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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1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9.04.30 12:05추천수 8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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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긍정, 경험. 이 세 가지는 많은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들이다. 순진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진실한 태도로 긍정하며 경험을 늘려가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고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조금씩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한국과 서울, 국적과 지역을 떠나서 현대 사회에서 그 희망을 온전히 붙잡고 있기란 쉽지 않다. 그럴수록 누군가는 진솔한 누군가를 갈구하고, 누군가는 그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움직임을 보인다. 지난 3월 말, 첫 정규 앨범 [HALO]를 발표한 pH-1은 어쩌면 후자에 해당하는 가장 확실한 아티스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솔직하고 자연스러워서 멋짐과 동시에 ‘외유내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pH-1을 어쩐지 그와 닮은 4월의 평일 저녁, 압구정의 한적한 어딘가에서 만나고 왔다.



LE: 우선, 저희 힙합엘이 회원분들에게 간단하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P: 힙합 팬들, 특히 힙합엘이에 와주시는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고요. 제가 제일 자주 눈팅하는 웹사이트이다 보니 어떤 이야기를 하시고, 뭐에 관심 있으신지 꽤 잘 알고 있는 한 명의 아티스트이고요. 열심히 만든 정규 앨범 1집이 나왔으니까 관심 있게 들어주시고, 또 앞으로의 제 행보들도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LE: 이번 앨범에 관한 게시판 반응은 좀 살펴보셨나요?

게시판 들어가 봤죠. 근데 다른 일들도 너무 많은 데다 요즘 들어 앨범 이야기가 많지는 않더라고요. 그게 저라는 사람, 아티스트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는 ‘아, 힙합엘이에서는 나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멜론이나 유튜브 (반응)을 봤어요. 예를 들면, 4월 초에 나플라(nafla), 루피(Loopy)의 “얼음왕”이 나왔잖아요. 저는 되게 멋있게 들었거든요. 같은 동료로서도 응원하는 입장이라서 그 노래가 나왔을 때 힙합엘이를 봤는데 이야기가 별로 없더라고요. 그보다는 요새 재미있는 일들, 나쁘게 얘기하면 쓸데없는 이야기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은 아쉬웠어요. 왜냐하면, 저뿐만 아니라 요즘 되게 좋은 앨범들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도 보긴 봐요. 포스팅이 많이는 없었지만, 의외로 좋아해 주셨던 것 같아요. 그전에는 별로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앨범을 내고 의외였다, 괜찮았다는 반응이 있었던 거 같아요.





LE: 힙합엘이에 지금도 워크룸이라는 게시판이 있잖아요. 예전에 pH-1가 그 게시판 안에서 소위 말하는 아마추어 래퍼라는 카테고리에 묶이는 분 중에 가장 두각을 보였던 분으로 기억해요. 그때부터 힙합엘이를 비롯한 힙합 커뮤니티를 봐온 사람 입장에서 3, 4년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보일 거 같아요.

많이 달라요. 그때는 지금처럼 포스팅이 잦지는 않아도 조금 더 의미 있는 포스팅이 많았던 거 같아요. 포스팅 올라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진 거 같기도 해요. 힙합이라는 파이가 커지면서 팬들 숫자도 커진 거 같아요. 그래서 예전만큼 심도 있게 보진 않고 ‘오늘은 무슨 이야기가 있나’, ‘요즘은 힙합 팬들이 어떤 거에 관심이 있지?’ 하면서 재미있게 들어가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워크룸에 관심이 조금 더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그쪽에 (다른 래퍼 분들이) 계속 올리시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비교적 안 가는 거 같아요.





LE: 래퍼 분들께서 <쇼미더머니>가 끝나고 얼마 안 지나서 결과물을 내시는 경우가 꽤 많은데요. pH-1는 몇 개월 정도 지나서 정규 앨범을 들고 나오셨어요. 프로그램이 끝나면 래퍼 분들이 엄청나게 바빠진다고 알고 있는데, pH-1 씨는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도 <쇼미더머니> 끝나고 첫 한 달까지는 행사를 많이 했고, 그다음부터는 앨범을 내야 하니까 회사 쪽에서 행사를 안 잡았어요. 앨범 준비를 했는데, 바로 안 내고 “무리야”랑 “Homebody”가 들어 있는 더블 싱글 [staying]을 바로 냈어요. 다른 시즌과 조금 다른 게, 이번 <쇼미더머니>가 원래 항상 하던 시기보다 조금 늦게 시작하고 끝났어요. 끝나고 나니까 행사 시즌이 끝물일 때여서 래퍼들끼리 항상 그걸 아쉬워했어요. (웃음) 다른 시즌 때는 끝나면 ‘행사 시즌! 뙇!’하는데…





LE: 원래는 집에 계시는 걸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는데요. 바빠지는 게 당연히 좋지만, 집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마냥 즐거운 소식이 아닐 거 같기도 해요. 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마음의 평화나 평온을 찾는 방법도 나름대로 있었을 것 같은데요.

집에 그냥 갇혀서 살아요. 다른 거 별로 없어요. 저는 그냥 TV보고 게임하고 그 두 개밖에 안 해요.





LE: 예전에 “Penthouse”랑 “Communicate”를 내셨을 때, 더블 싱글 타이틀이 ‘GATSBY’였잖아요. 넷플릭스(Netflix)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지은 제목이라고 알고 있는데, 요즘 또 재미있게 본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게 또 있을까요?

저는 똑같은 걸 계속 보는 편인데요. <프렌즈>는 계속 보고, 이번에 다시 본 게 <브레이킹 배드>. 그런 명작들을 돌려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LE: “Malibu” 뮤직비디오에서 모키오(Mokyo) 씨와 두 분이서 소파에 앉아 계시는 게 어느 정도 일상적인 풍경을 반영한 장면일 수도 있겠네요. 사실 <쇼미더머니>가 최근 시즌 와서 스킬풀한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된 경향이 있는데요. 그래도 전통적인 배틀랩을 잘하는 래퍼들이 살아남기가 유리하잖아요. 그래서 <쇼미더머니>에 참가하실 때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있진 않았는지 싶어요.

스트레스는 조금 강력한 단어 초이스인 것 같고요. 저는 프로그램 임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우승을 해야겠다는 게 제 메인 목표가 아니었어요. 보면 <쇼미더머니>에서 우승자보다 2, 3위가 최고 수혜자였던 적이 있잖아요. 제 목표는 ‘최고의 수혜자가 되자’였어요.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전략을 짜야 할지 저랑 모키오가 계속 고민했죠. 예를 들면, 불구덩이에서 1분 동안 하는 2차 미션에서 “Homebody” 벌스를 했잖아요. 그때 저는 아무래도 불안하니까 모키오에게 “명환아 이번에 나는 비트를 조금 센 거로 갖고 가야 될 것 같아”라고 했는데, (모키오가) “아니야. 완전 반대로 가서 더 풀어버리고 칠하게 가자. 그러면 90% 정도가 다 빡세게 할 건데, 형만 다르게 보일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서 잘됐고, 이미지 메이킹도 된 거 같아요. 또 한 가지는 주황색을 계속 입자는 거였어요. 1회부터 에피소드마다 (주황색이 들어간 제 아이템이) 하나씩 바뀌어요. 모자, 바지, 신발 하나씩 주황색을 입는데, 결국 세미파이널에서 “주황색”이라는 노래를 냄으로써 (그 컨셉을) 완성했죠. 저는 저를 브랜딩시키기 위해 나간 거고, 그 점에서 충분히 혜택을 받은 거 같아요.





LE: 이제 <쇼미더머니>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은 덜한 거 같은데요. 이제는 확실히 한국힙합 씬의 일부가 되었어요. 그만큼 <쇼미더머니>를 거쳤다는 게 한국힙합 씬에 더욱 깊숙이 들어왔다는 의미인 것 같거든요. 미국에 오래 사셨으니까 미국에 살았을 때 바라본 한국힙합과 <쇼미더머니>까지 거치고 완벽히 흡수되었을 때 바라본 한국힙합은 어떻게 다른가요?

글쎄요. 정확한 답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한국힙합에 대한 희망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아요. 제가 래퍼를 하면 이것도 좋을 것 같고, 저것도 좋을 것 같았어요. 씨잼(C Jamm) 씨 노래 “신기루”에 빗대자면, 하나의 신기루를 본 거죠. 근데 길진 않지만 2년에서 2년 반 정도의 한국 생활을 하면서 음악을 하면서 그 희망이 조금 사라졌고 답답함이 생겼어요. ‘한국힙합에는 희망이 없다!’ 이런 게 아니고, 제가 갖고 있던 꿈들이나 이상적인 그림이 조금은 사그라들고, 좀 더 현실적인 모습을 본 거죠. 동료 아티스트, 존경하던 아티스트들과 같이 작업을 한다든지, 서로 인간적으로 알게 되는 과정 안에서 못 봤던 모습을 보면서 깨닫는 거죠. 어떤 사람이 음악을 만들 때의 의도와 목적이 제가 생각했던 거와 조금 다를 때도 있었고요. 멋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안 멋있었을 때도 있었고요. 한국힙합 팬, 리스너들한테 바랐던 모습이 있었는데, 너무 일차원적인 것만 좋아하시는 게 아쉬울 때도 있고요. 예전만큼의 희망, 이상, 낭만이 사라진 거죠. 대신 어떻게 하면 더 주목받을 수 있을지를 배우고 있고요.





