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왜 믹스테입 먼쓰인가?
힙합 음악은 장르 음악이다. 여러 장르 음악 중에서도 가장 늦게 태동한 축에 속하는 만큼 현대(정확히는 미국) 문화•사회적 맥락이 대단히 많이 반영되는 편이다. 미국의 시대적 흐름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대단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힙합도 어쨌든 대중음악의 일부분이기에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유통 체계와 제작 형태를 따르는 건 당연하다. 그중 제작 형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싱글, EP, LP를 일컫는다. 많은 힙합 뮤지션이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들과 다를 바 없이 앨범을 발표하기 전에 몇몇 곡을 툭툭 싱글컷해서 내고, 최종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춘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한다. 단,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믹스테입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또다른 포맷이 있다.
블록 파티에서 사운드클라우드로 오기까지
힙합을 이야기할 때, 매번 지겹게 나오는 DJ 쿨 허크(DJ Kool Herc)와 아프리카 밤바타(Africa Bambaata) 얘기를 또 꺼내게 됐다. 믹스테입이란 개념이 이들이 파티를 위해 여러 곡을 모은 형태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믹스테입은 현재 한국에서 사실상 래퍼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것과 달리 DJ로부터 시작된 형식이다. DJ들은 자신의 파티에 적합한 곡들을 이리저리 모았으며, 또 그것을 서로 섞는 것도 모자라 따로따로 존재했던 랩과 비트를 분위기에 맞춰 매칭시키기도 했다. 그 이후,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DJ들의 믹스테입 외에도 MC들이 주체가 되어 적절한 비트를 골라 자신의 랩스킬을 뽐내는 믹스테입도 생겨났다. 또, 좀 더 작품으로서의 형태나 컨셉을 구축한 믹스테입이 나오기도 했고, 아예 어디선가 빌려온 것 없이 모두 다 호스트가 직접 만든 ‘오피셜 믹스테입’도 비교적 최근 탄생했다. 덕분에(?) 말만 믹스테입이고, 사실상 일반적인 앨범과 다를 바 없는 경우가 생겨났고, 이제 앨범과 믹스테입의 경계는 과거에 비해 대단히 모호해진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믹스테입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그 모든 것들은 세부적인 요소가 어떻든 간에 지금까지도 믹스테입만의 독자적인 매력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취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믹스테입에서는 기존의 비트와 기존의 랩, 혹은 기존의 비트와 새로운 랩을 섞으며 비트에 대한 색다르고 신선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어떤 비트를 골랐는지부터 어떤 해석을 해냈는지까지, 그 자체가 호스트의 음악적 역량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작품으로서의 유의미함을 따지기보다는 랩 그 자체가 주는 청각적인 쾌감에만 집중할 수 있기도 하다. 그로 인해 의도치 않게 패푸스(Papoose) 같이 믹스테입은 너무 좋은데, 그 임팩트가 너무 크고 작품을 구축하는 능력이 다소 부족해 되려 스튜디오 앨범에 대한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던 래퍼가 생겨나기도 했다.
물론, 그보다는 좋은 케이스가 훨씬 많다. 당장 현시대 최고의 스타들인 드레이크(Drake)나 제이콜(J.Cole)만 봐도 자신들의 믹스테입 한두 장으로 스타가 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바 있다. 또, 패볼러스(Fabolous)는 과거 명성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하지만, ‘The Soul Tape’ 시리즈로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기도 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부터는 릴 웨인(Lil Wayne)처럼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비교적 제작•유통 과정이 용이하기에 믹스테입을 밥 먹듯이 내며 끊임없이 대중과 팬들에게 얼굴을 비추는 이도 더러 있었다(참고로 이 부문 최고는 단연 지난주에 냈는데 이번주에 또 내는 시절도 있었던 구찌 메인(Gucci Mane)이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해 댓핍(DatPiff) 같은 믹스테입 전문 사이트가 생겨나기도 했고, 이제는 아예 댓핍이 스폰서 역할을 수행하면서 매 곡에 댓핍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들어가는 믹스테입도 있을 정도다. 이로써 믹스테입이란 하나의 포맷을 두고 시장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발굴, 재기, 연습, 생계 유지(?), 그리고 홍보에 목적을 두고서 믹스테입을 만들게 된 셈이다.
