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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Kanye West

title: [회원구입불가]Nate Dogg2013.06.15 15:39추천수 19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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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Kanye West

* 원제 - Behind Kanye’s Mask(칸예의 가면 뒤편)



당신의 데뷔 앨범 [The College Dropout]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당신을 음악뿐 아닌 다른 것들과도 연관 지어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들은 당신을 두고, '자신의 위치를 역사 속에서 입증코자 발버둥치는 새로운 인물'이라고 여겼고요.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학년 때 저는 (교내) 농구팀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팀에 들어갈 수 없었고, 여름 내내 연습해서 여름 리그 때 포인트 가드로 팀에 들어갈 수 있었죠. 그리고 우리 팀은 챔피언십 우승을 거뒀어요. 8학년이 되었을 때 매일같이 연습해서 모든 스로우와 레이업을 집어넣게 되었죠. 그리고 다음날 팀 차트를 봤는데 제 이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코치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그가 말하길, "넌 팀에 뽑히지 않았다." 라더군요. 모든 슛을 성공했었는데... 그래도 다음 해가 되었을 때 주니어 팀에 들어갈 수 있었죠, 신입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만큼 제가 실력이 출중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8학년 팀에는 뽑힐 수 없었죠. 일부 코치들 - 어떤 그래미, 어떤 비평가, 어떤 패션 종사자, 어떤 인간들 - 때문에 말이죠. 그 사람들은 모두 그 코치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팀에 뽑히지 못했던 8학년 때와 같은 상황이 온다면, 저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모든 이에게 소리쳐 줄 겁니다, "모든 슛을 집어넣은(모든 시도에 성공한) 나는 팀에 들어갈 자격이 있어!"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 슛(시도)으로 성공을 거뒀죠.

맞아요. 그들은 결국 날 팀에 집어넣은 셈이죠. 그래서 전 이 신념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불공평함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인터넷이 들썩일 만한 큰 것(음악)을 들고 나왔던 매 순간이 모두 공평함을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공평함. 그렇다고 공평함이 굳이 항상 큰 싸움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공평함은 사람들이 알맞은 꿈을 꿀 수 있도록 명확한 길을 열어줄 수 있어야 해요. 또한, 제가 공연하는 무대(경기장) 안을 공평하게 만드는 길을 열어줄 수 있어야 하고요. 만약 마이클 조던이 심판에게 소리를 칠 수 있다면, 저 칸예 웨스트(Kanye West), 음악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거죠. "이건 잘못된 겁니다." 라고요.


수많은 그래미 어워즈를 수상하셨는데요.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와 [Watch the Throne], 두 앨범 모두 '올해의 앨범'의 후보로 뽑혔었죠. 두 앨범 모두 1년 만에 만들어냈었어요. 이게 통계적으로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제 나이 때의 아티스트들 중에선 제가 가장 많은 그래미를 탄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백인 경쟁 후보를 제치고 이긴 적은 없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래미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전 단지 그 통계가 확실한지를 신경 쓸 뿐이죠.


역사적 기록이 올바르게 남겨지길 원하는 거군요.

그렇죠. 전 그들이 우리 앞에서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은 원치 않아요. 최소한 제 삶 내에선 말이죠. 물론 올해의 랩 앨범을 수상했던 순간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만. 이건 공평하지 않아. 다 짜여 있는 거잖아."라고 느꼈어요. 전 날스 바클리(Gnarls Barkley)와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가 둘 다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지 못했던 때를 기억합니다. 당시 전 저스틴을 바라보며 말했죠. "무대에 올라가 줄까? 올라가서 깽판 쳐버릴까?" (* 당시 비평가와 팬들로부터 엄청난 찬사를 받았던 이들을 제치고 딕시 칙스(Dixie Chicks)라는 밴드가 2007년,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위해서요?

옳은 것을 위함이었죠. 저는 매우 신용할 수 있는, 매우 영향력이 큰, 매우 의의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뮤지션이 되고 싶어하는 어떤 소녀가 자신의 목소리로 이 세상에 특별함을 안겨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우린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 "(상을 탄) 저 사람이 정말로 올해에 무언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저에겐 더 공평한 일이에요. 왜냐면 제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본능이 당신을 좋지 않은 길로 이끈 적은 없나요? 예를 들어,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MTV Video Music Awards)에서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시상에 끼어들었던 때처럼 말이죠. 

