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면 랩으로 하라는 건 참 한심해요(의식의 흐름)

무작정 래퍼면 랩으로 하라니

하고싶은 말을 하고싶은 방식으로 하는 게 (태도로써의) 힙합이에요. 곡으로 하고싶으면 곡으로 하고 인터뷰든 공연이든 사회운동이든 인스타 라방이든 어떤 방식이든지 하고싶으면 남 눈치 여론 눈치 안 보고 그냥 하고싶은대로 하는거에요. ㅈ목하는 술자리에서 열등감에 남 졸라 씹고 앞에서는 친한척을 한다던가 명분도 없는 스닉디스 찍찍 갈기고 모른척하는게 구린거죠.

인스타 스토리나 라이브로 의견 개진하는게 욕을 먹을 만한 경우는 해당 래퍼가 '작업은 뒤지게 안 하거나', '작업해도 음악이 ㅈ구리던가' 하는 경우에요. 그런데 이센스? 한대음 수상자에 불과 작년에 저금통을 냈고 커리어가 좋다못해 그 개유치한 '국힙원탑' 얘기 나오는 사람인데 스토리 그만하고 래퍼면 랩이나 하라고 한다?

인스타 스토리 인스타 라이브가 짜치는 소통 수단이지만 작업물이 좋으면 OK인게 아닙니다. 애초에 인스타 쓰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닌데 작업물이 구리거나 없다시피 하니 인스타 쓰는 게 추해 보이는 겁니다. 그게 아니면 인스타에 작성하는 내용이 맘에 안 드는 것을 인스타 사용 자체가 추하다고 착각하는 거죠. 그런 맥락이 없이 남발되는 '래퍼면 랩으로 말해야 한다' 같은 주장이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씨잼 때문일까요? '불만만 많은 래퍼들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는 랩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랩을 잘하는데(작업물이 좋은데) SNS활동 자체가 왜 문제가 되나요? SNS활동 자체를 싫어하는 건 퍼거슨이지 힙합이랑 상관이 없어요

대중들은 알지도 못하고 지껄이는 거라지만 이젠 자칭 힙합팬이란 사람들이 그런 기본적인 것도 구분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 같아요.

이센스가 인스타 스토리 난사하는 것 자체는 상관없어요. 비판하고 싶으면 인스타 스토리 내용에 대해서 하면 됩니다

분장개그는 창의력 없다 구리다 같은 것 말이죠, 의도는 알겠어요 매너리즘에 빠진듯한 개그들이 있죠

하지만 개그의 목적은 창의력 증진이 아니라 사람들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고, 분장개그는 웃음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가장 원초적인 개그인데 창의력 결여라는 이유만으로 분장개그 자체를 까면서 마치 개그 유형에 우열이라도 있는것처럼 말하는 건 편견과 몰이해라고 생각해요

당장 힙합에 대입했을 때 소위 천박하고 본능에 충실한 곡보다 현학적 낱말과 유려한 비유를 사용하는 곡이 결코 더 우월한게 아니라 그냥 '듣기 좋은 곡이 좋은 곡' 인 것처럼, 개그도 마찬가지인데도 말이에요

물론 이 역시 이센스의 의도된 미러링일 수 있지만 딱 이 부분만큼은 불필요한 진심이 튀어나온 걸로 보였네요

맨스티어는 좀 더 영리하게 '코미디'를 해서 아니야 다 풍자야 라고 주장할 수 있는 포지션에 있기에 얄미운 거구요.

하지만 몇 실언이 포함되어 있었더라도 래퍼 개인의 추한 모습들과 흑역사들이 힙합의 전부인 듯이 말하고

다른 분야에도 충분히 산재해 있는 헛발질들이 힙합만의 고유한 문제인 양 깎아내리지 말라는 이센스의 메시지는 합리적이에요

근데 뷰티풀너드는 다른것도 많이 깠더라구요, 물론 이렇게 모두까기하다가 안먹히면 다른거하고 안먹히면 다른거하고 그러다가 까는 문화에 기생하는 행태가 코미디니까 전혀 문제 없다 생각하는 건 사회성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이센스가 인스타에 하고싶은 말 해줘서 전반적으로 속 시원했습니다 다 조용히 입 닥치고 있는데 말이에요

혹여 맨스티어가 힙합 전체를 까내릴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맨스티어에 열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소비하고 있어요

유튜브든 커뮤든 국힙 관련된 데 아무데나 가서 맨스티어가 국힙 정리한다 국힙 개병신들이다라는 얘기로 도배를 하고 다니니 말이죠

쇼미나 각종 사건사고들로 스스로 추해진 건 국힙이 맞지만 국힙에 대한 조롱 컨텐츠를 양산하고 그 화살이 무분별하게 퍼지는 걸 방관하고 있는 건 맨스티어가 맞기에 pH-1이나 이센스가 부당하다고 말할 명분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pH-1은 디스곡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굉장히 젠틀한 방식이었고 이센스는 인스타 스토리였죠

왜 '제대로 된' 디스곡을 안 낼까요?

