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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가장 뜨겁게 빛나는 엑스 펙터, Director X

Melo2016.12.12 17:10추천수 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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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가장 뜨겁게 빛나는 엑스 펙터, Director X


올해 또다시 깜짝 발매된 비욘세(Beyonce)의 [Lemonade]는 파격적인 앨범이었다. ‘비주얼 앨범’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된 [Lemonade]는, 그에 걸맞게 모든 트랙의 뮤직비디오가 제작됐고, 이 뮤직비디오들은 한 시간짜리 영상으로 합쳐져 HBO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생각 그 이상이다. 이전까지의 뮤직비디오들은 음악의 분위기나 가사에 맞춰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비교적 부차적인 요소로 활용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비욘세의 앨범을 보면 알 수 있듯 최근의 몇몇 뮤직비디오는 음악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영상 자체만으로도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기능을 하기까지 한다.


비욘세도 비욘세지만, 근래에 나온 뮤직비디오 중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뮤직비디오로는 무엇이 있을까? 누군가 그런 질문을 했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없이 드레이크(Drake)의 “Hotline Bling”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비록 뮤직비디오가 공개된지 1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처음 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잊지 못한다. 드레이크의 어딘가 엉성한 춤과 더불어 이를 돋보이게 하는다채로운 색감, 깔끔한 배경은 대중들의 시선을 끌 만했으며, 끝내 유튜브 조회수 10억뷰라는 대기록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이처럼 뮤직비디오는 종종 음악보다 더 큰 힘을 낸다. 그렇다면 "Hotline Bling"의 뮤직비디오를 파격적으로 만든 디렉터는 도대체 누굴까? 바로 <2016 BET Hip Hop Awards>에서 올해의 힙합 비디오, 올해의 비디오 디렉터 두 부문을 차지하는 영예를 누린 디렉터 X(Director X, 이하 X)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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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n Christian Lutz'가 본명인 X는 리틀 X(Little X)로도 알려진 캐나다 출신의 뮤직비디오 디렉터다. 그는 캐나다 토론토 출신으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신이 사는 캐나다를 벗어나 비주얼 아트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내 데프잼 레코즈(Def Jam Records)를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던 빅 독 필름즈(Big Dog Films)라는 회사에서 인턴십을 시작하게 되고, 그곳에서 ‘힙합 뮤직비디오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하이프 윌리엄스(Hype Williams, 이하 하이프 링크 1, 링크 2, 링크 3, 링크 4)를 만나게 된다. 약 20년 전의 일이다. X는 그 이후로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필름 메이킹을 배우는 등 하이프를 멘토로 삼고 영상 일에 관해 배워간다. 한동안 하이프의 'Storyboard Guy'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다소 비중이 적은 파트 위주로 일했었다. 인턴이라는 딱지를 떼고 리틀 X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한 건 1998년이 되어서였다.



♬ DMX - What’s My Name



하이프의 지원에 힘입어 X는 큰 어려움 없이 힙합 뮤직비디오 시장에 연착륙한다. 당대 힙합 씬에서 잘 나간다는 아티스트들은 물론, 라스칼즈(Rascalz), 초클레어(Choclair) 같은 캐나다 힙합 아티스트들과도 작업하게 된다. 이 당시 X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가 멘토 하이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두 가지 색깔을 컨셉 컬러로 지정하고, 그 색을 영상 전반에 두드러지게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예를 들어, 1998년 발표된 오닉스(Onyx)의 “React” 뮤직비디오에서는 영상 내내 푸른색이 사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이듬해 발표된 DMX의 “What’s My Name”을 통해서는 푸른색과 붉은색을 중심으로 뚜렷한 색 대비가 드러난다. 언뜻 보면 단순해 보이는 연출 기법 같기도 하지만, 단지 한두 가지 색으로 4분 남짓한 뮤직비디오를 꾸려가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컬러 영화보다 흑백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 더 세련된 감각이 요구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뮤직비디오에서도 사용하는 색깔의 숫자가 줄어드는 만큼 다른 부분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 Usher (Feat. Lil Jon, Ludacris) - Yeah!



