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엘이(HiphopLE)의 매거진팀은 격주로 일요일마다 오프라인 회의를 한다. 회의에서는 개인 기사에 관해 피드백하며, 중·장기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체크하기도 한다. 열띤 논의 끝에 회의를 마무리할 시점이 오면 그때부터는 특별하다면 특별한 시간을 갖는다. 지난 2주간 에디터 개인이 인상 깊게 들었고, 다른 팀 멤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노래를 소개하고, 하나씩 감상한다. 처음에는 그저 각자의 취향을 공유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던 이 작은 습관은 실제로 서로 극명하게 다른 음악적 성향을 알아가며 조금씩 외연을 확장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취향을 더 많은 이와 공유하기 위해 <2주의 선곡>이라는 이름의 연재 시리즈로 이를 소화하기로 했다. 가끔은 힙합/알앤비의 범주 그 바깥의 재즈, 훵크 등의 흑인음악이 선정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조차도 아닌 아예 다른 장르의 음악이 선정될 수도 있다. 어쨌든 선정의 변이라 할 만한 그 나름의 이유는 있으니 함께 즐겨주길 바란다. 12월의 두 번째 매거진팀 회의에서 선정된 여섯 개의 노래를 소개한다.
6lack - On and On (Erykah Badu Cover)
블랙(6lack)을 처음 들었을 때는 사실 큰 기대가 없었다. "Prblms"가 멋지긴 하지만, 비슷한 스타일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쉽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날, 호주의 방송국인 트리플 제이(Triple J)에서 블랙이 선보인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On and On"을 우연히 접했고, 그걸 보는 순간 판단이 완전히 바뀌었다. 좋은 선곡, 좋은 음색, 좋은 보컬 스타일에 좋은 해석까지, 블랙은 곡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곡을 듣게 된 뒤로 블랙의 음악을 모두 찾아들었고, 지금까지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팀발랜드(Timbaland)와 함께 싱글 "Grap the Wheel"을 발표했는데, 이 커버보다는 조금 아쉬웠지만 전보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기뻤다. 매력은 확실한데, 그 매력을 완전히 표출할 방법을 찾지 못한 느낌이다. 그래도 블랙은 지금도 멋지니 일단은 맘껏 응원해본다. 여담이지만 에리카 바두와 인연이 생긴 건 그녀의 아들 이름이 세븐(Seven)이고, 자신의 딸 이름이 식스(Syx)여서라고. 세븐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앙드레 3000(Andre 3000)이며, 식스는 에리카 바두의 공연을 보고 울었다고 한다. - bluc
Pretty Lotion – City Of The Future
마감이 잘 안 되는 날이 있다. 생각보다 그런 날이 많아서 문제지만, 아무튼 그럴 때마다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 해외 알앤비 신보를 듣곤 한다. 그러던 중, 발견한 프리티 로션(Pretty Lotion)의 음악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프리티 로션은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3인조 밴드다. 이들의 음악에는 팝과 네오 소울, 레게, 일렉트로닉 등이 섞여 있는데, 기타 리프가 두드러지는 편이라 모던 훵크에 가깝게 들리기도 한다. “City Of The Future”는 이들이 발표한 EP [Box Office]의 수록곡으로, 세련된 전자음과 훵키한 기타 리프가 섞여 가로등으로 가득한 밤거리의 일렁임을 연상케 한다. 밴드의 보컬인 에론(Eron)의 팔세토 창법은 웨스트코스트 힙합을 대표하는 싱어 코케인(Kokane)의 그것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퇴폐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밝은 분위기의 곡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그의 범상치 않은 내공을 짐작하게 한다. 새로운 아티스트의 음악을 찾고 있는 이들이라면 놓치지 말고 앨범을 다 들어보길 바란다. - Geda
Big K.R.I.T. - Dreamin'
우리 매거진팀의 버팀목, 블럭(bluc) 형은 언젠가 나에게 힙합엘이는 초등학교 이후로 가장 오래 소속되어 있던 집단이 되었다고 말한 적 있다. 6년. 직장은 아니지만 3년이든, 5년이든 경력을 채우면 종종 이직하는 직딩들을 생각하면 아무튼 꽤 오랜 시간이다. 나에게도 그 시간이 왔다. 내년 1월이면 6년째인데, 변한 게 없는 듯 변한 게 많다. 여전히 조잡하게나마 뭔가를 끄적이지만, 21살의 어리숙한 휴학생 막내 스태프가 이제는 감히 '치프'라는 말을 달고 멤버들을 챙겨가며 편집장 혹은 팀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보통 하는 짓을 하고 있다. 돈이건, 명예건 간에 뭐 하나 번듯하고 대단한 건 없지만, 생각해보면 이게 나의 꿈이었다. 돈은 죽지 않을 만큼은 벌고, 대신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무언가를 계속 만드는 것. 난 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다가 다시 그곳을 나오는 사이에 10년 가까이 가슴에 품었던 내 꿈을 이뤘다. 동네 통닭집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왕년에 날렸던 얘기를 사람 바꿔가며 계속해대는 아재들처럼 과거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걸 안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이 시점 다음을 생각해둔 적이 없기에 요즘은 정신 차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일은 늘 밀려 있으니 반추는 내가 힙합엘이에 들어온 즘 나왔던 빅크릿(Big K.R.I.T.)의 초창기 곡 "Dreamin'"을 들을 때만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 노래엔 졸면서 편의점,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짬내서 글을 쓰던 스물하나, 스물둘의 내가 있다. 이렇게 촌티 나게 과거팔이 하는 것도 일주일 뒤엔 정리하고 어수룩했던, 내 20대 초, 중반도 순순히 보내줘야겠다. 이젠 정말 안녕! - Melo
Sonreal - Don't Fall In Love Before The Outro
손리얼(Sonreal)의 음악은 유쾌하다. 대체로 밝고 빠른 템포의 음악이 많다. 트랩이 유행하든, 붐뱁이 유행하든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한다. 어쿠스틱 기타 하나에 랩을 하기도, 어디서 들어본 적 없는 독특한 훅을 뱉기도 한다. 뮤직비디오 한편만 봐도 그가 얼마나 유쾌한 사람인지,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선곡한 “Don't Fall In Love Before The Outro” 만큼은 예외다. 이 곡에서 그는 밝은 음악 이면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15살 이후 음악에 매진했지만 성공은 멀기만 했고, 음악에 빠지면 빠질수록 주머니가 비어 간다는 걸 깨달았다. 또 그사이에 여러 인간관계가 희생됐다고 말한다. [One Long Dream]이라는 앨범 제목처럼, 손리얼이 성공을 좇았던 모든 시간은 긴 꿈이었다. 그는 이제 꿈에서 깨어나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힘든 일이 겹쳐 찾아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앨범 마지막 곡의 마지막 구절 ‘Play On’. 무언가를 향해 계속해서 달려갈 그를 응원한다. - Urban hippie
글 | 힙합엘이 매거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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