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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뉴올 (Nuol)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2012.03.22 22:39조회 수 16739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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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alon] 뉴올 (Nuol)

 

 

 


HIPHOPLE: 반갑습니다. 먼저 힙합엘이 회원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뉴올(Nuol): 힙합엘이에 알찬 컨텐츠들이 많아서 저도 주기적으로 들어가서 자막뮤비도 보고 있고요. 정보들이 많아서 이제는 국내 소식까지도 넓혀가시는 것 같아서 저는 이런 사이트가 많아지는 것에 되게 기뻤거든요. 저도 이 사이트를 통해서 많이 활동하고 사람들도 힙합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반갑습니다.

 

 

 

 

 

LE: 어떻게 지내고 계셨나요? 최근에 'Swings In Nuol'에 이어 양동근의 ‘Just The Two Of Us’에도 참여하셨다고 들었어요.

 

장시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공장처럼 제가 (곡을) 찍어냈었거든요. 그만큼 열정도 있었고, 계획들…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제가 ''Minos In Nuol''할 때부터 한 번 기사를 냈던 것 같은데 이게 ‘I Need A Beat’가 수록된 베스트 앨범인 [Factory In Nuol]을 마지막으로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한 게.. 제가 뭐 열정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고, 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어요. 더 좋은 결과물로 찾아 뵙기 위해서 그래서 되게 소스적으로나 아니면 음악적인 퀄리티도 더 올리고 싶어서 시간을 개인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고 그 와중에도 지금 또, MC들이랑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발표가 될 때 저는 말씀을 드리는 편이라… 이제 곧 배치기 앨범이 나오는데 제가 작업한 트랙들이 있고요. 네.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LE: 뉴올(Nuol), 뉴올리언스(New Orleans)라는 지역명을 닉네임으로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군대 가기 전에, [Chicken Soup]라는 EP 앨범을 냈었어요. 그때는 이제 버마(Vuma)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었고, 군대에서 이제 뭔가 ‘인생 전반에 걸쳐서 쓸 이름이 필요하다’ 생각을 하다가 디앤젤로(D'Angelo)처럼 뭔가 복잡하면서도 굴러가는 듯한 어감의 이름을 선호했는데… 그 와중에 뉴올리언스라는 도시를 알게 됐어요. 그곳은 재즈가 파생한 도시예요. 또 어른들이 흔히 하는 얘기 중 하나가.. ‘나이가 들면 재즈나 클래식을 듣게 된다’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크게 이해할 수 없었죠. 재즈 보단 힙합이 훨씬 좋고 그랬으니까. 그리고 재즈가 갖는 의미가 백인음악, 흑인음악이 섞이는 시점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나도, 뉴올리언스처럼 한국에서 ‘뉴올이라는 나 하나를 통해서 흑인음악을 포함한 모든 음악을 파생하는 문명지 같은 그런 역할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뉴올리언스라고 이름을 지었고요. 그 후에 너무 긴거같아 뉴올로 줄여서,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가 비기(Biggie)가 되듯이… 적당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아무튼 줄여서 애칭으로 부르게 되었고, 그때 그렇게 정하니까 태풍이 와서… (웃음) 뉴올리언스가 쑥대밭이 되버리더라고요.

 

 

 

 

 

 

LE: 그러면 뉴올이라는 이름을 가지기 전에 다른 닉네임이 또 있었나요?

 

네. 아까 얘기했던 버마라는 이름이 있어요. 철자가 ‘Vuma’인데 제가 본명이 최성범이에요. 그냥 ‘성범아, 성범아’ 애들이 그래서 그냥 버마라고 많이 불렀는데 그때는 제가 그 이름으로는 활동을 거의 안 했기 때문에 잘 모르실 거예요.


 

 

 

 

 

LE: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처음 계기는 중학교 2학년때, 수업 시간에 멜로디가 머릿속에 떠오르더라고요.


 

 

 

 

LE: 천재… (웃음)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고요. 그냥 수업을 듣기 싫어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머릿속에 멜로디가 생각나서 저는 피아노를 칠 줄도 모르고 악기를 다룰 줄도 몰라서 그냥 공책 맨 뒷면에다가.. 대개는 그림을 그리잖아요. 낙서를 하거나. 근데 거기다가 음표를 그렸죠 나름. 음높이는 아니까. 올라가는 걸 알잖아요. 그래서 음표같은걸 그려서 옆 반에 가장 친한 친구한테 들려줬더니 걔가 또 1시간 수업후 멜로디를 만들어서 들려준 거예요 저한테. ‘야 우리 이럴 게 아니라 노래를 만들어보자’ 하게 되어서 키보드가 있는 친구네 집을 놀러 갔어요. 가긴 갔는데, 아무 것도 안 나오죠 당연히. 그중 피아노 칠 줄 아는 애도 없고 비트 만들 줄 아는, 그 땐 비트라는 개념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 주 토요일 날 ‘우리 MR에다 녹음을 해보자’해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근데 녹음한 걸 들어보니까 못 들어 주겠더라구요. 그럼 이번엔 한 번 랩을 해보자 해서 랩을 했는데, 랩은 보컬보다는 이펙팅을 덜 하잖아요. 보컬 같은 경우엔 리버브(reverb)나, 딜레이(delay)가 있어야 하는데 랩은 대개는 드라이(dry)한 편이라… 랩은, 그러니까 랩이 좋았다는 게 아니라 노래보다는 랩이 들을만해서 랩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hiphop CD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거든요. 그때는 압구정에 상아레코드를 갔었어야 했는데, 투팍(2Pac) CD 한 장에 뭐, 2만 5천원.. 지금 물가를 생각한다면 거의 한 5만원 돈 이상이에요. 학생이니까 돈도 없잖아요. 그래서 부잣집 친구한테 CD를 사라고 반 강제, 권유한 다음에 그거를 테이프로 복사를 해서 듣고 다녔죠. 그때 들었던 게 닥터 드레(Dr. Dre)의 92년에 나온 [The Chronic], 스눕 독(Snoop Dogg)의 [Doggystyle] 같은 명반들이었어요.

 

 

 

 

 

LE: 그러면.. 정식으로 음악을 했다거나, 아니면 예를 들어 학원이라든지.. 등등 그런 시기는 언제쯤이에요?

 

아, 그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컴퓨터를 이용해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됐어요. 케이크워크(Cakewalk)라는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지금은 사용 안 하지만 그걸 이용해서 비트를 만들기 시작했죠. 비트를 만드는 것도 되게 신기한 게, 샘플링(sampling)이란 걸 몰랐어요. 근데 음악을 만들어야 되잖아요. 악기는 없고… 그때 듣던 알켈리(R.Kelly) 앨범에 보면 앞에 ‘빰~’하는 브라스(brass)가 있어요. 그걸 잘랐어요. 잘라가지고 계속 ‘빰 빰 빰 빰 빰’하면 이상하니까 ‘빰 빰 빰 빰 빰~’으로 만들었어요. 피치를 바꿔서. 그래서 만들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흑인들도 그렇게 샘플링을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왜냐면 걔네도 가난하고 나도 가난했으니까. 결국은 파생점이 똑같은 거예요 그게. 저는 샘플링을 배우기보다는 먼저 하고 사람들이 그걸 샘플링이라고 한다는걸 나중에 되서 알게 됐죠.

 

재밌는 얘기가 생각나는 게, 킵루츠(Keeproots)형이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전에 도 미 솔을 누르고 이 코드가 너무 완벽해서 C코드라는 걸 내가 처음 발명했다고…” (전원 웃음) 그러시는 거예요. 근데 맞는 얘기잖아요. 배우지 않고 C코드를 짚으면… 그래서 ‘아 형님이 한 300년 전에만 태어나셨어도 베토벤 자리에 앉아 계시는 건데…’ 그런거 같아요. 뭐 그런 경우 아닌가 싶네요. 하하.

 

 

 

 

 

LE: 그렇군요. 지금은 해체됐지만 집시와 탬버린(쿤타(Koonta), 양성, 왈구)이라는 그룹의 멤버들과 친하세요. 집시와 탬버린 멤버들과는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저는 양재고를 나왔어요. 양재 쪽에 주둔하고 있었고 집시와 탬버린은, 리리컬 디(Lyrical D)라는 팀이 있어요. 로제이라는 친구가 저랑 친한데 … 그때는 라이프 독(Lifedog)이라는 이름을 썼어요. 그 팀이 이름을 바꿔서 리리컬 디(Lyrical D)인데 그 친구들 소개로 집시와 탬버린을 알게 됐었죠. 근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무 느낌이 좋았어요. 제가 군대 가기 전에 나온 Chicken Soup EP에 참여를 부탁한 걸 계기로 그 후에도 계속 연락을 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죠.

 

 

 

 

 

LE: 양성님과는 계속 연락이 되시나요? 얼마 전에 양성님이 책을 내셨던데요.

 

저는 양성이라는 그 친구의 그런 방향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거에 자극을 받게 될때가 많아요. 옆에 있어도 그냥 존재감 없는 친구도 있고, 그냥 재밌기만한 친구도 있고. 근데 한 번쯤은 ‘아.’ 생각하게 하는 친군데 이 친구가 얼마 전에 책을 냈어요. 제목이 ‘졸개인생’이에요. 정식으로 책이 나온 건 아니고 몇 십부만 찍은 거예요. 그책 서문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우리(양성의) 아버지가 되게 훌륭하신 분인데, 아버지가 살아온 얘기를 들어보면 세상이 아버지를 너무 함부로 대하고 이해해주지 않고.. 내가 아는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닌데 하지만 책을 통해 이야기를 한다면 세상도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을 거다. 란 모티브예요. 그 책 주인공들은 어쩌면 평범한 친구 5명이거든요. 이 친구들에 대해서 내가 자서전을 써줘서 이 세상이 알게 된다면 (세상이) 함부로 하지 못 할 거다. 이런 발상에서 시작 된 거예요. 그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건 아니지만 저는 보는 내내 재미가 있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 양성 블로그를 참조하세요. 여러분.

 

 

 

 

 

 

LE: 그 책에 뉴올 님도 등장하시겠네요?

 

아, 저는 등장 안해요. 양성이 저한테 그 책을 주면서 너는 제외했다고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전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쓸 필요가 없다고 얘기 하더라고요. 저도 이해하고 나중에 내가 훌륭한 일 하고 유명해지면 그때 써줘, 이랬죠. 양성은.. 얼마 전에 회사에 들어갔어요.

 

 

 

 

 

LE: 그럼 이제 음악 쪽으로는 활동을 안 하시는 건가요?

 

그러겠죠, 아무래도? 그래서 저도 카톡으로 양성한테 ‘네가 회사에 적응할리 없는데, 어떻게 잘 다니고 있냐?’ 이렇게 문자를 보내요. 그럼 ‘뭐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어.’ 이래요. ‘지금 너 퇴사선물로 MPC 사놓고 너 사표 쓰는 날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얘기했더니 ‘진짜? 진짜?’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아 농담이지’ 그러고.. (웃음)

 

 

 

 

 

LE: 2003년 백화(白花)님과 함께 발표하신 [Chicken Soup] EP앨범이 가장 첫 결과물이었는데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그 첫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셨나요?

 

반 년 정도가 걸렸어요. 그때 더 열성적으로 했던 이유가, 우리 멤버 둘 다 군대가 앞에 있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어요. ‘군대 가기 전에 우리 한 장 내고 가자’ 그런 취지 하에 더 열심히 만들었었죠.

 

 

 

 

 

 

LE: 그럼 지금 생각해보면 퀄리티나, 만족도 면에선 어떤가요? 그 앨범이.. 그러니까 그런 거 있잖아요. 밝히고 싶지 않은 앨범이 될 수도 있고.. (웃음)

 

글쎄, 그러진 않아요. 창피하지는 않고요. 그래도 그 시간이 있어서 제가 있으니깐.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렇게 레코딩을 스스로 다하고 믹싱, 마스터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저도 하면서 공부가 많이 됐고… 아주 가끔 들으면서 옛날 생각도 하고… 많지 않았지만 좋아해주시는 분도 있었고요. 홍보를 전혀 하지 못하고 발표만 해서 그게 좀 아쉽죠.