잔잔한 성과를 이뤄가던 X. 2004년은 그런 그의 커리어에 한순간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난시기였다. 뮤직비디오 디렉팅을 맡은 팝스타 어셔(Usher)의 “Yeah!”로 잭팟이 터진 것이다. 어셔는 “Yeah!”를 통해 각종 음악차트의 정상에 오르는 것은 물론, 각종 어워드에서 상을 휩쓸며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음악이 성공함과 동시에 뮤직비디오 역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Yeah!"의 뮤직비디오는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X는 배경에 대한 묘사나 스케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어셔라는 인물에 집중해 영상을 전개하며 그의 멋을 십분 살리는 데에 주력한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특유의 색감 활용이 빛을 발한다. 클럽 배경에 온통 짙은 푸른빛을 돌게 해 어둡지만 세련되게 표현하고, 이를 통해 전체적인 톤을 들뜨지 않게 잡아주는가 하면, 중간중간 녹색 조명을 부각시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찰나에 생기를 더한다. 이는 조명과 동시에 출연자들의 의상에서도 잘 드러난다. 푸른 조명이 비치는 장면에서는 청바지나 네이비 색 모자 같은 푸른빛이 도는 의상으로, 녹색 조명이 비치는 장면에서는 밀리터리 색상의 의상으로 영상을 더 감각적으로 채색했다. X의 색감 활용이 전체적인 부분부터 세세한 부분까지 발휘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Korn - Coming Undone



지금까지는 X가 흑인음악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를 작업한 케이스를 소개했다. 그러나 그가 힙합, 알앤비에 국한됐던 건 아니다. 2006년 제작한 록밴드 콘(Korn)의 “Coming Undone” 뮤직비디오는 이전의 커리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돋보인다. X에게 다소 실험적이었던 이 뮤직비디오는, 이례적으로 컴퓨터 그래픽이 많이 사용된 데다가 메탈 음악의 강한 느낌에 맞게 다소 정돈되지 않은 화면들이 주를 이룬다. 그 대신 뚜렷한 색감 활용과 그로 인한 세련미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X의 기존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뮤직비디오가 어색할 수도 있지만, 이는 곧 그가 자신의 스타일만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할 때도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 Yeo Boyz - Yeo Valley Organic



2010년대에 들어서 X는 리틀 X에서 디렉터 X로 이름을 바꾸고 또다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 가명을 쓰지 않고 본명으로 광고 영상 분야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당시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인 맥도날드, 이케아, 버드라이트 등 광고계에서도 크다는 클라이언트들의 TV 커머셜 광고를 제작했었다. 흥미로운 점이라면, X가 광고 영상을 제작할 때도 차별화된 측면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Yeo Vally Organic>에서는 뮤직비디오의 요소를 차용해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포맷을 취했었고, 맥도날드 광고였던 <McBites>에서는 댄서들을 기용해 춤이 메인이 되게끔 했었다. 물론, 광고 영상에서는 줄곧 이야기했던 뮤직비디오 디렉터로서 X가 가진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다만, 이로써 그가 음악계를 넘어 광고계에서까지 인정받을 정도로 넓은 스펙트럼을 소화할 만큼의 출중한 역량을 가진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 Drake - Started From The Bottom