LE: 과거 “Sugoi”라는 곡에 참여하신 렉스티지(Rekstizzy) 씨나 월드와이드하게 활동하는 덤파운데드(Dumbfoundead) 씨 같은 분을 보면요. 꼭 한국 출생이었다고 해서 한국힙합 씬에 몸을 담을 필요는 없잖아요. 다른 경로를 생각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예전부터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는 활동할 생각을 안 하고 있었고, 그냥 ‘아, 저러면 얼마나 좋을까?’ 정도였어요. 아무튼, 동양인으로서 미국에서 힙합을 해서 먹고산다는 거 자체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덤파운데드 씨처럼 (미국 땅에서 자란) 완전 2세도 아니고요. 환경적으로도 스트릿이 아닌 백인들이 많은, 학구열이 높은 지역에서 살았고요. 또, 한국말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한국을 활동하는 무대로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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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미국이 하나의 나라지만, 지역마다 워낙 많이 다르니까요. 미국에서는 언제부터 음악을 하셨는지도 궁금하고, 지금처럼 래퍼를 직업으로 삼기 전에는 랩이 일종의 취미 생활이었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 직업적으로 염두에 둔 무언가였는지 싶은데요.

제가 언제부터 음악을 했는가를 생각하면 정확한 기점은 없어요. 정말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피아노를 시키셨고, 그때부터 저는 음악을 계속 좋아했어요. 밴드에서 드러머였고, 노래도 하고, 기타도 배우고, 색소폰도 하고… 밴드 음악으로 시작해서 많은 악기를 배웠어요. 그러다 힙합에 좀 더 관심이 생겨서 대학교 1학년이 되면서 미디를 사서 비트도 찍어보고, 랩도 해봤던 게 시작이라면 시작이었어요. 늘 취미였고, 당연히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왜냐하면, 부모님이 한국에서 좋은 직장을 다 그만두시고 가신 거였거든요. (미국에 와서) 하루에 열 몇 시간씩 세탁소에서 일하시고… 그 상황에서 제가 장남인데 (음악 하고 싶다고) 어떻게 얘기해요. 근데 취미로 하면서 힙합엘이 워크룸에 풀었던 녹음물을 사람들이 좋게 들어주니까 ‘나에게도 조금 소질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괴로웠어요. 그림의 떡 같은 희망이 점점 커지다가 못 참게 된 때가 2016년 말이고, 그해 9월에 한국에 온 거예요.





LE: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선택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어머니가 엄청 오랫동안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일하셨어서 부모님의 암묵적인 푸쉬가 있었어요. ‘사’자 들어간 직업. 어머니가 간호사를 하셨으니까 의학 쪽으로 공부해야겠다 싶었고, 그나마 관심이 좀 있었던 생물학으로 선택했었죠. 졸업하고, 치대에 가려고 치과에서 일하면서 공부를 계속 했는데, 너무 안 맞는 거예요. 매일매일 일어나면서 불행해 죽겠고, 진짜 힘든 거예요. 안되겠다 싶어서 부모님께 울면서 얘기했어요. “제가 진짜 죄송한데 이거 저한테 너무 안 맞아요. 다른 걸 찾아보면 안 될까요?”라고 했더니 그때는 부모님도 제가 많이 괴로워한다는 걸 아신 거죠. “네가 관심 있는 게 뭐니?”라고 하셨고, 그 당시에 웹 개발 쪽으로 친구가 알려준 게 있어서 웹 개발을 했어요. 흥미도 있고, 재미있어 하기도 했거든요.





LE: 지금은 흔히 말하는 ‘9 to 6’ 혹은 ’10 to 7’의 삶이 아니잖아요. 과거와 비교했을 때 그때의 라이프사이클이 잘 안 맞았는지, 지금의 삶이 더 만족스러운지 궁금한데요.

(요즘) 엄청 만족스럽죠. 저는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하는 걸 힘들어해요. 성격이 유해 보여도 속으로 모났거든요. 그래서 제 음악에서 반주는 소프트하거나 말랑말랑하지만, 가사 내용은 시니컬하고, 날카롭고, 예민한 편이에요. 성격이 그래요. 그래서 정해진 근무 시간에 근무해야 하는 삶이 조금 힘들어요. 제가 즐거워서 하는 일을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데, 제가 이 일을 즐겁지 않고 해야 하는 거라고 느끼는 순간 하기 싫어져요. 결과도 좋지 않으니까 자신감도 없어지면서 악순환이 계속되더라고요.





LE: 말씀하신 지점에서 생각나는 게, 어떤 래퍼분들은 <쇼미더머니>에서의 경연곡이 온전한 자기 음악이라기보다 경연에서 이기기 위해서 만드는 거다 보니 회의감을 느끼시는 거 같기도 하더라고요. pH-1 씨는 그렇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저는 경연곡을 만들 때 져도 괜찮으니까 제 스타일대로 만드는 게 메인 목표였어요. 늘 코드쿤스트(Code Kunst)에게 그렇게 부탁했어요. ‘나 빡세게 안 할 거니까 내 스타일대로 만들어줘’라는 식으로 얘기해서 나온 게 “Hate You”였어요. 나플라가 상대지만 그냥 신나는 거 하고 싶어서 만든 게 “주황색”이고요. 저는 지금도 “주황색”이랑 “Hate You”를 즐겁게 잘 듣고 있어요. 만들어놓고 ‘아, 나 이거 억지로 만든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 듣는 게 괴롭거나 창피할 수 있는데, 창피하지 않아요.





LE: “Hate You”는 팝한 느낌이 강했고, “주황색”은 질감이 되게 특이했어요. 특히, “주황색”은 악기, 샘플의 텍스처가 인기 있는 힙합의 느낌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또 그게 pH-1 씨의 약간의 허스키함이 섞인 목소리랑도 잘 맞는 것 같아요.

“주황색”이란 노래는 사실 되게 빨리 만들어졌어요. 코드쿤스트, 팔로알토(Paloalto), 저 이렇게 세 명이 있는 단톡방에 비트가 올라왔을 때 저랑 팔로알토 형이 듣고 외국 비트 같다면서 되게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코드쿤스트 비트 중에 제일 좋다고. 곡이 좋으니까 작업도 빨리 됐죠. 이기지 못한 건 조금 아쉽긴 한데, 음원은 더 인기가 많았어요. (웃음)





LE: 뭔가 ‘기승전쇼미더머니’ 같이 이야기가 “주황색”까지 흘러갔네요. (웃음) 앞서 미국에서의 생활 관련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찾아보니 양요섭 씨와 초등학교 동창이고, 에릭 남(ERIC NAM) 씨와 대학교 동창이라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인연이라면 오왼 오바도즈(Owen Ovadoz) 씨인 것 같아요. 언제부터 알고 지냈던 건가요?

오왼 오바도즈가 <쇼미더머니 3>로 방송에 처음 나왔을 때, 올티(Olltii) 씨와 붙고, 떨어져서 기리보이(Giriboy) 씨랑 패자부활전을 했어요. 그때 걔가 랩하는 걸 한 30초 듣고 ‘얘랑은 작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어요. 이 친구의 사운드클라우드를 찾아서 댓글을 남겼어요. “내 사클 와서 들어보고 마음에 들면 연락해”라고 하니까 한 3일 후에 이메일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온라인상으로만 같이 작업을 하다가 제가 2016년 1월에 [15] 믹스테입을 집에서 만들어서 냈어요. 그해 여름에 오왼 오바도즈가 처음 단독 콘서트를 했었어요. ‘오만 오천도즈’라는 별명이 그때 생긴 거였어요. <Yankees Vol1: POEM>였는데, 걔가 저를 게스트로 불렀어요. 회사 업무는, 어차피 제가 외부에서 랩탑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 해결이 됐어요. 그렇게 한국에 올 기회를 얻고, 한 열흘 전에 한국에 왔어요. 그 열흘 동안 한국힙합 씬의 큰 분들, (박)재범(JayPark)이 형, 더콰이엇(The Quiett) 씨, 타블로(Tablo) 씨, 그리고 테디(Teddy) 씨 다 만났어요. 그때 제가 되게 낮은 자존감을 갖고 한국에 왔었는데, 컨택이 되고 하니까 ‘내 음악이 나쁘지 않고 가능성이 있나 보다‘라는 희망이 생겼어요. 짧은 시간에 부스트를 받은 거죠. 그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못 잊겠는 거예요. 오왼 오바도즈 공연 무대에 서고, YG 스튜디오 가보고, 하이그라운드(HIGHGRND) 가보고… 이런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안 떠나는 거예요. 한국에 가서도 희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꾸준히 드니까 9월 가을에 온 거예요. 어떻게 보면 막무가내로 급하게 뛰어든 거예요.