 

 

 

 

 

LE: [Chicken Soup] 앨범 이후엔 특별히 두드러진 활동이 없으셨고 그 이후에 군복무를 하셨는데 2006년에 'Koonta In Nuoliunce'(쿤타 인 뉴올리언스) 프로젝트앨범을 내시면서 힙합씬에서 급부상 하셨었는데요. 쿤타님과 함께 'Koonta In Nuoliunce' 프로젝트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원래는 쿤타 앨범 수록곡을 작업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팀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또 웃긴 게 쿤타가 군대 (가야하는) 문제가 있었는데…‘우리 그냥 마지막으로 공연 딱 한 번만 하자, 공연 한 번만 하고 앨범 그냥 EP로 풀자’ 이랬거든요. 그 공연이 힙합플레이야 쇼(Hiphopplaya Show)였어요. 아이삭 스쿼브(Isaac Squab)를 통해서 공연을 하게 됐는데 그 공연을 본 관계자들로부터 러브콜이 쇄도했어요. 그때 두세 군데 레이블에서 얘기가 나왔었는데 할 수 없이 쿤타도 군대를 더 연장을 하고요. 그리고 EP에서 앨범 단위로 커지게 된 거죠.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당시 사장님이 ‘앨범 트랙이 모자라니까 한 트랙을 만들어라. 내일 마스터링이다.’ 이러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그날 저녁에, 마스터링 하루 전에 피타입(P-Type) 형이랑 ‘Keep Your Love’를 만들었어요.

 

 

 

 

 

LE: (웃음) 그렇군요. 1집, 2집 모두 기본적으로 레게(Reggae)와 스카를 기반으로 앨범을 만드셨는데, 원래부터 그런 음악을 하려고 하셨던 건가요?

 

재밌는 점은, 그때 저는 레게 비트를 만든 게 몇 개 없어요. 앨범을 돌려보시면 아시겠지만. ‘Holding On’같은 경우도 그냥 힙합이고. 저는 그냥 하고 싶은 비트를 만든 건데… 레게라면 ‘Rosa’정도? 신기한 게, 쿤타의 목소리가 얹어지면 다 레게가 되는 거예요. 마치 모든 음식 위에 치즈를 뿌리면 그라탕과 피자 계열이 되버리잖아요. 그런 느낌이랄까. 쿤타의 목소리가 너무 강렬해요. 오히려 2집에는 하우스도 있고, 일렉도 있고. 다들 레게로 기억을 하죠. 타이틀이 레게스러웠으니까요. 그리고 ‘Mama’라는 노래가 타이틀이었는데 ‘Rosa’가 아니라. ‘Mama’는 브라질리언-댄스홀이었어요. 굳이 나누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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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사람들이 뉴올님의 음악에 대해 얘기할 때 'Koonta In Nuoliunce' 1집을 최고의 앨범이라고들 많이 얘기해요. 그런 얘기들에 동의하는 편이신가요? 아니면은 지금 생각했을 때 그래도 이건 좀 아쉽다 하는 부분 같은 게 있을까요?

 

대개는 가이드(Guide)라 그래요. 노래 한 번 불러보고 괜찮게 나오면 녹음을 제대로 받거든요. 근데 'Koonta In Nuoliunce'에 있는 녹음은 거의 다 가이드 녹음이에요. 한 번은 아니지만 그냥 스케치하자마자 녹음해서 끝내는 그런 타입이었죠. 그래서 되게 생생한 느낌? 근데 그 당시에는 녹음을 주로 어떻게 했냐면 랩 16마디를 녹음한다하면, 어떤 애는 30분을 녹음을 해요. 또 어떤 애들은 1시간을 녹음해요. 어떤 애는 3시간을 녹음해요. 16마디를 하는데. 그만큼 공을 들인다는거죠. 근데 공을 들이면 박자나 원하는 호흡, 이런 건 다 가져갈 수 있지만 처음의 그 생생한 느낌을 잃어버려요. 그래서 아마 'Koonta In Nuoliunce' 1집 같은 경우는 그런 거친 느낌? 러프한 느낌? 그냥 있는 그대로 박자 안 맞아도 상관없고 음 안 맞아도 상관없고. 거기에는 오토튠(Autotune)이나 이런 걸 전혀 안 썼거든요. 그러니까 내츄럴한 상태에요. 그게 오히려 더 사람들한테는 신선하게 다가간 게 아닌가 싶어요.


 

 

 

LE: 근데 뉴올 님이 비트를 만드시고 믹싱 이런 것까지 다 하시면, 아무리 그런 신선함이 있다고 하더라고 좀 신경이 쓰인다고 할까요..좀 더 완벽하게 하고 싶거나 그러진 않으셨나요?

 

저는 완벽주의자가 아니에요. 그 당시에는 신경을 쓴다고 또 썼죠. 근데 지금 보면은 말도 안되는 귀에만 의존한? 예를 들어, 사람 목소리에는 베이스를 부스트(boost)하지 않아요. 근데 뭐 그런 경우도 있었고, 약간 동물적인 감각으로… 지식이 없으니까. 많지 않으니까. 그리고 또, 군대를 막 갔다 와서 뭐랄까요. 마치 감옥에 있었던 투팍처럼(웃음) 사자후가 나올법한 뭔가 생생한 에너지? 그게 강했던 거 같아요.


 

 

 

 

LE: 혹시 그럼 'Koonta In Nuoliunce' 프로젝트의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쿤타랑은 지금 좋은 친구고, 쿤타는 저랑 방향이 좀 달라졌어요. 물론 처음 시작은 레게나 이런 재밌는 것들을 하자고 했는데 이제 쿤타가 하고자 하는 것들은 조금 더 원론적인 것들. 그러니까, 약간 밥 말리(Bob Marley)나. 밴드 음악에 레게, 아시죠? 약간 그런 방향으로. 지금은 또 일렉 쪽에 심취해 있는 것 같은데..아무튼 그런 쪽이었고. 저는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 쪽보다는 이제 뭐 션 킹스턴(Sean Kingston)이나 션 폴(Sean Paul) 쪽의 약간 새로운 스타일의 레게를 더 좋아해서 하고 싶은 거 하자, 그랬죠. 그리고 지금 쿤타는 루드페이퍼(Rude Paper)를 잘하고 있죠. 저도 그 음악을 즐겨 듣고 있고.


 

 

 

 

LE: 'Koonta In Nuoliunce' 프로젝트 이후로는 정말 끊임없이 활동을 해오셨어요. 'Minos In Nuol' 프로젝트, 두 장의 정규앨범([The Mission], [The Mission 2]), 굉장히 많은 앨범에 프로듀싱으로 참여하셨고요. 그리고 최근에는 각종 싱글들을 발표하고 계세요. 쉴 새 없이 활동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신가요?

 

힘들었으면 못했죠. 너무 재밌고 또, 지금도 하고 싶은 게 머리 속에 너무 많아요. 밝히기 이르지만 한국에 없는 것들을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아요.

 

 

 

 

 

LE: 프로듀서로서 정말 많은 뮤지션들과 작업하신 것 같아요. 함께 작업 하는 랩퍼 혹은 싱어를 결정하는 데 있어 뉴올 님만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물론 실력이요.


 

 

 

 

 

LE: 실력만 있으면 되나요?

 

네. 전 유명한 사람들, 실력이 없으면 그닥 안하고 싶고, 반대로 안 유명하고, 옆집 살아도, 실력만 있으면.. 또, 곡이랑 맞느냐가 가장 절대적인 기준이죠. 제 앨범들 보면 쉽게 아실 거예요.


 

 

 

 

LE: 다른 프로듀서에 비해 비교적 발이 넓은 것인지, 인간성이 좋은 것인지, 혹은 그만큼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은 것인지. 물론 다 포함될 수도 있고(웃음) 정말 많은 사람들과 작업을 하세요.

 

랩퍼들이 가지고 있는 성향 있잖아요. 어떤 랩퍼는 이런 걸 잘해요. 버벌 진트(Verbal Jint) 형은 쪼개는 걸 잘해요. 제가 음악을 만들었을 때, 어울리는 랩퍼를 만나야 하는 거죠. 저는 사실 짝 지어주는 것만 하는 거예요. 짝을 잘 만나면 그 노래는 잘 나오는 거고. 그게 프로듀서의 안목이거든요. 그러니까 다양한 음악, 스펙트럼이 넓다. 제가 만든 음악이 스펙트럼이 넓다라는 걸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걸 표현할 수 있는 퍼포머(Performer)를 만나야 되는 거죠. 당연히 자연스럽게 정말 많은 방대한 랩퍼들과 작업할 수밖에 없는 거죠.

 

 

 

 

 

LE: 그럼 그런 안목이 뛰어나신 거네요? 그런 면에서는 자부하실 것 같은데요.

 

자부라기보다는, 고민을 많이 하죠. 비트가 랩퍼를 잘 만나야 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랩퍼가 비트를 좋아해야해요. 신선하게. 만약에 어떤 랩퍼가 1집 앨범을 낼 때 자기 앨범에 있는 것보다 제 비트를 들려줬을 때 1집 앨범에 없었던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줘야 하니까 그런 것들을 더 많이 고민하죠. 식상한 것들을 좀 많이 안 하려고 하는 편이죠.


 

 

 

 

  

 

LE: 다른 곳에서도 이야기하셨겠지만 많은 콜라보 중에서도 시나위의 강한 씨와 여행스케치의 남준봉씨 와의 작업이 인상적이었어요. 뉴올 님이 직접 연락한 건가요?

 

준봉이 형 같은 경우엔 라디오하면서 친해진 케이스고요. 그 노래(Up & Down)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건 세대적인 콜라보 잖아요. 그래서 시도를 하게 됐었던 거고. 시나위 강한 형님은 정말 운이 좋게, 같은 스튜디오를 사용을 해서 엔지니어 형한테 락적인 사운드가 필요하다 그랬더니 다음 타임에 시나위의 강한 형이 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얘기해줄 수 있냐고 해서 운 좋게 진행된 케이스죠. 정말 잘 나와서 좋았던 트랙이었어요.


 

 

 

 

LE: 'Minos In Nuol' 프로젝트도 좋은 평을 많이 받았는데요. 다른 앨범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컨셉을 중요시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물론 다른 프로듀서들도 컨셉에 신경을 쓰겠지만 뉴올 님은 유난히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Minos In Nuol' 프로젝트도 앨범 컨셉을 먼저 정한 다음에 마이노스 님한테 이런 식으로 가면 좋겠다고 한 건가요?

 

아, 마이노스는 프로듀싱 능력이 있는 친구예요. 그래서 이 친구는 저랑 낸 앨범도 물론 좋았지만 마이노스 혼자서 하는 앨범도 좋았거든요. 프로듀서가 많은 것을 정해주어야 하는 랩퍼가 있는 반면에, 그러지 않아도 되는 능력을 가진 친구라서 처음부터 많은 부분을 상의하고 들어갔죠. 중간중간에 들어가있는 포인트들이나. 그래서 퍼져있는 퍼즐들을 맞추는데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어요. 'Minos In Nuol' 프로젝트는 앨범 작업 정말 오래했어요. 한 1년 반 정도 한 거 같아요.


 

 

 

 

LE: 그래서.. 결과적으로 만족하시는 편인가요?

 

음…만족했죠. 왜냐면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주시니까. 그 점에 만족을 했죠. 그리고 그 앨범은 뮤직비디오도 한편도 안 찍고 공연도 한 번도 안 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CD가 다 팔려서 없어요. 못 구해요. 그점 감사하게 생각하고 일 한 만큼 보상이 온다는 게… 피드백이잖아요. 좋아하는 사람한테 ‘너 좋아해’라고 얘기했는데 ‘너 싫어’ 이 한 마디만 들으면 포기할 텐데.. 그런 답변 조차 없는 게 지금 이 씬이에요. 앨범을 내도 피드백이 없단 말이죠. 그런 입장에서 그렇게 많은 사랑을 해주셔서 감사하죠. 그걸로 힘이 많이 났죠.

 

 

 

 

 

LE: 뭐 좀.. 잘 안 된 건 없나? 계속 지금…(웃음)

 

잘 안 된 거 많아요.

 

 

 

 

 

LE: 그건 이따 얘기할게요. (웃음) 'Koonta In Nuoliunce', 'Minos In Nuol', 'Swings In Nuol' 앨범 모두 1MC 1Producer 앨범인데, 사실 이렇게 두 명이 같이 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한 쪽 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잖아요. 이런 앨범을 만드실 때는 어떤 점을 주의를 하시나요?

