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 힙합 신화 Chapter 3 "New Bloodz for Old Skool"
"In New York, they've already been through all the gang stuff, all the bragging about cars, girls, and gold. Now, there's a cutural awareness that's happening in the East, and it's stretching across the country. It's just taking a longer time for L.A. to become aware."
-Afrika Bambaataa
“뉴욕은 이미, 갱도 한번 휩쓸고 지나갔고, 자동차나, 여자들이나, 돈 따위를 으스대는 짓거리들도 다 지나갔어. 이젠 새로운 문화적 자각이 동부에서 시작돼서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지. 이젠 천천히 L.A.가 정신차리기를 기다려 보자구."
- 아프리카 밤바타
☞ DJ Kool Herc에서 비롯된 힙합 뮤직은 의욕적이고 뜨거운 후발 주자로 인해 더욱 그 꽃을 화려하게 피게 된다. 이번 장에서는 Kool Herc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은 후배들의 이야기를 다뤄보기로 한다. Afrika Bambaataa (And the Soulsonic Force)와 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가 그들이다. 7-80년대 힙합의 태동기에 묵직하고 패기있는 출사표를 던지고 초기 힙합 음악의 사운드적인 기초를 쌓는데 큰 기여를 한 "New Bloodz for Old Skool",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즐겨보자.
[Afrika Bambaataa - <Planet Rock>]
언제나 이 "본토 힙합 신화"에 큰 은혜를 베풀고 있는, 이 "본토 힙합 신화"가 가능하게 한 위대한 자료 "Hot Music 1997. 10월호 「랩 대해부 What is Rap?」"에서 소중한 기록을 빌려온다.
「 "초기 동부 랩을 정착시킨 인물
1960년 생인 그는 그랜드 마스터 플래쉬와 더불어 초창기 동부 랩을 정착시킨 인물이다. 1977-1985년까지, DJ와 MC 그리고 심지어 브레이크댄서로서도 명성을 날린 그는 1986년 그의 첫 앨범인 [Planet Rock-The Album]을 내놓게 된다. 물론 그 이전인 1983년 그가 만든 그룹 줄루 네이션(Zulu Nation)의 앨범도 있다. 그는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보컬인 존 라이든(John Lydon)이나 흑인음악의 대부인 제임스 브라운과도 함께 작업하였으며, 새로운 신세대 DJ들이 나오기 시작한 80년대 후반까지 힙합계의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특히 그는 70년대 후반의 흑인 갱이나 불량 청소년들을 음악이나 춤으로 빠져들게 함으로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많은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
- Hot Music 1997. 10월호 「랩 대해부 What is Rap?」중 발췌 인용
[Afrika Bambaataa - <Freestyle> : 나이키 광고 관련하여 작업한 것으로 기억하며, "무서운 영화 2"에도 패러디되었다]
Break-beat deejaying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서 Afrika Bambaataa는 특히 Electro Funk Sound의 아버지로서도 존경받는다. 초창기의 힙합 사운드의 '기계적', '기능적' 형태를 매만졌던 선구자들이었는데 Kool Herc에 이어 후발주자에 이르러서는 좀 더 정교한 형태로 발전한다. 이는 마치 팝음악계의 전설적인 존재인 "The Beatles"가 스튜디오 레코딩에만 집중했던 시절 녹음기술이나 여타 음향기술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것에 비견할만 하다. 세상은 어찌 보면 이렇게 신념을 가지고 몰입하는 천재들에 의해 발전하는 것 같다. 이러한 천재들은 마음가짐도 올곧았던 듯. Afrika Bambaataa의 가장 큰 업적은 '인종차별의 가장 큰 피해자'인 Afro-American의 젊은 세대가 마약과 갱 조직의 유혹에서 벗어나 춤과 음악에 끌리게 했다는 점이다. 음악이 인간을 구원한다면 이러한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Afrika Bambaataa의 성장기는 역시나 뛰어난 뮤지션의 일반적인 그것과 같았다. 흑인 자유 운동 활동가였던 어머니와 삼촌의 영향 하에서 그의 어머니가 제공한 풍부한 음반 컬렉션이 그의 성장을 도와주었다. 그는 자신의 동네에서 지배적인 힘을 갖는 무리 "The Savage Seven"의 지도자가 되는데 그 동네의 '법' 자체가 되는 무리이면서 지역 건강 프로그램을 돕기도 하는 등 특이한 성격을 가진 집단이었던 것 같다. 그의 지도자적 역량이 참 뛰어났던 듯 싶고 그 무리(The Savage Seven)은 상당한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후에 규모가 커진 집단은 The Black Spades로 이름을 바꾼다.