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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mpire Weekend - Only God Was Above Us를 듣고

TomBoy2024.04.20 13:09조회 수 513추천수 12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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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5

 

 

뱀파이어 위켄드는 더 이상 뱀파이어 위켄드가 아니다. 폴 사이먼의 <Graceland>, 선연한 멜로디 메이킹, 귀에 쏙쏙 박히는 에즈라의 음색, 젠체와 냉소를 오가는 작문 방식, 밀레니얼 세대에 관한 예리한 자화상 등이 합쳐져 극한의 시너지를 뿜어내던 칼리지 밴드. 그 밴드는 이제 좋든 싫든 간에 에즈라 코에닉의 전유물이 됐다. 나는 뱀파이어 위켄드를 언급할 때마다 에즈라를 핸들로 로스탐을 바퀴로 비유하곤 했는데, 이는 로스탐의 편곡 감각이 밴드의 음악에 가장 큰 역할을 할 거라는 평소 생각이 반영된 수사였다. 그런데 새 앨범 <Only God Was Above Us>를 들어보면,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바퀴가 아니라 핸들이었던 것 같다. 프로듀서 아리엘 레흐샤이드는 도저히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던 로스탐의 빈자리를 말끔하게 보완했으며 앨범의 구성은 더욱 간결하고 정교해졌다. 특히 에즈라가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던 피아노, Hope에서처럼 투박하게 계단식으로 이어지는 달콤한 아르페지오는 여느 기타 못지않은 존재감을 과시한다. 물론 여전히 뱀파이어 위켄드인 것도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글을 제멋대로 해석한 듯한 가사부터, 흡사 Step을 연상시키는 Capricorn의 바로크 감성과 펑크 기타 에너지, My Best Friend's Girl의 기타 리프로 시작되는 Prep-School Gangsters,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이색적인 효과음까지, 뭐라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악상과 개념들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방식만은 여전하다. "의문에서 수용으로, 어쩌면 항복으로. 냉소적인 세계관에서 좀 더 낙관적인 세상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제작 의도를 설명할 만큼의 성숙함. 그리고 The Kids Don't Stand a Chance의 두 번째 코러스에서 4초 간 흘러나올 드럼에 리버브를 얼마나 넣어야 할지를 두고 전쟁 같은 토론을 주고받던 강박증. 아마도 <Only God Was Above Us>는 두 징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서 지금의 생김새를 갖추었을 것이다.

 

오로지 작곡의 측면에서 뱀파이어 위켄드가 정말 굉장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들이 '포스트 펑크'와 '트립 합' 노스탤지어에 전혀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좋은 것을 활용하긴 했지만.) 또한 에즈라가 밝혔듯 디스토션을 사용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프로 팝, 레게 톤, 스카 펑크 같은 장르는 새 천년의 대중문화에서도 변함없이 비주류였으며, 뱀파이어 위켄드는 과거를 빼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반대였기 때문에 필진과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쿨함과 거리가 있다고 간주되는 요소들을 힙스터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데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그에 따르는 비판에도 대체로 초연했다. 그런데 이 앨범에서는, 즉 아프로 팝과 바로크 팝 사이를 넘나드는 다양한 템포의 기타 리프, Finger Back을 떠오르게 하는 격정 넘치는 드럼 연주, Step에서 선보였던 아득하며 담담한 반추에서는 더 이상 모험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뱀파이어 위켄드의 유튜브 계정에서는 "이 곡은 M79과 White Sky를 합친 것 같아."라는 식의 반응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반응을 오랜 팬의 추억담 정도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에즈라가 <Only God Was Above Us>를 구상하며 취했던 접근 방식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번에는 모방하고자 하는 대상이 폴 사이먼이나 잉글리시 비트가 아니라, 과거의 자신, 어제의 뱀파이어 위켄드였을 뿐이다.