그야 제대로 된 디스전이 성립이 안 되기 때문인데요

그 이유는 맨스티어의 코미디언과 래퍼 사이 절묘한 포지션 때문입니다

래퍼 대 래퍼의 디스전이면 결국 랩을 잘 하는 쪽이 이깁니다

범죄의 영역이 아닌 이상 아무리 명분이 차이나고 업보가 심하게 차이나더라도 랩에서 실력 차이가 나면 그 간극이 좁혀지죠

디스전에 그런 암묵적 룰이 있어도 맨스티어는 코미디언이기 때문에 랩을 못해도 풍자만 잘 하면 무지성으로 지지받을 수가 있어요

라임, 플로우, 발성, 톤, 비트 같은 기본기가 래퍼들보다 떨어져도 괜찮아요 웃기면 되니까요

게다가 맨스티어는 아예 대놓고 못하지도 않습니다. 애매한 실력이죠. 단순하게라도 라임을 맞추고 캐치한 멜로디를 만들 줄 압니다

그러니 그냥 상대방과 국힙 흑역사 웃기게 읊어주고 오토튠으로 멜로디 적당히 조져주면 맨스티어 추종자들은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웃김이 랩스킬을 보충하는 거죠. 그리고 맨스티어에게는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할 만한 퀄리티를 만들 능력 정도는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이러니 디스전이 성립이 됩니까? 현 상황은 디스전이 벌어진다고 해도 랩으로 승패가 가려지는 상황이 아닐뿐더러 만약 랩만 따질 수 있다고 해도 래퍼가 맨스티어보다 랩을 더 잘하는 건 '당연한' 결과가 될 뿐이에요. 디스전이 제대로 될 수가 없어요

그래도 곡 내고 싶으면 그냥 내면 되는거 아니냐구요? 맞아요. 그래서 pH-1은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전형적인 디스를 안 하고 최대한 젠틀한 곡을 냈죠. 반대로 곡 안 내고 싶어도 그냥 그렇게 해도 됩니다.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아요. 그래서 이센스는 곡 대신 다른 방식으로 자기 불만을 표현한 것 뿐이구요. 입 다물고 있는게 구린 거죠

그렇다고 코미디언은 랩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맨스티어로 곡 많이 내도 됩니다. 애초에 래퍼만 힙합인 것도 아니에요. 누구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힙합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맨스티어는 힙합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며 당당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게 힙합이니까요. 풍자하기 위해 만든 캐릭터의 기믹을 써서 곡을 만들고 그걸로 행사를 도는 건 힙합이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이게 다 풍자라면 본인들이 멋 없다고 생각하는 걸 만들어내면서 그 흉내를 내고 있는 거잖아요? 맨스티어는 자극적으로 희화화되려고 할 뿐 자신들이 생각하는 멋이 뭔지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맨스티어는 힙합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코미디 같아요. 근데 힙합이 아니라는 건 말 그대로 힙합이 아니라는 거지 힙합 아니고 코미디니까 가치가 없다거나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코미디로서 가치가 있으면 되고, 그러면 충분하죠. 그러나 뷰티풀너드의 언더그라운드 컨텐츠가 과연 효과적인 풍자인지 그저 혐오의 재생산인지는 아직 결론이 나진 않은 것 같네요. 이센스는 후자라고 생각하는 거구요.

'맨스티어'는 래퍼들이 디스하기엔 참 애매합니다. '니들이 까는 맨스티어 그거 다 니들 풍자인데?'라고 할 수 있도록 영리하게 포지션이 잡혀 있어요. 애초에 기믹이라는 허상이기도 하구요. 비프는 생길 수 있어도 디스곡을 계속 주고받는 건 상상이 잘 안 가요. 디스가 먹히려면 '뷰티풀너드' 본체를 디스해야 할 테고 뷰너의 랩이 아닌 행실을 지적해야 할 텐데 이번에 pH-1이 뷰티풀너드를 호명했는데도 대답은 케이셉라마로 돌아왔죠. 영리한 회피에요

그런데 현 상황에서 디스 상대가 뷰티풀너드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도파민과 혐오에 찌든 대중들

그리고 지랄나버린 다른 래퍼들도 있습니다.

국힙 인식이 이모양 이 꼴될때까지

약쟁이소굴 정신병자소굴 음주운전자모임 소리들을때 플레이어들 뭐했어요?

자기 일 열심히 안했다는 소리 아니에요. 문화를 위해서 뭘 했어요? 병크나 안 터뜨리면 다행이고

결국 뜨거운 건 랩이 아니라 쇼미였어요 이제 거품 다 꺼졌구요

대부분은 좋게 말하면 먹고 살기 바빴거나, 나쁘게 말하면 그저 단물 빨기 바빴던거죠

버벌진트처럼 노골적으로 지진아 사냥할 용기도 없고

더콰이엇처럼 변절자 소리들으면서 일리네어 시작할 용기도 없고

스윙스처럼 컨트롤 스타트 끊을 용기도 없고

요즘 래퍼들한테는 욕 들어먹을 용기가 없어요

지금 스타가 된, 옛날 래퍼들한테 있었던 내가 다 바꾼다 뒤집어엎겠다라는 사명감 같은 게 없어요

여자 마약 돈 자랑 모두 진부하게 여겨진지 한참 됐는데 완전히 새로운 거 해보려는 흐름도 딱히 없어요

스카이민혁 해방이 왜 하입이 많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케이셉라마의 '니 주변을 봐'라는 가사를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어요

주변이 다 병신 이미지인 상황은 역으로 내가 돋보일 수 있는 기회거든요

(케이셉라마의 pH-1에 대한 맞디스 내용 자체는 지극히 힙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줄곧 종사자들이 존중받지 못한다 느낄 만한 코미디를 하다가 딱 맞디스 때만 힙합의 형태를 취하는 게 참 얄미워요.)

시발 여튼 그런 의미에서 잘 좀 됐으면 좋겠구요 래퍼분들 응원합니다. 특히 이미 멋진 거 하고있는데 관심이 적다 느끼시는 분들 더 응원합니다.

멋있는 거 많이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