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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란지의 동네에 온 걸 환영해!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9.04.14 03:59추천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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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상반기부터 대중음악계는 올해의 앨범으로 꼽을 만한 작품들로 가득하다. 마기 로저스(Maggie Rogers)부터 리틀 심즈(Little Simz)까지, 각 장르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이 자신의 개성을 듬뿍 녹여낸 앨범들을 발표했다. 알앤비/소울 음악 씬에서도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가 지난 3월 1일 발매되었다. 바로 솔란지(Solange)의 네 번째 정규작 [When I Get Home]이다. 발매일부터 심상치 않은 작품이다. 3월 1일은 블랙 뮤직 히스토리 먼스(Black Music History Month)가 끝나는 다음 날이자 여성 역사의 달이 시작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솔란지 역시 앨범 발매 전부터 블랙플래닛(BlackPlanet)이라는 이름의 웹 커뮤니티에 티저 이미지와 영상을 공개해 대중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의 앨범에는 휴스턴이라는 지역 그 자체와 문화, 그리고 이곳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많고 많은 미국의 여러 지역 중에서 왜 휴스턴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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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란지, 그리고 휴스턴

휴스턴은 텍사스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미국 전체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솔란지-비욘세(Beyonce) 자매가 태어난 고향인 곳이기도 하다. 이들이 휴스턴 출신인 건 당장 위키피디아에 휴스턴을 검색하면 출신 인물로 둘이 뜰 정도로 유명한 사실이다. 비욘세는 이미 “Blow”와 “No Angel” 뮤직비디오를 통해 휴스턴을 담아 지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솔란지 역시 휴스턴의 주차장에서 “Lovers In The Parking Lot”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많은 추억을 함께한 장소인 만큼 휴스턴에 대한 애착이 당연히 남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솔란지가 단지 주체할 수 없는 애향심 때문에 이번 앨범을 만든 건 아니다. 그는 2016년 [A Seat at the Table]을 만든 뒤, 2017년이 되어 신경계에 문제가 생겨 활동을 잠시 중단한 적 있다. 다행히도 1년 뒤에 새로운 앨범을 작업한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팬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때 솔란지는 고향으로 내려가 마음과 몸을 회복하면서 ‘자유로운 경험’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자유로운 경험은 휴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프라인 앨범 감상회에 따르면, 그는 휴스턴의 써드 워드(Third Ward)에 있는 위치타 거리(Wichita Street)의 한 집을 빌려 스튜디오를 차린 뒤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또한, 휴스턴에서 만트라(명상 혹은 기도 때 외우는 주문)를 통해 의식을 확장함은 물론, 두려움을 없애고 정신적, 육체적 믿음을 강화했다고 한다. 그로써 얻은 마음의 울림을 음악과 행동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처럼 휴스턴은 솔란지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장소다.

♬ Solange - Lovers In The Parking Lot

그 영향을 디테일하게 알기 위해서는 휴스턴이라는 지역을 더욱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솔란지는 앞서 언급한 써드 워드에서 나고 자랐다. 써드 워드는 흑인 거주 지역이자 블랙 커뮤니티 문화의 상징적인 지역이다. 1960년대부터 이 지역에 거주하는 블루스 뮤지션들은 맥주에 감기약을 섞어 일종의 퍼플 드링크(Purple Drank, 린(Lean)이 동의어로 쓰인다)를 만들어 마셨다. 이후, 퍼플 드링크는 휴스턴은 물론, 현대의 힙합 뮤지션들에게 널리 애용되며 힙합 문화 속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토론토 출신의 드레이크(Drake)도 “Days In The East”에서 샤라웃했던 만큼 써드 워드는 힙합 뮤지션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써드 워드에서 이번 앨범을 만든 솔란지는 자신의 특별한 추억이 있는 장소를 가져와 수록곡의 타이틀을 짓기도 했다. 이는 솔란지의 어머니 티나 놀스(Tina Knowles)의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게시물에서 그는 딸의 새 앨범 발매를 축하하며, 몇몇 곡의 제목이 그의 가족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풀이해 주었다. 우선, 엑시트 스콧(Exit Scott)과 알메다(Almeda)는 어릴 적 살던 집 근처에 있는 휴스턴의 거리와 지명이다. 솔란지의 가족은 이곳에서 휴스턴식 치밥(Chicken and Red Beans and Rice)과 쉬림프 샌드위치를 즐겨 사 먹었다고 한다. 더불어 빈즈(Binz)는 과거에 살았던 옛집이 있던 거리를 뜻하며, 벨트웨이(Beltway)는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이 “Wake Up”에서 인용했듯 휴스턴의 고속도로를 의미한다. 이처럼 솔란지는 자기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자 휴스턴의 이모저모를 앨범에 담아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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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란지, 휴스턴, 그리고 음악