LE: 기억하기에는 오왼 오바도즈 씨가 미국 동부 쪽에 사셨다고 알고 있어서, 미국에서부터 인연이 있으신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사실 한국에 정착하게 된 과정에서 박재범 씨가 pH-1 씨 SNS 계정을 먼저 팔로우한 것이 결정적일 줄 알았거든요.

제가 오왼 오바도즈 단독 콘서트로 한국에 가기 직전에 재범이 형이 갑자기 관심이 있다면서 팔로우하긴 했죠. 그래서 제가 ‘저 오왼 때문에 한국에 가는데, 간 김에 한번 봬요’라고 하고 만났었어요.




LE: 박재범 씨는 예전에 “Sugoi”는 되게 좋게 들었지만, 그 이후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더라고요. (웃음)

재범이 형이 은근히 트렌드에 느려요. (전원 웃음) 그때 저는 이미 빡센 랩을 접고 멜로디컬한 걸 하고 있었는데, (재범이 형이) “Sugoi”처럼 빡센 걸 해야 한다고 그랬어요. 저는 그때부터 형한테 빡센 랩이 촌스러워질 때가 올 거라고 했어요.





LE: 그러고 보니 작년에 오왼 오바도즈 씨와 함께하는 수 셰프(Sous Chefs)의 결과물을 그해 말에 볼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어떻게 된 건가요? (웃음)

그때가 <쇼미더머니 777> 전이었을 거예요. <쇼미더머니>에 나간다는 게 저한테는 갑자기 내린 결정이었어요. <쇼미더머니> 다음에는 각자 앨범도 있었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이제 슬슬 다시 해봐야 하지 않을까… (웃음)





LE: 이제는 <쇼미더머니>도 끝났고, 정규 앨범도 나왔잖아요. 더 완전하게 한국에서 음악을 본업으로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인 거 같은데요. 지금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분들께서 어떻게 생각하는 편인지, 응원해주는 편인지 싶어요.

엄청 응원해 주세요. 저보다 더 관심 있게 찾아보시고요. 제가 몰랐던 사실들, “준원아, 도끼(Dok2)가 LA 갔대”라고 말씀하시면 저는 “아, 그래요? 몰랐어요. 왜 간대요?”라고 하면서 되레 제가 물어봐요. (전원 웃음) 누가 어디 회사에 들어갔다더라 그런 것도 다 관심 갖고 보셔요. 그리고 제가 어디랑 인터뷰하면 바로 다음날에 봤다고 연락 오고… 원래 (힙합에는) 관심이 전혀 없으셨는데, 제가 하니까 (보시는 거죠.) 지금도 두 분 다 미국에 살면서 여전히 세탁소를 하고 계신 데도 그래 주시니까 너무 감사하죠.





LE: 이번 앨범의 첫 트랙 “Alright”에도 “가끔 돌아가고파 미국”이란 가사가 나오잖아요. 꼭 가족 때문이 아니더라도 한국에 남아 있으면서 미국이 그리울 때가 꽤 많을 거 같아요.

늘 있죠. 귀 뒤에 ‘516’이라는 타투가 있는데, 그게 제가 살던 롱아일랜드의 지역 번호예요. 어떻게 보면 한국이 고향이 아니라 거기가 제 고향이에요. 왜냐하면, 저는 유년기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교 이후까지 롱아일랜드에서 지냈거든요. 가족, 베스트 프렌드를 포함해서 제가 사랑하는 공동체, 커뮤니티가 다 거기 있어요. 십년을 넘게 이사도 안하고 롱아일랜드 안에서만 살았으니까요. 그래서 늘 그립고, 롱아일랜드가 또 그 동네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평안함이 있어요. 재미없고 심심하기도 한데, 그 느낌이 주는 안정감, 여유로움이 그리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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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타투 얘기가 나왔으니까 조금 해볼까요? 몸에 타투가 많아 보이지 않는데, 성대 쪽에 새긴 타투가 유독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저 의외로 몸에 타투 진짜 많아요. 팔뚝 쪽에 쭉 있어요. 한 6개월 안에 다 했어요. 근데 의도했든 안 했든 간에 조금 소프트하고 말랑말랑한 음악을 하다 보니까 제 이미지를 순둥순둥하게만 보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 거 같아요. 이번에 “Malibu”도 섹시하게 만들어서 내자고 해서 한 건데, 댓글 보면 다 ‘아, 귀여워’ 이런 거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게 감사하긴 한데, 원치 않았던 거긴 해요. 약간 좀 재수 없나요? (웃음) 늘 타투를 더 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래서 타투를 더 한 것도 있어요. 반전을 주는 거죠. ‘나 그렇게 착하고 귀여운 사람 아니야’ 이런 걸 알려주고 싶은 거죠. (LE: 무대라든지, 공식적인 석상에서 언제쯤 몸을 볼 수 있을까요?) 이제 여름이니까 반팔 입고 공연하고 그러겠죠?

아무튼, 목이랑 새끼손가락에 한 타투에 관해서 말씀드리면요. 새끼손가락에 한 ‘X’ 자 타투는, 제가 뉴욕에서 되게 오랫동안 만났던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정말 의지했던 친구인데, 한국에 와서 지내다 보니까 헤어졌어요. 그래서 더 이상 나에게 약속을 하지 말자는 뜻이었어요. 그게 그냥 사람이 됐든, 연인이 됐든 누구와도 약속하지 말자, 어차피 약속이라는 건 다 깨질 거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목에 한 타투는 ‘love’인데, 목을 사용하는 사람이니까 무슨 말을 하든, 무슨 노래를 하든, 내용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쨌든 그 안에 사랑을 담아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라는 뜻이에요. 또 하나 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타투는 팔뚝 쪽에 있는 건데요. <백 투 더 퓨처>에 나오는 자동차 드로리안(DeLorean)인데, 고장 난 상태죠.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미래도 볼 수 없으니 현재에 충실하라는 뜻으로 새겼어요. 타투하시는 분 포트폴리오 보다가 영감을 얻어서 받은 거예요.





LE: 롱아일랜드를 이야기하시면서 동네가 워낙 평안하다고 하셨는데요. 과거 인터뷰에서 음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로 진실, 긍정, 경험을 꼽으셨잖아요. 아무래도 살았던 동네에서 영향 받은 부분도 있겠네요.

동네가 차분하고, 큰 일이 없고,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곳이다 보니 제 성격도 그런 걸 바라는 쪽이 된 거 같아요. 또, 제가 함께 어울렸던, 살아간 공동체가 신앙 공동체였어요. 그러다 보니 다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긍정을 추구하고, 좋은 것들을 바라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서울에서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어떻게 보면 완전 정반대인 곳이잖아요. 악이라는 단어는 너무 세지만, 여긴 악하면 얼마든지 악해질 수 있는 곳이잖아요. 그 점에서 흔들릴 때도 많았어요. 저에게 아직도 고민인 부분이에요. 한번은 인터뷰에서 한마디 했더니 뉴스 기사가 ‘여자, 술 욕설 하나도 안하는 래퍼가 되겠다’라는 타이틀로 나가더라고요. 그 말이 맞긴 맞는데, 그게 저한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제가 완벽한 사람도 아니고, 깨끗한 사람도 아니니까요. 어떨 때는 그렇게 잡힌 이미지가 부담스럽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사명감을 갖게 되기도 해요.

이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나는 게 제가 [HALO] 릴리즈 날 쇼케이스 공연을 했는데, 기자분들 모신 미디어 데이가 있었어요. 그때 기사가 막 났어요. ‘pH-1, 성적인 내용, 술, 욕설 필요 없어!’ 뭐 이런 식이었어요. 누가 그걸 힙합엘이에 ‘pH-1이 이렇다네요’라는 식으로 올린 거예요. 거기다 대고 사람들이 ‘지가 뭐 엄청 잘난 줄 아네’ 이런 식으로 욕을 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욕을 하려면 뭘 잡고도 욕을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좋은 내용을 말하고 싶다고 해도 잘난 척하냐면서 욕을 먹으니까 그때 참 씁쓸했어요. 마치 베지테리안이 베지테리안 부심 부리는 거 같다는 거죠.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닌데…





LE: 어찌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 서울이라는 도시는 악으로 가득 찼다기보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서 있기 힘든 곳인 거 같기도 해요. 다시 돌아오면, 사실 힙합이라는 문화, 장르 음악에서는 경쟁적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잖아요. 그래서 진실, 긍정, 경험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는 아티스트가 절대다수로 보았을 때 많은 비율을 차지하진 않는 거 같아요. 그만큼 음악적으로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가 누구일까 싶더라고요.