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정적으로 바뀐 일이 생기는데, 수필 대회에서 입상을 하였고 그 결과로 아프리카에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그는 영화 "Zulu" 또한 보게 되는데 Zulu족의 단결과 공동체 의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Zulu족의 추장이었던 Bhambatha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Stage Name인 Afrika Bambaataa Aasim을 만든다. 자신이 속해있던 모든 조직도 정리하여 흑인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한다. 그의 선배인 DJ Kool Herc와 Kool DJ Dee의 영향으로 파티를 주관하는 DJ로서의 커리어도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그의 명성은 더한층 높아진다. 이후의 그의 힙합 음악 역사상의 활약은 쓸 공간이 부족하여 생략한다. Afrika Bambaataa and Soulsonic Force의 그룹으로서 힙합 음악의 기술적 진보, 이른바 하이테크적인 사운드를 만드는데 앞장서고, Afrika Bambaataa와 그를 돕는 사람들의 가장 큰 업적인 The Zulu Nation을 창단하기에 이른다. The Zulu Nation은 90년대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Wu-Tang Clan", 현재의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Odd Future (Wolf Gang Kill Them All, OFWGKTA)를 연상하면 될 1973년 11월 12일 탄생한 '최초의 힙합 집단, 무리'였다고 전해진다. 많은 수의 B-Boy와 MC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간지가 나는' 집단이었다는 기록. Bambaataa의 Universal Zulu Nation에 대한 구상은 소외된 흑인 청소년, 후세대의 Afro-American이 좀 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시각'을 갖도록 돕는 집단, 또는 그러한 역량을 가진 집단을 길러내는 것이었다. 역시 큰 그릇은 생각을 하는 것도 규모가 다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 음악을 통해 폭력과 마약의 위협에서 후세대의 흑인 공동체를 구해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세계에 힙합 문화를 확산하게 한 큰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저 Respect. 쓰다 보니 더욱 Respect.
[Can't Nobody Hold Me Down - Puff Daddy And Mase]
이 곡을 기억하는가? 한 때는 글을 쓰는 본인도 참 '좋아했던' 이제는 그냥 Diddy인 아저씨의 작품이다. 당시의 빌보드 차트를 뒤흔들었었다. 이 때는 Ma$e도 날라다녔는데 요즘은 뭐 하나?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이 곡의 원곡이 바로 이 곡.
[Grandmaster Flash - <The Message>]
가끔 7-80년대 힙합 트랙을 들으면서 놀라는데 당시의 패션이나 분위기는 '당시에는 첨단인데' 지금 사람들이 보기에는 - 본인은 그런데 이런 시각이 좀 우습다. 지금 유행하는 것을 후세대가 보면 안 비웃을 것 같나? Respect을 좀 갖자. 언제나 온고이지신, 옛것을 Respect하면서 오늘의 진보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 촌스럽고 개그의 소재가 되겠지만, 그 사운드만은 절대 촌스럽거나 고리타분하지가 않다. The Sugarhill Gang의 <Rapper's Delight>이 그렇고 이 <The Message>가 그렇다.
King Grandmaster Flash로 많이 알려진 Joseph Saddler는 1958년 1월 1일 Barbados의 Bridgetown에서 태어난다. 힙합뮤지션이자 DJ로, 특히 Hip-Hop DJing, cutting, mixing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매우 잘 알려졌다. 그는 Samuel Gompers High School에 입학하는데 그는 그곳에서 전자 장비를 어떻게 수리하고 만지는지 배운다. 역시나 그의 부모님이 그의 음악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그의 부모님은 Barbados 출생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Caribbean과 미국 흑인 음악 음반의 열성적인 수집가였다. 아이 때부터 그는 아버지의 수집 음반에 매료되었다. Saddler, Grandmaster Flash의 DJing에 대한 이른 관심은 그의 아버지의 영향도 컸으나 그의 어머니의 '그가 전자장비에 관련된 공부를 하기 바라는 마음'의 영향도 컸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초창기 New York DJ scene에 참여하게 되고 여러 파티에 참석하며 DJing을 한다. 그리고 선구자적인 전문가로서 명성을 날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전 복싱 페더급 세계 챔피언 Sandy Saddler의 조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DJing skill이 잽을 날리듯 날카로운 것일까?
