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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Vince Staples와 열두 명의 콜라보레이터

Pepnorth2017.07.05 18:29추천수 5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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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Vince Staples와 열두 명의 콜라보레이터

믹스테입을 거쳐 첫 정규 앨범 [Summertime ’06]을 지나 EP [Prima Donna]에 이르기까지,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가 내놓는 결과물은 하나같이 랩의 퀄리티와 메세지의 힘, 전반적인 완성도까지 고루 갖춘 수작들이었다. 캘리포니아 롱비치 빈민가 출신의 93년생 래퍼. 아직 한참 젊은 나이란 걸 고려해도 그의 커리어는 어느 한 곳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그런 빈스 스테이플스가 두 번째 정규 앨범 [Big Fish Theory]를 들고 돌아왔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새 앨범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느낌이 조금 다르다. 전에는 훌륭한 퀄리티 자체가 눈에 들어왔다면, 이번에는 전작과의 차이점들이 눈에 띄는 탓이다. 그가 변화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새로운 음악에 대한 빈스 스테이플스의 열정과 추진력이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크고 작은 도움을 준 주변의 음악 동료들도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본 기사에서는 그들의 면면을 살피고, 작품 속에서의 역할을 따져보며 앨범을 더욱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감상 포인트를 제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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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me

플럼(Flume)은 두 번째 정규 앨범 [Skin]으로 그래미 어워드 2017(Grammy Awards 2017)에서 베스트 EDM 앨범상을 차지한 호주 출신 프로듀서다. 91년생으로 이제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퓨처 베이스 장르를 개척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견인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빈스 스테이플스와는 [Skin]의 수록곡 “Smoke & Retribution”을 작업하며 처음 연을 맺었다. 이번 앨범에서는 가장 놀라운 랩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곡 “Yeah Right”를 프로듀싱했다. 금방이라도 스피커를 찢고 나올 것 같은 베이스 사이를 날아다니는 날카로운 악기들과 쿠츠카(Kučka)의 목소리만 보면 전형적이면서도 조금 과장된 플럼의 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빈스 스테이플스의 냉소적인 가사와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타이트한 랩이 튀어나오는 순간, 곡은 힙합과 EDM이 묘하게 버무려진 실험적인 트랙으로 변모한다. 이로써 플럼과 쿠츠카, 빈스 스테이플스는 함께 만든 트랙의 수를 세 개째로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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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A

지난해, 빈스 스테이플스는 기존의 힙합 외에도 다양한 트랙에 참여하며 본인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마이애미 출신의 DJ 듀오 GTA의 “Little Bit of This”에 참여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곡은 리듬감 넘치는 뮤직비디오로 제작될 만큼 꽤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했었다. GTA와 빈스 스테이플스의 훌륭한 호흡은 이번 앨범의 수록곡 “Love Can Be”에서도 이어진다. 이 곡은 “Little Bit of This”의 스피디하고 밝은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사랑 노래이지만, 어색하거나 부족한 부분은 딱히 찾기 어렵다. “Little Bit of This”를 생각하고 들은 이에게는 조금 낯설 수도 있지만, 동일한 조합이 새로운 음악을 뽐낼 때만큼 흥미로운 순간도 없다. 빈스 스테이플스가 <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에서 킬로 키쉬(Kilo Kish), 레이 제이(Ray J),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을 대동해 이 곡의 라이브를 선보인 걸 보면, 꽤 애착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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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Rich

크리스티안 리치(Christian Rich). 이름만 보면 그냥 보통의 솔로 뮤지션 같지만, 사실은 두 명으로 구성된 프로듀서 듀오다. 2003년부터 릴 킴(Lil Kim), 클립스(Clipse), 래퀀(Raekwon) 등 베테랑 뮤지션과 작업한 경력이 있다. 근래에는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 제이콜(J. Cole),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 맥 밀러(Mac Miller), 도모 제네시스(Domo Genesis),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 드레이크(Drake) 등과 함께하며 빌보드 1위도 올라봤을 만큼 잔뼈가 굵은 팀이다. 그런 크리스티안 리치와 빈스 스테이플스의 인연은 지난 첫 정규 앨범 [Summertime ’06]에서부터 이어진다. 하지만 당시 만든 “Senorita”와 이번 앨범의에 수록된 Big Fish”의 분위기에는 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두 곡 모두 앨범 내 몇 안 되는 뱅어의 위치에 있지만, “Big Fish”가 조금 더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색채를 띠기 때문. 이와 별개로 한편으로, 크리스티안 리치는 빈스 스테이플스의 1집에 참여했던 프로듀서 가운데 유일하게 2집에도 참여한 프로듀서다. 어쩌면 빈스 스테이플스가 그들의 실력을 꽤 신뢰한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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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y Edgar

