼콜라보를 설립하셨던 2008년 쯤에 미국에서도 활동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미국에서 활동했던 건 아니고요. 당시에 비 라이크 워터(Be Like Water)라는 독립 레이블, 미국에 있는 회사인데, 그 레이블의 사장님인 피터(Peter)라는 분 댁에서 홈스테이를 했었어요. 뉴저지였죠. 아주 잠깐 갔어요. 2집 앨범을 만드는 목적으로 갔던 거예요. 활동을 한 건 아니었어요. 대신 2집의 한, 두 트랙 정도는 미국에서 세션을 하시던 분들에게 받았었죠. 미국에 네잇 존스(Nate Jones)라고 되게 유명한 베이시스트가 있는데, 그때 같이 작업했었어요. 제가 엄청난 영감을 받았었죠. 그 분이 베이스 치는 표정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행복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어쿠스틱에 대한 갈망 같은 것도 생기고 그랬었죠.





LE: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 리믹스 작업 같은 경우에는 어떤 작업이었었나요?

그건 그냥 제가 집에서 보컬 파일을 받아서 리믹스한 거예요. (웃음)





LE: 앞서도 말씀하셨듯이 그 당시에 레이블을 직접 설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회사라는 걸 설립하려면 자본이라는 게 필요하잖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여유 같은 게 괜찮으셨던 건가요?

아… 최악이었죠. (웃음) 돈이 있었겠어요. 제가 그닥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지 못해서 그런 것으로 인한 자격지심이 있었거나 그랬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때 당시는 참 힘들더라고요. 군대 제대하고 나서 저작권료 4,900원 나오고… 발표한 게 없으니까요. 많을 때는 3만 원?





LE: 1집으로 들어오는 건 없으셨던 건가요?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요. 1집이 2002년에 나왔는데, 군대 제대하고 나서는 2007년이니까요. 그나마 군대 있을 때는 조금씩 나오고 했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니까 줄어들다 없어진 거죠. 그래서 그때 어머니가 1000/30짜리 면목동 집에 살고 계셨었어요. 근데 주인아저씨한테 빌어서 그중에 500만 원을 어머니께서 마련해주신 거예요. 그 종잣돈으로 2집을 찍는 건 물론, 다 했었어요. 그리고 우리 디자이너한테도 나중에 돈 벌면 갚겠다고, 공짜로 해달라고 그렇게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다 갚았어요.





LE: 어떻게 보면 인생을 건 그런 거잖아요. 부담감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네. 도박이었죠.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고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저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에다가 모든 걸 건 거죠.





LE: 근데 사실 아메바컬쳐라는 회사와의 계약과 어머니께 돈을 구해서 독립 레이블을 만드는 것을 딱 놓고 단순하게 비교하면 쉬운 길은 전자잖아요.

그럼요. 당시에 계약금도 엄청 많이 준다 그랬었어요. (웃음) 그게 몇 천만 원이야. (LE: 굉장히 곤조 있는 선택 아닌가요?) 그렇죠. 제 욕심. 근데 어느 순간 저에 대한 성향이랄까, 그런 것들을 특히 군대 있을 때 많이 파악하게 되었어요. 욕심도 욕심이지만, 나름의 비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진짜로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죠. 표현하기에는 막연했지만, 어떻게든 제 길을 한 번 끝까지 가보고 싶었어요. 음악 레이블을 운영하는 걸 그냥 음악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걸 굳이 사업 아이템으로 키워나가겠다 이런 느낌이 아니었고, 순수히 리얼콜라보라는 생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곤조나 이런 것보다는요. 그렇게 시작했었어요. 아직도 그 생각은 변함없고요.





LE: 여러 집단의 소속이었거나 소속될 뻔했었던 소속 아티스트로서 느낀 점과 레이블의 오너로 있을 때의 느끼는 점은 확연하게 차이가 있고, 고충도 다를 것 같아요. 레이블의 오너로서도 고충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고충이요… (웃음) 이 친구들이랑 계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부터 시작해요. 왜냐하면, 활동하던 친구들이 아니라 신인들이잖아요. 계약금을 얼마를 줘야 되냐는 것부터 고민이 시작하는 거죠. 주변에서는 다 계약하라고 하는데 저는 막상 명분이 없는 거예요. 내가 이 친구들을 서면상으로 계약해놨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나도 아직 힘이 없는데… 근데 어차피 이 친구들이랑 ‘야, 우리 같이 돈 한 번 벌어보자.’ 이런 게 아니고 그냥 저와 음악 성향도 맞고, 친한 형, 동생으로 시작한 거잖아요. 그래서 이 친구들한테 ‘OK. 니네들이랑 언젠가는 계약을 해야겠지. 근데 일단 내가 어떻게든 조금 길이 열려 있을 때, 확실하게 회사라는 시스템으로 너희를 아우를 수 있을 때쯤에 그때 우리 다 같이 리얼콜라보에 계약하자.’라고 했었어요. 이제 그 시기가 오고 있죠. 8월 정도에는 회사가 조금 규모가 더 생겨요. 규모가 생긴다는 의미가 여태껏 제작 파트밖에 없던 회사가 홍보 파트까지 갖추게 된 거예요. 다른 회사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거예요. 합병까지는 아니고요. 같이 일하는 파트너쉽 회사가 8월에 설립이 돼요. 그렇게 되면 친구들이 컨텐츠를 내놓아도 자랑스럽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회사 차원에서 케어하고, 아우를 수 있게 되겠죠. 그때는 계약하면 좋죠. 서로를 위해서 말이죠.





LE: 지금은 서면으로는 계약되어있지 않은 상태이신 건가요?

네. 아직은요. 8월에는 아마 할 거예요.





LE: 홍보 파트를 갖추신다고 하셨는데, 리얼콜라보가 일단 내놓은 결과물 수가 많고, 또 그 결과물을 각자 아티스트들이 직접 프로듀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애초에 그런 셀프 프로듀싱이 가능한 아티스트 위주로 레이블 멤버가 꾸려진 것 같은데, 유달리 싱어송라이터 위주로 멤버가 구성된 이유가 있을까요?

편하잖아요. (웃음) 저도 음악 해야 하는데… 도와주지 않아도 알아서 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그러니까요. 제가 그렇게 하니까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하잖아요. 그래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하는 친구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마침 그런 친구들이 지원해줬네요. 그래서 다들 열심히 자기 색 가지고 하고 있고… 저는 음악 하는 데에 있어서 선배니까 제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그랬죠. 저는 친구들이 들어오자마자 하는 게 있었어요. 치즈(Cheeze)라는 팀에게 그랬고, 브라더수(BrotherSu)나 디어(d.ear)에게도 그랬는데, 아티스트들에게 여태껏 제가 만들어놓은 소스들 있죠. 제가 킥, 스네어를 비롯한 각종 샘플들을 엄청 많이 모아놔서 라이브러리가 방대한데요. 다 줬었어요. 일단 다 주고 나서 공유하고, 그다음에 사운드 믹싱, 편곡에 관련된 워크샵도 한 번씩 하고 그래요.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할 때도 있었죠. 노하우 공유하고… 재미있잖아요. 제가 모르는 걸 그 친구들이 가르쳐주는 경우도 있고요.