자, 이제부터 드레이크와 X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듯 드레이크가 독보적인 위치로 올라섰던 건 단연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Take Care]를 발표했던 2011년 무렵이었다. X는 [Take Care]의 수록곡 "HYFR (Hell Ya Fucking Right)"의 뮤직비디오로 드레이크와의 처음 협업한다. 뮤직비디오 안에서 가장 돋보였던 또 다른 X의 특징은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적절히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토리 전개였다. 그는 영상에서 ‘Bar Mitzvah’라 불리는 유대교 성인식을 치르는 드레이크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전반부에서 드레이크가 경건한 자세로 의식을 치른다면, 그 뒤로는 의식을 마치고 흥에 겨워 점점 고주망태가 되어간다. 감상하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짧은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Started From The Bottom”도 마찬가지다. 뮤직비디오에는 드레이크가 평범한 사람이던 시절부터 이후 랩스타가 된 이후의 모습이 함께 담겨 있다. 어린 시절 축구를 하던 드레이크의 모습과 실제로 토론토의 드럭 스토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드레이크를 재연한 모습은 현재 드레이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윽고, 배경이 후카 바로 전환되고, 그때야 우리에게 익숙한 랩스타 드레이크의 모습이 나온다. 전용기를 타고 여유롭게 이동하는 모습, 휴양지에서 사람들과 파티를 즐기는 모습은 영상 초반의 장면들과 대조를 이루며 그의 성공을 한층 부각시킨다. 이 스토리를 부각하는 데에는 다른 세세한 요소들도 동원된다. 전반부에 잠시 등장하는 드레이크의 진짜 어머니, 드럭 스토어에서 잠시 음악이 멈추고 나오는 유쾌한 스킷이 그렇다. 또한, "밑바닥부터 시작했다"는 가사에 잘 맞게 뮤직비디오 속 출연자들은 대부분 드레이크의 후드인 토론토 출신이다. 개중에는 실제 드레이크의 친구들도 있는데, 이러한 깨알 같은 요소로 "Started From The Bottom"의 뮤직비디오는 더욱 특별해졌다. 당연히 드레이크의 의중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었겠지만, 로맨스부터 스릴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 컨셉에 맞는 스토리를 구상해 보는 이에게 전달하려 한다는 X의 디테일한 노력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뮤직비디오는, 단순히 3, 4분짜리 영상이 아닌 스토리가 있는 단편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 Drake - Hotline Bling



"HYFR (Hell Ya Fucking Right)"와 "Started From The Bottom"을 성공적으로 제작한 두 캐나다 아티스트는 이후로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마침내 지난해인 2015년에 다시 힘을 합쳐 세상을 들썩일 뮤직비디오를 내놓는데, 바로 서두에서 말한 "Hotline Bling"이다. 웬만큼 힙합, 알앤비를 좋아한다면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Hotline Bling"의 뮤직비디오가 가져온 파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드레이크의 멋있음과 바보 같음 그 사이 어딘가 있는 춤사위는 순식간에 유행이 될 정도였다. 뮤직비디오의 경우에는 미국의 설치 미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에서 색감과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경향이 있다. X는 영상을 통해 제임스 터렐의 정적인 미술을 그대로 동적인 형태로 옮겨 놓는 데 성공한다. 우선, 계속해서 변화하는 배경을 감싸는 은은한 파스텔톤 조명은 세련되어 보이게 만듦과 동시에 드레이크의 '그' 춤사위를 더 돋보이게 한다. 그런데 사실 X는 촬영이 시작될 때까지도 드레이크가 어떤 춤을 출지 몰랐다고 한다. 즉, 딱딱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촬영하지 않고 불확실함을 통해 오직 즉흥적으로만 나올 수 있는 장면을 담아낸 셈이다. 어떻게 보면 콘의 "Coming Undone"에서의 실험적인 태도가 또 다른 방식으로 발휘된 셈이다. 이밖에도 파스텔톤의 의상을 입은 여자 배우들이 등장하는 초반부와 후반부에서는 앞서 말한 X만의 스토리 전개 능력과 한때 뮤직비디오계의 휴 해프너(Hugh Hefner)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들을 영상에 자주 출연시켰던 일종의 디렉터로서의 특이점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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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기승전 드레이크'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사실 X는 드레이크뿐만 아니라 이기 아젤리아(Iggy Azalea)의 “Fancy”, 제인(Zayn)의 “Like I Would” 등 최고의 팝스타들의 뮤직비디오 디렉팅도 맡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Center Stage: On Pointe> 라는 TV 드라마 제작에도 참여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더욱 화려하게 채색하고 있다. 앞으로 그가 얼마나 더 밝게 빛날지, 또 그 빛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의 이목을 다시 한번 집중시킬지 기대해보는 건 어떨까. "Hotline Bling"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글 | Urban hip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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