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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마 (SOMA)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9.04.18 17:00조회 수 7985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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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인상 깊은 결과물이 쏟아지는 한국의 알앤비/소울 씬. 올해 상반기 역시 많은 아티스트들이 앨범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드러냈다. 그중 소마(SOMA)는 앨범 [SEIREN]을 통해 심해에 기반한 세계관을 음악으로 그려냄은 물론, 개인의 이야기를 가사 속에 녹여내어 많은 이들의 공감과 찬사를 끌어냈다.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아티스트임을 첫 앨범으로 훌륭하게 스스로 증명한 소마. 그렇다면 앨범 속 바다를 닮은 그의 목소리와 음악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다사다난했던 데뷔 이전 시절부터 솔로 아티스트로 거듭난 지금의 모습까지, 소마의 모든 이야기가 이 인터뷰 안에 진득하고 세세히 담겨 있다.



LE: 우선, 힙합엘이 회원분들께 간단한 인사 부탁드릴게요.

S: 안녕하세요, 싱어송라이터 소마라고 합니다.





LE: 일단, 성황리에 단독 공연 마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정규 앨범도 발표했고, 공연도 마치고 난 뒤라서 뭔가 큰 산을 넘으신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한데요.

사실 앨범을 만들면서는 엄청나게 큰 산이라고 느껴졌는데, 막상 내고 나니까 별것 없는 것 같아요. (웃음) 오히려 조금 허탈한 느낌도 들어요.





LE: 그래도 앨범을 1년 동안이나 준비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워낙 기간이 길었으니까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아요.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토론토를 갔는데, 거기서 처음 촬영하는 날 제가 쓰러졌어요. 태어나서 처음 쓰러져 본 거거든요. 그때 ‘내가 이 정도로 이번 앨범에 에너지를 많이 쏟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데뷔 이후로 계속 EP를 발표하면서도 이 정도로 힘든 적은 없었는데, 지금까지 앨범을 만들면서 큰 에너지를 쓴 적이 없었던 거구나 싶었죠. 한편으론 그래서 (이번 앨범이) 뿌듯하기도 하고요.





LE: 1년의 기간 동안 계속 조금씩 작업을 하신 건가요? 아니면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앨범 작업이 진전된 건가요? 

사실 1년이라는 기간은 제가 머릿속에 앨범을 구상한 시기부터 지금까지를 통틀어서 칭한 거예요. 다른 EP를 내면서도 계속 이 앨범을 생각해 온 거죠. 'SEIREN'이라는 타이틀도 정했었고요. 심지어 곡이 안 나왔을 때도 곡에 쓸 이야기들은 다 정해놨었어요. 그리고선 하나 하나씩 (곡들을) 계속 모은 것 같아요. 원래 EP를 낼 때는 곡을 엄청 빨리 만드는 편이거든요. 4~5곡이라고 치면 거의 일주일 내에 가이드 녹음을 끝낼 정도예요. 원래는 그 정도로 작업을 빨리했는데, 이번엔 여유를 갖고 하나하나 천천히 작업에 임했던 것 같아요.





LE: 인터뷰 초반이니 SNS 활동에 관한 가벼운 질문도 해보고 싶네요. 팬분들을 '솜떵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웃음) 별명도 붙여줄 정도로 SNS를 통해 소통을 자주 하시는 것 같아요. 팬분들과 소통을 적극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당연히 제 팬이니까 (소통을) 좋아하는 것도 맞고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해요. 제가 처음으로 무대에 섰던 공연이 오르내림(OLNL)이랑 같이 진행했던 콘서트인데, 그때 왠지 모르게 ‘다 제원이(오르내림)를 보러 왔다’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제 팬분들도 계셨지만, 나를 보러 온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 했어요. 그러다가 제 단독 콘서트를 열었는데, 관객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기분이 엄청 이상했죠. ‘이 사람들이 다 나를 보러 왔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행사라도 가면 지방까지 저를 보러 오시는 분도 계셨고요. 그렇다고 제가 이름을 다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니고. 돈도 내가 받고. (전원 웃음) 그런 생각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팬분들을) 챙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없으면 난 없겠구나. 그러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막상 해드릴 수 있는 게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팬분들이 뭘 원하실까 생각하다가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게 된 거예요. 아무래도 제가 TV에 나오고 하진 않으니까요.




LE: 안 그래도 채널에 올리신 여러 콘텐츠를 재미있게 봤어요. 여성분들을 위한 뷰티 콘텐츠도 인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제 화장과 관련한 DM을 많이 받았어요. 화장법이랑 화장품 뭐 쓰는지. 그런 것 때문에 사실 단발성으로 만든 거였어요. 인스타그램에 일일이 다 적는 것도 웃길 거 같고 해서… (웃음)





LE: 본격적으로 음악 얘기를 한번 해 볼게요. 다른 인터뷰에서 보니 소마 씨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언급하셨더라고요. 그런 나이대가 꿈꾸곤 하는 흔한 장래 희망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떤 특별한 계기가 혹시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에 음반 샵을 간 적이 있어요. 그게 아마도 부모님 동행 없이 나가는 첫 외출이었어요. 버스를 30분 이상 타서 시내까지 나갔어요. 뭔가 어른이 된 느낌도 들었고, 돈도 있던 상황이라 멋있어 보이는 장소를 찾다가 음반 샵을 간 거죠. 거기서 스위트박스(Sweetbox)와 어셔(Usher)의 CD를 샀어요. 어셔는 앨범 자켓이 멋있어서 샀던 것 같고, 스위트박스는 인터넷으로 어느 정도 들어봐서 산 것 같아요. 그때 어셔를 처음 듣게 됐고, 듣다 듣다 “My Boo”를 알게 되었고, 앨리샤 키스(Alicia Keys)를 접하게 됐죠. 앨리샤 키스의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뭐랄까, 노래라는 걸 이렇게 하는 거구나,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 그래서 그때 막연하게 앨리샤 키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다른 장르의 영향도 있었어요. 사실 그 당시에는 알앤비보다 힙합을 더 많이 들은 것 같아요. 50센트(50 Cent)의 “Candy Shop”을 접하면서 힙합에 빠졌어요. 따지면 앨리샤 키스보다 더 충격이었죠. '이런 장르가 있을 수 있나? 와, X나 멋있다’ 더 나아가서 꼬맹이 주제에 ‘촌 바닥에서 이런 음악을 듣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어요. (웃음) 그리고 언젠가 미술 시간에는 어셔 CD에서 본 상반신 탈의 사진을 그렸어요. 애들이 누구냐고 물어봤죠. 그러면 전 ‘너희 모를 텐데…? 어셔라는 외국 가수야’ 이러고. (전원 웃음) 그러면서 흑인음악 자체에 빠져든 거죠.





LE: 어릴 때부터 앨리샤 키스랑 어셔를 롤 모델로 삼았다니, 그때부터 지금의 모습이 예정되어 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사실 그때는 랩을 듣는 걸 훨씬 좋아했었는데, 랩 하는 건 관심이 없고 어쨌든 노래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피처링 가수가 꿈이었어요. 그때는 여자 알앤비 가수가 힙합에 끼어들려면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었고요. 처음부터 단독으로 가기에는 힘들다. 앨리샤 키스는 아예 알앤비 가수였고, 난 힙합 하고 싶은데 알앤비도 하고 싶은 거니까. 그래서 곁다리로 들어가는 전략을 생각한 거죠. (웃음) 고등학교 때는 오버클래스(Overclass)에 들어가는 게 꿈이기도 했고요.





LE: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가수의 꿈을 가지고 있었으니 예전 녹음물이 많이 남아있을 것 같기도 해요.

아쉽게도 기록해놓은 게 거의 없어요. 그 어릴 때부터 제가 생각했던 게, ‘흑역사를 만들지 말자’ (전원 웃음) 그런 생각을 태생적으로 빨리 시작한 것 같아요.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것도 안 나간 거고요.





LE: [Kid’s Dream]에 어린 시절 노래를 불렀던 녹음 파일이 수록되었는데, 그나마 남아있는 몇 개 중에서 하나를 쓴 건가요?

사실 그거 딱 하나가 남아있던 거였어요. 그게 엄마를 위한 깜짝 생일 선물이었는데, 제가 어릴 때도 잔머리가 엄청나게 잘 돌아간 게 돈으로 엄마를 감동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어쨌든 엄마 돈인 거니까. 그래서 '어떻게 감동하게 하지?’ 생각하다가 카세트테이프에 노래를 녹음해서 선물했어요. 실제로 엄마는 그걸 듣고 울 정도로 감동하였고, 그걸 지금까지 보관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 이후로 매해 엄마, 아빠, 할머니한테 다 하니까 이제 감동을 안 받더라고요. (전원 웃음) 그러다가 그만두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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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혹시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음악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나 애정을 쏟으시는 분이 있나요?

사촌 언니, 오빠 정도는 한 번 발 들였다가 빠져나온 거로 알고 있는데, 가족 중에는 아빠가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진짜 잘하세요. 노래방도 되게 좋아하시고. 그래서 저랑 아빠가 엄마, 동생과 완전 반대라서 항상 노래방을 가자고 꼬셨어요. 관객이 필요하니까. 





LE: 그러면 음악을 한다고 선언했을 때 가족분들의 반응이 어땠을지도 궁금한데요. 아무래도 아버지는 지지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되게 얘기하기가 애매해요. 제가 여섯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따지자면 학교에서 그림 제일 잘 그리는 애 포지션이었죠. 그래서 장래 희망 칸을 채울 때도 애들이 저한테 굳이 물어보지 않고 화가라고 써넣을 정도였어요. 어쩌다 보니 화가가 꿈인 채로 지냈죠. 그래서 부모님은 제가 그림 말고 다른 걸 할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하셨어요. 그래서 엄마가 걱정하기도 했어요. 제가 힙합을 엄청나게 들었는데, 그 당시에 힙합을 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악의 길로 빠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던 거죠. 엄마 입장에서는 알아듣지도 못하겠는데 음악이 어둡고, 화내고 이러니까. (웃음)

그렇게 걱정하시던 와중에도 음악을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셨어요. 사실 저도 부모님께 음악을 하겠다고 말하려면 스스로한테 어느 정도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확신이 들 때까지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노래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중1 즈음 엄마한테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엄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 거미의 “거기 그대로”라는 노래를 엄청 연습했고, 아직까지도 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만들어졌어요.





LE: 어떤 에피소드인가요?

해가 푸르스름하게 질 때, 집에 빛이 하나도 안 들어올 때 불을 다 끄고 거실에 앉아서 엄마를 기다렸어요. 엄마가 오자마자 놀래서 “왜 불을 다 끄고 있냐?”라고 물었는데 꿋꿋이 “엄마, 잠깐 소파에 앉아보세요.” 이랬어요. 그렇게 앉힌 후에 TV로 “거기 그대로”를 틀고, 불이 다 꺼진 상태에서 엄마를 등지고 노래를 불렀어요.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그랬는지 엄마는 일단 가만히 계시더라고요. 아무튼 그렇게 완창을 하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돌아보니까 엄마가 “이제 불 켜도 되니?”라고 물어보셨죠. 제가 “네”라고 대답한 다음에 불이 켜졌고, 엄마한테 “어쩌라고?”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전원 웃음) 엄마도 엄청 당황한 거죠. 그때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고백을 했는데, 예상 외로 부르고 싶으면 부르라는 쿨한 대답이 돌아왔어요. 제가 생각했던 시나리오 중 어느 쪽도 아니었던 거예요. 사실 제가 갑자기 진로를 튼다고 말한다고 놀라실 분도 아니시긴 해요. 어쨌든 그 이후로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까지 흘러오게 됐어요. 