(제 본능은) 저를 오직 완벽한 최고로 이끌어줍니다. 오직 멋진 진실과 최고로 말이죠. 아름다움, 진실, 최고다움. 그게 전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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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예 웨스트가 2009년에 열린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시상 순간에 난입하고 있다.


즉, 아무런 후회도 없는 건가요?

일말의 후회도 없습니다.


후회라는 개념 자체의 존재를 믿나요?

만약 누군가가 이 인터뷰를 통해 제가 (그 사건에 대해) 어떤 무미건조한 사과라도 할 거라고 기대했다면, 여기서 그만 읽으시길 바라겠습니다.


하지만 일전에 이와 관련해 사과하지 않았나요?

맞아요. 저도 한 명의 사람인지라 그때는 다소 기가 꺾여 있었던 거죠. 저의 메시지가 완벽하게 해석되지 않았더군요. 즉,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회적 압박에 한 발 물러섰던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사회적 압박으로 마지못해 사과했던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당시의 시상식 난입을 관두실 건가요, 아니면 그 시상식 난입에 대한 사과를 관두실 건가요?

그거 아십니까?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네요. 전 두렵지 않아요. 하지만 그 난입은 굉장한 소동을 불러일으켰었죠. 매우 격한 상황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사람들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었죠. 그리고 노래 "Dark Fantasy"는 저의 (잘못에 대한) 간접적인 사과였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우회적인 칭찬을 보내는지 아시죠? 그와 반대로 이 노랜 간접적인 사죄, 그 자체였습니다. (노래에 담긴) 랩들과 소리의 향연들, 그 모든 게 말이죠. 전 이 노래를 통해 말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당신들에게 선보여볼 테니, 다시 날 받아주길 바라. 내 노래를 다시 들어 줘."


앨범들

영상을 통해 노래를 들으니 정말 멋지던데요.

전 언론과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에요. 전 마치 반(反) 연예인(anti-celebrity)과 같습니다. 제 음악은 그러한 반대적 분위기에서 만들어지고요. 그 앨범(*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은 팬들의 취향에 맞춘 앨범이었습니다. 그 시절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언론 및 냉소적인 구매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Black Skinhead"([Yeezus] 수록곡)와 같은 곡은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가 다소 정직함이 부족했던 앨범이란 뜻인가요?

언제나 80% 정도입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음악의 정도가 말이죠. 그리고 (팬들의) 인식을 만족시키기 위한 나머지 20%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노인네의 집에 방문한다면 그들은 당신에게 아무 대접도 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그들은 완벽히 자기가 원하는 일만을 하기 때문이죠. 스티브 잡스(Steve Jobs)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도 완벽하리만치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했었죠. 그러나 그조차도 (상황에 따른) 타협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릭 오웬스(Rick Owens)(* 칸예와 친분이 깊은 패션 디자이너)조차도 타협을 해왔고, 저, 칸예 웨스트조차도 타협을 해 왔어요. 가끔은 그것이 사실로 나타날 때까지 자신이 타협을 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타협했다는 사실을 후회하게 되죠.

대놓고 [Dark Fantasy...] 앨범을 까내리고 싶진 않습니다. 그 앨범은, 절대로 쉽게 만족할 줄 모르는 제가 만든 앨범입니다. 저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 수용하며, 진실을 내뱉은 앨범이고요. 다른 이들과 저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며,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라고 말한 앨범이라는 겁니다.


[Dark Fantasy...]가 다소 타협을 거친 앨범이라는 게 흥미롭네요. 하지만 이미 [808s & Heartbreak]를 발매할 때 "좋아. 다른 사람들의 기대심 따위는 다 집어치워."라는 느낌 아니었나요?

맞아요. 그래서 그 앨범을 낼 때 주위 사람들이 랩네임을 바꾸라는 조언을 해줬었죠.


레이블 사람들이요?

그렇죠. '다른' 사람들. 그 사람들은 말했죠. "다른 이름으로 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앨범이 나오자 사람들은, "이봐, 난 이 앨범에 좀 더 랩이 많이 있기를 바랬는데."라고 하더군요. 여하튼 저는 제가 노래를 못한다는 사실이 [808s...] 앨범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히 숙달된 프로 가수라도 그 앨범은 만들 수 없었을 거예요. 절대로 그런 느낌으론 나올 수 없겠죠.

맞아요. 저는 제가 (어떤 것들을)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좋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나요? 전 영원히 35살이면서 동시에 5살입니다. 즉, 저는 어떤 것에는 5살 수준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죠. 