제가 가사로 쓰는 내용이나 생각은 제이콜(J. Cole)에게 가장 크게 영향받은 거 같아요. 목소리나 랩을 하는 방식은 맥 밀러(Mac Miller)나 빅 션(Big Sean)인 거 같고요. 그렇게 세 명이 저에게 영향을 준 탑 3에요. 제이콜만의 진지한 이야기를 너무 추상적이지 않게, 사람들이 바로 공감할 수 있게끔 풀어주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너무 좋아해요. 맥 밀러의 너무 노력하지 않는 멋을 사랑해서 저도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해요. 그래서 빡센 거 하는 제 모습이 가끔 오글거릴 때가 있어요. 이상하다는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빡센 랩을 하는 사람들이 오글거릴 때도 있고요. 막 악 써가면서 뭘 하려 하는 게 너무 많은 걸 드러내려고 하는 느낌이에요. 그런 요소를 필요로 하는 노래에서는 괜찮은데, 언제나 그렇게 해야 멋있고 노래가 잘된다고 생각하는 건 반대하는 편이죠.





LE: 앞서 말씀해주신 아티스트들도 다 멋있지만, pH-1 씨 최근 음악을 들으면서 아미네(Amine)도 꽤 자주 생각나더라고요.

아미네도 엄청 좋아해요. 특히, 아미네의 유머 코드를 되게 좋아해요. 뮤직비디오 측면에서도 아미네에게 영감을 받을 때가 많아요. 왜냐하면, 그 친구는 뮤직비디오를 멋 부려가면서 찍지 않고 재미있게 풀어내려고 하잖아요. 가사 내용이랑 전혀 상관없는 컨셉으로 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Malibu”도 내용은 어떻게 보면 관능적이지만, 뮤직비디오에서 저랑 더콰이엇, 모키오 셋이 나와서 여자, 술을 옆에 두고 반쯤 벗고 나오면 너무 뻔한 데다 저랑도 안 맞잖아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까 고민하다가 전혀 상관없는 컨셉으로 가자고 해서 지금처럼 나온 거죠. 위트 있는 게 많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요. 더콰이엇 씨는 이런 걸 많이 안 하셨잖아요. 그래서 더 뜻깊었어요. 제가 더콰이엇 씨에게 처음으로 뭔가를 시켰다는 느낌? (웃음) 본인도 이런 걸 안 해봤는데, 해보니까 재미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LE: 예전에 가장 자랑하고 싶은 트랙으로 “Perfect”를 꼽으신 적이 있었는데요. 그 노래가 가스펠 트랙을 샘플링해서인지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 같은 느낌이 있다 싶기도 했어요.

“Perfect”를 만들 때는 제가 하이어뮤직 멤버도 아니었고, 혼자 하던 때라 유튜브에서 타입 비트를 구하던 때였어요. 그게 챈스 더 래퍼 타입 비트예요. 밝은 분위기를 찾았고, 제 머릿속에서 밝고 신나는 분위기는 챈스 더 래퍼였으니까요. 그게 한국에서 저를 알리는 정식 데뷔곡이었죠. “Wavy”는 원래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걸 다시 발매한 정도였고요. 그 곡을 낸 이유가 당시에 더콰이엇 씨가 저를 본인 집으로 초대하셨어요. 제가 가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언을 구했어요. “제가 데뷔를 하고 싶은 곡이 있는데, 한번 들어봐 주시겠어요?”라고 하면서 들려드렸는데, “Perfect”가 아니었고 진짜 진지한 붐뱁 곡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pH-1이라는 아티스트는 오왼 오바도즈랑 하다 보니까 붐뱁으로 알려져 있었죠. 들으시더니 좋은데, 앨범의 4번 트랙 정도면 딱 좋지만 이걸로 데뷔하면 큰 관심을 못 받을 수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대중들이 조금 더 받아들이기 쉽고, 주목을 끌 수 있는 트랙이 더 좋을 거 같다고 하셔서 바로 집에 가서 만든 게 “Perfect”였어요. 그 “Perfect”로 재범이 형이 저랑 싸인을 한 거고요. 만난 날 헤어지면서 더콰이엇 씨가 “근데 pH-1 씨는 금방 어디 들어갈 거 같은데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후에 제가 하이어뮤직에 들어갔죠. 어떻게 보면 더콰이엇 씨가 대단한 거죠. 그때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어쨌든 도와주신 거잖아요. 언제든 피처링이든, 뭐가 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도와주겠다고도 하셨고요. 제 생각에 재범이 형도 그렇고, 롱런하고, 멋진 위치에서 리스펙을 받으면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후배 양성, 문화 발전에 진심으로 신경 쓰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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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역시 더콰이엇 씨는 미담이 파도 파도 계속 나오네요. (웃음) 더콰이엇 씨에게 처음 들려준 곡은 붐뱁이었다고 하셨는데, 랩 안에 멜로디를 섞기 시작한 게 어느 때부터인지,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이렇게 해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하이어뮤직에 들어가면서부터 제가 확 바뀐 거거든요. 하이어뮤직에 들어가면서 레이블이 있는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제 색을 만들어나갔어야 했어요. ‘나는 어떤 아티스트로 남고 싶은가?’를 계속 고민했죠. 일종의 브랜딩이죠. 랩을 잘하는 사람 참 많고, 붐뱁을 저보다 더 멋있게 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음악을 랩으로 시작하지 않았고, 밴드로 시작했잖아요. 그 점에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부분이 무엇이 있을까 싶었는데, 노래도 하고, 악기도 연주했다 보니 곡 컴포징, 어레인지먼트 부분에서 더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음악성을 보여줄 수 있는 타입으로 가자고 해서 멜로디컬하게 한 거고, 랩에 포커스를 덜 주는 대신 노래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걸 목표로 삼았어요. 좋은 점은 제 기준에서 밸런스가 좋은 노래들이 나온 거지만, 안 좋은 점은 사람들이 한 명의 래퍼로서 흥미를 잃지 않았나 싶은 부분이에요. (래퍼로) 쳐주지 않는 기분도 가끔은 들어요. 랩 빡세게 하는 사람 거론할 때 제 얘기는 안 하잖아요. 그걸 바라는 건 아니면서도 그 선택지를 하나 포기한 느낌이에요.





LE: 찾아보니까 이런 정보가 있더라고요.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 오디션으로 한국에 오실 뻔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혹시 노래하셨던 건가요, 랩하셨던 건가요?

랩으로 갔는데, 노래도 시켰어요. 노래를 했는데, 붙었다는 거예요. 제가 저에게 힙합을 알려준 제일 친한 형이랑 오디션을 같이 봤는데, 저만 붙고 이 형이 안 됐어요. 아무튼, 간다고 하고, 집에서 촬영도 다 했는데요. 나중에 전화해서 안 가겠다고 했죠.





LE: 보통 탑 라인이라고 하는 멜로디 메이킹 같은 부분까지 본인이 직접 즉각즉각 하시는 편인가요?

네, 다 제가 써요. 비트를 받으면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는 몇 번씩 들어요. 전체적인 흐름을 머릿속에 맵핑해놓고, 스튜디오 가서 앉을 때까지는 안 들어요. 가서 음악 틀자 마자 레코딩 누르고 그냥 막 여러 번 뱉어요. 그중에 좋은 걸 선정해서 맞춰 나가는 거죠. 첫 느낌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요. 너무 많이 들으면 첫 느낌이 없어지니까 헷갈리니까요. 그리고 처음 느낌이 왔을 때 뱉는 라인이 항상 최고였던 거 같아요.





LE: 첫 느낌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과거에 개발자 일하신 적도 있으니까 음악에 접근하는 사고방식도 궁금하더라고요.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일반 사람들과 똑같을 수 있겠지만, 무언가를 만든다고 했을 때는 개발자는 어떤 분명한 로직을 가지는 편이잖아요. 그래서 웹 개발을 했을 때의 경험이 음악을 만들 때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주는지 싶더라고요.

확실히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들은 머릿속에 논리정연하게 구조가 잡혀 있어요.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라는 생각이 있는데, 저도 논리정연하고 이론적인 사람이에요. 근데 음악을 할 때는 그것과 늘 싸우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로그래밍할 때의 사고방식은 노래할 때 꺼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꺼놓는 편이에요. 그 점에서 웹 개발과 음악을 병행했을 때 만든 곡들은 조금 더 틀에 갇혀 있었던 거 같아요. 구조가 정확하게 있는 편이었는데, 지금 들으면 많이 부족해요.