LE: 물론, 리얼콜라보와 함께 하면서 소속 아티스트 분들이 셀프 프로듀싱 능력을 키우기도 했겠지만, 그 전부터도 그쪽으로 욕심이 있고, 어느 정도 그런 능력을 갖춰온 분들이 들어왔던 거네요?

네. (LE: 그 이후에도 훈련이 되어서 늘고…) 그렇죠. 또, 서로서로 경쟁 아닌 경쟁을 해요. 음악을 들으면서 각자 긴장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더 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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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리얼콜라보에서 대표적으로 성공한 경우라고 해야 하나요? 라디 씨를 제외하면 브라더수 씨가 그런 것 같아요. [Paper]라는 앨범으로 많이 알려지기도 했는데, 일단 브라더수 씨를 어떻게 만나 함께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리얼콜라보를 만들고 레이블의 방향이 싱어송라이터 집단으로 구축되기도 전에 제가 어시스턴트를 구하려고 했었어요. 구인공고를 냈는데 마침 거기에 지원했더라고요. 브라더수가 그때는 어렸어요. 갓 스무 살 되었을 때인가? 열아홉 살, 스무 살. 그 시절에 그 친구를 보고 ‘그러냐. 그러면 어느 정도 음악을 할 수 있는 거네. 음악 한 번 들어봅시다.’라고 하고 들어봤는데, 어시스턴트 할 친구가 아닌 거예요. 이미 내공이 있던 거죠. 제가 조금만 잡아주고, 길을 조금만 열어주고, 당시에 있었던 조금 어색했던 느낌만 없애면 충분히 싱어송라이터로서 두각을 나타낼 친구라고 딱 느꼈었어요. 그래서 ‘너 어시스턴트하지 말고 같이 음악 해보자.’라고 하게 됐죠. 갑자기 신분상승을 하게 된 거죠. (웃음)





LE: 브라더수 씨가 예전에는 랩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당시 지원할 때는 노래를 했나요?

랩한 트랙도 있었던 것 같은데, 대부분이 빈 트랙, 비트만 있는 작업물이었어요. 그중에 노래를 부른 트랙은 하나 있었어요. 근데 그 한 곡 때문에 ‘너는 음색도 괜찮고, 프로듀서들 보면 가창력으로 승부를 보기보다는 자기 색깔로 승부를 많이 하기도 하니까 싱어송라이터 쪽으로 한 번 해보는 게 괜찮겠다.’고 했고, 바로 싱글을 준비해서 냈죠. 그게 "It Was You"라는 노래였어요. 근데 가뜩이나 제가 달달한 걸로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어 있는데, 브라더수가 그 싱글을 발표하니까 리얼콜라보 색깔이 순간 확 달달해져 버렸죠. (웃음) 그렇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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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브라더수 씨의 동생 분인 러비(Lovey) 씨도 리얼콜라보인데, 러비 씨는 브라더수 씨를 통해서 알게 되신 거겠네요?

그렇죠. 2010년에 브라운 아이드 걸스(Brown Eyed Girls)의 나르샤 씨가 제 노래인 "I’m In Love" 리메이크를 했었어요. 그때 가이드 보컬이 필요했었어요. 근데 (브라더수가) 자기 동생이 노래를 잘한대요. 그래서 그러면 한 번 해보자고 했는데, 정말로 노래를 잘하더라고요. 음악을 막 하던 친구는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 예비 아티스트? 그렇게 있다가 최근에는 곡도 쓰기 시작하고, 본인이 하려는 의지가 강해요.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고… 아무튼 예쁜 친구예요. 러비라는 이름도 제가 지어줬어요. 브라더수도 제가 지었고요. (웃음) 형수…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요. (전원 웃음)





LE: 브라더수, 러비 두 분 같은 경우에는 힙합 신의 래퍼들과도 친하고, 스윙스(Swings) 씨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잖아요. 여러모로 다른 리얼콜라보 아티스트들보다 좀 더 이름을 내비치는 것 같은데, 전반적인 활동이나 콜라보, 결과물에 대해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거나 아니면 특별히 제재하시는 부분 같은 건 없나요?

없어요. 경험 많이 해보면 좋잖아요. 전혀 그런 거 없고, 오히려 더 권장하고요. 많은 결과물을 통해서 때로는 기쁘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도 좀 받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좀 다져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랬듯이 말이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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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kick&snap by Libbiegraphy)


LE: 브라더수 씨나 러비 씨 이야기를 좀 해봤는데, 리얼콜라보에 다른 아티스트 분들도 계시잖아요. 소속 아티스트들에 관한 소개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브라더수는 이미 말씀 드렸는데, 걔는 약간 느낌이 그래요. 작은 호랑이 같은? (웃음) 순하게 보이는데 안에는 이만한 발톱이 하나 있는 느낌이에요. 그런 센 게 있어요. 은근히 보수적이고요. (전원 웃음) 되게 웃긴 친구예요. 개그 코드도 희한하고요. 주먹을 부르는 코드 있잖아요. 그런 친구고, 되게 재간둥이. 진짜 머리 잘 돌아가고요.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러비. 처음에는 어리기도 하고, 덜 여물었기 때문에 예비 아티스트였는데, 지금은 당당히 아티스트 라인업 대열에 합류했고요.

다음은 나래. 이나래. 이 친구도 물건이죠. 음악 진짜 잘해요. 조금 있으면 미니 앨범이 나오는데, 저도 기대돼요. 얼마 전에 여기 와서 모니터링을 몇 곡 했는데, 잘하더라고요. 요즘 음악 잘하는 친구들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잘하는 거 같아요. 거기다 강심장이에요. 라이브를 진짜 잘해요. 나래와 러비가 동갑이에요. 기대되는 싱어송라이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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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에나(SIAENA). 리얼콜라보 내에서 어떻게 보면 색깔이 가장 다른, 인디 성향의 친구예요. 제가 맨날 놀려요. 장송곡의 대가라고… 들으면 어디선가 염을 하고 있을 것 같고… 그렇지만 (레이블에) 꼭 있어야 해요. 저는 리얼콜라보에 시애나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출발 같은 느낌이에요. 뭐랄까, 궁극적으로 리얼콜라보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 음악성 같은 걸 없게 만들어주는 친구랄까요? (시애나는) 뭐가 딱 정해져 있다는 틀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는 분기점 같은 친구예요. ‘리얼콜라보는 다양한 아티스트를 품을 수 있다.’ 이런 거죠. 그래서 저는 보호하고 싶고, 시애나만 원한다면 레이블에 계속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말을 정말 잘해요. 정말 열심히 하고요. 아티스트들이 본받으려고 할 정도로 본인이 하려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정말 열정이 대단한 친구예요. 언제나 귀감이 되는, 굉장히 성숙한 음악을 하는, 제가 되게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에요. 감성도 정말 좋고요.