[Graduation] 앨범과 [808s...] 앨범 사이에 많은 일이 있으셨던 걸로 아는데요. 특히 힘든 일들이 말이죠.

창조적인 결과물은 말 그대로 고통입니다. 잠깐만 진부한 얘기를 좀 해볼게요. 위대한 예술은 고통으로부터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전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위대한 예술은 위대한 아티스트로부터 만들어진다'고 말이죠. 


당신의 앨범들 중 [808s...]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고 느끼시나요?

몇몇 사람들은 칸예만의 스타일, 즉, [Graduation]과 [808s...]을 섞어놓은 사운드가 더욱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얘기했죠. "Stronger"는 높은 수준의 반향을 일으켰던 첫 번째 댄스-랩 노래였고, [808s...]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느낌을 담은 첫 번째 앨범이었습니다. 뭐랄까, 첫 번째 흑인 뉴 웨이브 앨범이었달까요. 전 [808s...] 앨범을 낼 때까지도 저 자신이 뉴 웨이브(새 물결)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죠. 그렇게 해서 저와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사빌(Peter Saville), 라프 시몬스(Raf Simons), 고급 패션, 마이너 코드와의 관계가 시작된 겁니다. 그전까진 뉴 웨이브라는 단어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바로 흑인 뉴 웨이브 아티스트였어요.


언제나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나요?

표현하고 싶은 수많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단지 랩핑에만 더 전념했었어요. 게다가 전 정말, 정말 노래를 못했거든요.


비록 언제나 앞에 서고 싶어하는 당신에게도 무명이었던 때가 그리웠던 적이 있나요?

네. 그 마지막 순간을 꼭 붙잡고 있었던 적이 있죠. 곡 "Slow Jamz"에서 "밝은 피부색을 가진 친구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처럼 생겼어.(light-skinned friend look like Michael Jackson.)"라는 구절을 썼을 때, 전 제가 대스타가 될 것이란 걸 알 수 있었죠. 그리고 바로 그 당시에 있었던 버진(Virgin) 음반 매장에 가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뒤 스스로에게 말했죠. "무명으로서의 마지막 순간을 제대로 음미해주마"라고 말이죠. 전 제가 이만큼 유명해질 거란 걸 알고 있었어요.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죠.


하지만 프로듀싱부터 시작하지 않았나요? 특히 제이지(Jay-Z)가 [The Blueprint]를 만들 당시 당신을 중용한 이후로 말이죠. 

제 음악들이 팀발랜드(Timbaland)의 사운드와 비슷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DJ 프리미어(DJ Primier)의 사운드와 비슷한 곡들도 갖고 있었죠. 그러나 제이지는 영혼의 소리(sould sound)가 놀라울 정도로 인기를 끌게끔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전달자였어요. 원래부터 영혼의 소리라면 자면서도 만들 수 있었던 저는 (Jay-Z를 만난 덕분에) 마침내 그 안에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 거죠. 그리고 저의 부모님이 이미 제게 집어넣어 주셨던 그 메시지를 데드 프레즈(Dead Prez)가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모스 뎁(Mos Def)과 탈립 콸리(Talib Kweli)도 제 안의 메시지를 끄집어내는 데 일조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제이지가 만들어 준 발판을 딛고 (비트 안에) 메시지를 집어넣으며 어설프게나마 랩을 할 수 있게 된 거에요.

그전에는 저의 랩 스타일이 캠론(Cam'ron), 메이스(Mase), 그리고 제이지를 조금씩 닮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데드 프레즈와 시간을 보내며 메시지를 담은 멋진 랩을 할 수 있게 되었기에 더는 그렇지 않게 되었죠. 그리고 그 덕분에 노래 "All Falls Down"의 벌스를 단 15분 만에 쓰기도 했었죠.


그게 사실인가요?

네. 그렇게 해서 저만의 스타일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전 단지 뉴욕에서 그들과 항상 어울렸을 뿐이었는데 말이죠. 언제라도 그 친구들의 프로듀싱을 해줄 겁니다. 덕분에 핑크 폴로를 입던 과거를 지울 수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은혜를 되갚아줘야 할)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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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있었던 섬머 잼(Summer Jam)에서 공연 중인 제이지와 칸예 웨스트


2집 앨범 [Late Registration]을 통해 무엇을 시도하고자 했었나요? 1집 [Dropout]에서 하지 않았거나 혹은 할 수 없었던 것 말이에요.

