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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겪어 봤을, 씁쓸하지만 애틋한 맛의 평범한 이야기 [9컷]

title: 털ㄴ업 (1)lignis2024.04.26 14:22조회 수 223추천수 2댓글 0

기리보이 8<9> (2020-12-23 발매)

1. [TITLE] 사랑이었나봐

2. 술없이는아무것도못하는놈 (With THAMA)

3. 휴지

4. 내자리 (With Zion.T)

5. 인터루드

6. 찰칵

7. 연기 (With 헤이즈)

8. 라식

9. 우리서로사랑하지는말자

 

https://www.youtube.com/watch?v=LHYNbzWhDdU

 

쇼미더머니9 프로듀서 싸이퍼 (기리보이, 3:20부터)

위성에 찍힌 우리들 모습은 먼지만 한 구체

여기서 먼지가 안 되는 게 우리의 숙제

멀리서 본 여기엔 아무것도 없네

원랜 없던 것들을 얻어 살아가는 여기에서

1초 안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바뀌어

죽고 죽이는 그건 그저 신의 작전

언어라는 괴물을 만들어 우릴 집어삼키고

우린 또 생각에 잠기고 벗어나야 해 벗어나야 했지

벌레 같은 나는 허물을 또 벗어봐야겠지

이 영화 주인공인 나는 죽어가야겠지

너흰 관람하며 시간이나 죽여가야겠지

나를 위로해줘 when I came back home

버텨 허리케인에도 어머니 이 못난 불효자는 웁니다

그 허물들은 나를 못살게 구니까 광기를 멈추고 현실을 봐

우릴 미치게 했던 그 적신호가 거리에선 멈추는 신호가 되네

허나 우린 밟아 더 세게 진짜를 볼래 난 시공간을 건너

차원을 넘어 난 블랙홀을 걸어 난 숨을 쉬어 아니 그렇다고 의식해

난 돈을 벌고 부자가 됐다고 의식해

 

 2020년에 방영된 <쇼미더머니 9>은 지금까지 진행된 11편의 시즌 중 흥행과 완성도 면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은 전성기 시즌 중 하나로 뽑힌다. 특히 참가자들의 성과뿐만 아니라 프로듀서들의 성공적인 지원이 코로나와 맞물려 적절한 조화를 이룬 것이 호평을 받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본격적인 시즌 시작 전 업로드된 프로듀서 싸이퍼였다. 팔로알토-저스디스-자이언티-기리보이-다이나믹 듀오-비와이로 이어지는 라인업에서 사람들은 저스디스와 비와이의 벌스에 경악하고 환호했지만, 내가 이들 중 가장 큰 인상을 받았던 건 팔로알토기리보이였다. 베스트 댓글에 팔로알토와 기리보이가 서로 대필해준 것 같다라는 내용이 올라올 정도로 팔로알토는 힘을 뺀 가사를, 기리보이는 꽤나 치밀한 가사를 준비해 왔는데 이 중에서도 기리보이의 가사가 유독 많이 기억에 남았다. 본 시즌에 출연하기 전에 냈던 6<100년제전문대학> 7<치명적인 앨범 III>에서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경쾌한 음악들이 주를 이뤘는데 당시 프로듀서 싸이퍼에서는 진지한 고찰이 담긴 기리보이의 랩을 들을 수 있어서 신기했다. 그래서 해당 시즌이 끝난 후에 기리보이가 EP 앨범 <영화같게>를 들고 왔을 때 평소보다 훨씬 더 큰 기대를 하게 됐다.

 

 EP 앨범 <영화같게>를 포함해 2020년에 발매한 8<9>을 처음 돌렸을 때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평범함이었다. 이 평범함은 평소에 내가 즐겨 듣던 국힙의 트렌드보다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대중성에 가까운 방향이었다. 물론 멜로디컬한 랩과 훅으로 달달한 가사를 노래하던 발라드랩이라는 장르가 이미 존재했지만, <9>은 기리보이 특유의 너드 감성을 더해서 발라드랩의 서정성을 최대한 살린 동시에 사랑이라는 주제를 기리보이 본인만의 화법으로 풀어내고자 했던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 <9>이라는 앨범이 유독 마음에 많이 와닿은 이유는,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겪어봤을 아픔이 사랑에 있기 때문이었다.

