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리뷰]

Vince Staples - Summertime '06를 듣고

TomBoy2017.01.22 02:12조회 수 1759추천수 9댓글 2

folder.jpg
navy.jpg
white.jpg



 빈스 스테이플스의 데뷔 앨범 Summertime '06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질 좋은 앨범들이 양껏 쏟아져 나왔던 2015년, 그중에서도 유독 돋보였던 6월에 대한 기억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 한 달 동안에는 물 흐르는 듯한 래핑과 자전적인 가사로 주목받고 있던 브루클린 출신 스카이주의 솔로 앨범, 고전 소울과 컨트리 음악의 온기와 황량함을 멋지게 재해석한 리온 브리지스의 데뷔 앨범, 알앤비신의 촉망받던 신예 일라이자 블레이크의 데뷔 앨범, 피비 알앤비의 한 각축을 이루던 미겔의 세 번째 앨범, 자신들의 스타일과 가치를 입증한 인터넷의 새 앨범 등 많은 훌륭하고 뛰어난 앨범들이 발매되었다. 하지만 주목받던 대형 신인으로서 빈스가 선보인 그의 데뷔 앨범 속 음악들은 이런 빛나는 활약들의 규모를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동시에 같은 시기에 주목받던 또래의 신인들을 아직은 덜 성숙하고 초라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취향과 관점에 따라서 이 앨범을 그 해 최고의 앨범으로도 꼽는 이들도 많았는데, 이해가 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가 발매되었던 해라는 점을 되새겨 본다면 이런 사실은 충분히 놀랄만하다. 원래 음악시장이라는 바닥이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단언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앨범은 내가 힙합 음악을 듣기 시작한 이래 가장 뛰어났던 데뷔 앨범 중 하나가 되었다. 가장 처음 앨범을 듣자마자, 무려 앨범 발매 1년 전까지만 하더래도 루키라고 불리던 젊은 친구가 어떻게 이런 높은 수준의 앨범을 선보일 수 있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겨났다. 이에 대한 해답은 그리 멀지 않은 앨범 크레딧에 있었다.



앨범 크레딧의 Producer 칸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그 이름 No. I.D.. 이 믿음직한 이름을 필두로 대세 중에 대세인 DJ Dahi와 음울하고 몽환적인 시그니처 사운드로 일찌감치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Clams Casino까지, 이 세명이 앨범 크레딧의 중추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체 트랙 수가 20곡에 2CD로 구성되어 있는 무게감 넘치는 앨범 구성임에도 채 1시간이 되지 않는 러닝타임, 한순간도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앨범의 일관된 사운드는 이들의 능력과 합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완성도의 핵심에는 빈스 스테이플스의 유려한 래핑과 비정한 가사가 자리 잡고 있다. 노아디란 프로듀서는 하나의 곡보다는 오롯이 하나의 앨범을 주도할 때 그 진가가 나온다는 점과 그 대상이 그동안 합을 맞춰오던 뮤지션(커먼, 칸예)이 아니라 신인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 번 경탄하게 된다. 이 앨범에서는 주요 멜로디가 아예 배제된 곡들이 대부분이다. 대신에 아예 리듬만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극도로 미니멀하고 기괴한 악기 구성이 많은 편이다. 앨범의 총괄 프로듀서가 노아디란 점을 감안했을 때, 오히려 노아디의 장기로 꼽히는 샘플링 작법이 주는 극적인 감상이 그 어느 때보다 덜한 편이다. 먼저, 노아디의 전작이었던 Common의 Nobody's Smiling은 이 앨범의 베타 테스트처럼 느껴진다. 그 외에도 Summertime은 칸예 웨스트의 Yeezus, 같은 해에 발매되었던 얼 스웻셔츠의 I Don't Like Shit, I Don't Go Outside 같은 앨범들과 일정 부분 그 성질을 공유한다.



이미 밤하늘의 별자리만큼 밝게 빛을 내는 별들로 그득한 힙합씬에 새로 태어난 별들이 진입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새로 태어난 별로서 성공적으로 빛을 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만의 확고한 아이덴티티와 비전이다. 그런 점에서 빈스 스테이플스가 선보이는 자신만의 확고한 컨셉과 사상은 그를 향한 찬사의 근거가 된다. 앨범 속 바짝 날이 선 수록 곡들은 대체적으로 빈스의 기괴하고 냉소적인 컨셉과 좋은 궁합을 이루고 있고, 스킷 하나하나, 참여진 하나하나, 앨범을 이루고 있는 그 무엇 하나 허투루인 것이 없는 이 기가 막힌 효율에서 빈스와 프로듀서들의 작가적인 고심을 엿볼 수 있다. 영국의 감각적인 소울 싱어송라이터 Daley, 같은 노아디의 레이블 ARTium 산하에 속해 있는 여성 뮤지션 즈네 아이코와 스노 엘레그라, 제임스 폰틀로이 등의 활용은 자칫 건조하고 기계적일 수 있었던 앨범에 여유로움과 매끈함을 선사한다. 전작이었던 Hell Can Wait에서 설파하던 게토의 현실과 불안정한 삶을 담은 분위기와 컨셉은 데뷔 앨범에서도 그 기조를 유지한다. 한치의 거짓 없이(실은 과장이 없지 않은) 게토의 현실을 설파하려 하는 빈스의 비정한 서사는, 비교적 우화적이고 때론 희망적이기까지 한 켄드릭 라마의 방식과 많은 면에서 대척점에 서있는 거처럼 보인다.