그의 DJ로서의 활약은 수많은 실험적인 DJing skill의 연습에서 비롯된다. 10대 때부터 그의 침실에서 그는 DJ 장비를 가지고 여러가지 실험적인 연구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획기적인 3가지의 DJing Skill을 발전시키고 마스터한다. 이 스킬들은 DJing 테크닉의 정석으로 오늘날에도 널리 알려져있다. Backspin Technique ("Quick-Mix Theory"), Punch Phrasing ("Clock Theory"), Scratching이 그것인데 참 재미있으니 이 글을 읽은 후 한 번 정보를 찾아보도록.
그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력있는 랩퍼들과 함께 슈퍼 그룹 "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1978년 New York City의 South Bronx에서 결성된 이 그룹은 One DJ (Grandmaster Flash) 그리고 5명의 랩퍼 Melle Mel, Kidd Creole, Cowboy, Mr. Ness/Scorpio, Rahiem로 구성된 그룹이다. 이 그룹의 턴테이블리즘의 활용, break-beat deejaying은 초창기 힙합음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 초반에 이들은 성공한 싱글 "Freedom"으로 명성을 얻는다. 그리고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 싱글 "The Message"가 이들을 힙합씬에서 두드러진 그룹으로 알려지게 한다. 후에 멤버간의 갈등도 있었지만 다시 재결합하여 뚜렷한 음악적 성과를 남겼다. 결과적으로 이 그룹은 4년간의 활동 속에서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다. 2007년도에 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는 명예로운 최초의 힙합/랩 아티스트로서 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올라간다.
이번 챕터는 특히나 힘들었다. 나 개인의 '글을 쓰는데 있어서의 막힘'이 오기도 했고 도대체가 이 두 팀은 자료가 방대하여 요지만 전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다 전달한 듯 하여 다행이다. 좀 더 궁금한 점은 글을 쓴 본인이 키워드나 개략적인 정보를 던졌으니 꼭 찾아보기를 바란다. 이 New Bloodz for Old Skool, "Afrika Bambaataa"와 "Grandmaster Flash"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두 힙합 음악의 대가가 닮은 듯 다르다는 점이다. 힙합 음악 초창기의 전문가라는 점과 어렸을 적 음악을 매우 좋아하고 그에 걸맞는 음반 컬렉션을 가진 부모를 두었다는 점은 매우 닮았지만 한 명(Afrika Bambaataa)는 운동가나 조직의 리더로서의 역량이 강했고 한 명(Grandmaster Flash)는 기술적 테크니션의 역량이 강했다는 점이다. 이 둘의 특성이 섞여서 오늘날의 '힙합 음악'이 단조롭지 않고 거대한 '즐거움의 음악'이 되지 않았나 싶다. 두 대가에게 무한한 Respect의 마음을 올리며 이만 Chapter 3을 마감할까 한다.
사랑과 평화.
2011. 4. 14. Mr. TExt
- Chapter 3 끝, To Be Continued -
[오늘의 힙합 역사 한 토막]
1970 힙합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더 래스트 포잇 레코드사(The Last Poets Record)가 자사의 이름으로 LP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이 앨범에는 재즈 드러밍과 함께 여러 연주음악들과 사람의 목소리들이 믹싱되어 있다.
<다음과 같은 자료와 기사에서 인용과 발췌가 있었습니다>
▣ 주요 인용 Source
1. Hot Music 1997. 10월호 「랩 대해부 What is Rap?」: 오늘의 힙합 역사 한 토막 및 사실 관계
확인, 발췌, 인용.
2. 주요 역사적 사실 인용 : http://en.wikipedia.org/wiki/Afrika_Bambaataa
http://en.wikipedia.org/wiki/Grandmaster_Flash
▣ 그 외 Source
Youtube, 다수의 블로그 및 검색. 자료를 공유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모든 정보의 저작권은 작성자에게 있습니다.
이번 글로 새로운 사람들을 또 알게 되는군요. 동부에 좋은 랩퍼들이 많은 이유가 다 선배들이 터전을 잘 만들어주어서 인가보내요. Run DMC 도 그렇고 Africa 님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군요. 퍼프대디 음악들도 다 그바탕으로 이루어졌겠죠.
퍼프대디 요번 앨범때문에 저도 예전생각이 나더군요. 97-98시기 대단했었는데말이죠. 그래도 요즘도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고 있어서 반갑더군요. 음악은 깊이 들어가면 정말 깊어요.