 

에즈라는 뱀파이어 위켄드 디스코그래피가 각각의 수호성인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Vampire Weekend>는 폴 사이먼, <Contra>는 조 스트러머와 서브라임, <Modern Vampires of the City>는 레너드 코헨, <Father of the Bride>는 그레이트풀 데드의 제리 가르시아, 싱어송라이터 로버트 헌터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90년대 밴드 피시(Phish). 그는 롤링스톤 표지를 장식하며 짧게나마 페어링 투어를 했던 우탱 클랜과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을 새 앨범의 수호성인으로 꼽았다. 에즈라가 진정 닮고 싶은 것은 그들의 음악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일 것이다. 리얼리티가 기준이 된 세상에서 콘셉트와 오락성을 부각시킨 힙합 그룹과 거의 유일하게 칭송받는 랩 메탈 밴드는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금기에 도전해왔다. 뱀파이어 위켄드 또한 <Only God Was Above Us>에 와서 골든 에라의 트립 합 비트와 스트록스 앨범에 더 어울릴법한 기타 리프를 선보이며, '트립 합 금지', '포스트 펑크 금지', '디스토션 금지'라는 자신들의 터부를 살며시 지워버린다. 특히 디스토션의 경우 극적인 연출이나 편곡상 디테일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곡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그것이 원래 뱀파이어 위켄드를 상징하던 사운드였던 것처럼 느껴진다.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던 노래가 결국 같은 멜로디의 후렴으로 돌아가듯이, 특수효과로만 생각했던 디스토션이 앨범을 하나로 묶어주는 탁월한 구조적 장치가 된 것이다.

 

"좆까 세상아."라는 웅얼거림으로 시작해 "놓아주길 바라."라는 간곡한 당부로 막을 내리는 앨범에는 뱀파이어 위켄드를 상징하는 사운드와 스타일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런 간접 체험 면에서 Classical을 따라갈 만한 곡은 없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노래는 정말 M79과 White Sky를 합친 것 같다. 추억이 서린 클래식 세션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브라스 연주 위로 에즈라는 대화체 보컬을 통해 착취하는 동물원, 불타는 다리, 무너진 사원 등을 거닌다. 이처럼 고고하고 경쾌한 음색에도 불구하고 앨범의 분위기는 종종 어둡고 사색적이며, 이런 개성이야말로 뱀파이어 위켄드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만하다. 나는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주체할 수 없는 흥겨움에 취해 있다가도 노래가 끝나고 나면 마치 진진한 소설을 탐독하듯 가사를 보면서 그 의미를 곱씹곤 한다. "어떻게 그 잔혹함이 시간이 지나면 고전이 되는지." 확실히 에즈라는 딜런 식의 계몽주의 설교자보다는 청취자와 함께 여행길에 오르는 폴 사이먼에 가깝다. 한편 하나의 노래가 아니라 여러 가지 그럴싸한 아이디어를 이리저리 이어 붙인 듯한 콜라주 Connect가 있다. 뱀파이어 위켄드의 커리어에서 제일 모험심이 강했던 트랙 Diplomat's Son이 바차타, 카리브 비트, 고전 화음과 창법, 투츠 앤드 더 메이탈스와 M.I.A. 샘플 같은 이색적인 풍경들로 가득했던 것처럼, Connect 역시 피아노 속주, 재즈 풍 더블 베이스, Mansard Roof의 드럼 샘플, 신스와 오르간, 봉고, 에즈라 특유의 여유로운 보컬 등, 철저히 무관한 원재료들이 긴밀히 합심해 부자연스럽기는커녕 너무나도 근사한 화음을 빚어낸다. 사이먼 레이놀즈의 말마따나, 모든 지역/모든 시대의 팝인 셈이다.

 

그렇다면 대중음악의 가장 심오한 사상가이자 송라이터는 새 앨범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 걸까. 나는 앨범에 등장하는 두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그 깊은 속뜻을 풀어보고자 한다. 오프닝 Ice Cream Piano에서 에즈라는 "좆까 세상아."라는 혼잣말로 운을 떼지만 곧 이어지는 가사를 통해 그것이 푸념이 아니라 관찰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노래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나fuck around and find out." 같은 수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소신이 결여된 냉소주의에 대한 고발처럼 보인다. 이어서 Mary Boone은 Hanna Hunt의 빌드업, 맥동하는 비트박스, 숭고한 합창이 합을 맞추며 탈세로 수감되기 전까지 바스키아와 슈나벨의 초기 작품을 전시했던 선구적인 미술 딜러 메리 분을 기념하는 곡이다. 그녀는 7-80년대 뉴욕에 만연했던 폭력과 빈곤으로 인해 오히려 사람들이 예술에 집중할 시간이 더 많았다는 주장으로 유명하다. 즉 에즈라는 당신이 종말론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면 거기서 그치지 말고 다양한 예술을 향유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찾으라고 제안하는 걸지도 모른다. <Only God Was Above Us>의 주제가 정말 절망과 우울함 속에서도 조금만 더 밝게 행동하자는 뜻일까? 독창성과 열정만큼 과대평가된 것이 없다는 빌리 차일디시를 인용했던 사람이 마지막 트랙의 제목을 Hope로 지을 만큼? "놓아주길 바라." 누군가의 목소리에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면, 아마도 대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

 

신보 너무 좋습니다.