LE: 그러고 보니 소마 씨가 경상남도 진해 출신으로 알고 있어요. 사실 진해도 바다와 밀접한 지역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바다가 소마 씨의 삶이나 음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사실 (영향이) 전혀 없어요. 우선, 제가 태어난 곳은 부산인데, 11살까지 부산에서 살았고, 건너와서 20살 때까지 진해에서 살았어요. 그것도 되게 애매한 게 (제가 사는 데가) 진해와 부산의 경계였고요. 사실상 부산 사람에 가까운 거죠. 진해 시내는 사실 손에 꼽을 정도로 가 봤을 정도고, 머리가 큰 이후로 진해에서 지낸 건 맞으니까 진해 출신으로 소개를 하는 거예요. 사실 진해 지리도 저는 잘 몰라요.

흔히 생각하는 해수욕장 같은 바다는 생각보다 저와 가깝지는 않았어요. 기껏해야 근처에 수산물시장이 있는 거 하고, 친구들의 부모님 중 수산업을 하시는 분들이 꽤 계셨던 거?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건 학교 운동장 바로 앞에 갯벌이 있었어요. 그래서 현장 체험학습 같은 걸 나가면 운동장 건너 갯벌에서 쓰레기 줍고, 게 잡고, 엄마 아빠랑 주말에 딱새우 잡고 그랬어요. 그런데 음악적으로 제가 표현하는 건 심해에 가깝잖아요. 영화나 책으로 받은 영향이 훨씬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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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바로 서울로 올라오게 된 거로 알고 있어요.

제가 어릴 때 노래를 부르면서 들었던 생각이, ‘YG 엔터테인먼트(YG Entertainment, 이하 YG)면 간다’ 이 생각이었어요. 일종의 가오였던 거죠. 그 당시에 힙합이란 걸 제대로 다루는 레이블이 YG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더 크고 나서는 정글 엔터테인먼트도 멋있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어쨌든 지금 제 상황은 X 됐지만… (전원 웃음) 아무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 즈음에 YG에서 6년 만에 공개 오디션을 열었어요. 그래서 단번에 지원했고, 제가 뽑힌 거죠. 사실 그 일 때문에 서울로 바로 올라오게 됐어요.





LE: 그러면 서울에 오고 나서 바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셨겠네요.

네, 근데 사실 엄청 짧게 했어요. 3개월 정도? 그때 제가 전국에서 혼자 뽑혔었는데, 그래서 부담이 되게 컸어요. 공개 오디션이라는 기사도 떴고, 이름도 공개됐고, 제 사진도 인터넷에 다 퍼지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준 연예인의 맛을 본 거죠. (웃음) 근데 YG에서 연습생을 해보니 제가 동경했던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돌이면서도 뭔가 제대로 된 음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음악을 잘하고 싶고, 노래를 잘하고 싶어서 연습생 생활을 했던 건데… 특정한 노래를 잘 부르게 훈련을 받는다고 할까요? 춤도 춤 자체가 느는 게 아니라, 특정 안무를 잘 소화하게끔 가르치더라고요. 덕분에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게 아이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저는 뭔가를 누가 시키는 대로 절대 못 하는 성격이에요. 체질적으로 전혀 안 맞았고, 스무 살의 패기 때문인지 바로 그만두게 됐어요. 그 이후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어요. YG가 유일하게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회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걸 느낀 후로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차라리 그냥 보컬 트레이너가 되든지 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어요. 그러면서 음반 샵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제가 그때 YG랑 큐브 엔터테인먼트(Cube Entertainment)에 동시에 합격했었거든요. 그런데 저랑 큐브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을 함께 봤던 얼굴이 뮤직비디오를 틀어 놓는 화면에서 나오는 거예요. 에이핑크(Apink)의 은지였어요. 그때 느낌이 되게 이상했어요. 가수의 꿈을 아예 접으려고 했는데 다시 (가수에 대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 이 나이가 지나가면 아이돌이든, 아티스트든 아예 꿈도 못 꿀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나 정도면 다른 사람들보다 가능성이 있을 거라 느끼기도 했고, 스무살이니 아직 해 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그래서 엄마한테 딜을 제안했어요. 서울 고시원에 살면서 한 달 동안 오디션만 보겠다. 한 달 안에 대형 기획사 못 가면 다시 내려오고 엄마가 하라는 대로 살겠다고요. 그렇게 올라간 지 이틀인가 만에 어떤 회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근데 또 사흘 만에 나왔죠. 들어갈 때부터 저랑 부딪히는 부분이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LE: 무엇이 문제였나요?

거기가 기독교 회사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제가 들어갔던 회사들이 지금 다 난리가 났네요. (웃음) 저한테 첫날 여기서는 성경 공부를 하는데, 제가 만약에 다른 종교가 있다든지, 무교면 듣지 않으려면 안 들어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전 무교니까 안 들어야겠다 싶었는데, 우르르 와서 (성경 공부를 하러) 다 들어가는 거예요. 분위기상 들어가야겠다 싶어서 저도 들어갔죠. 근데 진짜 성경 공부인 거예요. 통기타를 멘 아저씨가 들어와서 빈 곳 채우는 문제지 같은 걸 나눠주는 거예요. 대학교에서 쓰는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서 그 문제를 풀면, 그분은 앞에서 통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고. ‘이게 뭐지?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싶어서 충격에 휩싸였죠.

동시에 연습생들 사이의 텃세랑 위계질서도 존재했는데, 그게 짬 순인 거예요. 전 그런 문화가 이해가 안 됐어요. 만약 가수가 저희한테 그러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는데. (연습생 사이에서 텃세를 부리는 데다가) 나이순도 아니고 이해가 안 되니 회사에 찾아갔어요. 저희를 담당하는 매니저한테 “왜 짬 순으로 질서가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했어요“회사 측에서도 우리가 다 잘 되는 게 중요한데 왜 (짬이 찼다고 연습생이) 우릴 괴롭히는 걸 보고 가만히 있느냐? 난 이걸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는데, 돌아온 답변이 “여기 질서가 그렇기 때문에 네가 받아들여야 한다”였어요. 그래서 전 안 하겠다고 하고 나왔어요. 

나와서 다른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 회사가 스타덤 엔터테인먼트(Stardom Entertainment)이었어요. 그 회사에서 1년 정도 가장 오래 있었는데, 그때 숙소 들어가는 날 기다리면서 계속 고시원 생활을 하게 된 거죠. 그러다 회사에 큰 일이 터지면서 데뷔가 힘들다는 소문이 돌면서, (제 인생에서) 평생 최고로 힘든 시기를 보냈던 다른 회사로 넘어가게 됐어요. 그저 데뷔에만 목을 매던 저에게 1년만 버티면 하고 싶은 음악을 시켜주겠다 했었거든요. 하지만 결국엔 거짓말이었어요. 그리고 회사 내에 믿기 힘든 문제가 너무 많았어요. 결국 집안의 기둥을 뽑아가면서 위약금 몇 천만 원을 물어주고 회사를 나왔어요.





LE: 어린 나이에 그런 일들을 이겨내느라 힘드셨을 거 같아요. 그래도 소마 씨의 음악을 이렇게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생각해보면 소마 씨의 본격적인 커리어 시작은 베리(VERRY)로 보여요. 

실질적으로 이 씬에 뛰어든 건 베리라는 듀오 때부터였지만, 전 그 커리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저의 지금이 있을 수 있게끔 해준 다리긴 하지만요. 사실 그때는 진짜 있어 보이는 거 아무거나 해서 하나라도 빨리 내자는 식이었어요. 왜냐하면 그때 엄청 힘들었거든요. (시나(Sina)라는) 친구랑 뭐라도 시작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싶어서 하게 되었는데. 결과물 자체는 별로고 구려요. 그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가사에도 영혼이 하나도 없고, X나 병신같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가사인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LE: 그러고 보니 2016년에 소마라는 이름으로 사운드클라우드에 레게 가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앤 피블스(Ann Peebles)나 샤데이(Sade)의 기존 곡을 레게 스타일로 재해석해서 내놓으셨는데요. 그때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레게에 관심이 컸던 건가요?

그런 것보다 저는 누군가 제 음악의 장르를 물어봤을 때, 소울이라고 말해요. 사실 장르라는 게 되게 어렵고, 애매하잖아요. 이름 붙이기 나름이니까 얼터너티브라는 말도 생겼고요. 어쨌든 저는 노래를 부르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고, 제가 노래하는 모습을 생각해봤을 때 소울을 가장 중점에 두고 노래를 하는 사람이에요. 소울을 직역하면 사실 영혼이란 뜻이잖아요. 장르가 소울이라는 말도 좀 이상한 건데, 딱 잘라 정의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거죠. 앨리샤 키스는 제가 진짜로 소울 음악을 한다고 느낀 사람 중 한 명이에요. 모든 힘을 다해서 노래하는 느낌이 나고, (그 힘이) 나에게 온전히 전달돼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소울 음악의 끝판왕 중 하나가 레게라고 생각했어요. 레게라는 음악 자체의 특성도 있고, 어떤 노래를 해도 사실 악기 때문에 레게가 되는 거거든요. 저는 그냥 노래하는 거고, 악기라는 주변 친구가 레게로 만들어 주는 거죠. 브라스가 커진다든지 하면 트로트가 될 수도 있죠. 그래서 그걸 두고 제가 어떤 장르의 아티스트라 생각하진 않아요. 전 처음부터 소울을 노래 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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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리고 이듬해에는 첫 EP [Somablu]를 발표하셨어요. 첫 솔로 결과물이었던 만큼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을 거 같아요.

그때는 뭐든 빨리 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해소 욕구인 거죠. 그래서 실제로 [Somablu]를 만드는 기간이 아주 짧았어요. 공백이 되게 길었을 뿐이에요. (그전까지) 1년 정도 넘게 진짜 게으르게 살았거든요. 게으르게 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진짜 노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전까지는) 곡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곡 쓰는 거 자체는 스타덤 엔터테인먼트에 있을 때부터 훈련해오긴 했지만, 거기서는 벌스 가사 쓰고, 탑 라인 쓰는 걸 훈련했어요. 비트 찍는 것도 곁다리로 봤죠. 전 악기를 하나도 다룰 줄 모르지만, 제 목이 악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이 악기를 잘 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어요. 노래는 진짜 자신 있게 할 수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커버 곡밖에 없다는 생각에 게을러졌어요. 더 해봤으면 뭐라도 금방 했을 텐데. 

