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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irthday, ORANGE!

TomBoy2018.07.13 13:53조회 수 1559추천수 2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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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모험이 네 바란 곳에서 비롯되지는 않을지니."라는 새무얼 테일러의 격언처럼 프랭크 오션의 여정 또한 그가 원하는 곳에서 시작하지는 않았다. 2005년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던 태풍 카트리나는 오션의 모든 음악 자산을 앗아 갔고, 태풍의 여파로 근거지를 LA로 옮긴 뒤에도 그의 긴 무명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다행이었던 점은 LA에서 제임스 폰틀로이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2009년은 오션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해에 오션은 타일러와 Odd Future를 만났고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알아 본 트리키 스튜어트는 데프-잼과의 앨범 계약을 주선해주었다(훗날 스튜어트는 자신의 중개가 음반시장의 생리를 변화시킬 괴물을 세상에 소개한 일이었다고 술회했다). 이듬해 뉴욕에서 오드 퓨처와 루페 피아스코가 조우했던 일은 오션에게도 상당한 호재가 되었다. 오드 퓨처의 독특한 정신세계와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하는 동질감에 흠뻑 빠진 루페는 곧장 오드 퓨처의 홍보역을 자처했고, 이 홍보의 긍정적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프랭크 오션과 그의 첫 번째 믹스테이프인 <nostalgia, ULTRA.>였다. 오랜 무명생활을 청산시켜 줄 발판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여정을 위한 짐 보따리는, 그렇게 루페 피아스코의 트위터 위에서 마련되었다. 이때 루페는 예상이나 했을까. 그밖에 대대적으로 오션과 그의 음악을 소개했던 BBC, 롤링스톤 그리고 가디언. 탁월한 감각과 안목으로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들의 앨범에 참여시킨 칸예 웨스트, 제이지 그리고 비욘세까지, 이들은 모두 프랭크 오션의 이 여정이 가지는 의미를 상상이나 했을까. 아마도 대답은 부정적일 것이다.  


   오션이 <channel ORANGE>를 세상에 선보였을 때 가디언지의 음악 평론가 알렉시스 페트리디스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평을 남겼다. "이 앨범은 R&B 버전의 Ziggy Stardust이다." <Ziggy Stardust>는 1972년 데이비드 보위가 발매한 앨범으로서, 거의 최초로 사운드와 형식의 콘셉트를 일체화시킨 앨범 중 하나로 거론된다. 뿐만 아니라, '신생 장르였던 글램 록을 대표하는', '실험적이고 세심한 사운드', '곡마다 다채롭게 변화하는 보컬', '애매모호한 성적性的 정의로 가득 찬' 등의 <Ziggy Stardust>를 향한 수식들을 오션의 채널 오렌지와 연결 짓는다 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보수적이었던 기성세대와 미국의 비평가들보다 급진적이었던 신진 세대와 영국의 음악인들에게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나, 보위가 오션과 마찬가지로 앨범 발매 당시 자신이 가진 양성애의 성적 성향을 세간에 공개했다는 점은 페트리디스의 평가를 더욱 그럴듯하게 만든다.


  채널 오렌지의 수록곡들 중 앞선 평가들을 그대로 반영하는 곡이 있다면 바로 Pyramids다. 연회장의 샹들리에처럼 채널 오렌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Pyramids는 오션만의 정서와 재기가 가장 잘 묻어있는 곡이다. 장장 1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내내 종잡을 수 없이 변화하는 신스와 몽환적인 기타 리프 그리고 808 드럼의 둔탁한 질감 등 전자음의 향연에서 사운드를 향한 오션의 야심이 느껴진다. 자신의 고객 중 한 명과 사랑에 빠진 매춘부를 클레오파트라로, 매춘부가 일하는 스트립 클럽을 피라미드로 대조해가며 신화적으로 풀어내는 Pyramids의 노랫말은 신비로운 사운드와 결합해, 마치 한 편의 서사시를 연상시킨다. 한 장의 앨범으로서 <channel ORANGE>의 대표적인 특성은 '전자음'과 '가사'이다. Thinkin Bout You에서 오션이 선보였던 톤 다운된 블루지함, 신스의 되먹임, 기계적인 드럼 비트, 격정적인 팔세토는 이제 오션의 음악적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다소 1차원적이고 추상적인 감정들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데 바빴던 기존 알앤비의 가사들은 채널 오렌지에 와서 현실적이고 일목요연하게 변모했고, 오션의 각종 비유와 은유는 일방향의 감정 전달에 다양한 주해를 남겨두었다.


   부유층의 타락한 삶에 대한 오션의 관념과 빈민층 여성의 돈과 행복에 대한 독백을 대비시켜 한데 묶은 Sweet Life-Not Just Money-Super Rich Kids 라인에서는 다시 한 번 오션의 장기를 엿볼 수 있다. Sweet Life 속 스티비 원더의 전자 피아노와 리듬 파트의 퍼커션은 영락없이 퍼렐 윌리엄스의 초기 작풍(Run To The Sun)을 떠오르게 한다. Super Rich Kids는 언뜻 남녀 간의 농염한 애정행위를 위한 슬로 잼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슈퍼 리치 키드들의 이중적인 삶이 담겨있다. 재물의 유무에 따라 극단으로 갈리는 삶의 양면성과 인생의 공허함을 덤덤하게 노래한 이 라인은, 마빈 게이와 커티스 메이필드 같은 의식적인 선배 뮤지션들의 음악과 비교되면서 다시 한 번 비평의 영광을 얻었다. 채널 오렌지의 레퍼런스 중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제임스 폰틀로이와 콜드플레이 그리고 브릿팝이다. 오션은 <nostalgia, ULTRA.>의 아웃트로에서의 활용처럼 interlude인 Fertilizer를 통해서 함께 사색했던 동료를 향해 존중과 안녕을 전한다. Crack Rock, Monks, Bad Religion 등 다루는 주제에 대한 폭넓음,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 약물로 뒤덮인 삶과 열반에 대한 번뇌 그리고 체념한 듯 이어지는 고해성사까지의 스토리텔링은 앨범 후반부를 주도하며 브릿팝의 향수를 양껏 불러일으킨다.


