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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Tyler, the Creator - Flower Boy를 듣고

TomBoy2017.09.13 09:02조회 수 2799추천수 10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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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러의 세계관에서 표적 없는 공격성은 언제나 중요한 하나의 가치관이었다. 항상 현실세계가 아닌 자신의 망상 속에서 시작되는 타일러의 이야기는 그의 공격성을 분출하기 위한 좋은 무대가 된다. 이런 일관된 경향은 전작들과는 꽤 유의미한 변화를 선보이는 <Flower Boy>에서도 여전히 계속된다. 내면의 어두움을 바탕으로 타인을 향한 공격 본능, 고압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만족스럽지 못한 성생활에 대한 불만, 상업적 성공에 대한 야심 등을 풀어낸 Bastard-Goblin-Wolf 트릴로지는 상업적으로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음악 속에서 자신의 심리적 변화를 조명함에도 타일러는 병적으로 성숙함을 거부한다.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종교(개신교)에 대한 거부감 등의 음악적 키워드나 시종일관 종잡을 수 없는 앨범 속 감정 변화는 타일러를 성숙함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런 성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타일러는 결국 모두에게 외면받을 앨범 <Cherry Bomb>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거부감을 일으키는 주제와 공감할 수 없는 가치들을 소재 삼은 랩과 비디오를 들고 타일러가 우리 삶 속으로 뛰어든지도 장장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의 인터뷰와 사진들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이는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현재 그의 위치는, 토니 스타크의 슈퍼카가 거침없이 질주하던 말리부의 해변이라기 보다, 척 놀랜드(캐스트 어웨이)가 행선지를 놓고 정처 없이 고심하던 교차로가 더 어울리는 듯하다. Flower Boy 속에는 이전에는 꽁꽁 숨겨두고 드러내지 않던 타일러의 품성 한 가지가 들어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성숙함'이다.


  "How many cars can I buy 'til I run out of drive?" 인트로인 Foreword에서 타일러는 수사학적 질문으로 노랫말의 절반을 채운다.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이 질문들은 과거 흑인 사회의 결정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한 결정에도 책임감을 지우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런 의식적인 가사가 정말 타일러의 본심인가 하는 의문은 차치하고서라도, 듣는 이들은 출발점에서부터 묘한 변화를 마주한다. 변화와 리듬의 중심에는 Rex Orange County가 있다. Foreword, Boredom 등 2개의 트랙에 참여한 영국의 인디 뮤지션 Rex Orange County의 목소리는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를 대변하고, 상반되는 타일러의 목소리와 맞물려 앨범의 음울한 무드를 한껏 고조시킨다. 여성 싱어송라이터 Kali Uchis가 참여한 See You Again 역시 앨범 수록 곡들과 전체적인 맥락을 같이하는 곡이지만 타일러만의 독창적인 접근이 돋보인다. 타일러는 "I wonder if you look both ways when you cross my mind"같은 위트 넘치고 로맨틱한 노랫말로 자신의 꿈속에서 눈을 감았을 때만 등장하는 연인을 향해 노래한다. 이는 언뜻 타일러의 완벽한 사랑에 대한 세레나데처럼 보이지만, 사랑 노래에 기계적으로 현실적인 요소들을 반영하던 이전 타일러의 모습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앨범의 하이라이트에는 돌아온 탕아 프랭크 오션이 있다. 이 두 사람은 삶의 궤도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와 쉽게 깨뜨릴 수 없는 유대감을 공유하고 있고, 이는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자 피아노, 가벼운 드럼 터치, 바리톤의 타일러의 랩, 래핑에 가까운 오션의 후렴구는 이제 대중문화의 흥행 보증수표가 되었다.