지미 에드가(Jimmy Edgar)는 데뷔 이후 긴 시간 동안 사운드 디자인 또는 그 구조의 연구와 실험에 몰두한 프로듀서다. 특히, 최근에는 부드럽고 차분한 뉘앙스의 전자 음악을 다수 발표했다. 앞서 언급한 EDM 프로듀서들이 화려하고 빠른 템포의 곡을 자주 발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자 음악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의 교집합만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빈스 스테이플스와의 접점 역시 다른 프로듀서들에 비해 가장 적어 보인다. 그 탓일까, 지미 에드가가 참여한 “745”는 다른 수록곡들과는 달리 유독 차분하면서도 느릿한 템포가 돋보인다. 물론, 이 역시 빈스 스테이플스의 계산일 확률이 높다. 그가 최근 들어 디트로이트 쪽의 실험적인 음악부터 하우스 뮤직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관심을 보이며 도전에 욕심을 보인 게 그 증거다. 새로운 음악을 해야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 빈스 스테이플스가 시카고 하우스, 디트로이트 테크노, 일렉트로 훵크 등 다양한 전자 음악을 구사하며 현재도 실험을 멈추지 않는 지미 에드가를 파트너로 택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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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ck Sekoff

잭 시코프(Zack Sekoff)는 이번 앨범에 참여한 프로듀서 가운데 가장 낯선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는 그간 켄드릭 라마, 썬더캣(Thundercat)의 앨범에 참여할 만큼 실력을 조금씩 인정받아 온 프로듀서다. [Big Fish Theory]에서는 수록곡 12곡 가운데 총 5곡의 비트를 담당했다. 혹자는 그런 잭 시코프를 두고 앨범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전반적인 비트의 설계자로 보기도 한다. 빈스 스테이플스가 머릿속에 있는 음악의 스타일 또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를 잭 시코프가 음악적인 형태로 만드는 식으로 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장르의 유형이나 구분에 큰 관심이 없는 빈스 스테이플스이기에 더욱 번거로울 수 있는 작업이었지만, 이에 대해 잭 시코프는 “빈스 스테이플스가 원하는 바는 무척 뚜렷했고 표현도 정확하게 해줘서 작업에 어려움이 없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보면 꽤 경험이 쌓인 중견 프로듀서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직 예일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21살의 어린 프로듀서다. 같은 LA 출신인 빈스 스테이플스와 잭 시코프는 수년 전, 한 DJ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됐으며, 이후 꾸준히 서로의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편이었다고 한다. 이번 앨범에서 이 둘이 음악의 방향성을 공유하고 좋은 합을 자랑할 수 있었던 건 그렇게 예전부터 꾸준히 소통한 덕분이 아닐까. 그렇기에 잭 시코프는 [Big Fish Theory]의 완성도와 프로덕션에 관해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기 어려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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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drick Lamar

켄드릭 라마가 뜨면 뜰수록 그의 뒤에는 이런 질문이 뒤따랐다. ‘켄드릭 라마의 뒤를 이을 재목은 누구인가?’ 그때마다 늘 등장하던 이름이 빈스 스테이플스였다. 둘의 개성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빼어난 랩스킬을 토대로 앨범 속에 쉽지 않은 이야기를 촘촘히 풀어놓으며, 전반적인 분위기를 균일하게 유지한다는 점을 비롯해 음악가로서 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큰 틀에서 비슷한 편이다. 또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특징도 공유한다. 그래서 괜히 둘이 절친한 사이일 것 같고, 다양한 곡에서 만났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두 뮤지션이 서로의 앨범 수록곡에 도움을 준 건 본 작의 “Yeah Right”가 처음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곡이 [Big Fish Theory]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메세지를 던지는 곡이라는 점이다. 그 메시지는 래퍼들이 전시하는 삶이 과연 실제 그들의 삶인지, 나아가 마약과 돈, 섹스, 성형 수술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이다. 켄드릭 라마가 피처링하기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릴 만한 주제가 또 어디에 있을까. 플럼의 과장된 비트 위에서 날아다니는 빈스 스테이플스와 켄드릭 라마의 랩을 듣다 보면 분명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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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o Kish