사실 피폐해진 흑인 타운에서 태어나 비정한 현실에서 꿈 없이 자라면서 힙합과 랩에 대한 열정을 키워 끝끝내 각각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 명의 랩스타로 성공하는 이야기는 힙합 장르 내에 가장 흔한 서사이고 클리셰 중의 하나이다. 20년 전 힙합이란 장르를 대표할 앨범을 내놓았던 나스, 역사상 최고의 프로듀서의 위치가 기정사실화된 칸예 웨스트, 2000년대 중반 힙합의 침체기에 신선함을 공급해준 루페 피아스코, 이 시대 힙합의 아이콘이 된 켄드릭 라마 모두 이 같은 서사를 차용했고 다소 진부하긴 하나 자신들만의 강점을 내세워 결국 힙합이라는 격자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기는데 성공했다. 이들이 크게 성공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딛고 선 자리와 바라보는 풍광은 변모했다. 한때, 게토와 흑인 사회의 현실을 가감 없이 얘기하던 이들은 이제 흑인 사회의 선구자로서 또 보컬 리더로서 대중을 이끌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저열해서 통쾌하기까지 하던 풍자와 비판은 서야 할 곳을 잃었다. 이제 이들의 행보는 더 이상 이런 주제들에 관심이 없어 보일 때도 있다. 게토를 그저 성공의 소재로 삼은 것은 누구인가? 발 디딜 곳 없는 단상 위에 과연 그들을 위한 자리가 존재하기는 한 것인가? 하는 의문들은 롱비치 출신의 한 흑인 청년 의 날카로운 일갈 앞에 그 자취를 감춰버렸다. 데뷔로부터 반십년이 지난 빈스 스테이플스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삐뚤어져 있고, 여전히 거리의 비정함이 낳은 괴물 같은 겉모습을 한 채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견지한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 속에 담긴 것이 게토의 현실을 담은 리얼리즘인지, 20대 흑인 청년의 세상을 바라보는 냉기 서린 관점인지, 아니면 바다 건너 우리에겐 이해하기 힘든 그들만의 정서인지는 모를 일이다. 당신이 비정한 거리가 낳은 빈스 스테이플스의 삐뚤어진 시선과 눈을 맞추기 전까지는.



신고
댓글 2

댓글 달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스웩의 전당' 게시판 운영 중지 공지사항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 2018.05.22
2890 [인증/후기] 저도 늦게나마 Yams Day 후기 - LONG LIVE A$AP YAMS4 Pablo 2017.01.26
2889 [가사] Rapsody - Take it Slow2 title: Big Pun힣heeh 2017.01.26
2888 [인증/후기] 늦은 얌스데이 후기~~6 title: XXXTENTACION라라라라라 2017.01.25
2887 [인증/후기] Oddisee 앨범 인증.8 title: JAY ZJ_dilla_DET 2017.01.25
2886 [인증/후기] (Jazz) 윤석철 트리오4 title: Playboi Carti젖은수건둬 2017.01.25
2885 [가사] Rapsody - Mad5 title: Big Pun힣heeh 2017.01.25
2884 [가사] Rapsody - #Goals4 title: Big Pun힣heeh 2017.01.24
2883 [음악] 살면서 들어봐야 할 알앤비 앨범 List <1>16 TomBoy 2017.01.23
2882 [가사] Rapsody - Tina Turner4 title: Big Pun힣heeh 2017.01.23
2881 [인증/후기] 최근에 지른 바이닐들8 title: MF DOOMhowhigh 2017.01.22
2880 [가사] Rapsody - Gonna miss you (feat. Raphael Saadiq)2 title: Big Pun힣heeh 2017.01.22
[리뷰] Vince Staples - Summertime '06를 듣고2 TomBoy 2017.01.22
2878 [인증/후기] D.I.T.C. 앨범 인증요12 title: JAY ZJ_dilla_DET 2017.01.21
2877 [가사] Rapsody - Crown2 title: Big Pun힣heeh 2017.01.21
2876 [인증/후기] dvsn앨범과 직접만든 폰케이스 후기입니다!5 title: Frank Ocean - Blondehekasian 2017.01.20
2875 [가사] Migos - T-Shirt2 title: EminemClaudio Marchisio 2017.01.20
2874 [인증/후기] 앨범 인증합니다16 title: Mac MillerDi-Recovery 2017.01.20
2873 [음악] 동유럽 최고의 랩 테크니션들을 알아봅시다38 침략자 2017.01.20
2872 [그림/아트웍] 2017/01 HIPHOP LE 잡지 표지12 MILF 2017.01.19
2871 [인증/후기] 음반 한장 인증해봅니다.12 title: JAY ZJ_dilla_DET 2017.01.19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