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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vantgarde Vak - DTRR"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에서 군생활을 마쳐,
효자로를 가로질러 삼청동을 지나고나서야,
다시 명륜3가에 도착. 말도 많고, 탈도 참
많았지. 이젠 그로부터 3년이 지나고있잖아.
잠시 기억하자면은, 나도 참 바보 같아.
전역만 하면 랩스타가 될 줄 알았거든, 상말 때는.
Blueprint 3가 언제나 CDP에.
A star is born의 J Cole에게 나를 이입했지.
그래, 그 땐 CDP는 보안필이 찍힌 CD들의 자리.
중대장과의 마찰에 한창 시달리던 차에
휘갈겨 썼던 가사들.
그게 어리석게도 내 영혼을 좀먹고 있었네.
멍청하게도 흐리멍텅한 채였지, 내 시선은.
난 아무런 소득 없이 위병소를 나서고 있었고,
더러운 꼰대문화와는 영원한 작별을 했어도,
계속 시행착오에 가까운 부끄러운 습작들을
만들어내며, 동기도 없이 펜을 붙잡고.
주위를 둘러싼 속물들과 다를 바도 없이
빠져 생각하던 것이라고 해봤자 한낱 숫자뿐.
그래. 나를 붙잡고 있던 얄팍한 생각들을
떨쳐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등단 후였지.
어머니는 내 추태를 마주치는 일이 먼저랬지.
그 후의 것들은 인고의 껍질이라는 것이
내겐 새로운 질문이자 또 해결책이었지.
깨달은 건 자기 서사의 멋이 힙합의 본질.
자기 서사의 멋. 신월동의 조산원에서
쪽방과 반지하를 거친 사교육의 수혜자.
이 모든 걸 마주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지.
따돌림과 질투, 실수, 혹은 치부,
모든 것들을 담아 만들어낸 Scholarship은
첫 달 정산료로 13,000원을 안겨줬지만
돈은 장학금 타면 돼. 난 신경 안 써.
Hiphop LE는 Week LE는 그 앨범을 싣지 않았고
샤라웃힙합은 발매자료부터 검토한다면서
결국 답은 없었다지. 한 분기가 지나가도록.
솔직히 빈정 존나 상하지만 신경 안쓰기로 했어. 왜냐하면
Jerry.K said keep on. Instagram에서 Deepflow 씨는
앨범 자켓을 올리고 코멘트를 했지. 필청.
P-Type 선배는 메일 답장으로 번호를 물어보시고
리드머 강일권 씨는 ESQUIRE에 리뷰를 기고.
그래. 다 필요 없어, 앞으론 이걸 알아들을만큼 현명한
사람들이 느낄 것만 만들어낼테니까.
누군가를 위로하는 대딸방 뮤직.
아님 공감을 구걸하는 같은 짓.
그게 올바른 랩이라면 난 안 해. 그냥 안한다고.
So, no more right rap.
Just bright 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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