오케스트라를 이용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자 했었죠. 제가 얻고자 했던 분위기와 사운드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사운드는 힙합과 오케스트라의 접합을 통해 저의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한 것이었고요. 아마도 이런 시도는 시카고의 특성인 것 같아요. 마치 퀸시 존스(Quincy Jones)처럼 말이죠. (* 퀸시 존스 -마이클 잭슨, 레이 찰스(Ray Charles) 등의 앨범을 제작했던 미국 대표 음악 프로듀서 중 한 명)


하지만 이곳으로 와서 존 브라이언(Jon Brion)(*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의 프로듀서)과 함께 작업하지 않았었나요?

전 존 브라이언이 작업한 몇몇 앨범들의 사운드를 정말 좋아했어요. 전 언제나 그 친구를 고려했죠. 전 제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제가 가진 것을 함께 나눌 겁니다. 제가 존경할 수 있는 상대라면 누구에게라도 머리를 숙일 수 있고요.


그 시절, 당신이 했던 일 중 가장 이슈가 됐던 일은 아마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자선모금 방송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대놓고 고함을 친 일일 텐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순간이 팝 포맷을 통한 메시지 전달의 최고 절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비록 노래가 아니었다 한들 말이죠.

맞아요. 저도 그 순간을 평생, 혹은 이 세대에서 가장 팝적인 순간이었다고 여깁니다. 제 말은, 저의 아버지 시대는 메시지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저는 의견을 내세운 한 개인이었을 뿐이고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자선모금 생방송 도중 
"부시(Bush)는 흑인들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칸예 웨스트


그때 본인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고 있었나요? 아니면 완전히 본능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던 건가요?

네. 그땐 좀 정신이 나가 있었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전 당시 무슨 노인네처럼 폴로 셔츠를 입고 있었어요. 전투에 나갈 옷차림은 전혀 아니었던 게 분명하죠.


커리어 후반부인 지금, 과거보다 더욱 모든 상황들을 인종적인 문제를 통해 바라보고 계신 것 같아요. [Watch The Throne]에 담겨 있던 강렬한 느낌은 훨씬 뚜렷했고요.

아뇨. 단지 이제 좀 더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저 자신이 되었을 뿐입니다. "All Falls Down"도 마찬가지예요. 전 제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자식이고요. 전 그렇게 자라왔어요. 전 질 스콧 헤론(Gil Scott-Heron)과 같은 위대한 활동가 타입의 아티스트 혈통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멋진 것들을 사랑하는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혈통이기도 하죠.


[Watch The Throne]에서 어느 쪽이 좀 더 어두운 분위기를 맡았었나요? 당신, 아니면 제이지?

제가 언제나 좀 더 어두운 분위기를 맡죠. 그전엔 다소 불편함을 느낀 것들이 있었죠. 혼자서 투어를 간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에요. 그래서 더 필요했어요.


친구 말인가요.

제이지와 친해질 필요가 있었죠.


옆에 서 있어 줄 누군가와 함께하며 "저 친구 멋져. 칸예도 멋져" 같은 걸 원했던 거군요.

예, 퀼트 치마를 입었다 할지라도 말이죠.


언론 vs 개인

(언론에 나타나는) 제이지나 디디(Diddy)는 거의 대부분인 90%의 경우가 즐거운 모습을 보이곤 해요. 그러나 당신은, 글쎄요, 50%? 아니면 30% 정도랄까요?

아마 전 언론에 나타나는 90%의 경우가 즐겁지 않은 모습일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매우 공개적인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만족스러운 관계를 보이고 있고요. 이제 곧 아이를 갖게 되시죠?

사랑에 빠진 여인은 언제나 (남자의) 에너지를 어느 정도 지휘하게 됩니다. 그 결과, 좀 더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죠. 


확신치 못하는 사랑을 하게 될 땐 엄청난 방해가 되죠. 한 사람이 가진 모든 영역을 타락시키기도 하고요.

맞아요. 그게 제가 말했던, "요, 난 이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거야. 지금부터 5년 동안 말이지"의 뜻이기도 해요. 저는 여자 친구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타입의 락 스타입니다. 저는 사랑도 하고 싶고 (작업에) 집중도 하고 싶은 영혼이라고요. 그리고 그것이 저에게 영감을 주죠


"Keeping Up With The Kardashians"(*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 주인공의 리얼리티 쇼)에서 킴의 옷을 함께 골라주는 애정어린 씬이 있었죠?