솔란지의 노력은 [When I Get Home]의 실제 음악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휴스턴은 더리 사우스부터 현재의 트랩에 이르기까지 남부 힙합 음악의 중심지이자 게토 보이즈(Geto Boys), 트래비스 스캇 등 많은 래퍼를 배출한 지역이다. 힙합 음악 안에서 널리 쓰이는 찹드 앤 스크류드(Chopped & Screwed) 기법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이 기법은 휴스턴의 전설적인 DJ인 스크류(Screw)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Not Screwed!”의 타이틀 역시 DJ 스크류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퍼플 드링크를 애용했고, 이를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원곡의 피치를 낮춰 음악을 부드럽게 만들었고, 특정 구간을 반복해서 틀어 가사를 강조했다. 여기에 몽롱한 무드를 강조하기까지 하며 듣는 이에게 퍼플 드링크를 복용할 때 오는 환각 효과와 흡사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1960, 1970년대에 LSD와 싸이키델릭 음악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찹드 앤 스크류드 기법과 퍼플 드링크는 2010년대의 힙합 음악가에게 널리 쓰이고 있다. 솔란지도 찹드 앤 스크류드 기법을 이번 앨범 전반에서 활용한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Things I Imagined”에서는 해당 기법의 특징에 맞게 목소리를 변화시키고, 특정 구절을 계속해서 부른다. 뒤이어 나오는 “S McGregor”에서도 샘플을 찹핑해서 반복한다. 이 밖에도 솔란지는 휴스턴 힙합의 대표 래퍼들을 앨범에 끌어와 지역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Dreams”와 “Time (Is)”가 대표적이다. 전자에는 데빈 더 듀드(Devin The Dude), 후자에는 스카페이스(Scarface)가 참여해 목소리를 보탰다.

♬ Solange - Things I Imagined / Down with the Clique

다른 측면에도 주목해보자. 솔란지는 같은 지역 출신의 드러머 자미르 윌리엄스(Jamire Willams)를 기용하는 등 코스믹 재즈(Cosmic Jazz)의 요소를 작품 전체에 녹여냈다. 코스믹 재즈는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우주를 소재로 다루는 재즈 음악이라 정의할 수 있으며,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선 라(Sun Ra)가 있다. 솔란지는 전작 [A Seat at the Table]을 발표한 이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선 라의 팬임을 밝힌 바 있다. 선 라는 이집트의 문화와 우주의 이미지를 결합한 비주얼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음악을 선보이며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음악으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토성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등 여러모로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도 여겨진다. 다시 돌아가면, 코스믹 재즈는 유사과학과 같은 영적 체험, 신비주의 사상과 연관이 있어 넓게는 뉴에이지(New Age) 음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When I Get Home]에서도 뉴에이지의 요소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이번 앨범의 주된 프로덕션을 담당한 존 캐롤 커비(John Carroll Kirby)의 음악색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러한 코스믹 재즈는 휴스턴과 꽤 깊은 관계가 있다. 휴스턴은 나사(NASA)의 관제 센터인 미국 항공우주국 존슨 우주 센터(Lyndon B. Johnson Space Center)를 갖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항공우주산업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다. 우주 소재 영화에서 휴스턴이 클리셰로 언급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선 라는 나사의 예술 지원 사업에 지원서를 썼던 이력이 있다. 영화 <Space Is The Place>에서 나사의 과학자들에게 납치당하는 모습을 연기한 적도 있다. 휴스턴이 알게 모르게 선 라, 그리고 그에게 영감을 얻은 솔란지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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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란지, 휴스턴, 음악, 그리고 흑인

