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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Busdriver - Perfect Hair

Pepnorth2014.10.10 19:47추천수 3댓글 5

버스기사 커버.jpg

Busdriver - Perfect Hair


01. Retirement Ode

02. Bliss Point

03. Ego Death (Feat. Aesop Rock & Danny Brown)

04. Upsweep

05. When the Tooth-lined Horizon Blinks (Feat. Open Mike Eagle)

06. Motion Lines

07. Eat Rich

08. King Cookie Faced (for Her)

09. Can’t You Tell I'm a Sociopath (Feat. VerBS)

10. Colonize the Moon (Feat. Pegasus Warning)


늘 한결 같은 음악 장르는 없다. 시간에 따라 세분되거나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장르로 재탄생하는 게 음악이다. 힙합도 마찬가지였다. 둔탁한 드럼 소리, 특정 구간의 반복, 비속어의 나열로 대표되던 힙합은 락, 훵크, 재즈, 소울 등과 만나며 새로운 소리를 담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얼터너티브 힙합(Alternative Hiphop)이라는 커다란 줄기를 형성했다. 얼터너티브 힙합의 갈래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에서도 전자음악 사운드와의 결합을 통해 탄생한 힙합은 주목할만하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버스드라이버(Busdriver)의 10번째 정규 앨범 [Perfect Hair]는 전자음악과의 접목을 통해 탄생한 또 하나의 힙합 앨범이다.


버스드라이버는 국내에 다소 낯선 아티스트지만, 하루 이틀 활동한 래퍼는 아니다. 13살 때 처음 랩을 시작해 2001년 첫 정규 솔로 데뷔 음반을 발표한 뒤, 정규 앨범만 9장을 더 발표했고 각종 컴필레이션 앨범에도 참여하는 등 나름대로 잔뼈가 굵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 발표한 앨범에서 힙합을 바탕으로 재즈, 락 등과의 결합을 시도했으며, 때로는 컨트리를 연상케 하는 기타 사운드도 앨범에 첨가하는 등 늘 변화를 추구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운드를 곁들이던 버스드라이버가 본격적으로 전자음악의 요소를 가미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후반부터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 발매 전까지 전자음악 사운드의 결합을 통해 보여준 결과물의 완성도는 늘 어딘가 부족했다. 앨범 전반적으로 통일된 분위기를 가져가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앨범은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했고 전체적인 완급 조절도 별다를 게 없었다. 개개의 곡에서 느낄 수 있는 감상의 포인트도 흐릿했다. 새로운 사운드를 담아내는데도 별다른 평가를 듣지 못한 이유가 다른 데에 있던 게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앨범은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수록곡은 고작 10곡에 불과하지만, 전보다 프로덕션이 균형 잡혀 있으며 트랙의 질이 균일하기 때문이다. 



♬ Busdriver (Feat. Aesop Rock & Danny Brown)


앨범의 서막을 여는 “Retirement Ode”는 은퇴라는 단어를 넣어 비장함을 주지만, 사실 앨범의 이력서 같은 역할을 하는 트랙이다. 이어지는 세 번째 트랙 “Ego Depth”에서 버스드라이버는 ‘취침은 죽음의 쌍둥이’라며 쉬지 않고 일하는 자기의 정체성(Ego)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다. 곡의 비트는 디스토피아(Dystopia)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렬하게 몰아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늘 제 몫을 다 하는 이솝 락(Aesop Rock), 대니 브라운(Danny Brown)의 참여는 곡을 더욱 묵직하게 만든다. 이처럼 무거운 곡을 전반부에 배치하며 앨범의 무게중심을 잡은 뒤 “Unsweep”, “When the Tooth-lined Horizon Blinks” 등 비교적 가벼운 곡을 지나며 앨범의 분위기는 살짝 고조된다. 이 작업을 한 번 더 반복하며 앨범에 굴곡을 부여하는데, 이때 구성된 이야기는 마지막 트랙 “Colonize The Moon”에서 정리된다. 여기서 버스드라이버는 제목 그대로 왜 달로 가고 싶어하는지 하나하나 번호를 매기며 앨범의 끝에 내린 결론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어떻게 보면 산이 아닌 달로 가는 결말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버스드라이버는 긴 시간 동안 진지한 목소리로 랩을 이어간다. “Colonize The Moon”의 플레잉 타임이 무려 10분에 이른다는 사실은 이와 무관한 게 아니다. 이처럼 앨범은 좋은 호흡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를 더욱 뚜렷하게 가꾸는 건 바로 버스드라이버의 노련함이다.


앨범을 하나의 작품으로 볼 때, 수록곡의 구성은 전체적인 흐름이나 분위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크게 잡은 틀에 비해 곡이 적으면 작품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반대로 틀은 협소한데 곡이 지나치게 많으면 오히려 쉽게 중심을 잃는다. 아티스트는 작품의 주체로 주제와 이야기와 수록곡의 관계를 잘 엮어낼 의무가 있다. 그래서 음악적 재능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아티스트로서 앨범의 호흡을 다잡는 능력이다. 이 부분에서 버스드라이버의 경험은 빛을 발한다. 물론 수록곡은 적고, 모든 곡이 같은 주제를 노래하는 것도 아니다. 깊이 파는 경우도 별로 없다. 하지만 버스드라이버가 구성한 분위기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하드코어와 가벼운 전자음악을 오가지만, 그리 크지 않은 편차는 오히려 감상의 포인트가 된다. 버스드라이버의 노련함은 랩 스타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단단히 중심 잡힌 목소리 톤을 바탕으로 때로는 노래하듯 음의 높낮이를 둔 스타일을 보여주다가 텅트위스팅을 구사하고, 빠르게 단어를 내뱉다가 능숙한 솜씨로 훅을 부른다. 이는 새로이 등장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청자에게 익숙한 스타일이다. 듣는 이에 따라 촌스럽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버스드라이버는 이 스타일을 능숙하게 하나로 묶어 자기식대로 체화했다. 이는 아티스트의 능력이다. 



새를 표현하는 버스기사.jpg

버스드라이버의 [Perfect Hair]는 돌연변이 같은 앨범이다. 물론 근래 힙합과 타 장르의 경계가 많이 희미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힙합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고정관념처럼 정해져 있다. 버스드라이버는 이 기준에서 한참을 돌아간 아티스트다. 힙합 앨범이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항상 힙합과 다른 장르를 뒤섞은듯한 음악을 선보인 아티스트에게 그런 비판은 되려 찬사가 아닐까?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힙합의 뿌리이기에 더욱 깊은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늘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힙합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이 최전선의 경계에서 늘 새로운 소리를 추구한 아티스트 버스드라이버. 10년이 넘게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버스드라이버에게 이번 앨범은 그가 지나쳤고, 또 앞으로 지나쳐야 할 수 많은 버스 정류장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글 | Pepn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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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10.10 22:49
    버스기사 한번 들어봐야겠네요~
  • 10.11 10:38
    옆집잔치에 이어서 신선한 예명이네요ㅎㅎ
  • 10.11 15:54
    좋은 리뷰네요 잘들어볼게요
  • 10.11 19:29
    커버 작살나네요
  • 10.12 17:44
    랩을 참 신선하게 하는 사람이죠 버스드라이버 랩 듣고 지루했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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