사랑으로 했던 거죠. 모두가 무언가를 각기 다르게 해석하는 건 곤란한 일이에요. 그 쇼에 출연한 뒤 사람들로부터 받은 엄청난 후폭풍 뒤에 전 다시는 그 쇼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죠. 그 쇼에 뭔가 불만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전 단지 그 쇼에 나온 뒤 사람들로부터 받은 엄청난 반발을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저는 사랑하는 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멋진 사람일 뿐이라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남은 가족들에 대한 마음이 더욱 애틋해지셨나요?

맞아요, 저의 어머니는... 아시죠, 전 가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의 80%를 어머니와 함께 보냈어요. 저의 어머니는...


당신의 가족이었죠.

그렇습니다. 그게 제가 말할 수 있는 전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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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예 웨스트와 그의 어머니 돈다 웨스트(Donda West.) 
그녀는 이 사진을 찍은 2007년 사망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매우 흥미롭고 강력한 질문이군요. 일단은 보호해주는 것이겠죠. 전 제 아이와 아이 엄마를 지키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겁니다. 그게 전부예요.


일전에도 지금 말하신, 무언가를 열렬히 지키고 싶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한 제 생각을 지나치게 설명하고 싶진 않네요. 아직까진 그런 생각들을 완전히 깊게 해본 적은 없거든요. 전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하신 거죠.

네. 전 미국에 제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진 않아요. 이 아이는 제 아이입니다. 미국의 아이가 아니에요.


[Yeezus]의 탄생

당신의 새로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제가 들었던 생각은, "이거 [College Dropout]의 정반대 앨범이 되겠구나." 였습니다. 마치 당신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 껍질을 벗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과거엔 당신은 좀 더 "난 더욱 많은 사운드르 원해, 더욱 복잡한 랩을 원해." 이런 느낌이었죠. 어느 시점부터 변하게 된 건가요?

구조(Architecture), 이 꼬르뷔지에 램프(Corbusier lamp)가 저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습니다. 파리에 있을 때 저는 이런 복층 집에 살았었는데요. 거실에서 녹음을 했었는데 정말 최악의 음향 환경이었죠. 그래서 곡들을 굉장히 심플하게 만들어야만 했었어요. 좀 복잡한 사운드나 많은 베이스를 집어넣었다간 녹음을 할 수 없었으니까요. 올 초엔 좀 사정이 나아지긴 했었죠. 여하튼 루브르 박물관에 가구 전시회를 보러 갈 생각이에요. 루브르 박물관은 지금까지 아마 다섯 번 정도 방문했던 것 같네요. 꼬르뷔지에(Corbusier)(*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의 생가도 방문해보고 싶어요. '왜 이런 걸 설계했을까?' 하면서 말이죠. 그들은 이전에 없었던 무지막지하게 큰 유리 판을 설치하기도 했어요.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랩퍼의 몸을 가진 미니멀리스트예요. 그 모든 분위기들을 (머릿속에) 담아서 릭 루빈(Rick Rubin)에게 가져가는 거죠. 왜냐면 전 언제나 데프 잼(Def Jam)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릭 루빈이 만들었던 곡들에 "릭 루빈에 의해 축소되었음"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기도 했죠.

그것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내면이에요. 전 여전히 미니멀리즘(* minimalism - 최소한의 표현주의)을 배우고 있는 꼬마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릭 루빈은 미니멀리즘의 마스터고요. 그와 일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축복입니다. 비록 [Watch The Throne]이나 [Dark Fantasy...]을 만든 저이지만, 릭과 작업하고 나자 저 스스로가 한없이 보잘것없이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왜 제가 아직까지 '올해의 앨범' 상을 타지 못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죠.

이 앨범([Yeezus])은 제가 이전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순간들을 담고 있어요. 저의 목소리나 드럼 소리들 같은 것 말이에요. 사람들이 고함이라고 칭했던 저의 그것을 드럼 비트 옆에 갖다 붙임으로써 런 디엠씨(Run-DMC)나 KRS-원(KRS-One) 수준의 곡들을 탄생시켰죠. 그리고 이 곡들에게 다소 진부한 제목들을 붙일 겁니다. 마치, 제이퀀(J-Kwon)의 "Tipsy"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그 곡을 매우 낮은 수준의 다소 바보 같은 형태의 힙합으로 여기죠. 하지만 그 곡은 언제나 저의 넘버원입니다. 이번 앨범엔 오페라 사운드를 담지 않았어요. 즉, 완전히 로우 비트로 만들어진다는 얘깁니다. 전 여전히 조금의 허세가 있어요. 그러나 (이 앨범에선) 완전히 저의 허세 쩌는 천국의 노래들을 배제시켰죠. 그런 것들을 완전히 제거한 거예요.


