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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Tyler, the Creator - IGOR를 듣고

TomBoy2019.05.25 08:47조회 수 1883추천수 23댓글 14

2019 Tyler, the Creator  -  IGOR.jpg


현시대 우탱 클랜의 리더인 LA 출신의 혈기왕성한 급진주의자는 과거에 자신의 포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단순하게 래퍼로 정의되고 싶지 않아." 용케도 현재 이 발언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됐다.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내건 패션쇼를 열고, 손수 어플을 제작하고, (반응에 개의치 않고) 노래를 부른다. 대중음악의 역사를 되짚어봐도,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만큼 존재감이 뚜렷하면서 정의하기 어려운 인물은 몇 없을 것이다. 타일러의 새 앨범 [IGOR]는 꼭 과거 자신의 포부를 음악으로 형상화한듯한 앨범이다. 이 앨범은 반들반들한 수영장 바닥 타일을 뚫고 나온 무언가지만 단순히 힙합 음악이라고 정의하긴 힘들다. 타일러 본인도 통통대는 드럼 위에서 이야기하지 않는가.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뭘 보여주는지는 알지." 라데라 하이츠의 가짜 미치광이는 어떻게 유쾌하고 익살맞은 힙합 인플루언서가 됐는가. 데뷔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타일러의 앨범 발표는 하나의 사건에 가깝다.  


  [Bastard]를 선보인 래퍼가 [Flower Boy]를 만든 래퍼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은 다소 놀랍기까지 하다. [Flower Boy]는 타일러 음악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고, 그의 경력에서 다른 무언가ㅡ이 경우 감정이입ㅡ의 비율이 저속함과 난잡함의 비율을 넘어선 최초의 앨범이다. (타일러는 본인의 앨범에서 평균 세 자릿수 이상의 F word를 사용한다그러나 발매 하루 전 타일러가 전했듯이, [IGOR][Flower Boy]가 아니다. 한주가 멀다 하고 어마어마한 분량의 음악(정보)이 홍수처럼 쇄도하는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자신의 앨범에만 귀 기울여 달라는 그의 메시지에는 확실히 어색한 면이 있다. 타일러의 전작들이 정제되지 않은 창의성과 혼란함으로 가득했다면, [IGOR]는 사운드와 서사 양면에서 좀 더 친숙하고 집중적이다.


  먼저 [IGOR]사운드를 특징짓는 키워드로는 부자연스러운 신시사이저 리프, 샘플링 키보드, 사운드 모듈을 들 수 있고, 이는 곧 넵튠스와 동의어다. 퍼렐 윌리엄스와 넵튠스가 타일러에게 끼친 영향력이 가장 잘 묻어나는 곡은 EARFQUAKEGONE, GONE. EARFQUAKE에서 타일러의 변조된ㅡ원기가 없고 음감이 부정확한ㅡ목소리에는 어딘가 바보스럽고 절절한 면이 있고, 찰리 윌슨과 플레이보이 카티의 시대를 초월한 코러스는 군더더기 없는 핏을 자랑한다. 반면 GONE, GONE은 초등학생들의 합창 같은 곡이다. 이 아기자기한 곡 위에서 타일러와 친구들은 사랑과 관계에 대해 노래한다. "신에게 빌어. 제발 그녀에게 내가 본 적 없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도록. 춤출 수 있는 노래를 틀고, 그녀는 내 경쟁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 이것은 프랭크 오션의 가사가 아니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가사다. 효과음 같은 래핑, 북소리에 가까운 드럼, 훌륭한 화음 등 이 곡들은 타일러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대중적인 감수성이 풍부한 곡이고, 마치 넵튠스의 음악처럼 우수한 수용력을 자랑한다. 스티비 원더의 EARFQUAKE, 테임 임팔라의 GONE, GONE,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IGOR.  


  퍼렐 윌리엄스와 그의 팀을 제하고도 [IGOR]에는 수많은 레퍼런스가 담겨 있다. Andre 3000[The Love Below], 차일디쉬 감비노Sober, 그리고 M.I.A.Paper Planes 등 숱한 음악들이 머릿속을 스쳐가지만, 가장 널찍한 공간은 칸예 웨스트가 차지한다. (타일러는 WHAT'S GOOD에서 칸예의 New Slave의 라인을 가져왔고, A BOY IS A GUNBound 2와 동일한 샘플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IGOR]가 낳은 최고의 밈이 됐다.) 현대 힙합 만평의 무의식적인 조건 두 가지. 첫째, 누군가 고전 음악을 샘플링하면 칸예와 비교ㅡ이거 정말 칸예스럽잖아!ㅡ한다. "나는 샘플링 작법을 좋아하지 않아." 과거 샘플링에 대한 타일러의 진술이 어쨌든지 간에 그는 앨범을 샘플로 뒤덮었다. 그중에서도 주목할만한 곡은 A BOY IS A GUNPUPPET이다. A BOY IS A GUN은 재활용된 샘플의 비전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타일러의 작가적인 면모가 한껏 부각되는 곡이기도 하다. 따스함 가득한 솔 샘플 위에서 그는 누군가에 대한 갈망과 그 열망이 변두리로 밀려났을 때 느끼는 절망감을 저울질한다. 두 번째 조건은 더 반사적이다. 어떤 래퍼가 노래를 시도하거나 기계적으로 목소리를 변조하면 사람들은 곧장 소리ㅡ이거 아무개의 [808s & Heartbreak]잖아!친다. EARFQUAKE가 사운드의 핵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면 PUPPET은 타일러의 내면을 웅변한다. 자신을 산타클로스라고 일컬으면서 루돌프의 행방을 묻는 바보스러운 질문처럼, (그 타일러와 칸예 웨스트가) 타인에게 예속된 삶의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현재로서 [IGOR]타일러의 [808s & Heartbreak]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혹은 그 반대로, 무수한 평가와 논쟁을 양산하는 중이지만, 앨범의 장래는 커버 아트만큼이나 분홍빛으로 여겨진다