어쨌든 그 이후에 조금이나마 빨리할 수 있게 밀어준 게 지금의 똘배 오빠였어요. 저도 1년 좀 지났을 때는 오빠한테 “뭘 해야 하지 않겠냐? 내한테 신경 좀 써라”라고 했어요. (웃음) 실제로 오빠가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 (작업에) 부스터가 달린 거죠. 비트가 엄청나게 빨리 모였어요. 제가 거기에 멜로디와 가사를 붙이는데 거짓말처럼 진짜 빨리 써버린 거예요. 그 모든 곡을 만드는 데 실질적인 기간은 한 달밖에 안 걸렸어요. 그런데 [Somablu]는 발매 당시에 여러 가지 일이 많았어요. 믹스도 되게 늦게 끝났고, 직원들도 다 그만둔 상태에서 (앨범이) 갑자기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지금은 나간 직원이 한 명 있는데, 그 직원이 처음으로 발매하게 된 작품이 제 EP였어요. 다사다난한 상황 속에서 나온 EP였죠.





LE: 앨범 하나를 작업할 때 여러 곡을 만들어 놓고 그중에 추려내는 아티스트들도 있잖아요. [Somablu] 때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던 거네요.

저는 시 형태의 가사를 핸드폰에 미리 다 써놓거든요. 그걸 바로 불러버리면 노래가 돼요. 그래서 (작업 속도가) 빠른 거죠. 처음에 불러봤을 때 느낌이 안 오면 버려요. 무조건 될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거죠.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 어중간한 노래를 애초에 만들지 않아요. 만드는 족족 내는 이유가 그런 거죠.





LE: 덕분에 두 번째 EP [THE LETTER]나 소품집 [봄]이 1년 사이에 바로 나온 거 같은데요. 그 중 [봄]은 소마라는 아티스트에게 그전까지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이 담긴 작품이었어요. 보컬 표현이나 가사가 마음의 울림을 줄 정도로 자연스러워진 느낌이 있었어요. 그때를 기점으로 신상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 자리 잡은 작업 방식에 익숙해졌던 건지 싶은데요.

지금 생각하면 [Somablu] 때는 솔직히 말하면 알맹이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작품을 내고 싶다는) 해소 욕구가 굉장히 컸고, 가사를 먼저 쓰지 않았어요. 멜로디를 먼저 쓰고, 가사를 붙이는 방식이었죠. 그러다 보니까 제가 만든 멜로디라는 틀에 제가 갇히는 거예요. 그 이상의 창작이 되지 않고 무조건 짜 맞추는 가사를 쓰게 됐어요. 제가 만들어 놓은 입 모양에 맞춰야 하니 의미도 억지로 맞추게 되고요. 노래 가사를 쓰는 건 제가 말하면서 전달력이 있어야 하고, 멜로디 라인에도 가사가 맞아야 해요. 높은음에서는 제가 음에 맞게 높은음을 잘 낼 수 있는 가사가 나와야 하는 거죠. 그럴수록 실질적인 의미 자체가 떨어지는 거죠. 그래서 [Somablu]라는 EP 자체를 그렇게 진심이 담긴 작품이라고 느끼진 않아요. 물론, 어떤 드라마틱한 설정을 해놓긴 했지만, 그건 창작자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진심을 다해서 음악을 만들진 못했어요. 그 과정을 거치고 [THE LETTER] 때는 노래 말고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듣는 거에 치중하게끔 가사에 큰 의미를 담지 않았지만, 대신 사운드에 엄청 신경 썼어요.

사실 저는 처음부터 [봄]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근데 만약에 제가 [봄]을 처음 냈다면 지금 같은 반응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봄]이라는 EP가 제 데뷔작이었다면 그냥 뻔한 발라드 알앤비 가수가 될 수 있었다고 봐요. 얼터너티브 알앤비, 피비알앤비 이름은 붙이지만, 그때 들었던 걸 바탕으로 만든 어중간한 장르의 [Somablu]를 먼저 냈기 때문에 (그런 선입견이 생기지 않았던 거고요.) 그다음에 나온 [THE LETTER]가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쓴 앨범이기 때문에 힙스터 같은 작품이 된 거죠. 그러고 나서 [봄]이 나오니까 알맹이가 생겼다는 반응이 나온 거겠죠. [봄]을 만들면서 저는 ‘내가 멋 부리는 건 다 했다, 이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지금 하면 진정성이 느껴질 거 같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만들고 나니 너무 하고 싶은 말만 했나 싶기도 했어요. 오히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특별히 멋있다고 느껴지진 않아서 사람들이 안 좋아할 수도 있을 거 같았어요. 그래서 소품집이라는 형태로 낸 거고, 곡간의 개연성도 없어요. 지금 상황에서 나 노래 잘하는데 여태까지 보여준 거 없으니까 이제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나 음악을 보여주면 되겠다고 낸 건데, 제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죠.





LE: 그럼 [봄]에서 보컬이 더 자연스러워진 것도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저는 원래 노래를 잘해요. (웃음) 제가 “귀가”를 만든 것도 ‘아, 나 이것도 잘하는데. 한번 해줘야겠다.’라는 생각에서였어요. [Somablu], [THE LETTER] 수록곡을 라이브로 부를 때는 조금 재미가 없는 거예요. 제가 연습했던 노래는 이런 게 아니거든요. 가사도 큰 알맹이가 없으니까 집중도 잘 안 되고요. 그냥 은은하게 부르는 걸 듣는 분들은 되게 대단하게 느껴주시지만, 부르는 입장에서는 큰 재미가 없는 거죠. 전 노래를 그림 그리듯 부르는 걸 재미있어하는 사람이거든요. 목소리로 연주하는 걸 평생 훈련했는데, 정작 그걸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못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SNL에서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이 “Bad Religion”을 라이브 하는 걸 보고 많은 걸 느끼게 되었어요. ‘아, 미쳤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싶었고요. 그래서 “귀가”에서는 아예 목소리로 연주하는 걸 보여주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LE: 그런 생각이 있으셨군요. 이전 <금요힙합>에서 정미조의 “개여울”을 좋아한다고 하셨잖아요. “귀가”에서 옛 가요를 본인 방식대로 해석하려 하셨던 건지 싶었어요. 

그런 생각은 아니었어요. 제가 사실 트로트를 진짜 싫어하거든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기피증 수준으로 싫어해요. 예전에 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전국노래자랑>이 틀어져 있었어요. 그걸 계속 봐야 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근데 “개여울”을 들었을 때는 트로트 같은데 또 아닌 거 같기도 한 거예요.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이 엄청 올라오는 거예요. 국악은 또 되게 좋아해요. 그때도 정말 (취향이) 중구난방이구나 느꼈지만, 또 장르라는 게 진짜 어렵구나 싶었어요. 따지고 보면 레게도 사실은 트로트거든요. 그렇게 봤을 때 레게는 괜찮은데, 트로트는 왜 싫은 건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정미조 선생님 노래를 들어본 이후로 그런 음악들을 더 찾아 들어봤던 거 같아요. 옛날 노래 중에도 좋은 게 정말 많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나이를 많이 먹었을 때는 이소라 선생님 같이 음악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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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이번 앨범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우선 간단하게 [SEIREN]이 어떤 앨범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간단하게 설명하면 [SEIREN]은 제 전기 같은 앨범이에요. 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는 제가 얻고자 했던 위로를 주고 싶었고, 저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제 삶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동시에 이건 제 할머니를 위한 헌정 앨범이에요. 인어란 소재로 꼭 제 정규 앨범을 만들고 싶었는데, 이 이야기를 [Somablu]를 만들기 전부터 하고 싶었어요. 정규를 만들 때 쓰기 위해서 지금까지 아껴둔 거죠. 정규 앨범이라는 게 아티스트에게 의미가 크잖아요. 예전에는 그걸 몰랐어요. ‘그냥 곡이 X나 많은 거 아닌가? [Somablu] 만들 때 한 달 정도 걸렸는데, 이거 세 배 정도 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스토리는 만들면서 짜면 된다고 생각하다가, 앨범들을 내면서 생각이 바뀌었고, 정규 앨범을 더 잘 만들고 싶어진 거죠. 그러다 보니 혼자서 책 쓰듯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구상을 많이 했어요. 할머니가 제 미래가 될 수도 있고, 제 과거일 수도 있고, 엄마와 함께 제가 살면서 가장 오래 볼 수 있는 여성상이잖아요. 그렇게 봤을 때 그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저희 할머니가 하반신 마비인데, 그렇게 되신 지 되게 오래됐어요. 10년 정도 된 거로 기억해요. 의료 사고 때문이었어요. 그전에는 엄청 정정하셨어요. 그냥 조금 아픈 정도로 수술하신 거였는데 잘못됐던 거죠. 처음 사고가 났을 때는 저희 할머니가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실 정도로 엄청 힘들어했어요. 저는 그때 진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학교 마치고, 할머니가 계신 병원에 들른 다음에 학원 가고 그랬어요. 한 번이라도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러다 시간이 엄청 흘렀죠. 지켜보면서 제가 마음에 아팠던 게. 할머니가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시는 거 같았어요. 그게 싫기도 하면서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이기도 한데. 어느 날 엄청 오랜만에 할머니한테 갔는데, 할머니가 동물에 관해서 줄줄 외우고 계신 거예요.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이 TV 한 대 놓고 다 같이 보시잖아요. <동물의 왕국> 같은 걸 자주 보셨나 봐요. “이 동물이 이런데, 어떤 방식으로 사냥한다, 근데 쟤 나쁜 애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TV에서 어느 시간대에 뭘 하는지, 이 방송에서는 누가 나오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계신 거예요. (웃음) 그걸 설명해 주시고요. 계속 (TV를) 보다 보니까 (그 지식을) 습득하고 계시게 된 거죠. 근데 그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 꿈은 뭐였을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났어요. 저희 할머니가 시골에서 7남매를 키우셨거든요. 제가 듣기로 할아버지가 되게 나쁘신 분이었고, 저희 아빠가 막낸데, 아빠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할머니가 혼자 (자식들을) 키우신 거죠.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에 할머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신 건지 궁금했고,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제 이야기 역시 시작된 거죠. 제가 어릴 때 꿈꾸던 게 인어인데, 인어가 다리가 없는 존재잖아요.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수영을 할 수 있잖아요. 어쨌든 바다의 왕이란 말이에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렇게 되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할머니를 향한 위로를 하고 싶었고, 이번 앨범을 만들게 한 엄청나게 큰 동력이죠.





LE: 그럼 마지막 트랙인 “She’s Dream”이 내용적으로 보면 앨범의 핵심 트랙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그 노래에 실제 할머니 목소리가 들어가 있고, 꼭 넣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할머니 병원에 가서 녹음한 거예요. 목소리 시작할 때, 동물 소리 같은 거 들으셨어요? 그게 코끼리 소리거든요. 그때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계셨어요. 할머니가 이제는 발음이 안 좋으시니까 뭐라고 하시는지 잘 안 들려요. 저희 엄마 아빠만 알아들어요. (웃음) 그래서 핸드폰으로 한 한 시간 넘게 녹음했어요. 할머니 이 닦는 소리부터 결혼 언제 하느냐, 만나는 사람 있냐 같은 말까지, 다 들으면서 울컥하더라고요. 그중에 실제로 (여러 목소리가) 들어간 부분을 넣어야겠다 싶어서 넣게 된 거죠.