 

뭘 중점적으로 두냐는 질문 같네요. 저는 비트로 포인트를 주죠. 그러니깐 웬만해서는 늘 해왔던 스타일은 권유를 안하죠. 그래서 제 색깔을 좀 가미를 하고 그 랩퍼 입장에서도 흔하게 받던 비트가 아니니까 더 신경을 쓴다고 할까? 'Minos In Nuol'도 되게 디지털한 느낌으로 갔던 이유는 마이노스 1집이나 아니면 바이러스(Virus) 앨범을 들으면 샘플링 위주의 음악들이 많잖아요. 하지만 'Minos In Nuol'은 거의 디지털이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마이노스한테 그런 색감을 준 거고, 마이노스도 훌륭히 소화해 줬죠. 마이노스가 초반에 ‘야 이거 어떻게 해, 근데, 니 비트는 뭔가 승부욕을 부르는 것 같아.’ 라고 했죠. 작업하고 안 들어간 트랙도 많고 그리고 민호(마이노스)가 또 새롭게 재해석을 해주니까 더 잘 나온 거구요.


 

 

 

 

LE: 그럼 이런 1MC 1Producer형식의 앨범을 주로 작업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최초 'Koonta In Nuoliunce'는 원래 프로젝트였어요. 그래서, 팀명도 ‘뉴올리언스 & 쿤타’였어요. 근데,  집시와 탬버린의 왈구라는 친구가 저한테 아이템을 줬어요. ‘야, 너 앞으로도 다른 랩퍼랑 작업을 할 때 뉴올리언스가 도시니까 ‘In’을 써서 ‘쿤타 인 뉴올리언스’라고 해라’ 그랬어요. 그래서 마이노스 인 뉴올, 팩토리 인 뉴올, 그리고 스윙스 인 뉴올. 그래서 1Producer 1MC를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저는 이제 한 트랙만 하고 마는 게 아니라 더 공을 들인다고나 할까, 더 기억되는 걸 남기고 싶었던 거죠.

 

 

 

 

 

 

LE: 프로젝트 앨범을 함께 했던 쿤타, 마이노스, 스윙스(Swings)의 음악적 장점을 하나씩 꼽아주신다면?

 

쿤타는 천재예요. 쿤타는 천부적이에요. 비트 위에 걔 목소리를 얹으면 그냥 살려내는 그런, 배가시키는 그런 능력이 있어요.

 

 

 

 

 

LE: 근데 궁금한 게.. 쿤타 님 같은 경우는 멜로디를 뉴올 님이 다 짜주시는 건가요?

 

아니죠. 같이 상의를 하는데.. 쿤타도 원래는 MC였어요. 랩을 하던 친구였어요. 보통 랩퍼는 자기가 가사를 직접 쓰잖아요. 자기가 가사를 쓰면서 멜로디를 입히고, 저랑 함께 훅은 이렇게 갔으면 좋겠어, 화음 같은 건 제가 알려주면서 같이 작업을 하는데.. 주로 쿤타의 멜로디인거죠. 그리고 마이노스 같은 경우는 되게 성실한, 아, 약속을 늘 늦거든요. (웃음) 한 번 인터뷰를 잡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도 이거 때문에 처음에 오해가 있었어요. 나랑 작업하기 싫은가? 왜냐면 얘가 1시간, 2시간, 3시간 막 이렇게 늦으니까 ‘뭐지?’ 싶은거죠. 근데 얘가 엄청 사교적이고 미워할 수 없는 타입이에요. 그리고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노력을 많이 하는 타입이고, 새로운 것을 많이 갈망하는 타입이라 늘 발전이 있죠. 그리고 스윙스 같은 경우는 표현들, 되게 신선한 표현들.. [Upgrade]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가사들이 너무 재밌어서. 그 전에도 그런 펀치라인이라는 개념이 있긴 있었어요. 있긴 있었는데 스윙스는 말에 유희를 더한 친구죠. 한국힙합씬에 반드시 필요했던 친구였던거죠.

 

 

 

 


LE: 반면에 두 장의 정규앨범은 프로젝트 앨범에 비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소품집(유기적인 흐름을 가지기 보다 개개 곡들을 한 CD의 몰아넣은 느낌이 강한 앨범) 스타일의 구성을 하고 있어요. 어떤 의도였나요?

 

[The Mission] 같은 경우에는 제가 랩퍼들을 다 모을 수 있는 자리예요. 이 점을 좋게 얘기하면, ‘버라이어티(Variety)하다?’ 안 좋게 얘기하면 ‘곡들이 전부 다르다.’ 오히려 노래들이 다 똑같으면 ‘뭐야 뉴올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어?’ 란 반응이 나올 수도 있죠. 전 다양한 느낌을 내려고 했던 건데 그런 평도 있더라고요. 1명의 MC와 작업하는 것과는 다른 경우고 미션 같은 경우는 다양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죠.

 

 

 

 

 

LE: 1MC 1Producer형식의 앨범에서는 그렇게(일관되게) 하고…

 

네. 거기서는 곡이 흩어져 버리면 안 돼요. 제가 늘 좋게 들었던 외국앨범들이 그랬어요. [Doggystyle]같은 경우는 다 지-펑크잖아요. 그래서 좋았고. 그리고 닥터 드레 [Aftermath] 같은 경우도  다 다르잖아요. 그런 앨범을 좋게 들었던 기억이 남아서 제가 만들 때 곡마다 다르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LE: 앨범을 계속 내시다가 최근에 싱글을 주로 작업하시고 계시잖아요. 산이(San-E)님과 했던 ‘못 생겼도 괜찮아’ 같은 경우엔 어떤 계기로 작업하게 된 건가요?

 

그 곡은 산이 아이디어였어요. 그래서 ‘형, 저 아이템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실래요?’ 이러면서 ‘못 생겨도 괜찮아’를 저한테 보냈어요. [The Mission 2]때 원래는 빈지노(Beenzino)의 ‘Where They Go’있죠? 그 노래를 원래 산이가 하기로 했었어요. 근데 회사에서 ‘맛 좋은 산’ 활동이랑 맞물려서 ‘형 죄송해요 못할 거 같아요’ 이러면서 ‘혹시 이건 어때요? ‘못 생겨도 괜찮아’ 이거 제가 만든 컨셉인데’..하지만 전 ‘근데 내 앨범에 성향이 다 때려부시는 컨셉이기 때문에 (웃음) 강렬한 거라서 안 맞는다’ 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나중에 ‘형 이 노래를 제가 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비트 만들어준다고 해서 그렇게 진행을 하게 된 거죠. ‘못 생겨도 괜찮아’같은 경우엔 사실 저랑은, 제가 해왔던 음악이랑은 정말 다른 음악이에요. 저는 나레이션(Narration)으로 시작하는 그런 거 되게 안 했던 취향이거든요. 처음 시도를 해 본거죠. 대개 저는 처음(Intro)에는 비워놓거나 영어로 멘트 하면서 힙합스러움을 추구했었는데 되려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형에 대해서 현재 한국 사람들, 이제는 성형하려고 외국에서 원정까지 오잖아요. 저는 하이힐을 처음 만든 사람도 정말 싫어하거든요. 여자들 다리 아프게 걷잖아요. 처음에 하이힐을 만들지 않았으면 이렇게 고생 안 해도 되는건데. 성형이란 게 또 생겨서 이렇게 다들 고생하는 게 너무 안쓰럽고. 솔직히 저도 남자라서 여자의 얼굴이 보이지만. (웃음) 말이 앞뒤가 안 맞네. 이 사회 자체도 너무 이런 거에 대해서 당연시 여기고 있으니까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어요. 이 노래를 통해서.


 

 

 

 

LE: 또 ‘못 생겨도 괜찮아’에 관해 질문하고 싶은 게.. 비트도 그렇고 랩도 그렇고 들었을 때 에미넴 음악이 연상이 됐거든요. 혹시 에미넴의 음악을 참고하시고 만든 건가요? 아니면 하다 보니까 비슷하게 나오신 건지..

 

산이가 에미넴을 좋아하지 않나요? 그러니까 뭐 레퍼런스를, 산이가 먼저 가녹음을 해서 보내고 와서 한 번 녹음하고 맘에 안 들어서 세 번인가를 녹음했어요. 감정이입이 잘 안 된다고.. 그랬던 기억은 나네요.


 

 

 

hiphople_nuol_2.JPG

 

LE: ‘Deal Over’에서의 산이 님과 데드피(Dead’P)님의 조합도 인상적이었어요. 작업하게 된 계기나 작업할 때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산이가 데드피 형 연락처를 아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왜? 무슨일인데?’ 물었더니 ‘데드피 형은 옛날부터 좋아했는데 형이 연결해주시면 트랙을 하나같이 해보고 싶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데드피 형한테 전화를 했어요. ‘형, 산이가 같이 작업하고 싶어 하는데 형 어떻게 생각하세요?’ 했더니 ‘산이가?’ 이러더라고요. 놀랐겠죠. 둘이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고 그리고 오버클래스(Overclass)랑 빅딜(Big Deal)이랑 안 좋았던 기억도 있으니까. 잠시 생각하시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리를 만들어 만났어요. 밥도 먹고 얘기도 했고 트랙을 더 늘려서 ‘싱글 3개짜리로 해보자’ 계획해봤는데 서로 바빠서 그렇게는 안됐고.. (작업하는 데) 전혀 문제 없었어요. 산이와 데드피 형 둘 간의 서로에 대한 리스펙이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작업했죠. (웃음)

 

 

 

 


LE: 얼마 전에는 베스트 앨범 격인 [Factory In Nuol] 앨범을 발매하셨었는데요. 무려 4CD의 앨범이었어요. 굉장히 과감하다는 느낌이 받았어요. 특별히 그렇게 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가 지금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노래가 한 200곡 돼요. CD 4장이면 40곡이잖아요. 추리기 되게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200개 중에 40개를 추려야 되니까. 원래는 더 넣고 싶었죠. 그리고 더 넣으려고 했는데 기획사 쪽 문제 때문에 못 들어간 트랙도 생기고.. 또 돌아보는 시간이나 두 걸음 도약하기 위해서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죠. [Factory In Nuol]로 이정표를 세워놓고 싶었어요. ‘여러분 저 지금까지 이런 거 했어요,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거 들어봐 주세요.’그런 의미죠. 만약 CD 두 장에 했으면 사람들이 다 아는 곡들이었을 텐데, 아닌 트랙들..‘어 이것도 뉴올이 만든 거였어?’ 이런 트랙들을 넣고 싶었고.. 뭐 물론 저와 제 앨범을 좋아해주셨던 분들은 ‘중복되는 게 많네’ 이런 분들도 계셨는데, 그런 분들은 그냥 안 사셔도 되고. (웃음) 없는 분들을 위해서, 만들었던 거죠.


 

 

 

 

 

LE: [Factory In Nuol]이 CD로 내는 마지막 앨범이라고 들었는데요. CD는 더 이상 안 내시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겠죠?!

 

 

 

 

 

LE: 그럼 앞으로는 디지털로만 앨범을 내신다는 건가요?

 

네. 디지털로는 내야죠. CD라는 것도 이제는 LP의 마지막처럼.. 저는 그렇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더 이상 CD를 내는 건 이제는 의미적으로? 상징적인 의미? 그러니까 뭐 가끔씩 LP를 발매하는 외국랩퍼들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테잎을 한 번 냈던 적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의미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CD가.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죠.

 

 

 

 

 

LE: 그러면은 방금 말씀하신대로 어떤 상징적인 의미나 아니면.. 소장용으로라도 해서 소량으로라도 발매하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네. 없어요. 현재로서는 없어요. 나중에 뭐, 특별한 의미를 지닌 진짜 소량은 찍을 수 있겠죠. 근데 그런 게 아닌 이상은 디지털쪽으로만 갈 거 같습니다.

 

 

 


 

 

LE: 그렇군요. [Factory In Nuol] 앨범의 유일한 신곡 ‘I Need A Beat’는 굉장히 호평을 받았었어요. 마이노스, 비지(Bizzy), MC 메타(MC Meta)를 한 곡에 묶을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사실 제가 뮤직비디오에 제작비를 들이고 계획과 그림을 그려 찍은 건 이 곡이 처음이에요.  ‘I Need A Beat’는 단순히 한 곡 이상의 가치를 가진, 제 정체성이 담겨져 있는 트랙인 거 같아요. 일단 비트도 신선하게 하려고 했고. 그리고 마이노스는 저랑 'Minos In Nuol' 앨범 외에도 'Minos In Nuol'앨범을 넘어 오랫동안 함께한 친구고 제 비디오를 통해서 더 돋보이게 해주고 싶었어요. 메타 형도 씬에서 상징하는 바가 크니까 이 곡에 모시고 싶었고. 또 비지 형 같은 경우는 이 곡의 완성도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세 명을 조인트하게 된 거죠.


 

 

 

 

 

LE: 그럼 이 곡 같은 경우엔 시작할 때부터 뮤직비디오까지 아예 염두를 해두고 작업을 하신 거네요.