이제 오랜 팬들 가려움이나 긁어줬으면 했는데

에즈라의 야망을 얕잡아 본 모양이네요.

 

아리엘이 로스탐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워준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에즈라의 욕심 자체가 아직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오랜 팬으로서 이 점이 가장 감격스럽습니다.

2000년대 우후죽순 등장한 밴드 중에서

여전히 이런 폼을 보여주는 팀이 얼마나 될까요.

 

 

앞으로 5년이 걸려도 좋으니

멋진 작품 한 번 더 만들어줬으면 좋겠네요.

그전에 내한 한 번 와주면 바랄 게 없고요.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ostrockgallery&no=765281&search_head=210&page=1

포스트락 갤러리 806님의 전곡 해석입니다.

꼭 가사와 함께 감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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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0
  • 4.20 13:37

    어쩌다 보니 제 첫 뱀파이어위켄드 앨범이 이 작품이 되어버렸는데 배경 설명을 읽으니까 더 재밌어요! 메리 분 관련 메시지가 흥미롭네요

    Phish의 영향이 반영된 앨범도 있었다니 이왕 거꾸로 디스코그래피를 들어봐도 좋겠네요

    리뷰 너무 감사합니다!! 근데 에즈라 너무 잘생겼당

  • TomBoy글쓴이
    1 4.20 22:58
    @hoditeusli

    감사합니다! 디스코그래피를 거꾸로 듣는 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이번 앨범부터 출발해서 데뷔 앨범에 도착하면 감동이 장난 아닐 듯해요

  • 4.20 13:42

    개추

  • TomBoy글쓴이
    4.20 22:58
    @파피루스

    감사합니다!

  • 4.20 13:42

    어떻게 들으셨을지 궁금했는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어 하는 마음으로 큰 기대는 없이 들었는데 예상을 상회하는 앨범이 나와서 깜짝 놀랐었네요.

  • TomBoy글쓴이
    4.20 23:00
    @Pushedash

    감사합니다! 에즈라나 톰슨이 자기들 최고작이라고 했을 때 래퍼 같은 허세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진실이었습니다 ㅎㅎ

  • 4.20 13:44

    난 그대를 기다렸소

  • TomBoy글쓴이
    4.20 23:02
    @베어페이스

    Thank you for waiting, ma man!

  • 4.20 14:12

    좋은데 이전 작품들보다 확연히 앞서나가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개인적으로

  • TomBoy글쓴이
    4.20 23:06
    @withoutme

    고만고만한 느낌이 있지만 저는 제일 좋더라고요

  • 4.20 14:18

    개추

  • TomBoy글쓴이
    4.20 23:06
    @K드릭라마

    감사합니다!

  • 4.20 14:22

    잘 읽었습니다

    줄리아홀터 신보랑 애드리안 렌커 신보는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해요

  • TomBoy글쓴이
    4.20 23:09
    @자카

    감사합니다!

    두 앨범 다 매우 좋더라고요. 둘 다 하던 거 잘하던 느낌이었습니다. 렌커는 리뷰도 써놨는데 퇴고할 시간이 안 나네요 ㅠ

  • 4.21 10:28
    @TomBoy

    렌커 리뷰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 4.20 15:40

    너무 좋은 앨범과 그에 걸맞는 TomBoy의 리뷰

  • TomBoy글쓴이
    4.20 23:10
    @Jablo

    감사합니다! :o

  • 4.20 16:03

    AOTY

  • TomBoy글쓴이
    4.20 23:10
    @모든장르뉴비

    truly!

     

  • 4.21 01:03

    앨범 개좋던데 이렇게 리뷰까지 보면서 들으니 더 좋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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