아, 그리고 ‘She’s Dream’이라는 제목이 ‘그녀는 꿈이다’라는 뜻이잖아요. 사람들이 그 부분을 많이 생각하지 않는 거 같더라고요. 제 친구가 그녀의 꿈인데 왜 ‘Her Dream’이 아니라 ‘She’s Dream’이냐고 한번 물어봤었어요. 사실 저는 ‘그녀의 꿈’이 아니라 ‘그녀는 꿈이다’라는 뜻을 의도했던 거거든요. 할머니의 꿈이면서도 할머니가 제 꿈이고, 또 인어 자체도 꿈이란 말이에요. 그걸 꼭 담고 싶어서 제목을 ‘She’s Dream’이라고 지었어요. 제가 상상을 해서 만든 가사 내용도, 결국엔 할머니가 하는 이야기인 거죠.





LE: “She’s Dream”에서는 후반부에 다시 먹먹해지는 사운드가 바다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렇게 사운드 적으로 의도하신 부분이 있었나요?

이 곡은 가장 웅장한 트랙이여야 하고, 또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는데 욕되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할머니가 받았을 상처가 그 당시 본인에게 상처로 느껴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아팠어요. 분명히 할머니는 피해를 봤고, 차별을 당했을 거고, 괴롭힘을 당했을 거고, 힘들었을 텐데. 그런 것들이 너무 당연한 시대여서 우리 할머니는 그게 부당하다는 걸 몰랐을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할머니의 꿈이 뭐였는지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싶었어요. 





LE: 원래는 할머니와의 인터뷰 내용을 녹음해서 곡에 실으려고 하셨던 건가요?

네, 알고라도 싶었어요. 아니면 들어보기라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걸 제가 잘 못 알아듣기도 하고, 의사소통이 힘든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상상해서 쓰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꿈이 없으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상상한 할머니는 오늘만 사셨을 것 같거든요. 그냥 키우자. 내가 키워야 한다. 내가 돈 벌어야 한다. 밥 줘야 한다. 옷 입혀야 한다. 학교 보내야 한다. 일해야 한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할머니가 지내셨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굳이 이걸 할머니에게 회상하도록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이게 더 잘못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할머니가 이런 꿈을 꾸셨으면, 이런 희망을 갖고 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사를 썼어요. 그만큼 할머니의 인생이 헛되지 않게 웅장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엄마한테 말하는 것처럼 가사를 쓰고 싶었어요. 저에게도 엄마가 있지만, 우리 엄마의 꿈은 저잖아요. 그건 너무 끔찍한 것 같거든요. 우리 엄마는 뭘 하고 싶어 하셨는지 저는 알거든요. 정말로 제가 꿈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것처럼 할머니한테도, 그리고 엄마한테도 엄마가 있잖아요. 이런 ‘엄마’들의 꿈을 곡에 담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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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사실 이번 정규 앨범이 공개되기 전에 앨범의 프리퀄인 [Kid’s Dream]과 시퀄인 [Cigarettes, Talk]를 먼저 발매하셨어요. 애초부터 두 작품을 정규 앨범이 나오기 전에 발표하실 계획이었던 건가요?

거의 트랙은 (앨범 발표 전에) 미리 나왔고요. 앨범에는 실질적으로 제가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잖아요. 할머니가 주축이 되고 위로를 전한다는 앨범 속 내용과 거리가 먼 곡들을 회사랑 회의를 하다 기획적으로 먼저 빼자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Kid’s Dream]의 너무 어릴 때 이야기들은 (앨범 안에서) 섞이기 힘들겠다 싶었고, “Comb my body”나 “DUCK FACE” 같은 경우에는 이 앨범과는 별개로 진짜 성인이 된 나의 솔직한 이야기라서 (앨범에서) 빼면 괜찮을 거 같다 싶었어요. 이 앨범의 흐름을 최대한 깨지 않으려고 따로 뺀 거에 가깝죠.





LE: “DUCK FACE”에서는 쫀득하게 랩을 뱉으시기도 했고, 가사도 이전과는 다르게 쓰신 거 같아요.

“DUCK FACE”는 비트가 없었을 때부터 제목이 ‘DUCK FACE’인 곡을 낼 거고, 센 곡일 거고, 센 비트 받을 거고, 주경이 오빠(어글리덕(Ugly Duck)) 피처링 받을 거라는 계획을 머릿속에 미리 설정해 놨어요. 만들어 놓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일단 주경이 오빠한테 말했어요. “오빠, 내가 “DUCK FACE”라는 곡을 만들 건데, 어떤 곡인지 묻지 말고 오빠가 해야 해.”라고. (웃음) 오빠가 알겠다고 해서 섭외가 끝난 상태였어요. 제목을 ‘DUCK FACE’라고 설정한 이유는 셀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특정 인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셀피를 올리는 거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나쁘다기보다는 ‘참, 왜 저러냐’ 이런 느낌이죠. 저는 그게 X나 이해가 안됐거든요. 내가 내 얼굴 SNS에 올리겠다는데 말이죠. [Somablu] 내기 전에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셀카 좀 그만 올리라고. 이 때문에 제가 겪은 차별을 [SEIREN]을 비롯한 그 주변부의 작품에 많이 담았어요. 그중에 하나가 “DUCK FACE”인 거죠. (셀카가) 보기 싫으면 언팔하면 되는데, 내 사진을 내 SNS에 올리는데 그걸 관리해야 하나 싶었어요. 그렇다고 하루에 서른 장씩 올리는 것도 아닌데. (웃음) 그게 엄청 기분이 나빴고, 언젠가는 이야기한다고 마음먹고 나온 곡이 “DUCK FACE”에요. 당시에 그런 부류의 반응을 많이 받았는데 웃겼어요. ‘지랄하고 있네’ 이 생각이 컸고, (제가 트랙에서) 랩을 한 이유도 하나의 장치였어요. (이 트랙에는 꼭) 랩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었어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래퍼였기 때문에 랩을 한 거였어요. 이 주제를 노래로 풀어버리면 안 될 거 같은 거예요. 게네들의 직업의식을 불태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제가 아예 태초부터 싱어지만 (랩을 해야) 이 새끼들을 진짜 깔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LE: 그럼 앞으로도 랩을 종종 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그때는 제가 잘하든 못하든 중요하지 않았어요. 어차피 저는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걸 해야 쟤네들을 약 올리는 느낌이 들 거 같은 거예요. 그리고 여태까지 랩을 안 했던 건 제가 랩 음악을 너무 많이 듣고 자랐으니까 진짜 잘하는 게 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제 기준을 깨기가 너무 힘든 거죠. 제가 느끼기에도 잘하려면 너무 잘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서는 하기 싫고 그렇게 못할 거 같았어요. 근데 이번에 “Zebra”, ”Captain” 그리고 “Betty”에 랩 비슷한 게 나오잖아요. 이런 식으로 풀어내니까 랩도 아니고 노래도 아닌데, 엄청 편하고 재미있더라고요. 랩의 장점은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고, 가볍게 할 수 있고, 하면서 재미있고, 딕션만으로도 재미를 만들 수 있다는 거잖아요. 랩이라고 해서 막 (각 잡고) 할 필요 없고 노래 잘하니까 섞어서 하면 되겠다 싶어서 했는데 (다른 분들도)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이번 앨범에서 했던 방식의 랩은 앞으로도 많이 할 거 같아요.





LE: 다시 앨범 자체에 초점을 맞춰보면, 크레딧을 보니까 프로듀서 진이 다양하더라고요. 이전부터 호흡을 맞춘 2S 씨부터 누즈(Nuz), 제이플로우(Jflow), 피제이(PEEJAY), 모텔 경성의 우비소년(OBSN), 나일라(NY.LA), 써머걸(Summergal)까지. 개성 뚜렷한 프로듀서들이 총출동했어요. 한 앨범에 이들의 음악을 넣고 하나의 흐름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트랙리스트를 짜는 데도 힘들지 않았을까 싶고요.

CD에 들어간 버전이랑 디지털 버전이 트랙 순서가 달라요. 디지털 버전은 듣기 좋은 흐름으로 만들었고, CD 버전은 내용 흐름으로 만들어서 프리퀄이랑 시퀄이 다 들어가 있어요. 내용 흐름으로 짤 때는 힘들지 않았는데, 디지털 버전을 짤 때는 똘배 오빠랑 같이 상의하면서 이 순서로 들을 때 특별히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정도로 갔어요. 트랙을 만들 때는 비트가 정말 이질적이지 않은 이상. 제 목소리, 송라이팅, 코러스가 들어가면, 그리고 무조건 제 감성이 실리면 절대 이질감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항상 있어요. 그것만 믿고 중구난방으로 작업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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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앨범 커버에 많은 오브제가 담겨있어요. 직접 만드신 거로 알고 있기도 한데, 각 오브제에 의미를 매긴 바가 있나요?

(아이패드를 꺼내면서) 이걸로 그린 건데요. (눈 모양을 가리키며) 이건 괴물의 눈이에요. 앨범을 관통하는 것 중 하나가 몬스터의 존재인데. 그게 이 괴물의 눈이고. (얼룩무늬를 가리키며) 이건 “Zebra”. (앵무새를 가리키며) 이건 “Captain”에 나오는 앵무새예요. 이 두 개를 앨범 커버에 중점으로 뒀고, 주위에 있는 보석들은 “Monster Hunter”의 가사에 나오는 보석들이에요. 보석 역시 이번 앨범에 수록된 몇 곡에서 가사로 나오는데, 보석이란 거 자체가 반짝거리고 예쁘고 아름다운 존재잖아요. 그래서 괴물하고 상반된 의미로 존재하는 거고. (오토바이를 가리키며) 이건 제가 냈던 “오토바이”란 싱글이에요. (편지를 가리키며) 이건 제가 냈던 [THE LETTER]. 여기에는 'Dear.'라고 쓰여 있고, 제 이름도 있어요. ‘Soma’라고 쓰여 있죠? (전원 웃음)





LE: 디테일이 엄청나네요? 

(웃음) 맞아요. 여러 장치를 넣어놨고, 그리고 (물고기를 가리키며) 이건 물고기. “Fish Talk”나 여러 트랙에서 물고기가 나오기 때문에 (앨범 커버에도) 넣었고요. (에펠탑 그림을 가리키며) 이거는 “Midnight In Paris”. 이런 식으로 지금의 제가 존재할 수 있던 것과 노래들을 앨범 커버 아트워크에 다 넣으려고 했고요. 꽃 같은 경우에는 제가 다른 인터뷰에서 하와이에 가는 게 꿈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던 만큼 하와이를 되게 좋아하고, 하와이 꽃이 제가 한 첫 번째 타투거든요. 그래서 (앨범 커버 아트워크에도) 하와이 꽃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바탕은 심해이자 우주를 표현한 거예요. 이게 앨범 첫 번째 트랙에 나오는 “Fish Talk”의 가사 때문인데요. 가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 우주에 우리가 푸른 보석 같은 건 바다 때문이야"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거 때문에 바탕을 이렇게 설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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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앨범 커버 말고도 앨범 안의 동화도 직접 그리신 거로 알고 있는데, 작업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으셨나요?