 

그럼요. 동시에 진행이 되었죠. 그래서 중간에 메타 형 건강이 편찮아지셔서 뮤직비디오가 스탑을 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갔었거든요. 근데 다행히 한 주 만에 건강관리를 잘 하셔서…

 

 

 

 

 

LE: 너무 멋있던데요. 반응 좋았죠? 뮤직비디오.

 

네. 좋았죠. 제가 봐도 뭐…곡에 있는 그런 신선한 응집된 에너지를 잘 표현을 했죠. 촬영시기도 정말 길었어요. 대개는 한 씬을 한 자리에서 끝내거나, 아니면 많아봤자 야외씬, 실내씬 정도로 갈 텐데 이 곡은 개인당 실외씬이 있고, 스튜디오 씬이 다 따로 있으니까 정말 오래 걸렸죠. 제 씬도 있으니까. 아마 보는 내내 끝까지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가 거의 남들 뮤직비디오의 한 3,4개의 분량을 압축해 놓은 거라…

 

 

 

 <I Need a Beat>

  

 

 

LE: 이 곡 같은 경우는 곡도 그렇고 뮤직비디오도 좋았으니까, 좀 더 홍보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으셨어요?

 

홍보하지 않아도 곡이 좋다면 입소문을 타겠죠. 요새는 파워블로거들이 올리는 것도 사람들이 신뢰를 안하잖아요. ‘여기 맛집이래’ 해서 검색해서 블로그에 들어갔는데 맨 아래 약도랑 전화번호 있으면 의심하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상품이 좋고 사람들의 입소문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물론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지만 이미 메타 형과 마이노스와 비지 형과 전데, 볼 사람들은 다 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보고 좋았던 분들은 많이 권유를 해서 볼 사람들은 다 보지 않았나 싶어요.


 

 

 

 

LE: 다 봤을 거예요 아마. 전국에 있는…

 

(웃음) 전국까진 아니고 힙합 좋아하시는 분들은 알겠죠.


 

 

 

 

 

LE: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앨범 [NuollnStrumental vol.1] 등,  정규 음반이 나오면 인스트루멘탈 앨범을 따로 또 발매하세요. 이렇게 인스트루멘탈 앨범을 꾸준히 발매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예전에 랩할 때 국내곡에도 좋은 비트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 축제공연 같은 걸 할 때, 어쩔 수 없이 외국 MR을 아니면 노래방 MR을 녹음을 해서 해야 했는데 그건 좀 퀄리티가 떨어지잖아요. '왜 아끼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서 다 풀어야겠다라는 생각에 웬만한 곡들은 제가 인스를 같이 내려고 하죠. 또 인스는 곡의 재생산을 기대해 볼 수 있어요.

 

 

 

 

 

LE: 그렇다는 건 랩퍼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나.. 다른 랩퍼들이 사용했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의도가 맞는 것 같은데, 그럼 실제로 만약에 그런 사람들이 뉴올 님의 인스를 쓰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한테 싸이월드로 허락을 맡으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냥 쓰셔도 돼요. 하지만 녹음을 해서 발매를 하시면 안되죠. 이건 기존에 발매가 됐던 거니까. 제가 닥터 드레의 ‘Still D.R.E.’가 맘에 든다고 거기 위에 랩을 해서 앨범을 내면 안되잖아요. 녹음을 해서 믹스테잎을 내거나 아니면 남들을 들려주거나 블로그에 올리거나 하는 건 전혀 문제 없어요. 상업적인 이유가 아니면 괜찮아요. 공연도 괜찮고.

 

 

 

 

 

 

 

LE: 이런 부분을 궁금해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질문드려봤습니다. 요즘은 'Koonta In Nuoliunce', 'Minos In Nuol' 다음으로 'Swings In Nuol'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미 싱글 하나가 발표가 됐고요. 'Swings In Nuol'은 어떤 형식으로 발매되나요? 이번에도 트랙들이 많은 빵빵한 정규앨범인가요?

 

'Swings In Nuol'도 원래는 'Minos In Nuol' 후속작으로 생각을 했었죠. 앨범 단위로.

 

 

 

 

 

 

LE: 그러니까, ‘이런 앨범이 됐을 거다’라고 말씀을 해주신다면?

 

죽여주는 음반이었겠죠? 근데 지훈이(Swings)랑 으쌰으쌰해서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시기를 놓친 거 같아요. 그래서 지훈이도 바빠져 버리고 저도 좀 다른 거 하고 이러니까.. 시기적으로 좀 안 맞아서 ‘그냥 우리 사람들 기다리게 하지 말고 다음에, 나중에 시간 맞을 때 하자’했어요. 힙합씬에 보면 ‘앨범 나와’ 이러고 안 나오고 ‘거의 다 됐어. 이런 앨범이 될 거야’ 그래 놓고 안 나오고.. 전 그러고 싶지 않아서, ‘스윙즈인뉴올 싱글 하나 낼게요.’ 이렇게만 했던 거죠.

 

 

 

 

 

 

LE: 그럼 나중에라도 계획은 있으신가요?

 

음악을 오래 할 거니까 뭐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겠죠. 근데 민호랑은 기약을 했어요. ‘야 우리 'Minos In Nuol'은 한 번 더 나중에 한 번 하자’ 그 얘기를 했어요. 근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LE: 프로듀싱에 비중이 많으시지만 랩도 가끔 해오고 계세요. 왜 ‘가끔’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게 논쟁이 많죠. 제가 랩만 하는 랩퍼는 아니잖아요. 또한 실력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지금 플레이어들에 비해선 많이 있고요. 또 어떻게 보면 프로듀싱적인 측면을 사람들이 많이 보니까 당연히 제가 랩에 대한 기대치를 못 채우는 부분도 있는 거 같은데… 이건 제 생각인 거 같고요. 어쨌든 저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이 있어요. 아까처럼 ‘못 생겨도 괜찮아’ 이런 거는 산이가 얘기를 잘해주니까 (괜찮은데) 근데 그런 게 아닌, 나만 할 수 있는 얘기가 생기면 메시지적인 측면에서는 제가 랩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이번에도 베이비 부(Baby Bu)가 믹스테잎을 내는데 ‘애아빠 입장에서 가사를 써달라, 이건 형밖에 할 수 없다'고 해서 지금 가사를 써보고는 있어요.

 

 

 

 

 

LE: 스스로의 랩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만족은 하시는 것 같은데…

 

아니요. 만족… 예전 결과물들은 만족스럽지 못해요..

 

 

 

 

 

 

LE: 그럼 이번에 베이비 부의 믹스테잎에선 스킬을 많이… (웃음)

 

글쎄요. 근데 저는 스킬적인 것보다는 진정성이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사실 미국에 있는 랩퍼들 보면 되게 스킬적인 걸로 승부를 보는 랩퍼들도 있고, 뭐 아이스 큐브(Ice Cube)같은 랩퍼들은 줄곧 하던 타입으로 가잖아요. 그런 것도 좋은데. 우리가 ‘닥터 드레도 랩을 하네.’, ‘르자(RZA)도 랩을 하네.’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에미넴 보다는 못하잖아요. 우리나라는 프로듀서로서 랩도 만족시키는 타입이 많지 않으니까… 그런 점이 좀 아쉽지만 물론 제가 더 노력을 해야 되는 부분이겠죠.

 

 

 

 

 

LE: 유난히 (이런 것에 대해) 공격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이건 뭐 저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러니까…

 

 

 

 

 

LE: 프로듀싱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또, 처음 시작하실 때 독학을 하셨나요 아니면 누군가에게 배우셨나요?

 

중간에 엔터테인먼트에 한 번 간 적이 있었어요. 고3때 제가 데모를 많이 돌렸는데…

 

 

 

 

 

LE: 아 그럼 일단 고3 때까지는 독학으로 하신 건가요?

 

그렇죠. 샘플링도 모르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냥 혼자 했었고요. 근데 그 때는 배우지 않아도 재밌게 할 수 있는, 공 하나만 있으면 오프사이드(Offside)몰라도 축구하던 시절 같은 거죠. 그런 거였던 것 같고. 그때 엔터테인먼트에 잠깐 들어간 적이 있었어요. 사장이 사기꾼이었고요. 이사가 뻥쟁이였는데 (웃음) 회사에 작곡가 형들이 있었고 엄청 혼나고 호되게 당하면서 배웠죠. 거기서 6개월 동안 많이 배우기도 하고… 그 때 제가 신문 배달도 하고 그럴 때라 잠도 부족하고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때 배워서 얻은 게 좀 있었죠. 결국 회사가 쫑 나더라고요. 그래서 나와서 EP앨범으로 낸 거예요.

 

 

 

 

 

 

LE: 그러면 실질적으로 배운 건 길어봐야 6개월 정도인 거네요?

 

지금은 잘 하시는 분들이 많고 힙합에 대한 작법이 어느 정도 일반화 되어 있는데 그때는 정말 없었어요. 그때는 샘플링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LE: 제가 느끼기에는 뉴올 님이 워낙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셔서 어디선가 많이 배우셨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믹싱 같은 것도 직접 하시니까. 독학으로 할 수는 있지만…

 

제가 원래 좀 다양한 걸 되게 좋아해요. 팀발랜드(Timbaland)도 좋아하고 퍼렐(Pharrell)도 좋아하고 잘 한다는 사람들 거는 다 좋아해요. ‘어 난 걔 안 좋아해.’ 이런 게 없어요. 왜냐면 다들 너무 잘하니까 할 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그 사람들 거를 많이 듣고 따라 하고 그게 다였죠. 그래서 제가 20살 때 비트를 만들 때 내가 만든 비트가 외국 곡처럼만 나오면 그 날 밤은 정말 행복한 밤이었어요. 왜냐면 발라드만 들으면서 한국적인, 김치 냄새가 몸에 배어서 음악을 아무리 만들어도 다 한국적으로만 나오는 거예요. 그루브하고 사운드 좋고 이런 게 안 나오는 거예요. 아무리 만들어도. 그 후에 우리나라 가요를 끊고 (웃음) 팝을 많이 듣다 보니까 한 5년 정도 지나고 소화가 되어서 그런지 슬슬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LE: 그럼 평소에 전체적인 작업 순서는 어떻게 되세요?

 

저는 정말로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찍을 수 있는 리듬 라인이 있으면 비슷한 걸 안 찍으려고 해요. 더 새로운 걸 많이 추구하려고 하는 타입인데 그래서 팀발랜드 타입의 비트를 많이 찍었는데 거기 위에 랩할 수 있는 랩퍼가 없더라고요 우리나라에. 거의 없더라고요. ‘아 내가 이렇게 만들어도 부를 사람이 없구나.’ (웃음)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LE: 초창기 때는 프로듀싱 경력보다는 믹싱 경력이 더 많으신 편인데 프로듀싱과 믹싱의 어떤 차이점이라든가…

 

아, 근데 힙합 음악이 현대로 가면 갈수록 사운드적인 측면이 되게 중요해요. 예를 들어서 ‘빠 밤 빰빰빰~ 빰!’ 이게 ‘Drop It Like It’s Hot’에 나오는 신스(Synth) 라인이거든요. 입으로 하면 별로잖아요. 피아노로 눌러도 별로예요. 근데 그걸 신스로, 그런 질감으로 그런 스네어와 함께 같이 나오니까 훨씬 멋있잖아요. 신스를 그냥 연주하다 끝나는 게 아니라 후속 과정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게 아주 완벽한 믹싱은 아니더라도 사운드를 잡아가는거죠. 미국에서는 ‘리듬이 좋네.’, ‘드럼이 좋네.’ 이런 게 아니라 ‘빡! 빡!’치는 자기들만의 스네어들이 있어요. 프리모(DJ Premier)도 자기만의 스네어가 있고 닥터 드레도 그렇고, 팀발랜드도 그렇고, 스위즈 비츠(Swizz Beats)도 그렇고. 결론적으로 그들은 사운드적인 걸로 색깔을 내는 거잖아요. 그러니 믹싱이 같이 안 갈 수가 없어요. 간혹 음악 잘하는 사람들이 저한테 ‘사운드 어떻게 내요?’ 물어봐요. 지금 보면 미국 팝순위에 힙합이 정말 많잖아요. 근데 기존에도 곡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넵튠(The Neptune)이 아니어도 가요 쓰는 애들이 많이 있었는데도 걔네들은 자리를 못 지키고 힙합 프로듀서들한테 안방을 내줬죠. 왜냐면 사운드가 밀려서 그런 거예요. 하지만 그런 흐름에 순응해서 나오면 스타게이트(Stargate)같은 팀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제 음악을 표현하려면 당연히 믹싱까지 같이 갈 수밖에 없어요. 믹싱을 공부했어야 했었죠.