LE: 영감이란 게 참 아이러니하다 싶어요. 계획하고, 기획한 것보다 갑자기 팍 떠올라서 만든 게 좋을 때가 예술에서는 꽤 많다고들 하잖아요.

(영감이) 갑자기 올 때가 있죠. 음악을 메인으로 하면서 음악 작업을 하는 횟수가 잦아지니까 우연히, 실수로 뭔가를 했는데 그게 진짜 좋다든지 하는 경험이 꽤 있죠. 심지어 화를 내서 소리를 질렀는데,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걸 쓴 적도 있어요.





LE: [harry]부터 [HALO]까지는 기본적으로 그런 경험에 기반을 둔 곡이 많은 편인가요?

맞아요. 저랑 모키오의 성격이 그렇고, 순간적으로 팍 떠오르는 영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보컬적으로 완벽치 않아도 느낌적으로 맞다 싶으면 그냥 내요. 저희는 그런 부분에서 멋을 찾는 사람들인 거 같아요.





LE: 그렇게 만든 곡이 대중들의 반응으로 연결되는 걸 보면서 또 본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믿기도 할 거 같아요.

네, 그리고 옛날에는 폴리쉬한, 완벽하게 만든 게 좋다고 생각했으면, 지금은 여기저기 조금씩 해져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만든 곡을 들었는데 완벽하지 않아. 음정이 살짝 나가고, 박자가 살짝 밀렸어. 근데 좋다고 느끼면 그게 맞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생각이 많이 변한 거죠.





LE: 앞서 맥 밀러 얘기를 할 때와 맥락이 비슷한 거 같기도 하네요.

그렇죠. 그런 데서 또 배우는 거죠. 맥 밀러도 음정이 나갈 때도 있는데, ‘이게 왜 좋지?’라고 생각해보면 이 사람이 겪은 그 순간, 당시에 느낀 감정이 담겨 있는 거잖아요. 항상 정확한 노트를 치는 게 음악이 아니고 그때의 감정이 진실하게 담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LE: 확실히 창작이라는 게 힘 빼고 자연스럽게 해야 멋있게 나오는 거 같네요. 그런 자연스러운 스타일 때문인지, 보컬이 섞인 스타일을 선호하셔서 그런 건지 몰라도 알앤비 계열의 아티스트분들과 작업을 꽤 많이 하셨어요. 수란, 샘 옥(Sam Ock), 이바다, 주영, 마샬(MRSHLL) 씨 이런 분들과 콜라보하셨는데, 알앤비 아티스트분들과 함께하실 때 중점적으로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신지 싶어요. 이어서 본인 곡에서 완전한 노래만 하는 것도 욕심이 있으신지 싶어요.

함께 작업할 때는 최대한 이 노래의 분위기를 잘 살리자, 잘 소화하자는 제 메인 목적이고요. 제가 아예 완전 노래를 할 계획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면, 당연히 있어요. 이번에 “Malibu”와 같이 타이틀곡으로 나온 “Like Me”도 어떻게 보면 거의 노래에 가까워요. 그렇다고 진짜 알앤비 가수들처럼 ‘워어어어~’ 이런 걸 안 할 거고요. (전원 웃음) 그런 건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 근데 맥 밀러 정도의 선까지는 괜찮을 거 같아요. 그런 노래를 여성 보컬과 함께 꼭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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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이어서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The Island Kid] 이야기도 조금 해볼게요. 복잡한 감정이나 감성을 담아낸 앨범이었지만, 신파적으로 가지 않게 특유의 담백함과 세련됨으로 소화하신 것 같아요. 이 앨범을 만들 때 어떤 마인드셋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셨나요?

기본적으로 저는 감성적인 사람이에요. 가사를 쓸 때 의도치 않아도 감성적으로 나오는데, 말씀드렸듯이 저는 짜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감성적인 걸 할 때엔 감성적인 음악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그 감성에 공감하는 걸 원해요. 그렇지만 발라드랩은 싫어해요. 그 선을 늘 무의식적으로 조심하는 편이고, 그 당시에 감성적인 음악이 나왔던 이유는 그런 감정으로만 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이어뮤직이 막 만들어져서 저는 공연도 없었고, 레이블에서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니었어요. 반면, 그루비룸(GroovyRoom)이나 식케이(Sik-K) 같은 다른 아티스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걸 보면서 저 자신이 점점 낮아지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아요.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집이 그리운 마음도 더 있었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도 미국에 못 가니까 못 보고요. 그런 복합적인 요소가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The Island Kid]는 잘됐고 못됐고를 떠나서 저에겐 뜻 깊은 앨범이에요.





LE: 이야기 나누면서 자주 나오는 키워드 중 하나가 ‘자존감'이에요. “DVD”에서도 사랑스러운 음악 톤과 비교하면 가사가 우울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신 편인가 싶었어요.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자존감이 되게 낮아요. 낮고, 저 자신을 다른 사람들한테 많이 비교해요. 악플에 민감하고 상처를 잘 받아요. 항상 저 자신을 의심하고, ‘내 앨범은 별로인가? 별로겠지?’ 생각해요. 특히, 이번 앨범이 나오기 2주 전부터는 거의 그것만 계속 걱정했어요. ‘이 앨범 나오면 망할 것 같아. 사람들이 안 좋아하고 별로라고 할 거야’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DVD” 같은 노래도 나오는 것 같아요. 반주나 멜로디는 예쁘면서 가사는 쓸쓸한 거죠. 감정이 예민한 사람인 거죠.





LE: 요즘은 무엇에 가장 예민한 편이세요? 요즘 내가 제일 예민하게 생각하는 건 이거다.

제 뮤직비디오의 댓글들이요. 뮤직비디오라는 게 미팅 많이 하고 다 같이 논의해가면서 pH-1이라는 사람의 스타일과 색으로 만든 거라서 반응이 어떨지 계속 보게 돼요. 대부분 재밌다고 하시는데, 별로라는 반응이 몇 개 있으면 그것만 계속 생각나는 거죠. 얼마 전에는 <고등래퍼 3>에서 하선호(Sandy) 친구의 “I`m Fine”이라는 곡에 참여했는데, 비슷한 내용의 곡이었어요. 그래서인지 가사를 쓸 때 정말 쉽게 써지더라고요. 그 마음이 너무 잘 이해되니까요.





LE: 래퍼는 사람들에게 잦게 모습을 보이는 직업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직업적 특성과 성격이 그렇게 잘 맞는 편은 아닌 거 같기도 하네요.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있을 것 같고요.

맞아요. 잘 안 어울려요. 그래서 <쇼미더머니> 나갈 때도 컴퍼티션을 해야 하니까 많이 걱정했어요. 수퍼비(Superbee)를 보면서 감탄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저렇게 긴장도 안하고 즐기면서 재밌게 하지?’ 싶었어요. 랩을 시키면 바로 다다다 하고. 저는 긴장을 많이 했거든요, 관객들이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처음에 관객없이 프로듀서들만 보고 있을 때는 제가 평가당하고 다른 참가자들과 경쟁한다고 생각해서 긴장한 채로 가사를 틀리고 탈락했어요. 그게 다 평가와 시선에 대한 두려움 같은 데서 온거거든요. 전 정말 (래퍼랑) 안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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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래퍼라는 직업과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도 해주셨지만, 어쨌든 앨범은 앨범이니까 이제 이번 앨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우선, [HALO]에 관해 간단하게 소개 부탁 드릴게요.

[HALO]는 pH-1이라는 아티스트로서 내는 정규 1집이에요. ‘힙합 앨범’이라고 하면 앨범 전반에 어떤 줄거리가 있고, 그게 쭉 이어지는 영화 같은 장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그게 제 메인 포커스가 아니었어요. ‘어떻게 하면 pH-1이라는 사람의 음악적 색깔을 확실하게 도장을 찍을 수 있을까’가 제가 초점을 맞춘 부분이었어요. 나중에 리스너분들이 제 음악 중 어떤 것을 듣더라도 ‘이건 무조건 pH-1 스타일이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 정도의 각인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랩을 많이 하려 했어요. 많은 분께서 노래만 하는 모습으로만 저를 아시는 것 같아요. 특히, <쇼미더머니>를 통해 저를 처음 접한 팬분들이 많은데, 저를 ‘싱잉 랩'이라는 단어로만 알고 계신 게 마냥 좋지는 않더라고요. 제 음악적 색깔을 보여줌과 동시에 랩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pH-1이라는 색을 중심으로 다양한 색을 보여줬어요. 모순적으로 들릴 순 있지만, 들어보시면 알 수 있어요. 비트는 각각 다르지만, 모두 pH-1의 색으로 해석한 앨범인 거죠. 재밌게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LE: [HALO]의 뜻인 ‘Home Alone Lights Out’에서 ‘Home Alone’까지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미지 때문에 쉽게 받아들였는데, 불 꺼진 집이라는 뜻의 ‘Lights Out’을 앨범 제목에 포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록곡에 “Lights Out”이라는 곡이 따로 있기도 한데요. (제목에) ‘Lights Out’이 들어가야만 했던 이유는 ‘나는 자체 발광하는 사람이니까 불을 끄면 빛날 거야. 그때 너희가 보이나 보자’ 이런 뜻 때문이에요. 저는 스스로 만족하고 빛나는 사람이니까 다른 데에 의존하거나 힘을 빌려서, 혹은 자극적인 요소를 사용해야 할 필요 없이 혼자 빛날 거라고, 그래서 불을 끌 거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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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번 앨범 발매 이전에 나왔던 싱글들인 [harry], [loves], [staying]부터 이번 앨범까지, 작품들의 타이틀이 이어져서 하나의 문장을 이루잖아요. 애초에 [harry] 때부터 혹은 이전부터 계획적으로 지금 같은 콘셉트로 갈 큰 그림을 그렸던 건가요?