이틀인가 사흘 만에 다 끝냈어요. (앨범 발매 일정에 맞추느라) 급했어요. (동화도 마찬가지로) 이걸로 그린 건데. 제 솔로 콘서트를 오신 분들은 보셨을 텐데, 애니메이션 영상으로도 나왔거든요. 거기에 이 동화들이 나와요. (얼룩 물고기를 가리키며) 이 얼룩이(인 저)의 이야기인 거죠. 우주 속 지구처럼 보이는 이 동그란 게 물고기 알이에요. 알에서 태어난 게 얼룩이고, 주위에 있는 게 커튼이에요. 커튼을 치고 지나가는 인어를 보게 되죠. 그런데 인어는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는데, 얼룩이는 돌 목걸이를 하고 있어요. 때문에 얼룩이는 ‘이 돌 목걸이가 진주가 되면, 내가 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요.

“8”이라는 트랙을 들어보면, 고래 집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고래집을 그려 넣었어요. 그리고 “The Shark In My Window”에서처럼 밖에 상어가 있어서 무서워서 나가지 못하고 있던 거죠. 그러다 밖에 나오면 잿빛 물고기들이 저만 색깔과 줄무늬가 존재하고, 다른 친구들은 회색빛이어서 다르단 이유로 저를 괴롭혀요. 옆에 있는 건 제 강아지이고. (웃음) 강아지가 고래 옷을 입고 있는데, “Your Eyes”가 강아지에 관한 이야기인데, 너의 눈이 고래 같다고 하는 구절이 있거든요. 거기에서 착안해서 고래 옷을 입혔어요.

그리고 “Superman”이란 트랙에서처럼 제 주변에 아빠와 남자친구가 있어서 저를 달래주고 있는 그림도 있어요. 저와 같은 색깔과 무늬가 존재하는 사람들인 거죠. 그리고 나서 저는 길을 떠나는데, 이 사람들이 유일하게 저를 응원해주고 있는 거예요. “ADHD”에 나온 가사를 그린 부분도 있어요. 마스크를 낀 채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존재했던 쓰레기 같은 일들을 헤치고 꿈을 찾아서 떠나는 모습을 그렸어요.

“Midnight In Paris”에 나오는 에펠탑은, (제가) 올라가다 보니까 갑자기 색깔이 엄청 많은 물고기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얘네들이 다 돌 목걸이를 하고 있거든요. 이들을 보면서 나만이 혼자 돌 목걸이를 지니고 진주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단 걸 알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올라가다 보니까 “My Captain”처럼 앵무새 얼굴의 해마를 만나게 돼요. 그렇게 해서 얘네들이 팀이 되어 하나로 뭉치고, 그 해마가 길을 알려줘서 가보니 제가 꿈꾸던 하와이가 있는 거죠. 결국, 하와이를 보게 되고 물 위로 올라와요. 그랬더니 손이 생기게 되고, 돌 목걸이가 진주가 되면서 빛이 나요. 실물 앨범에는 앞을 홀로그램으로 했고, 따로 스티커도 만들어서 팔고 있어요.





LE: 스티커 역시 신경을 많이 쓰셨나 봐요?

네, 디테일을 살리려고 노력했고, 앨범에 들어가는 요소가 스티커에도 들어가 있어요. 따로 스티커도 만들어서 팔고 있어요. 배경까지 전부 직접 그렸어요.





LE: 당장 앨범을 사야겠네요. (전원 웃음) 이제 트랙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볼게요. 앨범의 문을 여는 “Fish Talk”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인터뷰 전에 소마 씨가 직접 쓴 트랙 소개 글을 읽었어요. 바닷속의 물고기들이 하는 이야기를 담았고, 물고기들 사이에는 인어와 괴물이 공존한다고 하셨거든요. 여태까지 만난 사람들에게 양면성을 느끼신 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좀 더 자세히 풀어주시면 어떨까요?

그게 맞죠. 괴물, 그리고 몬스터란 존재 자체가 실질적으로 저에게 피해를 준 인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신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어떤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저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제가 레슨을 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그 친구들을 보면서 실제로 나에게 어떤 가해를 가한 사람이 없을지라도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갉아 먹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몬스터는 내가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Fish Talk”에 들어간 목소리를 잘 들어보시면 가장 크게 나오는 보컬이 몬스터의 목소리예요. 피치 다운이 된 목소리 말이죠. 그러면서 동시에 제 목소리도 나오고, 피치 업을 시킨 인어의 목소리도 나와요. 세 가지 목소리가 그 트랙에서 동시에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유일하게 몬스터 목소리가 크게 나오는 트랙이기도 해요. 이를 동시에 내보내는 건 이 모든 게 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운드적인 장치를 심어 놓은 거죠. 그리고 시작부터 혼란스러운 사운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실제로 물에 들어갔을 때 혼란스러우니까요. 이 앨범을 시작하면서 모든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죠. 





LE: 이 밖에도 트랙에서 사운드적으로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Fish Talk”는 물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두었어요. 앨범이 물속에서 시작한다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 트랙을 만들었고, 가사 전체를 물고기가 하는 말로 썼어요. 그래서 앨범을 시작하기에 가장 적절한 트랙이라 생각했고, 동시에 물속에 들리는 이야기처럼 느끼게끔 신경을 많이 쓴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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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후에 나오는 트랙이 “Mermaid”입니다. 트랙 소개를 읽어보니 ‘모두가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하지만 걷지 못하게 되더라도 인어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꿈을 이뤘다’라고 쓰여 있어요. 여기서 인어와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 더 풀이해주실 수 있을까요?

인어라는 거 자체가 판타지잖아요. 그러다 보니 ‘난 인어가 되는 게 꿈이야’라고 하면 ‘음…? 미친놈 아냐?’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는 거죠. (전원 웃음) 그런데 제가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똑같은 반응이었어요. 저한테는 꿈이지만, 모두가 그 꿈을 비웃었던 거죠. 그런데 모두가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거죠. 사람들은 터무니 없는 꿈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제가 인어가 되고 싶은 감정이랑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트랙 소개에서 말하는 꿈은 저의 직업에 관해서 이야기한 거예요. 곡에서는 "네가 목소리를 가진다면 너는 걸을 수 없어"라고 가사에 나와 있어요. 이건 길을 걸을 수 없어도 상관없고, 유명해져도 상관없고, 그저 나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내용을 담은 거예요. 다만 어느 누구도 그 꿈을 비웃을 자격이 없다는 거죠. 그게 제 앨범 소개에도 들어가 있고, 그 내용이 이번 앨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에요.





LE: 그러고 보니 첫 트랙에서 이야기했던 보컬 피치와 관련한 사운드적인 장치가 이 트랙에서도 이어지는 거 같은데. 맞나요?

네, 앨범에 괴물 목소리가 있는 트랙이 있고, 없는 트랙이 있어요. “Mermaid”는 괴물 목소리가 있는 트랙 중 하나예요. 전기적으로 봤을 때 (얼룩이인 제가) 괴롭힘을 당하는 시기에 만들어진 곡인 거죠. 자세히 들어 보시면 "네가 목소리를 가진다면 너는 걸을 수 없어"라고 말할 때 피치 다운이 걸려 있어요. 그게 괴물이 말하는 거죠. 그리고 애절하게 말하는 그 사람이 저이기도 하고요. 그런 식의 사운드적인 장치를 통해서 앨범 전체를 해석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LE: 피치 다운된 목소리는 괴물이다. 외워야겠네요. (웃음) 그리고 쿤디판다(Khundi Panda) 씨가 곡의 피처링에 참여하셨습니다. 피처링으로 기용한 특별한 이유와 함께 특별한 요청 사항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일단 이 곡을 만들고, 이 곡과 같은 진지한 주제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러다 보니 바로 복현이(쿤디판다)가 떠올랐고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어요. 그 곡을 만든 뒤 바로 복현이한테 연락했고, 피처링을 부탁하니깐 그 날밤에 바로 벌스를 보내줬어요. 심지어 한국어 버전, 영어 버전 둘 다를 보내줬어요. 그중에 골라서 영어 버전을 싣게 되었어요. 제가 트랙에서 원했던 건 진지함이었어요. 이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물론, 복현이가 랩을 잘하고, 음악을 잘하는 게 있지만, 그것보다도 그 사람이 (가진 맥락이) 중요했어요. 이 이야기를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봤을 때 복현이가 이야기에 힘도 실어주고 되게 잘해 준 거죠. 





LE: 그렇다면 피처링을 부탁하실 때 영어 버전, 한국어 버전을 따로 부탁하신 건가요?

아뇨. 저는 애초에 부탁할 때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복현이가 두 개의 버전을 보내면서 한국어 버전을 싣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저도 복현이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려고 했지만, 앨범 흐름상이나 곡 분위기에서 영어 버전이 잘 묻는 거 같아서 이걸로 하겠다고 (복현이한테) 이야기를 하고 싣게 된 거죠.





LE: 그렇게 된 거군요. 혹시 트랙의 뒷부분에서 ‘Dream’이란 구절이 계속 반복되는 것도 어떤 사운드적인 의도가 있었던 건가요?

사실 신기한 게 비트가 처음 왔을 때부터, 그 소리가 깔려 있던 상태였어요. 이미 앨범 속 트랙별 주제는 다 선정을 해 둔 상태였고, 트랙을 고르던 중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그걸 들으면서 여기에 이 주제로 가사를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프로듀서 2S가 저랑 친한 동생인데, 그 친구가 “누나, 이 보이스 샘플 뺄까? 분위기를 좀 해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라고 물어봤었어요. 그런데 저는 앨범과 노래의 흐름 상 있어야 할 존재인 거 같아서 그대로 두자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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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흥미롭네요. 그리고 트랙 소개에 뒤를 이어 나오는 “My Captain”부터 인간 이다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쓰셨어요. 트랙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도 이를 의도한 건가요? 또 사운드적으로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이게 디지털 트랙이잖아요. 그래서 (음원 사이트에서 앨범을 들으시는 분들이) 귀를 정화시킬 수 있게끔 뒤에 배치한 트랙이 “My Captain”이에요. 이 트랙이 뒤로 빠지게 되면 후반부는 아예 밝은 쪽이 되는 상황인 거죠. 그걸 적절히 섞기 위해 앞쪽에 배치를 하게 된 거예요. 앨범의 흐름 상에서도 이질감이 없게 느껴지는 건, (앨범의 화자가) 인어가 되었기 때문이죠.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캡틴이란 존재를 만나게 되고 난 뒤의 삶, 제 이야기를 한다는 마음으로 앨범의 앞부분에 트랙을 배치하게 된 거죠.





LE: 트랙 소개를 읽어보니 팬들을 위해 쓴 곡이라고도 하셨어요. 이전 곡의 가사들이 들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 건가요?

그렇죠. 이건 명백한 팬 송이라서 일부러 의도하고 가사를 썼어요. 가사를 들어보시면 제가 여태까지 낸 싱글과 앨범들이 다 들어가 있어요. 왜냐하면, 제 (음악적인) 여정 같은 여행 동안 그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곡들을 다 만들 수 있었고, 만들면서 기뻤던 감정을 팬들이 같이 느끼기를 바랐어요. (팬들과) 시대를 함께 했기 때문에 (이전 곡의) 가사를 다 넣은 거예요. 





