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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버벌진트, Go Hard, Still Hard

Melo2016.01.07 14:11추천수 12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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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버벌진트, Go Hard, Still Hard

우리가 흔히 힙합이라는 장르 음악에 기대하는 점이라면 단연 ‘하드(Hard)’함일 것이다. 물론, 힙합 안에도 다양한 면모가 존재하고, 그렇기에 하드하냐 아니냐만을 가지고 특정 음악을 추켜세우거나 깎아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힙합은 거칠고, 투박하고, 터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편이다. 이는 시점을 아주 옛날로 돌이켜 보면, 몇몇 아티스트가 보여준 시스템과 사회적 편견에 대한 저항 정신, 혹은 남성 위주로 힙합 문화의 판도가 짜임으로써 주입된 남성성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에서 기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헤비니스 계열의 락 음악보다는 덜하지 않느냐는 말을 할 수도 있고, 최근 들어 드레이크(Drake)를 비롯한 소프트한 프로덕션과 내용을 주된 매력으로 삼아 이를 간헐적으로 보여주는 아티스트가 있다며 힙합이 변했다고 할 수도 있다. 맞다. 힙합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왔고, 이제는 더 많은 이미지를 표방할 줄도 안다. 다만, 힙합에 대한 청자들의 기대 심리는 여전히 하드함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꽤나 많은 국내의 힙합 팬이 긴 시간 버벌진트(Verbal Jint)가 공약처럼 내세운 ‘GO HARD’라는 제목의 작품을 고대해온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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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벌진트는 2008년 발표한 [누명] 때부터 지난달 새 앨범 [GO HARD Part.1 : 양가치]를 발표하기 전까지 수많은 비난과 질타를 들어야만 했다. 그 모든 목소리가 향하는 곳은 [Go Easy]와 [10년동안의 오독 Ⅰ]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좋아보여”와 “충분히 예뻐”였다. 브랜뉴뮤직(Brand New Music)에 입단한 후의 버벌진트는 확실히 [무명], [누명]을 발표했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부드러운 무드의 음악을 주로 선보였었다. 물론, 그 당시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얻은 팬층의 규모는 과거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났지만, 기존 팬들은 그의 행보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끝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버벌진트는 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음악적 노선을 굽히지 않고 이어나갔으며, 변화한 음악적 방향에 대한 궁금증에는 매번 ‘요즘 나의 기분이 이런 음악을 만들게 한다.’라는 식의 답변을 내놨었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버벌진트는 결국 [Go Easy]를 발표한 지 약 4년 3개월 만에 [GO HARD Part.1 : 양가치]를 발표한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작품이 완전체로 나오기 한 달 전쯤 발표된 다이나믹듀오(Dynamic Duo)의 새 앨범 [Grand Carnival]의 수록곡 “타이틀곡”에서 그는 그간 자신을 둘러싼 오해에 대한 거칠다 못해 감정적이기까지 한 자기 항변을 늘어놓는다. 그 항변을 압축해서 이야기하면, ‘나는 언제나 리얼했다.’라고 할 수 있다. 표절이냐 아니냐, 레퍼런스냐 아니냐의 여부를 아무리 유추한다 해도, 또 그것을 법이 인정한다 해도 해당 음악가의 마음을 들추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듯 우리도 버벌진트의 진짜 마음을 알 순 없다. 다만, “타이틀곡”에서 그가 낸 목소리와 격정적인 톤으로 뱉어댄 내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솔직하게 다가와 나름대로 설득력 있었다. 그 설득력은 이어 발표된 그의 새 작품 [GO HARD Part.1 : 양가치]로 더욱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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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Fast Forward (빨리감기)”에서 이렇게 묻는다. ‘사랑얘기 vs 딴 얘기 구도보다 더 깊이 파고드는 나의 시도가 힙합인(?)들에게 먹히는 날이 오긴 올까?’라고. 확실히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무명]과 [누명]에서 각각 소위 ‘지진아들’을 박멸하는 태도나 한국힙합 씬에 대한 회의감을 주된 내용으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시선을 더욱 깊이, 그리고 멀리 가져갔다. 여기서 시선의 심화는 주로 내면의 갈등을 담아낸 트랙에서 알 수 있으며, 확장은 자기 자신과 한국힙합 씬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는 트랙에서 알 수 있다. 또, 그 내면과 내면 바깥에 있는 세상이 충돌하며 빚어지는 생각과 감정 역시 앨범의 또 다른 주된 내용이다.