   콜드플레이, 라디오헤드, 미스터 허드슨, 이글스, MGMT까지, 오션이 <nostalgia, ULTRA.>를 통해 보여주었던 양질의 취향에도 불구하고 채널 오렌지의 형식은 꽤나 단출한 편이다. 안에 담긴 음악은 화려하고 풍요롭기 보다 서정적이고 간명하다. 앨범 곳곳 오션의 쓸쓸한 목소리를 대신하여 자리 잡은 여백에는ㅡ신스와 기타 리프ㅡ사람들이 앨범을 듣고 필연적으로 느끼게 될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다. 채널 오렌지(피비 알앤비)를 향해 누군가는 새로운 형식의 알앤비라 칭하고, 누군가는 네오 솔의 또 다른 변화 형태라 일컬으며, 누군가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알앤비의 속성을 이식한 장르라고 주장한다. 제임스 폰틀로이에서부터 라이언 레슬리와 더-드림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808's & Heartbreaks>를 탄생시킨 칸예 웨스트와 피비 알앤비의 아버지라 불리는 드레이크조차도 이 논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프랭크 오션은 채널 오렌지를 통해 피비 알앤비라는 다소 모호했던 음악 형식을 장르화하고 이 장르의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몇몇 흑인음악의 팬들이 이 앨범을 21세기의 <Urban Hang Suite>와 <Voodoo>로 칭하는 것도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셈이다.

  

   정확히 보위가 그랬듯이, 오션 또한 자신의 커밍아웃을 앨범 판매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라 치부하는 부정적 여론들을 오로지 음악만으로 잠재웠다. 또한, 성적 소수자에 대해 노골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을 일삼던 흑인음악계의 입장이 진보적으로 선회하는데 있어서도 오션은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channel ORANGE>를 스티비 원더와 마빈 게이의 70년대부터 프린스와 마이클 잭슨의 80년대, 네오 솔의 90년대를 거쳐 현재의 얼터너티브 신과 브릿팝에까지 그 손아귀를 뻗치고 있는, 기념비적이고 상징적인 싱어송라이팅 앨범으로 정의한다. 이제 더 이상 프랭크 오션과 이 앨범이 안주하는 영역은 의미가 없어졌다. 여백을 채우는 효율적인 이펙트, 생동감 넘치는 전자 기타, 변화무쌍한 신스, 리버브 된 드럼, 스티비 원더의 전자 피아노 등 앨범에서 오션이 전자음을 활용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 알앤비의 그것이 아니다. 그렇게 신비롭고 서정적으로 재탄생한 사운드는 앨범 속의 대화, 독백, 백색 소음, TV 채널을 돌리는 소리, 자동차의 문을 여닫는 소리, 카세트테이프 덱을 조작하는 소리, 파도의 철썩임 같은 일상의 기척들과 결합해 앨범에 아날로그의 감성을 더해준다.


   <channel ORANGE>는 오션이 우리에게 전하는ㅡ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ㅡ에세이다. 고백적인 톤, 중독적인 후렴구, 애절한 가성 등으로 묘사되는 오션의 절절한 목소리는 에세이의 활자를 대신하며 앨범 속 다양한 주제들과 결합해 우리 마음속 짙은 여운을 남긴다. 돈과 마약, 공감과 대화, 초현실적인 관점과 건조한 유머, 격정적인 섹스와 구체화된 열망 그리고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에 대한 오션의 사색이 담긴 이 복합적인 에세이는, 결국 오션 개인의 사담을 넘어서 우리에게 던지는 삶에 관한 질문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이 앨범은, 음악에 관한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형성과 소멸 과정이 될 수도, 프랭크 오션 버전의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될 수도, 현실세계와 환상(약물)의 세계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오션 자신은, 자신의 이 여정(channel ORANGE)이 가지는 의미를 상상이나 했을까. 아마도 대답은 긍정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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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7월 10일이 채널 오렌지의 생일이었습니다.

올해로 이 앨범이 6살이 됐고요.

위 리뷰는 예전에 썼던 리뷰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 앨범을 남다르게 생각하는 분들이 정말 많을 거예요.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가졌던 냉소와

지금의 생각을 비교해보면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에는 그 시대만의 인장이 새겨져있게 마련인데

채널 오렌지에는 그런 인장이 없어 보입니다.

이 앨범은 50년 뒤에 들어도 지금처럼 한결 같을 거 같아요.

이런 양상이 우리 시대 문화 예술의 인장일 수도 있겠죠.

오션이 다음 앨범을 언제 발매할지는 저도 모르지만

상상만으로도 벌써 설렙니다.


항상 생각해왔던 거지만,

무더운 여름 밤만큼 오션의 음악이 어울리는 계절은 없을 거예요.

모두 채널 오렌지를 들으면서 더위를 달랩시다.



여러분에게 채널 오렌지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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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7.13 14:56
    채널오렌지는 저에게 편지같아요
    언제나 새롭고 깨끗하고
    담담하고 뭉클하고,
    건조하고 따뜻한 그런음악
  • title: Kanye Westido
    7.15 04:49
    저한테 채널 오렌지는 지독한 외로움, 공허한 연민, 허약한 위로 같은 앨범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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