당신은 이 앨범에서 그 베이스나 짜임새를 강조하는 방식을 통해 앨범의 중심부에 큰 가치를 부여했어요. 그건 그다지 거만하지 않았죠.

맞아요. 트랩, 드릴, 혹은 하우스 음악 같죠. 전 이 앨범에 깊은 시카고의 영향력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들었을 때 오래된 시카고 하우스 음악이 떠오를 수 있게 말이죠. 그런 면에서 "Black Skinhead"는 하우스 사운드의 경계선에 있죠. "On Sight"은 애시드 하우스의 사운드와 같구요. "I Am A God"은 완벽히 하우스 그 자체죠.


본능적인 것?

네, 본능적인 것, 그런 종류죠. (허세스러운 것들을) 잘라내고자 노력했어요. 이건 옷이나 패션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요즘 들어 옷을 굉장히 단정하게(게이같지 않게) 입는 걸 아실 거예요.


5년 전에 입던 옷들보다 지금 입는 옷들이 입을 때 시간이 훨씬 적게 걸리나요?

당연하죠.


5년 전이나 7년 전에 입던 옷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절 죽이고 싶죠. 그게 전부예요. 자살하고 싶어요.


당신이 지난 세월에 걸쳐 만들어 왔던 것은 아웃사이더로서의 자아개념이었죠. 자신의 길을 위해 싸워나가는. 아직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똑같이 느끼시나요?

아뇨. 이제는 그런 것을 느끼지 않습니다. 더 이상은 제 내면에 갖혀 있고 싶지 않고요. 


무엇이 당신을 변화시켰나요?

실질적인 자아 실현과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요. 오래 살수록 더 많은 자신감을 쌓게 되는 법이죠. 칸예와 허세(허영심)는 마치 동의어와 같아요. 하지만 저는 다른 허세꾼도 시도하지 않을 일들을 해내곤 했죠. 예를 들어, 그 어떤 허세꾼들이 퀼트 치마를 입겠어요?


하지만 패션계에는 허세가 존재하잖아요. 당신은 옷을 만들고요. 사람들은 그것들을 허세스러운 일이라고 했지만 당신은 개의치 않았죠.

열정은 인류를 위한 것이에요. 열정은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열정은 18살 버전의 저를 위한 것이며, 또한 제 공연을 보러 오는 어린 친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더 하고 싶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 스스로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 것을 주고 싶어요. 럭셔리라 함은 '매장에 가서 구입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반대로, 럭셔리라는 것은 매장에 가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죠.

한번은 어떤 패션 관계자와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 사람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그가 이 인터뷰를 읽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가 본다면 이게 자기 이야기란 것을 알 테니까요. 하지만 그를 리스펙하는 의미로 이름은 말하지 않겠어요. 여하튼 그가, 제가 사무실을 나서기 직전에, 저에게 질문을 하나 하더군요. "이 경지까지 왔으면서 왜 패션 쪽으로 더 진출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전 "아직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했죠. 그리고 궁극적으로, 저에게 질문을 했던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들지 못했어요. 무슨 말이냐면, 그 어떤 사람도 그의 제품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원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감성적으로 사람들과 깊게 연관되어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패션 업계에서) 만들지 못했다는 뜻은? 뭐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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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파리에서 열린 자신의 '레디투웨어(ready-to-wear)' 
봄/여름 2012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칸예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건 왠지 아까 나눴던 그래미 이슈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군요. 왜냐면 당신이 악수를 나누고자 했던 사람들, 그들이 어떤 권력의 중심부를 좌지우지 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전혀 아니거든요.