 

 

 

 

 

 

LE: 뉴올 님의 곡들을 보면 항상 샘플링을 하기는 하나, 곡 전체에 전면적으로 샘플을 사용하는 소위, ‘통’샘플링 하지 않으시는 편이세요. 특별히 이유가 있나요?

 

미디와 샘플링을 같이 하는 걸 좋아해요.. 미디랑 샘플링이랑 같이 하면 그 시너지가 대단하죠.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같은 경우가 그래요. 그래서 요새는 미디 쪽으로 많이 하고 있어요. 샘플링은 미국의 최고 연주자들이 연주하고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믹싱하고 마스터링해서 가장 좋은 앨범으로 인정받은 걸 샘플링하는 거잖아요. 태평양을 건너서. 그런 승부에서 밀린 앨범들은 우리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구글에 검색해도 나오지도 않고. 그런 게 레어 아이템인데(웃음) 그런 걸 샘플링하면 당연히 좋은 곡이 나올 수밖에 없죠.

 

 

 

 

 

LE: 혹시 샘플 클리어런스(Clearance) 문제로 부딪혀본 적 있으신가요?

 

아 그거 정말로 힘들죠. 왜냐하면 미국 같은 경우는 프로듀서도 팀으로 움직이고 워낙 파이가 커서  로열티(Royalty)로 가는 거죠. 지분으로. 예를 들면 제이지(Jay-Z)의 ‘Show Me What You Got’ 원곡자가 있을 거고 제이지도 있고. 그 모두가 나눠먹어도 부족하지가 않거든요. 근데 여기는 한국이에요. 그래서 그 노래를 클리어를 하려면 돈도 많이 줘야 하고.. 작사 작곡을 다 넘겨야 돼요. 제가 만약 미국 사람이면 그러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가르치는 애들한테도 컷팅을 할 때 단음으로 하라고 해요. 하려면 티가 안 나게 아예 새롭게 만들라고 해요. 거기에 있는 라인 쓰지 말라고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근데 그러면 가끔 ‘어, 디제이 프리모도 ‘Next Time’같은 곡에서는 완전 통샘플링인데 어이없지 않나요?’ 그러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거든요. 한국 사람들 그게 문제인 거 같아요. 음악은 들어서 좋으면 그만이에요. 분석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뭐, 옷이 ‘어, 오바로크(overlock)가 세모로 쳐있네? 이거 아니야. 요즘은 네모가 대세야.’ 이런 거 없어요. 옷은 예쁘고 잘 어울리면 그만이고 음악도 들어서 좋으면 그만인데 ‘쟤보다 얘 음악이 훨씬 더 악기가 많아.’, ‘얘는 샘플링했는데 얘는 연주한 거야. 얘게 더 좋은 거야.’ 그런 거 상관없어요. 저도 그렇게 편하게 통샘플링하고 싶은 노래 많죠. 근데 (샘플링)하면은 불리한 시스템이 되어 있으니까 안 하는거죠. 근데 클리어런스가 수월해지게 되면 할 의향은 충분히 있어요.

 

 

 

 

 

 

LE: 근데 하셨던 것도 있잖아요. 더블 케이(Double K)님 앨범에…

 

아, ‘Follow’요? 그거는 모든 걸 제가 다 미디로 한 거예요. 그게 왜 샘플링처럼 들리냐면, 저도 이거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데.. 그 노래 만들기 정말 힘들었어요. 그 노래가 ‘샘플링을 하지 말고 샘플링한 음악처럼 만들어보자.’하고 만든 취지의 곡이였어요.. 그 곡에서 피치(Pitch)를 올리잖아요. 그 느낌을 내려고 피치를 낮게 해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버블 시스터즈(Bubble Sisters)의 아롬(Arom)이 보고 노래를 부르라 그랬어요. 노래를 부른 다음에 피치를 올렸어요. 사실 외국 거 샘플링해서 잘라서 넣으면 되는 거죠. ‘Follow~’ 이것도 다 라인 만들어서 냈죠. 근데 그 비슷한 시기에 다른 랩퍼들 앨범에선 (외국 곡을) 샘플링 했는데 사람들 차이를 모르죠. (인터뷰어도) 모르잖아요. (웃음) 그러니까 제가 거기에 회의를 느끼죠. (그 곡이 샘플링이라고 얘기할 만큼) 그만큼 샘플링스럽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거잖아요. 저도 되게 애착있는 트랙이거든요. 근데 그런 방식으로 만들면 너무 힘들어요. 녹음비도 2배로 들고... 보컬도 샘플링하면 그냥 잘라 넣으면 끝인데 녹음해야 되죠. 그리고 그걸 또 믹싱을 해서 피치를 올려야 되죠. 두 번의 과정을 거치는 거예요. 원곡을 만들고 한번 더 샘플링하는 거니까. 한 번 해보고 어…이제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렇게 만들어서 제가 돈도 더 많이 벌고 명예에 도움이 됐다면 그런 작법들을 할텐데… 그 후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LE: [The Mission] 앨범의 수록곡 ‘Mr.Hyper’를 들어보면 “49건반에 달랑 모듈(Module) 하나”라는 가사가 있어요. 그 당시까지만 해도 그 정도 장비로만 작업을 해오신건가요?

 

아… 장비들이 있었어요. 있었는데 회사한테 돌려줘야했어요. 그걸 회사에서 대주다가…

 

 

 

 

 

 

LE: 아 다시 가져간거구나..

 

네. 그래서 그때 제가 49건반이랑 오디오 카드 하나로 작업을 했어요. [The Mission]은. 그 후에 차곡차곡 돈 모아서 조금씩 구입을 했죠.

 

 

 

 

 

LE: 요즘에 사용하는 장비들은 어떤 게 있나요?

 

제 메인은 Motif XS 7이고요. 그리고… 오디오 카드는 Lynx2 이거 진짜 좋아요. API 527comp 그리고 API 512 mic pre 그리고 뭐 마이크 음…

 

 

 

 

 

LE:  특별히 주로 사용하시는 Vsti(가상악기)나 장비가 있으신가요? 괜찮으시다면 그 악기에 대한 디테일한 소개도 부탁드려요.

 

아~ Vsti. 정말 많죠. (웃음) 정말 많은데…Vsti는… Waves plug-in(플러그인). 그리고… 어, 큐베이스(Cubase)… 아 근데 너무 많은데. Genetic, 8030.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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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알겠습니다. 그럼 Vsti같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모듈 같은 하드웨어 장비 중에 어떤 것을 더 선호하시나요?

 

Vsti는 소프트웨어기 때문에 입체적이지 못해요. 그래서 거기에 아웃보드를 쓰면 입체적으로 바뀌어요. 아날로그한 느낌? 입체적인 느낌? 그걸 내려면 Vsti보다는 모쥴 쪽이 그런 느낌은 더 강하고요. 리얼한 샘플들로 샘플링된 오케스트라 계열은 Vsti를 많이 쓰고요.

 

 

 

 

 

LE: 원래 그런 스타일을 지향하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전보다 드럼사운드의 깊이가 점점 얕아지는 것 같아요. 나쁜 뜻에서 얕아진다는 말은 아닌데요. 혹시 의도된 부분인가요? 단순하게 말하면 ‘쾅’이 아니라 ‘찹’이라는 거죠. 설명하기 힘드네요. (웃음)

 

저는 드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주변에 음악하는 사람들도 드럼에 대해서는 문의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SM에 있는 작곡가 형들도 사운드를 어떻게 내는지 궁금하다면서 물어보고 그리고 저는 스네어 같은 경우도 프리모가 만든 곡 중에 나스(Nas)의 ‘Nas is Like’같은 걸 들어보면 되게 ‘빡 빡’ 세게 치잖아요. 근데 축구할 때도 보면은 호날두처럼 세게 찰 수도 있지만 지단이나 메시처럼 이렇게 톡톡쳐서도 넣어요. 필요한 만큼만. 그래서 전 그런 스네어를 점점 더 선호하게 되는 편이에요. 그래서 스네어들도 국내 앨범에서는 잘 안 쓰는듯한 그런 스네어를 많이 쓰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간혹 가다가 ‘어, 뉴올은 드럼이 이상해. 별로야.’ 이런 리플을 보는데 전 사실 그런 걸 보면 되게 안타까워요. (그런 드럼이) 그냥 일반적인 팻(phat)한 게 아니라 재치를 부리는 거거든요. 제가 의도한 것들이 오히려 더 마이너스 역할들을 하게 되니까 속상하죠.

 

 

 

 

 

LE: 그럼 보통 드럼을 만드실 때 어떻게 만드시나요?

 

드럼의 질감을 만지는 건 사실 이퀄라이져(Equalizer)랑 컴프레서(Compressor)가 다예요. 거기에 독특한 이펙트들? 근데 대표적인 건 이퀄라이져랑 컴프레서죠. 근데 제가 만드는 비법은 공개하기가 좀 애매해요. (웃음) 그렇죠? 그건 고추장 장 담그는 거 물어보는 꼴이니까. 레시피 같은 건…

 

 

 

 

 

LE: 어쨌든 큰 방법은 말씀하신 두 가지(이퀄라이져, 컴플레서)를 계속 만져보는 거죠?

 

그렇죠. 이퀄라이져랑 컴프레서가 정답인거죠. 간혹 가다가 보면은 이런 얘기 들은 적도 있어요. 랍티미스트(Loptimist)나 더 콰이엇(The Quiett)의 비트를 들으면 ‘아 걔가 쓴 거다.' 라는 걸 딱 알겠는데 뉴올은 그런 특징이 없다. 이런 글을 본적이 있거든요. 근데 오히려 저는 그거를 스펙트럼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늘 똑같은 거 저도 할 수 있죠. 근데 제가 거기에 더 필요성을 못 느끼니까. 새로운 게 더 좋고. 다양하게 만드니까 그렇게 오해 하시는 거 같아요.

 

 

 

 

 

LE: 뉴올 님이 생각하시기에 뉴올 님의 스타일이나 활동 빈도 같은 것을 고려해서 외국 힙합의 프로듀서와 뉴올 님을 매치시킨다면 어떤 프로듀서가 적합할까요? 그리고 존경하는 프로듀서도 얘기해주세요.

 

매치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팀발랜드에요. 국내에서 앨범이 나왔을 때 가장 망하기 쉬운, 팀발랜드 옛날 거. 팀발랜드 & 마구(Magoo) 이런 거 있죠? 1집이랑… 예술이거든요, 그런 거 들어보면. 그래서 팀보 별명이 ‘미래에서 온 흑인’이잖아요. 왜냐하면 리듬이 너무 독특하고 진보적이니까. 그 외에도 퍼렐도 좋아하고 프리모도 좋아하고 닥터 드레도 좋아하고 디제이 카릴(Khalil)? 카릴 좋아하고 저스트 블레이즈도 좋아하고 스위즈 비츠도 좋아하고.

 

 

 

 

 

LE: 안 좋아하는 프로듀서는 없나요? 특정인을 말하지 않더라도 이런 스타일을 별로다 싶은…

 

없는 것 같아요. 사우스도 좋고 약간 재지한 것도 좋고 그리고 닥터드레 같은 쥐펑크(G-Funk)도 되게 좋아하고 나스의 [Illmatic] 같은 스타일도 좋아하고 ATCQ(ATribe Called Quest)도 좋아하고 그런 거 같아요. 다 좋은 거 같아요. 다 너무 잘하잖아요. 릴 웨인(Lil Wayne)도 좋아하고 루다크리스(Ludacris)도 좋아하고.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도 좋고… 아 에미넴 락 스타일? 가끔 가다가 에미넴이 너무 락으로 빠질 때? 그런 것만 살짝 취향에 안 맞아요.

 

 

 

 

 

LE: 그러면 우리나라 프로듀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잘하는 분들 많겠지만 그래도 그 중에 뉴올 님이 생각하시기에 ‘쟨 왜 하는 거야?’싶은 애들이 있지 않나요.

 

있기는 하지만 단정 짓고 싶진 않고 과정으로 보고 싶거든요. 지금 못 한다고 해서 욕 할 것도 아니고 지금 잘한다고 해서 너무 칭찬할 것 도 아닌 게, 저도 예전에는 햇병아리에 불과했을 때가 있었고… 뭐 못하면은 자연스럽게 이 씬에서 버티지 못하지 않을까…싶네요.