LE: 일종의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앨범 속 스토리텔링하고는 약간 별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아니에요. 앨범 속에서 가장 중요한 트랙인 거죠. 왜냐하면 동화 속에서도 중요하게 나왔듯이 제가 인어가 될 수 있게끔 한 존재가 캡틴인 거예요. 앨범을 들어보면 할머니와 저의 이야기가 겹쳐져서 진행되는데, 제 이야기를 하게끔 만들어 준 건 캡틴이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인 거죠. 그리고 “Zebra”랑 내용상으로도 연결이 돼요. 왜냐하면 “Zebra”에서도 줄무늬 자켓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My Captain”에서도 줄무늬 자켓을 입고 시작을 한단 말이에요. 내용상으로 “Zebra”로 연결이 되는 거죠. 피지컬 CD에는 그런 순서로 트랙 배치가 되어 있어요.





LE: CD를 꼭 사서 순서대로 들어봐야겠네요(웃음). 어쨌든 음원사이트에서는 다음으로 “The Shark In My Window”가 나옵니다. 겪고 계시는 심해공포증을 이야기하신 곡이라 들었어요. 어떤 증상인가요?

이게 좀 긴 이야기지만, 제 앨범에서 중요한 이야기라 꼭 해야만 할 거 같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욕조에 있는 걸 좋아했어요. 인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물 속에 있는 걸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었어요. 심지어 손발이 다 뿔 정도로 매일 욕조에 있었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느 날 TV에서 거품 목욕이란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 거품이란 게 어디서 나오는 걸까? 거품 목욕을 해봤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해 보니 바디 워시로 거품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거의 반 통을 욕조에다 붓고 손으로 휘저으니깐 거품이 미친 듯이 올라왔어요. 좋아서 거기에 들어가서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는데, 거품이 걷힌 부분에 물에 그림자가 져서 어두운 거예요. 그걸 보니깐 숨이 안 쉬어지고, 엄청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놀라서 물을 내려버렸어요. 물을 다 빼고 ‘뭐지?’ 생각하니까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났고,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리고 그전부터 제가 좋아하던 과학 시리즈 책 중에 심해를 볼 수 있는 책이 있었어요. 셀로판지를 가져다 대면 심해어가 보이는 책이었거든요. 심해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맨날 책을 들여다봤는데, 그림자가 진 물을 본 이후로 그 책을 볼 때마다 공포영화가 무서운데도 보는 느낌? 그런 느낌으로 계속 책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이게 공포증이란 생각 자체는 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난 뒤에 세이클럽(Sayclub)이었나? 네이트온(NATE ON)이었나?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메신저) 대화 창에 URL을 붙이면 사진이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야, 여기에 사진 띄울 수 있다”라고 하면서 대화 창에 사진을 딱 띄웠는데, 하필 그 사진이 엄청난 고해상도의 바닷속 사진이었어요. 그걸 보니깐 숨이 턱 막히고,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갑자기 나는 거예요. 그래서 황급히 엔터를 눌러서 대화 창을 내렸는데, 거기에서도 이상한 감정을 느낀 거죠. ‘왜 내가 이거에 공포를 느끼는 거지? 고해상도라서 그런 건가?’ 싶었어요. 그때부터 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거죠.

그때도 공포증인 건 몰랐어요. 그런 공포증이 사회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대이기도 하고, 있다고 해도 심각한 일로 여겨지지 않곤 했거든요. 그러다가 극장에서 어떤 태국 공포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코끼리가 엄청 큰 수조에 갇혀 있는 장면이 나왔어요. 그런데 커다란 스크린 안에 물이 가득 차 있고, 동시에 물에 잠기는 소리도 나니까 제가 너무 무서워서 귀를 막고 울게 되더라고요. 진짜 이상해서 찾아보니까 그 증상이 심해 공포증 비슷한 거더라고요. 거기다 중학교 1학년 때 바다에 갔다가 친구와 함께 물에 빠진 적이 있어요. 친했던 친구들이 물에 동시에 빠지니 살겠다고 서로를 눌렀어요. 그 상황에는 미처 인지를 못했지만, 나와서 생각해 보니 너무 끔찍한 거죠. "사람이란 게 살기 위해서 간사하고 너무 무섭다”라고 우리가 다 같이 이야기했거든요. 그 기억이 저한테 되게 충격으로 남았어요. 그 이후부터는 영화에서 이런 걸 절대 볼 수 없게 되었고, 사진만 보더라도 눈물이 나오게 되더라고요. 





LE: 이야기를 들으니 일상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증상이 심각해 보여요.

사실 한동안은 잊고 지냈어요. 왜냐하면, (바다를) 안 보면 해결되는 문제였고,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러다가 “The Shark In My Window”를 쓰게 된 계기는 [Somablu]를 내기 전에 있던 일 때문이었어요. 그때 저는 뭘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지만,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뭘 하기는 해야겠다 싶은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진짜 음악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해야 해서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딜레마가 온 상황이라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제가 그 당시에 옥탑방 컨테이너에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집에 있는데 갑자기 문 밖, 창문 밖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문득 밖이 바다일까 싶어서 너무 두려운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바다를 보지 않아도 그 무서움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어쩌지? 물이 들어오면 컨테이너인데, 다 깨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을 깨려고 샤워기로 몸을 막 씻는데도 물 떨어지는 소리 자체가 너무 무서워서 샤워실에서 뛰쳐 나가고 그랬어요. [Somablu]에 물 이야기가 들어가게 된 것도 이런 경험을 겪었던 게 반영이 된 거죠.

그때는 제가 진지하게 병원에 가보려고 했어요. 다른 문제로 병원에 가던 친구들한테 상담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랑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봤더니 대부분 병원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충격 요법을 쓴다고 하더라고요.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실제로 해가 없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당사자한테) 계속 보여준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무서워서 결국은 병원에 안 갔어요. 다행히도 그 시기가 길지는 않았어요. [Somablu]를 만들면서 이런 딜레마랑 공포증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됐죠. EP 덕분에 제가 알려지게 되었고, 기반이 잡혔거든요. 그러다가 “The Shark In My Window”를 만들면서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어쩌면 두려워했던 게 바다나 상어가 아니라 실제 세상일 수도 있겠다. 억지로 (세상을 바다라고)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제 경험담을 제원이한테 똑같이 말해주고, 제원이한테 상어 역할을 맡아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다음에 바로 같은 공간에서 같이 가사를 쓰면서 곡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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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오르내림 씨와 계속 협업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제원이란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거고. 제원이가 쓰는 가사를 되게 좋아해요. 아이디어도 좋고요. 또, 그 친구가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지만, 제가 못하는 생각을 해요. 저랑 가사를 풀어내는 방식이 되게 다르기도 하고, 친하지만 거짓 없이 가사를 써요. 그래서 저는 (제원이의 가사에) 메리트를 느끼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어떤 부탁을 했을 때 한 번도 만족스럽지 않게 온 적이 없기도 하고요. 순수하게 만든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 때 그 친구를 찾게 되는 거 같아요.





LE: 겪고 계신 심해공포증은 괜찮아지신 건가요?

앞서 말했던 지경까지는 아닌 거죠.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렇지 않아요. 사실 제가 하와이를 꿈꿨던 이유가 있어요. 유일하게 제가 공포를 느끼지 않는 바다는 하와이처럼 맑고 투명한 바다예요. 막상 들어간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 보면 아무렇지가 않더라고요. 





LE: 다시 트랙 이야기를 해볼까요? 뒤이어 나오는 “Monster Hunter”는 위로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이에요. 예전 인터뷰에서 “바람이 될게”는 미래의 자신이 되어서 당시의 본인에게 위로해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신 적이 있어요. “Monster Hunter”도 비슷한 의도에서 쓰신 가사인지, 아니면 이제는 반대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런 가사를 쓴 건지, 어떤 배경에서 가사를 쓰시게 된 건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Monster Hunter” 같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쓴 곡이예요. 앞서 이야기했지만, 제가 레슨을 하면서 본의 아니게 저보다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어요. 그런데 듣다 보면 누군가가 그 친구를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피해를 줄 때, 그 친구가 놀라울 정도로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대체 왜 저렇게 생각하지 싶을 정도로 말이죠. 이거 때문에 그 친구들이 되게 힘들어 하더라고요. 심지어 트라우마가 생겨서 하고 싶은 머리를 못하고, 입고 싶은 옷을 못 입고 나가고, 타투를 너무 예쁘게 했는데 욕먹을 까봐 가리고 다니고요. 또 머리 염색했다고 욕먹진 않을까, 지나가는 사람이 성희롱하진 않을까 등등… 실제로 그 친구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작은 고민을 점점 부풀리면서 본인들을 갉아먹고 있더라고요. 거기다가 저는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친구들을 한두 명 본 게 아니라 많이 봤어요. 그중에는 더 심한 일을 겪은 친구가 있는데, 그런데도 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 친구에게 “이건 네 잘못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친구가 그 말을 듣고 저에게 전화했어요. 그런데 제가 아무리 이야기를 해줘도, 아이들이 울면서 이야기를 들어도, 그 트라우마에서 못 벗어나는 거예요. 이야기를 듣는 저의 감정이 소비되는 것도 굉장히 컸지만, 제가 서너 시간 떠들면서 이야기를 해줘도 특별히 해줄 수 없는 말이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실제로 그 일을 겪은 사람이 아니고, 겪었다고 해도 그 친구한테 위로가 되지는 않는 거죠. 그냥 슬픈 사람이 두 명이 될 뿐이잖아요. 그건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을 해줘도, 실제로 그 친구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 친구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그 친구의 전화를 받은 날에 가사를 썼어요. 이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가사로 쓴 거죠. 가사를 쓰면서 ‘(그 친구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이드 녹음을 하면서 저한테도 이런 게 있다는 걸 느끼니까 울음이 나더라고요. “Monster Hunter”는 그런 사연이 있는, 어떤 상처든 간에 본인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어서 만든 곡이에요. 





LE: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이 난 게 있는데. 다른 인터뷰에서 서울에 올라오면서 접한 세상에서 ‘본인의 신념을 무너뜨리게 하는 것들’을 많이 마주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이 가사를 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여전히 그런 방법을 통해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계신 건가요?

제가 제자들한테 이야기하는 거기도 하고,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을 하지 말자는 거예요. 제자들한테 그런 말을 할 때도 ‘이 사람이 나를 괴롭혔는데, 이 사람이 잘못했는데,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는 거 자체가 (감정) 소비라는 거죠. 그건 불필요한 거고, 나한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단순하게 말해서 나한테 좋은 생각만 하자는 마음이 제일 커요. 가사를 쓸 때는 오히려 제 생각보다는 남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제 가사로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대신에 그 사람이 위로를 받거나 아니면 즐겁거나 슬펐으면 좋겠어요. 제가 음악에서 가장 많이 받는 감정이 위로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가 받고 싶은 위로를 가사로 쓰면서 저 또한 위로를 받는 것 같네요.





LE: 조금 전에 피치 다운된 목소리에 관해 이야기를 하셨는데, “Monster Hunter”에도 피치 다운된 목소리가 나와요. 