솔란지는 [A Seat at the Table]에서 자신의 부모님과 마스터 피(Master P)의 나레이션을 통해 앨범의 서사를 이끌어 간다. [When I Get Home]도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써드 워드 지역 출신 예술가들의 목소리와 작품을 가져와 앨범을 전개해 나간 것이다. 이를 두고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첫 번째는 다양한 참여진을 끌어들여 솔란지 본인의 세계를 넓히려 한 점이다. 실제로 그는 어떤 레퍼런스도 제시하지 않고 이번 앨범을 작업할 때 스튜디오 초청한 음악가들에게 전적으로 작업을 맡겼다. 자신이 담아내려 한 표현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른 맥락을 부여하려 한 점이다. 특히, 스킷 개념의 인털루드(interlude) 트랙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이름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휴스턴의 지명에서 타이틀을 따온 “S McGregor”에서는 휴스턴 출신의 자매 배우인 데비 알렌(Debbie Allen)과 필리샤 라샤드(Phylicia Rashad)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곡에서 자매는 자신의 어머니인 시인 비비안 에이어스(Vivian Ayers)의 <On Status>를 낭독한다. “Exit Scott”에서는 휴스턴 출신의 레즈비언 시인인 팻 파커(Pat Parker)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솔란지는 같은 동향인 여성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빌려와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는 건 물론, 흑인 여성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강조하며 연대를 꾀한다. “Can I Hold the Mic”, “We Deal With the Freak’n”도 마찬가지다. 이 트랙에서 솔란지는 같은 지역은 아니지만, 여성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샘플링해 삽입했다. 앞서 설명한 솔란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이다.

♬ Solange - Beltway

연대의 메시지는 서두에서 말한 블랙플래닛에서도 드러난다. 솔란지는 트위터 이전에 소통의 장이었던 마이스페이스(MySpace)와 흡사한 커뮤니티를 개설했고, 흑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자부심을 드러내게끔 유도했다. 그의 메시지는 앨범 발매와 함께 애플 뮤직(Apple Music)에 공개된 비주얼 필름에도 담겨 있다. 비디오에서 솔란지는 우주선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에 수많은 흑인 출연자와 함께 등장해 춤을 추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무늬를 만들어나간다. 이는 코스믹 재즈와 싸이키델릭 소울 음악에서 차용하는 아프로퓨처리즘을 뮤직비디오의 배경과 장면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비주얼 필름은 블랙 카우보이(Black Cowboy)의 모습까지 담아낸다. 기본적으로는 휴스턴이 카우보이의 주 활동 지역임을 반영한 거겠지만, 조금 더 넓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서부극을 많이 본 이들에게 흑인 카우보이는 생소한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부극은 화이트 워싱(Whitewashing, 타인종의 문화를 백인 문화처럼 드러내는 것)이 만들어 낸 환상이다. 카우보이는 노동력이 많이 요구되는 직업인 데다 직업의 성격상 고독과 피로에 시달려야만 했다. 또한, 미국의 남북 전쟁이 끝나면서 자유를 찾게 된 흑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쉽게 인정받을 수 있어 택했던 직업이기도 하다. 카우보이 중에서 백인보다는 히스패닉, 흑인의 비중이 월등히 높았던 이유다. 알고 보면 흑인 문화와 밀접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흑인 아티스트들이 블랙 카우보이를 재조명하고 있다. 솔란지뿐만 아니라 카디 비(Cardi B), 릴 나스 엑스(Lil Nas X)도 블랙 카우보이의 패션을 차용한 비주얼을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인기를 끈 바 있다. 아프로펑크(AFROPUNK), GQ 등 매거진에서는 이를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받아들여 이햐 어젠다(Yeehaw Agenda)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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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란지, 그리고 [When I Get Home]

솔란지는 앨범 작업기를 통해 전작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니 [When I Get Home]을 하나의 소리 혹은 자신의 여러 내면을 표현하는 작품으로 봐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앨범의 비주얼 필름을 자신의 추억이 담긴 휴스턴의 아홉 장소에서 상영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장소로는 흑인 오너가 있는 은행을 비롯해 솔란지의 어머니가 운영한 헤어 샵, 인종차별 없이 흑인들도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던 운동장이 포함되었다. 이렇듯 음악과 영상까지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솔란지는 앨범을 통해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공고히 드러내고, 휴스턴에서 비롯된 문화와 음악을 새롭게 재해석하며, 흑인 커뮤니티와 연대해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음악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여러 맥락을 이해하고 감상한다면 더욱더 좋을 [When I Get Home], 보다 큰 울림을 느끼기 위해 다시 한번 플레이리스트에 올려보는 건 어떨까?


CREDIT

Editor

G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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