 

 

 

 

 

LE: 음… 그런 사람들에게는 굳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도태될 거다)

 

그럼요. 그래서 저는 너무 못하는 애들은 욕해서 쳐내야 하고 잘하는 애들은 치켜 세워줘야 하고 그런 것도 잘 모르겠어요. 안 좋은 건 그런 거죠. 대형마트에서 안 좋은 화장지를 좋은 자리에다가 놔두는 거. 그런 게 나쁜 거죠. 걔네들끼리 돈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 분명히 우리나라에도 좋은 앨범들이 많이 있는데 솔직히 멜론에 걸리는 새로운 앨범들 코너에 그런 좋은 앨범들이 걸려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게 아쉽죠.

 

 

 

 

 

LE: 이제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에 대해서 좀 여쭤볼게요. 일단 맨 처음으로 이걸 짚어야 될 것 같아요. 지금 현재 소속이라든지, 크루 이런 게 어떻게 되시나요?

 

없어요. 전 지금 무소속이에요.

 

 

 

 

 

LE: 그러면 808 Presents는 뭔가요?

 

아, 그건 그냥 제가 저작권 등록할 때 회사 이름이 없으면 안 돼서... 808이란 드럼이 있어요. 드럼이 힙합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이잖아요. 그래서 그냥 808 Presents라고 내는 거죠. 이건 레이블도 아니고 새로운 애들을 받거나 키우거나 그럴 계획은 아직 없어요.

 

 

 

 

 

LE: 파운데이션과의 계약만료 이후 AK 프로덕션(AK Production)이란 회사로 자리를 옮기셨어요. 영화 음악과 광고 음악 작업도 많이 하셨나요? 영화 <유감스러운 도시> OST나 드라마 ‘최고의 사랑’ 음악 작업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아 ‘최고의 사랑’도 있었지.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LE: 저흰 힙합엘이니까요. (전원웃음)

 

그거 아무도 모르는데. 대단하다. 최고의 사랑을 알다니.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라이브러리에 제가 만든 비트가 포함이 되었고 그 쪽에서(‘최고의 사랑’ 제작진) 듣다가 어울리는 걸 쓴 거예요.

 

 

 

 

 

LE: OST 작업은 좋아하시는 편인가요?

 

그럼요. OST나 아니면, 광고음악 재밌죠. 나이키(Nike)나 리홈(Lihom), 까페라떼(Café Latte) 최근에는 엘지 옵티머스(LG Optimus) CF에 참여했어요.

 

 

 

 

 

 

LE: 그럼 그런 게 실질적으로 더 수입이 많이 되겠네요.

 

그렇죠. 저는 감사하게도 제 음악에 광고적인 요소가 사실 많아요. 룹(loop) 하나 만들면 대개는 그냥 돌리잖아요. 근데 제 꺼 보면은 거의 인트로, 중간, 변주도 많고 그런 게 이제 광고하면서도 많이 배운 거죠. 왜냐면, 지루해지면 안되니까. 그래서 저는 운이 좋게도 그런 광고 쪽을 접할 수 있어서…

 

 

 

 

 

LE: 그럼 앞으로도 기회가 되신다면 계속 하실 건가요?

 

네. 요즘도 들어오고 있어요.

 

 

 

 

 

 

LE: 스카이 리얼 북(Sky Real Book)은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몰랐었는데 뉴올 님이 참여하셨길래 봤더니 굉장히 신기하더라고요.

 

아~ 스카이 리얼 북에 참여한 곡이 '최고의 사랑' OST에 들어간 거죠. 그게 아는 지인 분이 라이브러리를 만든다고 해서 광고에 어울릴만한 게 있냐고 해서 보냈던 거죠.

 

 

 

 

 

<Stand Up, Japan>

 

 

LE: 그렇군요. 일본 지진 추모곡인 ‘Stand Up, Japan’을 만들 당시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주위 반응이라든지…

 

저는 너무 충격이었어요. 지진 영상을 보는데 까만 물이 밀려오는데 와, 너무 생생해서 충격을 먹었어요. 저도 다섯 살짜리 딸이 있거든요. 내가 이안(딸)이랑 둘이 있는데 그 까만 물이 그렇게 한 10미터짜리로 온다면.. 어, 이거 너무 심각하잖아요. ‘아 이건 도와야겠다.’ 했는데 사실 제가 유명 배우도 아니고 뭐 일본에서 활동한 것도 아니지만 이거는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전화를 돌렸어요. '나 이런 거 할 건데 참여해 줄 수 있냐고.' 그리고 랩퍼들이 선뜻 다 8마디씩 하기로 한 거고. 근데 그걸 녹음하고 있던 도중에 독도 문제가 붉어졌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일본 왜 도와주냐.’ 이러는데 저는 그게 이해가 안됐어요. 아니 갑자기 수재민, 이재민 된 사람이 인터뷰에서 ‘생각을 해봤는데 우리가 죽은 건 죽은 거고 독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땅인 거 같다.’ 이러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은 그냥 시민이잖아요. (독도 이야기는) 일본 정부에서 그런 건데. 북한의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고 해서 ‘니네는 굶어 죽어도 싸.’ 이건 아니잖아요. 정부가 못하는 건데 그걸 나눠서 생각을 해야 되는 건데.. 그걸 묶어서 생각하는 거예요. 저도 뭐 당연히 한국사람으로 (웃음) 당연히 친일파도 아니고 땅 많고 그런 건 절대 아니죠. 그래서 친일감정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 아니예요. 저도 일본과거 역사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건 좀 아니고 열 받고 화 나죠. 그러면 또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럼 너 터키 지진나고 아이티 지진났는데 거기는 왜 추모 안하냐.’ 그런 글을 봤어요. 근데 제가 지진 날 때마다 매번 할 순 없잖아요. 재난담당 프로듀서도 아니고(웃음) 그리고 전 일본은 우리한테 나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나라니까 오히려 더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더 큰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대인배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곡은 일본 힙합 씬에서도 ‘한국 힙합 씬에서도 이런 곡을 만든 적이 있다.’라고 하면서 좋은 일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 의도로 했는데 앨범이 발매된 다음에 악플들이 막 달리는 거죠. 흥행으로 봐도 제작비에 도달도 못했어요. ‘아, 노래 별로네.’, ‘최악이다.’, ‘노래 쓰레기네.’ 뭐 이러는데 사실 노래가 쓰레기는 아니에요. 저도 되게 열심히 했고 그렇게 실력 있는 랩퍼들 모으기도 쉽지도 않고 좋은 의미를 너무 그렇게 퇴색시키니까… 그렇지만 뭐 국민적 정서가 그렇다면… 그래서 그때 뮤직비디오도 찍었는데 발표하지 않았어요. 얼마 전이 돼서야 아까워서 업데이트했어요. 지금 검색하면 보실 순 있어요. 그리고 NHK에서도 연락이 왔었어요. ‘니네 뮤직비디오 있으면 보내줘라. 지진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거 같다.’ 근데 그렇게 또 보내면 ‘어 너 이걸로 유명세를 이용하는구나.’ 이런 얘기 들을까봐 제가 정중히 사과했어요.

 

 

 

 

 

 

LE: 그 뮤직비디오에 참여한 랩퍼들이 다 출연하나요?

 

다 나와요.

 

 

 

 

 

LE: 그럼 굉장히 힘들게 만들었을 텐데…

 

그렇죠. Dawn이를 비롯한 스텝들 만든 친구들 다 힘들었죠.

 

 

 

 

 

 

LE: 알겠습니다. 이번엔 다른 노래 이야기를 좀.. 하하 씨가 ‘Rosa’를 리메이크한 건 어떻게 된 건가요? 더불어 하하 씨와 작업하게 된 계기는?

 

하하 형이 평소 ‘Rosa’를 되게 좋아했어요.

 

 

 

 

 

LE: (서로) 모르던 시절에?

 

아니죠. 하하 형이랑 안 건 'Koonta In Nuoliunce'때부터였어요. 그래서 ‘키 작은 꼬마 이야기’? 그거 레코딩하는 영상 봐도 우리가 있거든요. 쿤타랑 제가 옆에. 그래서 쿤타가 옆에서 같이 백업 깔아주고 코러스 넣어주고 저도 같이 디렉팅 보고. 그때부터 친해져서 ‘'Rosa’ 언젠간 내가 리메이크 할거야, 할거야.’를 거의 밥 먹듯이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하세요.’ 해서 하게 된 거죠. 근데 가끔씩 사람들이 하하 형이 곡을 망친다고 그러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하하 형이 농담으로 저한테 그래요. ‘야, 내가 한 번 부르니까 원곡이 더 살지?’ 이러거든요. 다른 가수를 통해 한번 더 불려진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죠.

 

 

 

 

 

LE: 하하 씨 같은 경우엔 우리가 TV로 보면 이미지가 유쾌하고, 음악에 관심이 많고 어딘가 자유로운..(웃음) 그런 이미지인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배려심 있고 되게 순수한 형이에요. 꼬마 컨셉이 진짜는 아니고. 어… 물론 꼬마는 아니죠. (웃음) 잘 챙겨주세요.

 

 

 

 

 

LE: 저도 (하하 씨를) 좋아하는데, 그러면은 혹시 'Haha In Nuol' 계획 같은 건 없나요? (웃음)

 

'Haha In Nuol'은… 성사되기가 어렵죠. 왜냐면 한 곡이 아닌 여러 곡에서의 장점을 보여줘야 되니까. 근데 하하 형이 저한테 가끔 곡 써달라고 하기는 해요.

 

 

 

 

 

LE: 한 두 곡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아마 앨범은 조금 힘들지 않을까? 그런 거군요.

 

앨범은 좀 그렇겠죠 아무래도? 그래서 그 앨범에도 두 곡 들어가 있거든요. ‘Rosa’랑 ‘동훈이라고!!’. ‘동훈이라고!!’는 제가 나름 하하 형을 멋있게 보여드리려고 비트도 되게 적절한 걸로 하려고 애를 썼죠.

 

 

 

 

 

 

LE: 하하 씨 같은 경우는 지금 뭐 레게 음악을 주로 하고 있지만 흑인음악 쪽에 관심이 많지 않나요?

 

원래 힙합하던 형이잖아요. 지키리…하하 형이 재능이 있어요. 끼가 장난이 아니에요. 작사도 자기가 직접 하고…저는 작업을 하면서 에너지가, 사람이 너무 좋기 때문에 음악 작업 하는데도 힘들지도 않았고 오히려 이 형이랑 이 곡을 이렇게 작업하니까 즐거웠어요.

 

 

 

 

 

LE: 베이비 부나 로지키스(Roji Kiss)같은아티스트들에 대한 뉴올 님의 지원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808 Presents와 관련된 분들인가요?

 

제 친한 동생들이고요. 이 친구들이 제 작업실에서 녹음을 하고 하니까. 베이비 부는 제 학교 후배에요. 고등학교. (웃음) 그래서 지원을…아니, 같이 음악을 하는 거죠. 베이비 부 같은 경우는 원래 소설가가 꿈이었어요. 걔 가사를 보면 되게 위트 있는 대목들이 많이 있어요.

 

 

 

 

 

LE: 한동안 한국판 ‘Rap City’로 ‘마이크 스웨거(Mic Swagger)’라는 영상을 제작하셨어요. 당시에 나오는 편마다 굉장히 인기가 있었는데요. 어떻게 시작을 하게 되신 건가요?

 

술제이(Sool J)가 저랑 작업실 생활을 같이 했었거든요. 근데 이 친구가 프리스타일을 정말 잘 해요. (술제이가) 자고 있을 때 형들이 볼 톡톡 치면서 ‘야, 책상에 대해서 프리스타일 해 봐.’ 이러면은 자다가도 랩을 해요. 그러니까 ‘어 이렇게 잘하는 애가 왜 이렇게 있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 때 제가 AK 프로덕션에 있을 때 거든요. ‘형 스튜디오에다가 세트 만들어놓고 ‘Rap City’같은 걸 해보자.’해서 시작하게 된 거죠.

 

 

 

 

 

LE: 처음 시작할 때 이 정도로 반응이 좋을 줄 알았나요?

 

네. 저는 될 줄 알았죠. 그래서 'Koonta In Nuoliunce' 2집 앨범에 ‘‘해’라는 노래. 타이틀이에요. 그 노래 뮤직비디오를 찍은 김성욱 감독님이 있거든요. 찾아갔어요. ‘형 나한테 이런 아이템이 있고 술제이라는 애가 있는데 형 이거 좀 찍어줘. 이거 사람들 진짜 많이 볼 거야.’ 그래서 지금 조회수가 유투브에 200만? 엄청나거든요. 형이 재밌겠다고 해서 찍게 된 거죠.

 

 

 

 

LE: 최근에는 제작이 멈췄는데 어떤 이유에서 멈춘 건가요? 언제가 마지막이었죠?