네, 괴물인 거죠. 사실, 괴물 목소리는 곡 중간에도 나오고, 곡이 끝날 때도 나와요. 특히, 후반에 "내 손을 잡아"라고 하는 부분에서 괴물 목소리로 바뀌어요. 되게 애절하게 말을 하는데, 피치 다운이 되어 있거든요. 저는 곡 후반부에서 저 자신이 괴물이었단 걸 깨닫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게 나 자신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되는 거죠. 이 노래가 특정 인물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뿐 아니라 자신과 싸움을 하는 이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해서 이렇게 사운드적인 장치를 심어 놓았어요.





LE: 내가 괴물일 수도 있다고 하셨지만, “Betty” 같은 트랙에서는 오히려 자기애가 드러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모든 걸 이겨낸 뒤의 이야기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걸 이겨냈다는 의미인가요?

앞서 말한 일들을 다 이겨낸 상황에서 진짜 제가 나온 거죠. 여기서도 인트로에 피치 다운이 된 목소리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제가 괴물인 걸 인정하고 나오는 거예요. 가사를 보면 나 맨날 밤에 일어나고, 나 담배 피우는 거 좋아한다고 하거든요. 나 스스로가 내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말하는 거죠.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지만, 그 가사는 사실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썼어요. 내 나이 또래의 여자로서, 이름이 알려진 여성으로서 쉽게 할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싶었고, 보여주고 싶었고, 이게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제 제자들도 여자라는 이유로 숨어서 담배 피우고, 여자애가 길에서 담배 피운다고 아저씨들이 욕한다는 거예요. 왜? 남자도 담배 피우잖아? 여잔데 문신했대, 짧은 거 입고 다닌대. 어쩌라고? 너네도 다 문신하고 반바지 입고 다니는데? 너희는 위에 속옷 안 입잖아. 나도 안 입을 건데? 당연한 건데 그걸로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죠. 물론 "어? 속옷을 안 입었네?" 하고 놀랄 순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어쩔 수 없죠. 왜냐하면, 저도 살면서 (속옷을) 입은 사람들밖에 못 봤기 때문에 가끔 놀라긴 해요. 근데 그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잘못된 거죠. 그걸 한 사람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일어나지 않은 일을 피할 필요가 없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Betty”라는 곡을 쓴 거고, 실제로 제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쓰게 된 거예요. 그리고 “Betty” 가사 중에 "구찌 백에 짱구 달아" 같은 구절도 나오잖아요. 근데 사실 저 구찌 백 없거든요. 근데 보통 구찌 백을 사서 짱구를 달진 않잖아요. (웃음) 그것도 어떤 장치의 하나로 쓴 거죠. 걍 너희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LE: 그런 곡의 제목을 “Betty”라고 지으신 것도, 베티 붑(Betty Boop)이란 만화 캐릭터를 모티브로 삼으신 건데, 좋아해서인가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인가요?

좋아해서도 맞긴 한데, (베티 붑이 등장했을) 당시에 문제가 매우 많았어요. 베티라는 캐릭터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데, 대놓고 성희롱당하고, 거의 강간당할 뻔하거든요. 저는 베티라는 캐릭터가 그걸 깨부수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심지어 저조차도 어릴 때 그런 걸 많이 당했기 때문에 그걸 깨부수고 나온 베티를 (가사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LE: 그 외에도 여러 만화 캐릭터를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평소 여유 시간에도 자주 보시는 편인가요?

많이 좋아하죠. 그런데 잘 보진 않아요. 본다고 하면 디즈니(Disney), 픽사(Pixar) 밖에 안 봐요. 예전에 그림 그릴 때는 디즈니, 픽사에 입사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 애니메이션과 음악이 저에게 주는 영향력 자체를 저는 굉장히 크게 느끼고, 실제로 저한테 많은 도움이 된 매체이기 때문에 좋아해요.





LE: 음원사이트에서는 이 다음 곡이 “ADHD”인데, 곡 소개에 본인이 듣는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를 사운드로 표현한 부분들을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ADHD의 문제는 집중력 장애잖아요. 그 정도가 저의 스트레스에 따라서 심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거든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할 때는 카페에도 못 앉아있어요. 앉아서 이렇게 이야기를 할 때 집중이 안되는 정도예요. 음악 소리나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이런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요. 그래서 혼란이 오면서 집중을 전혀 못 하고, 집에서 혼자 화이트 노이즈를 즐겨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런 상황이 올 때) 이런 장소에서 제가 듣는 소리를 노래로 들려주고 싶었고,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실제로 저는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고, 사람 많은 데를 정말 싫어해요. 그 이유가 부대끼고 이런 것도 싫지만, 소리가 저한테 주는 영향이 크거든요. 어떤 식당이나 카페에 갔을 때 노래가 마음에 안 들면 거기에 못 있어요. 노래가 크게 들려서 사운드 소스가 다 들리는 지경이 되거든요. 근데 그게 정리가 되어서 들리는 게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들려요. 그래서 “ADHD”라는 트랙을 들어보면 소리가 계속 왔다 갔다 해요. 옆에 갔다, 뒤에 갔다, 앞에 갔다 하는데, 소리가 저한테 그렇게 들리는 걸 표현한 거예요. 





LE: 그런 증상을 자각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처음에는 이게 제 문제라는 걸 자각하지 못했어요. 그게 심하다고 느꼈을 때는 오랜만에 진해에 내려가서 가족들이랑 밥을 먹는데 아빠가 왜 저렇게 밥을 시끄럽게 먹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아빠가 너무 쩝쩝거리고 시끄럽게 숟가락이랑 젓가락을 움직이고, 반찬 통 치고. 그래서 아빠한테 “아빠! 왜 이렇게 밥을 시끄럽게 먹어?”라고 말을 했어요. 아버지가 좀 욱하시는 성격인데, “그래, 시끄러우면 니 혼자 방에 들어가서 쳐 무라!”라면서 화를 내셨어요. 엄마가 저한테 "아빠 그냥 밥 드시는 건데 왜 그러냐?"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꾹 참고 밥을 다 먹은 다음에 ‘내가 왜 아빠한테 그런 말을 했지?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친구들이랑도 밥을 먹는데 친구들이 밥 먹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운 거예요. '왜 이렇게 꼴 보기 싫게 처먹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 ”야, 니 왜 이래 쩝쩝대는데?”라고 하니까 “나 그냥 먹는 건데… 니 진짜 왜 이래 예민하냐?”라고 하더라고요. '아, 내가 X나 예민한가…?' 싶어서 무슨 문제인가 찾아보니까 청각 과민증이라고, 보통 ADHD에 많이 동반되는 증상이래요.

맨날 지각하는 것도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ADHD 때문에 그런 거더라고요. 혼자 살다 보니까 저를 중재해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깐 씻으려고 하다가 택배가 오면 뜯어보고, 택배로 온 옷을 입어보다가 갑자기 설거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설거지를 해요. 그러다가 '나 씻으려고 했지. 근데 어질러놨으니까 치워야지. 근데 나 뭐 하려고 했지? 아, 씻으려고 했지' 이래요.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되다 보니까 매일 모든 약속에 지각하는 거예요. 제가 초등학교 빼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 한 번도 지각을 안 한 적이 없어요. 어머니가 택시를 태워서 보냈는데도 말이죠. 근데 이걸 설명을 해줘도 아무도 이해를 못 해요. 그냥 ‘네가 게으르다’ 아니면 ‘오늘 예민한 날인가 보지’라는 식으로 얘기해요. 그게 아닌데… 그래서 그걸 노래로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사 내용 중에도 피아노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실제로 제가 멀티태스킹이 안됐어요. 피아노를 배울 때에도 건반을 치면서 악보를 못 보겠는 거예요. 악보를 보면서 동시에 피아노를 양손으로 쳐야 하는데, 갑자기 페달까지 밟으라고 하니깐 그만뒀어요.

제가 노래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게 필요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냥 목소리에만 집중하고 운동하듯이 만들어 나가면 되니까 노래를 할 수 있었던 거죠. 악기는 기타도 쳐봤고 다 해봤거든요? 그런데 어떤 악기에도 집중이 안 됐고, 피아노도 악보 보는 척하려고 소리를 다 외워서 쳤어요. 거기서 더 높은 단계에 올라가니까 더 외우는 게 힘들어져서 그만뒀어요. 그림도 가만히 앉아서 사각사각 소리만 들으면서 하려니까 못하겠는 거예요. 너무 미칠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이렇게 제가 실제로 겪었던 일을 가사에 다 담았고, 사운드적으로도 그 혼란스러운 소리 자체를 담고 싶었어요. 저희 아빠가 도무지 이해를 못 하시겠다고 말한 노래기도 해요. (웃음)





LE: 그 다음에 나오는 트랙이 “Zebra”에요. “Zebra”도 앞서 “Betty”처럼 자기 소신대로 살라는 메세지가 좋았던 곡이기도 해요.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셨고,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곡인지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혹시 할머니의 <동물의 왕국> 이야기에서 영감 얻으신 건가요?

그것도 생각을 하긴 했어요. 근데 그거보다 이 곡을 만든 날 제가 줄무늬 티를 입고 있었어요. 피제이 오빠 작업실 가서 비트를 고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차에서 생각한 거죠. ‘무슨 가사를 쓰지? 내가 줄무늬 옷을 입고 있네? 그러면 일단 지브라로 트랙의 테마를 잡아야겠다. 그리고 내용을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들을 써야겠다. 그러면 내 성장 배경이 필요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앨범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트랙이 마침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Zebra"에는 시작부터 제가 겪었던 이야기만 들어 있어요. "쟤랑 같이 다니면 안 돼" 이런 가사가 있거든요. 저랑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데, 맨날 같이 놀았는데도 저와 달리 공부를 잘했어요. 그런데 걔네 반 선생님이 제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저랑 같이 다니는 걸 싫어했어요. 자기 제자는 공부를 잘하니까 같이 놀지 말라는 거죠. 이런 식으로 “Zebra”의 가사는 그때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앨범을 세 개, 역시 예쁘니까 잘 된대" 이 가사도 제가 [Somablu]를 내고 나서 실제로 들었던 이야기에요. 역시 예뻐야 한다는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제가 처음 실용음악학원에 갔을 때인데요. 그때는 진짜 밥 먹는 시간 빼고 노래만 불렀거든요. 저는 진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고, 모든 걸 연습으로만 이룬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거든요.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서 진짜 열심히 연습했어요. 근데 그때부터 모든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살만 빼면 너는 데뷔할 수 있겠다'였어요. 노래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고, '너는 턱만 잡고 살 좀 빼면 되겠다'(는 이야기만 했어요.) 이 말도 “Zebra”에 들어 있어요. 저는 그 ‘아이돌로 만들 수 있는’ 기준에 부합된다는 이유로 원장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을 수 있었어요. 한편으론, 그런 시선을 깨부수고 싶어서 거기에 매달려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LE: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현실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아서 씁쓸하네요.