그다음은 디어. 단언할 수는 없지만 예상하기를 브라더수보다 디어가 대중적으로 더 어필이 되는 음악적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기본적으로는 어반 계열이나 알앤비를 기반으로 해서 흑인음악을 좋아하고, 잘 표현하는 친구이기는 하지만, 멜로디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최고 수준이 아닌가 해요. 리듬 쪽보다는 알앤비에서 사용하는 단조로운 멜로디가 아닌 화성을 100% 쓴다는 점에서 뛰어나죠. 어떻게 보면 작곡가로서 대성할 것 같아요. 제 노래 중에 "오랜만이죠"라는 곡을 디어와 같이 작업했어요. 제가 벌스를 쓰고, 그 친구가 훅을 만들었어요. 훅 좋잖아요. 그런 감성의 친구예요. 얼마 전에는 2AM의 노래에 참여했는데, 저와 디어가 공동작곡을 했어요. 그 노래에서도 훅 멜로디를 그 친구가 썼고, 편곡까지 그 친구가 했어요. 제가 한 건 가사와 벌스밖에 없어요. 정말 잘하는 친구예요. 그 노래도 나오자마자 1위를 찍더라고요. 팬덤이 있어서 그렇겠죠? (전원 웃음)





LE: 목소리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물론 다른 색의 아티스트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리얼콜라보와 연관이 있는 아티스트 분 중에 라디 씨와 흡사하게 기교보다는 깨끗한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라디 씨를 닮아가는 것도 약간 있는 건가요?

아니에요. 브라더수 같은 경우에는 제 1, 2집을 되게 좋아하는 친구였어요. 다른 친구들은 본인의 음악적인 걸 이미 가지고 있었고요. 그걸 우리 회사에서 잘 케어해서 표현하고 싶다는 목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전혀 그렇게 의도적으로 겹치게 한 부분은 없어요. 이런 얘기 하면 본인들도 싫어할 거예요. 근데 갈수록 좀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약간 본인들이 리얼콜라보라는 레이블의 음악적 색깔을 규정지으려고 하는 게 보였어요. 근데 뭐, 자연스러운 것 같기는 해요. 어쨌든 제가 수장으로 있으니까요. 약간 눈치 보고 이런 게 없었다고는 말 못 하는데, 그래도 갈수록 본인들 커리어나 색깔을 만들어가려고 하더라고요. 그게 자연스러운 수순 아니겠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선배이고 하지만, 저는 제 색깔, 이 친구는 이 친구의 색깔, 그렇게 가는 것이 훨씬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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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2집이 나올 당시부터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면, 리얼콜라보 이전과 이후의 음악이 많이 색이 다른 것 같고 비트보다는 보컬 라인이 강조가 많이 되는 음악을 하셨던 것 같아요. 중간에 어떤 계기라고 할 게 있을까요?

컨셉이죠. 1집은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걸 했고요. 2집은 해야지만 하는 걸 했어요. 컨셉이 많이 다른데요. 할 수 있는 걸 했다고 함은 저는 당시 루키였고, 비트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자타공인 국내에서 제일 잘 하고 싶었고, 잘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냥 그랬던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강조되었겠죠. 군대를 갔다 와서는 당시 음악 시장이 이미 신스나 이런 것들로 난무 되어 있었어요. 특별히 비판하거나 이런 건 아니지만,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1집의 연장선의 음악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이미 했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마침 주제로 들어온 게 ‘가족’이었어요.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친구들. 소소한 삶부터 시작하자고 생각했었어요. 다시 되돌아보고, 나의 소중한 어머니와 여자친구, 나의 그냥 친구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려다 보니까 당연히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소리적인 측면부터 시작해서 이야기하는 내용, 모든 것들이 보들보들해졌죠. 실제로 군대를 갔다 와서 성격이 부드러워진 것도 있고요.





LE: 혹시 주제를 누군가가 제공해 준 건가요?

제가 한 거죠. 군대에 있으면서 총 들고 보초 서면서 생각 많이 했죠. (웃음) ‘보고 싶다. ㅜㅜ 아이고… ㅜㅜ’라고 생각을…





LE: 2집을 다시 들어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곡이 생일, 가족, 친구, 사랑에 대한 얘기 등 일상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요소들을 소재로 활용하고 있더라고요.

그렇죠. 그런 것들이 당시에는 전부였고…





LE: 악기나 음악의 초점이 어반 사운드에 맞춰져 있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밴드 사운드나 세션 쪽에 좀 더 근접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한마디로 전반적인 프로덕션 자체가 어반 알앤비에 근접해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랬었구나… (웃음) 모르겠어요. 할 수 있으니까 했던 거 같아요.





LE: 계속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라디 씨는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음악을 하신 느낌인 것 같아요. 어떤 실험을 감행한다기보다는요.

맞아요. 그때 그 버전으로 하는 거죠. 누가 하라고 해서도 아니고… 근데 주제만큼은 2집은 ‘내가 이런 걸 표현해야 하겠다.’ 싶어서 그렇게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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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2집 앨범의 소재에 관해서 이야기해봤는데, 참여진의 경우에는 조금 독특했던 것 같아요. 인발 씨가 그 전에 활동하셨던 분도 아니었고, 꼬깔이라는 분도 동생 분이시고, 켈리(Kelley)라는 분은 지금의 아내 분이시고 말이죠. 참여진을 바라볼 때, 음악적인 능력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감성 그 자체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결국 ‘음악을 어떻게 하느냐’,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인데, 해도 되니까요. 동네 친구가 제 음악에 참여하는 것. ‘그게 왜 안돼?’ 그런 느낌이에요. 굳이 어마어마한 실력이 있어야 음악을 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이 2008년 정도에 제 생각의 중심이었던 것 같아요.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그리고 꼭 연주하고, 노래하는 게 음악이 아니고 삶 속에 음악이 있는 거잖아요. 누군가와의 커뮤니케이션, 아이덴티티 공유, 이런 것들이 모두 음악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도전이라기보다는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안될 거 없지 않을까? Why Not?’이라는 생각에서 하게 된 거죠.





LE: 그런데 그러면서도 사실 어느 정도의 퀄리티는 보장이 되어야 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근데 들어보면 참여하신 분들이 못하지 않고 다들 괜찮게 해주셨잖아요. 특히 저는 인발 씨 같은 경우에는 ‘나름대로의 랩 그루브가 있구나.’ 싶더라고요.

(인발이는) 끼가 있는 친구예요. 본인이 욕심도 있고… 요즘에는 트로트로 전향해서 그렇지… (전원 웃음) 지독해요. 저번 주에도 만났는데, 징글징글해요. 군대에서의 인연이 이어져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저런 일도 많았죠. 이번에 또 제 앨범에 참여해요.





LE: 그럼 다른 두 분도 여전히 음악을 하고 계신가요?