그렇죠. [harry], [loves], [staying] 커버 아트워크 촬영을 같은 곳에서 했어요. 각각 다른 모습으로 찍었는데, 마지막인 [HALO]는 같은 곳은 아니지만, 지붕 비슷한 곳에서 찍었어요. 마지막은 집 밖으로 나온 모습이거든요. 그 전에는 다 집안에 있는 모습이고요. 집 바로 앞에 소파에 앉아있거나 창문에 있다가 [HALO]에서 아예 지붕 위로 올라간 거죠. “Homebody”가 단순히 집에만 있는 거일 수도 있지만, 제 자신이나 어떤 틀 안에만 박혀 있는 걸 의미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집 밖으로 나왔으니) 이번엔 혼자서 괴로움을 갖고,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는 걸 극복하는 거죠.





LE: [HALO] 이야기를 하면서 당연히 프로덕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The Island Kid]도 그렇고, 이번 앨범에서도 모키오 씨가 전곡 프로듀싱을 도맡았어요. 모키오 씨는 떨스데이(Thurxday)일 때부터 pH-1 씨의 커리어에서 가장 많이 협업한 프로듀서인데요. 이렇게 같이 작업을 많이 한 이유, 본인이 생각하는 모키오 씨와의 케미스트리는 어떤지 싶어요.

일단 사람 대 사람으로 잘 맞고요. 저희는 어디를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과 만나고, 인맥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둘만 알고, 친하면 되는 스타일이에요. 같이 있을 때 말이 없어도 편하고, 좋아하는 음악도 비슷하고요. 다른 뛰어난 프로듀서들 많죠, 그루비룸, 우기(WOOGIE) 등 많은데, 제가 굳이 모키오랑 하는 이유는 이 친구는 다르기 때문이에요. 같은 힙합곡이라고 해도 이 친구 비트를 들으면 딱 알 수 있어요. ‘이건 모키오가 만들었구나’ 다른 프로듀서분들이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요즘 힙합곡, 멜로디컬한 비트를 듣다 보면 코드 진행 등이 제가 다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반면, 모키오는 가끔 딥하기도 하고, 실험적인 거 같기도 하면서 중간에 있어요. 대중들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만 실험적이에요. 그 부분에서 제가 도움을 많이 얻는 것 같아요. pH-1이라는 사람의 색깔에서 모키오가 빠지면 안 되는 거죠. 





LE: 모키오라고 이름을 바꾸신 이후에 스타일이 더 확고해지신 것 같더라고요.

전 모키오의 의견은 모르지만 제 생각에는 모키오도 거의 저랑만 작업했어요. 섭외가 들어와도 잘 안 해요. 관심이 없대요. 저랑만 하면서도 이 친구도 변화를 하는 것 같아요. 가만히 내버려두면 모키오의 음악은 한없이 딥하고 우울해요. 그런데 저랑 할 때는 대중성을 살짝 곁들이게 돼요. 그렇게 서로서로 도와주는 것 같아요.





LE: [The Island Kid] 때도 작업을 같이 하셨지만, 이번 앨범은 그때와 비교해서 색깔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폭이 더 넓어졌다고 할까요? 재지한 느낌부터 EDM까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프로덕션적인 측면에서 모키오 씨와 특별히 상의한 부분이 있는지 싶은데요.

상의한 부분도 있고, 모키오가 그냥 혼자 만들어 놓은 걸 들려준 경우도 많아요. 어쨌든 제 정규니까 사람들 기억에 남게끔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열 세곡 전부 기존에 달달한 감성의 멜로디컬한 음악으로만 채우면 저는 그렇게만 인식되고 끝이 날 것 같았어요. 그 틀을 깨고 싶었고, 멋있는 걸 많이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Lights Out”이나 “Olaf”, “Malibu” 같은 곡도 들어갔어요. 타이틀 “Like Me” 같은 경우에는 제가 제시한 거예요. 다른 곡들 다 멋있는데, 그래도 대중들이 바라는 게 있으니까 타이틀 하나 정도는 아예 마음먹고 메인스트림 하게 만들어보자고 하고 만든 게 “Like Me”에요. 우리가 좋아하는 스타일대로 만들었던 게 “Malibu”였고요. 하나를 대중들이 바랄 것 같은 거로 만들고, 다른 하나를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대로 멋있게 만들었을 때 뭐가 더 반응이 좋을까 일종의 실험을 해본 거예요.




결론적으로는 둘 다 좋아해 주시는 거 같아요. 여성분들은 “Like Me”를 좀 더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절대 오지 않던 남자분들의 DM이 “Malibu” 낸 다음에 많이 오기 시작했어요. 하이어뮤직 팬 중에 여성분들이 많다 보니 그간 DM이 와도 거의 99% 여성분이었거든요. 남성분들은 저를 안 쳐주시나 봐요. (전원 웃음) 근데 이번에는 ‘형, "Malibu" 정말 좋아요’ ‘“Malibu”, “Olaf” 좋았어요.’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면서 빡센 곡들을 많이 언급하셔서 뜻깊었어요.





LE: 앨범 전반적으로 초반보다 후반에 기존의 스타일과 다른 트랙들이 포진된 거 같아요. 구성, 흐름상 특별히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요?

트랙리스트를 만들 때 많은 공을 들이긴 했는데, 의도적으로 후반부에 그런 곡들을 배치한 건 아니었어요. ‘나를 떠올렸을 때 의외인 곡은 뒤로 빼자’라는 생각은 없었는데, 대신 사운드적인 흐름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1번, 2번, 3번 넘어갈 때 뭔가 갑작스럽다는 느낌을 안 주게끔 트랙 간 분위기 높낮이를 생각해서 앨범을 만들었어요.





LE: 앞서 마냥 긍정적이고 유해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고 마음속에 가시 같은 게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면모가 “너무 싫어” 같은 곡에서 드러나는 거 같아요. 이런 류의 메시지를 드러낼 때 아무래도 음악적인 톤과 메시지 사이에 이질적인 느낌이 있으니 매칭할 때 유의하는 부분이 있을 거 같아요.

저는 무조건 선을 지켜요. “너무 싫어" 같은 곡도 그 사람이 진짜 싫은데, 이걸 듣고 이 사람이 정말 상처를 받으면 안 돼요. 재치 있게 싫다고 해야 하니까 일부러 더 밝은 곡에서 까요. 비트가 엄청 다크한 트랩인데, 거기다가 막 ‘아, 너무 싫어!’ (전원 웃음) 이러면 너무 강력한 메시지가 되고 진지해져요. 그리고 너무 짜쳐요. 오히려 상반된 스타일의 밝고 통통 튀는 곡에다가 싫다고 하면 위트가 생기잖아요.





LE: 약간 듣고서 화내면 쪼잔해지는 듯한 느낌인 거 같네요. (웃음). “Push Me”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 근데 “Push Me”는 제가 정말로 화가 나서 만든 곡이에요. 제가 처음으로 진짜 빡쳐서 만들었어요. 그때 저에게 익명으로 욕을 하시던 분들이 있었어요. 어디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어서,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저에게 익명으로 무조건 욕을 했단 말이에요. 제 가족이나 지인들한테까지 메시지를 보내면서 이간질을 하는 일도 있었어요. 그때 너무 화가 나서 자리에 앉아서 바로 만든 게 “Push Me”예요. 욕만 하지 않았지, 정말 화가 나고 짜증이 나 있는 가사였어요. 근데 저 혼자 다 하면 좀 그러니까 피처링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이야기에 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누굴까 했는데, 당연히 오왼 오바도즈와 팔로알토(Paloalto) 형이 생각났어요. 두 분이 함께 각자의 고충을 풀어주셨어요. (인터넷에서) 모두 상처받은 적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LE: 예전에 인스타 스토리로 평화를 원한다는 투의 멘트를 적어서 올리셨던 게 생각나네요.