그때 제 꿈이 얼굴이 예쁜데 음악 잘 하는 사람이었어요. 어떤 기회로 오디션을 보게 되면 제 노래에 관심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다 와서 얼굴 만져보거나 멀리서 보고 '다리 살만 빼면 되겠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그냥 제 노래를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거는 진짜 깨고 싶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저를 부러워하는 시선도 있었죠. 근데 그것조차도 저는 되게 안 좋게 느껴졌어요. 악에 받쳐서 노래 연습을 했는데, 오디션에 붙어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역시 예쁘니까 잘됐다. 좋겠네. 역시 외모가 중요하다. 너희도 살 빼라” 이런 식인 거예요. 저는 춤도 안 추고 오직 노래 실력으로 붙었고, 그렇다고 제가 X나 예쁜 것도 아닌데… 단지 걔들의 시선에서 걔들보다 잘났다는 이유로 그런 식으로 치부를 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야 이 편견을 깰 수 있을지 많이 생각했어요. 누구보다 노력했고, 누구보다 노래하는 걸 사랑했기 때문에 (노래로) 인정받고 싶었어요.

제가 YG에 들어갈 때 좋았던 이유도, 그 사람들이 유일하게 제 노래를 칭찬해줬어요.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 그때 (심사위원이) “노래를 처음부터 잘했죠?”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오디션을 보면서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거든요. 그래서 ‘아, 이 회사 진짜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더 들었어요. 아무튼 [Somablu]를 내면서도 ‘음악적인 칭찬을 많이 들었으니 이제 편견이 깨졌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외모가 중요하네. 외모가 기반이 되니까 음악도 사는 거다' 이런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와, 이 새끼들 도대체 이렇게밖에 생각을 못 하지? 이걸 그냥 가사로 써야겠다’라고 생각했죠. “DUCK FACE”도 그 생각의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곡이에요. 다시 돌아가서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어쨌든 저는 유별난 애였어요. 평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대다수와 달랐죠. 그래서 그걸 저희 엄마, 아빠도 항상 이상하게 생각하셨고, 저한테 “뭘 믿고 그렇게 나대니?”라고 하셨어요. (웃음) 저는 항상 저만의 확신에 차 있었거든요. 나는 된다고 늘 말을 했었고, 그때 말했던 것들을 실제로 다 이뤘거든요. 이루지 못 한 게 하나도 없고, 그래서 이제는 가사로 쓸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Zebra”에 쓴 거예요.





LE: “Zebra” + “My Captain” 그리고 “Betty” 뮤직비디오를 캐나다 토론토에서 찍으셨는데, 믹싱도 하고 사진 촬영도 하시느라 일정이 빠듯했을 것 같아요. 촬영하시면서 에피소드도 궁금한데요.

엄청 빠듯했어요. 처음 예정은 9일, 10일이었는데, 결국에는 너무 촉박해서 거기에 더 있게 됐어요. 가서 찍는데 생각보다 엄청 춥더라고요. 근데 저는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마다 자연과 싸우는 경우가 잦거든요. 예를 들면, “Midnight In Paris”를 찍을 때는 진짜 말도 안 됐어요. 그때는 진짜 최악이었어요. 제가 그때 슬립을 입고 야외에서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캐나다와 맞먹는 추위의 상태에서 슬립을 입고 찍었거든요. 근데 김이 나오면 안돼서 숨을 참아야 하는 촬영을 한 거죠. 다음에 [THE LETTER] 찍을 때는 홍콩이랑 오키나와를 갔는데, 그때는 여름이었어요. 졸라 더운데 옷이 코트였어요. 거기다가 곡 무드상 그런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어요. 더운 날에는 겨울옷을 입고, 추운 날에 여름옷을 입고 촬영하게 된 거죠. 그다음에 [봄] 찍을 때는 촬영이 너무 길고 추워서 힘들었고요. 그래서 이번 촬영은 아무리 힘들어도 파리 때만큼은 힘들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겨냈어요. 

근데 이번에는 길이 더러웠어요. 눈이 너무 많이 오고, 바람도 너무 세게 불었어요. 파리는 바람이 엄청나게 부는 건 아니고 그냥 칼 같은 추위였거든요. 캐나다는 그거랑 다르게 ‘와, 이러다 죽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인 건 겨울옷이 있었다는 건데, 그것보다도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되게 컸죠. 앨범 발매일은 얼마 안 남았는데, 아직 곡작업은 많이 남아 있었고, 그 상황에 촬영도 해야 하니까 모든 게 머릿속에서 부딪혔어요. 앨범 커버 아트워크도 아직 안 나왔을 때라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외국에 있던 상황이고, 촬영은 해야 하니까 마음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결국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판단이 돼서 (기한을 며칠 더 연장하게 되었어요.) 나중에는 모두가 스케줄 때문에 저를 빼고 한국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렇다고 저 혼자 (캐나다에) 있기는 너무 무서웠거든요. 결국, 제 남자친구가 저를 도와주러 와서 같이 마무리짓고 한국에 돌아왔죠.





LE: 안 그래도 남자친구 분 이야기가 나왔는데, “Superman”같은 경우에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남자친구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써져 있어요. 이들을 슈퍼맨이라고 칭할 만큼 소마 씨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어릴 적 아버지는 소마 씨를 어떻게 대하셨고, 지금의 남자친구는 어떻게 소마 씨에게 힘이 되어 주시는지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저한테 가족 자체가 큰 존재지만, 특히나 아버지는 저의 영웅 같은 분이에요. 아버지는 저랑 가장 부딪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저랑 가장 똑같은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 중에 저랑 가장 흡사한 인물을 꼽자면 아빠거든요. 제가 성격부터 욱하는 성질이나 생김새까지 아버지를 되게 많이 닮았어요. 모든 면에서 비슷함을 느끼면서 부딪히게 되는 거죠. '왜 아빠는 맨날 욱하고 화내? 난 절대로 아빠처럼 승질 내고 안 살 거야. 꼭 두 번 생각하고 말할 거고 절대 욱하지 않을 거야' 이러면서 싸우기도 했지만, 또 가장 사이가 좋았어요. 아빠는 화내는 게 아니고 단지 목소리가 큰 거고, 아빠도 아빠가 된 게 처음이니 실수할 수 있는 건데 그걸 어릴 땐 몰랐어요. 엄마가 서운해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아빠의 유머러스함도 좋아해서 아빠와의 기억들이 많아요. 저는 항상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도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슈퍼맨은 모든 걸 척척 해내고. 힘도 제일 세고, 싸움도 잘하고, 똑똑하고, 다 고칠 줄 알고 그런 사람이잖아요. 아빠가 어릴 때 저한테 슈퍼맨 같은 존재였던 거죠. 그런데 크면서 나에게 슈퍼맨 같은 존재가 아빠에서 남자친구로 교체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이제는 제가 아빠의 슈퍼맨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렇게 욱하고 자기주장을 펼치던 아빠가 이제는 저한테 져주는 거예요. 제가 “아빠, 근데 이건 이렇게 하는 거 아닐까?”라고 말하면 원래는 욱하셨을 텐데, 이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대화가 된다는 거 자체가 되게 놀라웠고, 그때 아빠의 슈퍼맨이 된 기분을 느꼈어요. 또, 원래는 2절 가사에 '매일 저녁에 현관에서 내가 맞이하던 게 우리 아빠였는데, 이제는 너(남자친구)를 매일 저녁 현관에서 맞을 준비를 한다'라는 식의 내용이 있었어요. 남자친구는 아빠가 나에게 주던 그런 힘, 나를 도와주던 슈퍼맨 같은 모습들을 지금 보여주고 있고, 또 제가 그만큼 믿고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가사를 썼어요. 그러다가 이번 곡은 아빠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싶어서 지금처럼 나오게 되었죠.


소마05.jpg



LE: 마지막으로 “Your Eyes”만 여쭤볼게요. 이 곡은 햄이(반려견)를 위한 트랙이에요. 여기에는 팬들의 목소리가 들어가기도 했는데요. 곡을 만들 때부터 의도했던 건가요? 아니면 도중에 떠오른 아이디어인가요?

먼저 메일로 데모 비트를 받고 가사는 미리 써 둔 상태였어요. 강아지를 위한 노래지만 처음부터 그걸 티 내고 싶진 않았어요. 사실 가사만 보면 강아지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근데 이 노래를 가이드 녹음할 때 햄이가 같이 있었어요. 중간에 비는 부분이 생겼는데 여길 노래로 채우고 싶진 않았어요. 대신에 녹음을 하면서 햄이한테 말을 했어요. “햄이야~산책 가고 싶어?” 이렇게요. 그때는 이걸 실제로 앨범에 실을 거라고 생각은 안했고, 나중에 대사를 정해서 녹음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햄이한테 “고기 먹고 싶어? 간식 먹고 싶어?”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햄이가 갸우뚱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귀여워서) 진짜 웃으면서 말을 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가장 자연스러워서 넣기로 했죠. 그리고 뒷 부분에는 팬들 목소리, 햄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넣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카카오톡 공개 채팅방 ‘시끄러운 소마방’에 가서 햄이한테 하고 싶은 말을 음성 메시지로 짧게 해서 보내 달라고 했고, 진짜 100명 정도에게서 메시지가 왔어요. 그걸 다 들어보고 음질이 좋고 따뜻한 목소리를 골라서 넣게 됐어요. 제가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한 트랙에 담겨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든 트랙이에요. 






LE: 이처럼 [SEIREN]은 컨셉에 맞게 잘 짜인 스토리텔링과 소마 씨의 뚜렷한 음악관을 확인할 수 있던 멋진 앨범이었어요. 본인은 이번 앨범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하시나요?

저는 결과물 자체는 만족하고요. 여태까지 제가 냈던 앨범 중에서는 가장 에너지를 많이 쏟았고, 가장 내 얘기를 많이 했고, 신경도 엄청나게 많이 썼어요. 커버 아트워크도 그림을 직접 그리면서 신경을 되게 많이 썼고요. 근데 어떤 허탈함이 온다고 말한 거는 열심히 담으려고 한 메시지들을 전부 알아줄지 모르겠다는 게 큰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알아줬으면 좋겠고, 다른 게 아니라 그냥 많은 사람이 (앨범을 통해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이제는 앨범 단위의 소비가 많이 줄었고, 트랙이 많으면 골라서 듣고, 타이틀만 듣거나 하다못해 가사를 보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허탈함이 오는 것 같아요.





LE: 이번 인터뷰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웃음) 지금 본인이 느끼기에 이런 과정을 겪고 난 자기 자신은 얼마나 마음이 드시나요?

80점. 제가 앞으로 꿈꾸고 구상하는 것들이 많이 있고, 평생 그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LE: 많이 배우고 갑니다. (웃음) 그럼 그런 다음 계획을 조금 스포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이제는 제가 곡을 혼자 써보려고 해요. 일단 정규앨범까지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저의 머리에서만 나오는 것들을 가지고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고. 얼마가 걸리든 간에. 가장 솔직하게 만들 수 있는 건 그거라고 생각을 해서 거기에 도전을 해보고 싶고요. 다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시작하려고 해서 그거에 대한 계획을 계속 짜는 중이에요.





LE: 음악 외의 것들도 계속 도전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네, 저는 제 직업의 장점이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도 그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모델로 사진을 찍히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다 해도 그냥 소마라는 게 곧 직업이잖아요. 그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LE: 앞으로 다양한 곳에서 소마 씨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앞으로의 소마 씨가 많이 기대됩니다. 인터뷰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CREDIT

Editor

Geda, snobbi, JANE, Melo(녹취)

Photo

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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