아, 꼬깔이. 꼬깔이는 저희 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은 음악 쪽 일보다는 아트워크부터 시작해서 할 게 너무 많아서… 회사가 아직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까 인원이 많이 없는 편이에요. 그래서 일당백하고 있어요. (웃음)





LE: 조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2집 앨범에 "SP Collabo"라는 트랙이 있는데요. 트랙에 버벌진트(Verbal Jint) 씨와 UMC 씨가 동시에 참여했는데, 그 당시에 설전이 오고 갔었잖아요. 버벌진트 씨는 그 곡에 UMC 씨가 참여한 지를 모르고 참여를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논란이 좀 있었고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직접 만나서 사과했었어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때 만났었어요. 근데 그때 제가 뭐라고 얘기를 하는데, 안면인식장애가 있으신지… (전원 웃음) 제가 누군지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저 라디인데요.’라고 했죠. 근데 제가 사과한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개의치 않아 하셨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다시 만나서 친해지고 같이 맥주도 한 잔하고 그랬었죠. 그렇게 풀긴 풀었는데, 어쨌든 제가 경솔한 면이 좀 있었었고요. 추후에 어떤 조치를 취해달라고 하셨으면 취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특별히 크게 문제 삼지 않으셨고… UMC도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잠깐 사이가 좀 그랬었는데… 근데 UMC 같은 경우에는 (버벌진트 씨가 참여한다는 걸) 알고 했어요. 그래서 그 짧은 랩을 엄-청 고민해서 하더라고요. (전원 웃음) 어쨌든 간에 버벌진트 씨에게 그렇게 사과하는 걸로 마무리됐었죠. 최근에 어디서 만났더라… 아, 신승훈 선배님 콘서트 때 다시 만났는데, 그때도 되게 즐겁게 얘기 나누고 그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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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라디 씨가 따로 운영하시는 블로그가 있잖아요. 거기에 디스전에 대한 라디 씨 본인의 생각이 적힌 글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싶었던 게요. 글쎄요, 이걸 본질적인 거라고 말하기에는 2% 부족하고요. 그런 건 아니고 단순히 그냥 제 생각인데, (디스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재미있거나 우려하는 부분이 될 수도 있는데, 어쨌든 이 모든 게 상호작용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밀도가 높아졌다는 거죠. <쇼미더머니>를 포함한 그런 이벤트가 힙합 신의 어떤 부흥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바람도 있었고, 실제로 그 당시에는 그런 방향으로 진행될 것 같았어요. 여기서 조금 더, 싸움이 아니더라도 이걸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던 거예요. 본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누가 잘났나, 못났나를 논할 건 아니고 그냥 바람이었던 거죠. 나름 오래전부터 힙합 신에 관심이 있고, 신을 사랑하고 지켜봐 왔던 사람으로서 그런 것들에 대한 저의 욕심, 바람이에요.





LE: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당시에 버벌진트 씨에게 사과했다고 하셨는데요. 당시에 수상도 하셨었잖아요. 수상하면서 감회가 남달랐다든가, 어떤 감상이 있었을 것 같아요.

수상할 거라고 예상도 못 했어요. 그냥 어리바리하게 갔는데… 근데 진짜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고 그러더라고요. 그럴 줄 알았으면 옷 좀 잘 입고 갈 걸. (전원 웃음) 그냥 후줄근하게 작업하다가 쭐레쭐레 가서 앉아있는데, (수상자로 선정되니까) 되게 놀란 거예요. 얼떨떨한 그 상황에 무슨 멘트를 하라고는 하는데 준비된 게 없잖아요.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되게 썰렁하고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었던 것 같아요. 저 자신이 얼마나 싫던지… (웃음)





LE: 그렇게 2집 앨범으로 한국대중음악상으로 수상을 하신 이후의 이야기를 해볼 텐데요. 그 이후로는 외부작업이 많이 늘어나셨던 것 같아요. 메인스트림부터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까지 전반적으로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하신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함께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에 대해서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재미있게 생각하는 타이틀만 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부담되거나 조금이라도 싫었던 걸 한 적이… 그런 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모든 게 새로운 체험들이고, 경험들이니까요. 심심하지 않았어서 되게 좋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 앨범을 낸 이후의 제 포지션이 다시 프로듀서로 돌아왔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절반의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만족을 하고요. 순간순간 되게 재미있었어요.





LE: 딱 이분법적으로 메인스트림 시장, 언더그라운드 신이라고 정확하게 나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각 영역에서 작업할 때의 느낌이 좀 다를 것 같아요. 아이돌 회사 같은 경우에는 깐깐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이돌 회사가 깐깐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요. 오히려 연예인들이랑 작업하면 힘들어요. 아니, 힘들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기대치라든가, 팬덤이 장난 아니고 하니까요. 거기다가 회사 자체가 요구하는 수준도 굉장히 높다 보니까… 별달리 힘들었다기보다는… 쉽게 말해서 그거죠. 상호 간의 리스펙트인데, (회사 쪽에서) 더 리스펙트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그때부터 좀 힘들어져요.





LE: 아까 다이나믹듀오 분들과의 작업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2007, 8년 당시에 키비(Kebee) 씨와도 라디 씨 앨범에 "SP Collabo"로 한 트랙, 키비 씨 앨범에 "Constellation"으로 한 트랙, 이렇게 주고받으셨더라고요. 전반적으로 그 당시의 음악을 살펴보면, 라디 씨와 키비 씨의 감성이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한데요.

좋아하는 동생이에요. 음악적인 감성… 그럴 수 있겠네요. 얼마 전에도 전화가 왔는데… 한번 봐야 하는데 말이에요. 못 본 지 진짜 오래됐어요. 키비 항상 만나면 재미있고, 또 하나는 키비한테 제가 정말 고맙죠. 왜냐하면, 처음으로 레이블 시작할 때 이런저런 조언이나 도움을 많이 줬어요. 본인이 수장으로 있었던 소울 컴퍼니(Soul Company)가 있었잖아요. 본인이 가지고 있던 고충이나 겪었던 시행착오를 저에게 얘기해주면서 많이 도와주었던 고마운 친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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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다음으로 이야기해볼 외부작업으로는 아마 라디 씨가 메인스트림 시장에서 붐업이 된 계기가 됐던 아까 잠깐 이야기가 나왔던 나르샤 씨가 부른 "I’m In Love"가 있는데요. "I’m In Love" 이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인, 2PM의 앨범에도 연달아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게 확실히 제가 방금 얘기한 것처럼 나르샤 씨의 "I’m In Love" 영향이 있었던 건가요?

있었어요. 연쇄작용이었죠. 메인스트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수가 제 노래를 부름으로 인해서 그랬죠. 김연아 씨가 "I’m In Love"를 부르셨을 때는 소름이 돋았었고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광팬이니까… 김연아 씨…어우… 대단하잖아요. 연아 짱! (전원 웃음) 그래서 그런 연쇄작용 중에 여러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콜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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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다른 외부작업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면, 알렉스(Alex), 이승기, 원더걸스(Wonder Girls), 아이유(IU), 신승훈, 2AM까지, 많은 메이저 아티스트와의 작업이 있었어요. 그런 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서 지금의 소속사인 로엔트리와의 계약도 영향이 있었던 건가요?

저는 ‘Executive Producer’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일거리를 많이 줘야 해요. 프로듀서가 움직일 수 있게끔 해줘야 해요. 그런 면에 있어서 조영철 프로듀서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좋은 프로듀서에요. 끊임없이 고민거리를 던져주니까요. 그리고 도전을 하게 해주고… 영철이 형님이 로엔트리에 ‘Executive Producer’로 있었어요. 그러니까 로엔트리를 보고 들어간 게 아니라 그 형님을 보고 들어간 거죠. 당시에 제가 갈 수 있는 선택지로 YG 엔터테인먼트도 있었고, JYP 엔터테인먼트(JYP Entertainment)도 있었고, 벅스도 있었고, 되게 많았어요. 근데 그중에서 그나마 일을 같이 몇 번 했던 사람 쪽으로 기울더라고요. 돈이나 다른 것보다도 ‘내가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었던 거죠. 그리고 또 하나, 가장 중요한 것. 또 말씀 드리지만 리얼콜라보 활동을 보장받는 조건이었어요. 그래서 리얼콜라보 친구들 것을 케어할 수 있었어요. 노심초사해가면서… 어쨌든 다들 처음 내는 앨범들이니까 얼마나 긴장되고 하겠어요.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라고 해주면서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고… 그걸 하고 나서 제가 로엔트리에다가 감사한 마음으로 원래라면 앨범 한 장 반 계약인데, "고마워 고마워"라는 곡이 들어있는 미니 앨범을 추가시켰죠. 그래서 노래 제목이 고마워 고마워… (웃음) 약간 로엔트리 헌정 앨범. 로엔트리 차원에서도 뭔가 필요했었으니까요.