  한때, 타일러는 A$AP Rocky를 조롱했다. 곡의 전개와 참여진이 너무 통속적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자신이 비판하던 A$AP Rocky가 참여한 Who Dat Boy는 고요한 꽃밭에 떨어진 포탄의 파편들을 연상시킨다. 타일러 식의 라디오 트랙이라 할 수 있는 Who Dat Boy와 I Ain't Got Time! 같은 곡들은 무난한 감상과 어느 정도의 반응을 보장하지만 앨범의 콘셉트(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런 변덕과 예측 불가능함을 콘셉트라고 해석할 수 있다)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앨범의 방향성을 반영하는 노래들은 911과 Boredom이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찬가인 911/Mr. Lonely에서의 "Purchase some things until I'm annoyed, These items is fillin' the void, Been feelin' it for so long, I don't even know if it's shit I enjoy"같은 라인들은 의식적이었던 인트로의 질문과 맞물려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역설적으로 화자가 타일러이기에 빛을 발한다. 디 인터넷 소속의 주목받는 기타리스트 스티브 레이시의 원조는 곡의 매끄러운 변환을 위해 필수적인 듯 느껴진다. 앨범의 정중앙에 위치한 Boredom(지루함)은 가사로 미루어 봤을 때, 우울함의 완곡한 표현일 것이다. 이는 삶의 동기動機에 대한 의문, 우정의 어긋남, 외로움으로부터 발화되는 우울증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Rex Orange County의 애환을 담은 목소리가 곡의 콘셉트와 완벽하게 부합한다. 이렇듯 Flower Boy는 흩뿌려진 감정과 의식들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지만, 여과되지도, 애써 그러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발매 후 한동안 수많은 음악 커뮤니티의 헤드라인은 '타일러의 커밍아웃에 대한 진실공방'이 장식했다. 요는 시점이다. 세상의 힙스터들이 타일러를 인식하기 전에 그가 이런 가사를 썼더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이미 타일러는 동성애자들을 멸시할 목적으로 발명된 어휘들을 모두 사용한 상태이고, 그 어떤 유명인사의 커밍아웃도 이렇게 무관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런 요소가 앨범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타일러를 영적 지도자 삼아 동성애자들을 심리적으로 겁박하던 무리들의 당혹감을 보고 있자니, 타일러가 짓고 있을 표정이 궁금할 뿐이다. 어쩌면 그 표정은 앨범 후반부의 November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What if my music too weird for the masses? And I'm only known for tweets more than beats or All my day ones turn to three, fours 'cause of track seven." 이런 라인들은 자신의 과거 행적을 쉽게 망각하거나, 팬들이 보내주는 성원을 가볍게 여기는 이가 쓸 수 있는 가사가 절대 아니다. November는 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추억하는 예술가의 여행인 동시에 무대 위로 커튼이 드리우기 전 마지막으로 타일러의 '성숙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Flower Boy>에서 타일러는 일정 부분 퍼렐 윌리엄스의 전성기를 연상시키고, 팬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염원을 이루어주고, 자신의 음악적 가치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Flower Boy는 타일러의 커리어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삶에서도 새로운 챕터가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타일러에 대해 익숙한 관념을 사유하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인 일이다. 과거 타일러는 자신의 인격을 투영시킨 캐릭터를 콘셉트 삼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펼쳐 나갔다. 아쉽지만 여기에 더 이상 콘셉트를 가진 캐릭터는 없다. Flower Boy는 타일러 그 자신이고,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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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발매와 함께 발빠른 가사 해석에 힘 써주신 CloudGANG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덕분에 리뷰를 작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본문 속의 가사들은 그 뜻만큼 원문이 주는 맛(?)이 있기에 원문으로 기재했습니다. 가사 해석란 전곡 해석 칸에 CloudGANG님이 해석한 Flower Boy 게시물이 있으니, 뜻이 궁금하신 분들은 참조하세요.



리뷰는 오랜만이네요. 타일러를 알게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애정하던 뮤지션도 아니고 음악을 즐겨 듣는 편도 아니고, 하물며 리뷰를 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이번 앨범 Flower Boy가 확실히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는 거 같습니다. 앞으로 타일러의 경력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Flower Boy는 타일러의 최고작입니다. 현재까지는요.



신고
댓글 6
  • 9.13 09:22
    개신교에 대한 거부감을 노래한 곡이 무엇인가요? 타일러가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하네요 ㅎㅎ
  • TomBoy글쓴이
    9.13 10:01
    @blkmack
    아직 안 들어보셨으면 타일러의 첫 번째 프로젝트였던 Bastard를 들어보세요. 종교적인 키워드가 가장 많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 9.13 16:11
    정말 잘 쓰셨네요
  • 9.13 23:12
    정말 잘 읽었습니다!!
  • 9.14 10:34
    블로그하시나요?
  • 5.30 17:58
    이 앨범이 나온지 거진 1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자주 찾아들을 정도로 좋네요.. Flower Boy 리뷰 하신지 몰랐는데 ㅎㅎ 늦게나마 잘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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