그때 식케이 일 때문에 쓰게 된 거였는데, 항상 갖고 있던 생각이 터진 거죠. 식케이를 떠나서 인터넷에서 래퍼 순위 매기는 거 좋아하고, 레이블 평가하면서 ‘A 레이블은 B 레이블에 못 비비지, 발리지’ 이런 거 많이 하잖아요. 래퍼들은 눈팅을 많이 하는데, 저희도 사람인지라 서로 암묵적인 경쟁심이나 질투, 레이블끼리의 괜한 기류가 생긴단 말이에요. 지금 힙합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서로를 도와도 모자랄 판에 불필요한 경쟁을 하게 되어버리는 거죠. 그리고 디스를 하거나 이름 언급을 해야 관심을 갖는 게 답답하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또 ‘왜 얘는 갑자기?' 이런 식으로 반응하시기도 하더라고요.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데, 신경 안 쓰고 싶어도 한국에서 제일 활발한 커뮤니티 중 하나가 힙합엘이잖아요. 여기서 나오는 말들로 좌지우지되는 부분이 있어요. 이분들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앨범 평, 판매량, 아티스트의 이미지 등…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무시는 못해요.





LE: 빡센 곡이라고 말씀하신 “Olaf” 얘기도 조금 해볼까요? “Olaf”는 평소 pH-1 씨의 음악에서 자주 들을 수 없었던, 어쩌면 의외의 트랩 넘버예요. 또 영화에 나오는 올라프의 귀여운 이미지와 상반되는 측면도 있는데요.

이 곡은 원래 저 혼자 끝냈던 트랙이었는데 그땐 제 벌스가 하나 더 있었어요. 그 벌스가 다 한국어였고, ‘하이어뮤직에 왔을 때, 너희는 아무것도 못 하고 꼼짝 얼어서 우리만 본다' 이런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Standing Like a Snowman’이라는 훅이 나왔던 거예요. 그러다 나중에 1절이 빠지고 쿠기(Coogie)가 들어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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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앨범의 참여진을 보면 프레쉬한 느낌을 가진 분들과 작업하신 거 같아요. 쿠기 씨, 오왼 오바도즈 씨, 팔로알토 씨, 장석훈 씨, 테드 팍(Ted Park) 씨 이렇게 있죠. 참여진을 선정한 기준이 따로 있었는지 혹은 작업하면서 있었던 일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일단, 이번 앨범에는 하이어뮤직 아티스트를 넣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재범이 형이랑 지소울(G.Soul) 형은 들어갔지만, 재범이 형은 뭔가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거라… (전원 웃음) “Till I Die”는 재범이 형이 안 하면 안 되는 트랙이라 넣었고, 지소울 형이랑 한 건 우연히 된 거였어요. 어쨌든 저의 기준은 될 수 있으면 하온이, 식케이, 우디 고차일드(Woodie Gochild)랑 같이 하지 말자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저희는 컴필레이션 앨범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참여진이) 너무 겹칠 거 같았어요. 피처링 진으로 선정한 아티스트는 기본적으로 아티스트 대 아티스트로 리스펙하는 사람들이에요. 개인적인 시간에 즐겨 들을 정도로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라서 이번 기회에 같이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곡마다 누구의 목소리나 에너지를 넣으면 이걸 완성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온 결과물들이에요.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기보다는 그냥 재미있었던 건 “Lights Out” 같은 경우에는 원래는 장석훈 씨가 아니라 키드밀리(Kid Milli)한테 보냈던 트랙이었어요. 워낙 곡 자체가 키드밀리한테 어울릴 비트라서요. <쇼미더머니> 전에 키드밀리랑 모르는 사이일 때 인스타로 이야기해서 비트를 보내줬었는데, 당시에 키드밀리가 스케줄 이유로 못하게 됐어요. 그래서 장석훈 씨랑 하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장석훈 씨가 바밍타이거(Balming Tiger)로 막 나왔을 때라서 제가 디깅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앨범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엄청 오래 흘렀어요. 앨범이 나오기 전에 장석훈 씨는 크러쉬(Crush) 씨 거도 하고, 키드 밀리 거 하고, 또 누구랑 한 거 막 나오고… (전원 웃음) 스타쉽 엔터테인먼트(Starship Entertainment)에 들어가시더니 이름을 장석훈으로 바꾼 거예요. 사실 ‘Feat. Byung Un of Balming Tiger’였으면 더 멋있었을 거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전원 웃음) 조금 아쉽더라고요. 이름을 바꾸시면서 음악 색도 바뀌었잖아요. 그 이름이 노래랑 워낙 안 어울리니까 모키오한테 이름 좀 빼고 싶다고 했어요. (웃음)

그리고 [HALO]가 나오고 난 뒤에 많은 아티스트가 샤라웃을 해줬는데요. 그중에는 키드 밀리가 있었고, (그 친구한테) DM도 왔었는데, ‘형! “Lights Out” 개 미쳤네요!’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야, 이거 내가 너한테 비트 보냈던 거잖아”라고 하니까 (전원 웃음) “아, 진짜요? 내가 이거 왜 안 했지?”라고 하더라고요.





LE: “Lights Out” 작업기를 들어보면 [harry], [loves], [staying] 그리고 [HALO]까지, <쇼미더머니>와 무관하게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계셨던 거겠네요. 앨범을 작업하던 도중에 <쇼미더머니>라는 큰 이벤트가 끼어 있다 보니 후속 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 흔들리는 부분은 없었는지 궁금하고, 혹은 이전에 만들었던 게 다르게 보인 적은 없었는지 싶은데요.

아니요. 그런 부분은 없었어요. “Alright”이나 “너무 싫어”는 2017년에 만들었던 거였어요. 어떤 분들은 <쇼미더머니> 출연 전과 후로 음악 성향이 바뀌잖아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는 프로그램에 우승하러 나온 게 아니었어요. 기존에 하던 음악색을 알리고, 브랜딩을 확실히 하는 게 목적이어서 방송에 나온 뒤에도 <쇼미더머니>에서 냈던 음악들이랑 지금 내는 음악들이랑 크게 안 달라요. 다행이에요. 달라지면 싫어하시는 분이 계시잖아요. 변했다고, 초심 잃었다고. (전원 웃음)





LE: “Dirty Nikes”는 앞 트랙과 연결되어서 인트로가 나오는데, 이것도 흐름을 생각해서 설치해둔 장치 같아요. 보통 나이키 신발은 음악에서 여러 가지 상징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중에서 더럽다는 뜻의 ‘Dirty’를 붙인 “Dirty Nikes”로는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었나요?

미국에 그런 말이 있어요. ‘서로 신발을 바꿔 신어봐라. 네가 남의 입장이 되어 봐라.’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Dirty Nikes’라고 한 건 그 사람이 지나온 길이 있다 보니 신발이 더러워졌고, 이 더러운 신발을 네가 신어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어려웠었는지, 힘들었었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서로 욕하지 말고, ‘내로남불’ 하지 말고, 이해하자는 거죠.





LE: 이리저리 건너오다 보면 “메이킹필름”이라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까지 도달해요. 어떻게 보면 앨범의 진짜 아웃트로는 “Till I Die”인 거 같고, “메이킹필름”은 보너스 트랙, 엔딩 크레딧 같다는 느낌이었는데요. 내용을 보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유명세를 기준으로 바뀐 거로 보여요. 실제로 그런지, 또 그때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들을 받아들이는지 싶은데요.

“메이킹필름”은 비트를 만들 때부터 ‘이 곡은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넣자’라고 생각해서 만든 트랙이에요. 이 노래는 1절에서 피치 다운이 되는데,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저한테 하는 말들을 넣은 거예요. ‘유명해졌으니까 돈도 많이 벌지? 좋지? 참 좋겠다’ 이런 내용이 있잖아요. 어림잡아 저를 단정하고, 제 삶이 좋을 거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 모르면서 하는 말들이죠. 어찌 보면 “Hate You”랑 비슷한 결의 곡이죠. 두 번째 벌스에서는 좀 더 메인에 가까운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우리는 연예인들의 삶을 보면서 좋다고만 생각하고, 나의 ‘최애’ 래퍼가 랩을 안 할 때는 뭘 하는지를 궁금하고, 24시간 이 사람의 삶을 궁금해하잖아요. 그런데 네가 믿는 사람도 두 가지의 삶을 살 수 있는 거고, 믿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보고 단정 짓지 말기를 바란다는 거죠.