LE: 신승훈 씨와의 작업 같은 경우에는 대선배와의 작업이라서 어떻게 보면 다른 아티스트와의 작업보다도 더 뜻 깊고, 인상 깊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떤가요?

말씀하신 대로고요. 승훈이 형님과의 작업은 특히나 더 그랬었던 게 콘서트까지 갔었어요. 콘서트에서 둘이서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그렇게 자상하세요. 진짜 좋은 형님이에요. 그냥 좋은 동네 형님이에요.





LE: 그 당시에 신승훈 씨가 미니 앨범을 두 장을 냈었는데, 두 앨범 모두 신승훈 씨 본인 원래의 음악적인 성향보다도 조금 더 현대적인 느낌으로, 프로덕션을 세련되게 가져가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라디 씨도 앨범에 참여하셨던 것 같고요.

맞아요. 그랬죠. 선배들이 흔히들 안정적으로 가고 싶어 하잖아요. 근데 그런 것들을 요구하거나 소위 말하는 ‘태클’을 하지 않으시면서 마음대로 해달라고 부탁을 하셨어요. 그래서 전 마음대로 해서 드렸더니 좋아하셨어요. 신승훈 선배님 팬 분들도 좋아해 주셨고요. 같이 무대를 올라가니까 (팬 분들이) 그렇게 좋아해 주셨어요. "I’m In Love"를 선배님이 1절 부르고, 제가 중간에 들어가서 부르는데… 되게 재미있게 연출도 해가면서 불렀죠. 늘 사랑하는 선배님이고, 아직도 잘 지내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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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유재하 씨의 "가리워진 길"을 리메이크하기도 하셨는데, 이런 면면을 보면 한국 발라드 아티스트들에 대한 리스펙트나 호감도가 있으신 것 같아요.

그럼요. 솔직히 말해서 예전에는 많이 없었어요. 없었다기보다는 몰랐어요. 유재하 선배님도 그때 "가리워진 길"을 하면서 앨범을 처음으로 들었을 정도로 제가 약간 좀… 사대주의가 쩔어서… (전원 웃음) 음악을 처음 만들 때 어떤 생각을 했느냐면요. 국내 음악도 다 좋아하고 했는데도 굳이 왜 외국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결국 K-POP도 ‘K’를 걷어내면 팝이거든요. 팝은 우리나라 것이 아닌 거잖아요. 온전히 우리나라 거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오리지널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언제나 했어요. 이제는 라디 스타일이란 게 생겼지만, 그전에는 사실상 스타일이랄 게 있을 수가 없잖아요. 팝도 마찬가지로 어딘가에 영향을 받긴 했겠지만, 그 팝 자체가 오리지널리티가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요. 그래서 외국 음악을 많이 들었었죠. 그러고 나서 어느 정도 팝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오히려 다시 한국 음악을 듣게 되었어요. 어머니를 모시고 간 송창식 선배님의 디너쇼 라이브를 보고서 기립박수를 치고, 그때부터 선배님들의 노래를 찾아들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역으로… 그때야 ‘우리나라에 진짜 훌륭한 뮤지션들이 많구나.’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LE: 아이돌 회사의 연습생들의 보컬 트레이닝을 맡으신 적도 있으신가요?

아니요. 요청은 들어왔었는데, 제가 보컬 수업을 받아봤어야 하죠. (웃음) 방법도 잘 모르고… 프로듀싱같은 건 제한적으로 가르쳐줄 수는 있겠지만, 아직도 재미있어서 표현하는 단계지,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흥미가 있지는 않아서요. 그냥 우리 아티스트들에게 노하우 전수를 해주는 차원이죠. 나이가 많이 들고 해도 학원을 차린다든가, 아니면 선생님을 하고 그러고 싶진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죠.





LE: 혹시 노래는 가르침을 통해서 터득할 수 없다는 그런 지론이신가요?

굳이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냥 돈이 없어서 못 배웠을 뿐이에요. (웃음)





LE: 아무래도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셀프 프로듀싱 능력을 갖췄으면 하는 것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그런 프로듀싱하는 노하우는 알려줄 수 있지만, 어떤 노래의 감성을 레슨을 통해서 알려준다든가 이런 건 안 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계실 것 같기도 해서요.

지론이 있다고 하면 이런 거죠. 감성적인 부분은 절대 누구한테 배우거나 그런 게 아니고… 그래서 그냥 많이 연애하고… 절대로 작업실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음악도 하고, 필요하면 격한 뭔가도 해보고… 누구랑 사귀다가 바람도 한 번 펴보고… (전원 웃음) 이런 것들이 다 경험이잖아요. 감성이란 게 그런 데서 나오는 거지, 영화 보다가 나오고 그런 건 아니죠. 그것도 물론 어느 정도 있겠지만요. 그래서 경험을 많이 쌓으라고 얘기해요.





LE: 그게 곧 배우는…

그렇죠. 저도 실제로 알게 모르게 그래 왔던 것 같고요. 그리고 그 경험이 좀 지나야 안에서 익어서 열매를 맺지, 경험하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안돼요. 아시잖아요. (전원 웃음)





LE: 로엔트리와의 계약 이후에 나왔던 트랙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이전보다도 더 대중적인 코드가 있던 것 같기도 한데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로엔트리와의 계약이 얽혀 있는 건가요?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 그랬던 건가요? 좀 더 대중적으로 가셨던 것 같아서요.

맞아요. 대중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 내리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컬하잖아요. 대중은 진짜 모르는 거잖아요. 이렇게 갔다가도 그게 아니기도 하고, 어려워요. 근데 사실 굳이 그런 게 아니라 이것 또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걸 어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런 면도 있어요.’라고 하는 거죠. 저는 음악을 막 ‘아… 창작의 고통…’ 이렇게 안 하니까 그냥 나오는 걸 디벨롭시켜서 열심히 해서 들려주고 그러는 거죠. 제 노래 중에 유난히 이벤트 송이 많은 이유도 누군가를 위한 노래라는 게 즐겁잖아요. 예를 들면, 가인 씨와 함께했던 "Take Out"이라는 노래만 해도 그냥 커피숍에서… 그때 작업실이 자꾸 물이 새서요. (웃음) 커피숍에서 작업해야만 했던 시기에 작업을 하다가 해프닝이 하나 있었는데, 그걸로 금방 만들었어요. 그 곡을 여자 보컬과 듀엣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로엔트리 쪽에서 가인 씨와 연결을 시켜줬던 거죠. 아무튼, 등등입니다. (웃음)