 

23편? 지조? 투게더 브라더스(Together Brothers)편이 마지막이었나요? 제가 요즘 바빠진 것도 있고요. 그거 아니어도 다른 좋은 영상 컨텐츠들도 있고 해서 잠깐 쉬고 있어요. 그리고 나중에 시즌2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어요. 가끔 저한테 와가지고 (웃음) ‘야 뉴올 너 마이크 스웨거 왜 안 찍냐?’, ‘언제 나와요?’, ‘이렇게 오랫동안 안 내도 되냐?’ 막 이러는데 제가 원래 마이크 스웨거 찍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전원 웃음)

 

 

 

 

 

LE: (제작을 멈춘 이유가) 저희가 그냥 생각하기로는 '이제 나올 사람이 없어졌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

 

나올 사람은 있어요.

 

 

 

 

LE: 지금은 쉬는 기간이고 더 하고 싶으신 생각은 있으신 거죠?

 

네. 현재로서는 모르겠어요. 제 작업, 제 정규가 (계획에) 없는 것처럼 계획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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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 Swagger - 5편 Huckleberry P>

 

 

LE: 가장 맘에 들었던 편은 어떤 편인가요?

 

여러분들이 뽑으신 거랑 똑같을 거예요. 베스트는 허클베리 피(Huckleberry P) 편이겠죠. 저도 그 현장에 있었는데, 소름이 돋아가지고... 제가 그거 찍고 그랬어요. 그 편 이후로 이거보다 더 센 건 없을 거라고. 나머지 분들이 못 했다는 건 아니고요. 왜냐하면 (제작) 초창기기도 했고 마이노스 같은 경우엔 프리스타일 잘 하는 거 원래 알았거든요. 같이 생활했으니까. 근데 허클베리피라는 친구는 그 날 처음 본 거였으니까 더 놀랐죠. JJK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출연하기 전부터.

 

 

 

 

LE: 예전에 힙합플레이야에서 '프로듀서 프로젝트' 영상도 그렇고, RMW(리드머에서 개최했던 랩,프로듀싱 강좌)에 트레이너로 참여하신 것도 그렇고, 지금도 1:1 개인레슨을 하시는 것도 그렇고.. 프로듀싱을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고 싶은 욕구가 있으신 거 같아요. 어떤가요?

 

네. 맞아요. 음악을 잘 하는 거는 저 아니어도 다른 사람한테도 배울 수 있어요. 근데 저는 음악을 재밌게 하는 법을, (음악을 하면서)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법을 말해 주고 싶어요. 사실 음악하면서 불행해 하는 사람이 많아요. 아티스트들 중에 자살하는 경우도 많고 싸이코가 되는 경우도 많고. 근데 애들은 자기가 어떤 음악을 냈을 때 내가 돈 벌고 내가 유명해질 거만 생각하지 그 음악이 사람들한테 어떻게 다가갈까는 생각을 잘 안 하거든요. 어쨌든 살아가는 얘기를 많이 해 주고 싶어요. 그냥 좋은 음악 만들어서 좋은 앨범에 들어가면 유명해질 수 있어요. 근데… 저는 그것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내 스스로도 행복할 수 있는가, 필요한 건가. 그런 식의 접근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 ‘공부 잘 하는 것보다 예의 바른 게 더 중요해. 인성이 더 중요해.’ 이런 점? 그러니까 우리나라 교육처럼 ‘야 피아노쳐.’, ‘드럼 이거 똑같이 쳐’, ‘라임 똑 같은 거 100개 찾아’ 이런 거 필요 없고 걔가 더 새로운 경험 속에서 새로운 가사 쓰고 그런 게 필요한 거죠. 만약에 이번에 뭐 스윙스가 히트쳤어, 뭐, 버벌진트가 히트쳤어 그러면 다 비슷하게 가사를 쓴단 말이죠. 다 똑같아요. 제2의 버벌진트, 제2의 스윙스를 원하는... 근데 그게 아니거든요. 힙합씬이 발전하려면.

 

 

 

 

 

 

LE: 그러니까 강사 라기 보다는 멘토 같은 역할을 하신다는 거죠?

 

네 그렇죠. 그래서 나중에도 기회가 되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세미나 같은 그런 걸 하고 싶어요.

 

 

 

 

 

LE: 오픈한 지 시간이 좀 됐지만 비트메이킹 관련 사이트인 ‘Compdrum’도 오픈하셨어요. 제가 보기엔 프로듀싱에 대해 가르쳐주고, 프로듀싱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사이트를 오픈하신 것 같아 보이는데요. 어떤 의도에서 사이트를 만드셨는지, 또, 현재 사이트는 잘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http://compdrum.com/)

 

지금은 제가 신경을 크게 못 쓰고 있는 상태인데 미디사이트는 많이 있어요. Compdrum말고도 많이 있는데 그게 신기한 게 컴프는 락에서도 쓰고 힙합에서도 써요. 근데 그걸 어떻게 만지느냐에 따라서 음악이 다르게 나오죠.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음악의 드럼을 들어보면 다른 사람들이 쓰는 똑같은 드럼과 똑같거든요. 야마하(YAMAHA) 거. 근데 그걸 레코딩을 어떻게 하고 믹싱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그렇게 흑인 색깔이 나오고 아니면 백인 색깔이 나오는데... ‘컴프는 이렇게 쓰세요’라는 가이드는 있어도 흑인음악에 포커스를 맞춘 가이드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힙합적인 얘기를 공유를 하고 싶어서 만든 거죠.

 

 

 

 

 

LE: 앞으로도 강좌 올리고 하실 거죠?

 

그래야겠죠? 이거 보신 분들 많이 와주세요.

 

 

 

 

 

LE: RMW에서 만났던 친구들의 곡들이나 혹은 Compdrum에 올라오는 곡들을 들었을 때 공통적으로 많이 하는 실수 같은 것들이 있다면 충고의 얘기로 한 말씀해주세요. 한 마디 말이지만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처음에는 실력이 없어서 악기를 많이 못 넣어요. 그래서 곡이 되게 별로로 나오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제법 편곡하는 법을 안다고 생각을 해서 악기를 많이 넣어요. 악기가 너무 많이 넣으면 또 곡을 망쳐요.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그 모든 걸 다 알게 되면 필요한 악기만 넣게 되죠. 악기가 많아지면 음악을 오래 못들어요. 지루해서. 듣기 힘들어요. 어렵지만 그걸 위해서 계속 연마해야 하는 거죠.

 

 

 

 

 

LE: ‘마이크 스웨거’부터 ‘Compdrum’까지 음악도 음악이지만 힙합이란 문화 자체를 굉장히 아끼고 이 문화를 발전시키시는 데에 아이디어를 많이 내세요. 혹시 또 준비하고 계시는 아이디어가 있나요?

 

없어요. 막연하게는 뭐, 저도 필요를 느끼니까 늘 생각은 하는데 지금 저는 프로듀서잖아요. 좋은 음악 만드는 사람인데 제가 '마이크 스웨거' 찍고 있고, PD하고 있고, 사이트 운영하고 있고. 이건 안 맞는 거거든요. 누군가가 그런 것들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피디디(P.Diddy)가 랩을 잘해서, 그리고 비트를 잘 만들어서 공헌도가 큰 게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비기를 랩할 수 있게 해주고, 배드 보이(Bad Boy Records)를 만들고 그리고 콘서트를 만들어서 애들 다 와서 할 수 있게 해주고... 새로운 콜라보레이션을 만들고. 사업가예요 사업가. 근데 지금 언더그라운드에는 사업가가 없어요. 똑똑한 사람들이. 머리 좋고 사업 잘하는 사람들은 삼성에 들어가죠. 근데 그런 사람들이 와서 여기를 더 개발을 해줘야 되는 거예요. 캐지 않아서 그렇지 여기는 광석들이 많은데. 캐서 세상에 내보이면 씬이 커지는데…

 

 

 

 

 

 

LE: 공감합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요, 우리나라에서 힙합이란 문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려면 어떤 점이 필요할까요?

 

단시간 내에 바뀔 거라고는 생각 안하거든요. 왜냐면 우리나라가 살아온 방식들이 있고 언더씬이 예전에는 (오버씬에서) YG에서 지누션(Jinusean)이 나오면 가리온 1집, 또는 MP에서 나온 풍류같은 앨범들이 있었어요. 왜냐면 이건 YG에서 하지않는 스타일이거든요. 이건 언더가 아니면 들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크루(Da Crew) 들으러 가고 거리의 시인들 듣고. 옛날에 잘했던 분들 많잖아요. 근데 이제는 다 wanna be 오버.. 나 돈 벌 거야. 좋은 차 탈 거야. 그런(오버) 음악 할 거야. 빅뱅음악 할 거야. 그럼 당연히 경쟁이 안되죠. 시장에 상점을 하나 냈는데 '워너비 홈플러스'에요. 홈플러스 제품 갖다 놓고 막 진열해놓고 파는 거죠. 사람들은 당연히 홈플러스 가죠. 거긴 포인트, 마일리지도 적립되고 다른 것들도 많은데. 자리 잡기 위해선 순대를 수제로 만들어서 팔면 돼요. 홈플러스 안하는 걸. 언더도 자기만의 정체성이 있어야 해요. 오버를 못해서 모인 애들이 언더가 되서는 안 되는 거죠. ‘야 걔네 더 일부러 안하는 거야.’ 뭔지 아시죠? 분점 내지 않는 거. 그게 멋있는건데 ‘언더 없어보여.’, ‘오버 들어 가려고 되게 용쓰는 애들 같아.’ 이런 얘기 들으면 안되죠.

 

 

 

 

 

 

LE: 역시 방금 했던 얘기랑 비슷한 얘기예요. 이 씬에서 이런 거 만큼은 없어져야 한다, 아니면 저런 행동은 진짜 발전에 저해가 된다- 이런 걸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일단 저작권이 생각나네요. 물론 우리들의 내부적인 문제들도 있겠지만 힙합씬은 단결이 안돼요. 그건 정말 문젠데 그보다 더 문제는 저작권 분배 문제예요. 물론 그건 우리뿐만 아니라 대형기획사들도 피해를 보고 있는 거지만 언더는 아예 살아남을 수가 없죠. 지금 미국은 한 곡에 1100원, 일본은 2600원인데 우리나라는 스트리밍 패키지로 해서 한 곡에 60원이에요. 그리고 거기서 70~80%를 또 떼가잖아요. 대형 음원 사이트들에서. 그러니 이건 내가 차를 바꾸고 못 바꾸고 문제가 아니라 월세, 전기세 문제에요.

 

 

 

 

 

LE: 근데 이번에 1000원으로 오른다고 하더라고요.

 

오늘 기사 봤어요. 저작권 그 쪽에서 올려달라고. 300원씩. 스트리밍은 지금 3,000원짜리가 26,000원이 된다. 본 거 같은데 그건 걔네들이 양보하지 않는 선 내에서죠. 지금 기름값도 2,000원이고 정부에서 세금이 1,000원이잖아요. 지금 미국에서도 기름값이 1,000원인데 우리나라에서 2,000원 하고 있으니. 그러면 그걸 정부에서 내려야 하는 건데 안 내리고 ‘그럼 2,500원해. 니네 1,000원 갖고 우리 1,500원 갖게.’ 말이 안 되는 거죠. 그 쪽에서 내려야 하는 거죠. 그걸 안 내리고 다 올려버리는 거죠.

 

 

 

 

 

LE: 힙합문화의 발전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여담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디스전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특히나 그런 상황을 겪어보신 입장에서는 생각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예전 비즈니즈(Bizniz)의 ‘불편한 진실’이 넋업샨을 겨냥한 곡이었고, 뉴올은 넋업샨과 비즈니즈 모두와 작업하는 사이다.)

 

저는 그때 느낀 점이 정말 많아요. 예전에 이 얘기에 관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비즈니즈는 제 친구에요. 그리고 넋업샨 형은 저랑 정말 친한 형이에요. 그 트랙이 만들어졌을 때 저는 제일 먼저 들었죠. 비즈니즈가 놀라지 말라면서 보내줬어요. 들었는데 놀랐어요. (웃음) 그래서 저는 앨범을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도와주는 거지만 난처하죠. 왜냐면, 그 전 'Minos In Nuol'의 ‘Pinocchio’에서도 넋업샨 형이 와서 도와주고 저랑 되게 예전부터 알던 사이거든요. 근데 비즈니즈가 이 사실을 얘기하지말라고 그랬어요. 저한테 ‘이거 아직 낼지 안 낼지 마음의 확정을 못 정했어. 아무도 들려주거나 얘기하지마.’이랬어요. 그런데 소식이 새나갔어요. 새나가고 넋업샨 형 귀에도 들어갔어요.