1집부터 빈스 스테이플스의 곡에는 여성 화자가 등장하는 경우가 잦았다. 곡에 따라 실제 사랑하는 연인이기도 했고, 소위 '꽃뱀'이기도 했으며, 단순히 빈스 스테이플스가 말하는 남성성과 반대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역할은 대부분 즈네이 아이코(Jhené Aiko) 또는 킬로 키쉬가 분담하는 편이었다. 이번 앨범에도 비슷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킬로 키쉬가 그 역할을 유일하게 소화했다. 킬로 키쉬는 빈스 스테이플스를 등쳐먹기도 하고(“Love Can Be”), 곡의 끝에서 무언가를 암시적인 내용을 쏟아내기도 하며(“Crabs in a Bucket”), 빈스 스테이플스와 함께 가사 하나를 통째로 부르며 다층적인 감정을 끌어내기도 한다(“Ramona Park is Yankee Stadium”). 이런 식으로 참여한 트랙이 앨범 수록곡의 절반에 가까운 다섯 곡에 이른다. 빈스 스테이플스가 작품 속 킬로 키쉬의 역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나아가 같은 아티스트이자 동료로서 얼마나 믿고 리스펙트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킬로 키쉬의 유약하고도 몽환적인 보이스와 개성은 쉽게 대체될 수 없기에 앞으로도 둘의 콜라보는 꾸준히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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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icy J & Ty Dolla Sign

과거 “Jump Off The Roof”나 “Hang N’ Bang”, “Lift Me Up”에서 보여줬듯 빈스 스테이플스는 랩 실력만큼 훅을 짜는 실력도 좋은 편이다. 다만, 그 스타일이 다소 한정되어 있는 편이다. 곡에서 보여주는 냉소적인 태도나 무감정한 목소리가 훅에서도 드러나기에 듣는 이를 신나게 할 힘도 크지 않다. 이를 빈스 스테이플스도 잘 아는지 훅이나 인트로에 힘을 줘야 할 필요가 있으면 다른 래퍼를 섭외하는 편이다. “Senorita”의 후렴에 퓨처(Future)의 노래 “Covered N Money”의 1절을 샘플링하고, “War Ready”의 인트로에 안드레 3000(Andres 3000)의 “ATLiens” 속 랩을 샘플링하고, “Dopeman”의 시작 부분에 조이 팻츠(Joey Fatts)의 목소리를 빌린 게 대표적이다. 이 흐름은 이번 앨범에서도 이어진다. 훅의 강자 쥬시 제이(Juicy J)는 귀에 찰떡같이 달라붙는 목소리와 리듬감으로 “Big Fish”의 인트로와 후렴을 책임지며 빈스 스테이플스가 곡 안에서 그리는 갱스터의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데 일조한다. 반면, 타이 달라 사인(Ty Dolla $ign)은 “Big Fish”와 대척점에 있는 “Rain Come Drop”에 참여해 특유의 기름지면서도 몽환적인 목소리로 트랙의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배가한다. 빈스 스테이플스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걸 생각해보면, 그에게 게스트 섭외는 곡의 매력을 살리는 효과적인 전략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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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on Albarn

이번 앨범 참여진에서 가장 낯선 이가 잭 시코프였다면, 반대로 가장 의외의 인물은 데이먼 알반이다. 빈스 스테이플스가 데이먼 알반의 가상 밴드 고릴라즈(Gorillaz)의 새 앨범에 참여하긴 했지만, 반대로 데이먼 알반이 빈스 스테이플스의 앨범에 참여하리라고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 데이먼 알반은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블러(Blur)의 멤버이자 고릴라즈로 실험적인 음악과 상업적인 성공을 모두 거뒀으며, 15년 만에 새 앨범을 발매한다는 소식만으로 세계 음악 팬들을 설레게 했을 만큼 거물급 뮤지션이다. 그래서 더욱 예측이 어렵기도 했다. 물론, 데이먼 알반이 [Big Fish Theory]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Love Can Be”에서 킬로 키쉬, 레이 제이와 함께 목소리를 더하고 키보드를 연주한 게 전부다. 하지만 그 비중을 고려하더라도 데이먼 알반이 본인의 앨범 [Humanz]에 정치적인 이야기를 풀어줄 매개체로 빈스 스테이플스를 선택하고, 나아가 [Big Fish Theory]에 참여한 후 함께 방송에 나가 노래를 부른 건 여러모로 상징하는 바가 크다. 빈스 스테이플스의 커지는 위상과 넓어지는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대목처럼 느껴진달까.



지금까지 앨범 참여진을 토대로 빈스 스테이플스의 신보 [Big Fish Theory]를 간략하게 살펴봤다. 위에 언급한 인물들 외에도 빈스 스테이플스에게 직,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이들은 적지 않다. 아티움 레코딩스(ARTium Recordings)의 사장으로 빈스 스테이플스를 영입,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프로듀서 노아이디(No I.D.)와 앨범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해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데이비드 헬만(David M. Helman) 같은 이도 있다. 또한 “Crabs in a Bucket”을 추가로 편곡해 현재의 분위기를 만들어준 저스틴 버논(Justin Vernon)과 지난 앨범에 이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더한 에이셉 라키(A$AP Rocky), [Prima Donna]를 제작할 때부터 빈스 스테이플스에게 큰 영감을 준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역할을 살피고 생각하며 듣는다면 빈스 스테이플스가 이번 앨범에 담은 의도를 파악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글 | 김현호 (Pepn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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