‘메이킹필름’이란 키워드를 사용한 건 우리가 메이킹필름이란 영상을 좋아하는 이유가 꾸며지지 않고, 각본이 없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 수 있고, 연예인의 평상시 모습을 볼 수 있어서잖아요. 그런데 마지막에 ‘메이킹필름도 각본일 수 있어. 조심해’라는 식으로 끝나요. 메이킹 필름을 만들 때도 어떻게 할 거라고 말한 다음에 찍는 경우도 있잖아요. 다시 말해서 믿을 게 하나 없으니 내가 되었든, 어떤 아티스트가 되었든, 보이는 그대로 믿거나 판단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곡에 담았어요.





LE: 주변 사람 중에 ‘나를 이렇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게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본인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덜 친한 사람들이 많지 않나요?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거 같은데요.

정말 친한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물론, 그런 친구들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그러지 않죠. 그런데 진짜 오랫동안 연락 안했던 사람인데, 연락이 와서 한다는 말이 “야 연예인 다 되었네?” 같은 말이면 정말 꼴 보기 싫어요. 예를 들면, 고등학생 때 친해서 이야기 잠깐 했던 애가 서른 될 때까지 연락 안 하다가 갑자기 결혼식 축가 해달라 하고. (전원 웃음) 자기 친구가 팬인데 싸인을 해서 보내 달라, 영상을 찍어서 하나만 보내 달라 이런 부탁 같은 게 지치더라고요.




LE: “iffy”가 나올 때 딩고 프리스타일(Dingo Freestyle)과의 인터뷰에서 하이어뮤직에 들어오게 된 소감을 ‘감개무량’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는 모습을 노래하기도 한 지금 시점에서는 ‘격세지감’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2016년 [‘15] 믹스테입 때부터 2019년 [HALO]까지, 짧지만 꽤나 알찼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한 지난 2, 3년 정도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되게 클리셰한 대답일 수도 있는데, 저는 감사한 생각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힙합이 지금처럼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힙합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셀 수도 없이 많아요. 레이블을 들어가고 싶고, 공연을 하고 싶고,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중에 한 명인 저는 인맥 없이 무작정 미국에서 살다가, 스물여덟에 한국에 와서 2년이란 시간 안에 지금까지 온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감사할 수밖에 없어요. 가끔 생각하다 보면 믿을 수가 없어요. ‘왜 내가 이렇게 되었지?’, ‘내가 이 정도의 가치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왜 내가 여기까지 오는 사람으로 선택이 된 거지?’,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된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저의 자리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을 거 아니에요. 저는 이게 힘들다고 징징대도, 누가 보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잖아요. 이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거고, 한순간에 없어질 수도 있는 거니 그저 열심히 하는 거죠.





LE: 래퍼로서 잘 되고 싶은 분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pH-1 씨가 생각하시기에 본인이랑 캐릭터나 혹은 성격이 비슷한데, 힙합을 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격려의 한 마디 건네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음악이 아니면 진짜 안 되는 사람이라면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 음악 없으면 안 돼, 다른 일 못 하겠어”라고 말은 하는데. 게으름 피우거나 놀러 다니는 사람 많단 말이에요. 그런 사람은 안될 거예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어리지 않은 나이까지 다른 일로 버티다가 늦은 나이에 음악을 하기 위해 한국에 온 거잖아요. 저는 돌아갈 길이 없으니까 죽을 듯이 한 거예요. 음악 계속 만들고, 만날 사람 만나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고… 그런 비장한 각오로 했으면 좋겠어요. 노이즈 마케팅 같은 거에 중점을 두지 않았으면 싶고요. 가끔은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러니 본인의 음악색이나 음악성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데에 더 힘을 쓰면 그 사람은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자기 거를 구축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을 다 응원해주고 싶어요. 반면에 멋 부리고 싶고, 래퍼들이 얻는 유명세를 원해서 음악을 한다고 하면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힘든 점도 진짜 많거든요. 꿈이 신기루처럼 깨질 거예요. 겉모습만 보면 실망밖에 안 할 거예요.





LE: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네요. (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난 인터뷰를 찾아보니까 약한 히어로를 좋아한다고 말슴하셨어요.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는 누구이고, 아티스트로서의 pH-1은 어떤 히어로인가요? 아니면 앞으로 어떤 히어로 같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식도 좋을 거 같아요.

스스로 슈퍼히어로에 비유할 때, 저는 흔히 스파이더맨을 이야기해요. 스파이더맨은 보통 사람인데 (거미에 물려서) 능력을 부여받았잖아요. 아픔도 있고, 어려움도 있지만, 항상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노력하는 사람이고요. 또, 뉴욕 출신이잖아요. (전원 웃음) 그래서 저는 (히어로로 치면) 스파이더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음악적으로 봤을 때,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부풀려서 과장하지 않고, 진솔하고 투명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싶어요. 없는데 있는 척한다든지, 이런 데 저런 척하는 게 아니고. 제가 말하는 음악은 다 진실이길 바라는 거 같아요. 엄청난 멋은 없을지언정, 좀 더 공감되는 사람, 히어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제가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거 같아요. 스파이더맨이 슈퍼맨처럼 우주를 막 날아다니는 사람은 아니고 좀 약하지만, 사람들이 공감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잖아요. 저도 그런 아티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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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준비한 질문은 모두 소화하셨는데요. 혹시 미처 하시지 못한 말이 남아 있을까요?

힙합엘이 유저들에게 한마디만 할게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아티스트들은 되게 마음이 연약하고, 다 똑같은 사람이에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피드백을 신경 안 쓰는 거 같으면서도 신경을 많이 쓴단 말이에요. 표현의 자유라는 말 아래 간혹 생각을 두 번 안 하고 뱉는 여러분들의 말에 아티스트는 상처를 받을 때가 많아요. 앞으로의 작업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많고, 슬럼프가 올 때도 있어요. 여러분들이 아티스트의 커리어와 이미지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이 있다는 것만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너무 팔짱 끼고 구린 점만 찾아서 이야기하시기보다 왜 힙합을 좋아하게 되었고,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조금만 되짚어서 팬 혹은 리스너의 입장에서 건전한 스탠스를 취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문화를 이끌어 가는 데는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리스너 역시 큰 몫을 하고 있거든요. 다 같이 좋은 문화를 이끌어가고, 그걸 지향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LE: 인터뷰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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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o, lim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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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 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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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 4.30 14:09

    되게 좋은 말이 많네요 잘 읽었습니다!!

  • 1 4.30 15:28
    <p>이번 정규 정말 잘 들었습니다.</p>
    <p>인터뷰 보니까 다시 한 번 정규 돌리러 거야겠네요</p>
    <p>너무 좋은 사람이라는게 느껴지네요. 화이팅</p>
  • 4.30 18:14

    좋은 내용으로 말한다고 해도 잘난척 하냐며 하는 구절은 진짜 씁쓸한게 느껴지는거 같네요ㅠㅠ


     


    인터뷰 잘 봤어요 앨범도 돌리면서 같이 보니까 더 좋네요!

  • 4.30 18:52

    앞으로도 좋은 앨범 많이 만들어 주세요! 잘 읽었어요

  • 4.30 20:28

    평소에 LE를 자주 보진 않지만 치원 님 인터뷰가 올라왔다는 소식을 보고 바로 달려왔어요. 평소에도 DM으로 응원의 말이나 음악을 너무 잘 들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는데 직접 메세지를 보낸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바쁘기도 하고, ㅠ 다 핑계겠지만 마침 인터뷰 읽고 난 지금 치원 님한테 댓글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 이번 인터뷰 댓글 읽어 주시겠죠...? 음악은 이미 CD까지 살 정도로 너무 잘 듣고 있고, 오늘 인터뷰도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배운 점도 많은 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남자팬 입니다!! 이번 앨범 전부터요 ㅋㅋ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음... 치원 님한테 정말 많은, 좋은 에너지를 얻어 간다는 팬 입장의 표현을 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나올 음악도 항상 기대할게요!

  • 5.1 00:17

    피에이치원님 이전에는 제 취향이 아니라 생각해서 잘 듣지 않았었는데 이번 앨범 참 좋네요 ㅎㅎ 좋은 음악 감사드립니다

  • 5.1 02:51

    나 이제 형꺼 들을때도 고추한테 경고하고 들어.. 형 최고야..

  • 5.1 16:08

    이번 앨범 이제와서 듣고 있엇는데 마침 인터뷰도 너무 좋아서 로그인햇슴미다..

     

    "perfect" 첨들엇슬때가 생각나내요.. 화이팅

  • 5.3 03:09

     생각이 깊어지네요.  

  • 5.5 11:31

    준원아 사랑해 ~~~~~~

  • 8.27 15:02

    와.. 밴드 출신 랩퍼였구나.

    곡이 시계 속 톱니바퀴들처럼 맞물려돌아가는 느낌.

    가사는 끝내주게 매끄럽다.나의 넘버원 랩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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