 

 

 

 

 

LE: 아 그럼 앨범이 나오기 전에 넋업샨 님이 그 사실을 알고 계셨던 건가요?

 

알고 있었어요. 넋업샨 형은. 그래서 저는 가운데에서 되게 난처해졌어요. 지났으니까 하는 얘기예요. 그래서 제가 넋업샨 형한테 찾아갔어요. 찾아가서 ‘아 이거 형이 내지 말라고 하면 저 안내겠다. 형 들어볼래요?’그랬더니 ‘아 나 안 들을래.’그랬어요. 그러고 넋업샨 형이 ‘그냥 내라고 해.’이랬어요. 왜냐고 물어봤더니 ‘내가 걔한테 줄수있는 마지막 선물이야.’그러더라고요. 곡이 나오고 정말 웃긴 건 디스전은 묻히고 그때 최진실에 관련된 스윙스 가사 때문에 네이버 뉴스 첫 번째로 뜰 정도로 이슈가 됐어요. 미국에서는 나스랑 제이지 안 좋을 때도 닥터드레는 나스랑도 작업하고 제이지랑도 작업하더라고요. 제가 닥터드레는 아니지만. 그렇게 쿨하게 생각해야 되는 건지.. 근데 그 트랙으로 인해서 결국은 모두 손해였죠. 비즈니즈는 앨범을 회수했어야 됐고 넋업샨 형도 좋을리 만무하고. 저도 작업해놓은걸 이제 음원사이트에서 들을 수가 없게 됐어요. 그거 제가 CD로 갖고 있거든요. (웃음) 나중에 희귀본이 될 지 안 될 지는 지켜봐야겠죠? 그래서 이제 웬만해서는 디스에 관련된 작업은 안 하기로 그때 마음 먹었어요.

 

 

 

 

 

 

LE: 근데 그런 게 좀 웃기잖아요. 아까 말씀하신 나스, 제이지 얘기처럼 프로듀서가 (디스전에) 연관이 되는 건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조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비즈니즈한테 ‘야 내가 이거 트랙 빼면 어떡할 거야?’이랬더니 그 친구가 ‘그러면 나 MR 새로 구해서 BPM 맞춰서 딴 데다 할 거야.’ 이러더라고요.

 

 

 

 

 

LE: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이건 프로듀서들이 불만으로 많이 얘기하는 것 중 하나인데... '좀 짜증나는 상황' 예를 들어, 비트 달라고 막 해서 줬더니 몇 년째 안 나오고 있다거나..

 

저는 미리 얘기를 해요. ‘너 이거 사용할 마음 있으면 시간 1주일 줄 테니까 쓸지 안 쓸지 알려줘. 너 만약에 이거 나한테 확답 안주면 다른 사람도 들려줘야 되니까 (내가) 갖고 있을 거야.’라고 해요. 근데 형들 같은 경우는 그게 좀 어려울 때가 있어요. 제가 나이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편도 아니라서 그 가운데 얹혀있거든요. 동생들한텐 편하게 하죠. 동생들도 그때 그때마다 얘기해주고. 아닌 동생들도 있지만. 연락 없으면 그냥 제가 사용하는 쪽으로 가죠.

 

 

 

 

 

 

LE: 아직 같이 작업하지 못해본 아티스트 중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로는 누가 있나요? 아이돌도 괜찮아요.

 

거의 다 해 본 것 같아요.

 

 

 

 

 

LE: (웃음) 좀 전에 딥플로우(Deepflow) 씨를 만나고 왔는데 아직 같이 작업 안해봤다고 그러더라구요.

 

아 네. 상구(딥플로우)랑은… 상구도 비트를 쓰고 하니까… 저도 유독 빅딜 쪽이랑은 연이 많이 없었어요. 데드피 형이랑은 'Koonta In Nuoliunce' 시절에 트랙을 하나 했다가 그 트랙이 안 실렸거든요. 아쉬웠죠.

 

 

 

 

 

LE: 혹시 직접 신인을 픽업(pick up)해서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게 [The Mission 2]였어요. [The Mission 2]에 보면은 다음 세대한테 뭔가 더 기회를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기용한 게, 베이직(Basick)이 물론 유명하지만 아무튼 베이직, 빈지노(Beenzino). 빈지노 뭐, 지금 최고의 주가지만.. 그때도 오르는 중이었고. 앤덥(Andup)도 있고 술제이도 있고. 로지키스도 있고 베이비 부도 있고. 또 누구 있었나. 허클베리피. 허클베리피도 그 때 앨범 나오기 전이었고. 힘 실어줬고. 뭔가 좀 새로운 애들을 기용을 많이 했었죠 그 땐.

 

 

 

 

 

LE: 그럼 누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세요? 한 3명만 꼽아주세요. 국내에서..

 

잘한다고 하는 사람 보다는.. (지금 보다) 더 인정받아야 되는 랩퍼들을 얘기하자면, 베이비 부, 팔로알토도 더 인정 받아야 되고. 비지 형? 네. 그 세 명 정도는 지금보다도 더 인정 받아야 되는 거 같아요.

 

 

 

 

 

LE: 이제 개인적인 이야기 몇 가지만 더 해볼게요. 경제적으로 힘든 뮤지션분들은 아르바이트와 음악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투잡을 해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그러기가 쉽지가 않잖아요. 그 당시 음악을 포기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네. 생각 했었죠. 제가 서른 살까지 음악해서 답이 안 나오면 음악 관둬야겠다 생각했어요.

 

 

 

 

hiphople_nuol_4.JPG

 

LE: 지금이 서른 하나신데 다행히 답이 좋은 쪽으로 나온 것 같은데… (웃음)

 

근데 사람들이 보는 거랑은 다를 거예요. '마이크 스웨거' 이런 거 제작하는 거 보면 ‘아 뉴올, 돈이 남아도나 보네. 취미삼아 저런 거 하고.’ 뭐 이런 글도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아, 저런 게 되게 돈 많아보이고 한가해보이나?’ 그런 생각도했고… 근데 사람들이 너무 착각하는 게 만약에 (차트) 1위 곡을 냈잖아요. 그래서 10억을 벌었어요. 그러면 주변에서는 ‘와 쟤 완전 로또 맞았네. 한 곡으로 저렇게 됐네.’라고 얘기를 하지만 작곡가는 퇴직금도 없고요. 물론 히트한 트랙들이 있으면 얘기가 틀리겠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리고 그때까지 받아온 월급이 없잖아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을 했으니까 15년 째 거든요. 저는 가끔 가르치는 애들한테 얘기해요. 내가 중고차에서 15년만 일했어도 시속 100Km로 차가 지나가도 저게 몇 년식이고, 얼마 정도 하고 시트가 얼마짜리인지 알 거다. 저거 팔면은 150만원쯤 나올 거다. 한 15년 일하면 이런 거를 알 수 있는 나이거든요.  중소기업에서 15년만 일하고 퇴직만 해도 퇴직금 있는데. 그러니까 정말 어려운 길이에요. 음악을 하는 것이나 1위를 만드는 게. 그래서 저는 랩하는 친구들한테 ‘야 너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어? 너 지금 랩하는 사람 20위부터 1위까지 말해봐.’그러면 말 못해요. 생각 잘 안나거든요. 10명 얘기해요 10명. ‘너 그 10명이 지금 10년째 해오는 거다.’ 정말 잘 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그 10명 안에 니가 지금 들려고 하는 거야. 너 이거보다 차라리 국회의원 되는 게 더 쉬워. 의원석이 훨씬 많거든. 줄타기 잘하고 사법고시 패스해. 그게 더 쉬워.’ 근데 애들은 그렇게 열심히 안하죠. 사법고시 준비하는 사람들 엉덩이 종기 나서 엉덩이에서 물 찰 때까지 공부하잖아요. 힙합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안 해요. 저는 그렇게 게으른 편은 아니에요 사실. 그러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만큼 이 바닥이 정말 힘들다. 성공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힘드니까 그만두려고 했던 거죠. 근데 작년에 서른 살이 되어서 생각해보니까 돌아갈 길이 너무 먼 거예요. 다른 걸 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려서 어쩔 수 없다 이걸 계속 해야겠다 했죠.

 

 

 

 

 

 

LE: 그렇군요. 역시 비슷한 질문인데요. 우리나라 한국언더그라운드에서 랩퍼로서, 만족할 만한 수입으로 지낼 수 있을까요?

 

있죠. 그런 랩퍼들 있죠. 근데 너무 소수긴 하죠.

 

 

 

 

 

LE: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가요?

 

정치를 잘해야겠죠. 언더씬에서의 정치를 잘해야겠죠.

 

 

 

 

 

LE: 음 그렇군요.. ‘딸바보’의 이미지가 있으신데요. 혹시 나중에 딸이 음악을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면 시키실 건가요?

 

저는, (딸이랑) 레게 같은 거 틀어놓고 한 시간동안 막 춤춰요. 아니면 제가 음악 만든 거 같이 듣기도 하고… 뭐, 나중에 음악할 거라고 해도 막을 일이 있나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해서 행복하다면 해야죠. 근데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죠.

 

 

 

 

 

 

LE: 스튜디오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제 개인 작업실이고요. 녹음도 할 수 있고요. 'Minos In Nuol'때부터 줄곧 여기서 하고 있죠. 그래서 랩퍼들 이 와서 작업하기도 하고 비트같이 듣기도 하고 녹음도 하고.

 

 

 

 

 

LE: 미남이신데 얼굴 노출은 많지 않아요. 프로듀서로서 인정받고 싶어서인가요? (웃음)

 

(웃음) 신비주의 그런 건 아니예요. 저 뭐 그래도 프로듀서 중에서는… 물론 랩하면서 프로듀서하는 분들보다 활동을 많고 그렇진 않지만 그냥 프로듀서만 본다면.. 그래도 사진을 검색하면 좀 나오는 편이죠.

 

 

 

 

 

LE: 다소 유치한 질문일 수 있지만.. 뉴올 님의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고요. 언더씬 뿐만 아니라 국내가요의 수준도 저를 통해서 올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더 나아가서는 미국 프로듀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런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게 꿈이죠.

 

 

 

 

 

LE: 그럼 혹시 미국 쪽으로 시도를 해봤거나 계획 중인 부분이 있나요?

 

어… 이 인터뷰가 그 과정이 될 수도 있고… 한 계단 한 계단 가는 거니까 제가 꿈 꾼다고 갑자기 내일 아침에 되는 게 아니니까. 차츰차츰 더 인정을 받는다면 언젠가는 갈 수 있겠죠.

 

 

 

 

 

LE: 힙합엘이에 방문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어떤 사이트라고 생각하시나요?

 

아 네네. 자주 가죠. 알짜배기 외국 정보들이 많은 거 같아서 좋은 거 같아요. 전 인터뷰나 자막뮤비 많이 보는 편이에요.

 

 

 

 

 

LE: 그럼 힙합엘이도 좋고요. 힙합엘이를 포함한 여러 힙합사이트들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홍대 같은 데가 우리나라에 10군데만 있어도 이렇게 아티스트들이 힘들진 않아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공연할 수 있는 데는 홍대밖에 없어요. 방송국은 각지마다 있잖아요. 만약에 여기서(홍대) 랩퍼가 공연을 한 번 하잖아요. 그 다음으로 갈 수 있는 데가 별로 없어요. 기껏해봐야 대구, 부산인데 홍대 보다는 많이 열악하죠. 이런 곳이 딱 10군데만 있으면 돼요, 제가 볼 땐. 미국은 언더그라운드라도 볼 수 있는 도시가 몇 개에요. 마찬가지로 힙합엘이 같은 사이트가 딱 10개만 되면 이게 진짜 우리나라에 홍대가 10개 있는 거 같은 효과를 내는 거죠.

 

 

 

 

LE: 참고하겠습니다. 오늘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하신 말들, 앞으로의 활동계획, 홍보, 인터뷰 소감 등등 부탁드려요.

 

조만간 배치기 앨범이 나올 거고요. 많이 사랑해주시고요. 그리고 지금 작업 중인 것들이 있는데 뭐 좀 구체화가 더 돼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설레발 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 얘기는 그냥 힙합엘이 많이 와주시면 되요. 뭐 제 앨범 많이 사주세요. 이런 얘기해도 안 사잖아요. (웃음) 힙합엘이 많이 홍보해주시고 많이 와주세요.

 

 

 

LE: 인터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관련링크 |
뉴올 트위터: http://twitter.com/nuoliunce
Compdrum: http://compdrum.com/

 

 

인터뷰, 글, 편집 | bluc, heman,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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