이 믹스테입 시장이 보다 더 커질 수 있었던 건 단연 온라인으로 음악을 쉽게 스트리밍할 수 있는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가 2000년대 중, 후반쯤 생겨난 덕분이었다. 이전에도 앞서 언급한 댓핍 같은 사이트를 비롯해 각종 루트로 믹스테입을 다운로드 받아 들을 수 있긴 했지만, 사운드클라우드와 함께 스트리밍의 시대가 되면서 아티스트 개개인이 자신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더욱 용이해진 것이다. 기존 레이블들의 시스템에 대한 그의 굳은 소신을 간과해서는 안되지만,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가 [Acid Rap], [Surf], [Coloring Book] 등의 앨범과 믹스테입을 계속해서 인디펜던트로, 또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무료로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이 같은 시대적 변화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믹스테입, 증명의 또 다른 이름
한국의 상황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물론, 그 시작은 당연하게도 꽤나 많이 늦었었다. 지금은 희재(Hee Z)라는 이름을 쓰는 래퍼 라마(Rama)가 자신의 믹스테입 [Gene Recombination], [STG is the Future]를 내놓은 게 사실상 최초의 기록이고, 그 시기가 2005년이었다. 이후, 스윙스(Swings)가 첫 믹스테입 [Punch Line King]으로 급부상하고, 2000년대 후반 이센스(E SENS), 사이먼 도미닉(Simon Dominic), 베이식(Basick)과 같은 유수의 래퍼들이 자신들의 믹스테입을 발표해 온라인으로 판매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는 엄연히 불법이었고, 유통사에 의해 제지 당하며 2010년대에 들어 자취를 감췄다. 어쨌든 당시 힙합 팬들은 그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결과물에 환호했다. 그 결과, 누군가는 일주일 만에 3천여 장을 판매하는 기록 아닌 기록을 세우기도 했었다. 아마 지금도 이센스의 믹스테입에 수록된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의 “You know I’m No Good” 위에서 이센스, 사이먼 도미닉, 마이노스(Minos)가 뭉친 “I’m No Good”을 잊지 못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그것이 불법임을 알지 못하고, 그렇기에 이에 대한 지적조차 없었던 그 시절을 지나 지금은 앞서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이야기한 매체, 플랫폼의 변화로 많은 이가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믹스테입을 공개한다. 이 한국의 믹스테입 시장에도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한 경우와 아예 모든 걸 새롭게 만든 경우가 한데 섞여 있다. 외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믹스테입은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빈지노(Beenzino)는 스윙스의 두 번째 믹스테입 [#1]의 수록곡 “아밀리”에 참여하고, 비트박스 디지(Beatbox DG)와 함께 결성한 팀 핫 클립(Hot Clip)으로 믹스테입을 발표하며 힙합 씬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었다. 회사를 나와 씬으로 돌아온 제리케이(Jerry.K)는 [우성인자]로 자신의 복귀를 알렸으며, 퓨처리스틱 스웨버(Futuristic Swaver)는 구찌 메인에 버금갈 정도의 발매 간격으로 믹스테입을 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름 이목을 끌었었다. 뿐만 아니라 피셔맨(Fisherman)은 자신의 비트테입을 통해 크루셜 스타(Crucial Star)와 연결될 수 있었다. 심지어 데이즈 얼라이브(Daze Alive)의 슬릭(Sleeq), 리코(Rico), 던말릭(Don Malik)은 모두 자신들이 만든 완결된 형태의 믹스테입이 레이블에 입단하게 된 계기였던 케이스다.
그러나 아직 씬에서 이름을 그리 많이 알리지 못한 플레이어 혹은 플레이어 지망생들부터 한국힙합 씬과 몇몇 국내 힙합 커뮤니티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루에도 믹스테입을 올리는 게시판에 몇 개의 게시물이 올라오는지부터 단순히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했다는 것만으로는 조금도 주목 받기가 어렵다는 걸 말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실력이 좋으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알아볼 것이라고. 과연 그것이 맞는 말일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쇼미더머니>나 <모두의 마이크>에 나가는 것과 운 좋게 기성 아티스트의 레이더망에 걸리는 것을 제외하면, 무명의 누군가가 자신을 알릴 방법이 딱히 없다는 건 큰 문제다. 이는 곧 지금의 한국힙합 씬이 그리 단단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성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그 책임을 묻고, 이에 관해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책임을 묻자면 힙합엘이와 같은 매체가 타겟이 되어야 한다. 어쨌든 힙합과 알앤비를 매체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으며, 또 그것들에 관해 쉽고 빠르고 전문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목표를 두기 때문이다. 그 목표가 이름 없는 무명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할 때라고 달라져서도 안되고, 그렇기에 잘하는 새로운 누군가를 알리는 건 매체로서 나름의 의무 아닌 의무다.
힙합엘이가 6월 한 달 간 준비한 믹스테입 먼스는 누군가는 ‘긁어 부스럼’이라고 할 법한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지난 3월, 웨스트 코스트에 관한 콘텐츠를 준비하고, 그에 걸맞은 리워드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공했듯 이번에도 온•오프라인에 걸쳐 믹스테입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들을 준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방점을 찍는 건 아마도 2015년에 발표된 모든 믹스테입을 대상으로 한 어워드일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많은 힙합 팬이 믹스테입, 그리고 믹스테입을 만드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길 바라고, 여러 스태프가 달려들어 만들어낸 각종 콘텐츠들을 열심히 즐겨주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열정에 대한 약소하지만 소중한 보답이다.
글│Melo
이미지│ATO
그중에서도 가장 큰 방점을 찍는 건 아마도 2015년에 발표된 모든 믹스테입을 대상으로 한 어워드일 것이다.
한때 믹스테잎 열풍이 어느새 금새 식어버린 국내 힙합에
스윙스 만이 믹텝을 자주 내는것 같네요 .(현역 래퍼 중)
많은 래퍼들이 정규 앨범 말고도 믹텝을 자주 내서 팬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줬으면 하네요.물론 불법 유통이 아닌 무료 공개로 ..
오피셜도 괜찮구요 ..
우리나라에서는 믹테를 팔았었다니... 덜덜
믹테도 믹테나름이지 무단샘플링을 한적이 있다면 표절이 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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