LE: 그렇게 로엔트리에서의 활동을 이어오시면서 방송 활동이라든가, 아니면 실제로 표면에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주실 줄 알았는데요. 딱히 또 그런 건 아니고 음악만 릴리즈가 되고, 대단히 다른 활동을 하지는 않으셨더라고요.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이 특별히 없으신 건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요?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서 못하는 거예요. 카메라만 들어오면 표정이 확 굳어버리고… 많은 아티스트가 그러겠지만, 제가 방송 체질이 아니라는 걸 옛날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굳이 또 방송 쪽에서 부르더라고요. 거절하기 민망하게… (웃음)





LE: 근데 작년에 앨범이 발표됐을 때는 자문자답 인터뷰인 ‘CSI 시리즈’에도 참여하셨던데… (전원 웃음)

그건 로엔트리에서 편집빨로… (전원 웃음) 저 말 진짜 못했는데, 그날 다른 스태프들은 엄청 고생했어요. 편집의 힘으로 뭔가 진짜 그렇게 하는 것처럼… 저도 보면서 웃겨서 더 이상 못 보겠더라고요. 한번 보고 말았어요. 아이고… 아! 맞아요. 근데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었어요. 활동을 굳이 안 하는 이유라면 밥 먹으러 갔을 때 누가 알아봐 주는 건 좋아요. 고맙고요. 근데 좋고, 고마운 것에서 그치고 싶지, 귀찮아지고 싶지 않아요. 사생활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요. 차 타고 가는데 앞에서 말도 안 되게 끼어들면 욕도 하고 싶고요. (전원 웃음) 저는 제 삶에서 충분히 발언권을 획득하고 싶어요. 그것도 자유분방하게요. 욕심이 많은 거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거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알아봐 버리면…





LE: 그래도 가끔 알아보지 않나요?

가끔 알아봐 주세요. 그러면 ‘오, 저 진짜 아세요? 반가워요’ 이러고… (전원 웃음)





LE: 며칠 뒤에는 힙플쇼에 출연하시더라고요. 그 공연 같은 경우에는 알앤비 스페셜이라서 특별히 하시는 건가요?

용준이한테 전화 와서… (웃음) ‘라디야, 도와줘.’라고 하길래 알았다고 했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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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아무래도 힙플쇼에 출연하시면 아마 그 자리에서 국내 알앤비 아티스트 분들과 만나실 것 같은데요. 최근에 국내 알앤비 아티스트 중에 특별히 라디 씨의 눈에 띄는 아티스트가 있나요?

진보(Jinbo), 자이언티. 또 누가 있을까요?





LE: 크러쉬(Crush) 씨?

크러쉬. 너무 잘하고… 요즘 신인들이야 너무 잘하니까… 예를 들면, 이런 느낌이죠. 제가 처음 부산에서 춤을 췄을 때는 토마스가 굉장히 신기한 기술이었고, 나인티나인이 되게 신기했었는데, 요즘에는 하일라이저 등등 난리 나잖아요. (전원 웃음) 이제는 옛날에 고급 기술이라 불렀던 기술들이 너무 흔해진 거죠.





LE: 너무 잘해버리는 거군요?

그런 느낌이죠. 나름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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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다른 음악적인 이야기나 기타 다른 이야기도 좀 더 이어가 볼게요. 아까도 나왔던 이야기지만, 외국 알앤비는 사실 굉장히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이야기를 담는 경우가 많은데요. 라디 씨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알앤비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러한 내용이 거의 전무한 편이에요. 깨끗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내용으로 많이 채워져 있는데, 원채 음악적인 방향이 그러신 건가요? 아니면 그런 내용을 내 음악에서는 다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저는 가사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래요. 글 쓰는 것도 되게 좋아하는데요. 제가 그런 쪽의 어떤 생각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일단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제가 원색적인 삶을 살지를 않아서겠죠. 예를 들면, 클럽 같은 경우에는 연중행사에요. 1년에 한 번도 안 갈 때도 있고요.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도 말 그대로 럭셔리하게 놀지를 않았어요. 그리고 막 ‘Hooking Girls’ 하지 않았고, 그냥 동네 호프집에서 친구들이랑 소소하게 술 마시는 게 저의 삶이었어요. 늘 그랬는데 갑자기 갱스터 얘기를 한다든가, 그러지는 못하잖아요. 갱스터라고 해 봤자… 여기서 초, 중, 고등학교 때 싸움 안 해본 사람 있어요? 그 정도예요. 그 정도로 어렸을 때 지냈고, 실제로 누구 죽여본 적도 없고… (전원 웃음) 있는 이야기를 해야지, 거짓말을 하면 안 되잖아요. 어색한 거예요. 방송 나가서도 마찬가지로 기분은 긴장되어 있는데, 웃으면서 이야기를 못 하겠는 거예요. 근데 이번 앨범은 좀 다르긴 할 거예요. 원색적이라기보다는 좀 더 표현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근 1년 동안 되게 재미있게 살았었거든요. 그동안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어요. 스카이다이빙도 마찬가지고…





LE: 앞서도 얘기해주셨지만, 2000년대 초, 중반까지만 해도 원색적인 요소가 빠진 발라드 같은 노래들도 알앤비로 불리고 그랬었는데요. 물론, 외국 알앤비 노래 중에도 꼭 원색적인 내용을 담아내지 않으면서도 알앤비로 인정받는 경우가 있지만, 어쨌든 간에 라디 씨가 음악에서 그런 원색적인 내용을 안 다룸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알앤비 아티스트로 인정받은 게 음악을 정말 잘해오셔서 그런 것 아닐까 싶어요.

감사합니다. 이런 칭찬을 해주시고… 제 생일인가요? (전원 웃음)





LE: 최근 알앤비의 트렌드에 관련해서 얘기를 해보면, 근래에 위켄드(The Weeknd)나 미겔(Miguel)이나 프랭크오션(Frank Ocean) 같은 피비알앤비(PBR&B) 아티스트들이 대세이고, 트랩에 노래하는 경우도 늘고 있잖아요. 그런 트렌드에도 관심이 있으시고, 그런 트렌드를 본인 음악에 반영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없어요. 그냥 제가 못하겠어요.





LE: 그래도 관심은 있으신 거고요?

들어봤는데, 그렇게 큰 감동이 없었어요.





LE: 근데 뭔가 그쪽으로는 아닌 것 같은 거군요.

네. ‘굳이 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든 적도 있었어요. 하도 여기저기서 ‘약’한 비트에다가 하니까… 한번은 날을 잡아서 아까 말씀하셨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들어봤는데, 확 오는 뭔가는 없었어요. 표현하려면 할 수도 있는데, 아까 말씀 드렸던 것처럼 제가 그런 성향이 아닌데 굳이 억지로 하면 안 맞는 옷을 입는 것 같고… 그리고 또 이런 생각 하나.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잘하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뭘 더해. 남의 집에 들어가는 느낌. 그런 거죠. 아, 옛날에 그런 음악은 좋아했었는데… 트립합(Triphop)? 근데 솔직히 (피비알앤비가) 트립합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약간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트립합은 좋아했어요. 축축 쳐지는 비트에다가 하는 거… 목욕탕 사운드 좋아했었어요.