전 프로 뮤지션입니다. 유니버설 레코드(* 데프 잼의 모회사)의 구조가 저를 받쳐주고 있으니까요. 또한, 저는 프로 창조가입니다. 루이비통 스니커즈를 만든 이후부터 저는 실제로 제품을 만드는 창조적인 공간으로의 출입을 허용받지 못했어요. 한번은 미팅에서 한 녀석이 저에게 얘기하더군요. "우리가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당신을 통제할 수 있을까' 입니다." 미팅에서 제 면전에 대고 말이죠! 아니 왜 나를 통제하려는 건데? 전 단지 이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길 원할 뿐이에요.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긍정적인 거라고요!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최고로 멋진 거라고요! 왜 나를 통제하려 하냐고요.

그게 바로 제가 "New Slaves"에서 "난 이 마이바흐(Maybach) 차 키를 집어던지겠어"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전 마이바흐 차에 앉아 있을 바엔 차라리 의류 공장에 앉아 있을 겁니다.

사람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난 이 세상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창조하고 싶어. 난 이미 최고점을 찍었단 말이야."라고 말이죠. 만약 제가 소리지르지 않고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래서 전 사람들에게 다가가, "이봐! 내게 얘기해봐! 날 존중하라고!"라고 말하는 거예요.


유행의 선도자를 존중하라는 거군요.

네, 유행을 선도하는 저의 능력을 존중해달라는 겁니다. 한 번만 제 능력을 존중해 준다면 이후엔 모두가 승리할 수 있어요. 세상이 승리하고, 아이들도 승리하고, 창조도 승리하고, 회사도 승리하는 거죠.

저는 칸예 웨스트의 의미가 스티브 잡스(* Apple의 설립자)가 뜻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지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의심할 여지없는 인터넷, 도심지, 패션, 문화의 스티브 잡스죠. 이상입니다. 솔직히 저는 스티브가 세상을 떠났기에, 아니, 예를 들어서 비기(Biggie)가 세상을 떠났기에 제이지가 지금의 제이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난 4년간 발매된,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앨범들에 모두 연관된, 지난 10년간 가장 큰 영향력을 지녀 온 아티스트입니다.

그리고 제겐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줘야 할 책임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마치, "이러한 것들의 수준은 여기까지 가능합니다."라고 말이죠. 즉, 만약 당신이 칸예 웨스트의 이름이 박힌 무언가를 구입한다면, 그것은 가장 멀리 뻗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이미 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저는 억만 달러의 자산을 지닌 회사의 리더가 될 겁니다. 왜냐면 전 이미 답을 갖고 있으니까요. 전 문화를 이해하고 있어요. 제가 바로 핵심입니다.


출처 | New York Times (저자 - Jon Caramanica)

번역 Nate Do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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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7
  • 6.17 06:39
    잘 봣슴돠.
  • 6.17 10:05
    [YEEZUS] 듣기 전에 읽어보니 정말 재미있네요 ㅋㅋㅋ
  • title: Kanye Westido
    6.17 11:13
    와 진짜ㅋㅋㅋㅋ 자신감을 넘어서 어떤 신념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네요. 그래서 맘에 들음
  • 6.17 11:51
    음악에대한 자부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아에 있어서 이미 실현을 마쳤고,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든게 좋아진다' 는 자신감까지 가지고 있네요. 한편으론 많이 부럽습니다
  • 6.17 11:58
    역시 ,, 쩔어...
  • 6.17 12:14
    패기 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6.17 13:33
    이유있는 자신감 굿 ㅋㅋ
  • 6.17 18:35
    이 친구 정말 진짜 같은 친구네요
  • 6.17 19:26
    이런 자신감을 갖고 좋은 음악과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해주시길... Kmen
  • 6.17 22:33
    멋잇다 진짜 와ㅏ...
  • 6.17 22:42
    독특하네요 진짜ㅋㅋ 추천박을만한 인물임
  • 6.18 18:52
    마지못해 사과ㅋㅋㅋ
  • 6.19 01:07
    5년 전이나 7년 전에 입던 옷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5년 전이나 7년 전에 입던 옷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절 죽이고 싶죠. 그게 전부예요. 자살하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 6.25 19:00
    패션계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들지 못 한다는 게 무슨 뜻이죠...?
  • 1.18 01:43
    @j1n1us
    다들 주고받는 크리스마스 선물인데 그렇게까지 주기 싫을 정도로 멋없는 제품이라는 뜻이죠. 걍 구려서 선물로 주기도 싫다 라고 해석하는게 좋을것 같네요!
  • 1.18 01:44
    와 칸예정도니까 저런 말해도 아무렇지 않다 ㅋㅋㅋ
  • 6.15 01:53
    헐 이 기사가 벌써 3년 가까이 되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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