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도 있는데 못 찍음)
23일에 릴리즈됐으나 CD로 꼭 첫 플레이 하고 싶어서 어제서야 들었습니다..
최근에 에픽하이 그닥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7, 8집은 별로라 걸렀는데 이번에 개삘와서 예약구매로 피지컬 질렀는데 결과적으로 감이 좋았다고 생각
몇 년만에 에픽하이 앨범을 이리 만족스럽게 감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제가 Pieces, Part 2인 것처럼 5집과 닮아있는 것도 같지만 전 들으면서 [Lovescream](1분 1초가 타이틀곡인 음반)가 더 떠오르더라고요. 주제나 수록곡 가사들로 봐도 Lovescream 2가 뭔가 더 적절한 부제같은 느낌? 5집은 낙화-우산-당신의 조각들 라인은 좋았으나 개인적으로 당시 에픽의 빅팬이었음에도 앨범이 갈수록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편이었고(특히 Breakdown, 연필깎이, The Future는 정말 별로였습니다.), 그 이유의 5할은 미쓰라 특유의 시조래핑이 차지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9집에선 미쓰라가 그 틀에서 벗어나 크게 발전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서 더더욱 거슬리지 않고 잘 들은 거 같네요.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일단 바이브가 제대로 가을 감성 저격한 앨범이네요. 사실 이 가을 감성을 아이유의 [꽃갈피 둘]에게 많이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그런 색은 옅은 편이었고.. 오히려 WDSW이 매 가을 플레이리스트에 오를만한 앨범이 될 것 같네요. 쌀쌀해지면 생각나는 그런 앨범.
타블로는 그동안 에픽하이가 보여준 모든 음악 스타일이 총망라된 앨범이라 설명했는데, 그까진 못 느끼겠지만(Paris, 거미줄같은 바이브도 없고 해서) 확실한 건 에픽하이 특유의 그 스타일은 최고조로 발휘된 앨범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힙 최초 9집에 걸맞는 앨범이 아니었나 싶네요. 다들 리얼 쉿이라 말하는 힙합 앨범이라는 범주를 넘은 관점으로 봤을 때 올해 들은 앨범들 중 첫인상이 가장 좋았습니다. 앞으로 몇 달 계속 들으면 또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의미있는 컴백을 보여준 건 분명해 보입니다.
"우린 이쯤에 와 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몰라도 계속 가긴 할 거 같다"라고 말하는, 마치 에픽하이의 신변잡기가 전해지는 앨범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문배동 단골집에서 "김건모, 태지 보이즈, 전람회가 흐르던 곳에 울려 퍼지는 trap"이란 구절처럼 현재 힙합씬의 전체적인 바이브에 대한 안티테제같은 앨범같기도 해요. 5집보다 오히려 4집의 슬로건이었던 'no genres, just one music'이 떠오르기도 하고(물론 그들의 근간은 명백히 힙합), 노땡큐를 제외하면 타블로가 2시즌 연속 프로듀서로도 참여한 쇼미더머니의 영향은 전혀 받지 않은 채 에픽하이의 것에만 온 집중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전 그 위치에 있는 이 앨범이 참 마음에 들어요. 지쳐있는 고막을 쉬게 해주는 역할도 해주는 거 같고요.
하루 차이로 나온 [Angels]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랩 자체를 듣는 맛은 나플라가 확실히 더 좋았습니다. 또한 혼자가 편해-smile-서울 라인처럼 그에게서 나오는 울림도 분명 컸으나.. 주제나 유기성 등을 고려한 하나의 앨범이라는 관점에서, 또 현재 감성의 관점에서 WDSW을 훨씬 더 좋게 들었습니다. 다만 이건 노래 들을 때 가사를 엄청 중시하는 제 개취기도 함
베스트 트랙은 Here Come The Regrets. 듣고 가장 소름돋은 곡. 뿐만 아니라 수록곡들 중 아직까진 거를 곡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간 에픽하이 앨범에선 꼭 최소 1곡씩은 거르게 되는 곡이 있었는데.. 트랙수 많이 안 채운 게 오히려 앨범 퀄리티를 상승시켜준 것 같기도 해요(7집, 8집은 트랙수 적고도 별로였지만). 연애소설도 흔한 대중성있는 사랑 노래 이상의 것을 보여줬다 생각하고, 노땡큐는 구멍 많던 본 헤이터보다 훨씬 잘 뽑혔고요. 더 큐 싸비 존나 좋아
노땡큐-빈차 라인도 좋았는데, [무명]에서 Overclass7-무비스타 라인이 생각나는데 당시 버벌진트의 말을 빌리자면, "격렬한 파티가 끝난 후 적막한 장소에 가 눈물 흘리며 조용히 혼자 쉬는" 그런 느낌이 전해졌네요. 빈차에서 길게 늘어뜨린 인트로부터 그 의도가 보였던 거 같고. 가사적으론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 상실의 순기능, 개화 등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Tape 2002.07.28에서 피해망상, 풍파 구절이 나온 것도 반가웠습니다(02년부터 그런 곡들을 구상했다는 게 참..).
한 가지 아쉬운 건 레코딩도 하는 듯해 보였던 에픽하이 X 넬의 무제가 결국 수록되지 않았다는 점 정도? 마지막 트랙인 문배동 단골집 아웃트로에 "I'll come back"을 강조하길래 "I'll never die"를 강조하는 무제가 혹시 그 다음 히든트랙으로 속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가졌으나.. 안타깝게도 없었습니다. 한정반엔 혹시 있는 거 아닌가
+
미쓰라 얘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4집과 5집에서의 미쓰라는 에픽하이에게 민폐 수준이라 여겨질 정도였고 8집에선 작사 단 2곡 하고 그 중 1곡인 본 헤이터에서도 개구렸어서 솔직히 전 이제 끝이구나 싶었습니다. 근데 이번 앨범을 들으니 미쓰라때매 에픽하이에게 기대를 접을 필요는 없겠구나 싶더라고요. 8집 당시 슬럼프 엄청 크게 왔었다던데 잘 극복했나 봅니다.
그리고 정기석 그는.... 아 존나 잘하네 씨바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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