LE: 목욕탕 사운드… (웃음) 앰비언트, 공명감 있는 사운드를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렇죠. 그때 이미 한 번은 했었던 것 같아요. 장르라는 게 돌고 도는데 트립합에 한창 심취해서 그런 쪽의 음악을 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미련이 없나 봐요.





LE: 그런 뭔가 꼭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있으시겠지만, 라디 씨가 하시는 음악을 보면 전반적으로 템포가 슬로우 템포보다는 미디엄 템포인 경우가 많잖아요. 아무래도 그런 템포가 가장 편하신가 봐요.

네. 80, 89 BPM 되게 좋아해요. 거기서 표현할 만한 그루브가 되게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슬로우 템포도 좋아하긴 하는데… 이번 앨범에는 69 BPM도 있어요.





LE: 미디엄 템포가 주인 것도 그렇고, 사실 라디 씨가 구사하시는 창법이라든가, 음역대가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딱 본인이 추구하시는 스타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뭔가 더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든가, 한계점이 느껴진다든가 하는 생각은 없으셨나요?

더 새로운 거요… 갑자기 락을 할 수도 없고… (전원 웃음) 어떤 장르에 저를 가져다 놓고 가둬놓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은 저 자신에게 불만이 그렇게 크게 없나 봐요. 그리고 그 말인 즉, 제가 보컬에 대한 욕심이 어마어마하게 있지도 않은 걸 의미하기도 하고요. 음악을 그렇게 막 학문하듯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그때그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고, 또 만들다 보면 늘거든요. 노래도 하다 보면 늘고요. 1집보다 2집, 2집보다 지금이 더 늘어 있는 상태고요. 다만, 이런저런 포지션에서 많은 일을 하다 보니까 콘서트나 이런 것도 엄두를 못 내요. 시간이 없으니까요. 방송도 엄두가 안 나고… 노래 연습할 시간도 없고, 또 앨범 내고 나면 다른 데서 들어오는 곡 요청받고, 그거하고… 그러니까 욕심이 사치였던 것 같아요. 근데 아무튼 이번 앨범은 좀 다르긴 할 거예요. 2집이랑 또 다른 느낌.





LE: 이벤트 송을 많이 하셨다고 말씀을 조금 전에 해주셨는데요. 본인 노래가 결혼식 축가로 많이 쓰이고, 또 본인도 본인 노래를 축가로 많이 부르신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냥 만들어놓고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쪽으로 활용되는 것 같아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노래고 하니까요.

그렇죠. 1대1이 다수 대1이 되는 건데, 그러네요. 제가 이 표현을 되게 좋아하는데, ‘같은 토대를 공유한다.’. 같은 토대를 공유하는, 그런 에너지가 있는 곡으로 생각해주셔서 감사하죠. 저는 그냥 누군가에게 프로포즈한다고 만들고, 기쁘게 한다고 만든 노래를 토대로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게 굉장히 기쁘고, 재미있고, 좋아요. 어버이날이 되면 사람들이 "엄마"를 부르고… (웃음)





LE: 보편적인 감성을 좋은 노랫말로 표현하셔서 다들 그렇게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다들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성을… 네. 좋은 말씀이네요. 기분 좋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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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얘기를 좀 하고 싶으셨을 것 같은데, 곧 발표될 세 번째 정규 앨범에 관해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일단은 전반적으로 어떤 앨범인지 소개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1집과 2집의 연장선이라는 느낌보다는… 1집과 2집이 달랐듯이 2집과 3집도 다를 거예요. 그리고 훨씬 더 자연스러워졌을 거예요. 사운드부터 해서 모든 것들이 그럴 거예요. 1집 때보다 2집 때가 사운드 감각이 더 좋았고요. 2집 때보다 지금이 더 사운드 감각이 좋아요. 사운드라는 말을 자꾸 하는데, 앨범 제목이 ‘Soundz’예요. 정말 많은 소리를 담았어요. 트랙마다 고유의 소리가 있고요. 예를 들면, "Hawaii"라는 트랙이 있어요. 거기에는 진짜 하와이 전통 악기가 들어가요. 우쿨렐레부터 시작해서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 각종 타악기까지… 훌라춤을 출 수 있는 그런 느낌을 자연스럽게 녹여냈어요. 그리고 한 두 트랙 정도는 약간 진지한 주제들. (곡에) 파도 소리가 들어가요.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노래가 중간에 들어갈 거고요. 선공개된 "Fly Away"라는 노래에서는 항공기 소리, 바람 소리가 많이 들어갔죠. 또, 어떤 트랙에서는 한숨 소리… 그 한숨 소리가 남자라면 다 공감할만한 한숨 소리예요. (전원 웃음) 아까 말씀 드렸던 69 BPM의… 안타까움의 한숨 소리죠.

기본적으로 앨범 제목인 ‘Soundz’가 담고 있는 의미 중 하나가 이제는 제가 너무나도 자신감이 생겨버렸어요. 옛날에는 외국 음악의 사운드 퀄리티를 동경했었어요. 근데 지금은 제가 우위에 있거나 동등한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자신감이에요. 그걸 보여드리고 싶고, 실제로 별다른 하드웨어 없이 인터널 믹싱으로도 그 정도까지 왔어요. 자신 있게 보여드릴 수 있어서 앨범 제목이 ‘Soundz’에요. 그리고 한 트랙, 한 트랙 언제나 그랬듯이 경험담이고, 보다 더 ‘자유’라는 주제에 가까워졌어요.





LE: 선공개된 "Fly Away"라는 트랙을 들어보면, 확실히 사운드 자체가 좀 더 입체감이 있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전반적으로 소리 자체에 집중을 많이 하신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LE: 그러면서도 뮤직비디오를 보면 스카이다이빙이라는 소재와 곡을 결합시키면서 주제적인 부분도 확실히 잡아가시는 것 같아요. 그 두 가지 모두를 잡으려고 하신 것 같아요.

네. 그렇죠. 욕심이 많으니까요.





LE: "Fly Away"는 확실히 흥미로운 것 같아요. 정확히 작업 순서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스카이다이빙을 상상하고서 트랙을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만드신 건가요, 아니면 다른 순서로 만드신 건가요?

한 4년 전에 만들어놨던 비트에다가 갑자기 ‘Fly Away’라는 주제가 생각나서 훅부터 만들었어요. 그렇게 훅을 만들고 나니까 되게 재미있는 거예요. 가사 작업을 할 때 펜션을 가는데, 펜션 가서 가사 작업을 했죠. 그러다가 1절 작업을 마치고 나서 회의를 했죠. 이런 노래가 나왔는데, 어떻게든 이 노래로 붐업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 안에 제가 어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Fly Away”의 보컬은 일부러 거친 느낌을 내기도 했어요. 2집 때와는 다르게요. 그래서 1집 때의 팬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기왕이면 그 팬 분들에게 2014년의 저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제가 직접 영상에 출연하고 싶어서 뭐가 좋을까 회의를 하다가 아까 얘기했던 저희 회사의 디자이너로 있는 제 여동생이 스카이다이빙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오빠를 사지로 내모는 거죠. (전원 웃음) 얼마나 많이 당했으면… (웃음) 그래서 무심코 OK했는데, 막상 하려니까 무서웠죠. 몇 번 죽을 뻔했어요. (웃음) (스카이다이빙하는 게) 뮤직비디오 촬영의 목적이 있으니까 온전히 그걸 즐길 수가 없는 거예요. 주어진 시간 내에 해야 하고, 연출하는 뮤직비디오 감독이 요구하는 것에 부응해야 하는데… 그래서 그게 힘들었어요. 근데 결과적으로는 잘 나왔죠?





