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PHOPLE
LISTENING SESSION Vol.11:
Sleeq


날짜

2016. 06. 4. 토요일

장소

홍대 워드커피

사진

킥앤스냅


래퍼 슬릭(Sleeq)은 언제나 기대감을 선사하는 아티스트였다. 믹스테입 [WEEKLY SLEEQ]에서 그러했고, 데이즈 얼라이브(Daze Alive) 입단 이후 선보인 "Rap Tight", "Energy / Python"에서는 기대감과 함께 ‘앞으로 어떤 행보를 걸을까?’하는 궁금증 또한 안겨주었다. 그런 그가 드디어 첫 번째 정규앨범 [Colossus]를 6월 2일 발매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4일 토요일, 홍대 워드커피(Word Coffee)에서는 슬릭의 [Colossus] 음감회가 열렸다.

음감회 시작 전부터 워드커피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많은 사람이 오는 바람에 장소 세팅을 위해 관객들이 잠시 밖에서 대기했었고, 앉을 공간이 부족해 제리케이(Jerry.K)가 준비한 돗자리를 깔고 앉아야 할 정도였다. 준비하는 동안, 슬릭은 직접 준비한 폴라로이드 사진들과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의 사진들을 벽 곳곳에 붙이고 있었다. 이런 모습에서 관객을 생각하는 슬릭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가 준비한 사진을 보면서 색다른 재미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오늘의 진행자 멜로(Melo)의 인사말과 함께 음감회는 시작되었다.

음감회는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트랙별로 감상하면서 슬릭이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앨범의 타이틀이자 “Rap Tight”에서도 나오는 콜로서스(Colossus)라는 단어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슬릭은 콜로서스라는 단어를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밝히며 말을 이어갔다. 더는 작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부터 이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믹스테입 때도 사용했고, 앨범 타이틀로도 미리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슬릭이란 랩네임에는 별다른 뜻이 전혀 없음을 자연스럽게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야기는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슬릭은 비언어적인 것에 힘이 있다는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기도 했으며, 앨범의 구조를 설명하며 이번 앨범이 콜로서스라는 아이의 이야기임을 밝히기도 했다. “Rap Tight”을 재녹음해서 넣은 것도 콜로서스라는 아이가 처음 주목받은 기념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이어 그는 앨범의 서사에 대해 더 세밀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Rap Tight”으로 랩 게임에서 자신을 각인시킨 콜로서스가 세상에 회의감을 느끼고, 그 때문에 세상과의 단절을 시작한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앨범이 진행될수록 점점 내면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고, “Monologue”는 그 정점이라고도 밝혔다.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결론까지 다다랐지만, 그 과정에서 콜로서스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앨범의 후반부는 긍정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사운드에 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슬릭은 앨범을 구상하기 전 따로 장르를 정해두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자신이 정박이 아닌 절뚝대는 레이백 리듬을 좋아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을 가져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노랫말이 가지는 무드에도 집중했음을 추가로 언급했다.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 진을 신진급 프로듀서들로 구성한 것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자신이 사운드클라우드에 서식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스타일이 맞겠다 생각되면 바로 메일을 보내 섭외를 진행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지인을 통해 알게 되어 섭외를 진행한 경우도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즉, '어쩌다 보니' 신진급 프로듀서들로 구성됐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Colossus]의 데모 버전에 담긴 보컬은 전부 자신이 소화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들어보니 절대 들을 수 없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래서 보컬리스트들을 섭외하게 됐다는 비화 역시 알려주었다. 이 말을 하며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거야.”라고 말했던 슬릭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드디어 앨범 감상 시간이 시작되었다. 시작 전, 슬릭은 앨범이 이미 발매도 되고 불따(불법 다운로드)로 들을 수도 있는데, 이곳까지 와서 들어주시는 분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린다고 먼저 말했으며, 가사에 집중해서 들어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Colossal”과 “Rap Tight”을 감상한 후, 슬릭은 “제리케이의 느낌이 난다. 제리케이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나?”라는 멜로의 질문에 대해 답해주었다. 우선 “긍정적인 영향만 얘기해야 하나요?”라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2년 전에 “Colossal”을 녹음했다고 밝혔는데, 그 당시에는 이에 대해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고 하며 말을 이어갔다.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냥 자신의 것을 가져가는 데에 더 신경을 쓴다고 했다.

이어서 “그들은”과 “나는 (Interlude)”를 감상했다. “그들은”에서 비유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자신이 비유병 환자라 불릴 만큼 비유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 했으며, 곡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못 알아들을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알려줬다. 제리케이와 던말릭(Don Malik)의 도움을 받은 것도 세 사람의 화법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나는 (Interlude)”은 후반부에 드러나는 피아노 샘플이 돋보이는 곡이었다.

이후, 한국힙합 씬의 부정적인 면을 꼬집으면서 동시에 이것을 자신의 이야기로 쓴 점이 인상적이었던 ”Toothache”를 감상하고, 그다음 트랙인 “9174”도 감상했다. “9174”는 슬릭이 유일하게 훅의 코러스를 맡은 트랙이었으며, 트랙명이 자신의 생일임을 밝혔다. 더불어 학창시절에 힙합을 접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스무 살 이후에 힙합에 빠졌다고 하며, 소울 컴퍼니(Soul Company)의 덕후였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서 이번 앨범의 중심축과 같은 “Liquor”와 “모놀로그”를 아주 조용히, 그리고 집중해서 감상했다. 슬릭은 “Liquor”를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으로 꼽았는데, 곡을 끝내기가 싫어 마지막까지 랩을 속삭였다고 밝혔다. 또한, 독백을 뜻하는 “모놀로그”는 사실 거울과 대화하는 것에 가까운 트랙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어느덧 앨범의 후반부로 넘어오게 됐다. 옛날 공연을 보러 다니던 자신에게 말하는 “공연장 맨 앞줄에”를 듣고 곧바로 “Stay With Me”와 “One And Only”를 감상했다. 슬릭은 “Stay With Me”는 사실 사랑 노래라고 밝혀 관객들을 놀라게 했으며, “One And Only”는 음악 아니 그 이상으로 자신에게 걸쳐있는 철학을 담아낸 노래라고 밝혔다. “One And Only”의 프로듀서이자, 지금은 안타깝게도 세상은 떠난 프로듀서 케이피(Kay P)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원래 VMC의 버기(Buggy)에게 작업 제안을 했다가 버기의 소개로 케이피와 작업을 하게 된 건데,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누가 시킨 것마냥, 그렇지만 스스로 맨발로 탑을 올라가는 듯한 그림을 연상케 하는 “Eiffel”을 감상하며 이번 음감회는 종료되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이번 음감회는 상당히 알차게 진행되었다. 답변 중간중간에 깨알같이 나오는 슬릭의 드립부터 시작해 질문에 대해 친절하면서도 꼼꼼했던 답변들, 음감회가 종료된 후 한 명, 한 명 사인을 해주던 모습에선 슬릭 본인이 얼마나 이번 행사에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에 그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자신의 장래희망이 이제는 2집 가수라고 밝혔다. 그가 말한 것처럼 ‘여자’라는 키워드 없이도 자신만의 이야기로 온전히 앨범을 채울 줄 아는 아티스트기에 언제 나올지 모르는 2집까지도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