담번글은 좀 가벼운 주제도 괜찮을듯 하내요. 오래전 가수들을 돌아보는 글은 힘이 많이 소모되는거 같아요.
이거 하다 보니 그냥 하늘이 저에게 내린 '즐거우면서 괴로운 벌'인 듯 싶어 그냥 되는 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글은 아마 bluc님의 연재물과 연계된 [삼거리 엘이 극장] "Belly(1998)"이 될 듯 싶습니다.
인생이 힘든 것, 글 쓰는 것이 힘든 것은 상수(constant, 常數), 즉 항상 그런 것이니 그러려니 해야죠.
뭐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한다"는 말도 있죠. 그리고 인생의 모든 진리가 담겨있는 - 단행본이 42권 분량이면 역시 인생이 담기나 봅니다-_-; - 토리야마 아키라님의 후덜덜한 명작 "드래곤볼" 중 슬프지만 멋진 우리의 주인공 "베지터"의 명대사를 되새겨 봅니다.
"사이어인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 더욱 강해진다"
사랑과 평화.
p.s. 태클과 지적, 공격적인 의도 절대 아닙니다^^ "Afrika Bambaataa"가 뮤지션으로서 일개인이고,
그가 "서태지와 아이들-_-;" 같이 함께 한 팀이 "And the Soulsonic Force", 또 그가 이끈 집단이 "The Zulu Nation"이죠. 이 [본토 힙합 신화]를 쓰기 시작한 직업병(?) 비슷한 정정이니-_-; 용서해 주십시요.
외계소년님과의 교감은 언제나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계속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피스.
텍스트님의 본토힙합신화에 댓글이 없어서 안타까웠내요. 깊이 있는 내용이라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나? 하는 느낌이 들어 몇글자 남겨 봤습니다. 저도 교감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텍스트님의 관심에 비하면 별볼일 없죠. 옆에서 이런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밌고 흐뭇해 보여서 응원한답니다. 미워할수 없는 캐릭터인 베지터의 시크함이 텍스트님 글에서 뭍어나오는거 같군요. ㅎㅎ
점점 '쓰는 즐거움'에서 '써내야 하는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는 [본토 힙합 신화]입니다만 언젠가는 저한테도 그렇고 이런 정보가 필요한 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뭐 별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쓰고 싶으니까, 쓸 수 있으니까 쓰는 거죠. 자신이 하는 행위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뭐-_-; 베지터 같이 실속있게 멋있는 캐릭터는 못 되고요. 야지로베 정도나 되려나요? 간지가 안 나는 캐릭터지만 거대 원숭이가 된 베지터의 꼬리를 잘라서 손오공의 사망을 막았으니 할 때는 하는 캐릭터?
그나저나 드래곤볼의 캐릭터는 아무리 엑스트라 캐릭터라고 해도 너무 강해서 자기 자신을 가져다 붙이면 건방져지는 것 같습니다. 야지로베도 수행코스(?)였던 카린탑에 손오공 업고 올라감, 한 알로 10일 버틴다는 선두를 왕창 먹고도 배터져서 죽지 않음...뭐 이런 괴물 같은 존재.
아무튼 굳이 비유한다면 저는 야지로베 정도나 되지 않을까요...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진지하게 할 얘기는 아니네요-_-;
[본토 힙합 신화]의 덧글을 드래곤볼 얘기로 도배를 해버렸습니다. 약한 반성 중.
어쨌든 드래곤볼은 인생!!! 진리!!! 전설!!!
사랑과 평화.
다시한번 모든 선구자님들에게 감사..
아프리카밤바타나 그랜드마스터플래쉬를 지나가던 글에 잠깐 봤던 기억이있는데
여기서 제대로 알고가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나중에 꼭 성공해서 저분들 만나고싶네요ㅋㅋㅋ 감사하다고 하고싶어서요. 그냥 꿈으로 남을까요ㅋㅋ
다음 편이 기대 됩니다! 아따 재밌다 ~
힙합LE는 지금 역사를 쓰고있는겁니다!!!!!!!!!!!!!!! 보통 요즘 세대에 랩음악을 들을때 있어서
아프리카 밤바타나 킹 그랜드 마스터 플레시 같은 사람을 잘 모르고 넘어갈수있는데
힙합의 뿌리에대해 다시 한번 알게 됍니다. 감사합니다.
학창시절 때 춤이좋아서 스쿨도다녀서 스승님한테 얻은 곡들이였네요
그것도 지금의 힙합이 있게한 음악이라니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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