LE: 훈훈하더라고요. (웃음) 혹시 3집 앨범에 대해서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신가요? 이런 걸 중점적으로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등등…

3집 앨범의 제목을 ‘Soundz’로 하기 전에 어떤 걸로 할까 굉장히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2집 때도 마찬가지였지만요. 그렇게 고민을 하는 와중에 나왔던 것 중 하나가 ‘Pair’라는 것도 있었어요. 한 쌍을 뜻하는 거죠.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면,) 1번 트랙과 2번 트랙이 연결되어 있고요. 그다음에 5번 트랙과 6번 트랙이 연결되어 있고, 그렇게 두 개씩 연결되어 있어요. 결국에는 모든 아티스트가 앨범을 낼 때 생각하는 ‘일원화’. 하나의 노래. 모든 트랙이 뭉쳐서 앨범이 하나의 노래가 되는 것. 이걸 그 어느 앨범보다도 잘 표현했어요. 그래서 그게 포인트에요. 한 곡처럼 들어주셔도 부담 없을 정도의 분량이고요. 언제나 12트랙이에요. 제가 12라는 숫자에 대해서 되게 애착이 있어서요. 군대 전역일이 12월 12일… (웃음) 여자친구랑 1월 12일에 만나고 헤어지고… 12 트라우마가 있어요. (웃음)





LE: 인터뷰가 막바지에요. 저희 힙합엘이는 평소에 자주 오시나요?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솔직히 뮤직비디오 보러 많이 가요. 최신 뮤직비디오가 다 있으니까요. 그리고 글 퀄리티가 너무 좋잖아요. 볼거리, 읽을거리가 많아요. 아무튼, 되게 멋있는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는 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나서 반가워요.





LE: 저희도 사실 2012년부터 라디 씨를 인터뷰 후보로는 항상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면 좋을 것 같은데…’라고 계속 생각하다가 인제야 오랜만에 보컬 분을 한 번 인터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마침 또 앨범이 나온다고 하시니까… 그리고 그 2년 동안 이야기할 거리가 더 많이 생긴 것 같아서 인제야 만나 뵈었지만, 또 적절한 타이밍에 만나 뵌 것 같아요.

네. (웃음) 아무튼 반갑습니다.


보니엠.jpg


LE: 말씀하신 대로 저희 사이트에 최신 뮤직비디오가 많이 올라오고 하다 보니까 힙합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편에 속하는 사이트라고 볼 수 있는데요. 트렌드에 가까운 음악을 포함해서 요즘 어떤 아티스트의 어떤 음악을 많이 들으시는지 궁금해요.

물론 트렌디한 음악도 많이 듣긴 하지만… 나이를 그렇게 많이 먹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 클래식한 걸 좋아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오리지널. (트렌디한 음악들이) 항상 기준이 되는 베이직한, 클래식한 것들에서 파생되어 나온 거니까… 그래서 오히려 요즘에도 에리카바두, 마마스건(Mamas Gun)… 로린힐(Lauryn Hill) 이전의… 그리고 로린힐도 전 문화가 만들어낸 꽃이라고 생각하고요. 그 꽃을 피워낸 씨앗들을 좋아하는 거죠. 보니엠은 여전히 듣고 있고요. 제 아들도 보니엠에 꽂혀서… 지금 만 3세인데… (웃음)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춤 추고…





LE: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도 들어보고 싶은데요. 앞서도 계속해서 얘기해주신 것 같지만, 리얼콜라보를 어떤 회사로 만들어가고 싶으신지 궁금하고요. 사장님으로서의 계획이랄까요? 또, 뮤지션으로서의 계획까지 말씀해주세요. 거시적인 계획도 좋고, 미시적인 계획도 좋습니다.

어렵게 생각되어 왔던 것들을 현실에서 푸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게 됐어요. 마치 제가 처음에 음악을 시작했을 때, 믹싱이란 거를 최초로 알았을 때, 너무나도 멀어 보이고 막막해 보였던 것들을 지금은 제가 너무나도 자신감 있게 해가고 있으니까요. 그런 것처럼 리얼콜라보도 처음에는 너무 막막했고, 심지어 어디다 중심을 두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근데 드디어 정체성이나 방향이 정해졌어요. 어차피 1, 2년 하다가 말 거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갈 거라는 각오가 있었던 만큼 지금은 많이 탄탄해졌어요. 실무진들도 그렇고, 제 마음도 그렇고요. 지금까지 나름 잘 성장해왔고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게 될지 장담은 못 하겠지만, 하나는 확실해요. 제재하지 않아요. 흐르는 대로… 그렇다고 해서 방관하지도 않을 거고요. 관심, 애정을 가지고서 꾸준하게, 즐겁게, 그리고 말이 되게. ‘재미’와 ‘합리’. (웃음) 저의 모토 안에서 그렇게 꾸준하게 성장해 나가는 걸 볼 거예요. 그리고 제 음악도 마찬가지로 다르지 않아요. 제가 또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가 아까 잠깐 얘기했던 ‘일원화’인데요. 하나는 열이고, 부분은 전체를 대표하는 거죠. 같은 메커니즘 안에서 모든 것들이 돌아갈 거예요.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를 그렇게 협소한 의미로 두고 싶지 않아서요. 언젠가 리얼콜라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레이블 중에 하나가 될 거예요. (웃음)





LE: 올해 리얼콜라보에서는 어떤 아티스트가 결과물을 낼 예정이라는 계획 같은 것도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텀을 두고 소속 아티스트들인 브라더수, 디어, 시애나, 나래, 러비 모두가 각각 다양한 형태로 기획을 진행 중이고요. 지금까지 한 번씩 앨범을 냈던 친구들의 앨범이 이번 연도에 다 하나씩 나올 거예요. 올해 하반기, 내년 초까지 해서 앨범 단위로 계속 나올 거예요. 본인들이 또 계속 앨범을 고집해요. 역시 음악하고 표현하는 친구들이라…





LE: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 한 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인터뷰 소감 등등 자유롭게 얘기해주세요.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서 준비를 굉장히 치밀하게 잘해오셔서… 거의 안 한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그것보다는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역시 이래서 양질의 콘텐츠들이 올라오는구나.’ 싶었어요. 치밀하고 꼼꼼하시구나…





LE: 저희가 인터뷰를 준비할 때는 저희가 알고 있고 찾아볼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쏟아 붓는 편이라서… (웃음)

그렇군요. 보통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질문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확실히 다르긴 다른 것 같네요. 젊은 감성이…





LE: 인터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관련링크 |
라디 블로그: 링크 / 페이스북: Ra.D1212
리얼콜라보 공식 홈페이지: 링크 / 트위터: @RealCollabo  / 페이스북: rc.realcollabo
로엔트리 공식 홈페이지 (라디 페이지): 링크



인터뷰, 글 | Melo, Bluc
인터뷰, 사진 | Bluc, 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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