조금 더 파고들면, 버벌진트는 “나대나”를 통해 자아를 분열하여 내면적 갈등을 드러낸다. 연달아 나오는 “Karma”와 “Fear”를 통해서는 다른 사람이 두렵기보다는 자신의 업보가 더 두려움을 드러내고, 또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쌓아 나갈 수밖에 없는 업보 그 자체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런 와중에도 “Seoul State of Mind”를 통해 서울로 대변되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거시적으로 그려내고, 또 “좌절좌절열매”나 “The Grind 2”로 디테일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이며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대상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작품 안에 건물에 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는 것 역시 최근 부동산 영역에서 사회•문화적으로 문제시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을 꼬집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이태원 경리단길, 부산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성수동 일대 프랜차이즈 입점 금지가 이에 주된 키워드다). 결국, 그는 “세상이 완벽했다면”에서 말 그대로 완벽하지 않은 세상과 자신을 충돌시키며 좀 더 좋은 세상이 되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낸다. 또, “My Bentley”에서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분노를 토로하기까지 한다.



♬ 버벌진트(Feat. 태연 of 소녀시대) - 세상이 완벽했다면


이렇듯 버벌진트는 [GO HARD Part.1 : 양가치]를 통해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을 모두 담아내고, 또 그것들을 각 트랙 안에서 유기적으로 결합하기까지 한다. 다만, 각 곡이 서로 다른 주제와 시선, 서술 방식을 보유하고 있기에 앨범은 언뜻 보면 중구난방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버벌진트는 자신의 까칠하고 시니컬한 마인드셋을 이를 한데 묶는 구심점으로 가져간다. 그는 앨범 안에서 무엇을 감상하고, 사고하고, 경험하든 간에 결코 순순히 넘어가지 않는다. 이를테면, 자신의 내면을 향한 트랙에서 스스로를 속이며 모순적이기를 거부하는 강박적 태도가 묻어나는 식이다. 즉,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으로 넘어가는 유순하고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셈이다. 조금 멀리 가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앨범에 참여한 제리케이(Jerry.K)가 “Studio Gangstas”에서 말한 ‘Good Vibes Only’가 아닌 ‘Real Vibes Only’라고 하면 적절할까.

그래서 [GO HARD Part.1 : 양가치]는 버벌진트가 앨범 안에 담아낸 의미적인 측면에서 무척이나 하드하다. 물론, 버벌진트를 중심으로 2xxx!, 김박첼라, 험버트(Humbert)와 같은 유수의 프로듀서들이 함께하여 만들어낸, 어떻게 보면 [무명], [누명] 때와 비슷한 결의 프로덕션이나 여지없이 타이트한 그의 랩도 그 하드함에 어느 정도 일조한다. 하지만 단순히 형태적인 측면으로만 하드하다고 말하기에는 앨범에서 버벌진트가 일관되게 가져가는 태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큰 편이다. 다시 말하면, “Brand New Day”나 “세상이 완벽했다면” 같은 비교적 부드러운 무드의 트랙 몇 개를 지적하는 걸로 앨범을 평가 절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어떻게 보면 정직하고, 어떻게 보면 변태 같기도 한 버벌진트가 변화했으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은 이유다. 버벌진트, 그는 여전히, 여지없이, 역시나 하드했다.





글│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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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1.7 15:24
    잘 읽었습니다!
  • 1.7 19:35
    켄드릭의 플로우까지 따라했다며 억지를 부리고 언어장벽을 듣고 애써 웃으며 박수를 치는 어떤 허접한 리뷰와는 질적으로 다른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 PRT
    1.7 19:53
    나대나는 제가 알기로는 자아분열이 아니라, 미래에 완전히 꼰대가 된 자신과의 대화라고 버벌진트가 언급했습니다
  • 1.7 22:08
    잘 읽었습니다 스웩
  • 1.8 11:04
    잘 읽었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1.9 12:40
    스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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