 

  타일러의 랩은 그가 지닌 다양한 재주 중에서 가장 제값을 받지 못하는 품목이었지만, [IGOR]에 와서 그는 무의미한 가격 흥정을 단념한다. 대신 타일러는 개성 강한 자신의 목소리를 희석시키고,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노래하기 위해 할애하며, 경이로운 조력자들과 마이크를 공유한다. 플레이보이 카티, 솔란지, 칸예 웨스트, 시로 그린, 잭 화이트, 퍼렐 윌리엄스, 그리고 많은 동료들은 자신의 파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보다 앨범을 더 매혹적이고 풍성하게 빚어내기 위해 매진한다. 여기서 타일러와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는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목소리들이 뭉쳐 만들어낸 예술은 괴상망측한 고블린이나, 외로운 늑대나, 심지어 꽃을 든 소년보다 더 큰 잠재력을 품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NEW MAGIC WAND에서 카마이클의 내레이션대로, "창문을 열기 위해서 문을 닫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타일러는 [IGOR]를 통해, 음악과 관계에 대한 그동안의 철학을 닫아버리고, 미답의 땅으로 나 있는 창 하나를 발견한다. 사방이 꽉 막힌 듯한 IGOR'S THEME의 신스 위로 이고르가 소리친다. "나는 단순하게 힙합으로 정의되고 싶지 않아."


 



--- 


2년 전 Flower Boy 리뷰를 올리면서 발 빠르게 전곡을 해석해주신 CloudGANG 님께 감사 인사를 전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똑같은 인사를 전합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이 리뷰는 타일러만큼이나 실행력이 있고 감성이 풍부한 그의 팬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어느새 오션만큼이나 저의 페이버릿이 됐네요.


저는 IGOR가 타일러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듣자마자 감흥에 휩싸여 그런 평가를 내렸지만, 발매 1주일이 지난 뒤에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완전 취향 저격이기도 하고 무척이나 마음에 드네요. 예전 그래미 시상식에서 블랙아이드피스의 윌 아이엠이 타일러에게, "언젠가 너도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서 음악을 만들어야 할 거야."라며 조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조금 순화된 표현으로, 타일러는 집으로 돌아와 트위터를 통해 불같이 화를 냈고요. 저는 IGOR가 그때 윌 아이엠의 조언에 대한 타일러 다운 화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일러는 타일러 다워야 타일러 아니겠습니까.


신고
  • 5.25 09:04
    톰보이님은 어떻게 들으셨을지 궁금했는데..! 리뷰 정말 잘 봤습니다
  • 5.25 09:05
    양질의 글 잘 읽었습니다! FlyLo 리뷰도 기대되네요 ㅎㅎ
  • 5.25 09:30
    재미있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타일러는 타일러다워야 타일러다’ 이말이 와닿네요. Igor까지 오면서 타일러가 나름 다양한 시도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모두 다 타일러스럽다는 느낌이 없던적은 없던거같네요.
  • 크 정말 잘 읽었습니다! 톰보이님 리뷰들은 항상 읽는 재미가 있네요ㅋㅋㅋ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앨범을 들고 올 줄은 생각조차 못했고 랩의 비중이 줄은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정말 좋게 들었습니다. 결국엔 타일러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들이 오래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싶네요
  • 5.25 10:17
    잘봤습니다. 아주 좋게 들으신듯.^^
  • 5.25 12:17
    잘 읽엇습니다
  • 5.25 13:28
    톰보이 님 리뷰를 내심 기다렸었는데 써주셨네요.
    글 정말 잘봤습니다!!!
    (글좀 자주써줘요ㅠㅠㅠ)
  • 5.25 13:40
    ㅇㅈㅇㅈ 자주 써주세요!! ㅎㅎㅎ
  • 5.25 13:54
    리뷰 너무 조아요 항상 새로운 영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5.25 14:23
    피치포크인줄
  • 5.25 14:33
    공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글잘봤어요
  • 5.25 19:22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타일러는 또 이번 앨범으로 커리어 하이 갱신한 느낌이네요 ^^
  • 5.26 00:25
    저와 견해가 비슷하신 것 같네요. 정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톰보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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