 

#전반부(1-3): 뒤늦은 깨달음과 이에 맞춰 흘러드는 감정의 파도

- 사랑이었나 봐 그땐 몰랐지만 전부 다 지나고 나서 깨달았어 둘 중 하나 누구 한 명만 한 번만 져줬었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사랑이었나봐)

- 그렇게 나는 멋대로 널 맘속에 가둔 채로 나 계속 망가져만 가 이런 날 혹시 네가 볼까 봐 괜히 나도 몰래 술기운을 빌려 (술없이는아무것도못하는놈)

- 눈물로 가려진 행복했던 나의 얼굴 다 지워가지 처음처럼 아름답게 쓰고 버려야지 더러워진 나의 하루 다 지나가지 추억처럼 아름답게 (휴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말처럼 사람은 관성에 너무나 쉽게 적응하는 존재인 것 같다. 어떤 상황이 펼쳐져서 변화와 부딪히게 되면 그제서야 변화 전의 상황이 갖고 있던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이는 애정으로 이뤄진 연인 관계에도 예외가 없이 적용된다. 분명 서로와 맞지 않아서 싸우고 헤어졌는데, 정작 내 곁에 있던 이가 떠나고 나서야 그 자리의 공백을 실감하게 된다. 첫 트랙에서 이별을 맞이한 기리보이는 빈칸을 잊으려고 애쓰면서 술로 시간을 때우려 하지만, 결국 슬픔에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휴지로 얼굴을 가리게 된다.

 

#중반부(4-6): 간신히 자신을 수습하고 손에 든 카메라 속 풍경

- 우리가 우리였을 때로 다시 돌아가 그때로 너무 멀리 왔지 두 발로 걸어서 대체 뭘 얻었을까 내 순간을 걸어서 (내자리)

- 반짝이는 순간 우린 남남이니까 반짝이는 사랑은 순간 반짝인 거야 너를 놓아 주니 너는 더 반짝이구나 왜 우린 남남일 때가 더 소중할까 (찰칵)

 하지만 사회의 톱니바퀴에 묶여있는 어른이라는 위치는 우리가 자리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게끔 만든다. 그래서 결국 기리보이는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간신히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계속 일상을 이어나가려는 순간마다 결별로부터 얻은 상처가 간신히 붙잡은 이성의 상태를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어쩌면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결국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감정이 무뎌지는 게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아픔에 무심해진 기리보이는 자신도 모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머리 속에 담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나가는 연인들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옛날의 추억에 잠기게 되기도 한다.

 

#후반부(7-9): 렌즈로 선명해졌지만 이제는 다가가기 두려운 세상

- 잠깐 왔다가 나를 웃게 했던 당신은 코미디 같아 울다 웃는 날 보면 어떤 가요 정신 나간 사람 같나 전부 다 연기였던 걸까 우린 그냥 그저 그런 영화처럼 살았나 사랑은 우릴 묶어 놓고 도망가 배경 음악이라도 깔아 놓고서 가던가 (연기)

- 넌 내가 슬퍼도 행복할 테니 내 빛바랬던 추억들에 멀어버린 눈을 다시 살려 한여름 밤의 추억처럼 내게 다가왔던 너 (라식)

- 친구 아닌 친구보다 좀 더 깊은 사이 너와 난 돼야 하지 와인보다 좀 더 짙은 사이 너가 날 떠나면 나는 아무것도 없기에 편한 척을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섞이네 (우리서로사랑하지는말자)

 사랑이라는 감정은 한 번 우리를 지나쳐 갔을 때 쉽게 옛날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색채를 가진다. 계속해서 수많은 연인들의 풍경에서 과거를 느끼던 기리보이는 자신과 헤어진 전 애인에 대한 분노와 실망, 그리고 과거의 자신이 걸어온 길을 공허하게 바라보며 그 길을 함께한 자신의 눈을 저주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통증 또한 무뎌져서 기리보이 역시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친구 이상의 관계로 나아가기가 두려워져 그냥 친구와의 관계에서 만족하고 연인으로의 발전을 두려워하는 인간 관계의 정체 상태에서 멈추게 된다. 이미 아는 아픔이 모르는 아픔보다 더 무섭기에.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가장 찬란하게 빛나면서도 쓸쓸한 색을 보이는 순간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 그 감정을 상대하게 고백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끝나는 아픔도 있고 혹은 다행스럽게도 끈이 이어졌으나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끊어지게 되는 아픔도 존재한다. 그리고 세상이 보기에 꽤나 성공적인 관계가 이뤄졌다고 해도 무궁한 변화가 이뤄지는 현실에서 어느 순간 그 관계가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 이처럼 사랑의 찬란한 부분과 쓸쓸한 면은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수많은 이의 삶에서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아이러니의 감정으로 사랑의 입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사랑이 아이러니한 감정이기 때문에, 담담하게 평범한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말하는 기리보이의 목소리가 때로는 애틋하게, 때로는 쓸쓸하게 다가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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